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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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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희한한 책이다. 여행기이면서 사진 한장 없고, 그림 한장 없다. 자세한 지도도 없다. 글자 말고 눈으로 볼 자료라고는 제목 페이지 다음에 아주 썰렁하게 단순한 그림 지도 하나가 전부이다. 그나마도 오스트레일리아라는 그 넓은 나라에 지명 몇 개정도 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책을 읽다가 여기가 어디쯤일까 궁금해서 이 그림 지도 페이지를 몇번을 들추어보았는데 찾는 곳이 나타나 있지 않기 일쑤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읽기에 지루하지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에 지금까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할때 역시 그랬기에 서평단 책이 아니었다면 아마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책이다. 빌 브라이슨이라는 작가를 알고 있고 그의 다른 책을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들이 꽤 있다. 다음에 정리해 올리는 것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내가 이 나라에 대해 참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것.

 

1. 만들어진 나라

오스트레일리아를 기준으로 대륙과 섬을 구분한다는 것을 예전에 지리 관련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면서 오스트레일리아보다 작은 땅은 '섬'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큰 나라이다. 땅덩이가 그렇게 큰데 반해서 그 땅에 살고 있는 인구는 그리 많지 않다. 영국인에 의해 발견되었고 원주민 (이 책에서 '애버리저니'라는 말로 표현되는)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영국의 식민지화 정책에 의해 자국의 죄인들을 강제 이주시켰고, 식물 동물까지 강제로 수입해다가 풀어놓아 토착 동물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 130여종에 달하는 오스트레일리아 포유류가 멸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아남기

푸른 초원에 캥거루가 뛰어다니고, '호주청정우'라는 브랜드명에서 연상되는 것 처럼 낙농업이 발달해있고 양떼가 자라는, 그런 곳으로만 생각하면 오해. 독사, 독거미, 독해파리 등, 야생 곤충, 파충류등의 공습, 그리고 상어떼, 악어떼의 습격으로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곳이다.

 

3. 미국과 영국을 묘하게 매력적으로 섞어놓은 곳 (195쪽)

저자 빌 브라이슨은 미국에서 반평생을, 영국에서 반평생을 살았다는 사람으로서, 오스트레일리아를 영국적인 배경에 미국적인 분위기를 뚜렷이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활기가 있는 곳으로 그려놓았다. 영국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역사적인 배경위에, 미국적인 분위기란 아마 제약이 없고 이방인을 편하게 여기는 분위기를 말하는 것 같다. (영국은 이방인에게 그닥 개방적인 나라는 아니니까).

 

4. 1950년대까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난 사람은 원칙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니라 영국 국민이었다. 콘월이나 스코틀랜드 출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국 국민이었다 (211쪽).

2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오스트레일리아는 더 이상 영국에만 의존했다가는 안되겠다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위기에 처했을 때 영국이 도와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후로 오스트레일리아는 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1970년대에는 백호주의를 버리고 모든 지역으로부터 수만 명에 이르는 이주민의 입국을 허용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문화가 공존하는 국가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시드니 시민 가운데 3분의 1은 다른 나라에서 출생한 사람.

 

5. 오스트레일리아는 지형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생물종의 천국. 오스트레일리아이 한쪽 귀퉁이에 최소한 1만 2천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그중 87%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6.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는 시드니도 아니고 멜버른도 아닌, 캔버라.

 

7. 여행하면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 그 거리가 보통 '수천 km'이다. 수백도 아니고 수천 km. 한 나라로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이 특이할 정도이다.

그래서 아직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 많다.  그것은 장소뿐 아니라 이곳에 서식하는 생물종도 마찬가지여서, 아직도 보고되지 않은 생물종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자기가 생태학을 공부하는 학자라면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지 않고 결정하겠다는 저자의 말이 재미있다.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이곳의 원주민의 역사를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지에서 조차 이들에게는 어떤 관심도 기울여지지 않고 그들도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간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 책을 쓰면서 그들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그들에 대한 책이나 자료가 너무나 없는 것에 대해 저자도 놀랐다면서, 그들의 역사에 관심을 보이고, 그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도 드러내려고 한 저자의 의도가 보인다.

 

빌 브라이슨이 글 잘쓰고 말 잘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바이지만 그러기 위해 그가 얼마나 자료 조사를 열심히 하고, 자기 일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하는지 이 책 구석구석에 잘 드러난다. 사진 한장 없이, 그림 한장 없이, 이렇게 한 나라에 대해 잘 보여주기란, 빌 브라이슨의 특허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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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10 오후 5:47:00 저장된 글입니다.
    from 유리동물원 2012-04-10 17:49 
    hnine님이 쓰신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 리뷰에서 6.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는 시드니도 아니고 멜버른도 아닌, 캔버라.저는 호주 수도보다 뉴질랜드 수도가 좀 더 뜻밖이었어요.오클랜드나 크라이스트 처치인줄... 어렸을때 "부루마블 세계일주"로 세계 여러나라의 수도이름을 깨우쳤는데 부루마블엔 뉴질랜드가 없었지요. :-) 그리고, 이 글 읽고 갑자기 생각났는데, 얼마전 여행프로그램 보다가 완전 기절초풍할 뻔한 이야기. 제가
 
