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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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이야기인 책이다. 미리보기로 읽어본 앞부분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알라딘 티비에 나오는 1시간 남짓한 저자의 영상도 보았다. 기대를 부응하듯 책 전체를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진심으로 공감했다다루는 콘텐츠는 다르지만 나 자신도 편집자이다. 책의 저자는 나와 비슷한 연배이고, 경력은 오히려 내 쪽이 많을수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업무의 내공은 이 분이 어마무시한 분 같다. 물론 다를 수 있다. 나는 단행본 편집자는 아니니까. 라고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본다. 비루해라;;; 

뭔가 자극도 되면서 위축도 시키는 업계의 별 같은 존재의 글.

문장도 유려하다이런 사람들은 꼭 그렇게 말한다. 평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고. 그러나 많은 책을 읽다보니, 책으로 쓰고 싶은 주제가 생겨났다고.  우아 그마저도 멋있게 들리는 거다. 

 


P. 7~8

첫째, 저자들을 많이 좋아했고 앞으로도 그들과 한편이 될 것이므로 저자들에게 이런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 둘째, 편집자는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 편집자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리고자 했다. () 셋째, 독자들은 최종 결과물인 책을 읽는 것으로 족하겠지만, 책 만들기의 역사와 현실도 알게 되면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P. 29

타이완의 작가 탕누어는 출판사 편집자들을 굉장히 신기한 존재로 묘사한 적이 있다. 편집자들은 2000권밖에 안 팔리는 책들을 줄줄이 생산해 내는데, 여기엔 ˝어떤 가치에 대한 신념이 확실히 존재하고 그 가치가 그들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2000부가 요즘에는 1000부로 줄었으니, 고쳐 말하면 편집자들은 ‘1000권밖에 안 팔리는 책을 줄줄이 생산해내는기이한 존재다. 그것을 두고 고귀하다고 평가해주면 요즘은 반은 칭찬으로, 반은 비웃는 소리로 들린다. 부는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요구되는 세속의 진리인데, 부는커녕 자기 밥벌이도 못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순적이게도 편집자는 출판의 지속성을 위해 종종 좋은 책들이 무덤 속으로 향하도록 방치한다.

 

P. 30~31

편집자는 독자를 대표해 원고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막중한 역할을 맡는다. 사실 편집자는 독자를 그리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의 판매 추이로 독자를 더듬어 짐작할 뿐이다. 여하튼 저자와 역자는 우선 편집자를 설득하려 하고, 편집자는 독자를 상상하며 그들의 욕구를 측정하려 한다.

 

P. 46

말하자면 각주는 글쓴이의 실력을 검증하는 세밀한 장치다. 모름지기 학자는 선대의 문헌을 모두 검토한 뒤 그로부터 새로운 서사를 구축하고 자기만의 주장을 내놓아야 한다. 즉 매력적인 서사들은 저자가 매끈하게 창작한 도자기라기보다는 앞선 자들의 글을 모두 섭렵하는 성실성, 깎고 다듬는 도공 실력, 마침내 한 발 내딛는 진보로 인해 빚어진다.

 

P. 51~52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어떤 작가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그 터널을 지나온 심정과 거기서 건져 올린 한 줄기 희미한 빛 같은 것을. 이런 경험은 쉽사리 잊히지 않으므로 이들은 자신과 세상을 자양분 삼아 글쓰기로 생을 밀고 나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두 번째 책이 기다려진다. (중략) 한 발짝 물러나 햇빛이 모든 사람과 만물을 비추도록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생명의 빛으로 만물을 무르익게 할 수 있다는 것.

 

53

세상에는 일회성 관계도 많다.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의무를 다하고 지불을 마치면 더 이상의 연장도 미련도 없는. 실력이 없는 저자들은 너무 뻔한 레파토리니 딱 한 줄만 할애하자. 실력은 없지만 과욕이나 상투적인 권력을 가진 이들. 그들의 구멍을 메우느라 편집자들은 흩어진 밀알들을 끌어모아 반죽하듯이 숱한 시간을 갈아넣는다.

자기 공부에 너무 매몰되어 있거나 지나치게 현실적인 저자도 오래 가기 힘들다.

 

P. 54 최근에는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는 저자가 더 많은 듯한데, 그건 아마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인터넷 매체들이 단기적인 이익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쭝략) 하지만 독자나 편집자는 그저 상인의 이익을 좇는 부류가 아니다. 저자가 우리 삶을 사회적 기능으로 축소된 뼈다귀가 아닌 살점이 풍부한 형태로 빚어주길 원한다. 즉 우리는 현실을 앙상하게 느끼고 있지만 거기서 더 풍부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노라고 낙관의 기운을 불어넣는 저자를 기대한다.

