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루카 풀빛 동화의 아이들
구드룬 멥스 지음, 미하엘 쇼버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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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여전히 잘 기억하는데 너는 참 빨리도 잊는구나.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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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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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의 아이가 백혈병에 걸려 당장 수혈을 받지 않으면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아이와 아이의 부모는 수혈을 거부한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상의 이유로. 자신들이 믿는 종교 안에서 수혈은 타락을 의미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천국에 가는 것이 그들이 선택한 일. 이에 병원에서는 소송을 건다. 아이에게 수혈을 해줄 수 있게 해달라고. 수혈을 하면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만약 내가 이 얘기를 뉴스나 인터넷에서 들었다거나 혹은 지인에게 전해 들었다면, '아 그 종교인들은 왜그리 어리석단 말인가, 사람을 살려야 할 게 아닌가' 라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도 결국 이언 매큐언이 말하고자 하는건, 그 종교가 어리석다, 사람을 살리고 봐야한다, 라는 것일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걸 이언 매큐언도 당연하게 여길 거라는 생각, 그 당연함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거다. 그러나 오, 나는 얼마나 내가 믿는 것을 정의라 확신했던가.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걸 보고, 아, 내가 너무 나의 정의에 갇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종교의 자유가 있고 그 종교를 믿고 있다면, 그 신앙 혹은 믿음 속에서 자신이 믿고자 하는 바를 따르려고 하는 것은 순전히 그 사람의 몫이 아닌가. 그것이 자신의 삶과 혹은 죽음에 관한 것이라도 그것이 그 사람이 현재 속한 종교, 절대적이라 믿는 종교 안에서 자신의 선택이라면, 그것을 법이나 혹은 그 종교의 바깥에 있는 사람이 강제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됐다. 이 책의 주인공인 '피오나'는 판사이고, 이 사건을 맡게 됐다. 아이에게 얼마나 수혈이 중요한지에 대한 병원의 입장을 듣고 또 자신들이 믿는 신앙 앞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아는 아이들의 부모의 입장도 듣고, 피오나는 일단 아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뒤에 판결을 하겠다고 말한다. 아이가 정말 '강압적'인 것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수혈 거부를 결정한 것인지, 그것을 이야기를 나눠보고 알고자 한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결정을 인지할 수 있는, 그런 아이인지를. 법원은 그리고 법은, 종교에 대해서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종교에 대한 판단을, 법원에서는 할 수 없는 거라고 한다. 그렇게 피오나는 아이가 입원한 병실을 재판 도중에 찾는다. 나도, 그리고 아이도, 피오나가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서, 수혈을 거부한 결정을 바꾸기 위해서 병원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제 생각을 바꾸려고 오신 거예요? 제 생각을 바로잡으려고요?" (p.142)

 

피오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기 온 이유를 말해줄게, 애덤. 난 네가 자신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확인하고 싶단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결정을 하기엔 네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 부모님이나 장로들이 영향을 준다고도 생각하지.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네가 굉장히 영리하고 능력이 뛰어나니까 너한테 결정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해." (p.143)

 

 

피오나가 아이와의 인상적인 면담을 마친 뒤로, 나는 피오나가 어떤 판결을 내리게 될지 궁금했다. 그리고 피오나가 내리는 판결까지 읽으면서, 아, 역시 이언 매큐언 이구나, 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 이런 것이 좋은 책이로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했다.

 

이것이 좋은 책이기에 나는 내가 가진 생각을 반드시 정의라고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종교와 법 혹은 종교와 삶에 있어서 나는 '관찰자'의 입장으로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지만, 그건 또 그 종교안에서의 그들의 선택과 삶의 문제가 아니던가. 내가 누군가를 어리석다고 말하는 건 순전히 내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닌가. 수혈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죽음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혀를 쯧쯧해대는 것이,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들은 그들 나름의 생각과 믿음을 기준으로 선택한건데. 이 판결은 얼마나 어려울 것이며, 어떻게 해야 공정할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나는 이 책을 읽기전보다 확실히 생각이 더 많아졌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유연해진 것 같다고. 결국 좋은 책이 하는 역할이란 그런 게 아닐까. 내가 가진 생각에 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그리하여 책을 읽기전보다 나를 더 유연하게 만드는 일. 이런 것들을 깨닫게 해준 책이라니,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독서라는 행위가 굉장히 고맙게 느껴지는 거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다뤄준 이언 매큐언을 자꾸 생각하게 됐다. 속으로 몇 번이나 아, 이언 매큐언! 한 것이다.

