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뜨겁게 - 버트란드 러셀 자서전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이맛에 자서전을 읽는가 보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네!

 

급하게 메모하고 싶은 부분!  옮겨 놓고, 정리는 나중에!

 

340

1894년 여름, 의사의 답변(러셀이 30대 초반일 때 다섯살 연상의 첫아내가 불임이라는 판정)을 들은 후 앨리스와 함께 리치먼드 그린 공원을 거닐었던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를 갖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그 욕망은 계속해서 커졌고,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1921년 11월에 첫아이가 태어나자 나는 억압된 감정이 일시에 풀리는 것을 느꼈고, 그로부터 10년 동안의 부모의 삶이 주요 목적이 되었다. 나 자신도 겪어보았지만, 부모가 가지는 감정은 대단히 복잡하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자식에 대한 완전히 동물적인 감정과 귀여운 어린 것이 청년으로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이다. 그 다음으로는 피해 갈 수 없는 의무감이 있는데, 그것은 회의주의자도 쉽사리 의문을 달지 못하는 일상생활의 목적을 제공해준다. 다음에는 매우 위험스러운 이기적 감정이 있다. 즉 내가 실패한 분야에서 자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죽거나 노쇠하여 더는 노력해 볼 수 없게 된 일을 자식들이 계속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여하튼 나는 자식들을 통해 생물학적으로 죽음을 면했고 따라서 나의 인생은 미래로 흘러들어가지 못하는 정체된 물 웅덩이로 덩그러니 남겨지는 게 아니라 전체 강물의 일부가 되어 흐를 것이라는 생각.

 

 

351

나는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사회 및 경제 제도를 변혁시켜 어떤 것을 이룬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한 개인이 기질 때문에 벌어지는 불행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식선에서 충고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이 책은 수준이 다른 세 부류의 독자들에게 각기 다르게 평가 받았다. 애초 소박한 독자들을 겨냥해 쓴 것이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이책을 좋아했고, 많이 팔려 나갔다 . 

 

 

저자 후기

 

내가 믿는 것들

 

소년기 이후 내 삶의 진지한 부분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목적에 바쳐졌으며, 그 둘은 오랜 세월 따로 존재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비로소 하나로 통합되었다. 우선 나는 인간이 과연 어떤 것을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파헤쳐보고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좀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고 싶었다. 38세까지는 첫 번째 과업에 모든 정력을 바쳤다. 회의주의로 고민했고, 그 결과 지식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것들이 합리적 의혹에 노출되어 있다는 결론에 어쩔 수 없이 도달하게 되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적 믿음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합리성, 내가 원한 것은 그런 류의 확실성이었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수학에서 확실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승들이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수학적 증명들이 오류투성이임을 알았고, 수학에서 제대로 확실성을 찾아내려면 지금까지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기초들보다 더 견고한 기초들에 입각한 새로운 종류의 수학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작업이 진행될수록 코끼리와 거북이의 우화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수학의 세계를 바쳐 주는 코끼리를 세웠으나 흔들리는 것을 발견하고, 코끼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바쳐 줄 거북이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끼리와 마찬가지로 거북이도 안전하지 못했고, 결국 20여년의 각고 끝에 수학적 지식의 의심의 여지없게 만드는 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나의 사고는 인류의 고통과 어리석음에 모아지게 되었다. 나는 어떤 고통이나 어리석음도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지혜와 끈기, 설득만 있으면 조만간 인류를 스스로 자초한 고통에서 끌고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사이에 인류가 자멸해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다고 하는 견해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나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과거와 현재의 불행한 원인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부당하게 지배하는 탓에 궁핍과 역병, 기근이 존재해 왔다. 인간이 동료 인간들에게 가지는 적의 때문에 전쟁과 억압과 고통이 존재해 왔다. 그리고 사람의 내면을 심각한 불일치 상태로 이끌어 외부의 온갖 번영을 무용하게 만들어 버리는 병적인 고통은 비관적인 신념들이 키워 온 것들이다. 우리의 세계에서 희망을 지키려면 지혜와 정력이 필요하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부족한 것이 바로 정력이다.

내 인생의 후반부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에 속했다. 온당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부당하고 밝혀졌다.

