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엄마와 둘이 와인을 마시면서 나의 페이버릿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지난 번에 엄마랑 둘이 체코편과 호주동부1편을 보았고, 이번에는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호주 동부2편을 보자, 하고는 틀어두었는데, 와, 동부1편을 보면서 나는 브리즈번에 꼭 가고야 말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 동부2편 보고는 아아, 고립되고 싶다,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말타는 거 너무 좋고, 말 너무 좋고..그냥 말 타고 드그락드그락 달리는 거 너무 좋고..이런 얘기 진짜 많이 했었는데, 아아, 호주 동부의 '레인보우 비치'는 말을 타고 달리는 해변인거다.. 아..어떡해.... 나 막 진짜 심장이 뛰었어. 말을, 타고, 해변을, 달리다니!!
보는 내내 잇힝, 읏흥, 므흣, 히융 하는 기분이 되어버리고 말았어...


말을 타고 초원만 달리는 게 아니라 말을 타고 해변을 달리다니, 뭔가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다. 그러나 환상적인 풍경은 이제 시작이었다. 마지막 코스가 산호섬인 '레이디 엘리엇 섬'이었는데, 이곳은 경비행기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인 거다. 관광객들이 많아져서 레스토랑도 생기긴 했지만, 정말 작은, 외진 곳에 있는 섬. 그래서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그런 섬. 새들이 진짜 많고 만타 가오리가 헤엄쳐다니는 섬!






바닷 속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인데 사실 내가 그렇다고해서 바닷속에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니고..그렇지만 만타 가오리가 헤엄치는 걸 보노라니 나도 막 뭉클해지는 거다. 아 뭔가 감동적이야... 그리고 나는 거기 까페에서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아아, 조용하고 아름답고 외진 곳. 이런 곳에 단 며칠 머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곳에서 오랜 삶을 사는 건 아니어도, 단 며칠만, 그러니까 내 생각엔 하루나 이틀만 머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러다 나는 '이도우'의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생각이 났다. 마치 내가 그 소설속의 공진솔이 된 것 같았다.
라디오작가로 일하는 공진솔은 같은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라디오피디 '이건'을 좋아하게 된다. 그와 매일 일하면서 만나게 되고 또 따로 만나게 되기도 하면서 그와 친해지고, 그리고 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기까지 하는데, 건은, 누가봐도 진솔을 사랑하는게 분명한데도, 진솔을 거절한다. 진솔은 딱히 그래서만은 아니고, 다른 여러가지 일들이 겹쳐서, 그간 자신이 늘 염원해왔던 삶을 살기로 하고 일을 정리한다. 조용한 시골에 가서 혼자 살면서 쓰고싶은 글을 쓰는 것. 진솔은 그러게 일을 정리하고 동료의 도움으로 시골에 있는 집을 얻게 되고, 그곳에 혼자 살면서 글을 쓴다. 그런데 거기에, 건이 찾아온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던 사이고(건은 뭐랄까, 잘 인정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진솔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게(응? 이거 말고 다른 표현 없나?)되는데, 어쨌든 일을 마치고(응?) 마당에 나와보니, 오, 밖에 눈이 내리고 있는 거다. 그리고 많이. 그러니까 얼마나 많이냐면, 운전해서 서울로 돌아갈 수 없게끔!!! 꺅 >.<
진솔은 건에게 언제 출근해야 하느냐 묻고 건은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럼 오늘 집에 가서 준비 좀 해야 할 텐데."
"글쎄. 하지만 이 지경인데 갈 수가 없잖아요."
시큰둥한 건의 표정에 진솔은 씨익 웃어 보였다.
"사실은 가고 싶지 않구나? 내가 너무 좋아서."
건이 고개를 젖히며 하하거렸다. 하지만 진솔이 짐짓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부들부들 물결치자 건은 당황해서 안색이 달라졌다.
"어, 왜 그래요? 내가 웃어서 화났어요? 그거 비웃은 거 아닌데. 당신 귀여워서."
고개를 드는 진솔의 얼굴에 웃음이 넘쳤다. 그녀는 두 팔을 치켜올려 와락 그의 목을 끌어안아 버렸다.
"드디어 고립됐다! 폭설에 좋은 사람하고!"
잠시 얼떨떨하던 건은 곧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구판, 401)
그러니까 진솔에게는 그런 로망이 있었다. 좋은 사람하고 단 둘이 고립되는 로망. 그게 실현이 된 것이다. 자연이, 눈이 도와줬어! 게다가 함께 있는 사람이 건이야.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사람하고 고립됐다!! 눈은 녹을 것이고 그러니 고립되어 둘만 오롯이 함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하루쯤이겠지만, 아아, 세상에, 마치 당신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그 느낌적 느낌은, 으응,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진솔의 마음이 되어 레이디 엘리엇 섬에 가고 싶어진거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레이디 엘리엇 섬에 가게 된다면, 아아, 나도 진솔처럼 두 팔을 치켜들고 소리칠거야.
"드디어 고립됐다! 아름다운 섬에 좋은 사람하고!"
그러나 ... 그 뒤는 진솔처럼 이어질 수 없을 것 같다. 누가 됐든 나를 번쩍 안아 들어올릴 순 없을테니까... ( ")
그래서 사람이 적게 먹는 삶을 실천해야 하는거야..
그치만...뭐 굳이 번쩍 나를 들어올리지 않아도, 내가 내 발로 우리의 침대로 걸어 들어가면 되잖아?
노 프라블럼.
레이디 엘리엇 섬이 나로하여금 공진솔 생각나게 했고, 아아, 고립되고 싶어졌다. 하루나 이틀만... 이 세상에 당신과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만타가오리하고.........
섬의 마지막에 해가 지는 풍경까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데, 피씨로 다시 보기하면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또렷이 나오질 않는다. 어제 텔레비젼으로 봤을 때는 하늘에 진짜 별이 한가득이었어. 그러자 나는 '아만다 피트'와 '애쉬톤 커쳐'가 주연이었던 영화, 《우리, 사랑일까요?》가 떠올랐다.
영화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친구'다. 서로 다른 연애를 하기도 하면서 한 번은 남자가 사랑을 느껴 고백하기도 해보고 또 언젠가는 여자가 사랑을 느껴 고백해보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서로에게 다른 연인이 있었고 해서 둘이 연인으로 지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둘은 계속 특별한 경험들을 만들어 가는데, 그중에 하나가 밤 하늘의 별을 보는 거였다. 이게 하도 오래전에 본 영화라서 별을 보러 갔던건지, 아니면 다른 일로 갔다가 별을 보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밤하늘에 별은 가득했고, 이 둘은 자동차 보닛 위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며 그 별을 보았던 거다.

