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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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린 정말로 아이가 걱정스러웠다.
어찌나 걱정스러운지 시도 때도 없이 내 아이를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시시콜콜 비교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친구 아무에게나...가 아닌, 학교 성적이 뛰어나며 죽어라고 책만 읽는다는 아이를 둔 친구에게 자문을 구해보기도 했다.
귀가 잘 안 들리나? 독서 장애가 아닐까? 아예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하는 거나 아닐까? 저러다가 영락없는 학습 지진아가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별의별 검사를 다 해보았다. ...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왜?
둔해서일까?
단지 둔해서일 뿐이라고
아니다. 아이는 그저 자신의 리듬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리듬은 다른 아이들과 반드시 같아야 한다는 법도, 평생을 한결같이 언제나 일정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아이에게는 저마다 책읽기를 체득해나가는 자신만의 리듬이 있다. 때론 그 리듬에 엄청난 가속이 붙기도 하고, 느닷없이 퇴보하기도 한다. 아이가 책을 읽고 싶어 안달을 하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포식 뒤의 식곤증처럼 오랜 휴지기가 이어지도 한다. 거기에 아이 나름대로의 좀더 잘 하고 싶다는 갈망, 해도 안 될 것만 같은 두려움까지 감안한다면....
교육자를 자처하지만, 실은 우리는 아이에게 성마르게 빚 독촉을 해대는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가 없다. 말하자면 얄팍한 지식을 밑천 삼아, 서푼어치의 '지식'을 꿔주고 이자를 요구하는 격이다.
되돌려 주어야만 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될 수록 빨리! 그렇지 않으면, 누구보다 바로 우리 자신부터 의심해보아야 할 것이다.

-60쪽~61쪽쪽

학생 여러분, 우리가 처음 문학에 끌리기 시작하는 건 한낱 단어 나부랭이나 문장 때문만은 아닙니다. 문학이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이야기의 시대는 그 옛날 기억마저 아스라한 시절, 갓난아이를 어르고 재우는 자장가를 그만둘 즈음부터 벌써 시작됩니다. 아이는 젖을 빨 듯 이야기를 빨아들입니다. 그러곤 그 경이로운 이야기들의 세계가 끝없이 되풀이되며 이어지기를 요구합니다. 아이는 냉철하기 그지없는 훌륭한 독자입니다. 나 또한 그 하고많은 마법사며 괴물, 요정 따위를 끊임없이 지어내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바쳐야 했는지 모릅니다.
-68쪽쪽

아이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읽기 시작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엿가락처럼 늘어난다. '책' 속의 낱말들이 워크맨의 이어폰 사이에서 춤을 춘다. 아무런 감흥도 없다. 한 자 한 자가 납덩이처럼 무겁기만 하다. 낱말들이 안락사를 당하는 말처럼 차례로 쓰러져간다. 전열을 가다듬는 드럼 연주로도 죽어가는 낱말들을 소생시키기엔 역부족이다(설령 드럼연주자가 그 유명한 켄들일지라도!). 낱말들은 의미를 반납하고 평이한 글자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낱말들이 눈앞에서 무참히 쓰러져가건만 아이는 겁날 게 없다. 오직 앞으로의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읽는 것만이 자신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당면과 제이자 의무이므로.
-p.81~82쪽

살아가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를 짐승이나, 야만인, 일자무식의 무뢰한 광포한 광신도ㅡ 자기 도취에 빠진 독재자. 탐욕스러운 배금주의자들과 구별짖는 것이 책을 읽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독서의 절대적 필요성이다. 그러니 책을 읽어야 한다. 기필코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배우기 위해서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지식을 쌓기 위해서
·우리 인간이 어디서 왔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기 위해서
·타인들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 인간이 어디로 가는지 알기 위해서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서
·현재의 우리를 직시하기 위해서
·지난 시대의 경험을 활용하기 위해서
·선조들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우리의 문명을 이루고 있는 근원을 파악하기 위해서
·끝없는 호기심을 일깨우기 위해서
·기분 전환을 위해서
·교양을 쌓기 위해서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기 위해서
·비판 정신을 기르기 위해서
-p.92쪽

책 읽을 시간이 고민이라면 그만큼 책을 읽을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글을 쓰는 시간이나 연애하는 시간처럼 말이다).

