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 - 결혼을 배운 적이 없는 모든 당신들을 위하여
강수돌 외 지음 / 샨티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결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일단 결혼하기로 결심한 뒤에 예식장을 예약하고 예물을 맞추고 하는 예식전의 준비과정도 한숨이 나오고, 결혼식에서 여러사람들을 모아놓고 나는 이 사람과 한 평생을 살기로 맹세하겠다, 고 내뱉는것도 부담 작렬한다. 웨딩사진은 어떤가, 그 오글거림. 이 모든 번거로운 과정을 마치고 나면 내게는 시댁 식구라는 어마어마한 집단이 생긴다. 내가 갖기를 한순간도 원하지 않았던 구성원들. 나는 이제 그들을 내 식구인듯 살갑게 챙겨야 하는걸까. 게다가 내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된다면,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일년에 몇번 찾아오지 않는 달콤한 명절의 긴 연휴를 시댁에 가서 전부치다가 끝낼 판이다. 그 시간에 나는 세수를 미룬채로 늘어져 잘 수도 있고 다른곳으로 여행갈 수도 있을텐데. 게다가 아이를 낳는것은 어떠한가, 그 아이를 내가 이 땅에서 키워 간다는 것. 내가 아이를 '너무' 사랑하거나 혹은 '덜' 사랑하는 것 사이의 그 거리를 잘 조율해낼 수 있을까. 그 아이가 괜찮은 어른이 되게끔 도와줄 수 있을까. 이 모든것들이 암담하다. 나는 결혼하기 전의 나와 결혼하고 난 후의 내가 달라지길 원하지 않는다.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결혼전에 즐겼던 것을 결혼 후에도 즐기고 싶다. 그러나 이 땅에서 결혼이란 의식을 치루고 나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의 '목수정'의 글은 한줄 한줄 내 의견과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할 때, 주례가 신랑과 신부에게 묻는 한 가지는 죽기 전까지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할 것인가이다. 사랑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건만, 순간 이는 의지의 문제로 환치된다. 미래에 자신이 갖게 될 감정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알기에, 감정의 문제를 의지와 신의의 문제로 환치시켜 만인 앞에 선서하게 만든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증인을 서게 함으로써, 이는 도덕의 문제로까지 연결된다. (목수정, p.27) 

 

 
   

 

   
 

각자에게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전부여서는 곤란하다. 그를, 그녀를 잃는 것이 내 전부를 잃는 것과 같다면, 처음부터 당신들은 잘못 만난 것이다. 서로가 언제든지 날개를 달고,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존재인 동시에 언제든지 서로를 다시 찾아 서로의 목덜미를 더듬으며 위안을 나누는 사이여야 한다. (목수정,pp.35-36) 

 
   

 

물론, 대부분의 성인남녀들이 결혼을 선택하고 그것을 유지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거기에는 부정적인 것 보다 더 큰 긍정적인 것들이 자리하고 있을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삶을 꾸리기로 결정했다면, 그 삶은, 물론 내 예상대로 전개된다는 전제하에, 안정적이고 편안할 것이고 든든할 것이다. 결혼후에 어떤 삶을 살수 있는지 애인이 달콤하게 속삭이면 흔들리는게 사실이다. 형광등을 갈아주고 맥주캔의 뚜껑을 따주고 살림을 도맡아 해 줄, 내가 아닌 타인이 나와 한 공간에 머무른다는게 어찌 장점이 아닐 수 있겠는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다정하게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수도 있을것이다. 악몽에 뒤척이다가 든든하게 나를 안아주는 팔을 느끼며 식은땀을 닦아낼 수도 있을 것이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 또 몸이 몹시도 아픈 날, 옆에서 손을 잡아줄 이가 있다는 것은 포기할 수 없으리만큼 유혹적이지 않은가. 물론, 나도 그에게 많은 것들을 해줄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커피를 내려준다든가..........음............커피를 내려주는 것 같은것 말이다. 

 

그러나 로맨스는? 로맨스는 결혼과 동시에 끝나는게 아닐까? 물론 남편 될 사람과 몇년간 설레임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내 삶에 로맨스가 이걸로 끝이라는 생각을 하면 세상이 잿빛이된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내가 '이미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를 거부해야 할 것인가, 또 더이상 아무도 나를 여자로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의 결혼을 핑계 삼을지도 모르잖은가. 이게 다 내가 결혼을 했기 때문이야. 그런점에서 이 책의 임혜지 편은 결혼해도 되는 이유를 너무나 공감되게 한줄로 표현해준다. 

   
  나는 이혼이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결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임혜지,p.78)    
   

저 문장을 읽는 순간 결혼이라는 제도에 한줄기 구원의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이혼할거야'라는 생각으로 산다는게 아니라 '굳이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이걸 버텨내며 내 자존감을 죽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혼은, 어쩌면 결혼이란 제도를 선택해서 불행해질지도 모를 나를 위한 개런티 같은 것.  