 
다락방 2012-04-09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여행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빌 브라이슨의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그거에요. 사진 한장 없이도 재미있는 여행기를 써냈다는거요. 전 [나를 부르는 숲]으로 그의 책을 처음 만났는데, 숲을 가고 사진이 없는데, 글쎄 그게 재미있더라구요. 그래서 [발칙한 유럽여행기]를 읽었는데, 그 책 역시 재미있는 거에요. 어떻게 여행기가 사진도 없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 책도 역시 그런가보군요. 내내 망설였는데 안되겠어요. 읽어야겠어요.

hnine 2012-04-09 16:59   좋아요 0 | URL
이 사람, 여행하면서 사진 찍을 필요는 없었을테니 짐도 단촐하고 부담없었겠다 생각할뻔 했는데 읽으면서 유심히 보니 공부를 참 많이 하면서 다니더군요. 그 지역 신문사, 박물관, 기념관, 그냥 눈요기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료 조사를 참 많이 하고 있었어요. 눈에 보이는 것을 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공부한 것을 자료로 쓴다는 것을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답니다.
역시 거저 되는 것은 없구나, 이 책 읽으며 얻은 뜻밖의 배움이었지요.
이 책, 재미있어요!

비로그인 2012-04-09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6번에서 공감이 팍~ 왔네요. 글을 읽다보니까 저도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 정말 무지한 사람이었다는걸 알게되네요. 사진 한 장 없는 재미난 여행기라니 구미가 당겨요! 제가 여행기를 써도 참 재밌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응?) ^^;;

hnine 2012-04-09 16:51   좋아요 0 | URL
ㅎㅎ 말없는 수다쟁이님도 저처럼 멜버른이나 시드니를 먼저 떠올리셨나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 같아요.
같은 곳을 가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소감을 말하고 다른 글을 쓴다는 것, 나는 이런 사람이요 라고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 여행기의 매력인것 같아요.
오늘 읽기 시작한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라는 책은 호시노 미치오 라는 사람이 알래스카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과 글 모음집인데 또 다른 느낌이네요. 흠~

파란놀 2012-04-0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는,
빌 브라이슨 같은 사람은 못 느낄 테지만,
'살결 하얀' 사람이 아니면
드러내고 푸대접을 하는
아주 손꼽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예요.

그래서, 서양사람과 동양사람이
이 나라를 여행하고 나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 대목에서 많이 갈립니다...

hnine 2012-04-09 16:54   좋아요 0 | URL
저도 학교 다닐때 오스트레일리아 하면 '백호주의'정책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배운 기억이 나요. 요즘엔 많이 바뀐 모양이더라고요. 요즘 우리 나라에서도 관광으로, 또 어학연수 목적으로 많이들 가던데, 직접 들어볼 기회가 없었어요. 이 책을 읽어보면 빌 브라이슨에게 조차도 이 나라 사람들이 항상 호의적인 것은 아니더라고요.

stella.K 2012-04-1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시드닌 줄 알았는데 캔버라라니.
그만큼 그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가 수도가 아니라는 말이네요.
하긴, 미국은 워싱턴 보다 뉴욕을 더 알아주잖아요.
우리도 외국 사람이 서울 보다 다른 곳을 더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이를테면 대전이나 부산 같은.
왠지 있어 보이잖아요.ㅋㅋ

hnine 2012-04-11 09:29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는 서울에 너무나 많은 것이 다 집중되어 있지요. 솔직히 대전은 잘 모르겠고 (ㅋㅋ) 부산은 서울 못지 않은 국제 도시 맞지요. 서울이라도 서울만의 분위기로 잘 가꿔나가면 좋을텐데, 다른 어느 도시와 다를 것 없는, 빌딩만 꽉꽉 찬 도시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해요.
이 책 서평단 책으로 받았을땐 정말 안 땡긴다 싶었는데 (호주에 대한 관심이 별로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재미있고 페이지가 금방 넘어가더라고요.

파란놀 2012-04-12 0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형이 호주로 몇 차례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또 둘레에 호주로 여행을 오래 다닌 사람들도
으레 이런 '차별' 이야기를 들려줘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에서뿐 아니라,
저는 호주를 영 좋아할 수 없는데,
마거릿 D 로우먼이라는 아줌마가 쓴
<나무 위 나의 인생>이라는 책을 읽으면,
호주 남자가 얼마나 성차별을 많이 하는가를
잘 헤아릴 수 있어요.

사람들한테 잘 드러나지 않는 대목인데,
호주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지구별에서 손꼽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예요.

어쩌면 요새는
한국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더 끔찍히 하는지 모르지만,
아직 호주만큼 대단하지는 않다고 느껴요 @.@

hnine 2012-04-12 16: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우리 나라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지요.

호롱불 2012-04-12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호주에 15년 넘게 살고 있는데 호주는 정말 열린 사회랍니다.

hnine 2012-04-12 22:1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호롱불님.
호주에 15년 넘게 살고 계시다니 이민 가셨나봐요?
언제 한번 그곳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책보다 더 생생할 것 같아요.

