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panda78 > 13세기 비잔틴( Byzantine)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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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hroned Madonna and Child, 13th century

 

 

Madonna and Child on a Curved Throne, 13th century

 

 

Master of Saint Francis
Saint James Minor, probably c. 1270/1280

 

 

Master of Saint Francis
Saint John the Evangelist, probably c. 1270/1280

 

 

Paolo Veneziano
The Coronation of the Virgin, 1324

 

 

Paolo Veneziano
The Crucifixion, c. 1340

 

Duccio di Buoninsegna
The Calling of the Apostles Peter and Andrew, 1308/1311

 

 

Duccio di Buoninsegna
The Nativity with the Prophets Isaiah and Ezekiel, 1308/1311

 

 

Giotto
Madonna and Child, probably 1320/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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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미국의 인상주의 미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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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러는 마싸츄세츠(Massachusetts)의 로웰(Lowell)에서 태어나서 잠간 동안의 어린 시절과 성년이 된 후로는 거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미술수업과 작품활동을 하면서 살았다.그는 1851년에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군인의 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가 3년 후에는 그 곳을 나왔다. 그 이후  처음으로 선택한 직업은 미국해안 순찰소에서 도안사로서 일을 한다. 그가 21세 되던 1855년에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프랑스 화가인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1877))등의 유명화가와 친해지기 시작하였다. 1863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주관하던 살롱전에 참가하여 그의 작품도 같이 전시되었다.그는 유화와 더불어 수채화와 동판화에도 전념하여 탁월한 재능으로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생애의 말년에는 거의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대중으로부터 매우 주목받는 화가가 되었으며 1903년에 영국의 런던에서 생을 마쳤다. 우측은 [휘슬러의 사진모습],  좌측은 <쿠르베의사진모습>

회색과 흑색의 배합[Arrangement  in Gray & Black] 1872년경 작품,유화

  • 화가의 어머니를 그린 작품


보라색과 장미 [Purple and Rose] 유화

낮잠 [Note in Red- The Siesta] 1882년 8.3'x12'


흰색의 화음 [ Symphony in White No 2] [The Little White Girl ]1864년

 황금과 보라색 [Caprice in Purple and Gold No 2] [The Golden Screen] 1864년


독학화가이면서 주로 고독하고  힘찬 바다풍경화에 뛰어났다
윈슬로 호머는 토마스 어킨스(Thomas Eakins)와 함께 19세기 미국의 가장 훌륭한 화가중의 한 사람이다. 보스톤에서 태어나서 그는 다른 화가와 달리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하였으며 21세인 1857년부터 잡지사의 일러스터로 일을 시작하였고 주간지인  '하-퍼'잡지의 정기적인 기고가가 되었다.그 이전인 1856년의 1년간을 프랑스에 생활하면서도 프랑스의 미술과 한창 태동하기 시작하던 초기 인상주의로 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못하였다.그가 45세 되던 1881년에 영국의 어항마을에서 1년간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그가 선택하거나 좋아한 작품의 주제에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즉 자연에 대한 엄숙한 풍경에 몰입하였고 특히 바다풍경을 위시하여 어부들과 그 가족들의 리얼한 삶의 모습과  배경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미국으로 귀국한 이후부터 주로 메인 해안(Maine Coast)에 산재해 살고 있었던 외롭고 쓸쓸한 어부들의 생활과 풍경을 자주 그려 나갔다. 그의 바다풍경화를 보면 그가 그림 솜씨에 한창 원숙기에 접어 들어 그린 것으로 가장 벅찬 소재를 선택하더라도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그림속에는 서사적이면서 영웅적인 의미와 색조까지 품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메인 해안의 절벽 [High Cliff, Coast of Maine] 1894년


도전 [ Defiance- Inviting a Shot Before Petersburg, Virginia ] 1864년 12'x 18'

옥수수 껍질 벗기기 [Corn Husking]

 건초 모으기 [Haymaking] 1864년

서풍  [The West Wind] 1891년

바람부는 날씨  [Weather Beaten] 1894년 28'x 48'

 

