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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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가졌던 의문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이었다. 어떻게 버섯 하나로 책을 썼다는거지? 도대체 버섯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한다는거지? 게다가 분량도 이렇게 많아? 이렇게나 할 말이 많다고? 만약 버섯을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튼 버섯'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다면 분량이 적은 책이었을텐데, 아니 세상에 이 책을 보라지. 버섯으로 500 페이지가 넘는다니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버섯으로 어떤 얘기를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언젠가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놀랐던 기억도 떠올랐다. '엘린 켈지'는 자신의 책 [거인을 바라보다]에서 자신이 고래를 관찰하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고래를 관찰하기 위해 자신의 아이들까지 배에 태워 항해했던 일도. 아, 세상엔 고래에 관심을 갖고 삶을 꾸려가는 사람도 있어! 했었는데, 애나 칭은 그게 버섯이다. 세상엔 버섯 때문에 오백페이지 넘는 책을 써내는 그런 사람이 있어. 


이 책에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우선 버섯의 생애가 그렇다. 소나무 옆에서 자라나는 버섯, 소나무가 없다면 자랄 수 없는 버섯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소나무는 인간의 교란이 작용해 자라난다. 비옥한 토지가 아닌 폐허같은 땅에서 자라나는 소나무 그리고 버섯. 소나무와 버섯 그리고 숲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단순히 생각하면 그러므로 지구를 파괴하지 말고 자연을 보호하자 로 흐를 수 있을 것 같겠지만, 그러나 애나 칭은 인간이 관여하는 교란이 그리고 인간이 생각하는 오염이, 모든 존재에게 해로운 것은 아니며 어떤 것들의 탄생에도 관여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교란이, 오염이, 폐허가, 부정적이거나 비극적인 것만은 아리나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깨닫게 되는것이다. 아니, 정말이지 놀랍지 않은가!


게다가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진다.

버섯을 찾으러 다니고 그것을 판매하고 구매하고 또 그것이 선물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서 버섯과 버섯채집인들은 자본주의의 주변에 머물다가 어느 순간 자본주의 안으로 쑥 들어갔다가 다시 자본주의 주변으로 나가게 되는 이야기. '그래서 자본주의가 나빠' 로 이어지는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얽히는 인간과 비인간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나 역시 거기에 찌들어있는만큼, 누구나 자본주의로부터 예외일 순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숲으로 들어가 버섯을 채집하는 일은, 그리고 중간과정을 거쳐 그 버섯을 선물하며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일은, 면접을 보고 고용보험을 적용받고 노동을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애나 칭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이 세상이 인간 중심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게 아니다. 우리 삶은 그렇게 구성된 게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면서 비인간과 함께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비인간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의 교란이 소나무를 그리고 버섯을 살게 하는 것처럼. 교란과 오염과 폐허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인간과 비인간은 공존하고 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이정도를 생각했다면, 재독하는 지금, 나는 인간의 다양성을 들여다보게 된다. 인간의 다양성 때문에, 지구는 망하지 않을 수 잇을 것 같다고, 아니 망하더라도 그 속도를 조금 더 늦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나 칭만 해도 누구도 들여다볼 것 같지 않았던 버섯을 들여다보고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사는 세상을 그려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세상엔 그런 사람이 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된단 말이다.



K 교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경제학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0년간의 성공적인 전문직 활동 후, 자신의 연구가 누구도 돕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멍하고 지루한 눈을 보았는데, 그들과 이야기한 후 단지 자신의 강의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학생들 역시 가치가 있는 질문과의 연결이 끊어져 있었다. K 교수는 자신의 인생 궤적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는 소년이었을 때 조부모님 마을을 방문했던 경험을 기억했다. 시골을 탐험하면서 얼마나 살아 있음을 느꼈던가! 그 풍경은 사람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삶을 존속하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연구 방향을 일본의 소농민 풍경을 재생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가 소속된 대학이 버려진 밭과 숲의 일부에 출입해 사용할 권리를 획득할 때까지 논쟁하고 밀어붙였고, 단지 바라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농민이 가진 삶의 기술을 공부하게 할 목적으로 학생들을 그곳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함께 배웠다. 관개수로를 다시 뚫고, 벼를 심고, 숲을 개방하고, 숯을 만들기 위해 가마를 짓고, 소농민의 눈으로 관찰하고 소농민의 귀로 들으며 숲을 돌보는 방식을 발견했다. 그의 강의는 이제 얼마나 열정적으로 변했는가! -p.322


이 K 교수의 이야기는 이번에 읽을 때 아주 새롭게 다가왔다. 