(...) 사회 정치적 문제들과 관련해 내가 해온 일들이 큰 중요성을 지녔던 것처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를테면 공산주의처럼, 독단적이고 엄격한 신조를 수단으로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독단적이거나 엄격한 것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일부나 어떤 측면만을 다루는 편파적인 신조를 진심으로 믿을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제도에 달려 있으며, 좋은 제도가 필연적로 황금시대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탓에 상대적으로 제도를 경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두 견해 중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제도가 사람을 빚어내고 사람이 제도를 변형시킨다. 양쪽에서 나란히 개혁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개인들이 적정선의 주도권과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으려면 만인을 하나의 엄격한 틀에 억지로 밀어넣어서는 안 된다. 다른 비유로 말하자면, 모두를 하나의 군대로 훈련시켜서는 안 된다.

이제 나의 작업도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전체적으로 개관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는 얼마나 성공했으며 얼마나 실패했는가? 나는 어릴 적부터 나 자신이 위대하고 열정적인 과업에 헌신하리라 생각했다. 75년 전쯤에, 티르가르텐에서 차갑게 반짝이는 3월의 태양 아래 녹아내리는 눈길을 홀로 걸으며 나는 두 종류의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하나는 추상적인 것에서 출발하여점차 구체적인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고, 또 하는 구체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인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순수 이론과 현실 사회 철락의 결합으로 그 둘을 마침내 종합할 생각이었다. 최후의 종합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지만, 그것 외에는 마음먹은 대로 책들을 써왔다. 나의 저서들은 갈채와 칭찬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끼쳤다. 여기까지 본다면 나는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실패한 부분도 있는데, 외적 실패와 내적 실패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외적 실패 생략...

내적 실패는 세상의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의 정신적 삶을 끊임없는 전투 상태로 만들어 왔다. 처음에는 플라톤적 영원한 세계에 가까운 종교적 믿음에서 출발했다. 그 세계에서는 수학이 마치 단테의 <천국> 마지막 편처럼 아름답게 빛을 발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영원한 세계는 하찮은 것이다. 수학은 동일한 것을 다른 언어로 말하는 기술에 부로가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자유롭고 용기 있는 사람이야말로 싸우지 않고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작했다. 고통스럽고 끔찍한 전쟁을 지원하게 된 것이다. 이런 측면들에서 본다면 실패였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8-02-0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좋네요. 전 러셀책 딱 한 권 읽어봐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는 했는대요. 찾아읽지는 못 했거든요.

icaru 2018-02-21 09:31   좋아요 0 | URL
아항 네넵 읽어볼 만한 것 같아요~ 여러가지 면에서
뒷부분은 페이소스까지 안겨 주었어여 ㅠ‘‘‘

그리구, 사생활 면에서는 가십을 삼을 만한 지점도 있는 듯해요 ㅋ 보니까, 당대의 여성들은 환영하지 않는 인물이었든가봐요~ 결혼을 네번정도 한 것에서도 뭔가를 미루어볼 수 있을 듯, 이런 부분은 본인이 하는 이야기는 사건의 일면일 뿐이라..!

서니데이 2018-02-15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u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icaru 2018-02-21 09:27   좋아요 1 | URL
명절 다 지나 답 인사를 올리다니, 송구하네요~ 이렇게나 다정한 서니데이 님 올해도 좋은 일 많으실 거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_^
 

주말에는 비교적 긴장도 풀고 사람들 사는 것처럼 지낸다. 건강상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까 목하 고민중이다. 인생사가 그렇듯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으며, 본인이 최선을 다했는가와는 별개로 모든 일의 말로가 다 좋으리란 법이 없으니...

두 머슴아들이 저지레 해 놓은 자리를 치우는 일상. 과일 찾으면 깎아다 바치고, 그래 집에서만이라도 편안하며 즐거웠음 좋겠다 너희들이... 그러면서 노예 생활을 자처하는 시간들.
어러거나 저러거나 주말이 좋은 이유는 93.1 저녁 시간대에 하는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를 할 수 있어서이다.

이 글의 주제가 뭐지? 세상의 모든 음악이지... 아 8시 정각에는 이 프로그램도 끝난다. 이 글도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인데, 다시 이북으로 사서(이북으로 사면 언제고 다시 들춰볼 수 있어서 좋고, 이 책은 그러기에 적절한 듯 보임) 둬야 겠다.  