대체 어디에서 훔쳐낸단 말인가?

굳이 말하자면,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의무의 시간들에서이다.

(...)

책을 읽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 그렇듯, 삶의 시간을 확장시킨다.

만약 사랑도 하루 계획표대로 해야 하는 것이라면, 사랑에 빠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들 사랑할 시간이 나겠는가? 그런데도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할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독서란 효율적인 시간 운용이라는 사회적 차원과는 거리가 멀다. 독서도 사랑이 그렇듯 그저 존재하는 방식인 것이다.

문제는 내가 책 읽을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그렇다고 아무도 시간을 가져다주지는 않을진대),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p.159~161쪽

입사 시험에서든 학교 시험에서든, '이해한다'란 말의 의미는 시험관이 수험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제대로 이해한' 답안이란 그러므로 요령껏 타협을 본 답안이다.

(...)

그러므로 '열등생'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극히 정상적인 보통의 아이일 경우가 허다하다. 단지 전술적인 대처 능력이 결여되어 있을 뿐이다.


-p.175~176쪽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
한권의 소설책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고 던져버릴 만한 무려 36000가지의 이유들이 있다.
이를 테면 전에 어디선가 읽어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다지 주의를 끌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작가가 주장하는 바에 전혀 동조할 수가 없어서, 혹은 닭살이 돋을 만큼 문체가 역겹다거나 반대로 더 이상 읽어나갈 이유를 찾지 못할 만큼 문체가 진부해서라는 둥.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책이 우리의 손에서 떨어져나간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어쨌거나 제아무리 몽테스키외라한들, 마음에도 없는 책을 억지로 1시간씩 읽어가며 마음의 위안을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읽기를 포기하는 숱한 이유 가운데 한 가지만은 좀더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렴풋이나마 패배한 느낌을 받아 책을 다 읽지 못하는 경우이다. 책을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도 않아 나 자신보다 완강하게 느껴지는 무언가에 의해 점점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 위대한 소설이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고 하여 그 소설이 반드시 다른 소설보다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책과 -제아무리 위대한 소설이라 할지라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소양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우리들 사이에 모종의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p.203~ 205쪽

소설은 그냥 소설로, 소설처럼 읽어라.
아이들은 다들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 혹은 무엇이 되어가는 과정들이다. 아니 어른인 우리도 언제나 나 아닌 다른 무엇이 되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 책은 그런 우리의 꿈을 은밀히 부추기고 공모하는 동반자의 역할을 해 줄 따름이다. 그러니 어떻게 그것을 우격다짐으로 강요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읽다’는 ‘사랑하다’나 ‘꿈꾸다’처럼 명령문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책과 담을 쌓은 아이들을 위해서 구체적인 방안 하나를 우리에게 던져 준다.
-역자후기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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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1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8-06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에세이군요.
처음 보는 책인데 아주 흥미롭네요.
저도 요즘 <읽기>에 대한 책을 읽고 있어서 더 관심이 가기도 하구요.
마지막 역자후기도 걸작이네요.
`읽다`는 `사랑하다`나 `꿈꾸다`처럼 명령문이 먹혀들지 않는다.
키햐~~~~

