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책 - 일상이 허기질 때 밥보다
김은령 지음 / 책밥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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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책이라고 쓰고 밥과 책이라고 읽는다.

 

저자는 먹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맛없는 것을 먹기엔 인생은 짧아!"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내 나이(40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화두를 던진 책이다. "신체의 노화가 하나씩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마흔, 늘어나는 옆구리 살 걱정만큼이나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이루어 놓은 것 없음에 대한 불안으로 제 2의 사춘기를 지내야 하는 40대야 말로, 책읽기의 적기"라고 김은령은 이야기한다.

화두라고 하니까 참 거창도 한데, 사실은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써야겠다.

 

"멀리 혹은 천천히 가려는 사람에게 자꾸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하는데 우리에게 낭비할 것이라고는 자기 인생밖에 없으니 이거 하나쯤 내 맘대로 낭비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말해 주는 책이니까.

 

저자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많이 공감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볼 때 대답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이 처음 나오지는 않는데, 정말 그렇다.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는 대부분 읽었고, 심지어 하루키에 관해 언급한 책( 우치다 다츠루가 쓴 책)까지도 읽는데 말이다. 저자는 이런 감정을 다음에 빗대어 표현했다. '첫눈에 반해 온 인생을 걸고 덤벼드는 사랑도 있고 아주 애매하게 시작되어 어쩔 수 없이 터덜대며 따라가는, 사랑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무언가도 있는 법이니까. 라고.

그건 그렇고 하루키 씨가 세상에 한국에 독자가 엄청 많음에도 지난 30년 동안 한번도 오지 않았단다. 너무하네...

 

 

애(자녀인 나), 일, 밥, 술, 돈, 잠 그리고 책, 책, 책

저자는 밤마다 동화책을 읽어주신 어머니 덕에 책의 세계에 들어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 세계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큰애는 내가 에너지가 있어서 끼고서 밤마다 무수한 동화책을 낭독으로 공급해 주었는데,

둘째는 그러지 못해서

나중에 둘째가 어머니, 그때 왜 제가 게임하는 걸 강력히 제지하지 않으셨나요? 하려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인데, 역시 책에는 자신의 이야기 들어가야 한다. 특히나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려면 그런 듯하다. 읽은 책 이야기와 나의 삶의 범벅이 우려낸 글 조합에서 공감과 감동을 발견하게 된다.

 

<앵무새 죽이기> 중에서

스콧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는 1930년대 남부 앨라배마 주 작은 마을 메이컴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50대 남성이다. 아내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흑인 요리사 캘퍼니아의 도움을 받아 똑똑하고 생각많은 아들잼과 거침없고 활달하며 아무때나 나서는 딸 스컷을 키우고 있다. 백인여성을 강간했다고 기소당한 흑인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게 되고, 이는 자신과 가족에게 큰 위험을 자초할 수 있었다. 주"우리가 이위의 협박과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변호사로, 책임있는 사회인이자 지성인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는 법과 제도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하는 변호사다. "우리가 이길까요?" 아이들이 걱정하며 묻자 핀치는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답한다. 아이들은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다시 질문한다.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사는 것이 녹록지 않은 나이 많은 아버지를 든든하게 받쳐준 것은 바로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이 일에 대해 결코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리라는 확신이었다. 주민들과 갈등이 커지던 순간 걱정이 되어 찾아와 몰래 지켜보고 있던 딸 스컷이 아빠에게 뛰어간다. 그들 사이에서 친구 아버지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예의 바른 사람은 자신의 관심거리보다 상대방의 관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려 친구의 안부를 묻고 아버지가 도와줬던 일을 상기시켜 충돌을 막는다. 잘 보고 배운 아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아버지와 아버지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지킨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물으면 무시하거나 대충 얼버무리는 대신 대답을 해주고 아이들 이야기에 끝까지 귀기울이며, 말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78~179쪽  

 

책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만 패디먼의 말처럼 좀 나은사람이 되는 데에 책이 나름의 도움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길고 지루한 고전을 묵묵히 읽어내는 것만이 애서가의 미덕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쉽게 친해지지 않는 고전을 핵심 요약 정리해 주고 그 김에 책까지 펴들게 만드는 지적이고 힘 있는 가이드다.