 

56~60

관련 없는, 즉 트렌드를 좇고 겉치레에 능한 책들을 주로 번역해온 걸까? “돈이 되니까요.” 그의 대답은 명확하고 간결했다. “벌어들이는 수입은 똑같은데 철학책에 비해 노력은 반도 안 들고, 속도는 두 배 이상 낼 수 있어서요.” 우리는 결혼 여부나 자녀의 유무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번역 이력에서 시작된 질문은 갑자기 개인 생의 반경으로 방향을 틀어 얼마간 이질적인이야기로 내달렸다. 생후 몇 개월밖에 안 된 아이를 아내와 함께 키우고 있는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였다. 대화 도중 갑자기 그가 내 앞에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한 시간에 번역할 수 있는 원서 분량은 몇 줄이고, 하루 종일 숨만 쉬고 작업했을 경우 최대한 번역할 수 있는 분량은 원고지 몇 매라는 계산이었다. 거기에 원고지 장당 3500원을 곱해(초보 번역가는 대개 200자 원고지 1매당 3500원을 받는다.) 한 달 수입을 도출했다. 이어서 흘러나온 것은 분윳값과 기저귀값 같은 용어였고, 오랜만에 자기 관심사인 철학책을 번역한 것이 지난 몇 달간 야기한 금전상의 손해도 계산해냈다. 작가의 생계에 대한 절박함은 편집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나는 의뢰하려고 들고 나갔던 새 철학책 번역 작업은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얼만 안 있어 그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우리는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작가는 최소 월 200만원을 벌어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다. 하지만 그의 1년 인세 수입은 400만 원이 채 안 되었다. 원고를 쓰는 데는 1년에 조금 못 미치는 시간이 걸렸고, 가끔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작가범위에서 벗어나는 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굶더라도 향후 몇 년간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점쳐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 가난은 피부처럼 밀착된 것 같았다. 40년 넘는 생애 동안 가난하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가난은 글감이 되어주기도 했는데, 의외로 그의 글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에는 자부심이 넘쳤다.

작가들은 가난하다. 정부에서 매년 실시하는 문화예술인실태조사의 통계 수치가 보여주는 작가의 연평균 수업은 마치 지난해 자료를 그대로 복사해 올해 다시 내놓은 것처럼 변함없다. 그들은 원래부터 가난했을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도 있고, 반대로 웬만큼 살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작가의 길을 걸으면서 생계 걱정에 휩싸이게 된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작가들의 가난은 통계로 발표될 뿐 천태만상으로 세상에 전시되는 일이 별로 없어, 대중은 그들을 가난한 작가군으로만 인식한다. (행여 가족 중 누군가 그 에 속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뜯어말린다. 통계가 비로소 현실의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작가의 가난을 옆에서 세세히, 혹은 짐작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편집자다. 출판사는 작가에게 인세를 지급하는데, 만약 다른 수입 경로가 없다면 그의 총수입이 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난한 작가는 자기 독자를 대량으로 확보하지 못해 가난한 것이므로 출판사도 더불어 가난해질 위험에 처한다. 그래도 출판사는 다른 저자의 책을 팔아 손해를 메울 수 있고, 직장인인 편집자는 연차가 높아질수록 연봉도 올라간다. 반면 책값은 10년이 지나도록 거의 변함없고(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 독자의 저항이 거세다) 번역비 등도 제자리걸음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편집자와 가난한 작가의 수입 격차는 더 벌어지곤 한다. 같은 책을 놓고 그것에 몰두하는 일종의 동지이면서도 각자의 경제적 처지는 점차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즉 작가의 책을 만들어 돈을 버는 편집자는 원본 창작자보다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이다. (물론 편집자의 수입도 그리 높지 않아 상대적 관점에서만 그렇다.)

이런 면에서 가끔 작가-편집자의 관계가 기이하게 느껴진다. 편집자는 그들에게 얼마나 기대고 있고, 그들의 가난에 얼마만큼의 빚을 지고 있는가(이를테면 어떤 작가는 책이 안 팔려 출판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출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주었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되짚어보면 원본 창작자가 엄청난 부를 획득하는 사례는 흔치 않았다. 그들의 애초 목적이 작품으로 돈을 버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탕누어는 요즘 중국의 젊은 신예작가들이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쥐는 것을 지켜보며서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부는 공중누각처럼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고 소설가나 시인은 가난과 너무 동떨어질 때 동시대인들의 현실을 잘 담아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평생 빈한한 생활을 했지만 누구도 써낼 수 없는 작품을 집필한 안톤 채호프를 주시한다. 그와 같은 작가의 작품들에는 이런 찬사를 붙일 수 있다.

