마지막날 하루 전이니까 써볼까. 올해 배운 것.

도망칠 수 없는 직장에서 나를 제대로 먹여살리는 법을 배웠다. 지독한 야근을 소화하면서도 아침엔 1분의 지각도 용납치 않는 방법. 먹고만 사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배웠다. 일과 일을 위한 휴식을 위해서만 사람은 살 수 없다는 것.

코로나 덕에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는 못했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 핑계를 댈 수 있어서 좋았다. 난 생각보다 내향형 인간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좋긴했지만, 계속 집에 가고 싶었다. 혼자가 제일 편하고 편한게 좋다. 신기한 건 내게 남겨둘 관계만 남겨도 내 인생은 제법 풍족하게 만날 사람들이 있었다. 고마웠다.

고양이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내 공간에서 나는 생각 보다 청소기를 자주 돌리고, 집을 위해 사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집에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

대체로 업무 스트레스와 회사에서의 진상을 견디느라 너무너무 힘들었다. 견디고 나니 견디길 잘한 것 같긴 한데 그렇게까지 견딜 필요가 있었을까? 는 여전한 물음표다. 물론 견뎌서 갚을 할부가 많았다. 불안하기도 싫었고. 일을 제대로 익혀 앞으로 30년은 먹고 살 자립의 토대를 쌓아야 했다. 솔직히 힘들 줄은 알았는 데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해야 했다. 나에게만 힘든 거라면 너무 억울해서 내면이 망가질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을 매일 마주보는 게 특히 괴로웠다. 아무리 괴롭다고 진상은 되지 말아야지. 반면교사. 내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힘듦에 모조리 잡아먹히지 않을 지성을 갖추는 일이었다. 부족하나마 책읽기와 글쓰기는 도움이 되었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잘했지 싶다.

그러고 보니 어찌되었든 어느 선에서는 피아가 확실 한 게 좋아. 나와 내가 아닌 것들이 혼재되어 다 삼키러 버둥대던 날들이 생각난다. 아직 그 습관을 버리지는 못했다. 절대적으로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휴식할 자기만의 방과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 시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배겨내지 못하는 인간임을 배웠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건강한 루틴을 (달리기나 요가 등 운동)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문제는 저녁이 없는 삶이라는 나의 계급이었는 데, 집에만 오면 매일 혼절할 정도로 힘들었던 나는 (심지어 집에 와서도 일을 해야하는 날들이 태반이었다) 악착같이 겨우 쌓아 놓은 운동 루틴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야근 일정에 무너질 때마다 깊은 빡침을 느꼈다. 그리고 빡치기 싫어서, 그러다 일이 싫어질 것 같아서 부러 루틴을 만들지 않는(?) 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몸이 나빠지는 기분은 좋지 않지만 게으르고 또 게으르게 늘어져있는 시간은 달콤하다. 올해 해본 것들 중 특히 달리기는 의외로 너무 좋았다. 요가도 항상 너무 좋았지만, 달리기가 생각 이상으로 좋아서 당분간은 달리기.

*

올해의 소설은 토카레바의 <티끌 같은 나> 아아... 너무 좋아! (꼭끌어안기)



올해의 에세이는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되게 천천히, 틈틈히 다 읽어냈는 데, 철학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올해의 페미니즘 책은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읽을 때는 몰랐는 데, 결산하는 시점에서 지나고 보니 가장 생각이 많이 바뀐 건 요책인 듯. 
물론 다른 책들도 다 너무 좋았다. 두번째에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꼽고 싶다.

*

참, 두달에 한번씩 서울에 오는 엄마와 함께 좀비물을 몰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엄마가 이토록 좀비물을 좋아할 줄이야ㅋㅋㅋ 킹덤에 월드워Z에....워킹데드 시즌2까지 달리다 말았는 데, 이번엔 집에 오자마자 시즌3보자고 해서, 잠시만 진정시키고... 크리스마스엔 스위트 홈을 봤다. 무서웠다 ㅠㅠ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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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2-30 0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스위트홈 제목만 들어봤지 무서운건지 몰랐어요. 헐... 나도 볼까. 킹덤만큼 재미있지 않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 ㅋㅋㅋㅋㅋ

올해도 열심히 살았어요, 쟝님. 장해요. 대견합니다. 잘했어요. 그리고 티끌같은 나가 쟝님의 올해의 소설이라니 너무 좋으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내가 좋지? 내가 쓴 소설도 아닌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론적으로 쟝님이 밑에 링크해둔 책 네 권을 내가 다 읽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우리 부산 만남이 너무 좋았거든요. 바다 앞에 자리한 곳에서 다같이 먹고 마시면서 수다 떨고 음악 듣고 노래 부르고 그랬던 거. 내년에도 그런 시간이 우리에게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헷.