 

 

피오나가 더 나은 것, 더 옳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계속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 무릇 판사의 자리에 있으면서 판결을 내려야 한다면, 그렇다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옳은 것일테니까. 그런 한편, 아, 나는 판사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내리는 결정들이 과연 옳다고 내 스스로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과연 그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것도 의심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피오나처럼 현명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는 거다. 피오나는 백혈병 걸린 아이에 대한 판결을 내렸고, 나는 그 판결에 수긍하며 또한 감탄했다. 그 결론을 내기까지 피오나가 그렇게 결정하기로 한 이유를 읊었을 때, 아,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유인데 내가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고 자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언 매큐언은 작가이고 피오나는 판사이며, 나는 여기에서 독자로 남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이 책의 3분의 2정도에 해당한다. 나머지 3분의 1을 어떤 이야기로 진행하려는지 몹시 궁금했던 나는, 이만큼만으로도 일단 이언 매큐언의 이름을 몇 번이나 생각했으니, 이만큼만으로도 내 생각이 조금 더 유연해진 것 같으니, 이만큼만으로도 이 책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좋은책이다, 했으니, 그걸로 이 책의 본론은 다 끝난 게 아닐까 했다. 그러니까 남은 건 그저 뒷이야기 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물론, 나머지 부분이 뒷이야기인것은 맞았다. 그러나 그 뒷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는 '흘러가야 할 대로 흘러가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고, 결국 나머지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이언 매큐언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이렇게.

 

 

아! 이언 매큐언, 이 아저씨야!!

 

 

그래서 그랬구나, 처음에 피오나의 부부 이야기를 한 것, 오래 함께한 부부의 이야기를 한 것. 이 모두가 그래서 그랬구나. 이것은 단순히 종교와 삶 종교와 법에 대한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맹목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오래된 관계의 신의를 이야기하고 우리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책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아, 이언 매큐언 이 아저씨야,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하지는 말아주지 그랬어, 하는 생각도 당연히 들었다. 어떤 것들은 받아들이는 데 조금 더 힘들기도 하니까. 그렇다고해서 그게 나빠서가 아니었다. 역시 이언 매큐언은 '세다'는 생각을 해서였다. 역시 이 아저씨는 센 이야기를 하는구나.

 

 

최근에 독서에 좀 심드렁해졌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독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몇 번이고 아, 이런 책이 좋구나, 했으니까. 그걸 이언 매큐언 아저씨가 해줬다. 좋은 소설가들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 같다. 생각에 유연성을 더해주는 일을, 좋은 소설가들이 하고 있는 것 같다. 3분의 2를 지난 시점에서부터의 아이의 선택과, 피오나의 멈칫함, 그리고 오래된 남편의 옆에 있어주는 모습 같은 것들이 마음에 남는다. 오래 남는다. 오래 남아 자꾸 생각난다.

 

 

 

 

 

신체 각부가 적절한 형태로 제자리에 달려 세상에 나온다는 것, 잔인하지 않은 깊은 애정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난다는 것, 혹은 지리적으로나 사회적인 우연으로 전쟁이나 빈곤을 모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우연한 행운이었다. 그리하여 선한 사람이 되기가 훨씬 쉽다는 것도.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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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5-08-30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읽을 예정이라 좋아요맘 눌렀네요:) 이언 매큐언은 순백의 상태로 읽어야 함돠ㅋㅋㅋ

다락방 2015-08-31 13:37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정말 멘붕이라고 해야할지..뭐라고 설명해야 할지..정말 인상깊게 읽었어요, hellas님. 읽고 후기 남겨주세요!

다다 2015-08-3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 리뷰도 정말 좋습니다.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네요. 좋은 책 소개해줘서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5-08-31 13:38   좋아요 0 | URL
읽고나니 조금 더 유연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 추천합니다.

웽스북스 2015-08-31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저 마지막 밑줄 그어놨어요. 그 외에도 밑줄 많지만! 저도 다락방님이랑 같은 날 다 읽음. 피오나의 판결문이 너무 우아하고 멋져서 진짜 감탄했어요. 이 우아한 아저씨. ㅋㅋㅋ 어제 이 책 읽고 책모임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역시 텍스트가 좋아야 함께 나누는 얘기들도 좋고! ㅎㅎㅎ 역시 영국은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야. 이런 얘기를 소설로 쓰다니. 싶었어요~

다락방 2015-08-31 13:40   좋아요 0 | URL
좋죠,좋죠!! 아, 웽님과 같은 책을 읽고 같이 좋아하다니. 좋다요 ㅠㅠ
뭐랄까, 되게 인상깊어서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힘들더라고요. 특히, 그 홀딱 젖은 소년이 판사를 찾아왔을 때..아아아아아아아아 뭔가 싫으면서 좋은 .......... ㅜㅜ
오랜만에 되게 집중해서 읽었어요. 다른 책으로 빠져나오기가 힘들더라고요. 피오나의 판결문은 진짜 예술이었어요. ㅠㅠ 멋짐 ㅠㅠㅠ

아무개 2015-08-3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곧 읽을 예정이라 내용은 우선 패쓰!