그의 결정이 선하다거나 옳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그가 자신의 직업에서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학생들의 멍한 눈을 인지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 시도했다는 것이 너무 놀랍고 대단하게 느껴지는거다. 그의 애초 경제학자가 되고자 하는 목적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라고 했는데, 그런 대답쯤은 사실 예의상 하는 말일 수도 있지 않나. 다들 네가 그걸 하려는 이유가 뭐야, 라고 하면 자신이 선하거나 정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하게 되지 않겠나. 그런데 이 K 교수는 정말 학생들의 멍한 눈빛을 염려했던 거다. 그가 바꾼 강의 방식이 사실 모두에게 다 좋은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모두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잘못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고쳐보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은 거다. 그가 어떻게든 연결되어 애나 칭과 관계를 맺고, 이렇게 나에게도 자신의 경험을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버섯에 관심을 가지고 채집을 하고 그것으로부터 산과 환경과 생물과 세균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통역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채집인과 산림조합이 만난 자리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곳의 언어를 상대에게 들려주기 위해 통역을 찾아야만 했던 일, 그러나 거기 누구도 전문 통역인이 아니라 그 시간은 꽤 오래 걸렸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걸 배우게 되는거다. 



산림청이 채집인들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전혀 예상 밖의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가 있는데,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각각이 진술한 후에 우리는 크메르어, 라오어, 미엔어로 순차 통역을 듣고, 통역가를 찾기 위한 짧은 허둥거림이 있는 후에 과테말라식 스페인어 통역도 이어진다. 각 언어는 조화되지 않은 서로 다른 억양으로 귀에 들어오고 공기 중에 잊힐 수 없는 상태로 유령처럼 머무른다. 단순한 질문이나 규칙 설명조차 매우 긴 시간이 걸린다. 불편하지만, 나는 우리가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이해한다. 우리가 아직 토론하는 방법을 알지는 못할지라도 말이다. -p.447-448


아니, 너무 놀랍지 않은가!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전부 다른데, 그럼에도 서로에게 뜻을 전달하기 위해 통역을 순차적으로 기다리는 일. 여기서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 정말 자지러지게 좋은거다. 인간 진짜 뭐지??



인간이 비인간과 공존한다는 걸 이제는 아주 잘 알겠다. 

그동안의 독서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이 책에서 본다.

누군가 지구 어딘가에서 고래를 연구했듯이 송이버섯을 연구한다는 것, 누군가는 자본주의에서 빗겨나 송이버섯을 채집한다는 것, 누군가는 문제를 인지하고 바꾸려고 한다는 것, 누군가는 이 채집에 관계하는 사람들의 개인의 역사를 듣고자 한다는 것, 누군가는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는 것. 이게 진짜 너무 좋은거다. 나라는 사람이 혼자 살아가면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이, 이렇게 책 한 권으로 가능해진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지구를 파괴하는 것도 인간이지만(이런 생각 자체도 인본주의적이다) 그러나 지구 곳곳의 모습을 다양하게 관찰하고 연구하며 그걸 들려주고자 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이렇게나 다양한 모습들로, 다른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을 들려주고자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걸 경청한다면, 지구든 세상이든 망하는 거 조금쯤 늦춰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멋지다 애나 칭

멋지다 송이버섯

멋지다 포스트 휴머니즘 

그리고 멋지다 이 다양한 인간들.



하여간 이 버섯 책 진짜 짱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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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4-10-3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입니다!!

다락방 2024-10-31 14:02   좋아요 1 | URL
짱이었어요!!!

단발머리 2024-11-02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번 완독의 위업을 달성하신 다락방님께 기립 박수 드립니다!! 👏👏 👏👏👏

다락방 2024-11-04 09:47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의 기립박수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음 그런데 이 책 더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여전히 어려운 부분들이 존재하더라고요. 하아- 독서력은 쉽게 키워지진 않는 것 같습니다. 갈 길이 너무 멀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