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법학자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김두식 지음 / 홍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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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생각하면 구역질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자신은 구원받았고 이 세상은 죄지은 자들로 득실거리며,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이 하는 행동은 어떤 거리낌도 없다는 독선에는 구역질이 나고, 철없던 어린시절 교회에서 성장한 나 자신의 이력으로 본 정말 독실하고 윤리적이던 신도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드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다. 세상에서의 교회는 권력기구였으며, 지금도 권력기구에 불과하다고 본다.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신앙인으로서의 김두식은 아니어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 현상적으로 교회가 권력기구가 된 것 맞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다시 예전 초대교회의 이상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요지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조차 세상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반성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의 질서를 받아들여 썩어들어가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할 지 몰라도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한 애정이 충만한 책이다. 김두식교수와 같은 신자들을 보면 도킨스가 아무리 기독교를 비판하고 무신론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종교는 쉽게 사멸하지 않을 듯하다.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 책은 오히려 강력한 신앙간증처럼 느껴진다. 속세에 맞선 교회공동체로 복귀의 주장은 이상적인 만큼 혁명적이다. 

기독교의 타락은 세속의 권력과 결탁하면서 이루어졌다. 로마의 기독교화는 교회의 세속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런의미에서 권력과 동행하는 기독교의 성장은 교회의 타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신앙공동체가 그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공동체로 변해버렸으니 그 안의 옥석을 구분하기는 힘들다. 진정한 신앙은 고난과 박해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식민지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는 권력과 야합하면서 성장했다. 권력과 함께 자본과 외적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물적 은총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며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회속에는 차가운 권력관계와 서열관계만 존재하고 있지 신앙을 중심으로한 평등한 공동체는 내부적으로 압살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교회공동체의 복귀가 혁명적인 것은 프로테스탄티즘 본래의 정신으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신앙과 양심에 따른 하나님과의 일대일 교통을 요구했던 신교의 전통은 소교황으로서의 목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누구나 신과 함께 소통하고 서로의 신앙을 나누는 공동체에서 신권주의적 목사는 장애물일 것이다. 더불어 신도들은 공동체적 보살핌을 서로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들도 공동체 내부에서 풀어나가야지 국가에 기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의 잘못된 방향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개인의 양심에 따른 행위에 대한 지원은 말할 것도 없으며, 성소수자등 소외받는 자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마치 건강한 시민사회를 보는 듯한 주장이지만, 그 근원은 다른곳에 있다. 단순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아닌, 이미 2천년전에 그렇게 사시고 가르침을 준 예수의 생애가 밑바탕에 있는 것이다. 예수를 통해서 구원을 천국을 외치지 않는다. 예수를 본받음으로 해서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주체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어는 정치조직에서 외치는 것보다 더 반국가적인 혁명적 조직이 연상된다. 신앙이라는 관념만 빼버리면 원형적인 소비에트나 노동자 자주관리 등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차이는 그저 신앙일 뿐이고 실천은 보편적인 인류애의 달성과 새롭게 거듭나는 인간일 것이다.  

결국, 사람의 문제다. 무신론자이면서 기독교를 욕하지만 정말 물적, 이기적, 도구적 이성의 사람이 정신적, 이타적, 종합적 이성의 사람으로 변화하는데 신앙이 도움이 된다면... 글쎄...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내 무신론적 신념에 매서운 일타를 날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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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13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두식을 연속으로 읽으셨군요.
'교회 속의 세상'은 '불편해도 괜찮아'랑은 또 다르다고 하던데요~
급 호기심인걸요~^^

머큐리 2010-10-13 18:59   좋아요 0 | URL
이 분 글은 읽어서 손해날 일이 절대 없다고 봐요..현재까지는..^^

sslmo 2010-10-14 00:43   좋아요 0 | URL
'불편해도 괜찮아'도 님의 페이퍼를 보고 혹해서 읽었던 기억이~~~^^
 
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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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논리도 중요하다. 하지만 감수성 역시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김두식교수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설명은 조근조근하다. 그러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내용은 힘차다. 너무 힘차기 때문에 가끔은 숨이 가빠지곤 한다. 항상 자신을 낮추면서도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힘있게 설득하는 모습은 김교수가 가지는 힘이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불편해도 괜찮다니... 조금만 불편해도 사람들은 짜증내고 화내고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못견디는 이 시대에 불편해도 괜찮다니... 편의성이 가장 우선시 되는 시절에 불편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사연은 간단하다. 모두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허상이고 정말 편한 세상을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인권을 이야기 하는 책이다. 더불어 영화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다행스럽게 이러저러한 영화를 많이 본 덕분에 책의 맥락을 따라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내가 본 영화와 이 책에서 설명하는 영화는 정말 같은 영화일 수 있는가 할 정도의 느낌이 틀릴 뿐이다. 그 차이가 바로 감수성의 차이고 감수성의 차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은 '인권'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다수자에게 소수자를 이해시키기 위한 책이다. 주류이고 다수자인 나는 이 책의 고민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내가 가지는 시각을 전면적으로 교정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소수자와 다수자는 숫자를 가지고 나누는 것은 아니다. 숫자가 크다해도 이 사회의 약자들이라면 소수자일 수 밖에 없다.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더불어 사회를 어둡게 하는 사전검열과 인종차별, 제노사이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변에서 많이 보지 않기에 보이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는 이 소수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처지에 있는지 결국 그들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은 영화를 매개로 설명하고 있다. 영화만으로도 인권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영상교재 커리큘럼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경구들도 많다. 이를테면...