다락방 2015-08-31 13:40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moonnight 2015-08-31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말에 읽고 내내 생각이 났어요. 아...이언 매큐언 ㅠㅠ

다락방 2015-08-31 13:41   좋아요 0 | URL
`내내 생각이 났다`는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아직도 계속 어이쿠, 이언 매큐언, 이 아저씨야 ㅜㅜ 하는 마음이에요. ㅠㅠㅠ

뽈따구 2015-09-0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인하지 않은 깊은 애정˝
무척 깊이 와 닿네요.... ㅠㅠ

다락방 2015-09-01 10:52   좋아요 0 | URL
47페이지 저 구절은 정말 명문이죠. 몇 번이나 읽었어요.

블랙겟타 2015-09-01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락방님, 제가 구매하는 책중에 소설분야가 아무래도 비중이 제일 적은데 우연하게 이 책 리뷰를 읽고 나니 얼른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저도 평소에 제가 가진 생각이 반드시 정의로운 것인지에 관해 고민하곤 했었거든요. 저도 이 책 읽어볼래요! ㅎㅎ

다락방 2015-09-01 19:03   좋아요 1 | URL
전 되게 인상싶게 읽었어요, 블랙겟타님. 한 번 읽어보세요. 우아하고 인상적이며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에요. 이언 매큐언에 대해 새삼 감탄하게 되는 그런 책이요. 이야기도 흥미롭고 판사인 피오나의 판결문도 압권이랍니다. 헷 :)
 

내가 맥주를 끊었는데, 일자산 갔다오니 진짜 너무 더워서 한 병 한다. 토요일 오후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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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2015-08-2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끊기엔 너무 맛있잖아요!!! 이 좋은 것을!!

다락방 2015-08-31 13:34   좋아요 0 | URL
더울 때는 도무지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moonnight 2015-08-29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주를 어떻게 끊어요!!!! 불가능ㅜㅜ; 어제 모처럼 야구장에 갔는데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야구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_-;; 배트맨글라스랑 히치하이커오프너는 맥주랑 안성맞춤 궁합이네요^^ 심지어 호가든♥♥♥

다락방 2015-08-31 13:34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낮에 저거 한 병 마시고 그만 마셔야지 했는데, 토요일 밤에 친구들이랑 소주마시고 집에 돌아와서 맥주를 벌컥벌컥 기절할 때까지 들이켜고 말았어요. 하아-

역시 배트맨글라스랑 히치하이커오프너를 알아봐주시네요, 문나잇님! ><

카스피 2015-08-29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요즘 맥주맛이 그맛이 그맛같아서 사이다와 KGB에 빠져 삽니당^^

다락방 2015-08-31 13:35   좋아요 0 | URL
저는 탄산 들어간 건 맥주밖에 안마셔서 사이다를 마실 일이 없네요. ㅎㅎ

카스피 2015-09-02 19:39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말하는 사이다는 칠성 사이다가 아니라 사과주(알콜도수 5%)이고 KGB는 보드카 베이스의 칵테일을 말합니다.둘다 캔에 있는데 차게 마시면 여름 더위 확 벗어나지요^^

hellas 2015-08-2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년동안 술을 끊었었는데. 안마시니 인생이 재미가 없더라구요. 요즘은 간간히 즐겨요 ㅋㅋ

다락방 2015-08-31 13:35   좋아요 0 | URL
술을 끊었었다뇨! 우와- 저로서는 결심의 엄두를 내지못할 그런 일이에요!! >.<
저는 맥주를 끊는대신 소주와 양주,와인으로 방향을 잡고 나아갈겁니다,

라고 썼지만 토요일밤에 기절하게 마심요 ㅠㅠ

무스탕 2015-08-29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멀쩡한 맥주를 왜 끊습니까? 그러는거 아니에요. 올해 그 뜨거웠던 여름동안 맥주가 얼마나 큰 위로를 해 주었는데 이제 더위 가려니 끊어 내시다니요. 그러면 아니아니 아니되오~~ ㅎㅎㅎ

다락방 2015-08-31 13:36   좋아요 0 | URL
그쵸? 역시 끊는건 무리겠죠? ㅎㅎ 가급적 맥주는 줄이는 걸로 해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끊는 건..너무 극단적 선택이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15-08-30 0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멀쩡한 맥주를 왜 끊습니까? 그러는거 아니에요. 2
아니 이 맛있는 맥주를 끊다니요!!

