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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의 기원>이라고 쓰고, <악의 기원>이라고 읽는다.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로 먼저 만난 <7년의 밤>을 통해서는 ‘이 작가다’라는 확신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훗날 듣기로 원작을 읽어야 한다고들 하긴 했지만.) 그러던 내가 정유정의 작품 <완전한 행복>을 읽고, 나서야 눈빛을 빛내며 작가가 천작한 사이코패스 악인의 심리 세계로 함께 걸어 들어갔다. 작품을 다 읽고, 흡사 습작일기와도 같은 작가의 말을 읽고 나니, “매번 다른 악인을 등장시키고 형상화시켰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목이 마르고 답답했다. 그들이 늘 '그'였기 때문이다. 외부자의 눈으로 그려 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 객체가 아닌 주체여야 했다. 우리의 본성 어딘가 자리 잡고 있을 '어두운 숲'을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줄 수 있으려면. 내 안의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 그려 보이려면.”라는 부분이 보인다. 그리고 이 책을 세 번을 다시 썼다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이 대작가가 세 번째 다시 쓸 때는 비로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작가인 ‘내’가 어린 시절부터 학습돼온 도덕과 교육, 윤리적 세계관을 깨버리지 못했다는 걸. 주인공인 ‘나’는 그런 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맹수’인데. 인류의 2~3퍼센트는 이 사이코패스에 속한다고 한다. 물론 주인공 유진은 상위 1프로에 속한다. 이 책 속 유진처럼 폭발이 되려면 학대나 범죄 환경에 놓여 유전적 기질이 상호작용을 이룬다고 한다. 이 책의 영향이었는지 뭐가 먼저였는지 몰라도 읽으면서 금쪽 같은 내새끼의 역대급편을 몰아보기도 했다. 김혜수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소년심판을 보기도 했다. 악의 씨앗은 따로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답은? 아니 나도 아직은 모르겠다 이다. 그러나 작가가 다음과 같이 말을 해주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가 인간의 악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본성 안의 ‘어두운 숲’을 똑바로 응시하지 않으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고.
203~206쪽
불길 같은 흥분이 신경절을 타고 온몸으로 내달렸다. 숨이 차올랐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서 현기증이 났다. 내가 칼을 쥔 게 아니라 칼이 내 손을 거머쥐고 여자 안으로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저항이 용납되지 않는 무지막지한 장력이었다. 눈앞이 와르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칼을 쥔 손이 저릿저릿해왔다. 음속을 돌파하는 듯한 충격이 몸을 덮쳐왔다. 머릿속 어디가에선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실낱같이 열려 있던 이쪽 세상과의 통로가 닫히는 소리였다. 나는 내가 다른 세상의 국경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도, 돌아갈 의지가 없다는 것도.
이런 순간을 상상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런 순간이 왔을 때, 나를 제어할 자신도 있었다. 정말로 이런 순간이 오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도 머리도, 오로지 교감 신경의 지시에만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너무도 쉽고 빠르게 상상의 경계를 넘어버렸다.
세상이 사라졌다. 위장에서 요동치던 불길이 성욕처럼 아랫배로 방사됐다. 발화의 순간이었다. 감각의 대역폭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마법의 순간이었다. 내 안의 눈으로 여자의 모든 것을 읽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전지의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전능의 순간이었다.
망각은 궁극의 거짓말이다.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완벽한 거짓이다. 내 머리가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패이기도 하다. 어젯밤 나는 멀쩡한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해결책으로 망각을 택했으며, 내 자신에게 속아 바보짓을 하며 하루를 보낸 셈이다.
모든 걸 알게 된 지금에 와서야 나는, 내가 살인을 저지르리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하구언 길의 위험한 놀이를 그만두라고 스스로 경고했겠지. 그런데도 계속했던 건, 상상의 경계를 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사회적 자아가 견고하다고 믿었다. 즐거운 한때와 인생을 맞바꿀 만큼 분별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에 대한 과대평가, 나를 제어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이 어젯밤 운명의 손에 내 목을 내주게 만든 것이었다.
나는 다음 책은 <진이, 지니>로 정해 두고 대기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