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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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좋았던 지난 주말, 바닷가를 찾았다. 작은아이와 한참 모래장난을 하다가 큰아이가 날리던 연을 억지로 넘겨받았다. “엄마도 한번 해보고 싶어.” 근데 어려웠다. 연이 잘 날리려면 바람의 흐름과 세기에 따라 얼레를 조절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차, 하는 사이에 얼레에 감겼던 실이 몽땅 풀어지면서 연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갔다. 그걸 보던 큰아이가 면박을 준다. “어, 어엄~마! 그게 머야. 나보다 못하네!!”

시를 읽은지 무척 오래됐다. 감수성 예민한 학창시절이나 20대 초반엔 시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한 발짝씩 뒷걸음질 쳤나보다.  어느날 문득 정신차리고 보니 시와 엄청나게 멀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내 맘과는 달리 하늘 저 높은 곳까지 날려버린 연처럼. 손으로 쉽게 잡을 수 없는 거리, 저 먼 곳으로 가버린 시를 어떻하지? 견우직녀처럼 까치와 까마귀를 풀어서 오작교라도 놓아야하나?

그럴때 만났다.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주는 표지의 소녀처럼 어색함에 주춤거리는 내 손을 살며시 끌어주는 시들을. 아름답고 다정하며 구수한 48명의 안내자들을.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이 책은 안도현 시인이 그동안 문학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노트에 옮겨 적었던 시 중에서 특별히 아끼고 좋아하는 시들이 실려있다. 총 4부로 나누어 각 부마다 12편의 시를 선별해서 수록했는데 그 하나하나의 시마다 안도현 시인은 짤막한 글을 덧붙여놓았다. 시인을 소개하거나 그 시에서 느껴지는 정경이나 감상, 더 나아가 저자가 그 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풀어놓아서 시를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또 이 책에는 김기찬 사진작가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는데 흑백이어선지 하나같이 어린 시절의 지나온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에서 여동생을 등에 업고 “똥 푸소~” 놀이를 하는 소녀와 친구들, 온갖 그릇과 병, 깡통, 하얗게 타버린 연탄재까지 모아놓고 소꿉놀이를 하는 단발머리를 한 어린 기집애들, 지게 양쪽에 연탄 하나씩 지고 열심히 나르는 소년, “뻥이요~~!!”하고 큰 소리가 날 듯한 사진,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는 할머니, 우루루 담벼락에 올라앉아 만화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이런 사진들이 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쩜 이리도 시의 분위기에 꼭 들어맞는지...이 시를 위해서 사진을 찍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촌스러움, 이런 구닥다리, 이런 케케묵음, 이런 한가로움, 이런 퇴행이 오히려 신선하게 뵈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 50쪽.

 

물론 이 책에 수록된 48편의 시를 모두 이해할 순 없었다. 절반은 읽는 순간 가슴에 찌릿...하게 와닿았지만 나머지 절반 가까이는 안개 속을 헤매는 듯했다. 시 한 편에 자신의 인생을 고스란히 녹여낸 시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면 정말 좋으련만...십년 가까이 시를 읽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차 한 잔을 마시듯 매일 시 한 두 편을 읽어보자...아이들에게 소리내어 읽어주고 시를 눈이 아니라 오감으로 느껴보자고 다짐해본다.

불혹이란 인생의 전환점에 만난 의미가 되어버린 이 책 한 권을 조금씩 야금야금 먹고서 가슴에 꼭 안았다. 그래, 이 느낌이야. 가슴 한 켠의 열기가 조금씩 퍼지는 것 같은...이걸 잊지 말자...이번엔 절대 놓치지 말자고 주문을 걸듯 몇 번이고 되뇌었다.

불혹의 첫 봄에 정말 사랑하고픈 풍경을 만났다. 이런 기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한동안 이 책은 나의 선물목록 1호가 될 듯하다.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  /   강윤후>  - 84쪽.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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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자 2008-04-19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불혹] 저 시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구요^^;;
부록으로 펼쳐질 제 2의 인생도 멋질 거라는 기대감...전 그런게 있어요.