담쟁이 2012-04-1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네요. 호주 남부 주도 애들레이드 며칠 있었는디,
캥거루가 사람이 오던말던 신경 안쓰고 벌러덩 누워있던거
인상깊었어요(?) 전혀 뛰어다니지 않더라구요 ㅋㅋ
여튼 그나라 자연 풍광 하나는 정말 끝내주더군여.

hnine 2012-04-13 16:52   좋아요 0 | URL
가슴믕클님, 다녀오셨군요!
몇줄 댓글속에 담으신 느낌이 이 책에서 말하는 분위기와 아주 흡사하네요.
그 꿑내준다는 자연풍광을 사진 한컷, 그림 한컷 없이 이 책에서는 다 말로만 표현되어 있다는거 아닙니까 ^^
캥거루는 왜 호주에만 있을까, 전 그것도 궁금하더라고요.
 
탐구한다는 것 - 남창훈 선생님의 과학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2
남창훈 지음, 강전희 외 그림 / 너머학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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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역시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계속 뭔가를 읽으며 사는 내가, 새삼스럽게 읽은 책에 대해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오늘 서울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좌석 위의 전등까지 켜놓고 다 읽은 이 책에 대해서는 집에 와서 남편과 한동안 얘기 주제에 올렸다.

직업과 상관없이, 탐구하는 자세로 산다 싶은 사람이 있다. 진지하다. 스스로 공부한다. 남이 보기에 좋아보이는 것에 상관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주관이 있다. 남에게 굳이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 스스로 그것을 즐긴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저절로 멋이 풍겨 나온다. 그런게 '멋'이라고 생각한다.

'탐구'란 무엇인가? 탐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유명 연구 기관의 과학자? 유명 대학의 교수? 박사?

탐구는 흥미진진한 보물찾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탐구의 목적은 더더욱 아니다. 이미 자연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보물찾기 하는 마음으로, 이미 나와있는 지식들을 보물찾기의 단서로 삼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인류 역사의 어떤 위대한 과학적 업적도 자연을 거스르거나 자연을 정복한 것들이 아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을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 병을 치료하는 약이나 치료 방법이란 다름아닌 인체가 병균에 대해 싸우는 기작을 보고 흉내내는 것 뿐이다. 인간이 무엇을 창조해낸 것이 아니다. 생명체 복제조차 인간의 기술로 생명체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새로운 생명체가 시작되는 착상 과정을 본떠 만든 과정이다. '탐구하기'는 자연을 '정복'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지구상에서 다른 모든 생명체와 물질들을 다스리고 관리해야 할 자격도,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탐구한다는 것은 인간과 그 주변을 둘러싼 자연의 올바른 관계를 밝히고, 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고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활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고만장한 인간들. 우리에게 필요한 양만큼이 아니라, 우리 입맛에 더 맞는, 더 잘 팔리는 식량을 수요에 맞춰 온갖 기술을 이용해 대규모 축산과 경작을 한다. 광우병, 신종 플루, 조류독감, 구제역 등의 질병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전히 지구상에선 굶어 죽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데.

1997년, 이산화탄소 등 지구 온난화와 관련 깊은 여섯 가지 가스의 배출량을 줄이기로 약속하고 이를 안 지키는 나라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교토 의정서가 체결된다.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미국이 이러한 교토 의정서의 비준을 거부하였다. 이유는?  "환경 문제에 대해 단기적인 조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미국과 전 세계의 경제 성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환경 문제에 있어 경제 성장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해결책이며 장기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신기술 개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한숨이 나온다. 과학 기술로 자연의 자정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믿음은 인간의 오만한 착각일 따름이라고 저자도 말한다. 2003년 인간유전체프로젝트가 (Human genome project)가 당초 계획보다 훨씬 빨리 앞당겨 완결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는 원래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와트슨. 그가 이 기념비 적인 일에서 물러난다. 이 일을 주도한 미국 국립보건원 (NIH)에서 이 프로젝트의 결과로 얻은 인간 유전자 정보를 특허로 출원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미치광이 짓이라고 이야기하며 반대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에 반해 저자는 그가 한동안 한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던 '밀슈타인'의 예를 든다. 밀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읽고 있던 내 눈이 번쩍.

'밀슈타인? 수업 시간에 단일클론항체에 대해 배울 때 나왔던 이름, 그 사람 밀슈타인??'

저자가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 맞았다. 원래 아르헨티나 태생이지만 독재 치하의 정치적 억압을 피해 영국 케임브리지로 와서, 프레데릭 생어라는, 역시 생화학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학자를 만나 그의 권유로 면역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단일클론항체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어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다. 요즘 생명공학 관련 연구실에서 단일클론항체 관련 시약을 사용하지 않는 곳이 있을까?그가 발견한 단일클론항체 제조 방법을 특허로 출원하였다면 그 대가로 1년에 수천억이 넘는 돈을 거머쥘 수 있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특허로 출원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를 여러 차례 이 책의 저자와 동료들에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뜨기 이틀 전까지, 75세의 나이에도 연구실에 나와 실험을 했다는 사람. 업적을 위해서 그렇게 실험에 평생 매진했을까? 논문을 한편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특허를 내기 위해서? 남을 앞지르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요즘  중고등학생, 아니 이미 초등학생때부터 점수 따기를 목적으로 공부한다고 애석해들한다. 웃긴다. 취업 시험 준비를 하는 대학생들은? 논문이나 특허, 업적 평가, 성과금 제도 등에 몰두한 대학 교수들은? 그들도 다를게 없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점수를 따고 성과를 올리기 위해 얻은 지식은 우리에게 아무 감동도 없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또 다른 질문을 불러오지도 않는다. 지식은 내가 더 알고 익혀야할 과제일뿐, 더 이상의 호기심이나 질문을 일으키지 않는, 죽은 지식이 되어 버렸고 고가의 사치품이 되어버렸다. 중세에 종교와 권위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질문이라 못박아 금지시키고, 심지어 살아있는 질문을 제기하고 연구하던 사람들을 사형시키기 조차했던 그 일이, 종교와 권위와 신념의 자리를 점수, 성과, 돈이 대신하여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느냐고 저자는 따끔한 한마디를 던진다.

