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퇴근길에 읽을 책을 챙겨왔는데 이 책에 사로잡혀 다른 책을 읽을 수가 없다. 밑바닥까지 내려가 자기 사랑을 이룬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건.. 사랑이 맞나? 사랑이 절실하면 어떤 것에 가로막혀도 결국 다시 만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좀 돌아서, 오래 걸리지만.....

사랑, 뭘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06-22 1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쓰고 싶은데, 쓸 수 있을까? 이 책에 대해 리뷰를 쓴다면 아주 많은 말을 해야할 것 같은데....

단발머리 2017-06-22 19:59   좋아요 1 | URL
그 많은 말을 여기에다 써 주시어요^^ 퇴근길에 생각하는 사랑이야기 💜

보슬비 2017-06-22 20:3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락방님의 많은 말을 기다리겠습니다. ^^

다락방 2017-06-23 11:21   좋아요 0 | URL
쓰고 싶은 말을 더 많았지만 어쨌든 썼습니다.
엄청 길어요 ㅜㅜ
 

어제는 엄마와 둘이 와인을 마시면서 나의 페이버릿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지난 번에 엄마랑 둘이 체코편과 호주동부1편을 보았고, 이번에는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호주 동부2편을 보자, 하고는 틀어두었는데, 와, 동부1편을 보면서 나는 브리즈번에 꼭 가고야 말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 동부2편 보고는 아아, 고립되고 싶다,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말타는 거 너무 좋고, 말 너무 좋고..그냥 말 타고 드그락드그락 달리는 거 너무 좋고..이런 얘기 진짜 많이 했었는데, 아아, 호주 동부의 '레인보우 비치'는 말을 타고 달리는 해변인거다.. 아..어떡해.... 나 막 진짜 심장이 뛰었어. 말을,   타고,   해변을,   달리다니!!

보는 내내 잇힝, 읏흥, 므흣, 히융 하는 기분이 되어버리고 말았어...





말을 타고 초원만 달리는 게 아니라 말을 타고 해변을 달리다니, 뭔가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다. 그러나 환상적인 풍경은 이제 시작이었다. 마지막 코스가 산호섬인 '레이디 엘리엇 섬'이었는데, 이곳은 경비행기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인 거다. 관광객들이 많아져서 레스토랑도 생기긴 했지만, 정말 작은, 외진 곳에 있는 섬. 그래서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그런 섬. 새들이 진짜 많고 만타 가오리가 헤엄쳐다니는 섬!









바닷 속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인데 사실 내가 그렇다고해서 바닷속에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니고..그렇지만 만타 가오리가 헤엄치는 걸 보노라니 나도 막 뭉클해지는 거다. 아 뭔가 감동적이야... 그리고 나는 거기 까페에서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아아, 조용하고 아름답고 외진 곳. 이런 곳에 단 며칠 머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곳에서 오랜 삶을 사는 건 아니어도, 단 며칠만, 그러니까 내 생각엔 하루나 이틀만 머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러다 나는 '이도우'의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생각이 났다. 마치 내가 그 소설속의 공진솔이 된 것 같았다.



라디오작가로 일하는 공진솔은 같은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라디오피디 '이건'을 좋아하게 된다. 그와 매일 일하면서 만나게 되고 또 따로 만나게 되기도 하면서 그와 친해지고, 그리고 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기까지 하는데, 건은, 누가봐도 진솔을 사랑하는게 분명한데도, 진솔을 거절한다. 진솔은 딱히 그래서만은 아니고, 다른 여러가지 일들이 겹쳐서, 그간 자신이 늘 염원해왔던 삶을 살기로 하고 일을 정리한다. 조용한 시골에 가서 혼자 살면서 쓰고싶은 글을 쓰는 것. 진솔은 그러게 일을 정리하고 동료의 도움으로 시골에 있는 집을 얻게 되고, 그곳에 혼자 살면서 글을 쓴다. 그런데 거기에, 건이 찾아온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던 사이고(건은 뭐랄까, 잘 인정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진솔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게(응? 이거 말고 다른 표현 없나?)되는데, 어쨌든 일을 마치고(응?) 마당에 나와보니, 오, 밖에 눈이 내리고 있는 거다. 그리고 많이. 그러니까 얼마나 많이냐면, 운전해서 서울로 돌아갈 수 없게끔!!! 꺅 >.<




진솔은 건에게 언제 출근해야 하느냐 묻고 건은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럼 오늘 집에 가서 준비 좀 해야 할 텐데."

"글쎄. 하지만 이 지경인데 갈 수가 없잖아요."

시큰둥한 건의 표정에 진솔은 씨익 웃어 보였다.

"사실은 가고 싶지 않구나? 내가 너무 좋아서."

건이 고개를 젖히며 하하거렸다. 하지만 진솔이 짐짓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부들부들 물결치자 건은 당황해서 안색이 달라졌다.

"어, 왜 그래요? 내가 웃어서 화났어요? 그거 비웃은 거 아닌데. 당신 귀여워서."

고개를 드는 진솔의 얼굴에 웃음이 넘쳤다. 그녀는 두 팔을 치켜올려 와락 그의 목을 끌어안아 버렸다.

"드디어 고립됐다! 폭설에 좋은 사람하고!"

잠시 얼떨떨하던 건은 곧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구판, 401)


















그러니까 진솔에게는 그런 로망이 있었다. 좋은 사람하고 단 둘이 고립되는 로망. 그게 실현이 된 것이다. 자연이, 눈이 도와줬어! 게다가 함께 있는 사람이 건이야.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사람하고 고립됐다!! 눈은 녹을 것이고 그러니 고립되어 둘만 오롯이 함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하루쯤이겠지만, 아아, 세상에, 마치 당신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그 느낌적 느낌은, 으응,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진솔의 마음이 되어 레이디 엘리엇 섬에 가고 싶어진거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레이디 엘리엇 섬에 가게 된다면, 아아, 나도 진솔처럼 두 팔을 치켜들고 소리칠거야.



