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catcher’를 ‘파수꾼’으로 해석하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일단 익숙한 제목을 쓰도록 하겠다. 이 소설의 독자들도 아시다시피 ‘The catcher in the Rye’는 로버트 번스(Robert Burns)의 시 「호밀밭을 지나오다가(Comin Thro the Rye, Coming Through The Rye)에서 따온 제목이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The Catcher in the Rye》 (Little Brown & Company, 1991)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2001)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1998)

 

 

 

소설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는 브로드웨이 거리를 걸어갈 때 한 아이가 흥얼거린 콧노래를 듣는다. 그 노래가 바로 번스의 「Coming Through The Rye」에 곡을 붙인 민요다. 그런데 홀든은 그 노래를 ‘호밀밭에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If a body catch a body coming through the rye)이라고 착각하면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확고히 다진다. 나중에 그의 여동생 피비(Phoebe)는 그 노래가 「Coming Through The Rye」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 [절판] 로버트 번스 《올드 랭 사인》 (솔출판사, 1995)

* [절판] 김천봉 엮음 《19세기 영국 명시 낭만주의 시대 1》 (이담북스, 2011)

* [e-Book] 로버트 번스, 김천봉 엮음 《다정한 입맞춤: 로버트 번스 시선》 (글과글사이, 2017)

 

 

 

 

로버트 번스는 오늘날에 민요로 더 알려진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붉고, 붉은 장미(A Red, Red Rose)를 쓴 스코틀랜드 출신의 시인이다. 번스가 누군지 몰라도 「올드 랭 사인」의 선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올드 랭 사인」은 연말 또는 졸업식에 자주 불리는 노래다. ‘auld lang syne’은 ‘옛날’이라는 뜻을 가진 스코트어(Scots: 스코틀랜드 표준 영어)다. 현재의 ‘애국가’가 나오기 전에 일제 강점기 조선 민중, 그리고 독립군 및 임시정부 인사들은 민요 버전의 「올드 랭 사인」의 선율에 맞춘 애국가를 불렀다.

 

홀든이 우연히 들은 「Coming Through The Rye」는 「올드 랭 사인」에 비하면 자주 불리는 노래는 아니지만, 사실 「Coming Through The Rye」도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이다. 우리나라에 ‘들놀이’라는 제목의 동요로 번안되었다. 필자가 아주 어렸을 때 동요 모음집 카세트테이프에 흘러나오는 ‘들놀이’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도 이 노래를 알려나?

 

 

 

 

 

 

※ 영국의 드라마틱 소프라노(dramatic soprano) 가수 플로런스 이스턴(Florence Easton)이 부른 「Coming Through The Rye」

 

 

 

 

 

 

※ 동요 ‘들놀이’

 

 

 

번스는 스코틀랜드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인이다. 그는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시를 썼으며 전원생활의 평화로운 분위기, 농민들의 애환 등을 담아냈다. 그래서 번스의 시는 투박하면서도 생기가 넘치는 느낌이 난다. 그의 고향에 박물관이 된 생가가 있을 정도로 번스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영문학사에서 번스는 낭만주의 시인으로 분류되고, 더 나아가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번스의 인지도는 아주 낮다. 시 앤솔러지(anthology)에 가장 많이 수록된 번스의 시는 「붉고 붉은 장미」다. 번스의 시 선집은 1995년에 나온 《올드 랭 사인》(솔출판사)과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들과 함께 수록된 《19세기 영국 명시 낭만주의 시대》 1권(이담북스)이다. 두 권 모두 스코티어 원문과 우리말 번역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지만, 절판되었다. 김천봉 교수가 번역한 번스의 시들은 《다정한 입맞춤》(책과책사이)이라는 새로운 제목이 붙여져 전자책 형태로 재출간되었다. 그런데 절판된 종이책과 전자책 두 권 모두 역자는 같아도 명백한 차이점이 있다. Coming Through The Rye」는 종이책에 없고, 전자책에만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솔출판사의 번스 시 선집에도 「Coming Through The Rye」는 수록되지 않았다. 「Coming Through The Rye」가 번스의 대표 시로 보기 어렵다고 해도 소설 때문에 유명해진 시를 선집에 수록되지 않은 점은 의아스럽다.

 

종이책으로 나온 번스의 시 선집 모두 번역이 좋다고 볼 수 없다. 사실 번스가 시를 쓰면서 사용한 스코트어는 오늘날의 미국과 영국식 영어와 다르다. 스코틀랜드 인들은 18세기 초반 영국 연방에 합쳐진 후 영어와 스코트어, 그리고 스코틀랜드 방언을 함께 썼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스코트어 특유의 발음을 강조하기 위해 영국 표준 영어의 철자(spelling)를 바꿔서 사용했다. 이를테면 영국인들은 ‘하나’를 뜻하는 영어로 ‘one’을 쓰지만, 스코틀랜드인들은 ‘ane’라고 쓴다. 어쨌든 번스는 스코트어와 스코트랜드 방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시를 썼기 때문에, 번역가는 번스의 시를 2중(옛 스코트어→영국 표준 영어→한국어)으로 번역해야 하는 번뇌에 시달려야 한다.

