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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가는 길 - 일곱 살에 나를 버린 엄마의 땅, 스물일곱에 다시 품에 안다
아샤 미로 지음, 손미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비가 내리는 창밖보다 창가에 매달려 있는 빗방울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올망졸망한 빗방울이 하나 둘 미끄러져 어느새 서로 하나의 빗줄기가 되어 내려갑니다. 그것도 살짝 사선(斜線)으로 말입니다. 왜 그들은 직선으로 내려가지 않는 것일까요?
아마도 빗방울이 힘이 약해서 그럴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 내려 갈 수는 없어 그들은 사선으로 만나야만 했을 것입니다. 혹은 그리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구름에서 하나였다가 빗방울이 되어 수천만 갈래로 흩어져 창가에 내려앉게 되는 운명. 이렇게 그들은 영영 이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선으로 만나야만 했을 것입니다.
아샤 미로의『엄마에게 가는 길』에서 우리는 아릿한 눈물과 벅찬 감동의 사선을 천천히 걸어야 했습니다. 일곱 살에 자신을 버린 엄마의 땅을 스물일곱 살에 다시 품에 안으려는 그녀였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미묘한 감정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끝내 할 수 없으리라는 초초함과 절박함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인도 빈민촌에서 태어난 아샤 미로는 일곱 살에 스페인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수녀원에서 고아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에게 엄마아빠가 생겼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었습니다. 더구나 자상한 양부모님에서 남부럽지 않게 성장하게 된 것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만약 그때 입양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인도의 빈민촌에서 악착같이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스물일곱 살이 된 그녀는 자신이 받은 인생의 선물에 보답하고자 자신의 고향으로 첫 번째 여행을 떠납니다. 인도에서 자원 봉사를 하게 되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엄마, 버릴 거라면 나를 왜 낳으셨어요?”라는 서글픔이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20년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원망의 실마리가 무엇인지 그녀는 알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잃어버린 7년의 조각을 하나하나 알게 됩니다. 그녀 말대로 기억 속에 엉망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조각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잃어버린 과거에 대해 더 이상 얽매이지 말고 앞만 보고 사는 것이 더 값진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녀가 갠지스의 딸이라고 해서 꼭 갠지스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에서 소중한 것은 좋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첫 번째 여행에서 그녀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녀에게 잃어버린 7년을 들려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도 그들이 일인칭 시점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뒤늦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녀의 과거를 제대로 알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그녀에게는 보다 가족이라는 일인칭 시점이 절실했습니다. 그래야 그녀의 진짜 삶이 무엇인지를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인도로 향하는 두 번째 여행은 바로 자신의 친언니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언니를 만난다는 것이 고통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세상에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희망이 있고 삶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언니 우샤와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엇갈린 운명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샤라는 그녀의 이름은 당시에는 우샤였는데 아버지가 이제는 볼 수 없는 딸의 인생에 행복을 빌어주기 위해 언니의 이름이었던 아샤(희망을 간직한 이름)와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아샤의 놀란 감정이 어땠을까요? 이렇듯 그녀의 잃어버린 7년에는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인도에 사는 아샤와 스페인에 사는 또 한 명의 아샤의 극적인 만남이 따뜻한 눈물로 눈망울을 적셨습니다. 그 눈물에는 인도의 참다한 현실과 스페인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미안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비록 두 명의 아샤는 20년 동안 떨어져 살아왔지만 그녀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가난한 탓에 불완전했던 그녀들에게 이것만이 완전한 희망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얼마 후 집안일 때문에 고향에 갔다 왔습니다. 고향에 갈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마을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빈집들은 쓰레기가 되어 버렸으며 논밭은 이름 모를 잡초만 무성했습니다. 얼마나 더 버림받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삶은 갈수록 직선으로 달려가고 우리 또한 그것이 싫다고 하면서도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며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고향없이 각박하게 사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차츰 고향을 잃어버린 것이나 아샤 미로의 잃어버린 7년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서 그녀가 아무리 생각해도 찾지 못했던 해답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어디 출신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는 해답을 몰랐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