연말 잘 마무리해요, 쟝님. 소중한 쟝님!
:)

공쟝쟝 2020-12-30 09:49   좋아요 2 | URL
아 하고 싶은 말 많은데 스위트홈은요 킹덤보다는 살짝 떨어지지만 여성캐릭터들이 아주 아주 아주우우우 칭찬해 ㅋㅋㅋ 남캐다 때려잡습니다 ㅋㅋ

공쟝쟝 2020-12-30 21:27   좋아요 1 | URL
저두 올해 생각하면 그 기억이 너무 소중해요. 함께 할 수 있어 좋았어요! 티끌 같은 나도 요!! 내년에도 많이 읽구 함께 나눠요, 소중한 그대🥰

잠자냥 2020-12-30 0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티끌 같은 나> 올해 가장 좋은 책이었습니다. ㅎㅎ

공쟝쟝 2020-12-30 21:28   좋아요 2 | URL
꼭 끌어안고 눈물을 적신다...! 이거 올해의 소설이라고 말하려고 출근하면서 페이퍼썼어여. 잠자냥 독서가님 감사합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반유행열반인 2020-12-30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해에는 쟝쟝님한테 저녁을 돌려죠라 회사야... 저는 오히려 진상이 되는 법을 익힌 한 해 같아서 떫떠름 한데 어쨌거나 지지 말고 잘 살아봅시다 ㅠㅠ

공쟝쟝 2020-12-30 21:29   좋아요 1 | URL
진상이 되기도 하고 밥상이 될때도 있고...! 반님 만나서 독서욕(만) 가득한 2020이었어요. 우리 내년엔 더 돈독해지구 공감 독서생활이어나가요~! 새해복😊

syo 2020-12-30 1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경의 터널을 지나온 쟝쟝님 앞에 펼쳐질 2021년이 기대된다!

공쟝쟝 2020-12-30 21:30   좋아요 1 | URL
제가 자주 기대는 독서가님, 내년에는 시간을 확보하여 철학입문에 도전합니다. 지도편달 부탁합니다.

비연 2020-12-30 1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애썼어요.. 올 한 해 잘 버텨낸 쟝쟝님, 멋짐~
내년에는 좀더 쟝쟝님에게 집중하며 남에게서 받는 나쁜 에너지 따윈 확 물리치며
당당히 살아나가는 쟝쟝님의 ‘더없이 멋진‘ 2021년이 되길 바래요^^

공쟝쟝 2020-12-30 21:32   좋아요 1 | URL
자주 지지만 결론적으로는 당당하게! 내년에는 추천해주신 김승섭 작가님을 비롯해 미미여사까지 독파하는 소설 독서가로 거듭나 볼테다! 비연님 만나서 좋았던 한해였어요~~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라로 2020-12-30 1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멋지십니다!!!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이 한 페이지에서 많이 배웠어요!!
<티끌 같은 나>는 예전 좋아한다고 올리신 글 읽고 찜했는데 잊고 있었어요. 😢 이 글로 당장 구매하겠어요!! 그 다음 글 쓰시면 그 때 읽게 될테니 (😓) 이 책에 대한 글 더 써주세요. 😅😅😅

공쟝쟝 2020-12-30 21:42   좋아요 0 | URL
으헤헤 사시면 그 책의 맞춤한 판형과 디자인 때문에 바로 거들떠 보실 겁니다. 내년에는 부디 더 많은 책으로 더 깊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기를! 한 해동안 고생많으셨고, 내년에도 함께 읽어요 ^.^

수이 2020-12-30 13: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티끌 같은 나_ 그렇게 좋은 거야? 그런 거야? 아 그러면 사서 읽어야지!! 그리고 쟝쟝님, 웃는 게 예뻐. 웃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진짜로 만나기 전에는 웃는 모습 보기 전까지는 몰랐지요. 내년에는 회사 가지 마요. 하고 싶어진다. 자주 웃고 책도 막 읽고 행복한 새해 되어요. 철학공부 까짓 거 해버렷!!!