다락방 2015-08-31 13:36   좋아요 0 | URL
맥주가 제게 그다지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 않아서 끊으려고 했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
아아- 세상엔 어려운 일 투성이에요. 흑흑 ㅠㅠ

마태우스 2015-08-30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끊었다는 게 중요하지, 실제로 마시는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특히 요즘같은 더운 날엔 눈앞에 맥주가 있음 마셔줘야 합니다. 생맥주, 정말 마시고 싶네요 ㅠㅠ

다락방 2015-08-31 13:37   좋아요 0 | URL
맥주에 대한 댓글을 좌르륵 읽다보니, 아아 나는 왜 사무실에 있는가, 왜 맥주마시러 가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에 맥주가 아른아른하네요. 흑흑 ㅠㅠ
 

"아니, 이해할 거야. 당신이 언젠가 말했잖아. 오래 함께 지낸 부부는 남매 같은 사이를 염원할 거라고. 우린 이룬 거야, 피오나. 난 당신 오빠가 된 거야. 포근하고 다정하잖아. 난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은 대단하고 열정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 아연실색해 내뱉은 한숨을 웃음으로, 어쩌면 조롱으로 오해한 그가 거칠게 말했다. "열락, 흥분으로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경험. 기억은 해? 마지막으로 한 번 시도해보고 싶다고. 당신은 원하지 않는다 해도. 아니, 어쩌면 당신도 원할지 모르지." (p.12-13)
















이건 그러니까 바람피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데, 초반인 12페이지에 저런 대사가 나온다. 앞으로 나올 내용이 더 심각하고 생각해야 할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 아니 초반에 이런 대사가 똭- 나와서 나를 멘붕에 빠지게 하네. 


오래 함께 지낸 부부는 '남매'같은 사이를 염원한다고? 하아-


나는 싫다. 나는 내 연인과 혹은 남편과 오래 함께 지내게 된다해도, 그와 다정한 오누이 사이 같은 게 되고 싶지는 않다. 이게 무슨..나는 남동생이 있고, 내 남매로는 녀석이면 충분하다. 아 저 대사를 읽는데 진짜 뭔가 ... 하아- 한숨이 나왔어. 왜냐하면 사실, 남편의 말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야 ㅠㅠ 

아내는 남편으로 부터 '앞으로 바람을 필것이다' 혹은 '연애를 할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심란한 마음에 잠들지 못하고 술을 마시는데, 생각해보니 그들의 마지막 섹스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거다. 그들은 서른 다섯해를 함께 살았다.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남편은 탁 터놓고 다른 연애를 하고 싶다고 했으며,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고 했다. 아내는 당연히 남편의 말에 '싫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 여기까지 밖에 읽지 않아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 뭔가 서럽다. 서러운데 또 뭔지도 알겠고...


갑자기 스무살 때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던 나는 당연히 알바를 하던 남자 알바생들과 친하게 지냈다. 여자알바생들과도 마찬가지였고. 함께 술을 마시러 가거나 할 때도 있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기도 또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했는데, 그중에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라고 불렀다)가 군대를 갔고, 군대에서 내게 전화를 한거다. 당시에는 삐삐만 있고 핸드폰은 없는 상황, 오빠는 우리 집으로 전화를 했고 락방이를 바꿔달라고 했는데, 그 전화를 하필이면 우리 아빠가 받은 거다. 아빠는 딸의 이성교제를 초등학교때부터 신경쓰고 있었고, 초등학교때도 좋다고 전화하는 남자애들한테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서...하아- 여튼 그랬는데, 당연히 그 오빠에게도 물었다.


자네는 누군데 락방이를 찾나?


그러자 그 오빠는 "네, 아는 오빱니다" 라고 말했고, 이에 우리 아빠는 이렇게 말하고 끊은 것이다.


"오빠는 무슨, 내가 자네를 낳은 적이 없는데 자네가 왜 락방이 오빠인가."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나중에 편의점으로 전화해서 나랑 통화를 한 오빠는 "너네 아버지 대단하시더라" 했고 무서워서 쫄았다고 했다. 하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시절 새벽반으로 잠깐, 아주 잠깐 컴퓨터 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내가 결석을 하자 선생님이 전화한 거다. 선생님이라고 해봤자 나보다 겨우 몇 살 많은 남자사람였는데, 여튼 내가 나오지 않으니 선생님도 집으로 전화를 한 것. 집에 전화해서 락방이 있나요? 묻는 전화에 또 아빠는 물으신 거다.


"있는데 당신은 누군데 락방이를 찾소."


컴퓨터 선생님은 '컴퓨터 학원 선생님입니다' 라고 했고, 그제야 부드러운 말투로 아빠는 나를 부르셨....여보세요, 전화를 바꾼 내가 말하자 선생님은 '니네 아버지 장난 아니시다' 라고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고등학생 때였나, 여동생을 찾는 남자 아이 전화에는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라고 대응하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오빠란 그러니까, 무릇 남매란, 결혼한 사이에서 혹은 사귀는 사이에서 그러면 안되는 게 아닌가. 다정한 사이라면 다정한 남매 대신 다정한 연인이어야지, 다정한 남매 같은 거라니. 흐음.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 슬프다. 