icaru 2016-08-06 22:51   좋아요 0 | URL
앙 네 정말 이 책 강추여용 책은 손바닥한 문지스펙트럼인데 알차요!ㅌㅌ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 -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독서의 힘
후지하라 가즈히로 지음, 고정아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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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일단 구매하고 보니, 이 저자가 전에 읽었던 <마흔, 버려야 할 것과 붙잡아야 할 것들>의 저자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 이 사람 또한 도쿄대를 졸업하고, 리크루트를 입사 성공가도를 달렸던 사람이기는 하나, 중고등학교 시절 고전을 읽고 오히려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결론적으로는 학창 시절 내내 책과 가까이 지낸 그런 위인?? 은 아니라고 한다. 책을 맹렬히 읽었던 시기는 직장 인생의 정점에서 메니에르 병에 걸리고, 요양의 시기에 왕성하게 읽었다고 한다. 정점에서 모든 것을 놓고 내려와야 했겠지만,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값진 기회가 아니었나 싶었겠다.

주변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메니에르 병 때문에 고생한 사람을 알고 있다. 그 사람 또한 인생관이 달라졌다.

인생의 산은 하나가 아니라고 한다. 인생의 후반을 향해 하나의 큰 산을 넘어가는 이미지가 아니라, 쭉 이어진 여러 개의 산을 올랐다 내려갔다 하면서 마지막까지 산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인생에 있어서 조감도를 획득해야 하는데, 도서습관이 붙게 되면 저자처럼, 조감도를 볼 수 있는 풍성한 시야를 획득하고, 또한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이탈해도 상관없다고 하는 심리적 여유 또한 얻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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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5-2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의 산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이야기는 참...
산 너머 산이라는 이야기인데요. 아이구야.

갑작스럽게 찾아온 질병이 인생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수는 있는데, 암튼 그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것 같아요.
작은 언덕만 서너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ㅎㅎㅎ

icaru 2016-06-08 09:53   좋아요 0 | URL
ㅋㅋ 아이구야! 어떤 인생인들 시종 운이 억세게 좋아 잘 풀려만 간다거나, 죽을 쑤기만 한다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행불행의 엇갈림이 아니라, 방향 전환의 문제인 것으로....
작은 언덕만 서너개 좋아요!!
내가 잘 조망할 수 있는 수준의 언덕들이기를요!!
 
공부 중독 -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엄기호.하지현 지음 / 위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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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사람이 회사에서 과로를 하고 있다. '의미 없다'는 라는 말이 입에 붙어버렸고, 곁에 있으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동동거리게 되고, 그닥 위로를 줄 수 없으니, "회사는 언제고 그만두면 그만이니, 죽을 힘을 다해 살지 말라"고 되는 대로 주워 던져 본다. 사실, 나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겠다. 누가 내 삶의 의미를 찾아줄 수 있겠어. 정신 분석의가?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부서장님과 우리팀 막내사원) 빼고, 일하는 게 재미없어서 괴롭다고들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저 나아가기만 할 뿐이다. 스트레스가 많다.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일하는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내가 일하는 의미를 깨달으면 일의 지루함과 스트레스라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부딪쳐가면서 발견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마음이 세상을 만나야 한다. 마음이 세상을 만나는 것. 그것이 아마도 공부라는 것이 아닐까?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하는 공부말이다. 공부가 삶과 분리되면 삶은 더욱더 빈약하고 허약해지고, 삶은 공부의 식민지로 전락한다.

 

이것이 바로 공부 중독 현상.

 

하지원 : .....지금은 회사에 입사하면서 내가 이 회사를 20년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하다못해 전문직이라는 의사직도 전에 비해 유동성이 많이 커졌어요. 한 곳에 머물러 오래 근무하기보다 이직이 많아졌죠. ...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은 자기 삶이 정해져 있기를 바라죠. 굉장히 빠르게 안정적으로 가는 어떤 흐름에 나를 싣고 싶어 해요.