 

나를 비롯하여 내 주변에는 결혼대신 비혼을 선택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들중에는 결혼을 원하지만 아직 상대를 못만난 경우도 있고, 연애상대는 있지만 결혼이란 제도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혼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중 대부분의 여성들은 내가 가진 부담감이나 부정적인 면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나같은 사람은 나 혼자뿐인게 아니었다. 

   
 

고학력 여성군의 독신 비율이 늘어나는 이유도 우리 사회 결혼 제도의 모순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함께 사는 안정감은 누리고 싶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주는 부담감을 갖고 싶지 않은 여성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이것은 분명 지금 같은 방식의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우리의 의식 또한 그 변화와 제도, 풍습 사이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이다. (오진희, p.121-122) 

 
   

이 땅에서, 여자로서, 지금 결혼하게 된다면, 누릴수 있는 것보다 잃게 될 것이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생각이 선뜻 결혼에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결혼하기 전에 물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려고 했던 이 책의 의도는 참신했지만, 그러나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가 나의 결혼이나 비혼에 대해 결심이 바뀌거나 생각 자체가 바뀌지는 않았다. 물론, 이 책의 몇몇이 쓴 글은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말해주기도 하고(서재를 이혼시키자는 서윤영의 글은 나 역시도 서재를 이혼시키는 쪽이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게했다), 또 내가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확신하게 되기도 했지만, 또 몇몇의 글은 너무나 뻔한 조언성의 글들이라 읽기에 지루했다. 이미 결혼했고 그다지 행복하진 못하지만 행복하다고 부르짖으며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강요하려는 대부분의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 혹은 친척들의 잔소리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이 책을 읽기전에도 그리고 읽고 난 후에도, 나는 앞으로의 내 삶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 하는 것은 내 몫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연애의 상대를 선택하는 것도, 그리고 내가 결혼이나 비혼으로 갈 삶을 선택하는 것도. 그 모두가 오로지 내가 선택할 몫이다. 그 선택에 있어서 나는 나만 생각할 것이고, 나를 중심에 둘 것이며, 나의 행복이 기준이 될 것이다.

 

 


댓글(25)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1-11-10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페이퍼에서 보고 하루키책이랑 함께 주문했더니 아직 올려면 멀었는데 이를 어쩌죠. 다락님 리뷰 읽으니 이미 책 다 읽은 느낌. ^^;
맞아요. 선택은 오로지 나의 몫. 그리고 선택을 했다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억울해 하지도 말아야 하고요. 제 주변의 몇몇은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결혼은 안 할 거다. 달밤 너처럼 속 편하게 혼자 살 거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데요. 듣기 불편해요. 무엇보다 본인들의 아이들에게 굉장히 미안한 말 아닌가 싶어요. 그들의 존재까지도 후회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것 같아서.

다락방 2011-11-10 12:47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제 개인적으로 이 책은 꼭 읽어볼만한 책은 전혀 아니지만, 그런데 읽어보면 좋을것 같기는 해요. 막연하게 결혼에 대해 짐작했던 것이 음, 확연히 눈에 보인다고 해야할까요. 결혼은 환상이 아니고, 환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도 알고 있으니까요. 이 책에는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결혼후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도 나오는데,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이기도 해요. 그래, 내가 원하는대로 살 수 있을지도 몰라,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물론 그것은 상대가 누구냐,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느냐도 중요하고요. 물론 리뷰에 쓴것처럼 지루한 글도 있어요. -_-

2011-11-10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0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0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1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11-11-1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빌려줘요 다락방님!! ㅋㅋ

다락방 2011-11-10 13:39   좋아요 0 | URL
네, 빌려줄게요! 웬디양님은 임영신의 글을 좋아할까? 여기 임영신의 글도 있거든요.

2011-11-10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0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11-11-10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내가 임혜지, 목수정 얘기했는데... 이 글 보기 전이었다구요!
다락방 찌찌뽕~

그리고 커피 내려주는게 얼마나 '큰 일' 인데요. 무려 커피를 내려주는거라구요^^

다락방 2011-11-11 09:29   좋아요 0 | URL
난 아치가 내 글 읽고 얘기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다니. 진짜 완전 찌찌뽕이다. 임영신은 안궁금해요? 아치는 임영신 좋아하잖아.

