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되는 순간 - 메트로폴리탄 관장의 숨은 미술 기행
필립 드 몬테벨로.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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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정말 성가신 단어다. 이 단어에 정의를 내리기가 우선 까다롭다. 그렇다 보니 의미가 다양하고, 연상되는 관념도 뒤숭숭하다. 미술을 아름다운 것, 세련된 것, 멋진 것 등을 그대로 재현하는 행위로 설명할 수 있지만, 오늘날 미술은 더 이상 현실이나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다. 화가는 자신의 감정과 사고, 의지를 표현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새롭고도 다채로운 회화를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현대미술은 난해하다. 아니 난폭하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싶다. 어떻든 유추하기 힘든 오늘날의 미술이 뭔가 충격과 부담, 또는 당혹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할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요즘 마크 로스코 전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회화적 장치나 단서가 없고 거대한 캔버스에 색채만 존재하는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관람객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거나 감성의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를테면 난해한 그림 앞에 당혹스러워한다. 이런 사람들은 로스코의 그림을 어떻게 감상하는지를 잘 모른다. 만약에 사람들이 나에게 “로스코의 그림을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림을 보기 전에 로스코에 관한 책을 읽어보세요. 로스코가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전시회 그림을 봤는데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전시용 도록을 사서 읽어보세요. 미술을 이해하려면 공부해야 합니다.” 질문하는 사람은 되묻는다. “농담 하시는 거죠?” 내 대답은 농담 반 진담 반이다. 로스코 같은 현대미술은 그냥 눈으로 봐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로스코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가격이 매겨진 로스코의 그림이 어린아이가 물감으로 장난치는 수준으로 본다. 그림을 머리로 이해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머리로 먼저 이해해야 그림을 보는 눈이 떠지고, 화가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래서 미술을 어렵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일상도 무겁고 힘든데 난해한 그림을 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을 무려 31년 동안 지낸 필립 드 몬테벨로는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과 실망감을 누구보다 더 가까이, 그리고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와 함께한 대화에서 필립은 미술과 관람객이 더 가까이 좁혀질 수 있는 방법을 언급한다. 대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틴은 자신과 필립을 가리켜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두 사람은 미술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면서도 자신들을 미술의 아마추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아마추어(amateur)’는 비전문가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는데 ‘프로’의 수준보다 한 단계 낮은 하수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아마추어를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필립과 마틴은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30년 넘게 미술관 관장에서 짬밥(연륜)을 먹은 필립이라면 미술 초보자도 어려운 미술을 좋아하게 만드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립도 미술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미술을 이해하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인 발레리의 말을 인용하여 소개한다. “작품이 무덤이 될지 보물이 될지는 관람객에게 달려 있다.” 결국, 손철주의 책 제목처럼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러니까 이런 출발은 곧 그림에 대한 안목은 넓어지고 또한 그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유익한 태도이다. 어느 시대의 미술이든 시대의 맥락, 작품과 화가가 마주한 현실에서 그림이 탄생하기 때문에 그림을 보기 전에 전반 지식을 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이다.

 

멋진 예술 작품을 보고 잠시 정신 착란에 빠지는 현상을 일컫는 ‘스탕달 증후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스탕달은 소설 못지않게 미술에도 크게 경도됐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로 원본이 무한 복제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스탕달처럼 예술 작품을 보면서 황홀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한다. 그림 앞에서 무덤덤할 뿐이다. 스탕달이 살았던 시대의 미술관은 예술적 경외심을 느낄 수 있는 신성한 장소였지만 지금은 하루에 많으면 수백 명의 인파가 드나드는 산만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동일한 이미지의 복제로 원본의 아우라가 희미해져 버렸다. 과연 이 시대에 미술의 효력도 사라진 것일까. 필립은 아우라를 사랑했던 발터 벤야민의 걱정에 반기를 든다. 복제기술이 사람들을 미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훌륭한 복제기술은 원본의 세부묘사도 복원한다. 그러므로 미술관에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그림 원본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더라도 집에서 편안하게 복제품을 볼 수 있다. 요즘 전 세계의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들을 모아놓은 인터넷 웹사이트가 있다. 웹사이트에 있는 그림 사진을 확대하여 미술관에서 볼 수 없었던 그림의 세부표현을 볼 수 있다.