 

어차피 합리적은 생각은 길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먼 미래는 생각하지 말자는 것, 바로 앞에 닥친 일을 하나하나 잘 처리해나가는 것으로 나의 삶의 방법을 바꾸자,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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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늙을까 - 전설적인 편집자 다이애너 애실이 전하는 노년의 꿀팁
다이애너 애실 지음, 노상미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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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늙는 일에 대한 것을 쓴 내가 알고 있는 저자로는 소노 아야코이고 그녀의 책들을 읽었을 뿐이다. 한참 그녀의 책을 읽었던 게 30대 중반의 시기였음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5~6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나보다 싶다.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어쩐지 겪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은 ...

내게 있어 소노 아야코에 대한 다이애너 애실의 차별점은 이 분이 평생 몸담은 직군에 있다. 편집자였다는 것. 편집자가 글을 써서 책을 냈다는 것 .

 

글쓰는 게 자신이 원하는 바였다는 것을 대부분의 작가들은 인생의 초반에 깨닫는다. 아무리 어려서 책을 좋아하고, 설령 친구들과의 편지쓰기에서 잘 쓰는 아이로 통했더라도 말이다.

우리네들에게 보통 책이라 하면, 소설을 의미하고 소설가에겐 상상력, 즉 인물과 사건, 혹은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필요한데, 아무리 글을 잘 쓰더라도 그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고 느껴지면 글을 쓰는 일 즉, 작가가 될 수 없음을 직관으로 안다.

 

이분 또한 그런 경우로 보여진다. 허나 다른 사람들의 글을 좋아해 편집일을 하게 됐다는 것인데, 자신이 지닌 창조적 에너지가 뭐건 간에  그 에너지의 대부분이 자신이 매일 같이 하는 일을 통해 분출됐다는 의미였을 테니,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압력 즉, 글을 쓰기 시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케이스인 것이다.

 

 

"소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독자를 붙든다. 스릴이나 이국적인 것을 제공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도 해주고, 풀어야 할 수수께끼를 던지기도 하고, 몽상의 소재들을 제공하고, 인생을 돌아보게도 해주고, 자신과는 다른 삶을 보여주기도 하고, 인생을 판타지로 볼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 소설은 우리를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고 놀라움에 숨 막히게도 한다. 또 최고의 책들은 독자를 완벽히 현실처럼 보이는 세계로 데려가 생생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 <미들마치>를 처음 읽었을 때, 끄트머리 몇 장을 남겨두고 내 기분이 어땠는지 생생하다.

'아, 안 돼, 곧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니, 정말 싫어!'

...다행히도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삶 속으로 데려가주는 소설들은 얘기가 다르다. 나이폴이나 필립 로스의 책이 그렇다. 그리고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들 역시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다. 톨스토이, 엘리엇, 디킨슨, 프루스트, 플로베르, 트롤럽(그렇다 나는 트롤럽도 그 반열에 올린다. 내 생각에 지금까지 그는 심하게 저평가 되어왔다.)

....그러니 소설이 '시들해졌다'는 내 말이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놀랍고도 부러운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나이가 드니까 내가 까다로워졌다는 이야기다.

.... 내 정신이 돌아다닐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해주는 책들은 여전히 보고 싶다. 가장 좋은 예로 내가 산업혁명 초기에 대해 잘 알게 된 건 다음의 세 권, 아니 네 권의 책 덕분이다.

...자기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런 좋은 책들을 벗삼아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더없이 상쾌하리라.

...텔레비전 하나를 사는 것 보다는 라디오를 다시 듣는 게 상상하기 더 쉽다. 한때는 음악을 무척 좋아해 BBC라디오3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귀가 먹어 음악 소리가 대부분 왜곡되게 들려 귀에 거슬리는 통에 듣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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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의 해 - 내 인생을 구한 걸작 50권 (그리고 그저 그런 2권)
앤디 밀러 지음, 신소희 옮김 / 책세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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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은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할 때마다, 내용에 흥미를 느끼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시냅스의 재배치 작용을 그는(애덤스 더글라스) 굳게 믿었다. 바로 그런 작용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을수록 세계가 변하는 것이다."