책을 좋아하는사람 중에는 책에 담긴 내용 그 자체만큼이나 책이라는 물성의 매력에 빠진 사람이 많다. 독서의 의미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글을 쓰는 알베르토 망겔은 어려서 서점에서 일하다 위대한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를 만났고 시력이 점점 떨어져가는 그를 위해 4년간 책을 읽어주는 일을 했다. 보르헤스만큼이나 열혈 독서가가 된 그는 <독서의 역사> <밤의 도서관> <책 읽는 사람들> 등을 발표했고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직업이 독자인 사람, 그것도 계관 독자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그가 넓은 서재가 딸린 프랑스의 집을 정리하고 맨해튼의 침실 하나짜리 아파트로 이주하게 되어서 3만 5000권 장서를 저일하게 되었다. 가져갈 책, 버릴 책, 보관할 책을 분류하며 얼마나 복잡다단한 심정이 되었을까. <서재를 떠나보내며>에는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라는 심각한 부제가 달려 있는데 책과 독서에 대한 애틋한 숭배가다.

 

"나는 언어의 구체적 물질성, 책의 단단한 현존, 그 형체, 크기, 질감을 원한다. 나는 전자책의 간편함과 그게 21세기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이해한다. 그러나 전자책은 플라토닉한 관계의 특성만 갖고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나는 내 양손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종이책의 상실을 아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믿으려면 먼저 만져봐야 한다는 도마 같은 사람이다." 서재를 떠나보내며_ 알베르토 망겔

 

"예기치 못한 만남과 연상이 우리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237쪽

<음식과 요리>를 쓴 해롤드 맥기는 천문학을 공부하려고 캘리포니아 공대에 입학했다가 전공을 문학으로 바꿔서 예일 대학교에서 존 키츠의 낭만주의 시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상에는 참 독특한 사람도 많다. 우연한 기회에 음식과 요리에 흥미를 느끼고 과학과 요리를 접목하는 일을 해왔는데 이 첫 번째 책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요리책은 많아도 요리와 식품을 이렇게 과학적 원리와 가치에서 접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42쪽

누구나 인생은 처음 살아보는 것이라 낯설고 익혀야 할 것 투성이다. 기본적이고 단순한 가치인데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잘못했으면 바로 미안하다고 마음을 표혆해야 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배려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하고 바쁜 가운데 어떻게든 틈을 내어 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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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
우치다 다쓰루 지음,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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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전혀 몰랐던 사람이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라니, 만약 제목대로라면 에두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를 해 주려나 하는 호기심 정도가 일어났다. 책날개를 보니, 일본의 저명한 학자라고 하네.

우연히 들춰본 문구 속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세계의 어린이들이 볼 것으로 의식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든 게 아니라 일본 어린이들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세계적으로 통했다. 라는 것. 아울러 재밌는 구절이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내게는 실패작이 몇 개 있습니다.” <붉은 돼지>라는 작품을 두고 실패작이라고 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 관객인 어린이가 아니라 자신의 미의식이나 기호에 맞추어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참 흥미로운 구절구절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다가 서점 안을 걷고 있었더니, 책과 눈이 맞았다 라고나 할까. 어쩌다 집어든 이 책에는 마침 내가 읽어야 할 것이 쓰여 있었던 것.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한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의 ‘바보의 벽’, 우리 내면의 ‘평범함의 경계선’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쓰는 일은 고역일 따름입니다.

 

언어에도 ‘생명이 있는 언어’와 생명이 없는 언어가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 ‘살아가는 지혜와 힘’을 높여주는 언어가 있는가 하면, 살아가는 힘을 잃게 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내면을 향해 잠수해가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어디까지든 한없이 들어갑니다. 그러나보면 자신의 개별성이나 개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 이상까지 뚫고 나가버립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꿈을 꾸기 위해 매일 아침 나는 눈을 뜹니다.>에서 그는 소설 쓰는 행위를 가리켜 ‘지면에 구멍을 파서 수맥을 찾아내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구멍을 파다가 무언가 솟구쳐오르면 그것을 길어올리는 것이다.

