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의 복수 -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가 경고하는 인류 최악의 위기와 그 처방전
제임스 러브록 지음, 이한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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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주에 큰맘 먹고 에어컨을 구입했다. 작년 여름 둘째가 무더위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여름 내내 온 몸에 땀띠를 뒤집어쓴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정말 아팠다. 올여름은 유래없는 무더위가 찾아올 거라는 기상예보에 좀 서둘렀다. 에어컨을 설치할 공간 확보하느라 요며칠 가구배치를 바꾸는데 어찌나 더운지 방금 갈아입은 티셔츠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을 지경이었다. 뚝뚝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나와 신랑은 “우리집 예전엔 이렇게까진 안 더웠지?” “당연하지, 선풍기도 필요없었는데.” “근데 왜 이러냐?” “앞뒤로 높은 건물들이 자꾸 들어서니까 그렇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하지 않냐?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걸? 지구온난화라든가.....”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가 경고하는 인류 최악의 위기와 그 처방전’이란 부제가 달린 책 <가이아의 복수>. 제목의 ‘복수’란 말보다 표지의 벌~겋게 달아오른 태양(?)의 사진에서 섬뜻한 공포가 느껴진다.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러브룩은 1970년대 초에 지구가 어떤 생물이 모여 살더라도 그들에게 알맞은 지표면 조건을 능동적으로 유지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서 진화하는 자기조절 시스템이 있다는 ‘가이아 가설’을 내놓았다. 생물이 자신이 있는 행성 조건에 적응하면서 나름대로 진화한다는 기존의 이론과 반대되는 개념은 학계의 논란이 되었다. 지구란 거대한 생명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후와 대기화학을 조절한다는 가설은 지금 ‘가이아 이론’으로 발전했다.

 




현재 우리는 지구가 정말로 자신을 조절한다는 것을 알지만, 증거를 모으는데 너무 오래 걸린 탓에 그 조절 능력이 약해지고 있으며 지구 시스템이 모든 생명이 위험에 처할 임계 상태로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 - 27쪽.




지구 시스템에서 나를 가장 처음 놀라게 한 것은 그것이 생명에 딱 맞는 온도와 화학적 조성에 가까운 상태를 유치할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우주가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시간의 4분의 1인 30억년 넘게 그래왔다는 것이다. - 68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이름을 붙여 지구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가이아 이론’에 의하면 21세기를 맞은 현재의 지구는 너무나 뜨거운 상태라 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모든 생명이 위험에 처해있다고 한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태계 파괴를 비롯한 이상기온과 폭설, 폭우, 폭풍 같은 이상기후는 지구가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거라고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우리 자신과 문명이 치명적이고 엄청난 위험에 직면하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된다고 강조한다.

 




산업화로 인한 온실가스가 급격히 증가함으로써 지구온난화가 가속되었다고 판단한 저자는 화석연료를 대신할 대체에너지가 시급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태양열에너지를 비롯한 바람에너지, 조수에너지는 청정에너지원이지만 개벌초기단계라 실효성이 없고 천연가스는 주성분인 메탄 유출에 대한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석탄 대신 천연가스를 태우는 것은 지구온난화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에너지 집약적이고 화석연료로 가동되는 문명을 끌 수가 없다. 끄는 순간 붕괴하고 말 테니까. 우리는 동력 하강을 위한 연착륙이 필요하다. - 38쪽.

 




가이아에 해를 끼치지 않을 유일한 에너지원으로 그는 원자력과 핵에너지에 주목한다. 온실가스를 비롯한 엄청난 폐기물을 배출하는 화석연료에 비해 핵분열이나 핵융합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되는데다 생성되는 폐기물의 양도 적어서 꽤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핵무기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갖고 있는데 그건 잘못된 정보이며 다른 어떤 에너지보다 안전하다며 핵분열에너지야말로 뜨거운 열로 인해 병든 지구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책이기 때문에 금세기에 찾아올 새로운 암흑기를 피하려면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핵에너지를 둘러싼 끝없는 논쟁에서 반핵운동가인 다윗이 원자력산업이라는 골리앗과 용감하게 맞서 싸운다는 식의 가정을 종종 접할 수 있다....같은 양의 전기를 생산하려면 석유나 천연가스가 우라늄보다 100만배는 더 필요하다. -143쪽.

