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비용 데버라 리비 자전적 에세이 3부작
데버라 리비 지음, 이예원 옮김, 백수린 후기 / 플레이타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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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통합 도서관에 딱 한 권 밖에 없던 책을 빌렸던 터라 더 감질났던 거 같다. 드물게도 빌려 읽고 그냥 한 권 다시 구매한 책이다. 두께도 얇아서 마음에 쏙 든다.

작가는 이혼을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 순위로 두어 오던 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뜯어"내는 일에 빗댄 다음 자신이 자아를 찾아 가는 과정이 동화 벽지" 뒤에 고마움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있던 기진한 여자를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퍼붓는 비를 맞아 가며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던 길에 그만 가방이 열려 장 봐 온 닭이 로드킬되는 걸 목격해야 했던 작가는 비에 쫄딱 젖은 채 집으로 돌아와 그토록 피곤한 날에도 자신을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소 자조적으로 말한다. "나는 혼자였고 나는 자유였다. 관리되는 것도 거의 없고 수도나 전기 같은 기본 시설마저 수시로 끊기는 집에 따라붙는 막대한 관리비를 지불할 자유가 내게 있었다. 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목숨을 다해 가는 컴퓨터에 글을 쓸 자유가 내게 있었다."

기묘한 유의 수동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일터에서 더 많은 직무를 맡기 시작했다. 집에서 남편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려 한 것이다. 두 사람은 한집에 살면서도 별도로 생활하고 잠도 각방에서 잤다. 일터에서 까다롭고 보람찬 일과를 마치고 귀가했을 때 함께 영화를 보며 저녁 시간을 보낼 사람이 있음에 여자는 만족스러워했다.

현대 가정을 둘러싼 변덕스런 정치가 한층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진 터였다. 내가 아는 혅대적이고 외관상 힘있어 보이는 여자 중의 다수가 다른 이들을 위해 가정을 꾸리고도 보금자리에서 느껴야 마땅할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집보다 사무실이나 다른 형태의 작업 공간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후자에선 그나마 누군가의 와이프 이상의 지위를 누리기 때문이었다.

라고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내 인생에 대입해 본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눈치를 보는 인생인 것이다. 휴식할 곳이 그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나로 존재하는 이 삶이 수고로워 죽겠는데,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 보석들에 손을 뻗느니 검고 푸르스름한 어둠을 두 발로 통과해 지나는 편이 낫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에 생각이 많아지는 나.

가부장제 바깥에서 다 형태의 공동체를 꿈꿀 자유, 누구누구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존재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내가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글을 쓰다가 작은 구리 주전자에 터키 커피를 끓여 그 잔에 붓고 은 뚜껑을 덮곤 한다는 얘기를 하직 가게의 막내 형제에게 털어놓지는 못했다. 이건 내 글쓰기 일과의 작은 의례가 되었다. 자정부터 다음 날 이른 시간까지 진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홀짝이다 보면 지면에서도 어김없이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글쓰기용 의자에서 한 발도 안 움직이고 밤을 거니는 방랑자가 된다. 낮보다 부드럽고 조용하고 슬프고 차분한 밤, 그리고 그 밤을 채우는 소리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 배관에서 올라오는 소리,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삐그덕대는 바닥 마룻장과 유령처럼 오가는 야간 버스 소리"

백수련 님의 에필로그


"손재주가 아주 좋았고, 집 안을 누구보다 깨끗하게 정리했고, 식혜나 고추장 같은 음식을 맛있게 만들었지만 할머니는 내겐 그런 것들을 조금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작가가 된 후 새벽까지 거실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앉아 있을 때가 많았는데, 잠에서 깨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로 나온 할머니는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아직도 그러고 있냐"하며 안쓰러워했다. "얼른 가서 자라, 병 날라"하지만 졸음 섞인 할머니의 목소리에 당신이 감히 꿈꿔 볼 수 없었던 어떤 고귀한 일을 하는 손녀딸을 기특해하는 마음이 한밤의 꽃향기처럼 비밀스럽게 배어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아이와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것밖에는 몰랐던 사람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물질적인 삶'과는 다른, 할머니의 눈에 보다 숭고해 보이는 정신적 세계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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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06-14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님 , 정말 오랜만. 잘 지내셨지요?

icaru 2023-06-14 14:50   좋아요 0 | URL
우아 나인님 너무나 반갑고 궁금한 아이디예요!!
잘 지내시죠? 아드님은 이제 성년이 다 되었겠어요!!
저 종종 들어가서 사진과 페이퍼를 본답니다~

최근에는 먹고사는 일에 바빠 격조하였지만 ㅎㅎ

icaru 2023-06-14 14:51   좋아요 0 | URL
나인 님이 유튭으로 올리셨던 피아노 연주도 가끔 생각하는데요 저는 ㅋㅋ

책읽는나무 2023-06-14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드디어!!
마침내!!!^^

icaru 2023-06-16 16:13   좋아요 1 | URL
ㅋㅋㅋ 또 이 책하면 책나무님!!!

2023-08-04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23-08-0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아공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