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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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잠투정하는 아이를 겨우 재워놓고 책을 들었다. 원색의 화려한 표지로 포장한 다른 책과 달리 하얀색 표지가 유난히 눈길을 끌던 책이었다. 오른쪽 위 귀퉁이에 작게 씌여진 제목 <Q&A>. 여러 상징적인 문양과 인물, 그림들이 어우러져 영어 알파벳 Q와 A를 이루고 있었다. 감각적이면서 깔끔하다.




더구나 소설의 배경이 바로 인도, 인디아다. 여행자유화로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서 인도의 풍습이나 유물, 유적을 다룬 책은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그에 비해 인도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은 보기 드물다. 게다가 순식간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노란색 띠지의 문장!  “나는 체포되었다.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 ....믿기지 않았다. 살인이나 폭행, 강간 같은 강력범죄가 아니라 TV퀴즈쇼에서 우승했다고 사람을 체포하는 나라가 요즘 세상에 어디 있겠어. 지금이 19세기나 20세기도 아닌데 말이야...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파리도서전 독자상과 남아프리카 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걸 보면 저자가 책 속에서 풀어놓은 얘기가 전혀 황당한 내용이 아니라는 건 분명한데....그래도, 왠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대체 왜지?




이 책은 주인공이 경찰에 의해 체포되면서 시작한다. 자신이 왜 체포됐는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해하는 주인공에게 취조관은 “람 모하마드 토머스...뭔 놈의 이름이 이래? 온갖 종교를 뒤섞어놓았군.”하며 대뜸 짜증부터 낸다. 그리고 그가 체포된 이유가 뭔지 알려준다. 토머스가 TV퀴즈쇼에 출연해서 우승할 수 있었던 건 속임수를 썼기 때문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빈민가에 살면서 교육이라곤 받아본 적 없는 웨이터가 박사도 풀기 어려운 문제의 정답을 모두 알아맞힐 수 없다는 거다.




어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퀴즈쇼 제작진과 취조관은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토머스를 고문하기 시작한다. 굶주린 몸에 가해진 가혹한 고문으로 토머스가 서서히 의식을 잃어갈 즈음, 한 여인이 나타난다. 자신을 토머스의 변호사 스미타라고 소개한 그녀는 그가 퀴즈쇼의 모든 답을 어떻게 맞혔는지 알아내기 위해 토마스의 삶을 하나하나 추적해나간다.




이후의 소설은 토머스의 과거가 회상처럼 떠오르고 곧이어 그와 관련된 퀴즈쇼 문제가 연결되면서 진행된다. 예를들어 토머스와 친구 살림은 배우 아르만 알리가 출연한 영화를 자주 보러 갔는데 살림은 아르만을 좋아한 나머지 그의 대사를 외우다시피 했다. 그때 출제된 문제는 아르만 알리와 프리야 카푸르가 처음으로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는 무엇인가...였다. 토머스는 당연히 이 문제의 정답을 맞혔고 1000루피를 벌었다.




이렇게 퀴즈쇼에 출제된 열 세 개의 문제는 토마스의 삶과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 두 개가 아니라 모든 문제가....우연도 이 정도면 너무 심한 거 아닌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이라고, 우연이 연이어 계속 된다면 그건 필연이고 운명이란 생각이 든다.




각각의 문제마다 보여지는 토마스의 삶이 때로 놀랍고 엽기적인 일,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계속 되는데도 지겹거나 뻔한 스토리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자신을 옥죄는 가난에서 벗어날 가망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낙천적이고 정직한 그의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응원하고 싶어졌다. 저자 비카스 스와루프의 이야기 풀어내는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이 데뷔작이니...굉장하다.




열 여덟살의 청년 토마스의 삶에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인도의 숨겨진 면을 들여다본 듯하다. 타지마할 같은 유적지 몇 개와 뿌리깊은 신분제도 외에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극심한 빈부격차,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이들의 비참한 생활....등 이 책으로 인해 인도를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형부근무 때문에 온가족이 인도에 살고 있는 언니 소식이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얘기 끝에 물었다. “근데 언니, 10억 루피가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나 되지?” “...왜?” “그냥 궁금해서...읽고 있는 책에 그런 대목이 나와서...” 언니가 알려준 방법으로 환율을 조회해봤다. 그랬더니 인도 10억 루피는 약 60,635,000원이었다. 꽤 큰 돈이다.