그것은 쓸모 있는것이고 가치를 낳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데서 얻기 힘든 갖가지 이해와 의미를 생성하기도 하며 슬픔은 단지 필요한 대가이거나 심지어 독특하고 심오한 오솔길이 되어준다.

 

(물론 누구나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사실 대부분의 작가는 오히려 그렇지 못하다. 패터 한트케는 자기 어머니 세대가 겪은 가난은 그야말로 치욕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가난한 작가들은 대단하다. 사실 편집자는 여느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이 황량한 창작의 세계로 나아가기보다 출판사라는 우산 아래 들어가 안온함을 먼저 확보한다. 그리고 나의 글이 아닌 남의 글을 읽는다. 거의 경제적 무를 각오하고 그 길로 접어든 작가군과 달리 편집자는월급을 꼬박꼬박 받음으로써 덜 불안해하며 일상을 이어간다.

우리는 같은 원고를 놓고 작업하지만,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투신해서 글을 써낸다. 편집자는 그 글을 읽고, 다듬고, 광고 문구와 보도자료를 쓴다. 그리고 서점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다독인다. 이처럼 편집자도 노력하기는 매한가지지만, 그기 쓰는 카피와 글들은 절반은 책에 속하고 절반은 비즈니스 영역에 속한다. 곡객 확보와 자본 획득이라는 목적성을 지닌 글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p는 여러 해에 걸쳐 두꺼운 번역서를 완성했다. 많은 번역가가 그러하듯 텍스트가 까다로워 그도 연구를 병행하느라 작업을 오래 지체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가 번역을 하면서 밤에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다는 사실은 책 출간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그는 당신들은 식당에 가면 계란찜 시키지 마세요. 그거 눌어붙어서 설거지하기 정말 힘들거든요.”라면서 번역을 하는 동안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가정에 돌아가서도 떳떳하지 못했다. 아버지나 남편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들은 건강 챙기기에 여념 없는 50대에 그는 몸을 혹사시켰다. 책에 온전히 몰입하던 정신력은 강도 높은 노동으로 몸이 쇠해지면서 점점 흐트러졌고, 작가로서의 자신감도 조금씩 잃어갔다. 가끔 이전 직장 동료들로부터 일감이 들어와도 거절했고, 그들과 잘 만나지도 않았다. 다시 그쪽 세계에 한발 담갔다가는 예전 습성들이 되살아나 관성이 확 끌어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손만 뻗으면 더 안락한 세계가 옆에 있지만 애써 쳐다보지 않는다. 거기서는 편하고, 더 풍요로우며, 가족을 건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일을 하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늘 도서관에서 자료를 보고 글을 쓰는 그는 가끔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인물이 정말 대단하다. 그가 없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됐을까.”

가난하지만 그는 꿈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다. 그래서 편집자는 작가의 가난을 안타까워할 때가 있을지언정 그들을 동정할 수는 없다. 작가는 우리가 동정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작품에서 타인들을 점차 깊이 만낙 그러면서 더 확장된 세계로 진입한다. 편집자나 독자는 알 수 없는 그러한 세계로. 그런 작가의 손에서 진귀한 작품들이 나오곤 한다. 몇 번 포기하려고 마음먹은 데서 끝까지 가봤을 때 남이 알지 못하는 하나의 세계가 열리기 때문이다.

 

 

P. 68

비밀은 쓰게 한다. 그러므로 진짜 비밀은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비밀과 달리 글로 쓰인 비밀은 울음과 비탄을 마침내 정돈해서 담아내는 까닭에 희망을 향해 달린다. 수많은 사람이 오늘도 출판사로 원고를 보내온다. 그것들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카이브로 축적되어 거대한 강물을 이룬다. 강물은 때로는 핏빛이다. 하지만 다른 물줄기와 섞이고 모여들면서 하나의 역사를 기록한다. 책으로 출판되기도 하고, 혹은 출판되지 못한 채 출판사 메일에만 흔적을 남긴다. 제 운명을 어느 이름 모를 편집자의 손에 내맡긴 채.