오래된 연인 혹은 오래된 부부에겐 더이상 열정이나 쾌락이 존재할 수 없는걸까? 그건 어느순간 끝나버리는 걸까? 만약 내 삶을 지탱하는 거대한 축이 열정, 쾌락이라면, 그렇다면 이 연인관계와 부부관계의 신의를 지키는 대신, 새로운 열정을 찾아야 하는걸까? 그럴 수밖에 없는걸까? 크- 슬프다.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결혼이란 걸 하게 됐는데, 35년간 잘 지내오다가, 갑자기 남편이 '새로운 열정과 쾌락을 찾아 다른 연애를 해야겠어' 라는 말을 내게 하게 된다면...어떡하지? 어 이해해, 나도 그런 마음 들거든, 그러니 새로운 연애를 시작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 책 속의 아내처럼 "싫어"라고 했는데, 이미 그런 마음을 먹은 남편이 '너가 싫다고 했으니까 그럼 마음에 드는 여자 있지만 꾹 눌러볼게' 라고 나올까? 하아. 더 무서운 건 '내가' 그런 마음을 먹게 되진 않을까 하는 거다. 서른다섯해를 함께 보내고 나서 '나는 새로운 남자와 새로운 열정으로 나를 불태우고 싶어'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의 연인에게 혹은 남편에게 그런 말을 하게 된다면...윽. 당연히 나의 상대는 상처를 받을 것이고, 그렇지만 나는 저렇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그러고 싶었던걸까...아...역시 서로에게 상처주거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연애고 결혼이고 뭐고 다 떠나서 그냥 혼자 지내는 게 답인건가...



라고 생각하다보니 사실 내게 저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게, 내가 지금 당장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서른 다섯 해가 지난다고 하면, 거의 여든이 가까운 나이가 될텐데, 그때는 새로운 쾌락...을 다른 사람에게 찾기 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조용히 내 할 일 하며 내가 먹고 싶은 것 먹으며 지내는 걸로 체력 소모가 다 되지 않을까. 아니야, 나이에 대한 편견은 금물! 나는 일흔 다섯이 되어서도 스테이크집에 혼자 가서 와인까지 시켜서 잘 먹고, 또 새로운 열정에 불붙이기에 피곤하지 않게끔 건강을 관리하겠어! 몸관리를 하겠어! 운동을 하고 체력을 키워놔서 일흔 다섯이 되어서도 상대가 옆에 있으면 있는대로 그 상대와, 없다면 새로운 잘생긴 상대를 찾아서는 열정과 쾌락에 휩싸이기 위한 준비를 하겠어! 



일단 오늘 점심, 저녁, 당면한 끼니부터 최선을 다해 맛있게 꼭꼭 씹어먹어주겠다. 그것이 나의 건강관리 첫 번째!





새로 산 반지는 생각보다 훨씬 더 불편하다. 이것은 불편할 것이고 그러니 손 씻고 이럴 때 빼고 씻는 게 좋을거라는 백화점 직원의 말을 들었지만, 기존에 알맹이 큰 반지를 껴왔던 터라 대수롭잖게 네, 라고 했는데. 하아- 약간 커서 그렇기도 하지만 저 디자인 때문에 자꾸만 여기저기 걸리적 거린다. 손 씻을 때도 걸리적 거리고 옷을 입을 때도 걸리적 거려. 앉았다 일어나면서 스커트를 정리할 때도 걸리적거려. 해서, 옷을 벗기 전에 일단 반지를 빼야 하고, 옷을 입고 나서야 반지를 끼워야 한다. 손 씻을 때는 빼서 책상에 두고 손을 씻어야 해. 빼기 싫어서 그냥 손을 씻을 때는 손을 꼼꼼하게 씻기 보다는 그냥 물에 쑥 댔다가 마는 정도에 그치게 된다. 게다가 약간 커서 뱅글뱅글 돌아가..음... 내 생각보다 더 불편하군...그렇지만 예쁘니까, 내가 감수하겠어. 이 불편함 조차 습관으로 만들어주겠어. 너를 놓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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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7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08-27 14:13   좋아요 0 | URL
아 긴팔 옷 입고다니는 건 아니고요, 아침에 출근할 때 추워서 긴팔 가디건 입었어요. 어제부터요. 그렇지만 사무실에선 반팔 옷. 그리고 지금은 에어컨까지..아니, 날이 오늘은 또 햇볕이 뜨겁네요??

남매는, 좀 아니잖아요? 흐음. -_-

밥먹듯이... 2015-08-27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도반지도 이뻐요💐

다락방 2015-08-27 14:13   좋아요 0 | URL
오, 댓글 옆에는 꽃다발입니까!!! 예뻐요!! 꽃다발이라니. 꺅 >.<

바람돌이 2015-08-27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 보고 있는데요. 락방이님보다 조금 더 읽었군요. 그 뒤로 계속 슬퍼하고만 있습니다. (ㅎㅎ 스포일러????)

