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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평점 :
동네 지인이 편해영과 황정은(지인은 이분을 조금 더 좋아하신다고) 작가를 좋아하고, 두 작가가 친구라는 TMI까지 곁들여서 얘기를 했었다. 나한테 추천하고 싶은 책 있냐고 물으니 발간 당시 그러니까 7~8년 전에 추천했던 편해영의 책이 이 책이다. 길게 설명해줬는데, 구덩이, 사위, 장모 이 세 키워드만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달 도서모임에서 책을 선정하는데 멤버 누군가의 입에서 이 책 이름이 나왔다. 다른 멤버들이 제목을 검색하는데 잘 안 찾아지니까 제목이 뭐라구요? 라고 하시고, 나는 발음을 이야기 하는 줄 알고, "'홀로' 할 때 '홀'이요," 그랬더니 책 추천인이 "그게 아니고 구멍할 때 홀이에요." 무튼 홀은 홀이잖아! 라고 혼잣속으로 .. 좌중에게 " '더 홀'로 검색하시오들!"
딴소리를 조금 하자면, 과거의 나는 (픽션에 한정하여) 책읽을 시간이 조금 있을 때, 좋아하는 작가 온다 리쿠를 포함하여 일본 미스터리를 즐겨 했었다. 국내 소설보다는 더 읽었던 것 같다. 물론 몇몇 국내 좋아하는 작가가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즐기면서 많이 읽는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밀리의 서재로 굵직한 국내 작가들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권여선 작가의 작품들이 내 산만한 읽기 회로를 꽉 붙들어 주는 것이었다. 책을 통 못 읽고 안 읽히는 정신산만한 상태이기도 해서 뭘 잡아도 끝까지 읽어내지를 못하는 와중이었는데, 단비 같았다. 그러다가 내가 아직 접하지 못한 꿀같은 국내 작가의 소설들이 많다는 것을 또 새삼 알게 되었다. 이렇게 늘 배운다. 모르는 게 참 많다는 걸 배운다. 굵직한 작가의 목록에 편해영 님도 넣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참 이렇게 늦게야 만나는 작가들이 있다.
다시 더 홀로 돌아와서, 우리 인생의 기본값은 평범함의 균열이나, 일상의 안전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불안과 상실과 공포 같은 것. 그래선지 나는 이 소설 진짜 흥미롭게 잘 읽혔다. 삶은 한순간에 뒤바뀔 수도 있고,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수도 있고, 또 삶은 실패가 쌓일 뿐,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는 않으니까. 라고 생각하는 독자에게, '아니야 인생은 그렇지 않아, 실패를 통해 성장해야지! 너 자신을 찾아야 해. ' 같은 서술로 독자에게 다가온다면 그또한 결이 다른 상처로 다가왔을 것이다.
내 다리 가려운데 옆사람 허벅다리 긁는 표현으로 밖엔 문장이 완성되지 않는데, 스포일러를 비껴가면서 굳이 말을 하자면, 나는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남편 오기의 아내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물론 아내 생각은 제대로 정확히는 도통 알 수가 없다. 남편 오기의 입에서 그려지는 것으로 추측할 뿐인데, 남편 오기가 아내의 진면목을 제대로 서술해 줄 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모습에 이입이 되는 것은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모르기는 뭘, 작가의 촘촘한 설계이지)
또 훌쩍 넘어가서 독서모임에의 분위기를 전달하자면, 대개의 독자들이 그럴수도 있겠지만 우리 멤버들도 인간 내면의 불안, 은근한 폭력성 등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모호하고 차갑게 제시한 것에 대단히 불편했다고 한다. 그래서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마음의 불편함을 재미없음과 등가로 할 수 있는 것이냐고 그 마음씀을 만류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ㅋ 어쩌겠어 감상은 각자의 몫이니까.
하기는 나도 부정적인 한마디를 보태기는 했다. 이혼숙려캠프에 나왔던 에피소드와 장치가 클리셰처럼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고. 클리셰일리가! 이혼숙려캠프는 이 작품이 나오고도 한참 후의 프로그램이고, 심지어 리얼다큐인데? 그냥 평범하다는 우리네의 삶이 기실 어이없고 남루한 것일뿐.
이 책이 또 흥미로웠던 것은 소설이 끝나고, 뒤에 평론가의 해설이 붙지 않았다는 점이고, 또 작가가 작품을 쓰면서 작품 속에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거나 직접 언급한 참고 서적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아 요즘 소설들은 이렇게 저작권을 소상히 밝혀 주나요?)
참고
-베른하르트 알브레히트, <탁터스>. 배명자 옮김, 한스미디어, 2014
-허연, <슬픈 빙하시대2> ,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사, 2008
-대실 해밋, <<몰타의 매>>, 고정아 옮김, 열린책들, 2007
-제리 브로턴, <<욕망하는 지도>> 이창신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14
-에밀 졸라, <<전진하는 진실>>, 박명숙 옮김, 은행나무, 2014
이 소설은 한국 최초로 미국의 셜리 잭슨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셜리 잭슨(1916~1965)은 단편 〈추첨(The Lottery, 1948)〉으로 유명한 미국의 여성 작가라고 한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같은 계열의 작가일까?
77쪽
마흔은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이였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개인 사업을 궁리하며 바깥으로 나돈 것도 그 무렵이었다. 말하자면 사십대는 세상에 적응하거나 완벽하게 실패하는 분기점이 되는 시기였다.
(...)
자괴를 이겨내기 위해 아내가 읽어준 허연의 시를 종종 떠올렸다. 사십대란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라는 표현 다시 찾기 위해 허연의 시를 찾았지만, 제목에 사십대라거나 마흔이 붙은 시는 없었다. 시집을 전부 읽어나가다 예의 그 시를 찾았지만, 제목은 물론이고 본문에도 사십대라는 표현은 없었다.
시인의 나이로 미루어 대략 그정도의 나이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
79
아내는 하려던 일에서 지속적으로 좌절했고, 스스로의 재능에 성취감을 느낀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렇더라도 인생을 즐거운 것으로 여긴다면 좋은 일이지만, 아내는 어느 순간 달라졌다.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뭔가를 배우러 다니지도 않았고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87
오기가 생각하기에 아내의 불행은 그것이었다. 늘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 언제나 그것을 중도에 포기해 버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