인간이 중심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인간이 자연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이 인간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생각해보자. 탐구란 자연과 인간의 이런 관계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인간도 자연 속에서, 자연의 영향을 받으며 존재하는 다른 여러 생명체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들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야 하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잠시동안이라도 자신의 몸이 1 마이크로미터, 즉 1mm의 천분의 일 크기로 작아져보고 싶다는 저자. 박테리오 파아지를 가지고 항체에 대한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박테리오 파아지가  박테리아 속으로 들어갈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궁금해서란다.

120여 페이지의, 두껍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공감에 공감을 더하며 읽었다. 이런 과학자들이 많아지기를. 아니, 과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때 가졌을 이런 순수한 탐구의 동기를 다시 돌아보고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책 표지의 그림은 방 천장에 추를 매달아 놓고 그것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는 푸코이다.

 

 

( 59쪽 둘째 줄, '유전자를 모두 풀어 헤쳐 세어보면 모두 30억 개 정도가 되지요.'

     유전자의 수가 아니라 DNA 의 염기의 수가 30억개. 이 중 유전자의 수는 이보다 훨씬 적다. 잘못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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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4-06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못된 내용 집어놓으신 데서 역시 나인님 ^^
저는 전혀 모르는 분야에요.^^
탐구한다는 것도 결국 인간과 자연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군요.

hnine 2012-04-07 09:27   좋아요 0 | URL
전공하지 않은 분들도 저런 내용을 다 아신다면 저는 뭘 먹고 살아요...ㅋㅋ
그냥 눈에 뜨이길래 적어놓은거고요, Cyrus님 이벤트에 틀린 답 썼는데도 책을 보내주시겠다기에 이 책 보내달라고 했지요. 받은 다음날로 다 읽었답니다. 그 정도로 좋았어요.

남창훈 2012-04-27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에 대해 많은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잘못된 부분 지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hnine님 같은 분들의 마음과 노력이 모아지면 더 밝고 행복한 미래가 오리라 확신합니다. 늘 건승하시기를....

hnine 2012-04-27 21:04   좋아요 0 | URL
남창훈 선생님, 들러주셔서 댓글까지 남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책 써주셔서 제가 감사드리고 싶은걸요. 실험실에 있는 사람은 논문과 실험외의 다른 글, 다른 생각과는 담쌓고 지내는것으로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데 이렇게 깊이 있는 글을 써주시는 분들을 뵈오면 과학자이면서 철학자를 대하는 듯하여 존경스럽습니다.
따님에게도 아주 좋은 가르침이 되었을 것 같네요.
 

 

 

지방에 살면서 불편한 점을 굳이 꼽으라면 아무래도 의료 시설과 문화 시설 아닐까한다.

요즘은 책보다 CD사는데 더 관심이 많은 아이.

기억을 되돌려보니 나도 저맘때 노래듣기에 관심이 증폭되었던 것 같다.

"그래, 좀 더 큰 매장에 가보자."

이러면서 지난 토요일 아이 데리고 교보문고 CD매장, 그리고 다른 곳도 갈 예정으로 서울행을 했는데, 결국 교보문고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채 거기서만 시간을 다 보내고 집으로 와야했다.

 

 

 

점심 먹고, 장보고, 아무래도 햇살이 그냥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지 않았던 어제.

집에서 가까운 수목원에 들렀다. 여기 살면서 그동안 여기를 여러차례 갔었건만, 이곳 광장에서 인라인 타며 놀기만 했을뿐 정작 수목원 쪽으론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여기를 왜 수목원이라고 부르는지도 몰랐다. 어제서야 처음 수목원쪽을 돌면서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들의 모습을 담아왔다.

 

 

 

 

 

 

 

 

 

 

 

 

여기 왠 초코칩이 떨어져 있지?? (^^)

 

 

 

 

 

 

 

 

 

 

 

 

 

 

 

 

 

 

 

 

소나무는 이런 꽃을 피우지.

 

 

 

 

지난 주에 아이와 동물원에 갔을때, 어디 한군데 꽃이 핀 데가 있지 않을까 열심히 찾고 다녔는데 결국 못 찾고 왔었다. 그런데 겨우 일주일만에 이렇게 제법 꽃이 핀 것을 보니 하루 봄볕 무섭다는 말이 생각난다.

자연의 힘.