"드디어 고립됐다! 아름다운 섬에 좋은 사람하고!"



그러나 ... 그 뒤는 진솔처럼 이어질 수 없을 것 같다. 누가 됐든 나를 번쩍 안아 들어올릴 순 없을테니까... (  ")

그래서 사람이 적게 먹는 삶을 실천해야 하는거야..

그치만...뭐 굳이 번쩍 나를 들어올리지 않아도, 내가 내 발로 우리의 침대로 걸어 들어가면 되잖아?

노 프라블럼.



레이디 엘리엇 섬이 나로하여금 공진솔 생각나게 했고, 아아, 고립되고 싶어졌다. 하루나 이틀만... 이 세상에 당신과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만타가오리하고.........




섬의 마지막에 해가 지는 풍경까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데, 피씨로 다시 보기하면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또렷이 나오질 않는다. 어제 텔레비젼으로 봤을 때는 하늘에 진짜 별이 한가득이었어. 그러자 나는 '아만다 피트'와 '애쉬톤 커쳐'가 주연이었던 영화, 《우리, 사랑일까요?》가 떠올랐다.


















화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친구'다. 서로 다른 연애를 하기도 하면서 한 번은 남자가 사랑을 느껴 고백하기도 해보고 또 언젠가는 여자가 사랑을 느껴 고백해보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서로에게 다른 연인이 있었고 해서 둘이 연인으로 지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둘은 계속 특별한 경험들을 만들어 가는데, 그중에 하나가 밤 하늘의 별을 보는 거였다. 이게 하도 오래전에 본 영화라서 별을 보러 갔던건지, 아니면 다른 일로 갔다가 별을 보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밤하늘에 별은 가득했고, 이 둘은 자동차 보닛 위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며 그 별을 보았던 거다.





아마 이 별을 보러 갔을 때도, 저 대사를 보니, 그에게는 아마 애인이 있었던가 보다. 어쨌든 이 둘이 별을 함께 보러 갔던 이 장면이, 레이디 엘리엇 섬의 별 가득한 밤하늘을 보는데 똭- 생각나는 거다. 아까 이 짤을 찾다가 보게된건데, 이들은 밤하늘 아래에서 서로 나체가 되어 마주보기도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네. 이 영화 다시 봐야겠다. (지금 네이버 굿다운로더 대여료 1,100원 입니다)



어쨌든 이 둘이 상대에게 사랑을 느껴 고백할 때는 항상 어긋나 있었다. 그러다 영화의 마지막, 여자가 지난번 자신이 거절했지만, 아아 그렇지만 나는 역시 이 남자여야 하는거였어, 하고 남자네 집으로 헐레벌떡 찾아갔을 때는 마침 결혼식이 올려지고 있었다.................................................................... 절망하는 아만다 피트....


스포일러 하지 않겠습니다.


아, 이 영화 다시 봐야겠네. 재밌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주 동부2 편을 다 보고나서는 술이 좀 남아, 피레네 산맥까지 내쳐 보았다. 작은 마을들이 보여졌는데 진짜 너무 아름다워서, 아, 가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저렇게 외진 곳까지 가려면, 그냥 비행기 직항 열시간 쯤으로 되는 게 아니라, 프랑스에 갔다가 거기에서 또 뭘 타고 다시 몇 시간 들어가고...이런 식이어야 해서, 내가 휴가를 이용해서 갈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예 회사 때려치고 작정하고 여유롭게 가야지, 이대로는 안되겠어. 그렇지만, 내가 지금 회사를 때려치진 않으니까, 과연 내가 저렇게 아름답고 작은 마을까지 갈 수 있는 때는 과연 언제일까. 내가 언젠가는, 내가 가고 싶은 곳, 궁금한 곳을 다 찾아다닐 수 있게 될까? 나이들수룩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루라도 더 젊을 때 나는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최대한의 여행을 즐겨야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사무실에 있는 게 아니라 뛰쳐 나가야 하잖아!!!


조금 더 나이가 들어도 무리없이 여행을 즐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력을 만들어놔야 겠다는 생각을, 어제 피레네 산맥의 마을을 보면서 했다. 그래서 몇 년후가 되어도, 여기 내가 얼마나 오고 싶었다고, 이러면서 건강하게 세계 곳곳을 걸어다니고 싶다. 그야말로 걸어서 세계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지금보다 더 열심히 먹고(!!) 더 열심히 운동해야 겠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orgettable. 2017-06-2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타는 거 보니 생각났는데 넷플릭스 ‘Anne‘ 보세요. 락방님이 좋아하실 거 같음 ㅎㅎ

다락방 2017-06-20 11:06   좋아요 0 | URL
그러면 또 넷플릭스 결제해야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타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말타는 거 너무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7-06-20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 좋아요♡
열심히 먹으려 도마질과 채칼질로 월남쌈 완료하고 몸 져 누웠는중요ㅋ

다락방 2017-06-20 11:28   좋아요 0 | URL
월남쌈, 제가 참 잘먹는데 말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7-06-20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헷 댓글에 사진을 올리려했는데 그런 방도가 없어서 글을 하나 썼습니다♥점심 맛있게 드시옵소서 마니아 올림

다락방 2017-06-20 12:17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사진과 글, 잘 보았습니다, 클래비스님. 후훗.