 

 

P. 85

내가 태양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만 하면,

 

P. 90

편집은 배치와 재배치, 수정과 재수정의 과정이며, 편집자는 원본을 창조하는 저자와는 독창성 면에서 수백 킬로미터쯤 떨어진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편집자가 공들여야 하는 것은 그 보이지 않는 수백 수천의 시간이며, 결국 지난 세월을 돌아봤을 때 남는 것도 뒤에 버려진, 길에 뿌려진, 못 보여준 것 속에 간직된 시간들이다.

 

P. 102

지성, 전문성, 근면성, 인내심을 갖춘 팩트 체커들은 실제로 만나면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지만 오히려 유연하고 이해심이 많아 놀라움을 자아낸다. 왜 그럴까. 타인의 오류를 지적할 때면 상대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부드러워야 하며, 또 인간이라면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오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류를 인정하는 것과 외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 일을 배우고 있다.

 

P. 102

지성, 전문성, 근면성, 인내심을 갖춘 팩트체커들은 실제로 만나면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지만 오히려 유연하고 이해심이 많아 놀라움을 자아낸다. 왜 그럴까. 타인의 오류를 지적할 때 상대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부드러워야 하며, 또 인간이라면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오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류를 인정하는 것과 외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 일을 배우고 있다.

 

P. 106

이른바 명문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이가 이력서를 냈다.

기출 문제에 대한 정답 같은 삶만 살아온 듯한 지원자에게 우리는 큰 기대를 걸었다.

 

 

P. 108

소설만 읽어온 독서 이력은 하나만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기보다 독서 패턴이 단조롭다는 인상을 줄 우려도 있다(사실 책 중의 꽃은 소설이기도 해서 그들이 즐거운 유혹에 빠져드는 것이 이해는 된다). 정반대의 부류도 있다. 문학을 아예 읽지 않는 사람들이다. 간혹 문학을 하나도 안 읽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 또한 곤란하다. 문학은 학문의 보편화되고 체계화된 틀에서 빠져나간 삶의 결들을 보아내는,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P. 127~128

편집자에게는 한 자 한 자 교정을 보는 작업이 때로는 산을 오르는 여등처럼 느껴진다. 피곤해도 단어 사이를 겅중겅중 건너뛸 수 없고, 독자는 모르는 험악한 산맥이 꽤 많아 수시로 좌절이 찾아온다.

 

 

P. 143

당시에는 독자를 저자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놓고, 이제 와 이런 고백을 한다는 게 떳떳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나도 이런 치부를 드러내고 싶진 않지만 출판사의 보도자료란 대개 이런 식으로 쓰이며, 책의 단점은 발설되지 않은 채 편집자의 마음속에만 남는다.

이것이 왜 안 좋은가. 독자를 약간 속인 것이 가장 큰 문제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판 편집자는 이런 마케팅 공식을 따라야 하며, 저자보다 앞에서 자기 목소리와 평가를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편집자 개인을 위해서는 그리 건강한 방식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책 홍보 글을 쓰면서 자기 생각을 그에 따라 조정해가는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

 

P. 148

출판계는 저자-편집자-독자라는 트라이앵글로 를 지탱하고 있다. 저자는 기존 작가들의 글을 수없이 읽으면서 자신도 그들처럼 글을 써 먹고살 길을 찾겠다고 결심한다. 편집자는 누구보다 글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어왔으니 책 주변에 머물며 먹고살겠다고 결심한다. 독자 역시 책 주변을 맴돈다. 한 번 책을 읽은 독자는 계속 책에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책을 읽는 이와 읽지 않는 이로 나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 부류 중 편집자가 정체를 파악하기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독자다. 저들이 정말로 읽고싶어하는 책은 무엇일까.

 

P. 153

더 넓고 얕은 물에 있는 독자들을 만나겠노라고 생각한다. 낚싯대를 던져 한 마리의 큰 물고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그물을 넓게 쳐 멸치 떼를 끌어올리듯 한꺼번에 많은 독자를 건지길 바란다. (중략) 편집자는 속으로 말한다. ‘우리는 수공업자가 아니며, 예술가도 아니다. 소싯적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수많은 인문/사회과학서를 섭렵하며 코즈모폴리턴으로서의 비평적 삶을 꿈꾸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기획한 진지한 책들은 판매가 잘 되지 않아 현실 감각 없는 무능한 편집자가 될 뻔했고 그 기분은 비참했다.’ (중략) 책의 계약 기간(유효기간)5년밖에 안 되고 요즘 신간들은 6개월(심지어 한 달) 안에 승부를 봐야 하므로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는 편집자의 계산은 나름 현명하다. 5년 뒤를 생각하라고? 그건 우리가 잘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미래의 출판 방향이 어떨 것 같냐고? 독자를 잘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알까. 다만 오늘의 성공 없이는 내일도 없다. 그게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를 모방하는 이유다.

