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엔 일어나 일자산에 다녀왔다.
나 말고도 누군가가 그 산을 뛰고 있었다.
전날 저녁에 이미 7km 달리기를 했던 터라, 나는 산을 오르는 일이 힘들었고 뛰기는 더 힘들었다. 그전보다 더 많이 걸었다. 걸어도 힘들었다. 그렇게 집에 오자마자 요가센터에 갔다. 그동안 얼마간 요가를 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시작했는데, 와, 오랜만의 빈야사는 온 몸의 근육을 제대로 건드려주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또 신음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신음소리는 나만 내는 건 아니었고, 같은 수업을 받고 있던 다른 수련생들로부터도 나왔다. 하하하하하. 하여간 기절하는 줄 알았네.. 덕분에 다음날 제대로 근육통에 시달렸다.
다음날인 일요일은 근육통에 시달리면서 한강에 달리기하러 나갔다.
얼마전에 한강을 15km 달린 친구가 송충이 없다고 알려주었는데 정말 송충이가 없는지 확인하러 가야했다. 게다가 10km 이상 천천히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마침 여동생도 전날 케익을 사들고 서프라이즈로 방문했었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라 말하지 않고 깜짝 방문을 한것. 충동적으로 '내일 한강 달리기 콜?' 했더니 여동생도 좋다고 해서, 다음날 내 옷들을 빌려주고 힙색도 빌려주었다. 다행히도 런닝화는 이미 신고 왔고.
그렇게 웜업으로 우리는 한강까지 걸어갔다. 걸어가서는 여기에 온 기념으로 사진도 찍고 그리고 우리는 함께 앱을 작동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동생은 항상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달려보고 싶었다며, 이렇게 달릴 수 있어서 너무 신난다고 했다. 그 기분은 나도 그랬고 그 바람은 나도 있었지만, 그러나 같이 달리는 것이 내게는 맞지 않았다. 왜냐하면, 동생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니까 동생이 이야기하며 달릴 수 있는 속도와 내가 이야기하며 달릴 수 있는 속도에는 차이가 있었던 것. 우리 사이에는 한 30초 정도의 차이가 있었어.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나는 동생에게 너 먼저 가, 나는 좀 천천히 달릴게, 해서 나는 동생보다 쳐지기 시작했고 그 거리는 점차 멀어지더니 이제 동생이 보이지 않게 됐어. 한강에서 처음 달리는 동생을 앞에서 이끌어주고 싶었지만 ㅋㅋ 그것을 할 수 없었기에, 나는 동생에게 '그냥 이 길로 쭉 가면 돼!!' 라고 말해두었다.
일요일 달리기는 너무 힘들었다. 나는 10km 이상을 도전하고 싶었는데, 이래가지고는 5km 도 힘들것 같았다.
1. 처음 페이스가 엉망이었다.
여동생하고 같이 달리려고 처음에 너무 빨랐어서 다시 내 페이스를 찾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다.
2. 비염이 너무 치명타였다.
요즘 코로 호흡하는 거 연습하고 잘 하고 있었는데, 이건 코가 너무 많고 막혀서 코로 숨을 쉬는게 불가한거다. 입으로 숨을 쉬면 자꾸 마르고 더 급속히 피로해지던데.. 나는 어떻게든 코호흡으로 다시 가고 싶었지만 그러다가는 아예 달리기가 불가할 것 같았다. 몇차례나 준비해간 휴지로 코를 풀어가며 어쩔수없이 입호흡으로 가쁘게 숨을 쉬며 달렸다. 달리지 말까, 몇차례 생각했다.
3. 전날 운동으로 인한 근육통이 넘 심했다.
팔이며 어깨며 허벅지까지 죄다 너무 아파서 달리면 풀어지겠지, 했는데 풀어지지 않았다. 하아- 힘들어.. 나는 달릴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힘들게 천천히 달리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옆에서 내 어깨를 톡톡 두 번 쳤다. 어? 여동생은 이미 나보다 훨씬 앞섰는데 이건 누구? 하고 돌아보니, 어떤 여성분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어깨를 너무 흔들고 있어요. 어깨 흔들지 마세요."
"네"
아아, 이 사람 전문적으로 달리는 사람이구나. 차림새부터 남달랐다.
"팔꿈치를 옆에 붙이세요. 그리고 팔을 치세요."
그런데 내 팔은 자꾸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그 분은 나보다 앞서 가며 앞에서 시범을 보이셨다.
"팔을 치셔야 해요!"
그래서 나름 흉내를 내보려고 했다.
"등은 약간 앞으로 숙이고 턱은 좀 내리세요. 그리고 시선은 정면을 향하세요."
