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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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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2~23쪽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 깊이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대화는 최음제이며, 인생에서 깨달음만한 오르가슴은 없다. 상처는 그 쾌락과 배움에 대해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이다.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사랑 받는 사람은 배우지 않기 때문에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 확신, 자기 희열이며, 사랑을 갖고자 하는 권력 의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 이후에 겪는 고통은 사랑할 때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35쪽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알려는 노력.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고뇌를 유보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

120쪽
결국 사람들은 또 무엇이 더 결정적이냐고 결론 내고 싶어한다. 마치 민족 모순이나 계급 모순처럼 '큰' 문제를 우선시하는 사람은 구조적 파시즘을 강조하고, 소수자들은 일상적 파시즘에 더 무게를 두는 것처럼 논의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상적 파시즘도 구조적 파시즘도 극복하기 어렵다. 구조적 파시즘은 일상적 파시즘을 전제로 작동하는데, 두 가지 파시즘이 어떻게 구별될 수 있단 말인가?

140쪽
한국 남성에게 성폭력당하면 '개인적인 일'이고, 일본 남성에게 당하면 '민족의 아픔'인가? 성폭력은 가해 남성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 성격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 의한 폭력이라는 사실이 더 본질적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여성을 '순결한' 피해 여성과 '타락한' 성판매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남성 사회에서 여성의 가치를 정하는 방식이다. 남성의 입장에서 성매매와 성폭력은, '자발'과 '강제'라는 '반대' 현상이지만, 여성의 시각에서는 구별될 수 없는 연속선이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이 현실이 바로 성폭력과 성매매의 원인이다.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여성을 남성의 성 권력의 희생자와 '자발적으로 남성의 욕구에 부응한' 여성으로 나누는 것은 누구의 논리인가? 성폭력 피해 여성이나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모두, 결국은, 남성을 위한 제도의 '희생자'들이다.

177~179쪽
그러나 인간이 원하는 것은 개인의 고유한 의지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 몸은 단순히 그 몸을 '소유한' 개인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 여성의 자기결정은 여성의 정신에 의해 투명하게 구성되거나, 약자인 여성의 결정이기에 그 자체로 올바른 것이 아니다. 성적 자기 결정론은, 개인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 내용이 사회 혹은 상대방과의 상호 작용과 사회적 맥락 안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추상적, 현실 초월적인 논리이다.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바로 나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주창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성폭력이 사적인 피해라는 자유주의 이론 비판에서 출발했지만, 몸을 주체의 소유물, 주체의 재산으로 간주하는 근대 자유주의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
같음의 기준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한 것일 때, 여성은 남성과 같음을 주장해도 차별받고 다름을 주장해도 차별받는다. 이것이 소위 '차이와 평등의 딜레마'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과의 차이를 주장하면 남성 사회는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고, 같음을 주장하면 사회적 조건의 다름은 무시한 채 남성의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평등'은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회적 강자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지, 평등이라고 볼 수 없다.

250쪽
의무는, 수행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는 있어도, 이행했다고 해서 보상받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군 가산제 제도는 여성과 장애인 등 처음부터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 사람들에게 그 면제된 의미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격이다. 면제의 기분을 문제삼아 여성과 장애인의 징병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면제된 의무를 안 했다고 해서 개인의 권리와 생존권(취업권)을 박탈하거나 감수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 여성은 병역의 의무가 면제된 것이 아니라 배제된 것이다.

공지영의 ‘도가니’를 읽으면서 이 책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떠올리게 되었다. 두 책 모두 공통의 카르텔은 전자의 경우는 검찰, 고위공무원, 위시한 정치계 인사로 대표되는 상류 기득 권력층들에게 고함이라면, 후자는 사회 속 남성 권력층들에게 고함이다. 폐단은 정작 읽혀야 할 그들은 읽으려 들지 않고, 우리 같은 사람들(사회적 약자? ㅎ)만 들입다 읽는다는 점이긴 했다.  공지영은 책 한 권으로(정확한 표현은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책 속의 ‘자애학원’이 재조명되게 하였고, 남들이 돌아보려 하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약자를 돕는 사람들 이야기 또한 세상에 알려지게 하였다. 사람들의 관심 하나,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 그리고 책 한 권이 바꿔가고 있는 이 사회가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봐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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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무라카미 요코 사진,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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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들처럼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인간은 자신의 일을 하나에서 열까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고, 또 그걸 위해서는 다이어트든 신체 단련이든, 자신의 신체를 어느정도 정확히 파악해서 방향성을 통해 자기 관리를 해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의 고유한 체계나 철학이 필요하게 된다.물론 그 방법이나 철학이 보편적으로 타인에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말이다.  