 

P. 164

특히 개인적인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려면 보편성을 띠어야 한다. 즉 작가는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면서 자신의 고뇌를 여과해 명확한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데, 가령 감정적인 울분과 통곡이 담긴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대로 드러나서는 곤란하다. 책을 읽으면 삶이 나아질까. 여기에는 꽤 그럴 것이다라고 답하고 싶다. 삶에 있어서 농도밀도는 중요한데, 내 경우 그 밀도를 책을 읽거나 쓴 사람들과의 만남, 혹은 책을 둘러싼 수많은 내용을 통해 채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잘 모르겠다. 이렇게 책 한 가지만 이야기하며 마치 책 바깥의 삶은 없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싫어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안에 완전히 들어오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책이 바로 그런 세계다.

 

 

P. 176

예컨대 독자가 몰리에르를 읽고 정말로 재미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에게는 그 책장을 덮을 권리가 있다. 몰리에르와 함께 있는 시간이 하품을 연발하게 만들면 그는 더 이상 내게 고귀하거나 흥미를 끌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즉 독자는 때로 책을 책꽂이에 처박아둠으로써, 즉 침묵함으로써 자신을 지킨다.

 

P. 182

사실 책을 읽는 이들은 점점 영악해진다. 그것이 독서의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더 많은 책을 읽을수록 독자로서 순진하고 순수한 상태로 남아 있기 힘들다. 따라서 어린 시절에 읽지 않고 지나온 책들을 성인이 되어 읽기는 힘든 것이고(재발견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나의 젊은 시절이나 작가의 절정을 지나쳐오면 다시 그 책으로 되돌아갈 기회를 얻기도 힘들다. ‘모든 것에 때가 있다라는 상투어는 독서에 가장 잘 들어맞기도 한다. (중략)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가 캐낸 삶의 가치 일부를 자기 삶의 자원으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을 읽었다는 것은 때로 삶의 요소로 가져왔다는 것과 동의어가 될 수 있다. 혹은 읽음으로써 삶의 결을 보는 시선을 조금 변경한다는 것과 동의어이거나. -

 

언제부터 죽음을 가깝게 느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굉장히 살고 싶다거나 살아서 무언가를 꼭 이루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내게 죽음이란 건 함부로 누를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누르게 될, 때로는 누르고 싶은 유혹적인 스위치였습니다. 나는 남들도 다 그렇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죽음을 마음에 품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공개적으로는 모두가 살라고 말하지만, 그들도 힘들 때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까 하고요.”

 

비밀은 글을 쓰게 한다.

그러므로 진짜 비밀은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비밀과 달리 글로 쓰인 비밀은 울음과 비탄을 마침내 정돈해서 담아내는 까닭에 희망을 향해 달린다.

 

P. 197

그리하여 이런 책을 만들고 나면 딱 천 마리의 학만접어 선물 듯한 기분이 든다. 학을 더 이상 접을 수 없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것은 물론이다.

 

 

 

P. 203

편집자는 칼 같은 판매자의 마음을 견지하기도 하지만, 일할 때도 머릿속은 독자라는 자아와 분리되어야 함을 잊은 채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향해 내달린다. 시장에서의 퇴출을 목격하고도, 연민/정의/근거 없는 자신감에 휩싸여 마케터의 마인드는 한쪽으로 미뤄두게 된다.

 

p.208

주로 한국소설을 읽어 취향과 문제 의식에서 세대적 감성이 짐작되는 이들이다. 20대는 이론과 학문의 방법론들을 익히고 발제와 토론 속에서 딱딱하고 엄격한 학문들을 가장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다. 하지만 일견 안타깝게도 요즘엔 내 피부, 내 현실, 내 마음에 직접 와닿는 소설에 지나치게 경도된 독서 풍경이 흔하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게 된다. 소설적 진실을 알기 위해 인문, 사회, 과학서로 넘어갔다가 다시 문학으로 돌아오곤 한다.

첫째, 저자들을 많이 좋아했고 앞으로도 그들과 한편이 될 것이므로 편집자는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 편집자은 최종 결과물인 책을 읽는 것으로 족하겠지만, 책 만들기의 역사와 현실편집자들은 ‘1000권밖에 안 팔리는 책을 줄줄이 생산해내는 기이한 존재들은 칭찬으로, 반은 비웃는 소리로 들린다. 부는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도 못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순적이게도 편집자는 출판의 지속성~31 편집자는 독자를 대표해 원고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막중한 역할을 못한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의 판매 추이로 독자를 더듬어 짐작할 뿐이다. 여야하고, 편집자는 독자를 상상하며 그들의 욕구를 측정하려 한다.

