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디너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민음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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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늘 함께할 누군가를 찾는다. 불행은 결코 침묵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혼자 있을 때의 그 기분 나쁜 침묵을.˝ (P.14)


두 쌍의 부부가 저녁 식사에 모였다. 파울 로만과 그의 아내 끌레르. 파울의 형이자 유력 정치가인 세르게, 그리고 형수 바베테. 파울은 이 저녁 초대가 얼마나 싫은지, 그의 형 세르게가 얼마나 위선적인 인간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말한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파울의 아들 미헬과 세르게의 아들 릭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모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초반에는 파울의 형 세르게가 정말 단순하고 위선적인 속물처럼 보이는데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파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필요이상으로 형에게 적대적이고 꼬여있으며, 비단 형에게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분노 장애와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화자인 파울의 심리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서술에서도 느껴지는데 부연 설명이 장황하고 갑자기 과거의 일을 끌고오거나 자신이 과거에 타인에게 가했던 폭력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자신의 아들 미헬이 사건의 주동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역시,

˝주동자는 미헬이었다. 뭘할지,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린 사람은 미헬이었고, 릭은 용감하게 그 지시를 따랐을 뿐이다. 실은 두 아이의 역학관계가 그런 식인 게 몹시 자랑스러웠다. 그 반대였다면 기분이 몹시 상했을 것이다.˝ (본문 中)

내 아이만 괜찮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다.
필요하다면 ‘사적제재‘는 얼마든지 정당화 될 수 있다.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면 피해자라고 해서 동정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파울의 머리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쾌한 경험이었다. 그가 경멸해 마지않던 형 세르게가 이들 중 가장 정상적인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의 ‘현명한‘ 아내 끌레르는? (남편보다 더한 또라이다)

사람들은 지금 우리 아이들을 본보기로 삼으려는 거예요. 생각해 봐요. 판사들은 아마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통제할 수 없는 자기 자식들을 떠올릴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미헬을 피를 요구하는 대중들의 희생양이 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사형 제도의 부활을 소리쳐 외치는 성난 대중들에게 던져 줄 수 없다는 말이에요. 그러기에는 우리 아이는 너무 지적이에요. 미헬은 보통 사람들을 훨씬 뛰어넘는 영리한 아이라고요." (P.299-300)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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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 한계 시간
율리 체 지음, 남정애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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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도 그랬고 이 책도 한번에 읽지는 못했다. (두껍지 않음) 두 권 밖에 안읽었지만 ‘율리 체‘의 소설을 읽을 때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느낌이다.

잠수 강사인 스벤은 독일에서 법대를 졸업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무언가로부터 도망쳐 스페인의 섬 라호라에 정착한다. 어떤 상황에도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그가 고수해 왔던 삶의 방식이었다.
그는 독일 귀족가문 출신의 여배우 욜라와 그의 연인이자 작가인 테오의 잠수 강습을 맡게 되고 서서히 어떤 ‘전쟁‘에 얽혀든다.

소설은 스벤의 1인칭 시점과 욜라의 ‘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데 처음에는 거의 일치했던 둘의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지더니 어느 시점부터는 완전히 상반된 내용을 들려준다. 그러다가 테오가 머리에 부상을 입고 바다로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엇갈리는 스벤과 욜라의 이야기 중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원제는 ‘Nullzeit‘ (무감압 잠수 한계 시간) - ˝수면 위로 바로 돌아가더라도 건강에 해를 입지 않으면서 특정한 수심에서 잠수가 가능한 시간˝ (본문 中) - 이다.

그것은 소설 속의 잠수에 관한 시간 뿐아니라, 그가 버리고 온 독일에서의 삶으로 돌아가야하는 (한계)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쟁‘을 떠나 세상의 끝으로 도망쳐왔지만 낙원이라 생각했던 섬에서도 전쟁은 피할 수 없었고 마침내 스벤은 ‘잠수‘를 끝내고 자신의 삶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욜라와 테오는 제정신이 아닌 인물들이고 스벤은 소설을 읽는 내내 똥멍청이처럼 굴며 분노를 유발하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짐작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스벤이 비겁한 겁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테오도 스벤도 참 못났다...

(율리 체가 말하는 ‘잠수‘란 참여(개입)하지 않는 삶, 누군가의 불행을 보고도 외면하는 삶이며, ‘잠수 한계 시간‘은 잠수하지 말고 사회적 변화를 위해 개입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라는 의미의 소설이다.)

평점 4.5
(쩜오 평점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4와 4.5의 차이를 존중해달라.)