 




또 자신의 몸을 생각해서 유기농식품을 생산하고 찾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 자체가 가이아를 괴롭히는 거라고 꼬집고 있다. 쉽게 말해, 배추 10포기를 수확하기 위해 30,40포기를 심고 그것을 위해 숲을 파괴하여 농경지를 만드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거다. 왜냐면 우리는 안락한 행성을 유지하는 가이아의 능력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서는 지표면의 절반 이상을 경작할 수 없기 때문(182쪽)에 단위면적이나 노동력에 비해 생산성이 낮은 유기농업보다 적당한 살충제와 화학비료를 사용해서 현재의 농경지가 다시 숲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류를 위해, 지구를 위하는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현재의 모든 인류가 선진국의 생활방식, 유럽인처럼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를 몰아내고 지구환경이 붕괴되기 시작했지만 땅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란 걸 명심하라고 강조한다. 우리만의 것으로 착각해서 지구의 지표면을 사용하는 것도 중단하라고 한다. 인간 역시 지구에 존재하는 여러 생명체들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00편이 넘는 논물을 쓴 저자의 이론을 이 한 권의 책으로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책의 첫 장에서 ‘가이아’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지구의 현재 상태, ‘음의 되먹임’ ‘양의 되먹임’ 같은 생소한 용어, 에너지와 화학물질에 대한 전문적인 해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책을 읽는 내내 애먹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2번, 3번 읽을 각오를 하고 일단 끝까지 밀어붙였다.

 




떠듬떠듬하게나마 책을 다 읽고 나서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에 비유했을 때 인간의 출현은 거의 자정이 임박했을 시각, 그러니까 23시 59분 전후였다고 한다. 즉, 약 1분 정도만 지나면 하루가 끝나는 시점에 태어난 우리 인류가 지금 지구의 생존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겁도 없이 막무가내로 덤빈다며 괘씸죄를 적용했을 것이다. 자신을 너무 심하게 대하고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손상시켜서 멸종이란 극단적인 처벌책으로 위협하는 가이아의 형편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저자가 강조한 지속가능한 퇴보가 무엇인지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최소한 생활습관을 고쳐나가는 노력만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것도 하루라도 빨리. 우리의 미래, 후손들에게 지금보다 나빠진 지구를 넘겨줄 순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고민이다. 오늘 내일중으로 설치될 에어컨....어쩐다???ㅠㅠ)

 




지구는 우주 비행사들이 바깥에서 우리를 위해 봐주기 전까지는 전체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으며...일부 우주 비행사들, 특히 달까지의 먼 여행을 한 사람들은 지구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지구를 고향이라고 했다. 어떻게 해서든 간에 우리는 그들처럼 생각해야 하며,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을 확장시켜 지구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 209쪽.




지금 전 세계의 관측자들이 내놓는 증거들은 우리 기후가 지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옮겨가기 직전이라는 소식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뜨겁고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현재 우글거리고 있는 수십억 명 중 극소수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이다. -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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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이기는 습관
전옥표 지음, 정현승 글, 전병준 일러스트, 손준혁 카툰 / 쌤앤파커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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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자기계발서가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이기는 습관>과 <청소년을 위한 이기는 습관>에 이어 <어린이를 위한 이기는 습관>이 출간됐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행복초등학교의 5학년 규현, 강인, 예은, 유빈. 시원은 저마다 신나는 방학생활에 대한 기대와 계획으로 들떠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아이들은 규현이가 가져온 두루마리로 된 낡은 보물지도를 보고 놀란다. 일곱 개의 관문, 일곱 개의 미션을 성공하고 나면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거기다 보물이 숨겨진 장소는 학교 바로 뒷 산. 보물을 찾으러 갈 것인지를 두고 아이들은 잠깐 실랑이를 하지만 결국 보물 찾으러 가기로 결정한다.