단발머리 2017-06-20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말을 좋아하시는군요. 말 타는 거랑, 말 달리는 거랑..... 저는 말이랑은 안 친해서... ㅎㅎㅎㅎ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를 장바구니에 넣어야겠어요.
너무 근사한 문장이예요.

˝드디어 고립됐다! 폭설에 좋은 사람하고!˝
뭐가 나을까요? 폭설이 나을까요? 외딴섬이 나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7-06-20 12:17   좋아요 0 | URL
저는 말이 참 좋아요. 뭔가 건강하게 생기지 않았나요?

폭설에 고립되는 거 너무 좋은데, 그건 곧 해결될 문제임을 알아서 그런 것 같아요. 만약 정말 ‘무인도‘ 같은데에 고립되면 마냥 좋아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어떻게든 살아서 나가야한다!! 이런 생각 하느라고 말이지요. ㅎㅎ
외딴섬도,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여행가고 촬영가는 그런 곳이어야지, 진짜 외딴 섬이면 안돼요.. ㅋㅋㅋㅋㅋ
어디가 됐든 뭐가 됐든 저는 사랑하는 사람하고 좀 고립되어보고 싶네요. 딱 이틀만요. 고립된 장소에서의 음식 조달에는 한계가 있을테니까.....
그리고 고립도 좋지만 또 좋아하는 사람 손 붙잡고,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자랑하면서 다니는 것도 좋으니까요.


(아 댓글도 산으로 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7-06-20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0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0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06-20 14:42   좋아요 0 | URL
저는 진짜 맥북 그냥 집에 두려고 산 것 같아요 ㅠㅠ 그냥 있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냥 있어 그냥 그냥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moonnight 2017-06-2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굳이 먼 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간 사람들과 일상사에서 고립된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요. ㅠㅠ;

다락방 2017-06-20 14:42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저도 종종 그런 생각합니다. 특히나 사람에 치일 때면 더요. 그러면 혼자라도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머물다 오고 싶은 마음이 커져요. 나는 자연인이다 찍는 사람들이 그러듯이 말이죠 ㅠㅠ

transient-guest 2017-06-2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과 함께 하는 상상의 여행이군요. 저는 소싯적에 술을 마시면서 무협지를 읽으며 주인공과 호형호제하는 놀이로 외로움을 달래곤 했지요.ㅎ 가끔 모든 걸 던지고 어디론가 떠나서 사라져버리고 싶은 생각을 합니다.ㅎㅎ 적절한 외로움, 적절한 교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다락방 2017-06-22 08:57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아직까지도 소설속 남자 주인공들과 사랑에 빠지곤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사랑을 이루지 못한 등장인물이 되어 폭풍울음을 울곤하죠 ㅠㅠㅠㅠㅠㅠㅠ 이루지 못한 사랑은 늘 너무 아파서 ㅠㅠ 조연이든 주연이든 너무 이입하게 돼요. 흙흙
지금 읽고 있는 책도, 사랑을 시작하려는 주인공들이 되기도 하지만,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조연이 되어서 또 슬프고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토요일에는 심규선 콘서트에 다녀왔다. 가기전부터 <아라리>들으면 아마 난 울어버리겠지, 싶었는데, <아라리>에서 손수건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은 것도 모자라, <Be Mine>에서도 손수건 꺼내 눈물 닦았고, 그 외에도 다른 몇 곡들에 눈물이 핑핑 거렸다. 아아, 어쩔... 영혼의 쌍둥이여... (라지만 심규선은 나를 모름)







노래는 세시간이나 이어졌는데, 와, 세시간씩 노래해도 여전히 잘하다니, 대단하다.


일전에 심규선의 콘서트에 갔을 때도 그 자리에 심규선의 아버지가 와있다는 얘기를 심규선이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버지가 콘서트 자리에 와있는 것 같더라. 공연장은 빈틈 없이 꽉 차있었고, 노래가 끝나면 사람들은 심규선에게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를 보냈고, 어떤 이들은 훌쩍이기도 했다. 심규선의 아버지는 이걸 다 보고 있겠구나 싶으니, 아 딸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러 와준다는 것, 응원해준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큰 자랑스러움일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나 싶다. 모두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랑스러워 하는 것,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것. 이게 세상 행복하고 뿌듯한 일이 아닌가 싶은 거다. 그래서 그런 장면을 보게 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심규선을 향한 환호가 이어질 때 심규선의 아버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버지가 그 자리에 와있다는 건 심규선이 언급해서 알았지만, 아버지 말고도 다른 어떤 사랑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와있었다면 분명 심규선을 자랑스러워했을 것 같다.