 

 

다른 글에서 그는 “양을 쫒는 모험‘을 쓸 때 전문작가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71쪽

무슨 일이 있어도 책과는 우연히 만나야 합니다. 친구가 “이것 좀 읽어봐, 정말 마음에 들 거야.”하고 추천해서 책을 읽으면, 재미는 확실히 있을지 모르지만 ‘숙명의 책’이 되지는 못합니다. 여름방학 과제로 읽어야 해서 읽은 책도, 찬사 가득한 서평을 받은 책도 안 됩니다. 타인의 평가가 끼어들었으니까요. 그런 것은 우연한 만남이 아닙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이 책이 내비치는 아우라에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야.’ 이런 서사가 성립해야 합니다.

 

이상하게도 몹시 기분이 좋을 때는 글을 쓰고 있을 때 ‘끝까지 다 글을 쓴 자신’의 성취감을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몇 주 동안이나 연속적으로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 몰두하고 있으면 뜻밖에도 ‘아카데믹 하이’ 상태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전부 다 글을 쓴 자신의 이미지를 선취합니다. 글을 다 쓰고 난 다음 되돌아보듯이 결론에 이르는 논의의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보입니다. 어디에서 어떤 논증을 대고, 어떤 인용을 통해 어떤 결론으로 흘러가야 하는지 죄다 보입니다. 순간적인 ‘비전’이기 때문에 곧장 사라져버리지만, 그 후에는 충만한 행복감에 휩싸입니다. ‘이 논문은 반드시 완성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 논문ㅇ르 다 쓰고 난 다음의 자신과 만났기 때문에! 모든 물음에 대답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다 보았단 말이다!’

이런 선구적인 비전은 긴 글을 쓸 경우 필수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한 비전을 가져다주는 것은(이렇게 표현해도 좋다면) ‘수동적인 전지전능의 느낌’입니다. 자신이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아끌어 공중 높이 들어 올린 다음, 유체이탈을 한 상태로 자기 자신이 하는 일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까지 글을 다 쓰고 난 이후 깊은 만족감을 맛보는 자신이 보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수동적인 전지전능의 느낌에 강렬하게 열광합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는 뇌 속에 엔도르핀이 대량으로 나올테니까요. 오싹하는 쾌감입니다.

 

 

 

 

251~252쪽

 

나는 20대 청년 시절에 난해한 책으로 잘 알려진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맨 처음에는 무슨 말을 썼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지 않으면 그 당시 연구를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3주에 걸쳐 젖 먹던 힘까지 내어 통독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처음에는 의미를 알 수 없었는데 3주일 동안 줄기차게 읽었더니 어렴풋이 감이 잡혔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오고가며 외국어로 떠드는 연극을 3주일 동안 매일 본 느낌입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붙들고 늘어지면 어느새 감정이입할 수 있는 등장인물도 나오고, 편들어주고 싶은 배우도 생기고, 귀에 익숙한 반주 음악이나 익숙한 무대 장치도 식별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떤 이야기인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문제가 무엇인지 점차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일 정보의 입력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 인간의 뇌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재조직화됩니다. 진짜 그렇습니다.

 

 

그럴 경우 경험적으로 확실한 점은 신체를 매개로 삼으면 효율적이라는 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성은 오랫동안 내 연구 주제였습니다. 왜 그는 온 세계의 수억명의 독자를 얻고 있을까? 자신이 직접 트라우마를 경험한 작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경험에 대한 기억의 결여,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을 물려받은 작가, '거짓 경험'을 자신의 근거로 받아들인 작가는 어쩌면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성에 근거를 이루지 않았을까 합니다.

 

 

 

작가의 후기

 