마법의 산의 규칙에 따라 지도를 발견한 규현이가 리더가 되어 일행을 이끌어간다. 모형비행기를 만들기를 좋아하고 노래를 잘 부르지만 왜소한 체격에 소극적이고 겁도 많은 규현이를 비롯해 활달하고 씩씩해서 친구들에게 인기는 많지만 고집이 센 강인이, 밝은 미소로 주위 사람의 기분을 밝게 하지만 체력이 약한 예은이, 책읽기를 좋아하고 영리하며 적극적이지만 불평, 불만이 많은 유빈이, 잘생긴 외모와 춤실력으로 인기가 많지만 힘들 일을 싫어하고 이기적인 시원이 이렇게 다섯명의 아이들은 행복의 습관, 성취의 습관, 프로의 습관, 전략의 습관, 실행의 습관, 규범의 습관, 승리의 습관에 해당하는 관문 하나하나를 통과하고 주어진 미션을 해낼 때마다 조금씩 성장해간다.




마법의 산에서는 미션의 수행 여부에 따라 시간이 빨리 흐르기도 하고 느리게 빨리 흐르기도 핧뿐만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지 멋지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말하는 돌문이라든가 움직이는 징검다리, 뭔가에 감동받고 기분이 좋을 때만 움직이는 거대한 파란새 등 아이들의 보물찾기 여정에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장치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위기가 닥칠 때마다 머리를 맞대어 궁리를 하고 서로 도우기도 하면서 일곱 개의 미션을 모두 완수하고 마침내 꿈을 이루어주는 보물상자를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이 외에도 책에서는 하나의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위인들의 이기는 습관을 비롯해 도움이 되는 명언 등을 넣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스스로 돌아보고 자신에게 필요한 습관을 생활 속에서 조금씩 익혀나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아이들이 누구나 좋아하는 모험을 담고 있기 때문에 초등 중학년 이상의 아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몇 군데 아쉬운 점이 있다. 먼저 규현이가 보물지도를 발견하는 과정이 너무 엉성하다. 어디서 어떻게 발견했다는 과장도 없이 덮어놓고 얘들아, 이것 좀 봐! 하면서 발견한다. (아이들 책이라지만 너무하다.) 아이들이 방학되기 하루 전에 이사온 시원이와 너무나 서슴없이 지낸다는 것, 아이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서 도움을 주는 에비스 아저씨의 존재도 모호하다.




또 하나의 습관, 미션을 시작할 때마다 강인이의 모습에 말풍선을 달아놓았는데 성의부족이 아닌가 싶다. 매번 똑같이 강인이를 넣을 게 아니라 미션에 해당하는 아이를 넣어서 내용에 따라 변화를 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 게다가 노래를 듣고 기분이 좋을 때만 움직이는 파란새가 108쪽의 삽화를 보면 파란새가 아니라 흡사 불새, 혹은 봉황이나 공작새처럼 보인다. 구성이나 편집에 세심함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처음엔 저마다 개성이 다른 아이들이 제각각의 소리를 내다가 후반부로 가면서 차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자신보다 친구들을 먼저 생각하고 위하는 등 숨겨진 면을 발견해가는 모습이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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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의 계절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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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번 달에 <야시> 한번 읽어볼까. 생각보다 정말 좋던데. 어때?” 지난 3월이었나? 독서모임의 맴버 중에서 책을 가장 넓고 깊게 읽는 언니가 제안했다. <야시>의 출간은 오래전부터 알았다. 하지만 그 책은 줄곧 나의 관심밖에 있었다.  이유는 하나. 피를 연상케하는 섬뜩한  빨간색 바탕에 이상하리만치 목이 긴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아닌듯한 여인(?)이 그려진 표지에서 느껴지는 호러의 이미지! 그것도 너무 강렬했던 게 문제였다. 독서모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입했으면서도 혹시나 이 책 읽고 밤잠 못자거나 가위 눌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난 읽기를 거부했다.