나는 학교를 졸업한 이래 어떤 조직에서도 속하는 일 없이 혼자서 꾸준히 살아왔지만, 그 20여년 동안 몸으로 터득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개인과 조직이 싸움을 하면 틀림없이 조직이 이긴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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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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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쪽

내가 보기엔 냉소적인 사람보다 더 유치한 건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여전히 세상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악착같이 믿고 있고, 또 유년 시절에 들었던 유치한 관념들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인생은 개같고,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믿지 않고, 나는 질리도록 인생을 즐길 거야"라는 말은 불만에 가득 찬 유치한 인간의 말일 뿐이다. 

186쪽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불행한 이유가 다양하다.'

이것은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나는 모든 평범한 수위처럼 이것을 몰라야 했다. 우연히 문장의 두 번째 구절이 내가 말한 첫 부분과 연결되었을 때, 그것이 톨스토이의 문장임을 몰랐더라면 마치 은총의 순간처럼 소스라치게 놀랄 일도 없었을 것이다.

279쪽

끝으로, 청소년들은 어른을 모방하면 어른이 된다고 믿고 있지만 정작 어른들은 아직도 어린애들이고, 인생 앞에서 도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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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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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27쪽

 

질병과 노화의 공포는 단지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니다. 그것은 고립과 소외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돈을 더 바라지도, 권력을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가능한 한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직접 선택하고  자신의 우선 순위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쇠약해지고 의존적이 되면서 그러한 자율성을 갖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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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낙원
온다 리쿠 지음, 현정수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8월
절판


34~35쪽
그녀도 뭔가 창조하는일을 하고 있었다. 뭔가를 창조해 내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녀가 만들고 있는 것은 조소(彫塑)였다. 그녀의 대범하면서도 편안한 작품 분위기는 일부에서 상당한 주목을 모으고 있었고, 촉망받고 있다고 말해도 거짓말이 아닐 정도다.
창조해 내는 것이 무엇이건, 그 작품에는 작자의 내면이 드러난다. 그러나 뭔가를 만들기 위해 그 험한 길을 나아간다면 어떤 작풍의 결과물이더라도, 어떤 장르의 예술이더라도, 도달하는 곳은 똑같다고 리츠코는 믿고 있었다. 결국 하나의 존재를 여러 가지 방향에서 찾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나무통을 만드는 장인도, CF를 만드는 감독도, 오페라 가수도, 그 도달점은 한 곳인 것이다.
그러나 교이치가 만들어 낸 작품과 자신이 만든 작품의 도착점이 같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34~35쪽쪽

72~74쪽
재능이란 과잉이다. 이 말은 그녀의 스승이 한 말이었다. 형식도 스타일도 잊어라. 그저 계속 손을 움직여서 뭐든 만들어라. 너희들에게 그런 건 20년은 일러. 머리를 써서 만드는 동안에는 개인의 스타일 어쩌고 말해도 소용없다. 스타일이라는 것은 나중에 따라 붙는 것이고, 스무 살 언저리에 ‘이것이 나의 스타일’하면서 깝죽대는 녀석은 단순히 그것밖에 할 수 없거나 그것 밖에 해 본 적이 없는 것뿐이야. 개성이란 스스로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충동에 마구 휘둘리도록 해. 항상 그게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어라. 그 작품을 마지막으로 남긴 것에 만족하고 죽을 수 있나 없나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 (생략) 이윽고 그들은 코가 납작해진다. 숫자와 양, 그리고 스피드를 요구받으면, 자신들이 해야 할 이야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부족한지, 그때까지 자신이 만들어왔던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왜소한 것이었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72~74쪽쪽