+)
1. 등장인물 중 누구도 이해되진 않는데 안톄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어떻게 저런 놈을 14년이나 참아줄 수 있었는지)
2. 한번 날려먹고 다시 적었더니 좀 두서없지만 나는 이미 지쳤고 율리 체 소설 너무 좋다.

어쩌면 내가 받은 법학 실습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인식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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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11-0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율리 체 작가는 좋아하는 작가라
국내에 출간된 책들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을 구판으로 읽었는데
이번에 표지를 바꿔서 새로 나왔
더군요. 다시 사고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참았습니다.

petrichor 2024-11-02 11:23   좋아요 1 | URL
개정판이 올해 초에 나왔더라구요. 근데 표지 외에는 달라진게 없는것 같아요ㅎㅎ 출간된 책들을 거의 다 읽으셨다니 부럽습니다. 저도 한권씩 읽어보려구요. 오랜만에 좋은 작가를 알게된 것 같아요.
 

고객 대부분은 처음으로 물속에서 호흡하게 되면 작은 충격을 경험했다. 그런 다음 사람들의 성향은 나누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쾌감을, 일종의 정신적 오르가슴을 경험했다. 기술의 도움으로 위험한 원소를 조롱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유발된 감정이었다. 완전히 물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숨을 쉰다는 사실. 낯선 우주의 손님이 되었다는 사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음을 감지했고, 자신들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를 믿지 못했으며, 당장 수면 위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 P61

휴가가 뭔가 바꿔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다니 정말 멍청하다. 이미 몇 년 전에 노인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써 놓았다. "이 땅을 떠나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도피해서 가는 나라가 우리 자신이 아닐 때에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런 문장을 쓰는 그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아무것도 읽지 못하도록 한다. 그런 식으로 그는 나에게서 그 자신을 빼앗아 간다. 그는 작업하지 않는 척한다. 자신이 쓴 것들을 지운다. 그것들을 감춘다. 아무것도 출판하지 않는다. 나에게 거짓말을 한다. 작가와 함께하는 삶을 나에게 베풀기 싫기 때문이다. 나에게 마땅한 사람은 실패자다. 그 이상은 아니다. - P65

나는 망설였고, 의식을 잃고 물에 빠진 테오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욜라를 생각했다. 그러고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테오를 심연으로 가라앉게 두지 않았고, 그의 생명을 구했다. 그 결정에 대한 고마움에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빈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앉아서 울었다. 그 후 심호흡을 했다. 뭔가가 변했다. 나는 그저 그때의 망설임을 다시 생각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왜 내가 십사 년 동안 ‘개입하지 않는다.‘라는 개념을 그토록 매력적이라고 여겼는지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추한 개념이었다. 잠수하러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을 때 내 상태는 더 좋아졌다. 근본적으로.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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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새 스토리콜렉터 78
수재나 존스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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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나서 넷플릭스에 영화도 있다는 걸 알았다. 이쯤되면 책 살 때 뭘 보고 사는건지, 뭘 안보고 사는건지 모르겠다.

주인공은 ‘루시 플라이‘라는 30대의 영국인 여성이다. 루시는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부모의 차별과 오빠들의 괴롭힘 속에서 외롭게 성장하다 대학 졸업 후 도쿄로 이주해 번역 일을 하고 있으며 일본인 남자친구(데이지)가 있다. 그리고 그녀는 영국인 릴리 브리지스의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서에서 형사들의 질문을 받으며 루시가 (독자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진행되는데, 1인칭과 3인칭을 번갈아 사용하는 방식이 특이했다. (‘나‘라고 했다가 ‘루시‘ 또는 ‘그녀‘라고 칭함)
추리소설이라기에는 범인이 누군지 초반에 알 수 있어서 심리스릴러에 가까울 것 같다.

재밌게 읽었는데, 릴리가 루시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설정이 너무 거슬리는거다. 영국에서 태어나 20년 넘게 살았던 영국여자(서양인)들이 일본에서 만나서 (심지어 한국도 아닌데) 거의 초면에 ‘언니‘라고 부르는거 어떤데. 초판이 2019년에 나왔으면 불과 5년전인데 그때는 이런 번역이 어색하지 않았던걸까? 어색 열매는 나만 먹었지 또...

+) 영화는 안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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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신화·거짓말·유토피아
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 지음, 김현정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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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보다 내용이 방대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인간이 왜 이야기에 끌리는지, 끌릴 수 밖에 없는지를 다양한 예시로 설명하고 있다. 동시에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현재까지는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았다. 다시한번 찬찬히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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