 

니체에 관하여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독일 작센 지방의 뢰켄에서 1844년에 태어나 1900년에 죽었다. 그가 1900년, 즉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죽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왜냐하면 그는 근대의 문을 닫고 현대의 문을열어젖힌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 플이트, 니체를 묶어서 현대 사상의 출발점으로 평가한다. 그것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근대를 장악하고 있어서 합리주의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을 강조한 합리주의는 근대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어떤 세계관을 공유했는지가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현대는 새로운 진리의 기준을 세우는 대신, 지금까지 우리가 진리라고 믿었던 기준들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데 몰두한다.

'근대성' 근대 시대의 이념적 특성-이성과 합리성에 기반을 둚. 

플라톤 주의의 가장 큰 특징

-세상을 둘로 나누기

-둘로 나뉜 세계 중에서 형이상학적 세계를 강조하기

플라톤은 이데아의 공간을 상정한다. 이데아의 모방이자 그림자인 현상 세계를 분리한다. 문제는 현상 세계를 원죄와 타락으로 가득한 가치없는 공간으로 본 데에 있다.

 

동굴에서 광장으로 (364~367쪽)

 

세상과 단절된 나의 작은 공간에서 나는 회복되어갔다.

그것은 마치 차라투스트라의 동굴과도 같았다. 세상에 나가서 자신을 비워낸 차라투스트라가 스스로의 내면을 다시 채워나가는 공간, 물론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잔이 채워지면 다시 비워내야 한다. 마을을 향해 산길을 터벅더벅 내려가는 차라투스트라를 새악했다. 언젠가 나도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리라. 하지만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작은 공간에서 충분히 머무르기로 했다. 창문밖으로 변해가는 계절과 나무 침대와 음악과 책만 있으면 나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

이제는 이유를 안다. 왜 많은 사람이 세계의 신비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사회가 치열하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것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대다. 부양할 가족, 나의 꿈, 노년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가하에 앉아서 답도 나오지 않는 문제로 고민할 시간이 없다.

둘째는 한국의 사상적 기반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아무런 사상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까닭에 자신의 사상적 기반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할 뿐, 특정한 사상적 기반 위에 놓여 있다. 개인마다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인들은 대체로 근대 합리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미국식 프로테스탄티즘이나 반대로 유물론적 무신론의 영향을 받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8-02-0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채사장 쉽게 봤는데 생각보다 읽을거리가 많더라구요.
이북으로 사셨다니, 저도 따라할까~~~~ 생각합니다.^^