일전에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도 그런 걸 느꼈었다. 아담 리바인이 노래 부르는데 자신의 아내가 거기 모델로 섰을 때, 그들은 서로를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을까. 자신의 일에서 인정을 받고 환호를 받는 걸 보여줄 수 있다니, 그걸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너무 좋을 것 같은 거다. 감추고 싶은 게 아니라 드러내고 싶은 사람. 아,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며칠전에 남자1이 내게 물었다. 혼자 지내는 거 좋지만, 혹시라도 외로울 때가 있진 않냐고. 나는 당연히 외로울 때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게 언제냐고 물었고, 나는 '자랑할 수 없을 때' 라고 말했다. 내게 좋은 일이 생기거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 한껏 자랑하고 칭찬 듣고 싶은데, 그걸 할 수 없다는 걸 알면 참 외롭다고. 그러자 그도 동의했다. 애인에게 칭찬 받는 건 정말 큰 기쁨이라고. 물론 각자 연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속상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외로울 것이고, 어떤 이들은 좋은 영화가 나왔는데 같이 보러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 외로울 것이다. 사실 이 모두가 다 복합적으로 조금씩 외로움에 관여하지만, 그중 어떤 게 가장 비중이 큰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속상할 때, 맛있는 거 먹을 때, 좋은 거 볼 때, 좋은 음악 들을 때, 자랑할 일 있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심규선의 콘서트를 보며, 자랑스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콘서트를 보기 전에는 친구와 레스토랑에 갔다. 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에 그냥 들어갔는데 세상 맛없는 스테이크를 먹었고, 그렇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아주 좋았다. 나는 최근에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를 읽었다고 말했는데, 친구는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다고 했다. 오!! 이승우 책을 읽은 친구라니, 우리는 이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친구는 이승우의 소설이 처음이라 했는데 아주 잘 읽혀서 좋았다고 했다. 하나의 감정 혹은 관계에 대해 이렇게 잘 쓸 수 있다니 감탄했다고. 나 역시 마찬가지. 우리는 책 속에 나오는 커플에 대해 얘기하고 깔깔 웃다가, 이내 질투와 열등감에 대해 얘기를 했다. 친구에게 나는, 이승우가 질투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이 열등감에서 비롯된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때 내 안에 열등감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닌 게 아니었다, 라는 얘길 하면서 아팠던 거다.























책에서는 세 명의 관계에서 질투와 열등감이 비롯된다. 그리고 그 세명의 관계를 얘기하기 전에 너무도 유명한 오셀로와 이아고 얘기를 먼저 꺼낸다.



그의 진술 속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는다. 그는 자기가 검은 피부의 이방인이며 한량들과는 달리 사교술이 없고 또 나이가 많다고 고백한다. 그의 질투망상 속에서 라이벌로 등장한 카시오와 비교할 때 그의 검은 피부와 비사교성과 상대적 늙음은 결정적인 약점이 된다. 그는 못생겼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 줄 모르고 거기다가 나이까지 많다. 카시오는 잘생겼고 사교적이며 거기다가 젊다. 의심을 부추기는 이아고의 술책에 쉽게 넘어가게 된 이유로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셀로의 이런 약점이다. 약점에 대한 오셀로의 자의식이다. 그는 용맹한 전쟁 영웅이지만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녀의 사랑만이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산인데, 이제 그 믿음이 허물어지자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 그리하여 그는 좌절한다.

이성에게 어필할 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언제든 질투에 빠질 잠재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편파적이지 않다. 나이, 용모, 경제력, 건강, 사회적 위치와 평판 같은 조건들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이런 사람을 질투 속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목마를 사람에게 물을 먹이는 것만큼이나 쉽다는 사실을 '오셀로'는 알려준다. 이아고가 아무 수고를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오셀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원인 아내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것만으로 그의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었다.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 (p.227-228)




나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읽으면서 그는 왜 이아고에게 속절없이 당하는가, 왜 그의 말을 믿는가, 하며 답답해했었는데, 이렇게 듣고나니 모든 것들이 설명되는 것 같다. '약점의 크기'가 질투의 크기라니, 그럴 리 없다고 맹렬하게 고개를 젓고 싶지만 나도 모르게 끄덕이고 있다. 아, 나는 내 약점을 들여다보고 이내 절망한다. 아픈 순간이었다.



책 속에서 형배는 선희를 불러낸다. 2년10개월전에 선희가 형배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형배는 그때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며 선희를 거절한 적이 있다. 그런데 2년 10개월 후에 우연히 다시 보게된 선희에게 반하고 만다. 그는 그녀를 불러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선희는 이미 마음이 식어있고, 영석이라는 애인이 있다. 그러니 형배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도 없을 뿐더러, 이놈이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다. 그야말로 형배에게 '아무 마음이 없다'. 선희가 형배를 만나고 있는 이 순간에 영석은 선희에게 전화한다. 부재중전화 12번이 뜰때까지 선희는 전화가 온 줄을 몰랐고, 그의 계속되는 질문에 '친구와 호프집에 있다'고 말한다. 그가 계속 의심하고 불안해하자 결국 '형배와 호프집에 있다'고 말하고 그의 의심과 불안을 풀어내기 위해 그에게 여기 오라고 말한다. 와서 자신과 그를 보면, 그리고 자기를 부를 정도라고 생각하면 그의 불안함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영석의 불같은 질투 속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의 사랑이 아니라 그의 열등감이다. 그는 오셀로가 그런것처럼 자기가 이성에게 어필할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잘생기지 않았고 사교적이지 않으며 나이도 많은 편이다. 오셀로가 가진 모든 약점을 그도 가지고 있다. 오셀로와 마찬가지로 의심과 질투를 부추기는 이아고의 계략에 쉽게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랑의 열정이나 그녀의 품성에 대한 믿음은 여기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의심의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피할 능력이 그에게는 없다. 그가 가진 유일한 자원이 선희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p.229)




영석은 자신의 애인인 선희와 형배의 만남의 자리에 가게 된다. 그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한 모든 말은 오히려 그의 의심을 부추긴다. 왜 '우리'라고 말하지? 왜 '이사람'이라고 말하지? 호칭조차 죄다 거슬린다. 게다가 영석은, 과거에 선희가 형배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든 것들은 의심과 불안의 원천이 된다. 그는 폭발할 듯 질투한다. 의심을 풀어주기 위한 모든 말들은 오히려 그 불을 크게 키운다. 선희가 다르게 말했다면, 형배가 다르게 말했다면, 그랬다면 영석의 기분이 나아졌을까? 뭐라고 어떻게 말했든 그것은 그 질투의 불길 속으로 들어가 더 큰 불을 만들었을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은 결코 실체를 보지 못한다. 그는 자세히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실은 다른 것, 엉뚱한 것을 보고 있다(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것, 들여다보면 안 되는 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지나치게 배율이 높은 자기 내부의 현미경을 통해 영석이 본 것은 선희가 아니었다. 그러나 영석은 자기가 보고 있는 사람이 선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심지어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 질투하는 사람이 질투하는 대상은 실체가 아니라 그, 또는 그녀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그러나 허상이기 때문에 꿈쩍하지 않고,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에 외부존재의 조종을 받지 않는다. 허상은 견고하다. 그는 불안이 현실화된 것에 좌절하고, 어쩔 줄 몰라서 소리 지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운다. (p.232)