Arch 2011-11-11 14:43   좋아요 0 | URL
임영신? 페이퍼를 쓰는 임영신. 좋아한다고 생각해본적 없는데.. 어디서 봤대요~ 다락방

다락방 2011-11-11 15:49   좋아요 0 | URL
아, 아치가 일전에 [희망을 여행하라]되게 좋게 보고 페이퍼 쓴것 같아서요. 그래서 ㅎㅎ

Arch 2011-11-16 09:28   좋아요 0 | URL
멍충이, 멍충이
임영신! 맞아요. 임영신씨 글 좋아해요.
왜 난 이분을 월간 페이퍼 쓰는 분 이름이랑 헷갈렸지. 황경신인가. 늙었나봐...
다락방은 이런걸 어떻게 다 기억한대요. 나도 까먹었는데^^

어제 다락방에게 엽서 보내려고 엽서를 고르는데 헐, 된장. 유치한 그림 밖에 없더라구요. 다음에 꼭 보낼게요. 더 추워지기 전에.

다락방 2011-11-16 09:29   좋아요 0 | URL
이런거 기억하는 건 일도 아니죠, 뭐. 훗.
제 기억력은 가끔 천재적일 때가 있다구요!! ㅎㅎㅎㅎㅎ

Arch 2011-11-16 17:29   좋아요 0 | URL
진짜진짜 다락방은 똑똑한 여자~

2011-11-10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1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11-11-1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이 책 읽었군요! 기대보다는 부족한데 나름 뭐 그냥 무슨 생각들을 하나 읽을만한.

다락방 2011-11-11 09:55   좋아요 0 | URL
네, 읽어보는 건 좋을것 같아요. 그런데 뭐 딱히 재미는 없더라구요. ㅎㅎ

2011-11-11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1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넷 2011-11-13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결혼과는 먼 인생이라 생각해서.ㅋㅋ;;;

다락방 2011-11-14 09:12   좋아요 0 | URL
저도, 아마도. ㅋㅋ
 
꿈을 빌려드립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하늘연못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하지. 흥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데, 서늘한데, 왜이렇게 이 책만 펼치면 졸린걸까.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1-11-09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을 빌려드린다고 하니 성실한 다락방님으로서는 얼른 받으시려는 마음 때문이겠죠! ^^
이 책 재미있어요? 솔깃.

다락방 2011-11-09 17:06   좋아요 0 | URL
재미는 있는데 저는 왜자꾸 졸리죠? 책장이 엄청 안넘어가요. 이거 며칠째 잡고 있어요. 두껍지도 않은데 ㅠㅠ

치니 2011-11-0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를 안 보는 다락방님은 모르겠지만, 지난 주인가 잠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검색어 1위 등극했었어요. ㅋㅋ 책 때문이 아니라 <천일의 약속> 수애가 치매 때문에 이 이름이 기억 안나서 애타게 떠올리는 장면 있어가지고.
(나는 이 사람 책 한 권도 안 읽었는데, 어때요, 읽어볼까요?)

다락방 2011-11-09 17:10   좋아요 0 | URL
치니님, 금요일에 제가 이 책 드릴게요. 저 거의 다 읽어가요. 금요일까지는 다 읽고 드릴게요. 안그래도 도레미파 다 한권씩 드리는데(방출件 -한자 쓰니까 유식해 보여요?), 치니님은 선택한게 없으셔서 나름 고민중이었거든요. ㅎㅎㅎㅎㅎ
자는 마르케스 책은 [백년동안의 고독]과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읽었었는데, [백년동안의 고독]은 엄청 좋았어요. 이 책, [꿈을 빌려드립니다]에는 그의 단편과 산문이 실려있어요. 글들은 괜찮아요. 특히 단편중에 한 여자가 엉뚱하게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소설이 있거든요. 그게 참 좋아요...

마법천자문 2011-11-09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이사이에 누군가 수면제를 뿌려놓은 것 아닌가'라고 과학적으로 추리해봅니다.

다락방 2011-11-10 09:28   좋아요 0 | URL
와, 정말 엄청나게 졸았어요. 책 한장 한장 넘기는게 어찌나 힘겹던지. 다 읽었습니다. 흑흑. 정말 수면제 뿌려놓은 것 같았어요.

하루 2011-11-1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어요. 정말 재미는 있는데!

다락방 2011-11-11 13:26   좋아요 0 | URL
전 다 읽었지롱요! 움화화화화핫. 정말 힘들고 긴 여정이었어요. ㅎㅎ

가넷 2011-11-13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을 빌려드린다고 하니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흠. 같이 근무하시던 '여'선생님이 절대 이런 농담은 여자들에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면 안되나요? 이런 농담. ㅎㅎ;;;

다락방 2011-11-14 09:13   좋아요 0 | URL
응? 이런 농담이 왜요? 왜 하면 안되는거지? 잘 모르겠는데요? ㅎㅎ
 

(점심 식사전이라면 읽지 말것을 권함. 읽고싶다면 동영상은 재생하지 말것을 권함.) 

 

조금전에 알라딘 문자메세지를 이용하기 위해 나의계정에 들어갔다가 하루특가 상품들을 보았다. 화장품에서는 코팩이 하루특가중이었다. 바로 이것. 들어본적도 없는 엘리자베스 코팩 3종셋트. 