아 저말 저도 딱 걸렸어요. 저 장면을 읽는데 누가 뒤통수를 딱 치는 기분이랄까? 마침 남편이 옆자리에 널부러져 있길래 읽어주면서 아 이건 정말 골때리는 상황이다 그치라고 하니까 남편이 ˝나는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마˝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한마디 했죠? ˝아니 자기말고 나 말야, 내가 다시 불타는 연애를 그 나이가서 하고싶을 것 같다고....˝

남편이 뭐라 했냐고요? 음,..... 콧방귀만 뀌더군요. ㅠ.ㅠ

다락방 2015-08-27 15:16   좋아요 0 | URL
오, 바람돌이님 이 책 보고 계십니까? 저는 이제 막 시작했어요. 하핫.
뒤에 슬픈 내용이라니..그럴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ㅠㅠ
이 책 읽으면서 아, 내가 판사가 안 되길 참말 다행이다 생각했어요. 뭔가 대단히 어렵고 곤란한 상황들이 많을 것 같더라고요. 그때마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불타는 연애를, 일흔살 넘어서도 한다면, 사실 그건 또 그것대로 괜찮을 것 같긴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물선 2015-08-27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30년 후에도 식지않는 열정을 꼭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럴라면 우선 저랑 30년 컨텍이 필요하시네요 ㅎㅎ

다락방 2015-08-27 17:11   좋아요 1 | URL
그전에 일단 결혼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리미 2015-08-27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이 소설의 리뷰를 이렇게 잼나게 읽게 될줄은 몰랐어요. 저도 피오나의 남편이 마치 내 일인냥 빡치긴 했는데... 뭐 아주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닌듯도 하고.
저는 이 책 읽고 좋아서 남편한테 권했는데 희안하게 남편도 피오나에게 공감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고요... ㅋㅋ 일하느라 힘든 사람한테 별 걱정을 다 시킨다고요 ㅋㅋ

다락방 2015-08-28 09:2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만약 이해할 수 없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그냥 욕이나 한바탕 해주고 말텐데, 어쩐지 어떤면으로는 이해되기도 해서 마냥 욕하기만 할 수도 없더라고요. 그리고 피오나의 남편이 했던 말이나 행동을 제가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오로라님 남편분 말씀도 확 다가오네요. 일하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별 걸 다 떠맡기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로그인 2015-08-27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톱을 바짝 깎다보니 손톱이 점점 사라져가는 중인데 다락방님 손톱 부러워요~~왠지 피아노 잘 칠 것 같은 손~~ㅎ반지도 이쁘고 가디건 색도 맘에 쏙 드네요~~♥

다락방 2015-08-28 09:22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손톱 긴 거 불편해해서 어제 집에 가서 잘랐어요. ㅎㅎ
피아노는 초등학생 시절에 6년이나 배웠지만 ㅠㅠ 지금은 손이 굳은 걸로도 모자라서 악보를 볼 줄도 몰라요. 피아노도 팔아버렸어요. 6년을 배웠지만, 피아노병신.. ㅠㅠ

moonnight 2015-08-2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도 예쁘고 반지도 예쁘고 ^^ 가디건을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아요. 다락방님 멋쟁이♥ 저는 어제 스토너 읽고 오늘 종일 넋이 나가 있었어요.ㅠㅠ 이제 칠드런 액트 읽을 참인데 또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무섭ㅠㅠ;

다락방 2015-08-28 09:23   좋아요 0 | URL
큰 맘 먹고 반지 하나 질렀습니다. 히히히히히.
아, 스토너 좋았지요, 문나잇님? 저도 참 좋았어요. 칠드런 액트 읽고있는데, 이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을 하게 되서, 아, 이런게 좋은 책이지 싶어요. 요즘 독서의욕 없었는데 다시 불붙여주는 책이랄까요.
우리, 재미있게 책 읽어요, 문나잇님!! >.<

마태우스 2015-08-30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지, 손 다 예쁘구요, 안그래도 이거에 대한 댓글을 스맛폰으로 남기려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어제) 암튼 오누이처럼 지낼 수 있지만 그게 바람을 합리화하는 전제라니 기가 막힙니다. 아내한테 바람 얘기를 했더니 아내가 이럽디다. ˝우리 개들 다시는 못볼 줄 알아˝ 그건 저한테 겁나 무서운 형벌이라, 착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다락방 2015-08-31 13:3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네, 마태우스님. 옆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는 방향으로 살아야할 것 같아요. 그렇게 살도록 해요, 우리.
벌써 8월 말일이에요. 더위도 점차 사라져갈텐데,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마태우스님.
아, 북펀드 아주 빠른 시간내에 마감됐더라고요!! >.<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사람 마음엔 온전히 나를 위해 가꾸고 몰두하며 조심스레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돈이나 명예 따위로 채워지지 않는 아주 정직하고 거룩한 영역이죠. 나를 위한 기본적인 욕망을 채우지 못한 채 '열심히'만 살다가는 분명 큰 피해의식에 시달리며 마음의 평정을 잃습니다. (p.124)
