친정엄마는 나만 보면 늘 ‘책 자꾸 읽어서 뭐하냐. 퀴즈 프로그램 나가서 상금 좀 받으면 얼마나 좋냐’...고 핀잔을 주신다. 이담에 또 재촉하면 그땐 퀴즈쇼에서 우승한 것 때문에 체포된 토마스의 얘길 해드려야겠다. 그럼 단념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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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3-03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을 것 같아요. 어쩌면 인도라는 나라는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가장 피해를 입은 나라일 것 같아요. 인도하면 성자를 연상시켜버리면서 그속에 있는 온갖 사회문제와 인권문제를 덮어버리는.... 인도인이 그려낸 인도 사회의 모습 궁금하네요.

몽당연필 2008-03-03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한번 읽어보실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법 두툼한 책이지만 금새 읽혀진답니다. ^^

2009-02-18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9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금요일 밤의 뜨개질 클럽
케이트 제이콥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대산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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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말이나 휴일, 시댁 어른들 찾아뵙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대교를 거쳐 가거나 그냥 일반도로로 가는 길,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두 번째, 일반도로로 갈 때면 항상 내 시선은 창밖에 고정된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혹시나 그냥 지나칠까봐 두리번거리며 살피게 되는 곳...주택가의 작은 재래시장 입구에서 <@@손뜨개방>이란 간판을 보면 그제서야 안심하고 제자리에 앉곤 한다.




결혼전, 직장일하는 틈틈이 하려고 무작정 뜨개질을 시작했다. 어렸을때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서 배웠으니 만약을 대비한 손뜨개책 한 권만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무작정 실과 대바늘을 구입한 다음 스웨터를 떠나갔다. 처음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중간쯤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코를 줄이거나 늘이고 코막음을 하는 부분이 책의 설명대로 되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다가 집 근처의 손뜨개방을 찾았다.




2평 남짓한 작은 공간 <@@손뜨개방>. 딸각딸각 대바늘 스치는 소리와 작게 소근대는 사람들의 음성이 벽면을 가득 메운 갖가지 빛깔의 실과 어울려 편안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표지를 보고 뜨개질 교본이나 도안에 관한 책이라 여겼던 <금요일밤의 뜨개질 클럽>. 이 책에는 뜨개질의 기법이나 방법이 아닌 사람들의 얘기로 가득하다. 저마다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슬며시 등장한 대바늘과 갖가지 털실이 서로서로 연결해주고 있다. 아름답고 독특한 패턴을 곁들여서.




뉴욕의 어퍼웨스트사이드 77번가 <워커 모녀 수예점>. 이 책의 주인공이자 워커수예점의 주인인 조지아는 매력적인 흑인 남성 제임스와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흑인과 백인의 결합이 오래가지 못할거라 여긴 제임스는 임신한 조지아 곁을 떠난다. 홀로 남은 그녀는 제임스의 배신으로 인해 상처받고 방황한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애니타를 통해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된다. 주변이 온통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뉴욕에서 싱글맘, 그것도 흑백혼혈의 딸 다코타를 키운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열심히 노력한 끝에 워커모녀 수예점은 잡지에 소개되는 성공가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늘 조지아의 수예점을 찾는 사람들이 서로 뜨개질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시작된 게 바로 ‘금요일밤의 뜨개질 클럽’이었다. 조지아의 정신적 지주이자 그녀를 엄마처럼 보살펴주는 애니타는 워커 수예점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조지아의 옛직장 동료 K.C는 뜨개질보다 모임 멤버들과 수다 떠는 걸 더 좋아한다. 결혼보다 아기를 간절히 원해 미혼모의 길을 걷는 40대의 프리랜서 TV PD 루시, 요즘 같은 세상에 여인들이 왜 뜨개질을 하는지 그 이유와 삶을 논문으로 쓰려고 수예점을 찾은 다윈과 수예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틈틈이 자신의 뛰어난 패션 감각을 살려나가는 페리...이들이 모두 직업과 나이, 성격이 다르듯 뜨개질을 시작한 동기 역시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그들에겐 매주 금요일밤의 모임이 고된 일상 끝에 맛보는 편안함이자 여유이며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는 큰 공통점이 있었다.

