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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평점 :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는 법인가보다. 20대 초반의 내 좋아했던 영화 배우는 제니퍼 제이슨 리였다. 조지아, 돌로레스 클레이본, 허드서커 대리인,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분노의 역류... 등은 내가 한참 영화들을 볼 당시에 이 분 참 집중적으로 영화도 많이 찍었어. 이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이 책에 한편도 등장하지 않는데, 나는 왜 제니퍼 제이슨 리의 얼굴이 자꾸 떠오를까.
상처받은 자의 거친 내면을 보여주는 연기, 다부진 듯 꼭 다문 그러나 슬픈 듯 쳐진 입매.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 중에서 세 편은 메릴스트립이 나오는 영화이고, 그 세편은 모두 보았다. 그것도 좋아서 두 번 이상 봤던 영화다. (디 아워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맘마미아) 봤던 영화에 대한 기록은 역시나 공감도 되고, 인상적이기도 하다.
맘마미아의 경우 되게 아이러니했던게 나는 정희진 님의 글을 한겨레 강연 인터뷰를 엮은 책 중에 하나인 ‘21세기에는 바뀌어야 할 거짓말’에서 처음 봤다. 너무 재밌어서, 강연도 결재해서 들었다. 강연을 더 재미있게 했다. ‘잘나가는 페미니스트’라고 이름 석자 앞에 달아주어도 무색하지 않은 분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2005~7년 경인데~
맘마미아 리뷰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08년도에 맘마미아를 봤는데, 그때 모든 것이 서러웠고, 엄마는 병원에 계시고, 딸과도 문제가 있었고, 심지어 극장 할인 때문에 카드를 신청했으나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발급을 거절당했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저그랬던 영화도 어떤 측면에서는 다시 조명해 볼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 개인적인 호불호가 작가와 다른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이 호불호의 문제인지, 내 감상 소견의 한계인지. ㅎ;;;;
영화 문라이트에 대한 글에서는 많이많이 공감했다. 영화를 보던 당시의 울컥함도... 정말 좋았던 영화 음악도...!
그래서 이 리뷰는 문라이트에 대한 정희진 작가의 글을 발췌하는 것으로.
“ <문라이트>를 “가난한 흑인 게이 소년의 성장담”이라고 요약하는 것은 폭력으로 느껴진다. 백인이 나오면 영화고, 흑인이 나오면 ‘흑인 영화’인가. 이 영화는 장면, 음악, 연기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영화의 전반적 색채는 인디고블루와 검은색 사이에 있다. 흑백? 흰색도 흑색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명도와 채도가 다르다. 방황하는 소년을 돌보고 밥을 챙겨주는 흑인 커뮤니티의 여성, 그들의 식사 장면도 내겐 짙은 푸른색으로 보였다.
하지만 ‘흑인 영화’임을 의식하는 것이 정치적,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해도, 인종 정체성이 배경의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나도 다른 관객들처럼 흑인이 나오는 영화 중에서 농구, 랩, 총, 교도소가 안 나오는 영화는 이 작품이 처음이다. 나는 흑인 영화에 나오는 노래가 싫다. 흑인 영가도 진부하다. 그들의 노래는 언제나 시끄럽거나 성가대 풍이어야 하는가? 그런 점에서 <문라이트>는 미국의 ‘흑인주의’ 감독 스파이크 리 이후 흑인 영화의 분수령일지도 모른다.
현실은 이렇다 미국 흑인 남성 인구는 전체 인구의 6.5%이지만, 그들은 교도소 수감자의 40.2%를 차지하고 있다. 타네하시 코츠의 <세상과 나 사이-흑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미국에서 흑인 남성의 인생은 열일곱 살에 결정된다. 마약을 하거나 교도소에 가거나 총에 맞아 죽거나 학교에서 살아남거나.....
그래서 문라이트는 약자에 대한 동일시 없이는 감상하기 힘들다. ‘흑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모든 장면이 아름다운 이 영화를 온전히 몸에 담을 수 없다. <문라이트>의 아름다움은 자신의 존재(흑인이며 게이)를 존중하고 지켜내면서도 부드럽고 연약한 마음을 간직한 인물들에 있다. 내가 여성으로, 혹은 흑인으로 태어나기를 선택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태어나서‘ 내게 적대적인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
문라이트에서 블루가 어린 주인공에 해 주는 말.
"얘야 명심해. 이 세상에 흑인이 없는 데는 없어. 지구의 첫 인류도 흑인이야. 쿠바에는 흑인이 많아. 여기선 알 수 없지. 나도 너처럼 예전엔 키가 작았어. 달이 뜨면 신발도 안 신고 뛰어다녔어. 한번은 할머니 옆을 뛰다가 소리를 질렀어. 할머니가 나를 세우고 말했어. "뛰어다니며 달빛을 잡으려 하다니, 달빛 받으면 검둥이들은 파랗게 보여. 널 이렇게 부를게. 블루. 때가 되면 스스로 뭐가 될지 정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