세실 2008-05-11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불혹을 작년에 끝냈지만 아직도 제 마음이네요.
부록....살짝 서글픈 마음 들지만 뭐 생각하기 나름이겠지요.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좀 있어야 겠다'필이 팍 옵니다. ㅎㅎ

몽당연필 2008-05-11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맘에 들었던 시인데 함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이 책 이번 스승의 날에 선물하려고해요. ^^
 
얘가 먼저 그랬어요! 모두가 친구 9
가브리엘라 케셀만 글, 유 아가다 옮김, 펩 몬세르랏 그림 / 고래이야기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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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얘가 먼저 그랬어요!”




어릴때 형제가 많았던 우리집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항상 누구와 누군가가 티격태격 다투고 토라졌다. 그때마다 엄마는 “누가 그랬는데?”하고 물으셨다. 그럼 대답은 당연히...“얘가 그랬어!”




아이는 누구나 마찬가진가보다. 그때의 그 말을 요즘 내 아이에게서 듣는다. 17개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동생이 좀 귀찮게 해도 잘 돌봐주면 좋으련만...늘상 짜증을 낸다. “야,  내 꺼 만지지 말랬지. 부서졌잖아!!” “너, 저리 가!”...그러다가 결국엔 작은애 울음보가 터진다. 무슨 일인가 달려가보면 씩씩거리던 큰애가 말한다, “내가 안 그랬어. 얘가 먼저 그랬어”라고,




고래이야기 출판사의 모두가 친구 시리즈 중 <얘가 먼저 그랬어요!> 이 책은 아이들의 다툼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밤새 잠을 푹 자지 못한 타틴은 아침부터 기분이 나빴다. 잔뜩 화난 얼굴에 팔짱을 꼭 끼고선 길을 걸었다. 걸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봐...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걸어가던 중에 만나는 친구들과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싸운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어른에게 타틴은 화난 목소리로 친구가 먼저 그랬다고 말한다. 길을 가는 자기에게 친구들이 말을 걸거나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친구탓으로 돌려버린다. 그리곤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때 고양이 친구를 만난다. 얘가 또 귀찮게 하려나...싶어 막 짜증을 내려는 타틴에게 고양이 친구는 초콜렛을 내민다. “무슨 소리야? 하나 먹어봐.”하고.




기분 나쁜 타틴이 별 것 아닌 일에 친구와 화를 내고 싸우고 다투는 모??냥 지나칠 일을 장난감이 부서졌거나 배고픈데 좋아하는 간식이 없을 때, 엄마아빠가 놀아주지 않거나 친구한테 기분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아이는 유난히 짜증을 낸다. 장난이나 호의에도 날카롭게 반응한다.




그때 엄마인 내가 아이가 왜 그러는지 얘기하면서 마음을 이해해주고 잘 다독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내가 피곤하거나 힘들면 아이의 얘길 들어주기보다 나도 덩달아 짜증을 냈다. 불끈불끈 치솟는 화를 어찌하지 못해 쩔쩔 맸다. 그런 내 모습이 아이들 눈에 어떻게 비춰졌을지, 내 행동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지...생각하면 덜컥 겁이 난다.




사람들은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누구나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폭력성을 어떻게 관리를 해서 순한 양처럼 만드느냐...하는 거다. 이 책에선 ‘초콜릿’을 내밀었다. 화가 난 아이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캐묻기 전에 일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아이의 마음자리를 이해해주고 감싸주라고.




타틴은 화를 내는 대신 친구가 내민 초콜릿을 집어 먹었어요. 하나 또 하나 먹다 보디 기분이 점점 좋아졌어요. “오물오물 냠냠. 오물오물 냠냠.”우스꽝스런 소리도 재미있었고 초콜릿 범벅이 된 친구 얼굴도 웃겼어요...타틴은 이제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표지에 위로 치켜뜬 짙은 눈썹 때문인지 무척 심술궂어 보이던 타틴의 표정이 끝부분엔 한껏 부드러워졌다. 입가에 초콜릿을 잔뜩 묻히고서 웃고 있다. 초콜릿의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화난 아이에게 백발백중의 효력을 발휘하는 ‘마음의 초콜릿’, 나도 준비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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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삼국지 1 - 한중일 삼국의 바둑 전쟁사 바둑 삼국지 1
김종서 지음, 김선희 그림, 박기홍 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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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에 놓고 싶은 만큼 돌을 올려라. 니가 아무리 많이 올려도 내가 이길 수 있다.”