 

또 조지아의 딸 다코타가 직접 만들어 내놓는 쿠키와 케익, 머핀을 먹으면서 서로 비밀을 털어놓고 아픈 상처를 위로 받는다. 외롭고 상처받은 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지탱해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지아는 위안을 얻고 서서히 안정을 느낀다. 하지만 어느날 학창시절 조지아와의 약속을 깨트리고 배신한 캣과 다코타의 아버지인 제임스가 워커모녀 수예점을 찾으면서 조지아와 다코타는 다시 혼란을 겪게 되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조지아, 다코타를 비롯해 수예점을 찾는 이들의 다양한 삶과 서로 얽힌 관계들을 뜨개질의 과정(재료 모으기 - 첫 코 뜨기 - 게이지 내기 - 겉뜨기와 안뜨기 - 복잡한 스티치 마스터하기 - 털실 풀어내기 - 다시 시작하기 - 코막음하기 - 함께 이어붙이기 - 자신이 만든 옷 입기)에 비유해서 풀어놓고 있는데 그게 절묘하게도 꼭 맞아 떨어진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양한 여러 종류의 털실과 문양, 패턴 중에서 한가지를 골라 10명이 똑같이 스웨터를 만들어도 완성된 옷은 저마다 다르듯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뜨개질을 하다보면 자연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색깔이 서로 어울릴까? 여기엔 도안을 몇 번 넣는 게 좋을까...패턴이 너무 복잡하거나 단순하진 않나?...이렇게 끊임없이 대어보고 가늠하면서 대바늘로 털실을 한 코 한 코 떠나가다보면 한껏 들떴던 마음은 어느새 가라앉고 불안한 감정은 편안해진다.




작지만 포근한 분위기가 맘에 들어 한동안 부지런히 다녔던 손뜨개방. 그 곳에서 나는 스웨터 한 벌, 가디건 두 벌, 머플러 하나, 선물용 아기 모자 하나를 완성했다. 하지만 연노랑 스웨터 한 벌은 10년이 지나도록 채 앞면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 데리고 다시 가볼까. 친절하고 다정했던 주인 할머니는 지금도 그 곳에 계실까. 꼭 계셨으면 좋겠다.




사족> 책 속에 조지아와 다코타가 즐겨하는 게임이 있다. “....하면 좋겠다” “언젠가는...” “내가 어른이 되면...” 같은 문장을 기분에 따라 문장을 변형시켜서 서로 주고 받는 형식인데 나도 언제든 큰아이와 함께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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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1 - 엘파바와 글린다 위키드 6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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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승달이 뜬 어두운 밤, 검은 옷, 검은색 뾰족 모자, 검은 고양이, 하늘을 나는 빗자루. 마녀하면 생각나는 것들이다. 인형에 바늘을 찔러 누군가를 죽게 하거나 저주의 주문을 외워 사람을 두꺼비 같은 동물로 바꿔버리는 마녀는 지혜롭고 용감한 영웅이 꼭 물리쳐야할 악당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마녀의 그런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린 한 소녀가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키키. 13살이 된 키키가 마녀 수행을 위해 고향을 떠나 도착한  바닷가 마을에서 ‘마녀배달부’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은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를 큰아이와 나는 무척 좋아했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키키와 사람의 말을 하는 검은 고양이 지지가 나오는 <마녀 키키>를 당시 6살이었던 큰아이가 어찌나 좋아하는지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다. 밝고 경쾌한 내용에 혹시 후속편이 제작되진 않을까...10년쯤 훌쩍 넘어 성숙한 여인이 된 마녀 키키의 활약을 또 볼 수 있진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다.