(...) 통독하는 동안 반복적인 이야기가 잦아서 스스로도 싫증이 났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는 반드시 '반복'이 있는 법입니다. 미묘하게 음조가 다른 반복이 이어지다가 이야기의 수준이 겨우 한 눈큼 만큼 깊어집니다. 산을 오를 때 빙글빙글 산 주위를 도는 길을 헤맬 때와 마찬가지로 몇 번이나 똑같은 경치와 마주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때마다 조금씩 등고선이 더 높은 곳에서 본 경치입니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경치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바다가 보이기도 하고, 먼 산이 보이기도 하면 경치의 '문맥'이 변합니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곳은 '고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니까 눈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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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발견한 행복
애너 퀸들런 지음, 공경희 옮김 / 뜨인돌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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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그런다. “엄마 우리 집에 책이 조금 덜 있으면 되게 깔끔해 보일텐데~” 책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책이 정리 좀 해달라고 아우성쳐대는 모양새! 정리! 오늘도 퇴근하면 빡세게 책 정리를 할 것이다. 귀여운 아가 시절에 아이들이 많이 봤던 책들이 올케네, 은영이네 이렇게 가 있다. 일본 유아 팝업북 보던 게 그 어느 곳에도 보내 지지 않았던지 책 꽂이 있어서 보여 주며 큰애에게 생각나냐고 물었더니 어디서 본 듯하다고 말하네! 책 정리를 하다 보면 육아의 역사가 집약적으로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육아뿐만이 아니다. 애들 책 속에 갈 곳을 잃은 내 책들이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으니, 나의 책 편력기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작년 연말까지 내 가방 안으로 침대 맡으로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던 책이다. 작년 정말 힘들었을 때, 작가의 책(작가들 본인의 독서 습관과 성향을 인터뷰한 것을 묶은 책, 정혜윤 옮김)을 읽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등장하는 몇몇 작가가 퀸들런의 이 책을 언급했기 때문이고, 실제로 퀸들런의 인터뷰 글도 있었던 것) 이런 중요한 책이 내 서재 기록엔 빠졌다니요. 이이는 소설가이다. 석박사 학위도 없어요, 윤리학자나 철학자도 아니죠. 특별한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에요. 그녀는 말한다. 내가 아는 것은 실제 삶이 전부라고. 삶과 일. 이 두 가지를 혼돈하지 말라고. 일은 삶의 일부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은 짧다, 곧 막이 내릴 무대이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했었다. (이러면서 그럭저럭 버티는 나날들이었다.) 이 책에서도 나온다. 삶은 리허설이 아니라고, 목적이 아닌 그 여정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순간을 다 써버리란다. 좋은 삶은 뭐겠는가. 시간을 흘려 보내는 삶, 시간 속에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잘 선택하는 삶, 그것이 좋은 삶이라고 이동진도 말했다. 그래서 햇살 좋은 날 앞마당이나 베란다에 나가 책을 읽어야. 그러면 기쁨과 열정을 품고 인생을 살게 될 테니까. 그런 마음으로 살면 사는 것처럼 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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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16: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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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16: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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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17: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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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 일기 1986~1989, 개정판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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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고 직장생활하면서 이 책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인생 멘토 혹은 직장 멘토가 허상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직장에 나가 주어진 일을 하면서 일과 일 사이(직업 없이 정말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깨달음을 얻으면서 지낼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에 나는 내 자신이 진정 좋아하고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분야로 길 안내 해 줄 수 있는 존재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 존재들은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에서 나오는 시구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이기 십상이었고, 이즈음엔 평론가 김현이 그런 분이셨다. 

 

김현은, <한국 문학의 위상>에서 문학을 해서는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고, 출세를 하지도, 큰 돈을 벌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며, 따라서 문학이 모든 형태의 억압에 자유롭게 대항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문학이 억압에 대해, 권력에 대해 자유로우면서도 순수하게 항거할 수 있다는 것을 비평을 통해 보여 주었다. 이런 김현을 우리 또래들은 마음의 큰 스승으로 받들지 않을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 나라 세기의 비평가 김현이 아닌, 다분히 소시민적으로 납득이 될 수 있는 인간적인 김현 선생을 보게끔 하는 책이다.

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고 와서는 미국 놈들이 밉더라고 그의 아내와 서로 토로하는 부분이나, 김혜순의 시 <도솔가>를 읽으면, 서유석의 노래 <타박네>가 생각난다라는 표현이나, 산행 중에 설사를 일으키고 주차장 근처의 화장실에서 황급히 볼일을 보면서, 머리보다 육체가 더더욱 사유를 주체라고 말하는가 하면, 이제는 갈수록 긴 책들이 싫어진다며 짧고 맛있는 그런 책들에 마음을 끌리고, 두껍기만 하고 읽고나도 무엇을 읽었는지 분명하지 않은 책들을 읽다가 맛좋은 짧은 책들을 발견하면 매우 기쁘다는 말이나, 사회학자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로 읽지 않고 자료로 읽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회학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폄하하는 것은 사회학적 인식이 덜 됐다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한다.