아아, 나는 이승우의 이 질투에 대한 글이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서, 이 책이 너무 힘들었다. 전체적으로 그동안의 이승우 책에 비하면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이렇게 곳곳에서 사랑에 대해 그리고 질투에 대해 얘기해주면서 아주 큰 칼로 내 배를 훅훅 찌르는 것만 같다. 너무 아파서 나는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다. 피가 철철 나는 것 같다.


이 책을 이미 읽은 친구에게, 내가 몰랐던 들여다보지 않았던 열등감에 대해 얘기했다. 이 책을 읽고나니까, 내가 이 부분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서 질투 속으로 타들어갔던 것 같아, 라고.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친구가 말해주었다. 글쎄, 그 부분에 대한 열등감이 너에게 조금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보다는 이것과 이것이 네 큰 열등감이 되었을 것 같아, 라고. 그때, 친구가 '어쩌면 너의 열등감은 이것이었을 것 같아' 라고 해주었을 때, 와- 진짜 벼락같은 깨달음이 왔다. 내가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늘 내가 괜찮다고 했던 것, 아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아니야, 라고 했던 부분에서 나는 언제나 내 약점을 모른척하고 있었던 거다. 그것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인데, 나는 그것을 마치 약점이 아닌것마냥 행동했고, 다른 사람에겐 약점일 수 있겠지만 아니라고, 나에게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건데, 아니, 그것은 내 약점이었던 거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약점을, 내가 꼭꼭 숨겨두었던 약점을, 내가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약점을, 아무도 모르게 하겠다고 생각했던 그 약점을, 친구가 이미 들여다보고 있었던 거다. 아..쓰는데 눈물난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이제 인정한다. 그것이 내 약점이었음을. 그리고 그 약점이 내게 극복되기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게됐다. 내가 그것을 약점이라고 인정해버린 이상, 나는 이제 돌이킬 수가 없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그 큰 약점을 가지고 잘도 사랑하고 살았구나..... 하아-





질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외의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줄 때 발동된다. 자기에게(만) 속해 있다고 간주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을 보일 때 그는 연인을 완벽하게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란을 느낀다. 마음속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쟁자, 즉 연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경쟁자는 사랑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경쟁자가 존재하는 한 그의 소유는 완전하지 않고 그의 사랑은 안정적일 수 없다. 그러니까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은 그 또는 그녀를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질투하는 자가 떠올릴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것이다. 이런 강박증은 강력한 에너지가 되어 그를 태운다. 연인을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의 마음이다. (p.235)





그렇지만 나는 안다.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나의 약점으로 시작된 일이라면, 내가 제거해야 할 것은 나의 약점이지 경쟁자가 아니다. 경쟁자를 제거한다 한들 내 약점이 강해지는 게 아니니까. 내 약점은 온전히 그자리에 남아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킬 테니까. 경쟁자를 제거해도 경쟁자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계속 들어올 수 있다. 그때마다 어떻게 경쟁자를 제거하며 산단 말인가. 그런 식으로 늙어갈 순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왜, 그 유명한 '야광토끼'도 자신의 노래 <can't stop thinkink about you>에서 말하지 않는가.



만약에 내가 너를 그녀보다 먼저 알았더라면

그래도 넌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거지








'누구 때문에' 가 아니라, '나 때문'이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이런 약점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아아 이 혹독한 아픔... 고통의 절정........





여러분, 책이 이렇게나 좋다. 아니, 소설이 이렇게나 좋다. 이승우가 쓴 '소설' 한 권으로 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질투에 대해 생각하며, 이 모든 감정을 갖고 있던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사랑을 공부하고 싶었고 그렇게 인문학 책도 사뒀는데, 잘 쓰여진 소설은 그 어떤 자기계발서나 인문학 혹은 심리학 책보다 더 내게 큰 위로와 생각거리를 준다. 소설이 이렇게나 위대하다. 소설이 이렇게나 좋아. 소설을 그저 지어낸 이야기라고 폄하하는 사람에게 나는 똑같이 돌려주고 싶다. 그건 당신이 '그렇게밖에' 읽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소설은 그 한 권에 담아낸 이야기와 인물 만으로 아주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알려주고 느끼게 해주고 생각하게 해준다. 나는 소설만 읽어도 진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진짜 울트라캡숑 짱이다!!



게다가 그 소설을 함께 읽은 친구라니, 와, 진짜 어메이징한 축복 아닌가. 같은 책을 읽은 친구와 나누는 대화는 이렇게나 의미 있다. 내가 내 약점은 a 인가봐, 그래서 그런가봐, 라고 했을 때, 아니, 너의 약점은 b 도 작용했을 거고, 무엇보다 c 였을 것 같아, 라고 말해주다니. 여러분, 이런 친구 있는가... 진짜 짱이지 않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소설 한 권 때문에 그리고 그 소설을 읽은 친구 때문에 나는 나의 약점을 마주하게 되었다.



건배!

(이게 아닌가?)









