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리의 비밀일기
앨런 스트래튼 지음, 이장미 그림, 박슬라 옮김 / 한길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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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놓고 아이 기르기엔 너무나 험한 세상이다.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유괴, 성폭행, 살해와 같은 사건들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요즘은 남자아이라고해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주변 사람도 무작정 믿을 수 없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하질 않던가.


아침에 현관을 나서서 오후에 돌아올 때까지 아이는 수많은 위험요소에 노출되어 있다. 오죽하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의 알람장엔 ‘낯선 사람 따라가지 않기’ ‘마치면 놀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기’와 같은 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적혀 있다.


청소년들도 상황이 다르진 않다. 세계에서 인터넷강국으로 통하는 우리나라에서 10대 청소년들이 범하는 성범죄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 한다. 그래서 어둡고 외진 밤길에서 제일 무서운 건 10대 중.고등학생 몇 명이 무리지어 있을때라는 말도 있다. 내가 어릴적만 해도 아이는 낳기만 하면 저절로 알아서 큰다고 했는데, 요즘은 아이를 낳는 것보다 무사히 기르는 게더 큰 걱정거리다.


이 책의 주인공인 레슬리는 자칭 불량소녀다. 다른 여자를 만나 엄마와 자신을 버린 아빠가 죽도록 밉고, 자신에게 소리지르는 엄마 역시 지겹고 못마땅하다. 유일한 친구였던 케이티와의 사이도 예전같지 않고 왠지 멀게 느껴진다.


어딘가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데가 없어진 레슬리는 선생님의 지시로 쓰게된 일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제이슨과 사귀면서 벌어진 일들, 제이슨이 술취한 자신을 성폭행하면서 거듭되는 요구와 폭행들을...왜냐면 그것은 비밀일기였으니까.


하지만 그 비밀일기를 몇몇 선생님이 읽으면서 곪은 상처가 터지듯 사건이 불거진다. 그리고 레슬리는 고민에 빠진다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그냥 덮을 것인가 아니면 드러내어 잘잘못을 가릴 것인가. 결국 레슬리는 맞서 싸우는 쪽을 택한다.


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런 게 없다. 내가 앞으로 되고 싶은 사람, 혹을 거울을 볼 때마다 그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한테는 - 366쪽.


미국을 배경으로 쓰여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봤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레슬리처럼 폭행을 당한 자녀에게 당당히 맞서라고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한지 1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교수님이 계신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첫 시간인데도 그 교수님은 우리에게 리포트를 제출하라고 하셨다. 주제는 <피임법에 대하여>. 그뿐이 아니다. 기말고사때 이런 문제를 내셨다. <자녀를 성폭행으로부터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로 나는 제대로된 성교육을 대학졸업반때 받은 셈이다. 하지만 그때 내가 뭐라고 답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몇 번을 생각해봐도...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내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해주고 항상 자신의 힘을 믿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 가족은 널 사랑한다고....


나는 아직도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건지 모르겠다. 이런 운명일까. 아니면 숙명? 이런 일이 일어난데에 뭔가 의미가 있는 거라면 대체 그건 뭘까? 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는 거라곤 당당하게 세상에 맞서는 게 무척 기분좋은 일이라는 것뿐이다. -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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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7-05-1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승의 날에 쿵쿵 선생님들 모시고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우연찮게 여고 시절 이야기가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학교시절 남선생님들께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하더군요. 나는 그런 경험이 없었던 걸 큰 행운으로 여겨야겠더군요. 덩치가 작아서 덕을 본 샘이라고 해야겠죠. 그래서 이 책을 강력히 추천했습니다.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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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떤 감정을 사랑이라고 하는 건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난 이 의문에 대해 한번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사랑이란 감정은 누군가를 마냥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하는 정도로만 여겼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서 느낄 수 있는 고뇌나 아픔은 언제나 괄호밖에 두고 외면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 의미있는 일이었다.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보통 책보다 크기가 조금 작은 편이고 단편이라 길이도 짧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알맹이는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글이 술술 읽힌다고 신이 나서 책장을 팍팍 넘기다보면 책을 다 읽고 나서 꼭 이런 말이 나온다. 이 작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거야? 주장하는 바가 뭐야? 엉?