icaru 2018-02-04 19:19   좋아요 0 | URL
ㅋㅋ 저는요 예전에 지대넓,, 이런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읽지는 않았었는데, 제가 또 티비 시청도 취미다보니, 어쩌다 어른에서 나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 읽게 되었답니당! ㅎㅎ 저는 이북을 즐겨하지는 않는데, 또 두어편의 육아서는 자주 틀추거든요... 그러기엔 또 이북만큼 편한게 없더라고요. 핸드폰 이북으로 보니까는.. ㅎㅎ;; 이책도 저는 정말 음....눈물 찔끔찔끔 하면서 봤어요 ㅠㅠ.. 저는 첫째도 둘째도 작가의 진정성(개인적인 체험이라고 바꿔 말해도 되려나 싶은데)인데, 단연 이게 진정성에서 우위지 싶습니다. 그의 다른 저서들 가운데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289-300쪽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때부터 나는 내가 커서 작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스물네 살 때까지는 그 생각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게 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며 조만간 차분히 앉아 책 쓰는 일을 해야 하리란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외로운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 속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습관을 갖게 됐는데, 애초부터 나의 문학적 야심은 고립됐고 과소평가됐다는 느낌이 뒤섞여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을 통틀어 써낸 심각한 글은 대여섯 페이지밖에 되지 않았다. ...학교 잡지들은 더없이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었고, 지금으로 치면 제일 싸구려 저널리즘에 들일 수고보다 훨씬 공을 덜 들이고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과 더불어, 나는 5년 남짓 동안 꽤 말하나면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일기 비슷한 것을 계속해서 꾸며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공통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어릴 때 나는 나 자신을 이를테면 로빈 후드라 상상하곤 했고, 짜릿한 모험을 하는 영웅으로 그려보곤 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이야기는 어느새 조잡한 자아도취적 분위기를 벗어나더니 갈수록 내가 겪은 일이나 본 것에 대한 단순한 묘사가 되어갔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나름의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며, 그것은 그가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다. 물론 그는 마땅히 자신의 기질을 다스려야 하고, 미성숙한 단계에 고착되거나 비뚤어진 심기에 매몰되는 경우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일찍이 받은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버린다면,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 자체가 없어져 버릴 것이다. 나는 생계 때문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고 생각한다. 이 동기들은 작가들마다 다 다른 정도로 존재하며 한 작의 경우에도 시기별로나 시대 분위기별로나 그 정도가 다를 것이다.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작가의 이런 특성은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법조인,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요컨대 최상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성이다. 사람들 절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 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뿐이다. 그런 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나는 진지한 작가들이 대체로 언론인에 비해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자신이 체감한 바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는소중하여 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다. 미학적인 동기가 상당히 야한 작가들도 많긴 하지만, 팜플렛이나 교과서를 쓰는 저자라 해도 비실용적이지만 매력과 애정을 느끼는 낱말들과 문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글꼴이나 여백 같은 것들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 수가 있다. 철도 안내책자 수준을 넘어선다면, 어떠 책도 미학적인 고려로부터 딱히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하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나는 천성적으로(여기서 말하는 천성이란 막 어른이 되었을 때의 성격이라고 하자.)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번째 동기를 능가하는 사람이다. 평화로운 시대 같았으면 나는 화려하거나 묘사에 치중하는 책을 썼을지 모르며, 내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서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종의 팜플렛 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나는 안 맞는 직업을 택하여 5년을 지냈고 그뒤로 빈곤과 좌절을 겪었다. 그로 인해 타고난 나의 권위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고 처음으로 노동 계급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만으로는 정확한 정치적 지향을 갖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다 히들러가 등장하고 스페인내전이 발발하는 등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 나는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만간 또 하나의 소설을 쓰고 싶다. 그것은 실패작이 될 게 뻔하고 사실 모든 책은 실패작이다. 단,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어 한지 꽤 분명히 알고 있다.  (...)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마구 울어대는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caru 2018-02-02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핸드폰에 연결해 블루투스 키보드로 타이핑했더니,,, 오타가 ㅎㅎ 아이같이 귀여운 오타가 난 ‘것이어따 ㅎ ‘

반딧불,, 2018-02-04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이젠 타이핑에도 오타가 일상화가 되고 있습니다ㅠㅠ
블루투스키보드 늘 사고 싶다 노래를 부르다가 잊어버리는 품목인데 이번달엔 저한테 선물해야겠네요. 건강하시죠?

icaru 2018-02-04 19:31   좋아요 0 | URL
ㅋㅋ 처음 올렸을 적에 오타가 절반쯤이어서 ㅎㅎ;; 저는 이 블루투스 키보드(뉴플러스 라는 브랜드의..) 정말 사랑합니당 ㅎㅎㅎ
반딧불 님도 건강하시죠? 가끔 님 생각이 날 때가 있네요 ㅎㅎㅎ;;; 이상은의 노래 중에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라는 가사가 있잖아요. 그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었던 거 같아요~ 님이나 다른 분들과 즐겁게 교류하고 수다를 나누던 ㅎㅎ;;; 가끔 그립고 호명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죠 ㅎ
 