이렇게 며칠 만에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는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정도를 넘어서 섬찟하고 두렵기까지 했다. 인간 세상이 어떻게 지지고 볶고 뒤집어지든, 자연은 순리대로 움직인다. 그건 백년 전에도 그랬고 천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랬고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럴 것이다.

"이건 어떤 기계의 힘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하는 일 말이다."

꽃 구경 그만하고 자전거나 타자고 조르는 아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뿐이었다. 

내가 울건 말건, 웃건 말건, 봄은 오고 여름이 올 것이고 가을, 겨울이 올 것이다.

봄 마저도 이제 내겐 따뜻하고 포근하지 않다. 섬찟하고 경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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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4-02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개나리꽃을 보았어요,
정말 곱더라구요,
봄이 왔구나 싶은데 너무 추워요,
우리딸은 언제쯤 저런 재미를 알까요, 아직도 철없는 아이 같아서,,,

hnine 2012-04-03 00:09   좋아요 0 | URL
일교차가 심하지요 요즘. 서울은 오늘 비도 제법 온 것 같은데, 저는 오늘 거의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어서 비와 왔는지 안왔는지도 모르겠어요.
류는 류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겠지요. 아이가 철 들어가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또 아쉽기도 하고...저는 그렇네요 ^^

icaru 2012-04-02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요. 내가 어떻게 지지고 볶건, 계절은 오고 꽃은 핀다지요. 때가 되면 무섭도록 정확하게 찾아와 주는 계절. ㅎ 올려주신 사진들로 제대로 봄의 기척을 느껴봅니다.

예전에 온다 리쿠의 책에서였나 깨진 거울에도 햇살이 비친다는 말이었던 거 같아요. 깨지기 전과는 다른 풍경을 보겠지만, 그것도 세상이라는 의미였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달리 볼 줄 알고, 깨우치는 게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던가..

그런데 봄이 온 것하고, 깨진 거울에 비치는 햇살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엮으려 들었던 건지... 모르겠네요 ^^;;;

hnine 2012-04-02 19:29   좋아요 0 | URL
이심전심이라고 하나요? 저는 icaru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마음에 팍 하고 와닿는데요. 깨진 거울에도 햇살이 비친다...멋진 말이어요.
인간사에 휘둘리지 않고 이렇게 절대적인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은, 섬찟함을 주기도 하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안심하게도 하고... 그렇지요.

순오기 2012-04-02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멋지고 봄꽃도 예뻐요~~~~~ 그 중에 제일은 다린군이고요!^^
자연은 제 때 해야 할 일을 어기는 법이 없죠~~~~

hnine 2012-04-03 00:12   좋아요 0 | URL
예, 제때 해야할 일을 어기는 법이 없는 대상은 좀 무서워요. 경외의 대상이지요. 사람도 그렇지 않나요...
요즘 저는 봄이 오는 것도 그냥 그대로 보질 못하고 이렇게 심각해지고 마음 무거워지고...그렇네요 ㅠㅠ

파란놀 2012-04-02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코칩은
'동백 씨앗' 아닌가 싶군요.
주워 오셨나요?
그 씨앗을 짜서 '동백 기름'을 얻잖아요.

저희가 지난해에 고흥으로 올 때에
저 씨앗을 많이 주웠는데,
우리가 얻은 시골집 마당에 동백나무가 있어서!
따로 심지는 않았어요 ^^;;;

와... 할미꽃이로군요!

hnine 2012-04-03 00:14   좋아요 0 | URL
앗! 동백씨앗? 저는 확인할 방법이 없네요 안타까워라. 진짜 크기도 색깔고, 꼭 초코칩 같더라고요.
할미꽃은 아주 많이 심어놓았더라고요. 우연히 발견하기는 쉽지 않은 꽃을 어제는 실컷 보고 왔답니다.

비로그인 2012-04-03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이 참 예뻐요. 특히 두 번째 파아란색 꽃은 이름을 알아내서 직접 기르고 싶을 정도네요!
봄봄봄봄 봄이 왔어요~ 내가 젤루 좋아하는 봄이 왔어요~ 노래가 절로 나와요 흐흐
봄 맞아 따뜻한 하루들 맞이하시길 :)

hnine 2012-04-03 06:25   좋아요 0 | URL
저도 이름은 모르겠는데 꽃 크기가 엄지 손톱만 하더군요.
내가 직접 기르지 않아도 자연이 저렇게 알아서 키워주고 있네요.
며칠 이내로 더 많은 꽃들이 다투어 필 것이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있다면 자연이 변해가고 있는 작업의 현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없는 수다쟁이님, 봄 좋아하시는구나~ ^^

마녀고양이 2012-04-03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벌써 저렇게 꽃 핀 곳이 있군요!
너무 추워서.. 전 찾아볼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패랭이꽃, 할미꽃인가요? 아우, 곱다.. 전 꽃이 너무 좋아요, 나인언니~

hnine 2012-04-03 17:31   좋아요 0 | URL
사람에 대한 관심을 자연으로 돌려보는 것도 괜찮겠다...뭐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목련도 오늘 내일 해요. 꽃 좋아하신다니 이제 구경할 일만 남았네요 ^^