지금까지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었기에 이 책은 될 수 있는한 천.천.히...꼬오꼭 씹으면서 읽으려고 무진장 애썼다. 더구나 지금까지 터키문학, 터키작가는 접하지 못했기에 바짝 신경을 곧추세웠다.


풍자문학의 거장이자 터키의 국민작가로 추앙받는 작가 아지즈 네신은 이 책에서 사랑의 여러 감정이나 모순들을 얘기하기 위해 동물과 식물, 혹은 인형과 대리석 조각상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사랑이란 언제나 벌꿀처럼 달콤하지 않으며 5월의 햇살처럼 따스하지 않을뿐 아니라 때로는 집착하고 이용하고 배신한다고 말한다. 마치 빨강과 초록이 보색관계라서 함께 있으면 서로를 더 돋보이게 해주듯 사랑 역시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 인정할 때 사랑은 빛난다고...


이 책에 선보인 여섯 가지의 사랑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처음의 <빛나는 것, 그것은>과 마지막의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이었다.


<빛나는 것, 그것은>에서는 독수리와 물고기 익투스의 사랑이 그려지고 있는데 살아가는 환경이 하늘과 바다로 완전히 다른 그들이 서로를 동경하다 못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또 익투스와의 소중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독수리의 모습은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이야기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마치 현대판 <인어공주>라고 할까....


모든 여자는 자신의 바다, 그리고 모든 남자는 자신의 하늘을 품고 있어. 아니면 반대로 모든 여자는 자신의 산을, 모든 남자는 자신의 바다를 품고 있지. 그들은 상대방의 낯선 매력에 빠져들곤 하지.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에서 서로 맞닿을 수 있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없지.  - p36.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에서는 튤슈란 여인인을 찾아 온세계를 떠도는 한 노인이 등장하는데 문제는 그 튤슈란 여인이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제가 모르는 곳의 모르는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제가 모르는 여자가 튤슈입니다. 저는 그녀를 찾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 믿음 하나로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죠. -p179~180


튤슈란 여인을 찾아다니는 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어서 틈만 나면 아무 주소로 “너를 사랑해 튤슈”라고 전보를 치고 매일 광장에 나가 사람들에게 튤슈를 사랑한다고 목청껏 외치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랑이란 이렇다...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단정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마다 존재하는 이유는 다릅니다. 그리고 저의 존재 이유는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튤슈를 사랑하면서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 p187


이 책을 읽다보면 꼭 한여름밤의 꿈 속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삽화는 또 얼마나 이쁜지...그야말로 환상적이다. 8살난 아들이 자기 책이라고 착각할만큼.


너무나 이쁜 이 책에도 옥의 티는 있었다. 오자와 탈자가 눈에 띄었다.

p19. 제왕 독수 --> 제왕 독수

p22. 마침내 다다가 물었다 --> 다가가 물었다.


문맥도 매끄럽지 못했다.

p26. 아주 낮게 춤을 추며 날며 --> 아주 낮게 춤을 추듯 날며..

 



내게 이 책 <튤슈..>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되돌아보게 했다. 각자의 삶에 따라 사랑의 빛깔도 달라진다는 것...그러니까 결혼한 중년의 내게 있어 사랑은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한 나머지 때로 무심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거 왠지 너무 서글픈데...ㅠㅠ


사랑이란 매 순간 끊임없이 갈구하지만 완전하게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없는,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멀리 달아나버리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입니다.  - p143.


유일한 마술, 유일한 힘, 유일한 구원, 유일한 행복.

사람들은 이것을 소위 사랑이라고 부른다.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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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10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경구가 인상적입니다. 삽화는 여인네로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툴슈는 삶의 열정이나 꿈 같은 추상적인 이름이겠지요. 아니면 신이라 할 수도
있구요. 님, 맛깔난 리뷰,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시간 상자 베틀북 그림책 86
데이비드 위스너 지음 / 베틀북 / 2007년 4월
구판절판


역시 데이비드 위즈너다. 지금까지 그의 그림책을 여섯권 봤는데 여섯권 모두 대만족이다.