 

《19세기 영국 명시 낭만주의 시대》 1권의 역자 해설(119쪽)에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그의 아버지(William Burness, 1721~1784: 1786년까지 번스는 자신의 이름을 ‘Robert Burness’로 표기했다)는 가난한 농부였다.

 

 

시인의 성(姓)은 원래 ‘Burnes’였다. 1786년 이후로 번스는 ‘e’를 뺀 ‘Burns’로 서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19세기 영국 명시 낭만주의 시대》 1권에는 ‘Burness’로 잘못 적혀 있다. 고친다면 뒤에 있는 ‘s’를 빼야 한다.

 

《19세기 영국 명시 낭만주의 시대》 1권에 있는 장시 「경건한 윌리의 기도(Holy Willie’s Prayer)」에 누락된 원문의 일부와 그것을 번역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 김천봉 교수가 번역하지 않은 내용은 이 시의 제사(題詞: 책의 첫머리에 그 책과 관계되는 노래나 시 따위를 적은 글)와 번스의 해설문이다. 김천봉 교수가 번역하지 않은 내용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원문의 출처는 번스의 생애와 그의 모든 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한 웹사이트이다.

 

링크: http://www.robertburns.org/works/58.shtml

 

 

 

“And send the godly in a pet to pray.” - Pope.

 

 

* Argument

Holy Willie was a rather oldish bachelor elder, in the parish of Mauchline, and much and justly famed for that polemical chattering, which ends in tippling orthodoxy, and for that spiritualized bawdry which refines to liquorish devotion. In a sessional process with a gentleman in Mauchline - a Mr. Gavin Hamilton - Holy Willie and his priest, Father Auld, after full hearing in the presbytery of Ayr, came off but second best; owing partly to the oratorical powers of Mr. Robert Aiken, Mr. Hamilton’s counsel; but chiefly to Mr. Hamilton’s being one of the most irreproachable and truly respectable characters in the county. On losing the process, the muse overheard him (Holy Willie) at his devotions, as follows:-

 

 

번즈에 의하면, 홀리 윌리는 실제로 윌리엄 피셔(Willie Fisher)라는 모흘린(Mauchline) 마을의 독신 장로로, 그 마을 목사와 합세하여 개빈 해밀턴(Gavin Hamilton, 또는 곤 해밀턴)이라는 선량한 사람을 교회 재판에 고소했다. 그러나 에어(Ayr, Ayrshire: 스코틀랜드 남서부의 항구 도시, 번즈가 태어난 지역- 필자 주)의 장로회가 해밀턴을 무죄로 판결하자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번즈는 불만 가득한 상태의 윌리가 혼자 하느님께 불평하는 것을 엿듣는 형식을 빌려, 자기만 옳고 선택됐다고 믿는 칼뱅교도의 오만한 독선과 편협성과 이기주의를 풍자하고 있다.

 

(솔출판사, 128쪽, 번즈의 해설문을 각주 형식으로 요약한 내용)

 

 

솔출판사 판본의 「Holy Willie’s Prayer」 역시 번역이 좋다고 볼 수 없다. 번즈의 해설문을 각주(脚註) 형식으로 언급했지만, 제사를 번역하지 않았다.

 

 

 

 

 

 

 

 

 

 

 

 

 

 

 

 

 

 

* [e-Book] 알렉산더 포프 《포프 시선》 (지만지, 2015)

* [품절] 알렉산더 포프 《포프 시선》 (지만지, 2010)

 

 

 

제사의 출처는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가 1714년에 발표한 풍자적인 장시 「머리 타래의 강탈(The Rape of the Lock)」 4곡(曲, canto)의 64행 구절이다. 이 시는 흔히 ‘머리카락을 훔친 도둑’으로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The Rape of the Lock」은 총 5곡으로 이루어진 장시다. 《포프 시선》(지만지)은 포프의 시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번역본이지만, 「The Rape of the Lock」은 제1곡와 제2곡만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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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7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잉글리시 튜터가
<호밀 밭의 파수꾼>을 자신의 인생책
으로 꼽던 기억이 나네요 :>

cyrus 2019-03-04 14:04   좋아요 0 | URL
지난주 목요일에 <호밀밭의 파수꾼> 독서 모임이 있었는데, 저랑 다른 한 분 빼고는 이 책을 좋게 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