죽음의 수용소에서 (보급판, 반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1년을 꽁깃꽁깃해 공들였던 작업 드디어 끝났다. 그것이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제출하고 25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꿈에서는 그 일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 일과 사람 두 마리 토끼가 있다면, 두 마리를 토끼를 잡았느냐 놓쳤느냐로 평가를 하곤 하던데, 잡고 놓치고를 떠나 이 토끼 잡기의 과정과 결과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따지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이라는 토끼에 관한 것은 꿈에서도 계속 되어 쉬고 있지만 쉬고 있지 않은 상태를 지속시키고 있고, 나머지 토끼 그러니까 함께 일을 하는 인간에 대한 것. 이번 일을 하면서 인간의 유형에 대해 그 본질에 대해 이나이가 먹도록 모르는 부분이 적잖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좀 충격적인 경험이기도 했다. 사람이라는 토끼를 놓쳤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좀 오만했던 게 어떤 유형의 사람이든 그 사람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으면 (애정을 느끼기까지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과 경험이 수반된 것이니까) 그 사람의 어떤 모습도 내가 감당할 수 있고, 심지어 도움마저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라는 사람 보통 오만한 게 아니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니까, 놓친 것은 아닌데, 내가 등을 돌리고 싶은 거다. 이 일이 끝나면 상종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런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누그러진다. '시간'이란 참 배알도 없다. ㅎㅎ  

일이 끝나고 요즈음 찾아서 봤던 책들 가운데 몇 중에서도 좋았던 것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고 또 음 에니어그램의 지혜라는 두 책이었는데 이러한 저간의 사정 때문에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다. 에니어그램은 세 가지 종류의 중심으로부터 시작한다. 본능 중심, 감정 중심, 사고 중심이다. 그리고 이 기초에서 9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8,9,1이 본능 중심, 2,3,4는 감정 중심, 5,6,7은 사고 중심이다. 각각 사용하는 에너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1~9번 유형의 성향 모두 다르다. 나는 본능과 감정 중심에 나의 본질이 있고, 그 친구는 사고 중심의 유형에 해당될 것 같지만, 알 수 없다. 좀더 극한 상황에 처해지면 아마 명확하게 그 유형이 보일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사람은 어떤 극한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상황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고 덜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체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176쪽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229쪽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방법을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샬롯 뷜러가 말했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삶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며 공부하는 것뿐이다. "

물론 이런 전기적인 접근법에 생물학적인 접근법을 가미할 수도 있다. 

 

나는 인생의 4분의 1을 종합병원의 신경정신과에서 근무했으며 그 동안 자신의 곤경을 인간적인 성취로 바꾸어놓은 환자들의 능력을 보아왔다. 그런 사례에 덧붙여서 인간이 시련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실제적인 증거도 있다.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의 연구원들은 "베트남 전의 전쟁 포로 중에 포로생활의 엄청난 스트레스-고문과 질병, 영양 실조, 독방감금 등-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언터처블 1%의 우정의 영화 음악인 Ludovico Einaudi의 음악만이 나를 살리던 100여일의 나날들을 보내고 드디어 조각 글을 쓰고 있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8-01-02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간 고생하시고 어느 정도 결실도 보신듯하여 흐믓하네요. 많이 힘드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 사람이 힘들 때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빅터 프랭클, 실존상담에 훅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작은 것이라도 사소하더라도 싦의 의미를 스스로 찾는다면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icaru 2018-01-03 10:40   좋아요 0 | URL
앙~ 마녀고양이님!! ㅎㅎ;; 고생한 건 사실인데, 결실을 봤다고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이지욤! 끝나서 흐뭇한 것이지 잘 끝내서 좋은게 아닌 듯 해요 제마음의 정체는 ㅋㅋ 정말 사람이 힘드니까 별별 생각이 다 들대요. 저 자신도 정상은 아닌게다 싶었고....

Volkswagen 2018-01-0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기전 이 책을 읽었습니다. 꿈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럽던지...ㅋㅋㅋㅋ
처음부분만 읽다 말았는데 다시 도전 해봐야겠어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

icaru 2018-01-03 10:43   좋아요 0 | URL
ㅍㅎㅎㅎㅎ 뭔지 잘 알 것 같아요! 그리고 평온한 나날들을 보내면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 절박함이나 극한의 상황 묘사들이 좀 부담스러워서 완독을 못 했을텐데... 저는 이상하게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도 좀 겹쳐서 읽히구 그렇대요~

icaru 2018-01-03 10:43   좋아요 0 | URL
아 참! ㅋㅋ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시궁, 계획하던 일 순조롭게 ~~~~ ㅎㅎ

북극곰 2018-01-18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참 나 허무해서. ㅋㅋ 그러니 감히, 등을 돌리세요. 마음에서. 라고 말해드리고 싶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