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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불행하다
카리 호타카이넨 지음, 김인순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요즘 출간되는 책의 표지, 보면 참 재밌다.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다. <그 남자는 불행하다> 역시 마찬가지. 제목은 마치 초등학생이 쓴 듯...학급에서 악필로 소문난 울아들도 이것보단 잘 낫겠다...싶다. 게다가 독자를 약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혀를 쏙 내밀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개...불테리어종인가? 내 눈엔 암만 봐도 비호감이다. 그 뒤로 보이는 남자. 차림새가 독특하다. 토끼 슬리퍼에 앞치마를 두른 폼은 영락없는 아줌마인데...망원경으로 뭔가 열심히 관찰하고 있다. 시선을 따라가보니 하늘에 두둥실 뜬 구름 위에 한 채의 집이 있다. 이쯤되면 오호라...알겠다. 고로 이 남자는 구름 위에 뜬 집을 잡으려다 불행해진 거로구먼? 대충 짐작이 간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이 남자가 왜 이토록 집에 집착하는지.
주인공인 마티 비르타넨은 한순간에 가족, 아내와 딸을 잃어버린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아이스하키 경기가 한참 진행중일 때 아내가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3일후 이혼소송 청구와 동시에 6개월간의 별거를 선언하는 편지가 날아든다. 세상에, 이럴 순 없다. 자고로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했거늘, 평생 단 한 번의 주먹질이 이혼사유가 되다니...
억울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조깅을 하던 마티는 단독주택이 모여있는 어느 동네에서 고풍스런 통나무집을 발견한다. 순간 그의 내부에서 뭔가 일어난다. ‘저런 집을 갖고 싶다’ 교외에 멋진 단독주택을 갖는 것이 아내의 소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그녀는 집을 원한다. 나는 그녀를 원한다. 그렇다면 집의 도움을 받아서 내 뜻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 20쪽.
그때부터 마티는 눈물겨운 내 집 마련 투쟁을 시작된다. 집안의 모든 살림살이를 팔고 낮에 직장, 저녁엔 부업으로 마사지를 했는데도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자 다른 방도를 찾아나선다. 아내를 부엌에서 해방시킨 가정전선의 한 남자가 단독주택 한 채 마련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말이 되는가. 무조건 돈을 모으는 것 외에 지름길이 있을 거다...라고 여기고 단독주택 관련 잡지와 책을 보며 연구에 몰입하는데...문제는 우리의 주인공인 마티가 가방끈이 짧은 게 흠이긴 하지만 한번 한다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미의 소유자라는 거다. 그로 인해 모든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봇물 터지듯 벌어진다.
폭력을 행사하다 버림받은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배우자의 삶을 생지옥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여기 이 남자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흩뜨려놓는다. - 218쪽.
무슨 수로 집을 산단 말이야? 가진 거라곤 꼴랑 허름한 아파트 하나밖에 없는 주제에. 한편으로는 내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도 풀을 캐낼 사람이다. - 258쪽.
핀란드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카리 호타카이넨, 이 책 <남자는 불행하다>로 핀란디아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고 북유럽 문학상 까지 수상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이 처음이기에 책날개의 소개대로 독창적인지 알 순 없지만 확실히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주인공은 분명히 마티 비르타넨이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일을 벌이고 사건을 터트리고 다니니까. 그런데 이 책에선 여러 명의 ‘나’가 등장한다. 즉, 주인공인 마티 이외에 그의 아내 헬레나, 윗층 사람들, 부동산 중개인, 건넛마을 사람들, 노병, 경찰이 등장하여 그들의 시점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그래서 사건의 흐름이 보다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 융통성 없이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치는 성질의 남자가 오로지 가족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나의 집 쟁탈전...그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이 씁쓸하다. 소시민이 내집마련을 위해 들이는 노력과 어떻게든 비싼 값에 집을 판매하려는 업자들간의 밀고 당기는 한판...멀리 핀란드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전혀 남 일 같지가 않다.
큰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집으로 데려오는 친구들 중에 간혹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야....진짜 집 작다”하고 한마디 내뱉는 녀석들이 있다. 또 친구집에 다녀온 아들이 “엄마, 엄마!! @@네 집, 엄청 크더라. 방이(손가락을 쫙 펴 보이며) 다섯 개나 되더라!!”한다. 그럴때...솔직히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 근데 그 친구집도 우리처럼 책이 많아?”하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마음 한켠이 묵직...해지는 걸 느낀다. 식구도 불었으니 지금보다 좀 큰 집으로 이사가는 것...올해도 여전히 작년과 같은 꿈을 꾼다.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그런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