그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얼마전 내 앞에 한 명의 마녀가 나타났다. <위키드>의 초록색 표지 속엔 초록빛 피부의 마녀가 미소 짓고 있다. 한쪽 입꼬리만 씨익 올리고 웃는 모습에서 당돌하고 자존심 강한 여인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온다. 초록빛 피부가 오히려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보인다.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엎은 초록색 마녀의 감동적인 이야기. 뉴욕, 런던, 도쿄를 강타한 뮤지컬 <위키드>의 원작이란 문구의 띠지를 두른 이 책은 마녀가 노란 벽돌길을 걸어가는 도로시 일행을 근처 나무에 숨어 살펴보면서 시작한다. 도로시의 신발에 유난스레 집착하는 마녀. 단순히 동생이 신던 신발이기 때문일까?




목사인 아버지 프렉스와 부유하고 혈통있는 집안에서 자란 어머니 멜레나 사이에서 네스트 하딩스의 트롭 3대손이 태어난다. 하지만 고대하던 아기는 피부가 초록색인데다 날카로운 상어이빨을 한 여자아이였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서 사랑이 아닌 ‘악’이 깃들어 저주받은 불길한 존재로 여겨진 아기. 프렉스는 딸에게 엘파바란 이름을 지어주지만 여느 아버지처럼 따스하게 품어주지는 않는다. 더구나 둘째를 임신한 멜레나는 야클이란 점쟁이 노인에게서 의문투성이의 이상한 예언을 듣는다.




십대후반 이국적인 외모의 소녀로 성장한 엘파바는 시즈 대학에 입학하고 금발의 미녀 갈린다와 룸메이트가 되어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다. 어린 시절의 영향인지 갈린다를 비롯한 동생 네사로즈, 보크, 티벳, 피예로, 애버릭 같은 친구를 사귀기보다 인간처럼 지적인 능력과 영혼을 가진 동물들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딜라몬드 박사와 함께 동물 이동 금지령를 저지하는 연구를 하지만 어느날 박사가 갑작스런 의문사를 당하면서 엘파바는 동물들의 생존과 권리보호를 위한 투쟁 단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는데...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끼얹은 물에 의해 죽음을 맞는 서쪽 마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위키드>. 저자는 이 책에서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서쪽 마녀가 왜 사악한 마녀로 표현되는지, 정말로 죽어 마땅한 인물인지 얘기해보고자 했다고 한다. 서양고전 명작동화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오즈의 마법사>의 숨겨진 이면을 저자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닮았지만 전혀 다른 새로운 소설로 재탄생한 셈이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만큼 그다지 성공적인 작품은 아닌 듯하다. 초록색 피부를 지닌 앨파바의 출생부터 성장하고 서쪽 마녀로 죽는 순간까지의 삶의 여정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면서 소설의 구성이 허술하고 느슨해지고 말았다.




독재자인 마법사에 대항해 차별과 박해받는 동물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더불어 오즈를 구하고자 했던 서슴없이 마녀이길 자처했던 앨파바. 그녀의 삶을 지루하게 늘어놓기보다 영웅적인 눈부신 활약에 초점을 맞췄어야 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앨파바가 극장 앞에서 마담 모리블을 죽이려고 할 때나 민병대에 의해 사리마 가족이 잡혀가 몰살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 이제야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을 맛보겠구나...했다. 그런데 이렇게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사건이 흥미진진해지려고 할 때 계속 진행되지 않고 도중에 멈춰버리곤 했다. 활활 잘 타오르는 모닥불에 찬 물을 끼얹은 격이다.




사실 초록색 피부의 여전사!! 얼마나 매력적인가. 앨파바가 <툼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보다 지적이고 매혹적인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그녀가 하늘을 나는 빗자루를 타고 오즈의 곳곳을 누비면서 스릴 넘치는 모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어야 한다. 하지만 협소한 공간의 실내에서 느슨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판타지 소설의 특징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이 소설이 서쪽 마녀의 이야기니 시작부터 이미 죽음이 예고되어 있었다. 다만 그녀를 소설 속에서 어떤 인물로 표현했을지 궁금했다. 악당이 분명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인물. 그런 서쪽 마녀를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소설 속에서 만난 서쪽 마녀는 악당이라 할 수도 없었고 초록색 피부 외엔 그다지 특징이 없었다. 역시...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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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웃음 어디 갔지? - 생각하는 그림책 1
캐서린 레이너 지음, 김서정 옮김 / 청림아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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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 목요일. 날씨 : 해. 제목 :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번다.>