최초의 프랑스 인상파 화가그룹에 참여한 여성멤버     
   카세트는  펜실버니어에서  미국의 유명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가족은 7살 때  프랑스 파리로 건너 갔으며 독일 등의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보내다가 1885년에 미국으로 귀국한다. 그녀가 1861년에는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가장 선망하던 펜실버니어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그녀가 어릴 때 프랑스의 미술관에서 본 명화들에서 얻은 큰 인상이 기초가 되었다. 그녀는 일생을 부모와 함께 거의 프랑스에서 생활하였는 데  특히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그룹의 중요한 멤버가 되었지만 초기엔 그 자신을 가리켜서 인상주의의 화가(Impressionist)라는 말을 싫어하였고 그대신 자신을 동료에게 독립된 화가(앙데팡당 Independants)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그녀가 인상주의와 인연은 일생동안 40년의 긴 세월을 서로 동료가 되었던 <드가>의 권유로 1879년,1880년,1881년과 1886년에 걸쳐  4차례를 프랑스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하였으며 미국인으로 유일하게 참여한 화가가 되었다. 이는 <드가>의 눈에  처음부터 그녀의 작품이 띄어 그의 전시회에서도 함께 초대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한 때 모자간에 정다운 모습과 가정적인 배경그림을 특히 많이 그렸으며 초상화의 구성에 있어서도 친밀하고 자연스러운 모습과 제스쳐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미술계에서 그녀의 인상주의 작품들이 인정을 받는 데에는 상당한 기간이 지나서 였으며 비교적 늦게 알려졌다. 특히 그녀는 <드가>등의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와 그 이전의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미국의 애호가들이 구입하도록  주선하는 역할까지 함으로써 현재 중요한 유럽의 명화들이 미국내에서 소장하는 계기가 되었다.이로서 1904년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카세트가 미국의 미술 수집가들이 모네 등 화가들의 인상주의 작품을 매입하도록 널리 권고하고 알리는데 기여한 최초의 미국사람으로 그 공로를 인정하여 뢰종도뇌르 훈장(La Legion d' Honneur)을 수여한 일이 있다.  

카세트의 자화상 [Self Portrait], 과슈 ,60.1 x 41.2 cm,1878년 


포옹 [The Caress] 32.9'× 27'

밀짚모자를 쓴 소녀 [Child in a Straw Hat] 1886년


푸른 보네트 모자를 쓴 시몬 [Simone in a Blue Bonnet] 1903년,유화

  • 카세트는 시몬 양의 모습을 성장과정에 걸쳐 전부 16개의 작품을 그렸다


차마시는 시간  [The Cup of Tea]

자매 [The Sisters]

투우사 [Toreador] 1873년

바느질 [Young Mother Sewing]

 

아담스는 아이오와(Iowa)주의 존슨 카운티(Johnson County)의 아미티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와바스 대학(Wabash College)에 입학하였다.그리고 런던으로 미술공부를 하러 떠났으며 영국의 남부 켄싱턴 미술학교에서 2년간을 공부하다가 1880년에는 뮤니히로 건너갔다.그의 동료들이 모인 후지어 그룹(Hoosier Group)의 화가들과 같이 그도 외국에서 미술공부를 하였고  초기에는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로서 뮤니히 근처에서 활동한 큐리어(J. Frank Currier)밑에서 외광의 표현기법을 터득하였다.그의 작품을 보면 잡히기 어려운 빛의 특질과 반사를 표현하는데  있어 대단히 탁월한 화가이다.

여름날 오후 [A Summer Afternoon]유화, 15 1/2' x 21'


청색과 황금색 [Blue & Gold] 1904년


부룩빌 풍경 [Brookville] 1903년

접시꽃옆의 소녀 [Little Girl With Hollyhocks]

양귀비 정원 [Poppy Garden]

여름철 [ Summer Time] 1890년

웨어는 미국의 초기 인상주의 화가의 한사람이다. 어릴 때 이름난 역사화가(history painter)이던 아버지 로버트(Robert W. Weir (1803-1889)로 부터 미국의 육군 사관학교에서 드로잉을 배웠으며 1867년에는 뉴욕의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미술을 배웠다. 1873년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으며 야광화가(The Plein Air Painter)이던 르파즈(Jules Bastien-Lepage,1848-1884)와 유명한 예술회원이였던 제롬(Jean-Leon Gerome,1824-1904)으로 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1882년에 뉴욕으로 돌아와서 주문 초상화를 그리면서 교사로 생활하였다. 1800년대에 웨어가 그린 초상화는 다소 어두운 색조로 견실한 외형을 지닌 깔끔하고 전형적인 스타일로 그린 것이 많다.