카스피 2012-04-03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처에 산책하기 좋은 곳이 있으시네요.넘 부럽습니당^^

hnine 2012-04-03 19:19   좋아요 0 | URL
예, 한밭수목원이라고 하지요 ^^

LAYLA 2012-04-0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애기는 어쩜 저렇게 뒷통수가 귀엽지요? 원래 딸 낳고 싶어하는데 hnine님 애기 보면 저도 아들 낳고 싶어져요.

hnine 2012-04-04 17:30   좋아요 0 | URL
옛어른들 말씀에 뒤통수가 납작한 아이들은 어려서 순한 아기였다고 하지요.
뒤통수가 예쁘다는 것은 그러니까...ㅋㅋ 잠시도 가만히 누워있지 않으려고 했다는 물적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저날, 자기가 사고 싶은 CD는 다 '19세 이상' 섹션에 있다고 불만이 많았답니다. 도대체 어떤 노래들이길래 그런지 저도 궁금하더라니까요.

2012-04-04 0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4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zydevil 2012-04-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숨이 터져나올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돼'
아.. 봄꽃들을 보고 있으려니 이런 노랫말이 절로 떠오르네요.
예쁜 사진, 잘 찍으신 게 아니라, 꽃들이 예쁘다는 생각^^;;;;;;;;;

hnine 2012-04-06 06:24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제가 사진 전문가가 아닌 이상 사진이 실물보다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꽃들이 예쁜게지요. 그런데 예쁜 꽃도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억울할 것 같아요. 봐주는 사람의 호강을 한껏 누려보렵니다.

프레이야 2012-04-0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봄이 섬칫해요. 이렇게나 바람불고 차갑고 황량하다니요. 목이 부었어요.ㅠ
그래도 벚꽃이 벙글어 바람에 꽃잎 날리는데 조금은 기분이 붕 떴어요.
잠시 왔다 가겠지만 그래도요.
아직은 추워요 부들부들 ㅎㅎ
다린이가 훌쩍 자랐네요.^^

hnine 2012-04-07 06:37   좋아요 0 | URL
요즘 감기 몸살 안걸리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 싶은 날씨이지요.
저도 새벽과 밤엔 춥더군요. 저 날도 수목원에 갈 때 겨울옷을 걸치고 갔었어요. 그런 옷 입은 사람은 지금 엄마 밖에 없다고 아이가 옆에서 그러더군요. 이날 꽃 보고 느낀 것도 그렇고, 위에 올린 책을 읽고도 느낀 것이 어떻게 보면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 자연의 힘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요.
목이 부으면 참 고역인데, 고생 많이 안하시고 나으셨으면 좋겠어요. 낭독하시는데도 지장이 있으신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 - 야생의 순례자 시턴이 기록한 북극의 자연과 사람들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지음, 김성훈 옮김 / 씨네21북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원제 The arctic prairies 를 그대로 번역하자면 '북극의 초원지대' 정도 되겠다. 그것이 '아주 오래된 북극'이라는, 순수 문학 에세이로 보여질 수도 있는 제목으로 바뀌어 출판되었다. 시이튼 동물기로 유명한 바로 그 시이튼이, 북극 지방을 여행하며 쓴 기록이라는데 여행기라기보다는 '자연관찰기'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래서 자연, 관찰, 동물, 식물 등에 별로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전혀 재미없을 수도 있는 책이다.

우선 저자인 시이튼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동물학자라는, 잘 알려진 타이틀 외에도 박물학자이며 화가라고 소개되는 것이 이 책을 읽다보면 십분 이해가 된다. 책속에 나와있는 그의 스케치들을 보면 어떤 사물이나 동, 식물을 묘사하는 능력이 보통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자기가 포획한 동물들을 지금 어느 박물관에 가면 볼수 있다는 말을 글 중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캐나다 삼림지대의 자연 속에서 보낸 소년 시절이 자연에 대한 그의 평생 관심사를 결정지었으니, 어린 시절 환경의 영향은 결정적일 때가 많다. 동물기로 많이 알려져있기는 하지만 그의 관심은 모든 자연을 대상으로 한다. 식물, 강, 흙, 숲, 그는 그것들을 보고, 관찰하고, 찾아보기 위해 여정을 시작한다. 그곳이 북극이라 할지라도.

1907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이다. 자비를 들여서 캐나다  아타바스카 강과 허드슨 만 위쪽으로 이어지는 카누 여행을 시작한다. 목적지는 캐나다 북서쪽 야생의 삼림 지대와 북극 지역의 대초원 지대 (하지만 책 속에 나와 있는 지명들을 지도에서 찾아보니 대부분 캐나다의 북부 어디 쯤이다. 북극 지방이란 정확히 어디부터를 일컫는지). 여행 목적은, 아직도 그곳에선 순록을 볼 수 있다는 정보에 따라 순록을 관찰하여 그 개체수가 아직도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 온갖 자연사 관련 자료 수집하는 일. 주위에서 그 외의 다른 비밀스런 목적으로 파견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아니라고 첫 장부터 밝히고 있다. 나부터도 혹시 순록 관련, 모피 관련 회사에서 스폰서를 한 여행이 아니었을까 잠시 생각을 했으니 그 당시 그런 의심을 받았을만 하다.