 

오늘은 속담책을 보았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번다. 근대 이상하다. 완전 내가 곰이고 엄마가 주인이다. 기분나쁘다. 비교하자면 엄마는 기와집이고 나는 초가집이다. 너무나 기분나빠서 화가 나서 화산폭팔할 것 같다. 근대 오늘 공부는 너무 많아 힘들어죽겠다. 너무나 힘들다. 끝.

큰아이가 지난 겨울방학때 쓴 일기다. 늘 한 페이지의 절반 정도만 쓰던 아이가 왠일로 한 페이지를 꽉꽉 채웠다. 도대체 뭘 썼길래? 궁금해서 봤더니 이런 내용일 줄이야...매일 조금씩 하기로 약속했던 문제집이 너무 많이 밀려서 야단을 쳤는데 그 사정을 모르시는 담임선생님께서 이걸 보시면 날 어떻게 생각하실지, 안 봐도 비디오다. 엄마의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고쳐달라고 부탁해볼까. 아니, 불만이 가득 찬 아이에겐 소용없는 일이겠지...싶어 단념했다. 문제의 일기 때문에 엄마가 요렇게 가슴앓이를  하는 줄도 모르고 개학날 아침 아이는 일기장이 든 가방을 자랑스레 등에 메고 현관을 나섰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외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큰아이의 불만은 그 날 하루만의 얘기가 아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야단보다 잔소리를 싫어한다더니, 정말인가보다. 무슨 얘길해도 툴툴대고 짜증을 낸다. 예전에 비해 잘 웃지도 않는다. 밝게 웃는 얼굴이 무척이나 예쁜 아이였는데...왜일까? 뒤늦게 태어난 동생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내 웃음 어디 갔지?> 이 책에는 웃음을 잃어버려서 슬픈 호랑이 아우구스투스가 웃음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덤불 밑에 들어가고 높은 산 꼭대기에도 올라가고 깊은 바다와 사막에도 가보지만 웃음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 갑자기 만난 비를 피하느라 물웅덩이에서 철퍽 거리며 한참 놀고나서야 깨닫게 된다. 웃음이 바로 자기 코 밑에 있다는 걸. 행복할 때면 언제나 웃음은 거기 있다는 걸. 

무척이나 짧고 간단한 내용이다. 반면에 그 속에 든 뜻은 깊고도 심오하다.


 

주인공인 호랑이 이름부터 범상치않다. 바로 ‘아우구스투스’.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이자 라틴문학의 황금시대를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 아우쿠스투스. 만약 황제인 그가 웃음을 잃어버려 슬픔에 빠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온 백성이 그의 웃음을 찾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지 않았을까. ‘황제의 웃음을 찾아주는 이에겐 금은보화, 혹은 공주와 결혼시키겠다’고. 하지만 호랑이 아우구스투스는 달랐다. 그저 쭈우욱 기지개를 켠 뒤 웃음을 찾아 나선다. 없거나 잃은 건 다시 찾으면 된다는 간단하고 명쾌한 해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림 역시 시원시원하다. 얼핏 보면 붓 가는 대로 대충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흑갈색으로 서슴없이 죽죽 그려진 호랑이 줄무늬는 다른 사물이나 배경에 비해 호랑이를 더 돋보이게 했다. 더불어  독자의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오로지 호랑이의 동작이나 표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건 바로 호랑이의 눈이다. 밀림에서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맹수 호랑이의 눈을 점 하나 콕, 찍어놓는 말다니! 정말 대담하다. 그리고 신기하다. 하나의 점에 불과한 호랑이의 눈이  어느 순간 씽긋 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걸 아이는 처음엔 이상하다, 줄무늬 때문에 어떤 게 눈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몇 번 반복해서 보던 어느날 드디어 아이는 “호랑이 표정, 진~짜  웃겨”하고 쿡쿡 웃음을 뱉었다. 오호라....드디어 웃는구나!!