말하자면 각주는 글쓴이의 실력을 검증하는 세밀한 장치다. 모름지기 학자는 새로운 서사를 구축하고 자기만의 주장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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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7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21-06-17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잉크님이 편집자 하셔야겠다는 자질 있으심다!!
 
좋았던 7년
에트가르 케레트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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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카프카라고 찬사를 받는다는 에트가르 케레트의 첫 에세이를 읽었다. 제목이 좋았던 7년인데 왜 그런고 하면 아들이 태어나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의 7년을 담았기 때문이다. 유머와 감동으로 풀어낸 참 따뜻한 책이다. 책에도 온도가 있다. 사람도 따뜻한 사람이 좋고, 책도 따뜻한 책이 적어도 위로 받고 싶은 목적으로 읽을 때는 딱이지 않을까. 그냥 따뜻한게 아니라 따뜻한 유머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앵그리버드를 종교근본주의자의 테러리스트 정신과 비교하는 부분이나,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작가가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요가 센터에 등록하는데, 초보반에도 못 끼워준다해서 임산부 반에 들어가서 유일하게 배가 덜나온 수강생으로 운동을 했는데, 출산을 앞두고 수강생이 하나둘씩 빠져 결국엔 혼자만 남게되었는데, 요가선생님께서 인도로 가는 편도비행기를 끊었고, 돌아오게 될지 장담을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부분이나, 이십육년전에 처음으로 단편을 썼을 때, 군대에서 였는데, 교대를 설 하사에게 건네고 읽어달라고 했더니 "꺼져"라고 말하는 장면 포기하지 않고, 형의 집을 찾아가 형에게 읽어줬으면 한다고 말하니, 다 읽고 나서 "이 단편 멋지다"라며 "복사해둔 거 하나 더 있어?" 라고 물은 후 그렇다고 하니, 그 종이로 함께 산책 나온 개의 똥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 흔히들 페이소스라고 표현하는 어떤 것. 여러 부분들에서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좋은 것을 발견해야만 하는 (히브리어로 글을 쓰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사는 유대인이다.) 인간의 필사적인 욕구가 보인다. 현실을 미화하지 않되, 추한 것을 좀더 나아 보이게 하고, 흉터 남은 얼굴의 사마귀와 주름살에 애정과 공감을 일으키는 각도를 찾고자 하는 욕망.

오탈자인가 긴가민가 하게 되는 부분

84쪽 아홉째줄 : 모든 축제의 아이폰. 아이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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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2-0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 예전 페이퍼랑 성격이 비슷한듯 하네요.

icaru 2021-02-0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요? 비슷하다시니까 묻고따지지 않고 마냥 좋아서 헤헤헤... 이 책 너무 좋았어요
 
일하는 마음 - 나를 키우며 일하는 법
제현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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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생활을 하면서 이쯤까지 지내다 보니 드는 생각은 버티는 것은 마음 관리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일을 하지 않고도 여유 있게 살기를 꿈꾸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좋기만 할 것인가 생각해 봤을 때 의문이다. 일을 하는 것이 시간을 보내는 한 방식일 뿐이다 라고 봤을 때도 생계에 대한 절박이 있으니, 그렇게 낭만적으로 볼 일도 아니고 말이다.



이왕 일을 하는 거라면 더 신나게 할 수 없을까 라고 생각하다가 만나는 책이기도 하면서 다른 방향을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괴로워하며 회사생활 하기엔 인생이 길지 않은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만난 책이라 더 단비같다.



저자가 열심히 일을 하면서 느껴왔던 건강한 불안감과 하나하나 쌓아올린 내용인데,





탁월하게. 이 단어가 내 눈길을 잡아끌며 튀어 올랐다. 전문성이 아니라 탁월함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을 해오던 터이기도 했다. 전문성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인정이라면, 탁월함은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스스로 쌓아가는 역량이다.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되는 직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내 직업 삼아 살고 있다는 느낌.

전문성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30대 중후반에 접어드는 것.을 꼽기도 한다.