책 속의 강사가 왜 이런 강연을 하게 됐는지는 일단 뒤로하고, 이 부분을 읽는데, 아, 내가 그래서 며칠전에 53,700원이나 내 점심 한 끼에 투자했구나, 싶었다. '나를 위한 기본적인 욕망을 채우는 일', 나는 그것을 한 것이로구나. 나는 내 안의 아주 정직하고 거룩한 영역을 잘 보살피며 말을 들어주었구나, 싶었다. 잘했어. 


사실 강사는 '열정'과 '열심'에 대해 강연중이었다. 그 중에 열정에 관한 부분은 나로서도 동의했는데, 때로는 자기의 열심을 열정으로 착각하고, 그 열정을 꼭 남에게 전파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 그것이 폭력적이란 생각을 하는 대신, 그들은 그것으로 좋은 에너지를 전한다, 혹은 내가 사는 이유로 너도 살아봐, 라고 하는 것이니 으윽,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재차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열정에는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하고 내보일 수 있는 샘플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모두 소중한 샘플이며 모두 고유하고 특별한 경우의 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열정'에 가득 차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아직 많이 있습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 속엔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내가 시시한 일을 하는 너를 지배해도 된다는 권력욕이 숨어 있지요. 자신들은 그렇지 않다 말하겠지만 결국엔 다른 이들이 하는 이은 내가 하는 일에 비해 전문적이지도 않고 하찮을 뿐이라는 거예요. 쓸데없는 인간들이라는 거죠. 이런 생각은 삶의 모든 요소에 대한 폭력으로 작용합니다. 즉 열정이 권력으로 확장되고 맙니다. (p.126)



일전에 이승우의 책에서 읽었던 구절도 떠오른다.


오지랖이 넓고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은 자기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그런 성격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p.129)




으윽, 적극적이지마, 오지랖이 넓지마!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숨기만 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에겐 각자가 살고 싶은 방식이 있습니다. 그걸 존중해주십시오."



"마기 씨가 살고 싶은 방식은 어떤 겁니까? 말씀해주십시오."

"잘 아실 텐데요. 저는 제국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결국 제국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라는 거지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까닭이 무엇입니까?"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 사람을 죽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p.238-239)




최근에는 아주 많이 내 미래에 대해 궁금해한다.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게될 것인가? 지금 여기까지 살아온 내 삶의 형태는 내가 바라던 형태였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내 생각대로만 움직였던 것은 아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또 예기치 못한 사람들의 출현으로 지금의 삶의 형태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마기'의 동생 '욘데'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고, 제국은 그런 욘데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일꾼으로 쓰고자 한다. 그러나 욘데는 그것을 거부한다. 욘데의 오빠인 '마기'는 제국의 유익을 위해 살고 싶지 않고,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음을 얘기한다. 나 역시 '제국'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삶에 대해서는 참견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우에, 내가 욘데의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나 역시 아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 최선의 또 최고의 방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제국에 붙들려가 제국의 사람이 되기보다는, 이 옳지 않은 상황에 대해 아이들에게 똑바로 가르쳐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욘데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제국의 유익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유익이었을 것이다.



일전에 수키시리즈 중에 그런 얘기가 나왔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텔레파시로 얘기할 수 있고 그런 능력자들이 나오다보니, 경찰에서는 그들이 경찰의 업무에 협조해주기를 바라는 것. 그러나 수키와 다른 등장인물은 그것을 거부한다. 범죄자를 잡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신들의 삶도 중요하므로. 이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탐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까지 생각나게 하네... 



오래전에, 프로그램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데, 아동이었을 때 성폭행을 당했던 사람이 성인이 되어 자살한 경우를 보여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고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그때 친구가 내게 말했었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그당시에는 이것이 왜 교육과 연결될 수 있는지 잘 몰랐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나서야 아, 교육의 힘이 정말 크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페미니즘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 어릴때부터 양성평등에 대해 말하여준다면, 몸소 보여준다면, 그것은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광고며 개그프로그램, 시사채널, 잡지표지까지, 도처에 여성비하가 넘쳐나니 자연스럽게 그런것들을 흡수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욘데가 자신의 능력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쓰는 게 나는 무척이나 흡족했다. 궁극적으로는 자라나는 아이들, 뭐든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정당한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최선이 아닐까.  