 
이때를 놓칠새라 아이에게 물었다. “호랑이가 왜 웃는 거야?”  “웅덩이에서 물장구 치는 게 재밌어서”  “호랑이는 행복이 뭐래?”  “재밌는 거”   “넌 언제 행복한데?”  “멋진 장난감 살 때랑 맛있는 거 먹을때”...순간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을 살포시 누르고 “엄마랑 아빠랑 동생보다 더?”  “음...” 이럴수가!! 고민할 게 뭐 있냐? ㅠㅠ “만약 가족이 함께 있는 거랑 장난감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어쩔거야??”  “그럼, 가족!!”   "그래, 행복은 머~얼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있는 거...그게 바로 행복이네!!"  앗싸!! ^^

 

호랑이 아우구스투스가 웃음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행복이란 결코 잡을 수 없는 무지개가 아니라 그리 멀지 않은 모든 곳에 있다는 진실을.

 

참, 표지에서부터 줄곧 옆모습만 보이던 호랑이가 웅덩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난 마지막에 가서야 정면을 바라보는데 이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마치 책을 보고 있는 내게 이런 말을 건네는 듯하다.

 

 

행복에 대해 막연하게 갖는 생각-이상-과 지금의 생활-현실-을 웅덩이에 자신을 비춰보듯 마주봐야 한다고. 그래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그 다음엔? 숙제를 끝낸 아이가 밖으로  놀러나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모든 곳에 있는 행복을 만끽하라고. 

 

아이와 얘길하고 책장을 덮으면서 무척 홀가분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 하나를 막 해결한 느낌. 혹시나 그 기분이 달아날까봐 얼른 아이를 꼬옥 안았다. 덩치는 크지만 아직 어린 아이. 이 아이의 마음을 그동안 너무 몰라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란 그리 거창하지 않으며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나 역시 잊고 살았다. 


너 그거 아니?  행복은 세상 모든 곳에 있지만 엄마는 니들이 웃을 때가 젤루 행복하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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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기러기
폴 갤리코 지음, 김은영 옮김, 허달용 그림 / 풀빛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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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이다. 직장 일 때문에 알게 된 교수님이 계셨다. 첫인상에서부터 인품이나 성격, 직업, 배경, 심지어 가족관계까지 정말 좋은 조건을 갖추셨다. 내가 신랑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옆지기가 되어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언니에게 넌지시 얘기했다. 이러이러한 분이 계신데 언니가 만나보겠냐고. 선뜻 좋다고 대답하는 언니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있지....그 교수님, 다~아 좋은데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으셔서 다리를 좀 절룩거리시거든. 절대 심하진 않고. 목발도 없이 다니시고....직접 운전까지 하시니까. 그 정도면 만나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어때?” 이 말이 떨어지는 순간 언니의 표정이 달라졌다. 니가 제정신이냐며 어찌나 면박을 주던지...언니 중매 한 번 서려다 오히려 혼쭐이 났다.




나와 신랑은 지금도 한번씩 그 교수님을 얘기한다. 이 세상에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있겠냐고, 신체조건이 일반 사람과 좀 다르다는 게 그리 큰 문제일까. 부족한 점 서로 감싸주고 메워가면서 사는 게 부부 아니겠냐고...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필립 리야더. 앨더강의 버려진 등대에  혼자 살면서 새와 자연의 풍경을 그린다. 곱사등이에 왼팔마저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러진 그를 마을 사람들은 ‘등대에 사는 흉측한 난쟁이’라 부르며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기형적이고 흉측한 외모에 가려진 그의 따뜻한 가슴, 사람과 동물, 자연을 사랑하는 넉넉한 마음을 어느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프리다란 소녀가 다친 흰기러기를 안고 필립을 찾아온다. 그는 흰기러기에게 ‘길 잃은 공주님’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치료해주는데 그 일을 계기로 프리다는 매년 흰기러기가 필립을 찾아올 때면 등대를 방문하게 된다. 자신만의 공간, 등대에서 혼자 생활하던 필립은 흰기러기와 프리다에 의해 외로움이란 감정을 알게 되고 닫힌 마음도 조금씩 열려가고 있었다. 프리다 역시 필립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됐는데...