이렇게나 오래, 이렇게나 계속해서, 이렇게나 지속적으로 나를 들여다보는데도 아직 내가 보지 못한 나의 많은 면들이 있다. 이제와 알아가는 나의 어떤 면들이 새롭고 좋기도 하지만, 이런식으로 약점을 마주할 때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고 싶어진다. 요즘에는 여러가지로 겸손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못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다. 



그래도 사랑은 계속된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8살 조카와 통화하는데 영상 속의 조카가 내게 익숙한 티셔츠를 입고 있다.



- 어? 타미야, 너 지금 이모가 미국에서 사다준 티셔츠 입고 있는거야?

- 응!

- 아 이모 기분이 너무 좋아. 타미가 그거 입고 있는 거 보니까 이모 행복해.

- 나 이거 매일입는데, 이모?



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축복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해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제 전화끊고나서 나는 엄마와 남동생에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서 타미가 진짜 제일 좋아. 나는 얘 진짜 너무 사랑해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뭔가 울고 싶을 정도로 사랑이 폭발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기 직전까지 가슴속에 사랑이 너무 넘쳐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혹여 앞으로 네가 나를 미워한다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그래도 끝까지 너를 어마어마하게 사랑할거야, 내 사랑은 계속될거야, 생각했다. 아주 오랜만에, 진짜 오랜만에, 가슴속에 사랑이 가득찬 채로 잠들었다. 아주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너무 좋아서, 아, 자기 전에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하고 대화하는 게 최고야!! 이백번 생각했다.



가슴 속에 사랑이 가득한 채 잠들 수 있다니!!!



감정의 변덕스러움 말고 그에 못지않게 치명적인 것이 또 있다.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이 그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맺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관게를 보장해주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일부만, 예컨대 마음에 드는 부분만 사랑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요소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정말 참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만 취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버릴 것인가. 가슴은 취하고 다리는 버릴 것인가. 그럴 수 있는가. 가령 잠들기 전의 달콤한 키스는 취하고 그 사람이 코 고는 것을 버리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그 사람과의 키스를 즐기려면 그 사람의 코골이도 용납해야 한다. 키스의 달콤함을 제공한 사람과 코를 심하게 골아 잠을 방해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감정과 감각에만 의존할 때 사람은 키스의 달콤함만을 기대하고 바라게 된다. (p.106-107)

감정이나 감각이 아니라 그보다 강제적인 어떤 것, 이를테면 의지에 기반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의지에 입각하지 않는 사랑은 일관성 유지가 힘들다. 결혼 제도는 장치로서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키스의 달콤함을 제공하는 사람이 자기가 사랑한 사람이고, 곁에서 코를 골아 잠을 방해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한 사람이 아니라고 제외시켜버릴 수 있는 인간의 비겁하고 나약한 본성 때문에 사랑은 외부에서 강제된 결혼이라는 의지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 (p.107)

스스로 설 힘이 없어서 굳건히 서 있는 큰 나무를 의지하고 자라나야 했던 넝쿨식물이 어느 순간 나무를 꼼짝 못 하게 붙들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는 기이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넝쿨식물의 손이 나무의 몸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무가 넝쿨손에 붙들려서 옴짝달싹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넝쿨식물의 넝쿨이 나무를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약함을 앞세워 강한 나무를 꼼짝 못 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끌어안는 것이 장악의 방법이었다. 사랑이 지배의 수단이었다. (p.158)

그는 모르고 있었다. 자기 안에만 있던 말들을 그녀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을. 잠깐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 일어난 후 다른 세상을 겪고 있다는 것을. 그는 또 그녀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그의 목소리를 캡슐에 싸인 것처럼 듣고 있다는 것을.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무엇에 홀린 것 같은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p.189)

잘 보이기 위해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라는 점에서 우정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맺을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이상적인 관계이다. 보르헤스는, 사랑과는 달리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우정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말속에는 증명해야 할 불편한 의무(우정에는 없는)가 사랑에는 주어져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사랑을 증명할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의무를 당연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p.21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강 2017-06-19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의생애 재밌게 감명깊게 보셨네요 저도 그랬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질투‘라는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습니다. 그 질투가 자기약점의 크기에 비례한다니.. ㅎㅎ

다락방 2017-06-20 08:25   좋아요 3 | URL
제가 이승우의 소설을 참 좋아하고, 국내 작가중에서 이승우를 제일 좋아하는데 말이죠, 이번 소설은 유독 저를 많이 건드리네요. 아주 가슴 아프게 읽었습니다, 자강님.
질투가 자기 약점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말이 정말 아팠어요.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요..
 
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평점 :
예약주문


이승우는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는 데 정말 뛰어난데, 이번 책에서는 사랑에 대해 위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아, 질투에 대한 부분에서 나는 너무 아파지고 말았다. 너무 아파서 리뷰를 쓸 수가 없을 것 같다.

아파 엉엉 ㅜㅜ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ys1211 2017-06-16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아픔 한번 느껴보고 싶네요....

다락방 2017-06-19 11:36   좋아요 1 | URL
꼭 한 번 이승우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유부만두 2017-06-16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이승우 소설 안읽어봤어요..... 미지의 세계. 그래서 궁금하지만 두렵기도해요

다락방 2017-06-19 11:36   좋아요 1 | URL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이승우는 정말 사람의 내면을 잘 그려내요. 만나보세요!

책한엄마 2017-06-17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에 넣어 둡니다.

다락방 2017-06-19 11:37   좋아요 2 | URL
꿀꿀이님께도 좋은 책이 되어야 할텐데요. 훗.