하지만 자의로든 타의로든 한곳에 오래 머물며 일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 시대다. 전문성을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전문성은 점점 더 닿기 어려운 도착지가 되고 있다. 전문성은 오랜 기간 동안 한 우물을 판 사람에게 주어지는 훈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무개지.”라는 식으로 전문성의 훈장이 주어진다. 호칭은 대체로 사후적인 평가라기보다는 사전적인 인정이라는 점에서 이 두 가지가 전문성의 조건인 것만은 분명. 사람들은 누군가와 직접 일해보기 전에 이력서의 몇 줄, 그러니까 ‘어디’에서 ‘얼마나 오래’ 그 일을 했느냐를 가지고 전문가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시스템의 교복을 입고 차곡차곡 모범생으로 보낸 시간의 총량이 전문성의 훈장으로 환원되는 셈이다. 이렇게 전문성이라는 이름의 디딤돌은 한곳에서 오래 일할 기회를 누리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에 딱 그만큼 점점 더 희소한 자원이 된다. 이런 식으로 규정되는 전문성은 불가피하게 배타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탁월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럼에도 더욱 가지기 어려운 것이다. 탁월성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자격 조건 같은 것은 없지만, 시스템의 내부에 안착해 그저 시간을 쌓는 것만으로 탁월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별개로, 자기만의 만족 기준, 달성하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탁월성을 만들어낸다. 탁월성은 또한 자신이 해온 일,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반추하며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같은 일을 해도 그 일의 경험을 통해 써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얼핏 보아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일관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에 맞춰 자기 일의 경험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만들어내는 탁월성은 전문성으로 치환되지 않더라도 굳건한 디딤돌이 되어준다. 탁월성의 세계는 교복 입은 학생의 세계와 다르다. 탁월한 사람이 언제나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한 조직 내에서 가장 먼저 승진하고 가장 좋은 고가를 받는 사람이 언제나 가장 탁월한 사람이란 법은 없다는 의미다. 스스로 탁월성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은 자기 목표를 향해 자기 기준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일하는 사람은 외부의 훈장이 주어지기 ‘전에’ 스스로 자기 일의 보상을 누린다.

전문성이라는 디딤돌이 정적인 것, 자격증이나 회사 타이틀, 직책의 이름을 획득하기 위해 한참 머물러야 얻어지는 것이라면, 탁월성은 끊임없이 이것과 저것을 조합하고. 그 모든 경험을 관통하면서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역량이자 고유한 스토리일 것이다. 1~2년짜리 계약직만이 가능한 선택지일 때, 그게 아니라도 이 직장에서 3년 이상은 일하기 어렵겠다는 전망이 들 때, 혹은 처음부터 프리랜서의 길로 뛰어들었을 때, 이런 경험을 통해서라도 디딤돌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성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언제나 머뭇거렸다. 전문성의 자리에 ‘디딤돌’이라는 단어를 넣고, 그 디딤돌을 전문성과는 다른 종류의 탁월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말은 어쨌든, 나의 제한된 경험 안에서만 유효할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일의 현장으로 가져와 일을 고용주와 나 사이의 거래 관계로 생각하면, 과잉의 노력을 쏟아 붓는 시간을 셀프 착취라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크건 작건 스스로 목표를 정하면, 고용주와 나 사이의 제로섬 게임 바깥에 내 일의 또 다른 층위가 생겨난다. 과잉의 노력을 쏟아 붓는 것은 고용주에게 필요 이상의 노동력을 갖다 바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내 삶에서 개인적 충만함을 위한 기울기를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가파른 기울기의 짜릿함을 맛본 사람은 다른 경험에 직면해서도 그런 기울기를 추구한다. 가파른 기울기는 즐거움의 총량을 늘린다. 즐거움은 탁월함의 다른 이름이다. 무엇이 즐거운지는 나만이 정할 수 있고, 탁월함 또한 그렇다.


#일하는마음
#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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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9-05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저로서는 좀 먼 이야기 같지만 탁월함에 대한 이야기는 좋으네요. ˝외부의 훈장이 주어지기 ‘전에’ 스스로 자기 일의 보상을 누린다˝ 이 문장도 희망적으로 다가오고요.