나는 시키는대로 최대한 따라하려고 해봤다. 잘 되는것 같지는 않았다. 그분은 가시기 전에 팔을 치셔야 한다고 재차 말씀하시더니 바로 빠른 속도로 멀어지셨다. 나는 멀어지는 그녀의 등 뒤에 대고 "감사합니다!" 소리쳤다.
그런데, 그 가르침은 나의 몸에 스며들었는가?
모르겠다..
그래 어깨는 흔들지 말고.. 아 내가 어깨를 흔들면서 달리고 있었구나.. 이건 또 몰랐네. 팔은 치고.. 뭘 치라는 걸까 어딜 치라는걸까. 코치가 필요했던 내게 갑자기 나타난 코치였다. 물론 짧은 순간 사라졌지만.. 하하하하하. 하여간 가르침을 머릿속에 넣고 그대로 해보자고 했지만, 음, 이건 바로 고쳐질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외우고 적용하자. 그렇게 얼마간 달렸을까, 나를 코치해주셨던 분은 어느순간 돌아서 원래 자리를 향해 뛰고있는가 보았다. 나랑 다시 마주쳤고 그분은 활짝 웃으며 내게 몸짓과 함께 "화이팅!" 해주셨다. 나는 또 감사합니다!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것은 달리기가 길러주는 사회성? 사회적 달리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재미있었다.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달리는 사람이 많은 한강에 와서 달리니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가르침도 얻네. 껄껄. 아마 전문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내 달리기가 도저히 고쳐주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그런 엉망인 달리기였는가 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선생님, 다음에 또 저를 보신다면 또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나 그 날 나의 달리기는 전체적으로 엉망이었다. 10km 이상 달리고 싶었기 때문에 일단 5km 이상 넘겼을 때 다시 뒤로 돌아 왔던 자리로 가기로 했다. 그러면 10km 이상 달려지는 걸테니. 그런데 더 뛸 수가 없었다. 너무너무 힘들었다. 아 안되겠다, 오늘은 이만큼만 뛰자, 너무 힘들다, 너무나 내 몸상태 엉망이다, 하고 달리기를 멈춘 지점이 7km 였다. 단순계산으로 내가 출발한 곳까지 가려면 4km 를 더 가야했는데, 걸으면 대략 한시간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너무 오래걸린다. 나 혼자라면 상관없는데, 내게는 기다리는 여동생이 있었고 여동생은 또 나랑 함께 집으로 돌아가서 샤워한 뒤에 자기 집으로도 가야해서... 내가 걸어가는 걸로는 너무 시간을 빼앗는게 되는 셈이었다. 그렇지만 뛰기도 너무 힘들어. 하는수없이 나는 걷다가 뛰다가 걷다가 뛰다가 했다. 여동생은 나랑 몇차례 통화하다가 내쪽으로 왔고 결국 우리는 중간에 만나 함께 집에 갔다.
여동생은 송충이를 두 마리 보았다고 했고 나는 한마리를 보았다.
그러니까 송충이는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았다. 아마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니 더 살지 못하고 사라진 것 같았다.
가기 전에 '으 송충이 있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더니, 아빠는 말씀하셨다.
"송충이가 없다고 생각해. 그러면 송충이는 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게 뭐야! 이러고 빵터지니 여동생이 옆에서 '근데 그 말이 맞지.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정말 처음 뛸 때는 없는것이 아닌가! 좋았어, 이제 한강 달리기 다시 시작이다!! 이랬는데 그러다 한 마리 보았네? 껄껄. 이정도면 다닐 수 있다. 아마 다음에 한강 가면 아에 송충이 없을지도.
하여간 그렇게 일요일 달리기를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참깨라면 끓여먹고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면서 여동생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집에 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다 읽은 다음에 바로 기절해버렸다. 아.. 빡센 주말이었다... 그런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 ㅋㅋㅋ 달리기에서 낯선 사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경험이 좋은 자극이 되었다. 좋군 ㅋㅋㅋㅋ 한강 달리기 만세만세 만만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을 샀다.
[유대문화론]은 단발머리 님의 서재에서 보고 알게 되어 샀다.
한강의 작품은 사실 [채식주의자]도 [소년이 온다]도 다 읽었던 책들인데,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며 재독해봐야지 싶어 또(!) 샀다. 하이고.. [여수의 사랑]은 아직 안읽어본 한강의 작품.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 발자크에 대한 부분이 좀 많아서 읽다가, 흐음, 보부아르가 발자크 엄청 까지 않았나 싶어서 발자크 부분 찾아보기 위해 책장에서 [제2의 성]을 꺼내왔다.
사진 보니 좀 많이 뿌듯하네요? 껄껄.
아무튼 오늘은 간식이 좀 많아서 풍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