유부만두 2017-06-2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을까했는데 이ㄷ진이 하도 지잘난 분석을 다다다 붙여놔서 읽기도 전에 정내미가 떨어졌어요;;;;

다락방 2017-06-23 10:02   좋아요 1 | URL
유부만두님, 제가 얼마나 똑똑하냐면요, 얼마나 현명하냐면,

이동진 책을 읽지 않으며 팟캐스트도 듣지 않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7-06-2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어야해요! 난 멍충이야! 잉

다락방 2017-06-23 10:10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 좋았어요, 유부만두님.
그래서 이동진으로 먼저 만나신 게 안타까워요 ㅠㅠ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저에 대해 엄청 돌아보게 됐고요.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책 ㅠㅠ


저 마티네의 끝에서 페이퍼 쓰고 있어요.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어제 남동생과 술을 마시는데 남동생이 새로운 책을 추천해달라 했다. 녀석은 추리, 미스테리 물만 읽어서 내가 이 놈 때문에 책 살 때 이쪽으로 한 두권씩 꼭 껴넣게 되는데, 며칠전에 추천한 책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그거 읽기 싫다고 다른 거 달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응 아직 나는 안읽었는데 미야베 미유키 책 줄게. 그림자 밟기라고. 에도시대 얘기래.' 라고 했더니, '안읽어도 다 읽은 것 같다, 다 알겠어' 하는 거다. 뭘 다 알어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뭔데? 했더니 '에도시대라며, 가문에 대한 얘기 나오겠지' 이러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아직 안읽어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어딘가에서 리뷰 읽었는데 잼나겠더라고. 하는 대화를 술 마시다 하고, 다 마시고 나서 내가 자려고 내 방에 누웠더니 노크하고 들어와서는, 책 준다며, 하는 거다. 나는 응, 맞다, 불 켜봐, 하고는 책장 앞으로 갔는데, 어? 그 책이 안보이는 거다.


산지 얼마 안되어서 책장에 꽂히진 않을 것 같고, 대충 놓여있을 것 같은데, 그게 어디지....안보여...어딨을까.... 이러고 찾고 있노라니, 남동생은 '뭐냐' 막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어? 회사로 시켜서 회사에 있나? 집으로 배달시키지 않았나? 하고는 마침 인증사진 찍었던 게 기억나서 스맛폰을 열어봤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거다. 그런데 배경이 내 방인거다. 어? 이거 내 방인데? 내 방에 있어야 되는데? 그런데 보니, 그날 샀다고 인증한 책들이 모두 보이지 않는 거다. 응? 이거 한뭉탱이가 다 어디간거지? 나는 비좁은 내 방에서 책무더기를 찾지 못하고 뭐지뭐지 어이없어 하다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퇴근 후에 내가 벗어 던지 원피스가 불룩 튀어나와 있는 걸 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앗, 하고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 원피스를 들어올렸더니, 거기에 책뭉탱이가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며칠전에 책 사진 찍고 그냥 그자리에 그대로 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위에 옷을 던져서 안보였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동생 완전 어이없다고 빵터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고 절망하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동생에게 책을 건네고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시 자리에 누우면서, 주말에 방 좀 치우고 책도 정리좀 하고 그래야지, 생각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책을 왜 사는걸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그 인증사진 보면서, 어? 이런 책을 샀어? 막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아침에는 집에서 밥 먹기가 싫어서, 아침은 뭘 먹을까 고민했다. 양재역에서 모닝 우동을 할까, 스벅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실까,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을까, 하다가, 양재역에 가까워지자 세번째! 로 결정했는데, 컵라면은 불닭볶음면으로 하자! 결정하게 되었고, 편의점에 들러 불닭볶음면과 삼각김밥 두 개를 골라 계산했다. 아, 삼각김밥 세상 맛있고, 불닭볶음면 또 예술로 맛있어...그렇게 흡입을 했더니, 아아, 아침에 양 너무 많았나, 배가 터질것처럼 부른 거다. 그러자 하아, 이렇게, 이런 상황에서도, 왈칵, 그리움이 몰려왔다. 그러니까 운동맨이었던 내 과거의 연인 칠봉이 생각이 너무 난거다. 연애 당시 항상 나에게 '아침 뭐 먹었어?', '점심 뭐 먹었어?' 하고는 늘 뭐 먹었는지 묻곤 했는데, 그때 대답하면서 양이 너무 많거나 고칼로리 이거나 하면 나는 내심 '오늘은 뭐 먹었냐고 묻지마...'라는 마음이 되었던 거다. 그래서 오늘 불닭볶음면과 삼각김밥 두 개를 한꺼번에 먹고 배를 두드리면서, 아아, 칠봉이가 물었다면 나는 대답했을 거고, 무슨 아침부터 그렇게 거하게 먹었냐고 나는 또 잔소리를 들었겠지....하는 생각에, 그렇다면 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고 회피했어야 했을거야...라는 생각을 한거다. 



"아침 뭐 먹었어?"

"대답하고 싶지 않아."



이런 거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었던 거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대답하고 싶지 않아, 우리... 다른 얘기할까? 급 화제전환하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이래저래 딥빡 개빡의 날이었다. 그래서 남동생과 술을 마셨는데, 맛있는 술과 안주를 두고도 내 기분은 딱히 나아지질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책이, 좋아서, 문장에, 내 마음이 조금 풀어지더라. 


















