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서도 매주 하루는 4대강 반대 집회를 가졌다. 봄이 오니 오히려 회원들의 일상이 더 바빠진 모양이다. 최소한 10명이상 되고 마이크 잡고 4대강 반대 집회를 하던 때와 다르게 소수로 피켓시위만 했더니 급격하게 시비(?)를 거는 사람이 늘어난다.  

모양은 각양각색이다. 일방적으로 '빨갱이' 소리에 욕설을 하는 놈부터 과거의 경부고속도로와 경인고속도로 예를 들어가며, 지금은 황당해 보여도 나중에는 4대강 개발에 대해서 고마워 할거라는 설득형까지... 솔직하게 자신이 보고픈 면만 보기에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딴지 걸어주시는 연로한 남성분들과 이야기 하는 거 정신건강에 아주 해롭다. 특히 초장 욕설에 빨갱이 까지 나와 버리면 경노사상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두 주먹 불끈 쥐게 되는 긴박한 상황이 심심치 않게 나오게 된다.  

결국...이런 얘기다. 니덜이 4대강 반대한다고 하지만 개발끝나면 고마워할거다. 그리고 그때가서 반성문 제출해라.... MB도 그러더라 개발 끝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어쩜 이리 부창부수인지 모르겠다. 지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저리도 당당하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다. 처음에는 부족한 식수와 강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4대강 개발을 한다고 큰 소리 쳤다. 지금은 유람선 띄우고 자전거 도로에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단다. 애당초 목적이 관관용이라면 처음부터 국민들을 기망한 것이요... 어쩌다 목적이 변경된거면 쓸데없는 데 돈 처바른 걸 고백한 것에 다름아니니 저 삽질 밖에 모르는 정신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가 쫓아올까봐 그러는지 공사를 불도저 식으로 강행하니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하루 17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이라는데 그 노동의 열매는 누가 가져가나? 결국 토건족과 지방토호들의 배를 국민의 세금으로 불려주고, 개발 후 여유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관광으로나 사용하겠다는 저 야심을 보면 그냥 암울해진다. 더불어 별로 가지지도 않고 여유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4대강 개발 반대한다고... 대통령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고 시비하는데 정말 이 놈의 나라는 비판적 시민정신이까지 팔아 먹은 나라는 아닌지 의아하게 한다.  

지류까지 손 볼 모양이다. 거의 20조 가까이 예산을 쓴다는데... 그 예산이면 무상급식도 하고 등록금도 반값으로 내리고 소외된 노인들이나 어려운 중소기업들, 청년실업자들에게 무언가 희망을 줄수 있는 많은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환경까지 오염되지 않으니 더 좋지 않을까? 왜 이런 생각들을 나눌 수 없는 것일까? 

암튼 두고 보겠다. 4대강은 이제 누가 정권을 잡던 국정조사 1순위 감이다. 나중에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면 시비건 놈들 사과하는지 두고 보겟다. 만일 내가 잘못이고 정말 이 땅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판명되면 나는 반성문 제출하겠다. 그러니 두고 보자.
사람이 조금 모이고 4대강 이슈가 가라앉은거 같으니 만만해 보일거다. 원래 가라앉았다가 치고 올라오는게 더 파괴력이 큰 법이다.   

강은 그냥 흐르게 두자....그것이 우리가 자연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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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1-04-20 18:38   좋아요 0 | URL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죠...ㅎㅎ

2011-04-18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1-04-20 18: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4-19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일원동에 갈일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무상급식 반대' 서명 하는 거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ㅠ.ㅠ

이제 4대강으론 모자라서 지류까지 건드린다고 하지요.
시행 주체가 바뀌면 강의 흐름도 바꿀 수 있을까요?