그는 미국 미술계에서 <허드슨 리버 스쿨 (Hudson River School)>이라는 그룹의 한 사람이였다.이 화파는  1825년부터 1875년까지  무려 50년간을 지속하였는데 특히 미국의 낭만주의 미술계를 발전시켰다.그의 작품에는 형언할 수 없는 빛과 색조의 농담이 특징적이다.그는 1877년에 미국화가 협회를 창설하고 1866년에는 국립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1915부터 1917년까지 협회의 회장으로 지냈다.

소녀의 초상화 [Portrait of Young Girl]유화


창가에 기대서서 [Against The Window] 1884년, 유화

공장이 있는 마을 [Factory Village] 1899년 29'x 39'


풍경 [Landscape] 1894년

목초동산 [Upland Pasture] 1905년 39.9'x50.25'

전통적인 인상주의 화법으로 고도의 서정적인 작품을 표현하다
그는 1852년 버몬트의 이러스버그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릴 때인 1869년부터 시카고의 디자인학교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그림을 배웠다.1874년에는 뉴욕의 국립디자인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프랑스의 미술에 매혹을 느끼고 2년 후 파리로 가서 프랑스의 유명한 초상화가이며 서전트(Sargent)의 스승이기도 한 카롤러스 듀란(Carolus-Duran)의 화실에 들어가 사실주의 화풍으로 풍경화와 인물화 기법을 배웠다. 그는 미국 인상주의 흐름의 선도적인 화가로서 인상주의가 나타내는 형태와 구성에 있어 전통적인 규칙을 바탕으로 색채와 빛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켰으며 특히 인상주의 화법에 있어 고도의 서정적인 표현을 잘 묘사한 인물이다. 로빈슨은 1879년에 미국으로 귀국하여 그림을 그렸으나 오랜 기간을 재정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로빈슨의 사진모습]
  모네와 함께 살면서 서로 친구가 되었고 미국에 인상주의를 보급하다 
1884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서 파리에서 40마일 떨어진 당시 모네가 살고있는 지베르니에서 북미의 6인 화가들을 만난다. 그들은 바로 북미의 젊은 화가로서, 브랙(John Leslie Breck),타일러(Henry Fitch Taylor),웬델(Theodore Wendel),메트칼프(Willard Metcalf),그리고 카나다 화가인 브루스(William Blair Bruce)였다. 지베르니란 곳은 세느강이 주위에 위치하고  정상부분이 산이 이룬 곳이어서 자연외광에서 그림그리기가 가장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로빈슨의 작품구성과 형태는 보다 강하게 하되 섬세한 색채를 구사하고 빛갈은 느슨하면서도 변칙적인 붓질로 표현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 연출을 끌어낸 화가이다.당시 모네는 지베르니로 방문하는 외국의 화가에 대하여 거의 피하곤 했으나 로빈슨과 브랙(John Leslie Breck) 및 여성화가인 페리(Lilla Cabot Perry)에게는 스승과 제자 사이는 아니었지만 서로의 작품을 비평해 가면서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특히 로빈슨은 파리와 미국을 서로 오가면서 인상주의 이념을 전파하는 역할을 한 미국인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최초로 인상주의 작품에 대하여 전시회를 미국에서 개최하였던 화가이다. 그는 1896년에 심한 천식으로 일찍 생을 마감했다.     [ 위 사진은 로빈슨(앉아 있는)과 친구며 화가인 콕스(Kenyon Cox :1856-1919)의 사진 모습]
과수원에서 [In The Orchard] 18'x 22'

소 지키기 [Watching the Cows] 1892,유화, 16' X 26' (40.6 x 66.0 cm)


작은 다리 곁의 메어리 [Mary at the Little Bridge] 1892년 18'×22'