나의 국내 페이버릿 이승우 작가의 책인데, 전작들에 비해 내용이 다소 가벼운 느낌이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 문장만큼은 여전했는데, 내가 오늘 지하철안에서 읽고 마음이 진정된 건 이런 부분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그 말을 듣는 사람만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겨냥한다. 더욱 겨냥한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말을 듣기도 하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은 듣기만 하는 사람이지만 하는 사람은 하면서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있지만 하는 사람, 하면서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질문해 보자, 단지 그 말을 했기 때문일까. 말의 힘, 즉 주술일 뿐일까. 그것뿐일까. 주술사는 누구, 혹은 무엇을 향해 주술을 건다. 주술에 힘이 있다는 것은, 주술사가 겨냥한 그 누구, 혹은 무엇에 주술사가 의도한 어떤 현상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주술사가 건 주술이 누구이거나 무엇이 아니라 주술사 자신에게 나타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경우에는, 이 주술이 말하는 사람의 외부, 그러니까 누구이거나 무엇을 향하지 않고 자기를 향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것이 주술의 내용이다. 자기 자신에게 주술을 걸고 있는 형국이다. 말하는 나와 듣는 너가 동일인이므로 이 말을 할 대 그는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는 사람이다. 주술이 이 사람을 피할 리 없다. (p.131-132)




사랑한다고 입밖으로 꺼내놓고 더 그 사랑의 감정이 진해져 당혹스러웠던 경험은 내게도 있다. 일단 입밖으로 나온 감정은, 그 감정에 무게가 더해진다고 해야하나. 사랑이 '더한' 사랑이 되어버리는 거다. 오늘 가만히, 이승우의 문장이 출근길의 나를 위로해서 나 많이 먹게 만들었다. (응?)




강요당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러니까 모든 사랑의 고백은 강요된 것이지만, 거꾸로 사랑한다는 고백에 의해 사랑이 이끌려 나오는 일도 일어난다. 없는 사랑이 갑자기 생겨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흔하지는 않다.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내진다. 수면 아래 깊이 잠겨 있거나 뒷방 구석의 어둠에 단단히 숨어 있던 것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는 말을 어떤 소설가는 자기 소설집 작가의 말에 쓴 적이 있다. 그런 뜻이다. 그 작가가 그 짧은 글에서 염두에 둔 대상은 독자였지만, 이것이 작가와 독자 사이에만 적용되는 원리일 리 없다. 기본적으로 이 문장은 말의 주술에 대한 것으로 읽힌다. 말이 가진 힘에 대한 말. (p.129-130)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편지형식의 리뷰를 쓰고 싶다, 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말 내가 쓰게될지는 아직 나조차도 알 수가 없다.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어쩌다보니 전작해버린 시인 박연준의 새 시집이 나왔다. 그래서일지 내게는 좀 특별한 시인이란 느낌이 있다. 박준의 산문집도 새로 나왔다는데, 이 두권을 조용히 사는 순간, 마음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읽지도 못하고 잘 이해도 못하면서, 그런데도 왜, 이 시집을 읽으면 나 좀 괜찮아질거야, 하는 생각이 드는건지 통 모르겠다. 




내일 아침부터는 거하게 먹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7-06-16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책무더기 말이예요.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포함하고 있던 그 책무더기를, 벗어던진 원피스가 끌어안고 있었다니.. 이거이거 아침부터 넘 섹시한 거 아닙니까.
책무더기와 벗어던진 원피스라니....
넘 자극적이예요.
상상하게 되고... 몰라 몰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7-06-16 11:55   좋아요 1 | URL
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자극적이 될 수도 있는거군요? 좋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님 사랑해요. 사랑한다고 제가 말하는 순간, 저는 그 사랑에 더욱 빠지게 됩니다....

단발머리 2017-06-16 12:01   좋아요 0 | URL
너무나 섹시한 다락방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지요.
자꾸 자꾸 상상하는 내가 다락방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우리 사랑 forever! 💜

다락방 2017-06-16 12:08   좋아요 0 | URL
우리 사랑 forever! 💜

아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을 일 없는 요즘에 웃게 해주셔서 진짜 감사합니다. 역시 단발머리님을 사랑하길 잘했어요.

럽-
럽-

북깨비 2017-06-16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ㅎㅎㅎ 너무 재미나게 읽었어요. 본 적도 없는 다락방님 방 풍경이 눈앞에 쫘악 그려지면서. 저도 집안에서 책 꾸러미를 찾아 헤맨 적 있거든요. 애꿎은 남편한테 엇다 뒀냐 승질내고. ㅋㅋㅋㅋ 다락방님 덕분에 엔돌핀 상승하고 덤으로 이승우님의 사랑의 생애까지 챙겨갑니다. 뭔가 묘하게 설득력이 있으면서 막 읽고 싶은 충동이 들어요.

다락방 2017-06-16 15:25   좋아요 0 | URL
히히히히히 저만 그러는 게 아니군요. 다른 분들도 책 꾸러미 어디다 뒀나 헤매이고 그러는군요. 어쩐지 위안이 됩니다. ㅎㅎㅎ
나른한 오후인데 엔돌핀 상승한다니 참 좋구요, 이승우 님의 책까지 챙겨가신다니 아주 좋습니다. 우리 서로 돕고 삽시다. 책 꾸러미 찾을 수 없을 때마다 서로의 존재를 기억합시다. 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이런 끼어들기 너무 환영합니다!!)

비연 2017-06-1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 폐부를 찌르는 말이네요. ‘사랑‘을 잊고 살았더니.. 뭔뭔 얘기인가 싶고. 이승우님 책 읽어봐야겠어욧!

다락방 2017-06-16 15:50   좋아요 0 | URL
제가 기대한 내용보다는 가볍지만, 사랑이 가볍다는 것 자체도 저의 편견 혹은 착각일 것 같아요.
즐거이 읽고 있습니다. 이승우 책은 정말이지 문장을 곱씹어가며 읽는 재미가 있어요.
추천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는 말, 제가 붙들고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