그러다 <천둥의 계절>을 만났다. <야시>를 쓴 쓰네가와 고타로의 작품인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새가 마음에 걸렸지만 보기만해도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는 파란색의 표지가 괜찮아, 괜찮아, 전혀 두려워할 거 없어...하고 말을 거는 듯했다. 그래, 까짓거 읽어보자....고 책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천둥소리가 들리면 내 마음은 어두워진다. 천둥은 이곳이 아닌 머나먼 땅의 어두운 기억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그곳의 이름은 ‘온’. - 7쪽.




쓰네가와 고타로의 <천둥의 계절>은 지구상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계의 공간, ‘온’이라는 환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온’에서는 겨울과 봄 사이에 ‘천둥계절’이 있는데 바람이 미친 듯 불어대고 아침부터 밤까지 천둥이 그치지 않는 천둥계절 동안 온에 사는 사람들은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천둥과 바람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나면 마을 사람 한 두명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겐야는 유일한 가족인 누나 역시 천둥계절에 실종된다.




어느날 천둥이 그친다....바람이 바뀌고 대기가 느슨해진다....덧문이 활짝 열리고 새해 첫 바람이 집 안으로 춤추듯 날아든다. 봄은 그렇게 시작된다. - 11쪽.




누나가 행방불명 된 이후 아이 없는 노부부의 집에서 자란 겐야는 동네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지만 호다카, 료운과 단짝 친구가 된다. 온에는 ‘무덤촌’이라고 일단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빠져나오지 못하는 유령마을이 있는데 겐야는 어느날 호다카에게서 ‘무덤촌’의 얘길 듣고 그곳을 찾아간다. 또 우연히 만난 마을의 주술사와 문지기는 겐야가 바람와이와이에게 씌워진 것을 알아챈다. 겐야는 온의 마을 입구에서 부정한 존재의 출입을 막는 문지기를 통해 온이 어떤 마을인지, 자신이 바깥세계의 상인을 통해 온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다 호다카의 오빠인 나기히사가 살인을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사건이 벌어진 장소인 ‘무덤촌’으로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나기히사를 만난다. 나기히사로부터 위협과 살의를 느낀 겐야는 격투를 벌이고 급기야 마을의 경비대인 ‘귀신조’를 피해 달아난다. 자신이 원래 있었던 곳, 바깥 세계를 향해




내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이제 지극히 자연스럽게 배후의 어둠 속에 남겨졌다....한 발, 한 발, 예전에 나를 담아두었던 그릇이 멀어져 갔다. 이제 나에게 있는 것은 체중이 느껴지지 않는 바람와이와이뿐. - 126쪽.




“너희 엄마는 ‘시궁고양이’란다.” 소설은 6장부터 이야기가 크게 뛴다. 현실세계의 사타케 아카네가 계모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가출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우연히 만난 낯선 남자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간신히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아카네는 바깥세계가 아닌 ‘온’으로 발길을 돌린다. 일가족이 괴한에게 몰살당한 후 말을 잃어버린 어린 소년과 함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공간, 환상의 마을 온과 현실세계를 넘나들면서 목숨을 건 모험을 펼치는 겐야. 그의 내부에 깃들어 있으면서 위기의 순간마다 힘을 실어주는 정령 바람와이와이, 자신에게 풍령조가 내려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카네, 아무리 죽여도 다시 부활하는 ‘귀신조’ 도바 무네키. 겐야와 바람와이와이 외에 서로와 그다지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이 넷은 마지막에 이르러 서로 얽힌 관계에 있음이 드러나는데...