머큐리 2011-04-20 18:39   좋아요 0 | URL
무상급식 반대하는 오세훈이 '포퓰리즘적 복지 반대'를 위해 대선에 나온다고 하네요,,,썩을~

무해한모리군 2011-04-19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슬슬 한고비를 넘겼으니 얼굴을 자주 디밀게요..
제가 악한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ㅎㅎㅎ

머큐리 2011-04-20 18:39   좋아요 0 | URL
천군만마를 얻는 느낌이죠..ㅎㅎ
 

한겨레 기사 : www.hani.co.kr/arti/culture/book/471145.html 

종교·음악·영화 등 5개 분야
통섭글쓰기로 ‘인문부활’ 꿈
“책 한권 쓸때마다 머리칼 빠져
고된 작업이지만 가슴은 훈훈”  


인문학 총서 5권 펴낸 언론인 김종철씨

“인문학의 위기를 문화적 통섭과 교류로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종교는 옳은가> (21세기북스) 등 인문학 총서 5권을 동시에 펴낸 김종철(67) 전 <연합뉴스> 사장은 31일 ‘문화 통섭’을 통한 ‘인문 부활’의 꿈을 강하게 드러냈다. 김 전 사장은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75년 자유언론실천운동으로 강제해직된 뒤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을 거쳐 88년 <한겨레> 창간 초기 편집부국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문화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문화의 소비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이지요.” 그가 문화의 옥석을 가리는 안내자 노릇을 자처한 이유다.

이번에 쓴 종교·교육·글쓰기·음악·영화 분야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첫 문화 체험은 소리, 즉 음악이었다. 네댓 살부터 아버지 무릎에서 들었던 부친의 애창곡 ‘낙화유수’의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였다.

음악은 박정희 정권 당시 시위 때문에 휴강이 잦던 대학시절로 이어졌다. 당시 대학생들의 해방구였던 음악감상실 세시봉 콘서트는 그에게도 감회가 남다르다. 대학 3학년 때인 66년 세시봉 사장에게 ‘대학생의 밤’이라는 무대를 제안했던 기억이다. “사람들의 출입이 가장 적었던 금요일마다 한번씩 해보자고 설득했지요.” 새파란 젊은이의 무모한 제안에 사장도 선뜻 화답을 해줬다. “그때부터 바빠졌지요. 기획하랴 섭외하랴 이른바 피디였어요.” 그는 당장 홍익대 근처로 달려가 당시 최고의 기타리스트 강근식이 이끄는 홍대밴드를 세시봉 대학생의 밤, 첫 무대에 올렸다. 사회자는 이상벽씨였다. “당시 230석 자리가 빈틈없이 채워져 성공했지요.” 그 다음주는 서울대 밴드가 나타났다.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이 밴드마스터였다. 당시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이었던 최일남씨를 초청해 명사와의 대화라는 자리를 만들어 사회까지 봤다.

종교 쪽을 저술하면서는 암초를 만난 듯 한발짝도 나가지 못할 때가 있었다고 했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 등 민감한 쟁점을 깊게 다루기 위한 자료 섭렵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엔 문익환 목사, 함세웅 신부, 지선 스님 등이 타종교를 존중하고 한마음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엔 종교인들 가운데 권력의 편에 서서 핍박받는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인권 경시현상이 뚜렷해 아쉽습니다.”  

교육도 만만치 않았다. 경쟁과 성적 위주의 사회에서, 꼴찌가 없고 더불어 행복한 교실을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책 한 권 쓸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웅큼 빠지고 얼굴살이 홀쭉해지는 고된 작업이지만 그래도 ‘문화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추구하는 작업이기에 그의 가슴속은 훈훈하다. 그가 <라디오스타>나 <자전거도둑> 등 따뜻함이 담긴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총서는 내년에 언론·스포츠·공연예술·미술·여행 등 5권을 더 채워 총 10권의 시리즈로 마무리할 계획이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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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과 착각 - 인간은 정말 동물보다 우월한가?
퍼트리샤 브로진스키.제임스 깁슨 지음, 이채진 옮김 / 시아출판사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인류에게 하고픈 말이 많으신 분이 쓴 책이다. 인간은 선하다라는 위선을 깨고 있는 그대로를 보라는 것인데... 날 것 그대로의 인류는 위선덩어리이자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존재다.  

서구 기독교의 인간 우월론에 대한 강한 비판이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인류는 위선과 착각속에 자멸할 것이라는 경고다. 그 위선을 밝혀내기 위해 인간의 역사를 차근 차근 돌아본다. 돌아본 인간의 역사는 전두엽발달의 역사이자 사고 발달의 역사이고 야만성이 증진해온 역사이다.  

본능에 충실하지 않고 사고하기 시작한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과 분리해내기 시작한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종이 아닌 자연을 착취하고 자연을 개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많은 제도와 질서을 창조하고 이 질서와 제도를 스스로에게 부과시킨다. 그럼으로 인류는 본능을 초월한 도덕을 가졌다는 위선에 빠지고 현재의 모습이 원래의 인간 본성이라는 착각에 도취한다는 것이다.  