 

 

 

 

 

으응, 좋은가? 하고 상품 구경을 하다가 밑에 동영상이 있는것을 보고 눌러봤다.  

 

 

 

우웩. ㅠㅠ 

내가 이걸 왜봤지. 코팩 밑에 있는 동영상이고 피지제거라고 쓰여져 있으니 당연히 이런 동영상일줄 알고 있었잖아. 코팩이고 피지제거인데 별모양의 무지개빛 피지가 나올 리 없잖아. 그런것이 반짝거리며 찬란할 리 없잖아. 근데 이걸 왜 재생했지. 게다가 끝까지 봤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처음 보고 역겨우면 그냥 닫으면 될 것을. 으악, 이게 뭐야, 이러면서 다 봤다. ㅠㅠ 

보고나서 이 영상이 쉬이 잊혀지질 않는거다. 아..이게 뭐야 진짜. 기분 구려. 역겨워. 그래서 코팩을 안사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대체 이걸 왜 본것인가...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서. 히융 ㅠㅠ 

친구는 그것을 내게 '우리안의 변태끼'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이것은 나의 내재된 욕망..같은것인가. 역겨운 영상을 보며 나를 괴롭히기? 우리 모두에겐 그런 욕망이 있는것일까? 아니면..나에게만 있는걸까. 왜 이걸 보고 괴로워하고 있는걸까. 친구랑 대화를 하고, 일을 하고, 그리고 아름다운 노래를 들어도 자꾸만 저 영상이 눈앞에서 리플레이된다. 싫어.. 

 

급기야 이걸 나혼자 보고 괴로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 사악한 나의 영혼..페이퍼 쓰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 

 

이 영상 잊으려고 내가 들었던 아름다운 음악은 이것. 

 

 

 

그래봤자 사라지진 않아..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11-11-09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우리 안의 똘끼를 확인하고 말았어요...;; 심지어 털까지 뽑히는 강력한 피지 제거로군요. 저러다가 모공 더 넓어질라...ㅜ.ㅜ

무스탕 2011-11-09 12:39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은 봤단 말이군요. 전 결코 안보겠어요!

다락방 2011-11-09 12:48   좋아요 0 | URL
뭔가 다른 페이퍼를 후딱 올리든가 해야지 나의 서재 들어오니까 재생안해도 보이는 저 화면이 정말 짜증... ㅠㅠ
마노아님의 똘끼를 잠재우셨어야죠!! ㅠㅠ

보지마세요, 무스탕님.(보세요보세요보세요보세요)

무스탕 2011-11-09 12:50   좋아요 0 | URL
ㅋㅋㅋ 다락방님. 괄호안에 보세요보세요보세요보세요보세요를 그렇게 붙여 써 놓으니까 읽다가 읽다가 나중엔 '요보세요' 로 읽었어요. ㅋㅋㅋ

다락방 2011-11-09 12:56   좋아요 0 | URL
앗 정말 요보세요로 읽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점심 드셨어요, 무스탕님?

moonnight 2011-11-09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피지가 시워~~~언하게 뽑히네요. 털까지. ㅎㄷㄷ;;;;; 근데 마노아님 말씀처럼 저런 코팩은 쓰고 나면 모공이 더 커진다는 말 들었는어요. 무섭다. -_-;;;;;

다락방 2011-11-09 17:09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드러워 죽겠어요. 전 이런 페이퍼를 왜썼을까요? ㅠㅠ 아 없애버리고 싶어.. ㅠㅠ
전 변태에요 문나잇님. 흑흑. 저랑 놀지마세요. 흑흑.

moonnight 2011-11-10 12:19   좋아요 0 | URL
변태라니욧!!! 몇 번씩 동영상 돌려본 저는 뭐가 됩니까!!! (왠지 버럭;;;;)
ㅋㅋ 싫어요. 다락님이 아무리 거부하셔도 저는 다락님이랑 놀꺼에용. ^^

다락방 2011-11-10 12:51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도....변태끼가 있나봐요. ㅎㅎㅎㅎㅎ 저를 거부하지 않으시다니. ㅎㅎㅎㅎㅎ

blanca 2011-11-0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혹시 몸소 피지 짜보신적 있으세요? 저 고등학교 때 한번 밤 새운적 있잖아요. 코의 모공에서 나오는 피지에 중독되서. 그래서 다락방님의 끌림에 답변합니다. 그건 본능이라고요^^;;

다락방 2011-11-10 11:51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저를 어떻게 보시고...당연히 있죠. 코팩도 자주 써요 ㅋㅋㅋ 그러니까 저 동영상 재생전부터 저는 제가 보게 될 것이 어떤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겁니다. 내 코에서 나오던 바로 그것, 그것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내 코에서 나오는거 띄는거랑 남이 띄는거 이렇게 영상으로 보는건 어휴, 다르네요. 못견디겠어요. ㅎㅎㅎㅎㅎ

yamoo 2011-11-09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훽~~~괜히 봤당...ㅠㅠ
호기심에서 봤는뎅..으~~~~~디러워~~~