가을의 햇볕 [ Autumn Sunlight] 18'x 22'

봄 풍경[Spring Time]12.6'x15.6'

숲 주변풍경 [The Edge of the Forest] 17.2' X 22'


데이지 들판 [ In a Daisy Field] 22' x 15.2'

꽃송이가 지닌 추억  Flower of Memory 1881년, 22.2' x16.2'


 

 

프랑스의 모네(Monet)와 미국의 휘슬러(Whistler)에 비견되는 화가
트와츠먼은 19세기 말경에 가장 정통적인 미국 인상주의 화가의 한 사람으로서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1875년에 독일로 건너가서 뮤니히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난 이후에는 파리로 옮겨 수업하면서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로 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그 당시 미국의 화가들 중에서 가장 선구적인 인상주의 화가가 되었다. 그의 화풍은 인상주의와 더불어 색조주의(Tonalism)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그를 두고 가끔 인상주의 대가인 프랑스의 모네(Monet)와 미국의 휘슬러(Whistler)에 잘 비견하고 있지만 사실 트와츠먼의 스타일은 보다 독특한 것이었다.그의 이름난 작품들은 특히 엷은 색조를 이루었으며 마치 이른 봄과 겨울의 멋진 분위기와 색채를 일깨우는 듯한 꿈결같은 풍경화를 자주 그렸다. <트와츠먼의 사진모습>
자연의 감흥을 표현하되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개발하다                            
그는 자연의 감동적인 성격과 감흥을 표현하는데 있어 실험적이면서 그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개발한 사람이다. 독일이민의 자손으로 오하이오주의 신시네티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릴 때부터 디자인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면서 동료화가인 듀버네크(Duveneck)와 극친하였고  이들 두 사람은 독일에서 있을 때에도 <뮤니히 왕립 아카데미(Munich Royal Academy)>에 같이 생활하였다.1878년에 미국으로 귀국하여 뉴욕과 고향에서 번갈아 생활하면서 대담한 사실주의 화풍으로 바다와 항구등의 자연풍경을 주로 그렸다. 그가 1902년이 되어 48세에 조급히 세상을 떠날 때까지 뉴욕에 가족들과 같이 옮겨 살면서 한동안 미술학교의 교사생활을 하였다. 
고독한 삶으로 서정적인 겨울풍경을 그리면서 살아간 화가
트와츠먼은 코네티컷의 그린위치 부근에 있던 그의 농장에 대한 풍경을 많이 그렸다. 그가 1890년에는 시골의 땅을 점차 사들여 결국 17에이커의 넓은 농장과 집을 가지게 된다. 그가 1891년에 친구화가인 웨어( J. Alden Weir)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시골생활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시골생활을 하는데 있어 특히 고독이 밀려 올 때에는 나는 오히려 날이 갈수록  점차적으로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네. 고독하다는 것은  우리가  자연에 더욱 가까이 닥아선 것이라서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시골에서 늘상 생활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지금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네....'

봄의 풍경 Spring Landscape, 유화,15' x 18'


겨울의 조화 [Winter Harmony]유화


풍경 [Landscape] 1889년 20' X 29'


겨울 강을 따라 [ Along the River, Winter]

가을의 안개 [ Autumn Mists] 1890년 25'X 30'

코네티컥의 겨울 해변[Connecticut Shore, Winter]1893년 24'X. 30'.

소나무가 있는 연못 [Hemlock Pool],1900년 30'X 25'

안개낀 5월의 아침 [Misty May Morning]

9월의 햇볕 [September Sunshine] 1895년

설경 [ Snow Scene ] 1890년 25.6X 35.6cm.