같은 종을 멸절시키는 유일한 종인 인간은 사실상 윤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자신의 멸망과 더불어 이 지구상의 모든 종을 멸망시킬 야만적 파괴성을 지니고 있는 종인 것이다. 여기까지 급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대안이 조금 미묘하다.  

저자들은 융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융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전재 인간 본래적 고유성을 찾으면 이러한 모순을 극복해 낼 수 있으리라 믿는 듯하다. 그 고유성이 무엇인지 스스로가 탐색해야 하며 그 길은 보편적인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니고 니체의 표현대로 지금의 인간을 극복해 내는 '초인'의 길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초인은 스스로 형성시켜 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 도달점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결합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안보이는 점이 한계로 보인다. 사실상 인간 종의 위험성은 융심리학에서 주장하지 않아도 이들이 비판하는 '이성'의 힘만 조금 사용하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해결책은 '이성'을 배체하는 것이고 본연의 자아를 찾는 것이다. 그 차이를 사실 잘 모르겠다.  

'이성'이 쌓아 온 이 문명을 개인의 '자아'를 찾아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낙관적 희망에 대해 일견 긍정하면서도 현실적인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개개인이 찾은 '자아'가 과연 파괴와 공격적인 본성을 극복하리라는 전망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모든 개별 혁명이 개인으로부터 시작하더라도 혁명의 끝은 사회로 종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집단적 인류의 종이 변할 수 없을 것이고 다시 회의적이고 절망적인 전망만 늘어놓을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우리 인간이라는 종은 이렇게 야만적이고 황당하고 모순덩어리이자 기만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탁월함은 있다. 자 문제는 제기했지만 그 해결책은 이 책으론 부족하다. 무언가 더 필요한데... 그건 모든 사람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문제제기 만큼은 참으로 인상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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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18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페이퍼 제목이 정말 공감이 팍팍 갑니다.
그리고 융 심리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인간이란 종의 위험성은 알 수 있다는 말씀두. ^^

어제요, 두더지 쥐던가, 사회성 동물을 보는데요,
그녀석들은 정말 평화롭게 일을 나누더군요. 이왕 사회성 동물이 되려면
그렇게 진화되었으면 좋을건데 말이죠, 어중띵하게 진화된 인간... ㅎㅎ

그래두....... 확실한 봄이네요, 즐거운 일 가득하셔요.

머큐리 2011-04-18 17:23   좋아요 0 | URL
주말에 봄기운을 좀 만끽하셨는지...ㅎㅎ
 
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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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생각해보자... 긍정적인 사람들은 확실히 매력이 있다. 우울함이 판치는 세상에서 매사를 밝고 건강한 시각에서 사고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돋보이기 마련이다. 더구나 세상은 매사에 긍정적일 것을 요구한다. 이젠 하나의 트렌드처럼 되어 버렸다. 문제는 사실 긍정적으로 사고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긍정의 함정이 도사린다. 이 책은 긍정적일 것을 거의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사회의 심층을 보여준다. 자... 자신을 위해 긍정적이라 생각하는게 올바른 것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과도한 긍정의 찬미는 그만큼 현실이 우울하다는 것의 반증이라는 것이다. 우울한 세상을 건너기 위해서는 밝고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지녀야 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불안과 깊은 연관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현실에 불안함을 깊게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안함과 싸우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개조하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밝게.....신이 사라진 시대에 심리학이 이러한 분위기를 주도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이 어느새 인간의 심리를 조작하는 학문으로 변질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질에는 이유가 있다. 노동유연화를 통한 해고와 불안을 잠재우고 구성원들의 열정과 노동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좋은 방법이 바로 정신적 개선인 것이다. 때문에 미국의 대기업들은 긍정적 사고를 코칭하기 위한 교육예산을 들여 직원들을 교육하기 시작한다.  

과도한 긍정과 과도한 불안의 쌍은 종교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기복신앙이 강한 한국의 경우 기독교는 이미 맘몬을 섬기는 종교가 되어버렸다. 매번 기도하는 축사는 개인의 건강과 소원성취, 부의 확장을 연설하고 그것은 종교에 귀의함으로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교회들은 신보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능력의 확장에 더 무게 중심을 둔다. 신에게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신도 축복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신은 그저 인간의 보조물로 전락할 뿐이다. 인간이 강력하게 원하면 들어주는 신.....  