리츠코는 순순히 받아들인 쪽이었다. 옛날부터 "리츠코는 물 같은 애야." 하는 말을 듣고 살았다. 어떤 장소에 있어도 친숙해지고, 시키는 말은 심플하게 받아들인다. 리츠코는 스승의 가르침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자신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열심히 과제를 소화해 내고 있을 때면, 리츠코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시냇물이 되어 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졸졸, 졸졸, 상류에서 맑은 물이 흘러 내려오고, 그녀의 안에서 팔을 타고 대상을 향해 흘러 나간다. 흐르는 물은 그녀의 손안에서 멈춰, 형체가 된다. 그것은 익숙해진 편안한 소리였다. 지금 이렇게 저 멀리서 들려오는 프레스 기계 소리처럼.
그러나 때때로 물줄기가 뚝 끊겨 흐르지 않을 때도 있다. 졸졸거리는 포근한 선율이 그치고, 마른 공기만 펼쳐져 있다. 뭘까,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아도 새하얀 세계가 이어지고 있을 뿐, 어디에도 물은 흘러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기다릴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든 많든 적든 그런 때가 있다. 기다리는 것은 아주 어렵다. 기다리지 못하고 자멸해 버리는 아티스트도 무수히 존재한다.
-72~74쪽쪽

낙천주의자인 리츠코도, 때때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절망했다. (중략)
한편,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강바닥에 언젠가부터 퇴적물이 쌓인다는 뜻이다. 퇴적물은 강의 흐름을 변화시키고 수질에도 영향을 준다. 잊어버린 중요한 것이 가라앉아 있는 일도 있다. 리츠코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작품을 계속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이따금씩 퇴적물을 치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략)
리츠코는 망설이고 있었다. 순진무구하고 대범하며 원시적인 생명력이 넘친다고 평가받는 자신의 작풍이, 이대로 계속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 어린애의 그림은 근사하다. 그러나 비참한 사생활이나 장절한 인생을 뛰어넘어, 그것들을 이해한 뒤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몰라도, 자신은 그저 현실에 귀를 막고 눈을 감고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의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친구는 말했다.
-72~74쪽쪽

그런 소리를 하자면, 아티스트는 모두 파멸형이어야만 한다는 얘기잖아. 비참한 현실이 예술을 낳는 원동력이 되는 일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트라우마가 있는 녀석은 모두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는 거야? 난 그런 착각은 정말 싫어. 어린애들이 ‘나는 불쌍한 고아지만 사실은 어느 나라의 공주님이야.’ 하는 꿈을 거나 마찬가지 아냐.
-72~74쪽쪽

젊은이는 젊은이를 싫어한다. 그렇지만 그런 한편, 자기와 비슷한 녀석들이 많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이렇게 같은 세대의 인간들이 잔뜩 있는 곳에 몰려든다. 왜 젊은이는 도회지에 모여드는 걸까?
리츠코는 옛날부터 같은 세대의 인간에 위화감을 느꼈다. 같은 세대가 공유하고 있을 친근감이나 공감이란 것을 별로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 젊음을 향유하는 것에 저항감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동떨어져 있다거나 소외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 유연하고 소박한 성격은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았고, 좋은 친구들도 많았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마지막에는 도무지 연대감을 맛볼 수가 없었다.
반짝반짝하는 오픈 카페 제일 앞자리에 앉아, 그 장소에 앉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그들이 리츠코에게는 우주인처럼 보였다.
나는 자의식과잉일까? 리츠코는 생각했다. 어째서 저런 식으로 순순히 자기 주장을 하고 자기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어째서 자연스럽게 즐거운 일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어째서 젊음을 구가하는 것에 꺼림칙함을 느끼는 것일까?
-102쪽쪽

다만, 이 사람들처럼 할 수 없는 부분, 이 사람들이 다른 곳에 사용하는 에너지가, 내 경우에는 창작에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둘러대며 어떻게든 마음을 정리한다. 내가 이 사람들처럼 있는 그대로 청춘을 만끽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창작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102쪽쪽

애초에 광고 자체가 그런 효과를 노리고 있는 거잖아요. 정부 광고든 뭐든, 주입하기 위해 광고를 흘려보내는 거예요.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지 않으면 상품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에요. 소비자는 같은 내용의 상품이 있으면 모르는 상표의 물건보다는 반드시 아는 상표의 물건을 골라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주입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주입이 아닌가 하는 것은 미묘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131쪽