근데, 갑자기 급 관심이 생긴다..이건~ 뭐지..ㅜㅜ

다락방 2011-11-10 11:5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말 미치겠지 않습니까? 전 이 영상이 사라지질 않아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요, 야무님. ㅋㅋㅋㅋㅋ

pjy 2011-11-1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서 메인으로!ㅋ 점심시간 딱인데요^^;

다락방 2011-11-10 12:51   좋아요 0 | URL
아, 전 왜 이런걸 썼을까요. 정말 지워버리고 싶네요. ㅎㅎㅎㅎㅎ
 
엘리자베스타운 - Elizabethtow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사람의 삶과 죽음이 운명이라고 한다면,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만나는 사람들도 운명의 한 부분일 것이다. 그 운명이란 것은 순간의 우연들로 이루어진 것인데,  우리는 지하철 한대를 놓쳤기 때문에, 우연히 그 길에 우산 없이 서 있었기 때문에, 전력질주 하여 그 버스를 탔기 때문에, 살아 있거나 살아가고 있는것일런지도 모른다.  

남자도 죽으려고 했다. 커다란 실패에 맞닥뜨리고 나서 더이상 살 의미를 찾지 못했으니까. 푹 꺼져버리고 싶었던거다. 그래서 죽으려던 그 찰나에 핸드폰이 울린다. 핸드폰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그런데 그 핸드폰은 남자가 받을때까지 울린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조금 미룬다. 전화를 받고 나서,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이런식으로 미루는 과정에서 그는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는 거기에 우연히 있었다. 그가 탄 비행기에. 승객이라곤 단지 그 하나뿐인 비행기. 그녀는 그를 일등석으로 앉게 해주고, 피곤해하는 그의 옆에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한다. 그는 그녀를 기억하려고 했던건 아니지만, 그가 누군가와의 통화가 절실했을 그 시점에 그의 전화에 응답해주는 건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를 어제 대신 다른 날들이 하루씩 펼쳐진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를 사랑했던 친척들을 만나고 그리고 그녀와 통화를 하고 또 해돋이를 본다. 그녀가 지시하는대로 여행도 하고. 그리고 그 여행의 끝, 그의 인생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건, 그가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선택하기 이전에 그는 그녀를 선택한것이고, 그녀를 선택하기 이전에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기를 선택한 것이고, 아버지의 장례식을 선택하기 이전에 그는 전화를 받기를 선택한 것이다.  

켄터키주에 가서 한 이주일쯤 머무르고 싶을 정도로 이 영화에서는 미국이란 나라의 작은 지역이 퍽 아름답게 그려진다. 게다가 남자가 42시간 여행하는 그 길은 어떻고. 장례식 장면은 나를 뭉클하게 하는데, 그들은 어떻게 누군가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추도하는 과정에서 그토록 사랑이 넘치고 행복할 수 있는걸까. 내가 참석하는 장례식이 그런 분위기였으면 좋겠다고 나는 새삼 생각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커스틴 던스트를 사랑스럽다고 말하는데, 오, 나는 전혀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이 영화속의 커스틴 던스트의 캐릭터에 대해 좀 짜증이 나서,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친구하고 끼리끼리 사랑하는구나 싶어졌다. 남자를 위해 준비한 정성스런 여행지도와 메모들 그리고 시디들. 그건 분명 정성 가득한 것이었지만, 나라면 그 모든 시디를 재생하지 못했을 것이고, 거기에서 여자가 지시하는 술집에 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가라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여행의 끝에 내가 만나게 될 것은 이 영화속에서의 남자가 만난 것과는 다른 것이었겠지. 그러나 이 남자는 여자의 메모대로, 여자의 지시대로 충실히 따른다. 그리고 거기엔 '다른 끝' 이 있었고. 만약 그가 아니라 나였다면 나는 또 그와는 다른 선택을 했을테니 다른 결말을 맺었겠지. 나는 그 여자의 '정성'을 보는 대신, '집요함'이 느껴져서 그녀와는 사랑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그래서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는 거라니까. 게다가 그녀와 그는 어찌나 잘 통하는지. 밤이 새도록 충전해가면서 핸드폰 통화를 한다. 맙소사. 나는 한시간만 지나도 전화기 뜨거워졌으니 끊자고 말했을거다. 그랬다면 해돋이를 못봤을 것이고, 그 새벽에 함께 나란히 앉는 일은 없었겠지. 그래서 역시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고 등 돌릴 사람은 등 돌리게 되는게 아닐까. 그건 상대의 탓도 내 탓도 아닌, 상대와 내가 함께 만들어가는 결말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잘 살아주기를, 건강하게 살아주기를, 오래 살아주기를, 기본적으로는 '살아서 버텨내 주기를' 바라고 있는게 아닐까. 다시 제일 처음으로 돌아가, 남자가 전화를 받게끔 그토록 집요하게 전화를 울려준건 그를 사랑하는 그의 여동생이었고, 그리고 그 전화를 그녀가 집요하게 해야만 했던건, 그들이 사랑하는 그들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니까.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고 먼 곳에 사는 여동생이, 그리고 앞으로 사랑을 하게 될 비행기의 승무원이, 남자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물론,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 우연이 고마워 나는 이 영화가 조금, 좋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도 본능적으로 그러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 삶을 유지하도록 돕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1-11-08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아직 못 봤지만, 저도 다락방님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거 같아요. 정성이 아닌 집요함을요. -_-;;;;;; 커스틴 던스트 예쁘다고들 하던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다락방 2011-11-08 17:25   좋아요 0 | URL
전 너무 정성이 들어가니까 그게 '나를 이만큼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이런걸 어떻게 무시해' 정도가 되니까 부담으로 다가올 것 같더라구요. 선한 의도였으나 속박이 된달까;;
그러나 감동받을 정도로 섬세하고 정성어린 부분이긴 했어요. 아...제 영혼이 너무 자유로운게 문제인가봐요. 흑흑