급류 [ The Torrent] 25.25'X 30'

햇빛 아래에서[In the Sunlight]유화,1893년 작품, 30' x 25'


접시꽃 [Hollyhocks] 1880년,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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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15세기 말, 플로렌스의 미술

http://blog.naver.com/geist10/

Sandro Botticelli
The Adoration of the Magi, early 1480s

Sandro Botticelli
Giuliano de' Medici, c. 1478

Sandro Botticelli
Madonna and Child, c. 1470

Attributed to Sandro Botticelli
Madonna and Child with Angels, 1465/1470

Sandro Botticelli
Portrait of a Youth, early 1480s

Sandro Botticelli
The Virgin Adoring the Child, 1480/1490

Biagio d'Antonio
Portrait of a Boy, probably 1475/1480

Biagio d'Antonio and Workshop
The Triumph of Camillus, c. 1470/1475

Jacopo del Sellaio
Saint John the Baptist, probably c. 1480

Lorenzo di Credi
Madonna and Child with a Pomegranate, 1475/1480

Attributed to Domenico Ghirlandaio
Lucrezia Tornabuoni, c. 1475

Domenico Ghirlandaio
Madonna and Child, c. 1470

Filippino Lippi
The Adoration of the Child, c. 1480

Filippino Lippi
The Coronation of the Virgin, c. 1480

Filippino Lippi
Portrait of a Youth, c. 1485

Filippino Lippi
Tobias and the Angel, probably c.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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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퍼옴] 곰브리치와 함께 떠나는 미술 여행 2

 

<미술감상에 관해서-2>

술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그들은 그들이 실제 생활에서 본 것들을
똑같이 그려내는 화가의 솜씨를 칭찬하고자 한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실물과 꼭 같이'
닮아보이도록 그린 그림이다. 물론 이같이 실물처럼 표현해 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도판 9> 뒤러 : 산토끼

 



<도판 10> 렘브란트 : 코끼리

시적인 세계를 충실하게 표현하는데 쏟아부은 그들의 끈기와 솜씨는 정말 찬양할 만하다.
과거의 위대한 미술가들은 세밀한 데까지 조심스럽게 기록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뒤러의 산토끼를 그린 수채화 습작 (도판 9)은 이처럼 가상스러운 끈기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러나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가 그린 코끼리의 소묘 (도판 10)를 세부 묘사가 덜
되었다고 해서 누가 감히 그의 작품을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실 렘브란트는 목탄으로
그린 몇개의 선만으로도 코끼리의 주름진 피부의 느낌을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그런 요술을
부리고 있다.

러나 '실물과 꼭 같이' 보이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는 것은 스케치 풍의
화법만이 아니다. 그들이 더더욱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보기에 부정확하게 그려졌다고
고 생각되는 것들로서, 특히 거기에 대해서 미술가가 '보다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현대의 작품들에
대해서 그러하다. 사실 현대 미술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흔히 들리는 불평인 자연 형태의 왜곡의
문제는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디즈니의 영화나 만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듯이 사물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지 않고 다르게 변형시켜서 묘사하거나 때로는 왜곡시키는 것일 옳을 때도 있는
것이다. 미키 마우스는 실제의 쥐를 닮은 데가 거의 없지만 독자들은 그 꼬리의 길이에 대해서
신문에 격분한 투서를 보내지는 않는다. 디즈니의 매혹적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더 이상
고유명사의 '미술'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이 디즈니 쇼를 보러갈 때에는 현대 미술 전시회
에 갈 때와 같은 편견으로 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현대 화가가 어떤 것을 자기 나름대로
그렸다면 그는 그 이상 더 잘 그릴 수 없는 솜씨가 서툰 사람으로 간주되기 쉽다. 그런데 우리가
현대 미술가들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우리는 그들이 '정확하게' 그릴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안심하고 믿어도 좋다. 설령 그들이 정확하게 그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은 그들의 이유는 월트 디즈니의 이유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도판 11> 피카소 : 암탉과 병아리들

도판 11은 현대 미술 운동의유명한 선구자인 피카소(Pablo Picasso)가 그린 것으로 <<박물지>>에 실린 삽화의 도판이다. 아무도 암탉과 솜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들을 그린 이 매력적인 그림에서 결함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판 12> 피카소 : 수탉

그러나 그가 수탉(도판 12)을 그릴 때는 단순히 닭의 모습을 재현해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수탉의 공격성, 뻔뻔스러움과 우둔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풍자화법에 의지한 것이다. 그러나 이 풍자화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출처 : http://www.artvus.co.kr/art_story/story_4th.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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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퍼옴] 곰브리치와 함께 떠나는 미술 여행 1

<미술감상에 관해서-1>

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현실 생활에서 보고자 하는 것을 그림 속에서도 보기를 원한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다. 우리는 모두 자연의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그 아름다움을 작품 속에 간직해 준 미술가들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런 미술가들 자신도 우리들의 이런 취향을 타박하지 않을 것이다. 플랑드르의 위대한 화가인 루벤스가 그의 어린 아들을(도판1) 그렸을 때 그는 분명 아들의 귀여운 얼굴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우리들이 그의 아들을 귀엽게 보아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주제에 관해서 이런 편견을 갖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매력이 덜한 주제를 다룬 그림을 거부하게 만든다.