척 보기에도 빨간색 표지가 무척 강렬하다. 앞표지의 정중앙에 자리한 검은색 원, 저게 대체 뭐지?...하는 생각에 표지를 쫙 펼치니 그제야 정체가 드러난다. 다름아닌 물고기의 눈이다. 그리고 그 물고기 눈동자에 비친 어떤 물체....저건 또 뭘까?

이렇게 표지에서부터 독자의 시선을 단번에 휘어잡은 <시간상자>.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 책의 주인공인 소년이 물건 채집과 관찰에 취미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이 속표지가 암시하고 있다.




부모님과 바닷가에 놀러온 소년은 소라게와 게를 관찰하던 중 파도로 인해 백사장에 밀려온 수중카메라를 발견한다.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수중카메라, 필름까지 들어있다. 어떤 사진이 찍힌 필름일까...궁금한 마음에 현상소에서 사진을 찾는다. 그런데!!

아니, 이럴수가!! 바닷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 무리 중에 괴상한 녀석이 하나 있다. 로봇 물 고기인가?

더 황당한 것은 소파에 앉아있는 문어들!! 포장이사 콘테이너 속에 들어있던 소파며 전등, 탁자, 어항을 가져와서 멋들어진 거실을 꾸몄다. 게다가 큰 문어 한 마리가 책을 들고 있는데 그 앞엔 아기문어들이 모여 있다. 혹시 책을 읽어주는 스토리 타임?

거북의 등엔 소라껍질로 이뤄진 작은 마을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거기에 초록색 생명체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는 게 아닌가.





또 비행접시를 타고 단체여행을 온 외계인들의 여러 모습들. 물고기를 막대기로 찌르는 외계인 장난꾸러기와 아차 하는 순간에 카메라를 떨어뜨린 외계인까지 하는 행동은 지구인과 똑같다.


그리고 불가사리섬! 옆에 있는 불가사리섬과 서로 손짓하면서 어딘가로 가는데 혹시나 지나가는 고래를 밟을까봐 조심조심...


하지만 소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바로 단 한 장의 사진!



마치 거울을 들고 거울을 쳐다보는 것처럼 사진 속에 아이가 있고, 그 속에 또 다른 아이...소년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현미경을 가져오고 10배, 25배, 40배, 55배, 70배 확대하고 그 카메라로 제일 처음 사진을 찍은 소년을 보게 된다.

사진 한 장 속에서 과거의 모습을 들여다본 소년은 자신의 모습을 찍고 카메라를 바다로 던진다.




바다에 던져진 카메라는 오징어와 커다란 물고기, 해마에 의해 운반되다가 바다밑으로 가라앉는데 거기에 펼쳐진 건 다름아닌 인어마을이다. 기둥처럼 늘어서 있는 말미잘 사이엔 가로등이 있고 아파트처럼 보이는 산호초엔 불이 켜져 있는 등 도시의 밤풍경과 똑같다.

그리고 다시 바다로 떠오른 카메라는 돌고래와 파도에 실려 남극을 지나 어느 해안가에 이른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시점의 변화에 따른 시간의 변화다. 처음 소년의 눈으로 본 현재의 시간에서 카메라의 시선으로 본 사진 속에 펼쳐진 과거의 모습, 다시 바다로 돌아간 카메라를 바다 속 생물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재진행이자 미래의 모습...은 단순히 놀라운 수준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특히 이 책 <시간 상자>는 올해 칼데콧 상을 받았는데 책 속에 펼쳐진 상상력은 그림책을 보는 나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곳곳에 숨겨진 여러 장치로 인해 글 없는 그림책임에도 전혀 밋밋하지 않았다. 오히려 글이 없는 점을 100% 살려서 그림책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그림책의 그림은 단순한 삽화나 일러스트가 아니라 글로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한마디로 그림책이 작은 미술관인 셈이다. 프랑스 그림책 편집자인 크리스티앙 브뤼엘은 이렇게 말했다.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야기를 포함한 이미지들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그림과 그림 사이를 읽는다는 것이다. "