길동무는 미국인인 프레블 한 사람이고, 여러 명의 인디언들이 포터와 길잡이로 고용되어 등장한다. 5월에 떠나 10월 말에 돌아왔다고 하니 여섯 달에 걸친 탐사 여행인 셈이다. 스라소니, 순록, 버팔로, 토끼, 화이트 피시, 사향소 등의 동물들이 모습을 드러낼때마다 그는 그들이 모여사는 곳이 어디일지, 어디로 이동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찰한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은 기후조건에서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하여 죽은 동물의 배를 갈라보기도 한다. 식물들에 대한 관찰도 뒤지지 않아서 가문비나무에서부터 미나리아재비, 노루발풀, 크랜베리, 아네모네, 이끼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자세하게 스케치해놓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한 풀 한포기에 지나지 않은 것 앞에 앉아 자세히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저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가 다닌 지역이 인디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임에 따라 그들이 사는 모습에도 관심을 가졌던 저자는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 주거 형태 등에 관한 기록과 스케치도 해놓았다.

동물들의 발자국 모습을 스케치 해놓은 것은 그들의 흔적을 추적하기 위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리라. 흑곰, 버팔로, 얼룩다람쥐, 북극토끼, 사향소, 순록 등의 발이나 발자국 모양, 또는 뿔의 모양 등, 어떤 동물의 전체 모습뿐 아니라 신체의 어떤 일부분에 대한 스케치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서 그의 관심이 일반인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쓸데 없이 동물을 사냥하여 죽이는 것을 못하게 했으며, 다시 몇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준다면 하고 싶은 일 역시 자연을 탐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생각만 해도 여전히 가슴뛰는 일이라면서.

자연이 본연의 모습을 잃고 훼손되어 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여 환경보호가로서의 활동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자고 하는 말 뒷면에는 인간이 사용하는 자원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고 있지 않은지. 즉, 귀하니 아껴쓰자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 자연을 이용할 줄만 알지 우리는 왜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지. 이 책을 읽어가며 드는 생각이다.

 

이 책이 왜 에세이이냐, 차라리 과학 서적에 포함시켜야 하지 않나 생각도 들었지만 에세이의 대상을 꼭 어느 한 범주에 국한시키지 않는다면 이 책 역시 에세이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연관찰 에세이. 어쩌면 흔하지 않아서 더 매력적일 수도 있는 에세이 분야일지도.

그런 마음으로 읽는다면 관심 없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루하지 않게, 신선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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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3-30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이 책을 사서 읽으셨군요 @.@

저는, 절판된 <뒷골목 고양이>를 다시 읽는답니다 ^^;;;
새로 나온 이 책은 앞으로 열 해 뒤에도 절판되지 않으면서
사람들한테 '살아가는 즐거움'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잘 느끼도록 돕는 좋은 책동무로 남을 수 있기를 빌어요.

시이튼 님은 '화가'라고도 할 수 있어요

hnine 2012-03-30 08:25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책을 검색해보다가 새삼 놀랐습니다. 시튼이 남긴 책들이 이렇게나 많았군요. 위의 책은 제가 구입한 것은 아니고 서평단 책으로 선정되어 받은 것이랍니다. 동물들이 나오는 책에 별로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엔 좀 지루하게 읽기 시작했다가 흐름을 타니 그대로의 색다른 맛이 있더라고요.
이분의 스케치 솜씨에 또 놀랐습니다. 화려한 색감 없이도 특징을 잡아 참 잘 그렸어요. 관심에서 나오는 관찰, 관찰에서 나오는 세심한 묘사가 빚어낸 결과이겠지요.

stella.K 2012-03-3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별이 다섯 개! 저는 읽다 포기했는뎅...ㅜ
요즘 책 읽기에 치인 건지, 아니면 저랑은 맞지 않는 건지
암튼 덮어놓고 있습니다요.ㅠㅠ

hnine 2012-03-30 12:44   좋아요 0 | URL
stella님, 계속 읽어보세요. 저도 어릴 때도 시튼동물기 조차 읽지 않은 사람이랍니다. 다른 책들을 읽을 때와 같은 재미를 기대하면 안되고, 그냥 저자의 여정을 따라다니는 기분으로 읽다보니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더군요. 재미보다는 저자의 자연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 책의 가치를 높이 사서 별 다섯 개 주었답니다.

하늘바람 2012-03-30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주신 별다섯개 라고 하니 흥미가 확 오네요

그림 잘그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요

hnine 2012-03-30 20:08   좋아요 0 | URL
자연과 내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이렇게 친밀감을 가지고 그 속에 푹 젖어드는 경험을 해볼 기회가 있을까, 저는 그 생각이 들더군요.

2012-03-31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1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4-01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튼 님은 '글을 써서 책을 내기' 앞서까지, 동식물 그림을 그려서 밥벌이를 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밥벌이로 그렸다는 그림이라 하더라도 아주 아름답고 사랑스레 잘 그렸어요. 저는 아직 새로 나온 책은 못 보았지만 '지호' 책을 보면, 시이튼이 책 편집과 사잇그림 하나까지 얼마나 마음을 썼는가 헤아릴 수 있답니다.