대학신입생때 바둑을 배우고 싶다는 내게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내가 바둑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내 돌로 상대편 돌을 감싸 들어낸다는 거였다. 바둑판 위에 검은돌을 몇 줄로 주루룩 줄지어 놓곤 ‘이래도 이길 수 있어요?’...하듯 의기양양해했다. 그다음 잠깐 사이,  바둑판 위에 올려놓은 내 돌들이 사라졌다. 무참히 깨졌다. 완전 참패였다. 내게 바둑의 재능이나 소질이 없는 게 분명했다. 그 날 이후로 난 바둑돌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바둑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20년이 훨씬 지난 후에. 모대학교의 평생교육원 강좌에서 만난 언니가 남편과 바둑학원을 한다는 거였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예전 일을 꺼냈더니 내게 만화책 한 꾸러미를 들려줬다. 알고보면 바둑, 참 재밌으니까 읽어보라고. 그게  바로 <고스트 바둑왕>이었다.




정말 재밌었다. 신의 한 수를 찾기 위한 사이의 열정이 히카루에게 바둑의 길을 열어주고 인도하는 과정과 모습은 무척 흥미진진했다. 농구를 모르던 내가 <슬램덩크>란 만화로 농구의 룰을 알게 됐듯 바둑 역시 <고스트 바둑왕>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됐다. 바둑판 위에 백돌과 흑돌이 늘어선 모양이 내겐 꼭 무슨 암호처럼 보이는데...그게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다니. 새로운 발견, 몰랐던 지식을 알게 해준 만화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23권으로 끝난 게 아쉬웠다. 24, 25권으로 계속 이어지길 바랬는데...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고스트 바둑왕>처럼 바둑에 관한 만화가 있었다. 모인터넷 사이트에서 연재중인 만화가 얼마전 책으로 출간됐다. 이름하여 <바둑삼국지>. 이 책은 <고스트 바둑왕>과 기본 구성부터 다르다. 히카루와 사이란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면 <바둑삼국지>는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훈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조치훈과 같은 프로바둑기사들의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진행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1989년 싱가폴에서 열린 제1회 잉창치배 바둑대회의 4국에서 조훈현이 한 집반의 승리를 거두면서 만화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긴장 속에 진행되는 바둑대회로 조훈현은 컨디션 난조로 고생한다. 그리고 마지막 대국을 치르던 중 마치 환상처럼 그의 과거가 떠오른다. 4살이란 어린 나이에 바둑을 알게 된 그가 서울로 상경해 조남철 국수와 첫만남을 갖고 지도바둑을 두게 됐던 일...이런 내용이 1권에 펼쳐진다. 책 뒤편엔 부록으로 바둑의 입문편이 수록되어 있다. 바둑의 용어에서부터 기보해설, 본문에 나왔던 잉창치배 바둑대회 당시의 조훈현 사진 몇 장이 실려있어서 바둑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실존인물과 실화...를 바탕으로 씌여진 만화. 내용은 무척 흥미롭다. 하지만 그림이 아쉽다. <고스트 바둑왕>을 의식해서 성인을 대상으로 해선지 아니면 실존인물이란 사실에 얽메여설까.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오히려 만화에 몰입하는 걸 방해요소가 되버린 듯하다. 인물의 특징 두어개만 부각시켜 그려도 충분히 누군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바둑돌을 쥔 손!! 그 엉성한 모양새가 어색하기까지 느껴졌다. 다음권에선 이런 것들이 나아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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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함께 - 생각하는 그림책 2
제인 시몬스 글.그림, 이상희 옮김 / 청림아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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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이가 친구를 집으로 데려왔다. 처음이었다. 우리 집에 큰아이의 친구가 놀러온 게. 살짝 당황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 적응하는구나, 단짝 친구도 사귀고...하는 생각에 괜시리 설레었다. 그후로도 집에 곧잘 놀러오는 아이의 친구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키가 커서 제일 뒷자리에 앉는 아이가 어떻게 맨 앞자리의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날 닮아 덤벙대는 큰아이에 비해 그 아이는 똑 부러진다...싶을 정도로 야무졌다. 외모만 아니라 성격도 정반대인 두 아이. 그런데도 좋다고 서로 꼭 붙어다니는 게 참, 용하다...싶었다.