출간하는 책마다 자신의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데이비드 위즈너! 이쯤되면 도대체 그의 머릿속은 어떤 구조로 생겼는지 궁금해진다. 또 다음에 그가 어떤 세계를 우리 앞에 내놓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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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보내고
권현옥 지음 / 쌤앤파커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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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이 군입대할 때가 생각난다. 1남 6녀의 막내에 3대 독자 귀하디 귀한 몸으로 태어난 남동생은 신체검사를 할 필요도 없는 6개월 방위소집 대상자였다. 4주 훈련 기간을 제외하면 집에서 출퇴근을 하는 방위병인데도 동생이 입대를 했을 때 엄마는 노심초사 그 자체였다. 입 짧은 놈이 맛없는 군대밥을 어찌 먹겠냐..말 주변 없는 놈이 말이나 제대로 하겠냐..고 걱정 또 걱정이셨다.


지금도 친정식구들이 모이면 엄마는 간혹 말씀하신다. 동생이 신병훈련을 받고 처음으로 면회갔을 때 얘기를... 피부가 흰 편이었던 동생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4주만에 몰라보게 변했더라는 것에서부터 당신을 보자마자 “엄..마아..”하는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라는 것, 또 입맛이 까다로워서 뭐든지 한꺼번에 먹는 일이 없던 동생이 초코파이 한 상자를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다 먹더라는 것.


아들을 군대에 보낸 대한민국의 엄마치고 친정엄마와 같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친정엄마와 <아들을 보내고>의 저자는 참 많이도 닮았다.


아들이 커서 군대를 가는 게 어른이 되었다...는 것 같아 대견하기도 하지만 학사장교, 카투샤가 아닌 소위 ‘땅개’로 아들을 맨몸으로 군에 보내는 어미의 심정은 안타깝고 후회스럽기만 하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젊은 시절, 연인과 실연했을때 마냥 아들의 빈자리에선 황소바람이 들어온다.


특유의 현관문 여는 소리에 이어 “엄마, 나 왔어.” 우당탕...이런 환청이 사라질 때쯤이면 아들을 보러 갈 수 있을까. p24


어디 그뿐일까. 입대후 집으로 온 장정소포 속의 아들 물건에 통곡하고 눈물짓는가 하면 낯설고 물설은 군대에서 고생하며 지낼 아들을 생각하니 그동안 아들에게 못해준 것들이 새삼 떠올라 괴롭다.


이런 날(15Km 행군하는날), 아들몸을 감싼 지방분은 엉마보다 훨씬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배 나온다고 핀잔을 줄 게 아니라 비계가 비축되도록 더 잘 먹였어야 했다. -p65


열 달 동안 내 몸에 품고 있다. 세상에 내놓은 귀하고 이쁜 아들이기에 할 수만 있다면 아들의 아픔과 고생을 대신 하고픈 게 바로 어미의 심정. 그렇게 가슴 절절한 사연들이 이 책 저자의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나니 보이는 건 맨 군인뿐이라는 대목에선 자신의 아들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군인을 생각하는 저자의 살가운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나 역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니 길을 가다가도 내 아들 또래의 아이를 보면 예사로 보이지 않으니까....


딸을 낳아야 대접받는 요즘 세상에 아들만 둘을 둔 나도 머잖은 미래에 친정엄마처럼, 이 책의 저자처럼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한다. 그 때의 마음이 어떠할지...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이 쓰라리듯 아팠다.


우리나라가 유일한 분단국가로 존재하는한, 지구상에서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한 대한민국에서 아들을 둔 엄마는 군대간 아들 생각에 맛난 음식 먹을 때마다 목이 메이고 일기예보도 허투루 보지 않을 것이며 그리운 마음을 꾹꾹 누르고 애써 밝은 목소리로 아들의 전화를 받아야 하리라.


