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사 : www.hani.co.kr/arti/culture/book/471145.html 

종교·음악·영화 등 5개 분야
통섭글쓰기로 ‘인문부활’ 꿈
“책 한권 쓸때마다 머리칼 빠져
고된 작업이지만 가슴은 훈훈”  


인문학 총서 5권 펴낸 언론인 김종철씨

“인문학의 위기를 문화적 통섭과 교류로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종교는 옳은가> (21세기북스) 등 인문학 총서 5권을 동시에 펴낸 김종철(67) 전 <연합뉴스> 사장은 31일 ‘문화 통섭’을 통한 ‘인문 부활’의 꿈을 강하게 드러냈다. 김 전 사장은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75년 자유언론실천운동으로 강제해직된 뒤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을 거쳐 88년 <한겨레> 창간 초기 편집부국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문화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문화의 소비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이지요.” 그가 문화의 옥석을 가리는 안내자 노릇을 자처한 이유다.

이번에 쓴 종교·교육·글쓰기·음악·영화 분야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첫 문화 체험은 소리, 즉 음악이었다. 네댓 살부터 아버지 무릎에서 들었던 부친의 애창곡 ‘낙화유수’의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였다.

음악은 박정희 정권 당시 시위 때문에 휴강이 잦던 대학시절로 이어졌다. 당시 대학생들의 해방구였던 음악감상실 세시봉 콘서트는 그에게도 감회가 남다르다. 대학 3학년 때인 66년 세시봉 사장에게 ‘대학생의 밤’이라는 무대를 제안했던 기억이다. “사람들의 출입이 가장 적었던 금요일마다 한번씩 해보자고 설득했지요.” 새파란 젊은이의 무모한 제안에 사장도 선뜻 화답을 해줬다. “그때부터 바빠졌지요. 기획하랴 섭외하랴 이른바 피디였어요.” 그는 당장 홍익대 근처로 달려가 당시 최고의 기타리스트 강근식이 이끄는 홍대밴드를 세시봉 대학생의 밤, 첫 무대에 올렸다. 사회자는 이상벽씨였다. “당시 230석 자리가 빈틈없이 채워져 성공했지요.” 그 다음주는 서울대 밴드가 나타났다.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이 밴드마스터였다. 당시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이었던 최일남씨를 초청해 명사와의 대화라는 자리를 만들어 사회까지 봤다.

종교 쪽을 저술하면서는 암초를 만난 듯 한발짝도 나가지 못할 때가 있었다고 했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 등 민감한 쟁점을 깊게 다루기 위한 자료 섭렵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엔 문익환 목사, 함세웅 신부, 지선 스님 등이 타종교를 존중하고 한마음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엔 종교인들 가운데 권력의 편에 서서 핍박받는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인권 경시현상이 뚜렷해 아쉽습니다.”  

교육도 만만치 않았다. 경쟁과 성적 위주의 사회에서, 꼴찌가 없고 더불어 행복한 교실을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책 한 권 쓸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웅큼 빠지고 얼굴살이 홀쭉해지는 고된 작업이지만 그래도 ‘문화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추구하는 작업이기에 그의 가슴속은 훈훈하다. 그가 <라디오스타>나 <자전거도둑> 등 따뜻함이 담긴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총서는 내년에 언론·스포츠·공연예술·미술·여행 등 5권을 더 채워 총 10권의 시리즈로 마무리할 계획이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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