 

‘온’이라는 환상의 공간과 현실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주축으로 고아소년 겐야가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이 소설은 무척이나 매혹적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란 에니메이션처럼 낯설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콕 집어서 이거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그 어떤 것. 그게 대체 뭘까. 일본소설 특유의 환성적 세계? 그게 전부가 아니다. 뭔가 더 있다. 정확하다고 할 수 없지만 난 이 책이 일본의 신화나 민간신앙, 더 나아가 일본인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폐를 끼치는 사람을 그 가족이 살인의뢰를 한다는거나 무네키에게 잡혀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침착하고 조용한 사람들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가을이 찾아오고 겨울이 끝났을 때, 이 땅에는 천둥계절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전에 나를 덮쳤던 커다른 파도는 나를 물가로 번쩍 밀어올리고 나의 소년 시절을 앗아서는 끝없는 대양으로 데려갔다...그 파도는 나를 다시 새로운 바다로 데려갈 것이다. - 372~373쪽.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계절을 맞은 겐야가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아가듯 나 역시 이 책으로 색다른 경험을 했다. 지금까지보다 시야가 좀 더 넓어진 느낌이랄까. 순서가 바뀌었지만 쓰네가와 고타로의 <야시>를 어서 만나보고 싶다. 그의 후속작 역시...




책을 읽고 나서도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 하나. 하야타 고지.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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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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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천원짜리에 있는 사람이다!!”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이 책을 보고 있으니 옆에 있던 큰아이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 누군지 이름을 아느냐고 했더니 뭐 그리 쉬운걸 묻냐는 투로 “당연히 퇴계 이황이지!”하고 대답하면서 “그 사람이 아들한테 뭐라고 편지 썼어?” 묻길래 다 보고 나면 알려주겠노라고 얘기했지만 사실 나 역시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라고, 연암 박지원이 그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서 출간한 책을 봤는데 거기엔 편지를 보낸 대상 때문인지 정말 사적이고 자잘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또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편지를 써서 두 아들의 평소 생활의 공부 방법까지 지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유박해로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두 아들에게 게으름을 멀리하고 학문에 힘쓰라고 하거나 근과 검에 대한 것,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가장 귀한 것은 성실함이며 어떤 것도 속여서는 안 된다고 하거나 자신의 집안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독서와 수양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편지글에서 문인으로서의 다신이 아닌 아버지로서의 다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선지 이 책을 보기 전에 퇴계 이황은 과연 어떤 편지를 썼을까...기대가 컸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로 알려진 퇴계가 맏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는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짐작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학자로서의 퇴계 이황이 아닌 생활인, 두 아들의 아버지인 이황을 만날 수 있었다.







학자여서 인지 아들의 공부를 염려하는 글이 유독 많았다. 독서를 함에 있어 어찌 장소를 택해서 하느냐, 어디에 있더라도 뜻을 세워서 부지런히 공부하고 한가하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당부하거나(24쪽)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꼬집어주기도 했다. 즉,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버리고 한번 지나간 것은 따라 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면서 ‘끝내는 농부나 군대의 졸병으로 일생을 보내고자 하느냐?’하고 따끔하게 질책을 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에선 나도 순간 뜨끔했다.







또 계모의 초상이 났을 때 계모가 친모와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대개 뜻을 알지 못해서 경솔하게 하는 말이니 이를 듣지 말고 계모상을 친모상 같이 지내라며 당부하기도 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책을 보니 이 편지는 ‘가정윤리관리’사상에도 매우 중요한 편지였다고 한다. 퇴계의 이 편지로 말미암아 계모를 하대하는 습속을 개선하게 됐다고 한다. 이 외에 노비들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에서부터 기와 굽는 일이나 집안의 자잘한 대소사를 챙기는 편지들이 많았다.