이 책 읽고 나니 지난달에 둘째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언니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

“언니, 요즘 마음이 휑하겠네, OO 보낼때 많이 울었더나?”

“뭘...울어? 울면 안되지. 큰 애 제대가 내년이니까 그때까지 즐거운 생각하고 살아야지....”하고 평소보다 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프지도 말아야 하고 스트레스도 잘 풀어야 하고 그리고 울지도 말아야 한다. 아들을 군에보낸 어미는 건강해야 한다.  p44


저자가 아들의 군입대 30일전부터 입대후 112일까지 142일간의 기록을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무척 오래 남는다. 책장을 덮은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저자의 마지막 말이 내 가슴에 남아 맴돌고 있다.


돌아오는 길 시야가 흐리다.

‘이제 다 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느낌이다.


남은 이십개월은 이제 오롯이 아들몫이다.

아니 그 이후로도 쭉 아들몫이다.

낳고 길렀으나 내 것이 아닌 아들.


입대하고 

첫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면서 아들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다 키웠다.

이제 아들 손을 놓는다. p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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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 감정 코치
존 가트맨 지음, 남은영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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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매일이 전쟁이다. 8살된 아들녀석, 작년까지만해도 더없이 이쁜 아들이었는데 올해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매사에 트집 아니면 고집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거야? 학교 다니는 게 힘드나? 뒤늦게 생긴 동생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나...싶어서 우리 부부는 나름대로 더 신경을 써주는데도 막무가내다. 한참 미운짓 할 때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건 아니다.


지금까지 아이를 기르면서 해왔던 방식에 문제가 있는게 틀림없다. 머릿속에서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 찾아라. 아이 마음이 멀어지기 전에 어서 밝혀내! 빨리!!


아이와의 평화를 위한 대책반이라도 세워야할 지경이었을 때 이 책은 그야말로 가뭄속의 단비이자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바로 아이와의 문제가 다름아닌 우리 부부에게 있었다. 고집세고 말주변이 없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길 싫어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 이게 바로 우리 부부의 공통점이자 문제의 원인이었다.


부모가 정서적으로 똑똑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취해야할 첫 번째 단계는 부모 자신의 감정 대응 방식을 이해하고 이것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p48.


갈등의 요소가 생기면 거기에 대해 대화하고 해결책을 찾기전에 대뜸 ‘내가 잘못한 게 뭐냐’고 언짢은 티를 내는 남편과 분노나 화가 날 때 그것을 표현하기보다 속으로 감추고 억제하는 나의 행동이 아이에게 혼란을 주었던 모양이다.


부모의 서툰 감정 표현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이제 화산폭발하듯 하나씩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왜 그러냐는 나의 물음에 아들은 외친다. 화가 난다고.


이 책에선 자녀 양육방식에 따라 부모의 유형을 축소지향형, 억압형, 방임형, 감정코치형으로 나누고 있는데 아이들과의 대화방법으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감정코치형이라고 한다.


하지만 감정코치형의 부모가 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자신의 감정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정의 인식이란 단순히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고 그때의 감정이 무엇인지 구분하며 거기에 덧붙여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민감하게 살피는 것이다. p104.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아이가 화내거나 거친 행동을 할 때 왜 그러는지 알아보고 마음을 풀어주기는 했지만 정작 중요한 과정인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등한시했던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옳은 결정을 내리도록 하고 싶겠지만, 아이는 실수를 통해서도 교훈을 얻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어떤 문제에 대해서 효과가 없는 해결방법을 아이가 선택한다면 효과가 없는 이유를 아이가 분석하도록 이끈다. p147~148.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면서부터 나름대로 부모로서의 자세나 자녀교육에 관해 공부를 해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수박 겉핥기였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금쪽보다 소중한 내 아이. 그 아이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 하면서도 정작 아이의 마음자리를 제대로 살펴주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다. 지금까지 계속 억눌려온 감정 때문에 상처받았을 아이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다.


아이 문제의 원인은 언제나 그 부모에게 있다. 부모가 달라지지 않는한 아이는 변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이 책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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