<도판1> 루벤스 : 아들 니콜라스의 초상


독일의 유명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도 루벤스가 자기의 포동포동한 아들에게 가졌던 것만큼의 애착과 사랑을 가지고 그의 어머니(도판2)를 그렸을 게 틀림없다. 고생에 찌들린 늙은 어머니를 진실되게 그린 이 습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피하고 싶은 충동을 줄 만큼 충격적이다. 그러나 뒤러의 이 그림은 위대한 진실성을 담고 있는 명작이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에 느낀 반감을 극복하기만 한다면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도판2> 뒤러 : 어머니의 초상

리는 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스페인 화가 무리요(도판3)가 즐겨 그렸던 부랑아들이 엄격하게 말해서 아름다운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나 일단 그가 그 어린아이들을 그린 후에는 그들은 분명히 대단한 매력을 지니게 된다. 그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터 데 호흐의 화려한 네덜란드 실내모습에 나오는 아이의 그림(도판4)이 매우 평범하다고 하겠지만 이것 역시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도판 3> 무리요 : 부랑아들

 

 <도판 4> 피터 데 호흐 : 사과껍질을 벗기는 여인이 있는 실내

 

 



<도판 5> 멜로초 다 포를리 : 천사 /  <도판 6> 멤링 : 천사
름다운 것에 관한 문제는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냐에 관한 취향과 기준이 그처럼 다르다는 데 있다. 도판 5와 도판 6은 둘 다 15세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기타와 비슷한 류트를 켜고 있는 천사의 그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유럽의 화가 한스 멤링의 작품(도판6)보다는 동시대의 이탈리아 화가인 멜로초 다 포를리의 그림(도판5)을 더 좋아할 것이다. 나 자신으로 말하면 두 그림을 다 좋아한다. 멤링의 천사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단 그 천사가 어딘가 힘없고 어색하다는 인상을 떨쳐버린다면 우리는 그 천사가 한없이 사랑스럽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도판 7> 귀도 레니 :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도판 8> 토스카나의 한 미술가 :그 리스도의 얼굴
름다움의 진실은 또한 표현의 진실과 같다. 사실 그림 속에 있는 인물의 표정이 우리로 하여금 그 작품을 좋아하게 만들거나 싫어하게 만들 때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좋아하며 그 때문에 깊이 감동받기도 한다.

 17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귀도 레니는 십자가에 못박힌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도판7)을 그렸을 때, 분명히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예수의 얼굴에서 수난의 고통과 영광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뒤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구세주의 표현에서 용기와 위안을 얻곤 했다. 이 작품이 표현하는 감정이 얼마나 강렬하고 분명했던가 하는 것은 '미술'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예배당이나 외딴 농가에 이 작품의 복제판을 걸어놓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강렬한 감정의 표현에 쉽게 마음이 끌린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게 표현된 그림에서 등을 돌리거나 해서는 안되다. 십자가에 못박힌 또 다른 예수상 (도판8)을 그린 중세의 한 이탈리아 화가도 레니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서 진지하게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작업방식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이처럼 상이한 표현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레니의 작품보다 표현이 덜 분명한 작품들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말과 몸짓을 적게 사용하면서 많은 것을 상대방이 추측하도록 남겨두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추측하고 곰곰히 생각할 여지를 주는 그런 회화나 조각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술가들이 지금과 같이 사람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을 표현하는 데 숙련되지 않았던 문예부흥기 이전의 작품들을 대할 때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감정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는가를 알고 나서 더 큰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

출처 : http://www.artvus.co.kr/art_story/story_3rd.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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