꽃이 핀 들판을 신나게 달려가는 개 두 마리. 뭐가 즐거운지 입이 귀밑에 걸렸다. 생각하는 그림책, <둘이 함께>.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쿡, 하고 웃음이 나왔다. “니들, 뭐가 그렇게 좋은데?”하고 물어보고 싶다...대답해줄래?


<둘이 함께> 이 그림책엔 두 마리의 개가 등장한다. 덩치가 크고 털이 북슬북슬한 복슬이와 작고 깡마른 체구의 땅꼬마. 비 내리는 날 처음 만난 둘은 순식간에 친구가 된다. “안녕”하는 인사에 “안녕”하고 답을 하면서. 그리고 둘은 나란히 산책하거나 깔깔대며 함께 논다.

 

“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야” 복슬이가 말했어요. “나도 네가 제일 좋아”  땅꼬마도 말했지요. 모든 게 근사했답니다.



그런데 위기가 닥쳤다. 모든 걸 함께 하기에 그 둘은 너무나 달랐다. 높은 언덕도 폴짝 잘 올라가지만 헤엄을 못 치는 땅꼬마와 헤엄은 잘 치지만 높은 곳을 못 올라가는 복슬이. 또 뭐든지 반대였다. 햇볕을 좋아하는 땅꼬마와 뜨거운 햇볕이 싫다는 복슬이, 너무 빠른 땅꼬마와 너무 느린 복슬이. 그 둘은 결국 서로에게 실망하고 토라진다.


늘 함께 있던 친구가 잠깐 곁에 없으면 금방 쓸쓸해지기 마련이듯 그들도 곧 외로움을 느낀다. 어느 때보다도 서로를 그리워하게 된 복슬이와 땅꼬마, 그들은 다시 화해한다. “다시 친구하고 싶어” “나도야”. 그리고 외친다.


“멋진 날씨야” “진짜 멋지다!!”



알록달록 원색의 그림에 귀엽고 사랑스러운 개가 등장해서 통통 튀듯 가볍게 느껴지는 그림책 <둘이 함께>. 이 책은 너무나 다른 둘이 만나 함께 하는 과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함께’란 말은 둘이 하나가 아니라 더불어, 같이...란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자신과 상대방의 다른 점을 서로 탓하기 전에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즐겁고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물론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 결코 쉽지 않다. 큰아이도 친구와 잘 놀다가 간혹 다투고 토라진다. 그럴땐 꼭 복슬이나 땅꼬마처럼 “나 이제 @@랑 친구 안하기로 했어.”하고 선언한다. “친구니까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 줘야지”하고 애길해도 들은척도 안한다.


나 역시 아이를 둘이나 낳고 나이가 사십이 넘었지만 상대방의 거슬리는 행동엔 이맛살을 찌푸려지고 목소리가 날카로워진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기보다 ‘넌 왜 그런데?’하는 삐딱한 생각이 먼저 비집고 나온다. 하지만 바로 그런 생각이 나 자신을 점점 더 비참하고 끔찍한 지경으로 몰고 간다는 걸 이 그림책을 통해 알게 됐다.


친구와 다툰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듯 싱글벙글한 얼굴로 돌아온다. “@@랑 다시 친구하기로 했어”하고. 나도 아이처럼 좀 더 유연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나도 조금씩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따로따로 하고 놀 때에도...함께 있었어요. 햇살이 쏟아지건 비가 내리건 날마다 근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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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 C.W.쎄람의 사진으로 보는 고고학 역사 이야기
C. W. 세람 지음, 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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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큰아이가 5살쯤이었다. 박물관 강좌를 듣기 위해 박물관을 찾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 자신이 자꾸 도태되는 느낌에 무작정 신청했었다. 일찌감치 강의 장소인 강당에 앉아 있으려니 가슴은 쿵쾅쿵쾅...저혼자 열심히 뜀박질 했다. 강의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내 잠만 자는 거 아닐까, 듣는 사람이 많이 없으면 어떡하지...별의별걸 다 걱정하는 사이 사람들이 모여들고 강의가 시작됐다.







그날 나는 세 번 놀랐다. 하나, 강의 들으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 머리에 하얀 눈이 내린 노인들이었는데 둘, 강의 내용을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셋,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를 능가하는 열정으로 목울대를 울리며 혹은 장난치듯 유머러스하게 두 시간 가량 강의하셨다. 그리고 역사와 고고학에 일자무식, 문외한인 내 가슴에 작지만 뜨거운 불을 붙이셨다.