 

213

내가 책을 수집하고 갈망하고 쟁여놓고 마구 사들이게 된 것은 오직 한 사람 때문이었다.  독학자이자 서적 숭배자 꼬마였던 사람. 바로 나 자신.

 

228

내가 몸담았던 직장들은, 심지어 비교적 보수가 좋았던 곳들도 내 생각에는 점잖은 삶에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요소를 제공하지 못했다. 말해줄 테니 연필을 꺼내서 받아 적으시라. 첫 번째, 남이 아닌 나 자신의 시간에 맞추어 일할 수 있을 것. 두 번째, 평소에 큰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그럴 수 있게 해 줄 부수적 이득을 제공할 것.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 아니겠는가.

 

232 어린 시절, 책읽기는 인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모가 된 다음엔 우리 스스로 책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지난 여름 티나가 아팠을 때 앨릭스와 나는 함께 <호빗을 >을 읽었다. 때로는 아이가 내게 읽어주었지만, 대부분은 내가 아이에게 읽어주었다. 나는 이언 매캘런을 흉내내어 간달프의 대사를 읽고, ...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우리는 그렇게 현실 세상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가 끝나야만 했을 때 우리는 아쉬워했다.

 

312

우리는 예술만큼이나 경험에 희애 만들어지는 존재이며, 우리가 책에서 읽는 것은 예술과 각자의 경험이 이루는 총합이라는 것이다.

 

 (전자책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

355쪽 새로운 종류의 기계를 개시하는 데 오래된 기계를 활용하면 적절하겠다고 생각한 나는 킨들을 통해 <화산 아래서>를 세번째로 읽게 되었다. 아니 읽으려고 시도는 했다. 전자책 단말기는 그 책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단발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왼손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들 사이에 책장을 기우고 넘기는 동안 천천히 쌓여가는 만족감이 그리웠다. (중략) 잠시 내려놓고 곰곰히 생각에 잠기거나 여기저기 뒤져보거나 되로 돌아가서 다시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357쪽 나는 평생 동안 다른 책들보다 더 여러 번 읽었을 다른 책들도 이 안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 다섯 권. 그 작품을 "4제곱인치 정도 되는" 단말기 화면으로 본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애덤스 본인도 좋아했을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영국에서 최초로 출시된 애플 컴퓨터 모델을 소유했다고 한다.

 

363(더글라스 애덤스의 은하수를~히치하이커~ 에 할애한 부분)

'히치하이커' 시리즈의 예기치 않은 성취는 그것이 단순히 문학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최고의 문학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고급, 저급, 중간 취향까지 모두 아우르는.

"예기치 않은"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애덤스가 애초에 그런 이유를 가지고서 그 시리즈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이니 예술이니 철학이니 하는 거창한 관념을 찾는 사람들은 이 시리즈에서 그 모두를 발견할 수 있다.

 

 

356

솔직히 말해서 평생 동안 4001권의 책이 필요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만 해도 여기에 적은 50권의 책만 있으면 여생 내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쓰면서 그 중 상당수를 다시 읽었지만 결코 한번도 따분해지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81쪽 아래에서 넷째줄

 

열일곱 살에 읽었더라면 훨신 덜했을 것이다.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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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08-25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담아갑니다^^

icaru 2016-08-26 15:17   좋아요 1 | URL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특히 어필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어요. 게다가 처음부터 작가가 아니고, 서점 관련 일을 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지낸 시기가 길었던 사람이라 그가 하는 말이 잘 와닿았던 것 같고요 ㅎㅎ
그나저나 제 개인 인용 노트 같은 글도 읽어주셔서, 뭐라고 해야 되나, 영광이라고 해야 되나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해야 되나 하하..그러네요!!

고양이라디오 2016-08-26 16:15   좋아요 0 | URL
관심있던 책이라 읽어봤습니다^^ 인용글을 보면 어떤 책인지 감이 잘 오는거 같아요ㅎ 문장력이나 표현력을 보니 좋은 책일 것 같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