부리 2011-11-0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커스틴 던스트는 결단코 제 타입이 아닙니다. 스파이더맨에서 처음 나왔을 때 "쟤는 주인공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주인공이더라구요. 대체 뭐가 이쁘다는 건지! 그전에 치어리더영화에서도 던스트 빼고 다 이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아무튼 줄기차게 나오는군요. 제 눈이 이상한 건가요. 다락방님이 짜증난다는 건 물론 캐릭터에 국한한 거겠죠?

yamoo 2011-11-08 21:59   좋아요 0 | URL
어쩜 저하구 그렇게 똑같은 생각을 하셨을까요!! ㅎㅎ 완전 동감이에요~~^^

다락방 2011-11-09 09:57   좋아요 0 | URL
이 영화속 캐릭터에 짜증이났다는 말이었는데요, 부리님. 그렇지만 저도 커스틴 던스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커스틴 던스트..목소리가 좀..제 귀에 엥엥대는 것처럼 들려서..별로 안좋아해요. 하핫;;
음..그래서 영화속 캐릭터로도 짜증난걸까요?
 

어젯밤에 침대 위에서 책을 읽다가 이젠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끄기 전, 이불이 엉망으로 되어있는 걸 보고는 제대로 폈다. 이불을 들어올려 펼치고 다시 똑바로 놓는 그 과정에서 이불과 침대 사이 혹은 이불이 접혀 있던 그 어느 사이에서 나의 스카프와 스타킹이 엉망으로 구겨진채로 튀어나왔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튀어나왔다. 어어? 이게 왜 여기있지? 나는 이것들이 사라지고 없었다는 사실을 그동안은 알지도 못했다. 이게 대체 왜 여기에..언제부터.. 하긴, 이렇게 이불을 다시 펴다가 침대 위에서 튀어나온 건 비단 스카프와 스타킹뿐만은 아니었다. 내 삶을 되돌아보면 침대는 마치 마법상자 같달까. 그러다가 자기전까지 읽었던 책에서의 그림블이 생각났다. 

그림블은 정원에 가서 왼발 페널티킥을 43골 날리고는 침대를 정돈하기로 했다. 침대 정돈은 정말 쓸데없는 짓이다. 그림블에게는(사실상 웬만큼 상식적인 사람 누구에게든) 침대가 각 맞춰 딱딱 정리돼 있는 것보다는 시트가 둘둘 말려 있고 바닥에 베개 한두 개 떨어져 있는 게 보기는 더 낫다. 게다가 몸이 빠져나온 그대로 놔두면 다시 잠자리에 들기도 훨씬 편하다. 하지만 어른들은 정리정돈에 대해 무지하게 유난 떠는 사람들이므로 그림블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침대를 정리했다. 이건 꽤 괜찮은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잃어버려서 찾다 찾다 포기한 물건(잠옷 바지 같은 것)을 침대에서 종종 발견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까먹고 있던 땅콩버터 샌드위치가 베개 밑에서 나온 적도 있다. 침대란 좀 웃기는 냄새가 나는 물건인가 보다 했건만. (p.144) 

세상에. 내가 열 살쯤 먹은 그림블과 별 다를 바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니. 끙. 그러나 한가지 위안이라면, 나는 최소한 침대에서 음식을 발견한 적은 없다. 그러니까 내 침대에서는 '좀 웃기는 냄새'가 난 적은 없다는 얘기다. 