고고학...이라 하면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쓴 사람이 맨날 무덤이나 땅만 파는 지겹고 고리타분한 학문이라고 여겼던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졌다. 오히려 고고학이란 하나의 유물이나 유적으로 과거의 삶과 생활을 상상력과 끈기로 되살려내는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를 배경으로 한 자줏빛 표지의 책,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을 손에 쥐었을 때 가슴이 한참이나 콩콩거렸다.







두툼한 양장본이 무척 고급스런 느낌을 주는 이 책은 ‘신비의 고대세계를 비추는 빛’, ‘영원불멸의 존재를 위하여’, ‘꿈을 캐는 모험가들’, ‘미지의 세계’.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또 그 각각의 장에 따라 다시 세부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1485년 4월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서 인부들이 석관 하나를 발굴했다.’로 시작한 1장에서  고고학의 탄생과 비롯해 도매상인이던 하인리히 슐리만이 ‘고고학에 평생을 바치기 위해’  파리에 정착해 발굴가 슐리만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2장은 이집트의 스핑크스에서부터 지금까지 발견된 수많은 미라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그 유명한 투탕카멘의 발굴에 얽힌 일화에서 고고학은 발굴자의 운만큼 시간과 경제력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3장에선 설형문자의 해독함에 있어 제기되어 오던 문제 읽는 방향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전혀 차이점이 없어 보이는 그 글들이 오른쪽->왼쪽이냐, 왼쪽->오른쪽이냐에 그렇게 수많은 논란이 거듭되어 왔다니...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4장엔 평소 가장 궁금했던 멕스코의 유물과 유적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중앙아메리카에도 이집트와 유사한 피라미드가 있는데 그것 역시 무덤으로 쓰였을지...추측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다. 하지만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하기엔 다소 내용이나 자료가 부족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본문 중에 ‘중앙아메리카의 밀림에는 우리가 아직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신비가 숨어 있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머지않은 미래에 숨겨진 신비가 벗겨지리라 기대해본다.







처음 책을 휘리릭 넘겨볼땐 본문에 수록된 사진이 중간의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흑백사진이라 다소 실망했다. 흑백사진으로 유물이나 유적의 모습을 실감할 수 있을까...했는데 책을 읽어가면서 흑백사진이라 여겼던 것 중 대부분이 그림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순간 어찌나 놀랐는지...카메라가 발명되지 않은 시점이니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는 일이 당연한데도  그 꼼꼼하고 섬세한 그림들에서 고고학을 연구하는 이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문자가 없는 시대의 인간의 생활과 역사를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학문 고고학. 고고학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인류의 기원과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이면엔 조금만 들춰보면 우리는 고고학의 어두운 측면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유물이나 유적과 관련해 항상 대두되는 문제, 원형에서 한참 벗어난 복원이라든가 도굴, 지배인에 의한 약탈은 책을 읽는 내내 무척 불편했다.







실제로 박물관 강좌에서 어느 교수님께선 이런 말씀도 하셨다. ‘발굴하기 위해 무덤 속에 들어갔더니 도굴꾼이 다녀가셨는지 @@라면봉지에서부터 나무젓가락, ##파이봉지까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고. 또 ‘일제시대때 일본 사학자가 하나의 무덤에서 꺼내간 유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수레로 몇 십번을 반복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유물이 다 어디로 갔겠어요?’하고 반문하셨던 기억이 난다. 안타까움을 넘어 치가 떨리는 순간이었다.







이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아주 놀라운 기사를 접했다. 이집트와 유럽의 고고학자들이 고대이집트의 스핑크스 석상을 비롯한 새로운 유물들을 발굴했는데 그 주인이 다름아닌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텝 3세의 부인이자 이집트 여왕인 티위라는 거였다. 인터넷으로 그 짧막한 기사를 읽으면서 무척 설레었다. 언제쯤이면 이번 발굴에 얽힌 일화가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될까. 그 전에 이 역사적인 고고학의 현장에 내 발을 디딜 수 있을까.







“상상력은 시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테오도르 몸젠. - 333쪽.









<아래사진> 최근 발견된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텝 3세의 부인이자 이집트 여왕인 티위의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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