   
  모든 사회문제는 이런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그쪽 논리를 따라가면 오히려 속이 편하지만, 양쪽 이야기를 듣고 나면 머리가 아픕니다. 그런 헷갈리는 상황에서 기억할 만한 원칙이 바로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똥파리에 나오는 대사도 인상적이다 

   
  아, 이나라, 씨발. 애비들은 아주 좆같애. 이게 븅신들 같은데 지 가족들한테는 아주 김일성같이 굴라 그래. 이 씨발놈들이. 니가 김일성이야. 이 씨발새끼야. 김일성이야. 이씨발놈아  
   

가부장제와 폭력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김두식 교수는 인권을 아주 쉽게 정리한다면 결국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율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역지사지라고 남의 처지가 되어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하기 힘들 것이다. 위치를 바꿔보는 것.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이 위치의 전환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활하면서 끊임없이 위치의 전환을 시도할 것이다. 다만 그 위치를 위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패배자로 규정하고 연대하기 보다는 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고 끊임없이 위로 가려고만 한다. 자신의 미래상에는 아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설사 아래를 생각해도 그건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를 확보한 후에야 가능하다. 사람들도 낮은 위치에서 부르짖는 외침은 불평, 불만의 소리라고 치부하고 어느정도 기득권자가 주장하면 개혁적이라 평가한다. 웃기는 일이지만 현실이다.  

김두식교수자체도 기득권자가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는 이 땅에서 최고로 여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합격에 지금은 대학교수다. 현판으로만 따지면 어디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말하는 인권의 가치를 보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만 하다. 그러나 이 사람의 글 속에는 그런 오만함이 없다. 계몽적이지 않고 그저 현실의 부당함을 잔잔하게 끄집어 낸다. 그리고 자신의 고민도 그대로 투영시켜 낸다. 그래서 설득력이 더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김두식이나 기획은 국가인권위원회다. 인권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인권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면 결국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어떠해야 할 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관계에 대한 질문을 영화를 통해 풀고 있는 이 책은 어떤 인권 교과서 보다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건 아마 김두식이란 사람이 품고 있는 진정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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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고 가을이다.
몇일 피곤함에 쩔었다가 아무런 일정도 없는 토요일을 맞이하니
몸이 비명을 지르며 알아서 까무라친다.  

늦게나마 몸을 추스리니
10월이고 가을이다.
그냥 이러저러한 상념이 고개를 쳐들고...
가을에 맞춤한 시 한 편이 생각난다.  

  

길 - 김기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처럼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빰의 얼룩을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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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9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0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햇살은 따스하고 하늘은 맑다.. 
아침, 저녁의 쌀쌀함은
여름이 지나갔음을 알려주는 흔적

이 가을 이 따스한 햇살아래
옷깃 틈 사이로 스며드는 서늘한 바람속에
한 시절이 저물어 간다.

잊혀진 줄 알았던 당신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렇게 가을은 풍성한만큼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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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08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오랜만에 듣는 곡입니다.
가을답네요.

예전에 '나뭇잎 사이로-' 라는 첫 음절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머큐리 2010-10-08 22:52   좋아요 0 | URL
예전에...ㅎㅎ
지금은 가슴 설레는 것도 귀찮으신 마고님..^^;

음악 많이 올려주실 것 처럼 그러시더니 왜 음악은 안 올리실까요??

sslmo 2010-10-09 0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조동진 하면,'밥줘''나다''자자'하루에 이 세마디를 하고 살았다던 전설이 생각나요~^^

그렇게 말을 아껴 이렇게 멋진 시를 쓰고,멋진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거 겠지만요.
 
네 마음껏 살아라! - 생의 끝자락에 선 아버지가 아들에게
티찌아노 테르짜니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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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기 전에 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테찌아노 테르짜니는 1938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1972년에서 1997년까지 독일의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특파원으로 홍콩, 베이징, 도쿄, 방콕, 뉴델리에서 주재하면서 베트남 전쟁, 캄보디아 내전, 문화혁명 후의 중국 등 아시아의 격동적인 현장을 누비고 다녔던 기자였다.  

저자가 태어나고 자라난 시대는 2차대전 이후의 경제 성장기였고, 젊은 시절 68혁명을 경험하고 제3세계에서 식민지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이며, 정체되기 시작한 서구 운동에 아시아가 새로운 가능성을 던져주던 시대였다. 특파원으로서 기자로서 그리고 마오와 간디에게 많은 영감을 얻었던 저자는 아시아 특파원 생활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문제, 정치와 개혁의 문제 등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특히 서방기자였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당파적인 입장에서 미국이 침략전쟁을 반대했고, 중국의 문화혁명에 대한 지지를 보냈지만, 혁명 후 경직되어가는 사회를 보고 많은 절망을 한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하길 혁명은 사회개혁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혁명은 사람의 문제이다. 사람이 변하지 않고 또는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혁명은 그 자체로 재앙이 되어 버렸다.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정치가들은 그들이 미쳐서가 아니다. 그들은 일관된 자신이 계획과 논리로 무장하고 있었고 흔들림없는 신념이 있었다. 그리고 외적 강제로 사람들이 변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었으며,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그는 정치의 무용성을 발견하고 인간 존재 그 바닥까지 떠나는 여정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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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09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조선일보'문제에 엄격한 이유는 '조선일보'문제를 대단한 일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기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야.만 명의 사람에겐 만 개의 생각이 있을 수 있어.그러나 사람에겐 사람임을 증명하는 기본이라는 게 있고 '조선일보'와 상종하지 않는 건 그 가운데 하나야.'조선일보'에 글 쓰는 놈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야.

김규항의 한구절이 생각나서 옮겨봤어요.
리뷰가 '작성중'이었군요.이런 방법도 있네요.
'혁명은 사회개혁의 문제가 아니라,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이 구절에 밑줄 쫘악 그어 데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