제국에 끌려가서도 할 말을 조곤조곤 하는 '마기'는 뭐랄까, '그래 이런 말을 다 해!'라고 응원하게 되는 한편, 이상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너무 이상적인 게 아닐까, 하고. 차분하게 울분을 담고 있는 그런 소설이어서, 다소 신기한 마음으로 읽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서 나보다 코가 먼저 알았다. 혹독한 비염에 시달리느라 모든 일에 의욕상실. 앉아있는 것조차 귀찮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비염 약을 지어먹고는 꾸벅꾸벅 병든 닭마냥 졸다가, 어느 한 순간에는 또 어떤 일들을 떠올리며, 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참 행운이야, 싶기도 하고 또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 한 순간에는 여섯 살 조카가 보고 싶은 마음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나에게 어떤 삶을 살거냐 물어보면, 아마도 지금같은 삶을 다시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요란하지 않은, 내가 간절히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자주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그런 삶.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어쩌면, 제국에 붙들려갈만큼의 뛰어난 천재성이나 능력이 없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아빠가 내게 '너무 예쁘게 낳으면 팔자가 세지'기 때문에 나를 '보통 예쁘게' 낳으셨다 했는데(응?), 아마도 그런 아빠 덕에 내가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샌드위치 먹고싶다.

이렇게 소박한 소망이라니.




"사실, 말과 글은 그 이상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무기입니다. 권력을 쥔 자가 언어도 쟁취합니다. 언어를 쟁취해야 상대방의 감정과 사고, 문화와 역사까지 지배하니까요. 언어를 점령해야만 상대방을 완벽히 배제한 채 자신의 탐욕에 맞게 새 판을 짤 수가 있으니까요. 제국이 원한 게 이거 아닌가요? 그러니 저라고 이 무기를 쉽게 내드릴 순 없죠."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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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6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6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08-26 20:06   좋아요 0 | URL
네네, 얼마든지요~~

다다 2015-08-2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요. 다락방님 보며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고 흥미로운 구석이 뭔지 아세요?
크크- 하고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한다는 대목이예요.
많은 사람들이 하고싶은 일을 유예하거나 지연하며 핑계를 만드는데 익숙한 것 같아요.
다락방님은 그냥 하자나요.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니예요.)
나중에 반성을 하든 잘했어라고 스스로 독려를 하든..
그 모습이 너무 근사해요.
해서, 언제가부터 제가 이렇게 살게 되었거든요.다락방님을 거울삼아.
남에게 피해안주는 범위내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는 선에서
마음이 가면 그냥 한다. 이렇게요. 그랬더니 놀라운 변화들이 펼쳐지더군요.
생각만 하던 두려움과 말로만 하던 두려움을 무릎쓰는 용기, 성장...
이런 것들이 무엇이며 자기 삶을 주인되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확확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요즘 참 좋아요. 고마워요. 다락방님. :)

다락방 2015-08-27 10:58   좋아요 0 | URL
요즘 좋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계속 즐겁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비로그인 2015-08-2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부쩍 차가워졌어요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 걸 보니..샌드위치는 드셨나요??^^ 갓구운 크루아상처럼 따뜻하고 겹겹이 부드러운 빵에 푸짐한 속재료... 소스가 뚝뚝 떨어지는 샌드위치를 드셨으면~ *.*

다락방 2015-08-27 10:59   좋아요 0 | URL
샌드위치를 아직 못먹었어요. 대체 언제쯤 먹어야 하나 계획을 좀 세워야겠어요. ㅎㅎㅎ
오늘 점심은 순댓국 먹을 거에요. 친구의 인스타에서 순대국 사진 보고 확- 삘이 꽂혀가지고 ㅋㅋㅋ

아, 샌드위치는.. 먹으면 인증샷 올릴게요. 너무 먹고싶어요, 아른님! >.<

레와 2015-08-2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듬지 못한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걱정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침묵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지금 나는 좀 그러네. ^^;;
혹시나 언니 혹은 선배플레인도 계속 생각하고 조심하고 있는데, 그러다 또 침묵.

침묵하는것 보단 더욱 잘 다듬을려고 노력하는게 좋겠죠. 그래야지! ㅎㅎ

다락방 2015-08-27 11:01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남동생이 나한테 생각 좀 하고 말하라고 해서 ㅋㅋㅋㅋㅋ 그걸 뼈에 새기려고 노력 중이에요.

˝요즘 일단 말하고 사과하는 버릇이 들었냐?˝ 라고 하더군요. 제가 뭔가 기분 나쁜 말을 해서 사과를 했거든요. 그랬더니 저렇게 말하고서는 ˝앞으로 생각하고 말하도록 해라.˝ 라더니, ˝그리고 사과 안해도 된다˝ 했어요. ㅋㅋㅋㅋ 이새끼 열나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