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독살사건 1 - 문종에서 소현세자까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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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
이 말은 조선 22대 왕 정조(正朝)가 침전에 달았던 편액(扁額)이었다. 조선 왕조에 있어 어느 누구보다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왕이 바로 정조다. 정조는 이름에 걸맞게 바른 정치를 위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중에서도 탕평책을 빼놓을 수 없다. 자나 깨나 그 편액을 바라볼 정도였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정조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재위 24년 개혁 군주는 끝내 비운의 죽임을 당했다. 죽음의 원인은 종기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두통이 많이 있을 때는 등 쪽에서도 열기가 많이 올라오니 이는 다 가슴의 화기(火氣)” 때문이었다. 생부였던 사도세자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뒤주 속에 갇혀 죽었으니 그 원통함은 화병(火病)의 굴레였다.

그동안 정조의 병사(病死)는 역사적 사실로 여겨졌다. 우리의 제도권 교육은『조선왕조실록』을 자신들만의 믿음으로 강력하게 다룰 뿐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E. H 카의『역사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원인의 등급화라는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원인의 등급화란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어느 일련의 원인들 혹은 또 다른 일련의 원인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가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은 독살이라는 문제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독살의 가능성에 대해 분명하게 이렇다 저렇다 입장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살의 가능성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까닭에 이덕일의『조선 왕 독살 사건』과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TV나 대중매체에서 대단한 흥밋거리로 오해받을 수 있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는 조선 왕들의 급서를 파헤치고 있다. 이미 대중적 역사서의 새로운 지평을 펼친 저자의 탄탄한 글쓰기는 우리들에게 진짜 역사란 무엇인가를 거듭 생각하게 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조선왕조실록』에 가려진 조선 왕들의 죽음의 이면이나 허구를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조선 왕 독살설에 대해 회의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조선 왕은 어떤 존재였을까? 조선 왕조는 5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태조 이성계에서부터 마지막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명의 왕이 다스렸다.『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들의 재위 기간이 조선 8대 예종처럼 적게는 1년 1개월이고 조선 14대 선조처럼 많게는 40년이다. 그런데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게임에 휘말릴 때 왕들은 의문의 죽음 즉, 급서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것이 저자에게 이 책의 결정적인 모티프였다. 저자는 급서의 현장을 꼼꼼하게 두루 살피면서 숨겨진 역사를 구원하고 있다. 그는 조선 왕 3명 중 1명이 독살되었다고 자신의 논리를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의 성찰은 날렵하면서도 진지하다. 이 책을 읽고 독살의 가능성에 대해 비평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그는 독살 프리즘을 제시하면서 이를 똑바로 바라봐야 했다. 더불어 독살이다, 아니다 못지않게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는 역사에 대한 묵직한 반성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독살 프리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문종 독살설이며 다른 하나는 정조 독살설이다. 문종 독살설은 문종-단종-세조로 이어지는 골육상쟁의 왕위 쟁탈전의 희생양이었다. 반면에 영조와 노론에 의해 사도세자의 비극을 겪은 정조는 이에 맞서 남인을 등용하면서 개혁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조의 죽음 이후 곧바로 정경왕후와 노론의 집권 세력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남인을 철저하게 복수했다. 이른바 정조 독살설은 당파 쟁탈전의 희생양이었다.

이러한 조선 왕 독살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권력의 탄생에 주목하고 있는 저자의 시각은 정치적 희생자로 구체화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조선의 국왕이 일본의 천황과 중국의 황제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측면을 보여주면서 객관적으로 지배층의 비정상적인 정치 행위를 드러나게 했다.

저자는 조선 국왕들의 탄생과 몰락을 추적하면서 조선의 국왕은 일본의 천황처럼 허수아비가 아니라 중국의 황제처럼 절대권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 국왕의 절대권이라는 것이 이론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실제에 있어서 조선의 국왕은 신하들의 끊임없는 전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즉 중국의 황제는 신하들에게 무조건적인 숭배와 충성의 대상이었으나 조선의 국왕은 조건부 충성의 대상이었다. 결국 조선 왕조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신하(臣下)였다.

저자의 위와 같은 주장은 독특하고 흥미로운 탓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조선 왕 독살 사건은 근거 없는 일방적인 자기주장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얼마나 그릇된 정보와 억측으로 조선 왕조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역사의 문외한이 나로서도 저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권력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상상이 아닌 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일찍이 러셀이 권력이란 의도한 효과를 만들어 내는 힘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조선 왕 독살은 정의로운 (?) 효과를 내는 데 있어 가장 안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의구심이 갈수록 많아지자 조선 왕조에는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가득해 좀처럼 화끈거리는 얼굴을 삭일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정조 어찰(임금의 편지)가 일부 공개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번 정조 어찰의 당사자는 정조와 노론의 영수 심환지였다. 정조가 개혁군주였다면 심환지는 정조 독살설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서로 라이벌이었던 그들이 파격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던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조선 왕 독살 사건의 화약고였던 정조 독살설이 발등의 불이 되었다. 심환지를 옹호하는 쪽은 심환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좋은 기회라고 몰두했다. 반면에 정조를 옹호하는 이덕일은 그래도 뒤집을 수 없다고 당당히 주장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심환지와의 각별한 관계는 통치를 위한 방편으로 봐야지, 독살설을 뒤집을 증거로 삼는 건 말도 안 된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다시 한 번 밝혔다.

어느 때보다 지금 역사의 뒤안길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조선 왕 독살 사건』은 좋은 길라잡이다. 그동안 우리는 조선 왕들의 치세와 과오 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린 탓에 좋은 왕, 나쁜 왕이라는 잣대로 기억해야 했다. 하지만 제목에 나와 있듯 저자는 조선 왕 독살 사건의 전후를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다. 왕의 자리는 바늘방석이었고 고독했다. 결과적으로 독살이라는 바이러스가 전염성이 강한 만큼 조선 왕들은 아까운 목숨을 잃어버렸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조선 왕들은 슬프다. 조선 왕들이 아무 말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었다고 해서 독살의 진실마저 무덤 속으로 파묻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듯 반성하지 않는 역사에 대해 저자의 혜안은 놀라울 만큼이나 진솔하다. 물론 역사는 만만치 않은 상대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눈높이에 초점을 맞춘 저자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며 조선 왕들과 대화가 가능했다. 그의 독살 프리즘은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래서 인지『전쟁에 반대하다』를 통해 미국의 양심을 호소하면서도 “나는 역사에서 절망보다는 희망을 발견하려 애씁니다.”라고 말했던 하워드 진의 목소리나『조선 왕 독살 사건』을 통해 독살의 부정적인 면을 모두 밝히면서도 “반성 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미래가 없는 역사를 어디에 쓰겠는가?” 라는 이덕일의 목소리가 서로 겹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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