당시 유럽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던 2차 대전은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틈도 주지 않았다. 영국 군인들이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되어 있는데 항구마저 파괴되어 해군수송선이나 구축함도 그들을 구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필립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떠난다. 흰기러기와 함께.




필립과 흰기러기의 뒷이야기는 당시 생존자들을 통해 전해졌다. 죽음이 눈앞에 바싹 다가온 그들 앞에 흰기러기와 한 남자가 작은 돛단배를 타고 나타나 밤새 해변과 바다를 왕복하면서 700명을 구해냈다고.




“사람들이, 그러니까 병사들이 사냥꾼 총에 맞은 새들처럼 바닷가에 버려져 있어. 프리다, 너와 내가 우리로 데려와 보살펴 주었던 다친 새들처럼 말이야....도와워야 해, 프리다. 도움을 기다리는 새들을 구하러 가듯이, 난 병사들을 도우러 가야 해.” - 49쪽.




<흰기러기>에서 필립이 영국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던 것처럼 <작은 기적>의 페피노는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인 당나귀 비올레타를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선다. 병든 비올레타를 세상 사람들은 고치지 못하더라도 신이 만든 무엇이든 아끼고 사랑했던 성 프란시스라면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거라고 굳게 믿었던 페피노. 오로지 성 프란시스의 무덤 앞에 비올레타를 데려가기 위한 소년의 순수한 마음은 7백년이 넘도록 굳게 닫혀 있던 벽을 허물고 기적을 일으킨다.




필립과 페피노.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 어떤 어려움과 시련이 닥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흉측하고 볼품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소외당한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어느 누구보다도 빛나고 아름다웠으며 감동적이었다. 짙게 가라앉은 어둠을 밝히는 촛불 같았다.




다만 한 번만으로는 그들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울 듯하다. 아마도 나의 이해력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불과 120여쪽에 <흰기러기>, <작은 기적>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상대적으로 내용이 짧은 편이다. 또 미사여구가 극히 절제된 문장과 수묵화로 그려진 삽화는 왠지 건조한 느낌마저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오헨리상을 수상했다더니 너무 과장된 거 아닌가...?




다음날 한번 더 책을 들었다. 그리고 두어 시간 지났을 때, 느닷없이 파도가 밀려왔다. 프리다를 사랑하면서도 차마 전하지 못한 필립의 마음이 흰기러기의 날개짓에 실려 프리다에게 전해졌을 때처럼 내 가슴을 가로막고 있던 둑이 터져버렸다.




마치 <시네마 천국>에서 중년의 토토가 어린 시절 신부의 검열로 인해 잘려나간 수많은 영화 속의 키스 장면을 이어붙인 테이프를 보며 울음이 터져나올 때처럼 필립과 프리다의 안타까운 사랑이 하루 중에도 수시로  파도처럼 밀려와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목울대까지 울컥 차오르는 울음을 감추려고 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친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페피노의 두려움과 절망이 전염이라도 된 듯 잠든 아이의 얼굴을 자꾸 확인하곤 했다.




책을 읽는건 불과 1시간도 채 안 걸렸지만 그 몇 배, 몇 십 배 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책 <흰기러기>. 장영희 교수는 <내 생애 단 한번>에서 ‘영혼도 큰 소리로 말하면 듣는다’고 했는데 아주 잠깐이지만 필립과 프리다, 그들 영혼의 만남을 목격한 기분이 든다.




태어날 때 그대로, 아무것도 더하거나 덜한 것 없는 순수한 영혼이 또 하나의 순수한 영혼과 소통했다. - 70쪽.




* 뱀꼬리 : 너무나 감동적인 책이지만 옥의 티는 피해갈 수가 없다. 사소한 오탈자가 아닌 등장인물의 이름이 바뀌었다.




118쪽. “네, 신부님, 꼭 그래야 한다면 페피노를 드리겠어요. 하지만 제발, 제발 페피노가 제 곁에 조금만 더 오래 함께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비올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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