보잘것없는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광기보다도 제정신이다. 광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평안이며 방어이기도 하다. 그것에 비해, 제정신으로 현실과 마주하는 것은 인간에게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이 남자가 두려운 이유는 이 남자가 항상 누구보다도 제정신이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거하게 취했을 때, 술에 취하지 않은 멀쩡한 사람에게 가만히 관찰당하는 것만큼 창피한 것은 없다. 쿄이치의 시선에서는 그것에 그것에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이 아이도 이상한 아이네. 리츠코는 생각했다. 순진하고, 곱게 자란 성격에 총명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요령부득한 구석이 있었다.
-268쪽

예술품을 느끼는 센스.
본인은 뭔가를 창작할 수 없고, 예술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가끔 굉장한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 있다.
정말로 유행의 첨단을 걷는 사람이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지. 리츠코의 은사가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때때로 예술이라는 것은 예술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무의식속에 가라앉아 있는 거 아니겠어? 대중의 무의식이 어느 날 한 사람의 아티스트 속에서 그것을 발견한 거야.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들은 그저 붓 같은 존잴, 대주의 무의식에서 떠오른 것을 그저 그려 내고 있는 것뿐이지 않은가 싶어. 최종적으로 예술이라는 것은 역시 대중 쪽이지, 우리들이 아닌 거야. 우리들은 우연히 발견되고 있을 뿐, 어떠한 이단이더라도 어차피 대중의 일부를 그려내고 있는 것뿐인 거라고."

리츠코는 아티스트라는 존재와 자신의 존재가 도무지 겹쳐지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남이 보면 틀림없는 예술 활동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재능이 있다든가 아티스트라든가 하는 말을 듣는 것에는 커다란 위화감이 느껴졌다. 아티스트는 자각하는 것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269쪽

이 산속에 아츠시가 살고 있다니,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그는 도회적이고,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타입이며, 상승지향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 나이에, 그리고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이런 촌구석의 산속에 갑자기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들어앉아서 혼자서 살고 있다고?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하기라도 했던 건가?
-424쪽

그 사람은 우리들을 시험하고 있는거야. 우리들은 그가 발견한 보기 드문 흙 같은 거야. 여기는 그 사람의 가마야. 그 사람은 흙을 발견하고, 가마에 집어넣는 거야. 그 다음에는 불에 굽는 거지. 그 사람은 우리들이 가마에서 나왔을 EO에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고 싶은 것 뿐이야.
-458쪽

인간이란 어쩌면 이렇게나 모순된 생물일까? 리츠코는 마음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인간은 공포를 사랑한다. 공포를 갈망한다. 무시무시한 것, 비참한 것을 사랑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게 특정 부류 인간들의 진실임을 마음 한구석에서 알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으로 끝이었을까? 그 게스트 하우스에서.
-475쪽

교이치가 눈에 보이는 카리스마라면, 아츠시는 항상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였다. 지적이고 느낌 좋은 청년, 누구에게라도 신뢰받고, 호감을 사고, 적이 없다. 선두에 서서 이끄는 타입은 아니지만 조용히 인망을 모으는 타입. 그런 인간에게는 모두가 마음을 허락하고 조언을 구하지 않을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빌려 주게 되지는 않을까.
-501쪽

사람은 누구에게 키워지지 않은 존재다. 그렇게 생각했다. 어린애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가. 사는 곳도 입는 것도 먹는 것도 전부 어른에게 받아야만 한다. 가정이란 우리 안에서는, 항상 부모에게 예속되어서 어른의 에 들 만한 생활을 해야만 한다. 철이 들 무렵부터 집안 분위기는 말도 못할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뚤어지거나 난동을 부리는 방향으로 갈수는 업어다. 주위에는 그런 아이도 있었지만, 결국 세상에 적을 늘릴 뿐이라는 걸 금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은 힘을 축적하고, 언젠가는 세계를 지배하는 쪽에 서 보이겠다. 언젠가는 항상 나를 지배하려고 했던 어른들을 자신에게 복종시켜 보이겠다.
-5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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