반면에 무척 의외다...싶은 편지도 눈에 많이 띄였다. 또 퇴계 이황 선생은 벼슬에 대해 그다지 욕심이 없는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책 속의 편지를 보니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옛사람의 말을 빌어 아들이 앞으로 나아갈 줄을 모르니 아마도 날로 퇴보하여 마침내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말까 두렵다며 걱정하면서 아들이 부지런히 공부하여 벼슬에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들과 주고 받은 편지 모두가 수록된 것이 아닌 퇴계 이황선생의 편지만 실려 있다. 더구나 편지에서 거론되는 일이나 대소사에 대한 정보도 자세히 알 수 없는데다가 소설처럼 특별한 사건이 없어서 책을 읽어나갈 때 다소 지루했다. 하지만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이황의 모습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이에게 매일 ‘필통편지’를 썼다. 학교 생활 재밌게 보내라거나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 혹은 급식으로 나오는 음식 모두 골고루 먹어야 튼튼하게 자란다거나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하는 식의 편지를 짤막하게 써서 아이 필통에 넣어줬는데 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어쩌다 바빠서 미처 쓰지 못한 날은 집에 오자마자 오늘은 왜 안 썼냐고 서운해하기도 했다. 큰아이에게 보내는 필통편지도 6개월 정도 쓰다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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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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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는 당시 교황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뒤 얻어온 기술이다.” -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전 미국부통령 엘 고어. 




<구텐베르크의 조선> 이 책의 뒷표지와 작가의 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인쇄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란 말에 인터넷을 검색했다. 엘 고어가 정말 이런 말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2005년 5월 19일(작가의 말 부분엔 2006년이라고 되어 있다. 책의 제일 처음부터 오타라니) 연합뉴스에 <엘 고어 전미부통령 서울디지털포럼 개막식>이란 기사가 있었다. 사실이구나! 세상에 그때부터 겨우 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런 중요한 뉴스를 잊고 있었다니!!




<베니스의 개성상인> <원행> 등 역사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써온 작가 오세영은 엘 고어의 이 연설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즉시 역사적 사실 추적에 들어간다. 정말인가? 구텐베르크의 친구는 누구고 교황청의 사절은 또 누구인가? 언제 조선을 다녀갔는가?...끊임없이 이어지는 의문들, 도무지 알 수 없는 공백을 저자는 상상력을 동원해 메워나간다. 베워진 역사의 행간을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읽고 쓰기 쉬운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지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최만리를 비롯한 사대부들이 훈민정음의 반포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세종은 석주원에게 명나라(북경)에 있는 장영실을 도와 훈민정음을 인쇄하기 위한 활자를 주조하라는 밀명을 내린다.

 


훈민정음. 말 그대로 백성들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다. 유사 이래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백성이 있었던가.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긴 중원의 역사를 살펴봐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문자는 언제나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다.



장영실이 활자주조기를 개발했지만 정작 중요한 향동활자제작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일시에 엄청난 화력을 뿜어내는 해탄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중 우연히 해탄을 손에 넣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명나라와 마찰이 생기면서 석주원은 명의 사절단 자격으로 티무르제국, 사마르칸트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석주원은 로마 교황청의 사절단인 쿠자누스 신부와 운명의 여인 이레네를 만난다. 사마르칸트에서의 일을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석주원은 이레네가 위기에 처한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독일 마인츠로 떠난다.



자신이 돌아갈 나라 조선에서 더욱 멀리 떨어진 이역만리 독일의 마인츠에 도착한 석주원은 구텐베르크를 만나 그의 인쇄공방에 임시 머물게 된다. 당시 교황청은 성서 인쇄 사업을 시도하는데 그 일환으로 구텐베르크가 ‘42행 성서’ 인쇄사업에 뛰어든다. 그러나 구텐베르크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마인츠 상사길드연합회는 그의 성서인쇄사업을 가로채기 위해 계속해서 방해와 음모를 꾸민다. 구텐베르크와 길드상사연합회의 대결은 곧 석주원과 아비뇽의 야금장과의 향동활자 대결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스승님께서 그리도 염원하시던 향동활자란 말인가. 최상의 향동은 종금이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그럼 좀 전의 맑고 경쾌한 종소리는 최상의 향동임을 말해주는....'그래, 나는 해냈다. 그리고 이레네의 말대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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