공쟝쟝 2020-12-30 21:44   좋아요 1 | URL
실업급여 받을 때 까지만 존버하자고 오늘 방금 도원결의 했어요. 조만간 퇴사하고 탱자탱자 놀면서 하하하 웃으며 철학도 읽을래여~!! 수연님 만나서 저에게도 얼마나 의미있는 한 해 였게요:) 내년에도 많은 읽기와 삶나눔 부탁드려요😍

붕붕툐툐 2020-12-30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공감 가득 구절이 넘치는 일년 결산이네용~ 소중하게 품으신 책을 읽고 싶은 책장에 살포시 넣어놓습니다. 지금의 고생은 30년간 편하게 먹고 사시는 토대가 될거라는 어설픈 위로 놓고 갑니다~

공쟝쟝 2020-12-30 21:45   좋아요 0 | URL
툐툐님 어랫만이예요! 어설프지 않고 강력한 위로였나니!!! 내년에도 바지런히 허락되는 안에서 읽고 써요 우리 ^.^ 새해복많이받으셔요 :)

:Dora 2020-12-30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근은 넘넘 시러용 한해 수고ㅠ많으셨습니당

공쟝쟝 2020-12-30 21:47   좋아요 1 | URL
넘넘 싫어요 ㅠㅠ 그치만 일을 못하니까 흑흑흑! 내년엔 좀 더 나아지려고 올해 야근 다 몰아서 해버렸어요! 도라님두 한 해 고생 많으셨구!! 해피뉴여~~~~!!😌

단발머리 2020-12-30 1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도 <티끌 같은 나> 읽어보려구요. 올 한 해 우리 쟝쟝님 너무너무너무너무 수고많았어요.
고생한 만큼 좋은 기술, 고급 기술 많이 많이 배웠으면 좋겠어요. 흥해라, 쟝쟝님! 열어라, 도서관!!

잠자냥 2020-12-30 17:34   좋아요 1 | URL
<티끌 같은 나>는 꼭 읽으셔야 합니다. 저의 올해의 책!!!

단발머리 2020-12-30 17:39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올해의 책 <문체 연습> 아니었던가요?!? @@ 궁금궁금

잠자냥 2020-12-30 18:19   좋아요 1 | URL
그건 하반기 올해의 책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티끌>은 2020년 전체!

단발머리 2020-12-30 18:21   좋아요 2 | URL
<문체 연습> 준비해둔 단발머리는 터벅터벅 <티끌 같은 나>에게로 갑니다.

잠자냥 2020-12-30 18:2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안 그래도 저 댓글 달면서 단발머리 님이 저렇게 물으실 거 같았어요. 예리한 분 같으니라구 ㅋㅋㅋㅋ 저도 곧 2020 하반기 책 정리 포스팅을 올리겠습니닷!

단발머리 2020-12-30 18:26   좋아요 0 | URL
예리한 단발머리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아, 기대된다!!!!! 🤭

공쟝쟝 2020-12-30 21:49   좋아요 0 | URL
저도 함께 잠자냥님의 페이퍼를 기다리며!! 그대의 따뜻한 댓글이 종종 게을리 쓰는 저에게 어찌나 큰 동력이 되었던지! 방학이 없었던 올 한해, 고생 정말 많으셨구..! 내년에도 우리 함께 책 이야기 나눠요. 제가 서재에서 건져올린 보물들 중에서 유난히 빛나는 단발님! 새해복😊

scott 2020-12-31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장장님 2021년 새해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복주머니 하나 놓고 가여 ㅋㅋ

해피뉴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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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 福마뉘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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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12-31 20:58   좋아요 1 | URL
귀여운 복주머니 덥썩~>.< 스콧임두 새해복많이 받으세용!

2020-12-31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6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krasibaya 2021-01-14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티끌 같은 나를 번역한 승주연입니다. 번역하는 동안 솔직히 저만 재미있는 걸까봐 내심 걱정했는데,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서평도 잘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공쟝쟝 2021-01-15 18:36   좋아요 0 | URL
역자님 좋은 책이었어요 ^.^ 토카레바 책 또 나오면 찾아볼게요!! 제가 영업많이 했어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