 

 

 

 

 

 

 

이 책의 제목은 [픽션-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 이다. 내가 좋아하는 닐 게이먼과 조너선 사프런 포어가 참여한 이 작품집을 내가 읽어봐야 하는건 당연하다. 물론 조금 늦은감이 있지만. 제목 덕분에 내가 기대를 한껏한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닉 혼비의 작품도 닐 게이먼의 작품도 그저 그랬다.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조너선 사프런 포어의 작품은 내 생각만큼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가 센트럴 파크와 맨하튼을 얘기해줘서, 그리고 연결할 수 있는 실이란 실은 죄다 연결해서 사랑한다고 말해줘, 사랑해, 라고 말해주는 소년과 소녀가 나와서 역시 포어가 짱이구나, 하기는 했다. 그런데 인상 깊은 작품은 '조지 선더스' 의 글에 '줄리엣 보다'의 그림이 삽입된 「라스 파프, 겁나 소심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아마도 나는 몇가지의 강박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이 소설속의 아버지를 절절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나 가족들의 안전이 걱정이 되는 나머지 그 누가 보기에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소심한 아버지. 그런 그가 깨달아가는 사랑과 두려움에 관한 진리. 

 

그는 알았다. 사랑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그들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두려움을 없앤다는 것은 곧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음을 반드시 수반한다는 것을. (pp.51-52) 

아. 그는 분명 어리석었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식구들을 보호 통을 만들어 가두어 두는 그 행위를 대체 누가 용납할 수 있을것인가. 그러나 그가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 관심을 끊기로 결심한 것은 나 조차도 여러번 시도해보았던 일 아닌가. 나는 가장 강한 두려움은 가장 강한 사랑에서 온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사랑과 두려움 사이를 잘 조율해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두려움이 커지면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오고야 마니까.  

그리고 소심한 아버지는 결국 또 하나의 명백한 진리를 깨닫는다. 

거울 속 그의 모습은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머리카락은 산발에 눈에는 냉랭함이 서려 있었다. 누구도 그에게 수염을 정리하란 얘기를 해 주지 않았기에 수염은 거의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고, 누구도 그의 수염을 보고 슬쩍 헛기침하며 지적해 주지 않았기에 수염에는 빵 부스러기, 캔디 바, 그리고 납득이 안 가겠지만 고무로 만든 문 버팀쇠도 붙어 있었다.
그때 파프는 '파프 가설'보다는 덜 우아하지만 똑같이 진실한 '파프 추론'을 발견했다. 사랑 없이 산다는 것은 수염에 너절한 것들을 달고 다니는 거라는 것을.
(p.55) 


역시, 너무 사랑하지 않는 쪽이 세상을 사는데 좀 더 수월한 것 같다. 물론, 사랑하는 것도 그리고 사랑하지 않는것도 노력한다고 되는건 아니지만.

 

- 오전에는 엽서를 받았다. 시 한편이 적힌 엽서. 아, 너무 좋아. 나도 엽서를 꺼내어 답 시를 적어 보내야지. 우표를 붙여서 퇴근길에 우체통에 쏙 넣어야지. 내게는 시를 적어 엽서를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 오늘 나의 메신저 대화명은 '포크찹 스테이크' 였다. 점심을 먹던 남동생이 자신이 간 식당에서 본 메뉴라며 맛있겠다고 언제 여기서 술을 한잔 하자고 메세지를 보낸 것. 그 메세지를 읽자마자 눈앞에 포크찹 스테이크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이걸 먹어야 해, 반드시 먹어야 해. 그래서 나는 남동생에게 오늘 당장 가자고 했더니, 동생은 오늘 선약이 있단다. 아, 나 이거 먹기 전에는 계속 이거 생각만 날 것 같은데. 그래서 당장 내일, 다른 곳으로 가서 스테이크를 먹자고 친구랑 약속해 두었다. 그런데 회사의 동료 직원인 y 가 말을 건다. 폭찹 스테이크(나는 포크찹이라 쓰고 그는 폭찹이라 썼다)는 자신도 많이 만들어 먹었었다며, 요즘은 게을러서 만들어 먹은지 오래라고. y는 내 메신저 대화명에 예민한데-아마 다른 사람들의 메신저 대화명에도 그럴 것 같지만-, 특히나 술이나 술안주가 들어가 있으면 더더욱이 말을 건다. 평소에는 잘 말을 안거는데..그러고보니 얼마전에는 돼지국밥 사진을 메신저로 보내주며 같이 먹으러 가자고 했었는데, 생각난김에 조만간 돼지국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해야겠다. 내게는 맛있는 술안주를 보면 내 생각을 하는 직장 동료가 있고, 남동생이 있다. 훗.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reamout 2011-11-07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요일 모임은 어쩌면 평범한 모임였는지도 모르는데, 저는 좀 평상시보다 말을 많이 한듯한 자괴감을 토요일 아침에 몹시 느꼈어요. 그건 그 모임의 한 사람을 잃을까봐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그랬던거죠. 오늘, 늘 그랬잖냐는 답변에 저는 아주 평온하게 됐어요. 강박은 간혹 이렇게 뜻밖으로 찾아와 식은땀을 흘리게 해요.