그의 저작들을 좋아했던 독자로서, 자뭇 진지하고 엄격하기까지 한 비평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한 인간의 내밀한 독백과 사사로운 기호를 엿보는 즐거움은 아주 크다.그의 일기이자, 이 책 제목인 <행복한 책읽기>에서, 나를 강력하게 매료시킨 문구들은 다음과 같다.

1988년 1월 7일의 일기 - 내 존재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잊음(oubli)이다. 나는 잊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잊음이다. 내 활력은 잊음에서 나온다. 모든 존재가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알집과 같은, 거푸집과 같은 구멍으로서의 잊음.

 <한국 문학의 위상>을 읽고, (남사스러운 기억이긴 하지만) 밥빌어먹는다는 문학의 언저리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사실 지금까지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생각은 이 짓(문학)을 왜 하려 할까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은 주위의 환경에 대한 자신의 일차적이고 피상적인 무력감에서 갖게 된 질문인 거 같다. 사실상 모든 예술, 학문은 인간을 위해서 봉사하고 인간에게만 봉사한다. 문학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제시하는 유일한 분야는 아니지만, 가장 대표적인 분야임에는 분명하다.-한국 문학의 위상 중에서-' 

 

"구멍의 공에 제일 깊게 사유한 최초의 인물은 노자이다. 그는 항아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항아리의 텅빈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빈 곳이 있어야 채울 마음이 생겨난다. 공은 행위, 욕망의 행위의 밑바닥이다.

장자는 그것을 더 논리화해서, 구멍을 뚫으면 혼돈은 죽는다. 라고 말한다. 그것을 뒤집으면, 구멍이 있으면 혼돈은 없다. 그 구멍은 질서 , 사회 생활의 기본틀이다. 구멍이 없는 존재는 완전자--신, 악마, 자연.....뿐이다. 구멍이 있는 것은 모두 인간적이다. 인간은 구멍의 모음이다. 채워도 채워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구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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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
가토 슈이치 지음, 이규원 옮김 / 사월의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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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밤부터 유쾌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책

한편 수많은 고뇌 끝에 다다르는 안심인명보다는 당장 오늘 저녁부터 유쾌해지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사람이라면 비극을 읽는 것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비극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참담한 처지에서 살아가므로 그런 주인공들에 비하면 자신은 얼마나 좋은 환경에 살고 있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주인공에 비하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것은 비극을 읽는 효능 중에 으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사람은 본성은 위기에 처했을 때 드러나게 마련이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는 것인데, 비극을 읽는 것은 그런 이해를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특별한 위기의 순간에만 나타나는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비극이다.

가령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인 영웅들은 신탁으로 운명이 정해진다. “너는 언젠가 네 아버지를 죽일 것이다.”라고 신이 말한다. 그 일이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모른다. 아버지와 떨어져서 자라고 있던 주인공은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휘말린 싸움에서 사람을 죽인 영웅은 나중에 상대방이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아 스스로 두 눈알을 뽑고 장님이 되어 방랑 여행에 나선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희귀한 상황으로 분명해지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죄에 대한 가책감, 돌이킬 수 없는 인생, 그 인생을 조종하는 인간의 초월한 힘이 아닐까? 우리의 죄는 부모 살해는 아닐 것이고, 우리의 인생을 조종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인 받들던 신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령 전쟁이나 중대한 사회 현상들은 사람들의 인생을 지배하는,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힘이다. 또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지 않을 수 없었던 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극단적 상황 속에서 분명해지는 인간의 조건은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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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30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u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내일이 지나면 새해예요.
새해에는 더 좋은 일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즐거운 주말, 그리고 희망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icaru 2018-01-02 16:50   좋아요 1 | URL
친절한 서니데이 님 덕에 버려둔 서재인데도 불빛과 온기가 여전히 있는 듯한 착각을 주네요~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고자 하는 일 순조롭게 이루시길 바랍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