잘 지내고 계시지요? icaru님!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온 국민 집콕이라 저도 그렇게 애들이랑 옹기종기 ㅠㅠ 자주 안 오셔서 궁금했는데 오늘 글 읽으니 반가운 마음이에요.
즐거운 토요일 저녁 되시어요^^

icaru 2020-09-07 13:07   좋아요 0 | URL
우아 전 정말 가끔 이곳에 들어오네요.. 그래도 이렇게 막리뷰라도 남기면 댓글 달아주시는 반가운 분이 계셔서 이런 게 마음의 고향이지 이런 맘도 들고...
아이들이 이 시국에 정말 딱해요~! 중딩은 몰라도 유치원 초딩들은 밖에서 놀며 땀깨나 빼야 하는데 ㅎㅎ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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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란, 아니 시골 생활이란 온전해지기 위한 나를 만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러므로 시골에 대한 유용한 정보 같은 것은 없다. 온전함이란 완전함과는 조금 다르다. 완전하다는 것은 단 하나의 결점도 없이 완벽하다는 뜻이다. 온전함이란 눈에 보이는 결함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이 도시에서 나는 부자유스럽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고단하다. 시골 생활을 동경하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언젠가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이유가 적어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인간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인식했기 때문이라면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_우리 도시를 떠나 살 수 있을까? , 보리

    

온전함이란 바로 미성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지금껏 나약해 빠져 있고 줄곧 어엿한 학벌에, 직장에, 마누라에, 부모에 의탁하여 온 당신이 이제 시골에 의탁하려 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정수리로 찬물을 들이부을 것처럼 일침을 놓는 책이다.

시골 살이에 대한 저자 자신의 경험담에서 비롯된 한마디한마디이겠지만, '시골살이를 이상향으로 삼지 않겠습니다.' 에다가 '지금 이순간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게요! '라고 첨언하며 등뼈를 직립하게 되네 와~

                                 

 

"반인간적이고 굴욕적인 도시 생활을 어쩔 수 없이 해 왔습니다. 몸도 마음도 갈기갈기 찢기고, 혼마저 너덜너덜해진 시점에서 간신히 정년을 맞이했습니다. 인생의 전부였던, 가정보다 더 절실한 공간으로 여겼던 직장에서 완전히 내몰렸습니다. .... '인생 2막'이니 뭐니 떠들어댑니다. 새장이나 형무소에서 풀려난 것 같은 멋진 후반생이 열린 양 기대하게 합니다. 추상적이고 입에 발린 겉치레 소리입니다."

그가 직접 경험하고 들려주는 시골은 사실 살기등등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막연하게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대충 취미나 즐기겠다고 시골로 향하는 사람에게 그는 이런 질문을 한다.

 

"농촌의 인구가 왜 그렇게 줄어드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멋지게 생각하는 삶을 왜 젊은이들이 저버리고, 당신이 기피하는 도시로 떠나선 정년퇴직해도 돌아오지 않을까요? ....여하튼 나이만 먹어가는 후반 인생을 시골에서 보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거의 야생동물의 최후 같은 죽음을, 말하자면 길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결의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 "

다음은 _김은령. <밥보다 책>에서 발췌

그는 전원생활에 반대하려고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그가 말리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는 미성숙함이다. 젊어서도 죽기로 무언가에 자신을 걸어본 적 없는 사람이 나이 들어 은퇴를 하며 대충 유행에 따라 '슬로 라이프'를 추구하는 걸로는 인생이 오히려 더 비참해진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누구나 헨리 데이미드 소로가 될 수도, 타샤 튜터가 될 수도 없다. 이해도 없고 지식과 정보도 없는 시골생활에 관심이 쏠릴 때는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답답할 때이다. 하지만 이래저래 인간세상은 어디나 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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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이후 - 나의 가치를 발견하다 소노 아야코 컬렉션 2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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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상 체험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터득한 것은 나의 피와 살이 될 정도의 정열로 발전된 것은 거의 없었다. 축적된 지식이 나의 체험에 힘입어 하나의 사상이 된 적은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 교육 받은 것 중에는 순수하게 그 자체가 나의 신조가 된 것은 하나도 없었던 거 같다. " 
 

 
주어듣고, 보고읽고 하는 것들은 한 사람이 성장하는데 훌륭한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거다. 
그러나 자신의 상태가 지금 단단한 돌덩어리 같다거나, 젖은 장작 같은 상태라면, 아무리 충분하고 좋은 지침도 그를 활활 타오르게 하기 어려우리라. 

  나 지금 독서의 무용함을 떠들어대고 있는 거? 그럼에도 읽는 일에 미련을 버릴 수 없어라.

  막연하게나마 독서를 함으로써 나란 사람이 이치를 깨우쳐가고 있다고 기대를 했던 게지.

  지식을 얻으려 하는데는 독서가 아주 유용할거다만,

내가 얻고자 하는 지식은 또 그런 1+1=2 가 된다는 류가 아니라서,

 

방법은 하나 그냥 주어진 시간들을 살아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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