다락방 2011-11-08 14:10   좋아요 0 | URL
강박은 정말이지 나 혼자만 느끼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안하는데 말이지요. 강박 때문에 저는 정신은 물론이거니와 몸이 피곤할때도 한두번이 아니랍니다. 무엇보다 제가 그런 순간들에 '이것은 나의 강박이다' 하는걸 인식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괴로워요. 그러니까 잊어버려 잊어버려 하면서 말이지요. 윽.

비로그인 2011-11-07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더러 그가 그랬어요.
아프게 될 것 같은 사람...
이라고.
날 아프게 하겠다는 말이겠죠.
기꺼이.

다락방 2011-11-08 14:10   좋아요 0 | URL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괘씸하니 만나지 말자,
라고 결심하고 그렇게 실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쥬드님.
그래도 자꾸만 흔들리지 말고.

비로그인 2011-11-08 15:09   좋아요 0 | URL
for 다락방님
아프게 하니까, 이제 안볼거에요.
만약에 만나면 때릴거에요. 진짜 주먹으로, 세게 한 번.

다락방 2011-11-08 15:12   좋아요 0 | URL
반지 낀 손으로 얼굴 때려버려요.

2011-11-07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8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7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8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11-08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다락방님! 마법 상자와도 같은 침대에서 꿈나라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시가 적힌 엽서를 받는 것도 그렇고, 메신저 대화명을 보고 같이 밥 먹자고 말 거는 사람이 있는 것도 그렇고, 정말 부러워요.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었는데, 백영옥 작가가 그런 말을 했어요. 부러워할 줄 아는 것도 용기라고. 아, 이건 그냥 잡설이구요. 방금 집에 들어와서 아주 노곤하고 띠용띠용 머리에 빛 바랜 별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는데, 이 글 읽다보니까 왠지 기분이 들뜨네요. 혹시 몰라 컴퓨터 옆에 있는 이부자리를 살펴보니, 이불과 베개가 단정하게 층층이 쌓여있네요. 어, 근데 책상 위에 노란 털실이 있어요. 지금 발견했어요! 오... 아침에 엄마가 수세미를 뜨고 계시던데, 반짝거리는 게 꼭 마법의 털실 같네요.

오밤중에 왠 수다를 이렇게... 그래도 좋네요 ㅎㅎ
포크찹 스테이크 먹고 어땠는지 말해주세요. 저는 급식에 나오는 '폭찹'은 질색했었는데. 그거랑은 다르겠죠?

다락방 2011-11-08 14:16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이런 수다라면 언제든지 더 길게 떨어도 되요. 수다쟁이님은 수다도 예쁘게 떠네요. 수다쟁이님은 댓글도 귀여워요. ㅎㅎㅎㅎㅎ

머리에 띠용띠용 떠다니던 별은 이제 좀 사라졌어요? 점심은 맛있게 먹었고?
저는 오늘 너무 피곤해서 방금 막 캬라멜마끼아또를 흡입했어요.

mira 2011-11-0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지 국밥 부산의 음식인데 어릴적 친구들과 함께 먹던 음식인데 반갑네요 이글을 읽으면서 위글의 소설내용보다 아랫글의 음식이야기가 유난히 더 댕기는 것을 보니 전 참 먹는 것을 좋아하는 먹보인가 봅니다 ㅎㅎ

다락방 2011-11-08 14:17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음식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것을 보면 먹보 대마왕인가 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백하자면 저는 돼지국밥을 한번도 안먹어봤어요. 꼭 먹어보고 싶! 습니다!!

돼지국밥 2011-11-08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랑 국밥먹으러 부산가요. 비행기타고.

다락방 2011-11-08 16:28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 네.

moonnight 2011-11-0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 제목 진짜였네요. ^^; 저는 진짜 침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네. 했던 적 있었어요. 조카가 침대에 앉아서 뭐 먹다가 남은 거 살그머니 침대 옆 공간에 끼워놓는다는 =_=; 그나저나 폭찹 스테이크 맛있겠어요. 맥주 안주 하면 좋겠...;;; 아니오. 저 술 끊었어요. 흑. -_ㅠ

다락방 2011-11-08 17:05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진짜죠, 그럼. ㅎㅎ
저는 술 못끊겠어요. 문나잇님 끊지마요. 나랑 술 마시면서 즐겁게 살아요! 네?
제가 우리동네 폭찹 스테이크 먹고 나면 맛있는지 어땠는지 말씀드릴게요. 후훗
전 소주안주로 생각하고 있어요. 룰루~

레와 2011-11-0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동네 돼지 국밥도 맛있는데..

다락방 2011-11-09 15:57   좋아요 0 | URL
그럼 뭐해요. 레와님과 함께 먹을수도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