시이튼 님 여러 가지 책을 다 읽으신 뒤에는 '달팽이' 출판사에서 나온 시이튼 님 책을 읽으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수 있어요~

hnine 2012-04-01 11:40   좋아요 0 | URL
밥벌이로 그렸다고 해서 아름다움이 덜 하란 법은 없겠지요. 오히려 더 치열하게 열정을 가지고 그렸을지도 모르니까요.
말씀하신대로 이 책은 한줄 한줄 저자의 노력과 정성과 애정이 느껴져서 별 다섯을 줄 수 밖에 없었어요. 요즘에 나오는 책들중에는 '참 쉽게 썼네' 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많은 반면 이런 책은 함부로 읽고 던져놓게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것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정말 생각해볼 일입니다.
 

 

 

 

                          마흔 일곱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나은가?

배부른 돼지는 돼지대로,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대로

그들의 생을 그들의 방식대로 살았을 뿐인데

 

 

어제도 하고 그제도 했으니 오늘도 거르지 말고 하자

생각했다가 얼른 그 생각을 거둔다

매일 무엇을 하자는 규칙을 자꾸 만들지 말자

그 규칙 속에 갖히지 말자

그런 규칙이 삶의 질을 더 높인다고 생각하지 말자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안 해도 죄책감 느끼지 않는

그렇게 살자 차라리

 

 

마흔 일곱

나는 여기에

앞으로 나는 또 어디로

그것이 알고 싶어

그것이 사는 이유

일 수 있다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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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3-25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여덟은 마흔여덟대로
참 아름다운 나이가 되리라 생각해요.
언제나 좋은 나날인걸요.

hnine 2012-03-25 08:19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나이는 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가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언제나 좋은 나날일 수 있으면, 그렇게 시간을 가꿔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세실 2012-03-25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hnine님 마흔 여섯일줄 알았는데요....ㅎ
요즘은 그냥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 흐르둣이 사는 삶^*^

hnine 2012-03-25 18:10   좋아요 0 | URL
마음은 열 여섯이지요~ ㅋㅋ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자, 맞아요. 십년후, 이십년 후가 아니라 바로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짓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을 때이지요 우리 나이쯤 되면요.

stella.K 2012-03-2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새...ㅠ

hnine 2012-03-25 18:11   좋아요 0 | URL
어느 새..라고 하면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생각해보면 특별히 시간이 빨리 흘렀다는 생각이 안들어요. 너무 파도를 많이 타서 그런지..^^

하늘바람 2012-03-2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제 나이를 생각해 보게 되네요 에효
어느새
엄청많다고 생각하던 나이대가 되고
정말 그 나이를 아름답게 보이도록 가꾸어야겠단 생각합니다

hnine 2012-03-25 18:20   좋아요 0 | URL
나보다 젊은 사람과 비교하면 나는 늘 늙었고, 나보다 더 나이든 사람과 비교하면 나는 늘 젊었지요 ^^
숫자상의 나이보다 마음의 나이가 더 중요하다는 상투적인 말에 정말 공감합니다.

프레이야 2012-03-25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훌쩍~~^^

hnine 2012-03-25 18:23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자, 눈물 닦으시고~ ㅋㅋ

달사르 2012-03-25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좋아요 좋아. 그런 자연스러움. 그런 자유스러움.
hnine님 글은 언제라도 단정, 깔끔. 그리고.. 조욘한 일탈. ^^

hnine 2012-03-25 18:25   좋아요 0 | URL
규칙이 필요할 때가 있고 빈틈없는 계획에 의해 움직여야할 때가 분명히 있기는 해요. 그런 시기를 한바탕 지내고 난 느낌이랄까. 이제는 내 마음이 하라는대로, 내 몸이 하라는대로 귀 기울이며 살면, 그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드는거있죠 ^^
제 마음속도 단정, 깔끔하면 좋으련만 복잡, 어지러움, 그 자체랍니다 ㅋㅋ

비로그인 2012-03-27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좋네요. 매일의 의무가 삶의 질을 높인다고 생각하지 말자! 연륜과 여유와 넉넉한 마음이 느껴지는 시네요. 노래도 오랜만에 참 좋고 ^^

hnine 2012-03-27 17:34   좋아요 0 | URL
너무 빡빡하게 살던 습관, 그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양 생각하던 습관을 이제 놓고 싶어서요. 사람의 생각은 이렇게 계속 바뀌어가나봐요. 그러니 5년 후, 10년 후, 제가 있을 자리가 어딜지, 궁금해서라도 살아봐야겠지요 ^^
저 노래, 나온지 꽤 된 노래인데 저는 이제서 좋아하고 있어요.

같은하늘 2012-03-28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저녁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며 흰머리를 고르던 제 모습이 생각나서...
어느새~~~

hnine 2012-03-30 08:17   좋아요 0 | URL
제 친구들 중에도 흰머리가 꽤 많이 눈에 띈다는 친구들이 있더군요.
겉으로 나타나는 것도 그렇지만 나이들면서 생각과 관점이 달라진다는 것이 전 더 신기하더라고요. 바뀌지 않을 것 같던 것들이 바뀌어가는 것을 보면요.

lazydevil 2012-04-05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반가운 노래. 기타 코드 찾아봐야겠네요...

hnine 2012-04-06 06:25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으니 더 가슴 속으로 조용히 파고들더라고요.
기타로 치며 부르면 더 가슴이 찡 할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