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 C.W.쎄람의 사진으로 보는 고고학 역사 이야기
C. W. 세람 지음, 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언제였더라....큰아이가 5살쯤이었다. 박물관 강좌를 듣기 위해 박물관을 찾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 자신이 자꾸 도태되는 느낌에 무작정 신청했었다. 일찌감치 강의 장소인 강당에 앉아 있으려니 가슴은 쿵쾅쿵쾅...저혼자 열심히 뜀박질 했다. 강의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내 잠만 자는 거 아닐까, 듣는 사람이 많이 없으면 어떡하지...별의별걸 다 걱정하는 사이 사람들이 모여들고 강의가 시작됐다.







그날 나는 세 번 놀랐다. 하나, 강의 들으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 머리에 하얀 눈이 내린 노인들이었는데 둘, 강의 내용을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셋,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를 능가하는 열정으로 목울대를 울리며 혹은 장난치듯 유머러스하게 두 시간 가량 강의하셨다. 그리고 역사와 고고학에 일자무식, 문외한인 내 가슴에 작지만 뜨거운 불을 붙이셨다.







고고학...이라 하면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쓴 사람이 맨날 무덤이나 땅만 파는 지겹고 고리타분한 학문이라고 여겼던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졌다. 오히려 고고학이란 하나의 유물이나 유적으로 과거의 삶과 생활을 상상력과 끈기로 되살려내는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를 배경으로 한 자줏빛 표지의 책,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을 손에 쥐었을 때 가슴이 한참이나 콩콩거렸다.







두툼한 양장본이 무척 고급스런 느낌을 주는 이 책은 ‘신비의 고대세계를 비추는 빛’, ‘영원불멸의 존재를 위하여’, ‘꿈을 캐는 모험가들’, ‘미지의 세계’.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또 그 각각의 장에 따라 다시 세부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1485년 4월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서 인부들이 석관 하나를 발굴했다.’로 시작한 1장에서  고고학의 탄생과 비롯해 도매상인이던 하인리히 슐리만이 ‘고고학에 평생을 바치기 위해’  파리에 정착해 발굴가 슐리만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2장은 이집트의 스핑크스에서부터 지금까지 발견된 수많은 미라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그 유명한 투탕카멘의 발굴에 얽힌 일화에서 고고학은 발굴자의 운만큼 시간과 경제력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3장에선 설형문자의 해독함에 있어 제기되어 오던 문제 읽는 방향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전혀 차이점이 없어 보이는 그 글들이 오른쪽->왼쪽이냐, 왼쪽->오른쪽이냐에 그렇게 수많은 논란이 거듭되어 왔다니...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4장엔 평소 가장 궁금했던 멕스코의 유물과 유적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중앙아메리카에도 이집트와 유사한 피라미드가 있는데 그것 역시 무덤으로 쓰였을지...추측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다. 하지만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하기엔 다소 내용이나 자료가 부족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본문 중에 ‘중앙아메리카의 밀림에는 우리가 아직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신비가 숨어 있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머지않은 미래에 숨겨진 신비가 벗겨지리라 기대해본다.







처음 책을 휘리릭 넘겨볼땐 본문에 수록된 사진이 중간의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흑백사진이라 다소 실망했다. 흑백사진으로 유물이나 유적의 모습을 실감할 수 있을까...했는데 책을 읽어가면서 흑백사진이라 여겼던 것 중 대부분이 그림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순간 어찌나 놀랐는지...카메라가 발명되지 않은 시점이니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는 일이 당연한데도  그 꼼꼼하고 섬세한 그림들에서 고고학을 연구하는 이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문자가 없는 시대의 인간의 생활과 역사를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학문 고고학. 고고학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인류의 기원과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이면엔 조금만 들춰보면 우리는 고고학의 어두운 측면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유물이나 유적과 관련해 항상 대두되는 문제, 원형에서 한참 벗어난 복원이라든가 도굴, 지배인에 의한 약탈은 책을 읽는 내내 무척 불편했다.







실제로 박물관 강좌에서 어느 교수님께선 이런 말씀도 하셨다. ‘발굴하기 위해 무덤 속에 들어갔더니 도굴꾼이 다녀가셨는지 @@라면봉지에서부터 나무젓가락, ##파이봉지까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고. 또 ‘일제시대때 일본 사학자가 하나의 무덤에서 꺼내간 유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수레로 몇 십번을 반복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유물이 다 어디로 갔겠어요?’하고 반문하셨던 기억이 난다. 안타까움을 넘어 치가 떨리는 순간이었다.







이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아주 놀라운 기사를 접했다. 이집트와 유럽의 고고학자들이 고대이집트의 스핑크스 석상을 비롯한 새로운 유물들을 발굴했는데 그 주인이 다름아닌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텝 3세의 부인이자 이집트 여왕인 티위라는 거였다. 인터넷으로 그 짧막한 기사를 읽으면서 무척 설레었다. 언제쯤이면 이번 발굴에 얽힌 일화가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될까. 그 전에 이 역사적인 고고학의 현장에 내 발을 디딜 수 있을까.







“상상력은 시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테오도르 몸젠. - 333쪽.









<아래사진> 최근 발견된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텝 3세의 부인이자 이집트 여왕인 티위의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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