물론 책이 긍정적 삶에 대한 의미를 깍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긍정적 삶 이외의 태도에 대한 강한 거부와 배척에는 이데올로기적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는 노동자의 헌신을 강화하고 모든 사회문제를 개인화하며, 빈곤과 가난의 책임을 개인의 태도로 치환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회의를 통해 더욱 건강하게 사회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음에도 긍정적 태도에 대한 강박이 이러한 비판 정신을 깍아 내리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어려울 때 긍정적으로 사고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긍정의 힘이 내면의 변화와 의식의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적 위안과 평화가 아니라 비판과 연대이다. 개인적 평화를 구하다보니 연대는 이루어지지 않고 비판적 시각은 긍정적이지 못한 태도로 배척되기 시작한다. 여기에 비합리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최근 자본주의 금융위기가 단순하게 긍정적 태도의 문제로 발생한 것은 아닐지라도 위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거두고 잘못진행되고 있음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극복된다는 관념적 기대가 일정부분 기여한 것도 사실인듯하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리만의 부도는 상징적이다. 긍정적인 희망을 버리지 않되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 그리고 개인의 안녕과 부의 축적이 아니라 연대에 대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 결론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런 연대도 개별화된 개인주의적 긍정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가 생각났다. IMF 이후 이 땅에서 불어온 자기계발서적 열풍은 어쩌면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기 위해 긍정적 사고로 무장하기 위한 우리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국가와 기업의 이해와 맞아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관념적인 자기계발서를 치우고 현재의 문제에 맞서 같이 가야할 동료들을 규합하는 것이 방법이 아닐까....사회와 개인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이 필요한 시점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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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1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전혀 긍정적인 구석이라곤 없는 인간이어서 인지 모르지만,
부정이 변화를 모색할 수 있고, 그래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가 더 그럴 듯 한걸요~^^

머큐리 2011-04-14 16:47   좋아요 0 | URL
양철댁이 긍정적이 아니면 누가 긍정적일까요~~~^^

마녀고양이 2011-04-14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론에 동감합니다.
긍정적이어야 한다 행복하고 싶다고 엄청나게 외치는 것은
그만큼 불행하고 힘들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들어 중용이나 만족이 더 풍요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

머큐리 2011-04-15 08:30   좋아요 0 | URL
'중용'이야말로 정말 고민해야할 가치가 있는거 같아요...ㅎㅎ
 

 대학이란 세상과 학문을 탐구하는 곳이다.... 난 이 이상 대학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겠다.  

대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졌을 때, 그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타고난 재능도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발휘되는 것이다. 아무리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천재라고 불리워도 한국에 오면 그냥 자퇴생에 공돌이가 될 뿐이다. 그렇기에 재능이 뛰어나 사회적인 부와 명성을 일군 사람들은 어느정도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자살... 무한경쟁... 여기에 어디 대학의 모습이 있는가? 측정하려는 학교의 순위가 내부 구성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게 '개혁'이라 칭하는 것은 언어의 타락일 뿐이다. 대학이 이미 대학 본연의 모습을 지키지 못했을 때 '대학'이란 단어는 사라지고 없다.  

문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 학생들이 죽어가도 총장은 경영자의 모습을 보여줄 뿐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카이스트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대학의 문제다. 카이스트는 그 모든 문제들이 극단화된 전형적인 예일 뿐이고, 문제를 피해가는 총장의 모습도 극단화된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솔직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진중권의 글을 옮겨 놓는다. : hook.hani.co.kr/archives/25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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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13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대학이 대학이라 할 수 있을까요?
난립하고, 배움의 장터는 아닌... 저는여, 요즘
사이버 대학을 다니면서 진짜 노력하는 분들을 봐요. 그런 노력이 진짜라 생각해요.
배우고 싶어서 배우고, 무엇인가 이루려고 배우는 그런거요.

머큐리 2011-04-13 13:32   좋아요 0 | URL
아~~~ 마고님이다...우등생 마고님..ㅎㅎ

순오기 2011-04-1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착잡합니다!

머큐리 2011-04-14 09:38   좋아요 0 | URL
지금 대학생활 하라고 하면 전 못할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