아마 이 별을 보러 갔을 때도, 저 대사를 보니, 그에게는 아마 애인이 있었던가 보다. 어쨌든 이 둘이 별을 함께 보러 갔던 이 장면이, 레이디 엘리엇 섬의 별 가득한 밤하늘을 보는데 똭- 생각나는 거다. 아까 이 짤을 찾다가 보게된건데, 이들은 밤하늘 아래에서 서로 나체가 되어 마주보기도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네. 이 영화 다시 봐야겠다. (지금 네이버 굿다운로더 대여료 1,100원 입니다)
어쨌든 이 둘이 상대에게 사랑을 느껴 고백할 때는 항상 어긋나 있었다. 그러다 영화의 마지막, 여자가 지난번 자신이 거절했지만, 아아 그렇지만 나는 역시 이 남자여야 하는거였어, 하고 남자네 집으로 헐레벌떡 찾아갔을 때는 마침 결혼식이 올려지고 있었다.................................................................... 절망하는 아만다 피트....
스포일러 하지 않겠습니다.
아, 이 영화 다시 봐야겠네. 재밌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주 동부2 편을 다 보고나서는 술이 좀 남아, 피레네 산맥까지 내쳐 보았다. 작은 마을들이 보여졌는데 진짜 너무 아름다워서, 아, 가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저렇게 외진 곳까지 가려면, 그냥 비행기 직항 열시간 쯤으로 되는 게 아니라, 프랑스에 갔다가 거기에서 또 뭘 타고 다시 몇 시간 들어가고...이런 식이어야 해서, 내가 휴가를 이용해서 갈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예 회사 때려치고 작정하고 여유롭게 가야지, 이대로는 안되겠어. 그렇지만, 내가 지금 회사를 때려치진 않으니까, 과연 내가 저렇게 아름답고 작은 마을까지 갈 수 있는 때는 과연 언제일까. 내가 언젠가는, 내가 가고 싶은 곳, 궁금한 곳을 다 찾아다닐 수 있게 될까? 나이들수룩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루라도 더 젊을 때 나는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최대한의 여행을 즐겨야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사무실에 있는 게 아니라 뛰쳐 나가야 하잖아!!!
조금 더 나이가 들어도 무리없이 여행을 즐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력을 만들어놔야 겠다는 생각을, 어제 피레네 산맥의 마을을 보면서 했다. 그래서 몇 년후가 되어도, 여기 내가 얼마나 오고 싶었다고, 이러면서 건강하게 세계 곳곳을 걸어다니고 싶다. 그야말로 걸어서 세계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지금보다 더 열심히 먹고(!!) 더 열심히 운동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