 

그래도 원본의 힘과 그 고유한 가치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법. ‘모나리자’ 원본을 보기 위해 오늘도 전 세계 사람들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하고 있다. 박물관은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인 원본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갈망으로 세워진 아우라의 거대한 집합소다. 유럽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소유하고 있는 작품 중 상당수는 제국주의 시대 때 식민지에서 약탈해온 것들이다.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문화재는 출토지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세계인의 문화유산이라는 논리를 펼치지만, 약탈 문화재가 어떻게 그들의 자존심이 될 수 있는가. 그들이 게걸스럽게 긁어모은 약탈문화재를 반환하지 않을까? 문화대국이라서? 천만의 말씀이다. 이유는 너무도 단순하다. 이것저것 다 돌려주면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은 텅 빌 것이고, 그에 따라 주요한 수입원인 관람료 수익이 팍 줄어든다.

 

필립은 유럽의 미술관이 식민지의 노획물을 보유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미술관이 식민지의 문화재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연구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문화재 약탈의 역사를 미화하는 입장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캄보디아 문화재 사례를 든다. 캄보디아 문화재는 약탈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본국의 문화 재산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앙코르와트는 대단한 문화유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관리를 국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사업자에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캄보디아 정부가 약탈당한 자국 문화재가 국가가 소유하고 관리해야 하는 유산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반환을 요구하는 태도를 필립은 모순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필립은 문화재의 가치를 입증하고 소중하게 관리를 하는 박물관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화재가 국가의 유산으로 인식되는 것이 서구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말하는 필립의 입장을 동의할 수 없다.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국가의 입장을 서구적 관점으로 덧씌우는 필립의 논리는 문화재 반환의 정당성을 흐려 놓을 수 있다. 문화재 반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필립의 태도는 기 소르망의 어이없는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기 소르망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식 참석차 방한했을 때 “약탈이 아니라 서구가 문화재를 보호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문화재 반환에 대한 필립의 입장이 모순적이다. 그는 파리에 있었던 산 마르코 대성당의 말 조각상이 베니스에 반환된 사실을 긍정적으로 본다. 또 산 마르코 대성당의 말 조각상은 유구한 역사적 전통이 있고, 베니스 사람들의 자랑거리이므로 원래 자리인 베니스로 돌려보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 조각상이 파리에 15년 동안 있었던 시간이 산 마르코 대성당 출입구 위에서 보낸 800년이라는 시간과 비교하면 프랑스 문화에 동화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필립은 반환 문화재에 부합되는 조건으로 ‘시간’을 강조한다. 그의 입장대로라면 대영 미술관에 전시된 ‘엘긴 마블스’를 그리스에게 돌려줘야 한다. 엘긴 마블스는 영국인 엘긴 경이 약탈해간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이다. 2천5백 년 전에 제작된 그리스 고전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국 정부가 3만5000파운드에 사들여 대영 박물관에 전시한 사실이 알려지자 그리스 정부는 엘긴 마블스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영국은 당시 정부 승인 하에 합법적으로 반출했다는 근거를 내세우면서 거부했다. 이렇게 시작된 양국 간 분쟁은 오늘날까지도 진행 중이다.

 

2013년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10세기 때 만들어진 캄보디아의 석상을 본국에 되돌려 준 적이 있다. 예술품이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미술관에 전시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수많은 약탈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 입장에서야 어정쩡한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터다. 미술을 사랑하는 미술관 관장이 문화재 반환 문제를 미적지근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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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쌩 2015-05-1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탈인가 구제인가
문화유산의 보호자라고 봐야하나요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한 외규장각도서를 우리나라에 대여형식으로 돌려받은 걸로 알고있는데
반환이면 반환이지 몇년단위로 갱신 대여라는게 완전 웃깁니다.


cyrus 2015-05-15 21:24   좋아요 0 | URL
그들의 문화재 보호 역할을 존중하지만, 약탈의 역사를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입장을 보면 어이가 없죠...

transient-guest 2015-05-15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시작은 약탈입니다만, 그간 보존해온 공로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되었습니다. 계기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인데요, 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리고 최근에는 이라크에서 엄청난 유물/유적들이 파괴되었거나 팔려나갔잖아요. 고대 바빌론/앗시리아 유적이 망가진 것을 tv에서 보면서 엄청 맘이 아프고 속이 상했습니다.

cyrus 2015-05-15 21:2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조국의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무뢰배들 때문에 제3국이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