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셀레스티나 을유세계문학전집 31
페르난도 데 로하스 지음, 안영옥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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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8] 라 셀레스티나

 

 

 

 

예나 지금이나 결혼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중매다. 중매(仲媒)쟁이가 지나치면 사람을 사고파는 중매(仲買)가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옛날부터 미혼남녀가 자유롭게 사귀지 못하던 시절에 양측을 맺어주던 사람들을 뚜쟁이라고 불렀다. 사전적으로는 부유층이나 특수층을 상대로 하는 직업적인 여자 중매쟁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업계에서는 주로 신고를 하지 않고 몰래 다니며 명함을 뿌리는, 음지에서 활동하는 중매쟁이들을 일컫는다. 오늘날에는 뚜쟁이를 매춘 알선 브로커의 의미에 가깝게 쓰인다.

 

셀레스티나(Celestina)는 세계문학사를 통틀어 매우 희귀하고,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 뚜쟁이다. 그녀의 이름은 ‘뚜쟁이’를 뜻하는 스페인어 고유명사가 되었다. 처음부터 셀레스티나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1499년에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희극>이라는 희극 작품이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귀족 명문가 아들 칼리스토가 멜리베아라는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의 저자명은 알려지지 않았고, 당시에 저작권의 개념이 없었던 터라 아류작들이 생겨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페르난도 데 로하스도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희극>과 유사한 아류작을 썼는데, 이 작품이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호평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로하스는 제1막으로 된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희극> 원고를 발견하여 본인이 직접 15막을 더 만들어 소설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아류작의 인기에 힘입어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희극>은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고, 사랑에 빠진 남녀 주인공이 아닌 뚜쟁이 노파 셀레스티나가 더 많이 주목받았다. 로하스의 소설 제목은 《라 셀레스티나》로 널리 알려졌다.

 

칼리스토는 화려한 귀족 출신이지만, 연애가 서툴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여자를 정복하는 것. 하지만 그는 입만 살아있는 ‘연못남(연애 못하는 남자)’이다. 결국 하인 셈프로니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욕망에 눈이 먼 주인의 본심을 알아차린 셈프로니오는 교활한 계획을 꾸민다. 셈프로니오는 칼리스토에게 늙은 뚜쟁이 셀레스티나를 소개한다. 뚜쟁이는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사랑을 성사시켜 물질적 보상을 얻으려고 한다. 칼리스토의 또 다른 하인 파르메노는 뚜쟁이와 동료 하인의 간계를 눈치챈다. 그는 주인이 정신 차리길 바라는 마음에 셀레스티나의 사악함을 알렸지만, 칼리스토는 파르메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셀레스티나는 매춘부 엘리시아와 아레우사를 셈프로니오와 파르메노와 연결해 자기편으로 만든다.

 

셀레스티나는 악명 높은 뚜쟁이로 수치스러운 형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악행에 떳떳하게 생각한다. 그녀는 현세의 쾌락을 즐기는 대신 악마에게 영혼을 판 쾌락주의자다. 세속적 욕망과 관능적 쾌락을 인생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셀레스티나의 쾌락주의자는 에피쿠로스가 추구하는 쾌락과 다르다. ‘향락주의자’로 불리는 에피쿠로스학파의 지향점은 관능적 쾌락이 아니라 고통과 불안이 없는 상태였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역설을 말한다. 혀와 입의 쾌락을 향한 극단적 추구는 구토와 설사라는 고통으로, 성애에 대한 탐닉은 성적 장애와 음욕의 노예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쾌락을 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고통이라는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는 금욕주의로 돌아서서 마음의 평정인 아타락시아(ataraxia, 부동심)를 진정한 쾌락이라고 갈파했다.

 

셀레스티나는 삶의 종착지인 ‘죽음’에 거의 가까워진 인물이다. 셀레스티나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나온 모든 인물도 죽음 앞에 사라지는 존재다. 쾌락을 인생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향락주의자도 죽음에 대한 공포에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섹스를 즐기면서 ‘생의 불안’을 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물질적 욕망에 향한 셀레스티나의 집착은 끔찍한 파멸을 이르게 한다. 욕망(desire)은 욕구(need)와 달리 무한하다.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물을 부어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욕망의 노예다. 살아있는 한 유한성의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쾌락은 ‘채움’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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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1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12 16:2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냈습니다. ^^

yureka01 2016-09-11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화심리학에 관점에서 보자면,
진화의 비밀은 욕망에서 비롯된 무차별적 계획은 아닐까 싶어요.
괘락의 감각기관이 사라진다면,과연 우리가 존재하기는 할까 라는 질문이 생기네요..

잘봤습니다^^..

cyrus 2016-09-12 16:23   좋아요 0 | URL
욕망이 아예 없었으면 사는 일이 재미 없었을 것 같아요. ^^;;

초딩 2016-09-14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