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는 심규선 콘서트에 다녀왔다. 가기전부터 <아라리>들으면 아마 난 울어버리겠지, 싶었는데, <아라리>에서 손수건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은 것도 모자라, <Be Mine>에서도 손수건 꺼내 눈물 닦았고, 그 외에도 다른 몇 곡들에 눈물이 핑핑 거렸다. 아아, 어쩔... 영혼의 쌍둥이여... (라지만 심규선은 나를 모름)







노래는 세시간이나 이어졌는데, 와, 세시간씩 노래해도 여전히 잘하다니, 대단하다.


일전에 심규선의 콘서트에 갔을 때도 그 자리에 심규선의 아버지가 와있다는 얘기를 심규선이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버지가 콘서트 자리에 와있는 것 같더라. 공연장은 빈틈 없이 꽉 차있었고, 노래가 끝나면 사람들은 심규선에게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를 보냈고, 어떤 이들은 훌쩍이기도 했다. 심규선의 아버지는 이걸 다 보고 있겠구나 싶으니, 아 딸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러 와준다는 것, 응원해준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큰 자랑스러움일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나 싶다. 모두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랑스러워 하는 것,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것. 이게 세상 행복하고 뿌듯한 일이 아닌가 싶은 거다. 그래서 그런 장면을 보게 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심규선을 향한 환호가 이어질 때 심규선의 아버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버지가 그 자리에 와있다는 건 심규선이 언급해서 알았지만, 아버지 말고도 다른 어떤 사랑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와있었다면 분명 심규선을 자랑스러워했을 것 같다.


일전에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도 그런 걸 느꼈었다. 아담 리바인이 노래 부르는데 자신의 아내가 거기 모델로 섰을 때, 그들은 서로를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을까. 자신의 일에서 인정을 받고 환호를 받는 걸 보여줄 수 있다니, 그걸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너무 좋을 것 같은 거다. 감추고 싶은 게 아니라 드러내고 싶은 사람. 아,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며칠전에 남자1이 내게 물었다. 혼자 지내는 거 좋지만, 혹시라도 외로울 때가 있진 않냐고. 나는 당연히 외로울 때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게 언제냐고 물었고, 나는 '자랑할 수 없을 때' 라고 말했다. 내게 좋은 일이 생기거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 한껏 자랑하고 칭찬 듣고 싶은데, 그걸 할 수 없다는 걸 알면 참 외롭다고. 그러자 그도 동의했다. 애인에게 칭찬 받는 건 정말 큰 기쁨이라고. 물론 각자 연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속상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외로울 것이고, 어떤 이들은 좋은 영화가 나왔는데 같이 보러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 외로울 것이다. 사실 이 모두가 다 복합적으로 조금씩 외로움에 관여하지만, 그중 어떤 게 가장 비중이 큰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속상할 때, 맛있는 거 먹을 때, 좋은 거 볼 때, 좋은 음악 들을 때, 자랑할 일 있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심규선의 콘서트를 보며, 자랑스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콘서트를 보기 전에는 친구와 레스토랑에 갔다. 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에 그냥 들어갔는데 세상 맛없는 스테이크를 먹었고, 그렇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아주 좋았다. 나는 최근에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를 읽었다고 말했는데, 친구는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다고 했다. 오!! 이승우 책을 읽은 친구라니, 우리는 이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친구는 이승우의 소설이 처음이라 했는데 아주 잘 읽혀서 좋았다고 했다. 하나의 감정 혹은 관계에 대해 이렇게 잘 쓸 수 있다니 감탄했다고. 나 역시 마찬가지. 우리는 책 속에 나오는 커플에 대해 얘기하고 깔깔 웃다가, 이내 질투와 열등감에 대해 얘기를 했다. 친구에게 나는, 이승우가 질투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이 열등감에서 비롯된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때 내 안에 열등감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닌 게 아니었다, 라는 얘길 하면서 아팠던 거다.























책에서는 세 명의 관계에서 질투와 열등감이 비롯된다. 그리고 그 세명의 관계를 얘기하기 전에 너무도 유명한 오셀로와 이아고 얘기를 먼저 꺼낸다.



그의 진술 속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는다. 그는 자기가 검은 피부의 이방인이며 한량들과는 달리 사교술이 없고 또 나이가 많다고 고백한다. 그의 질투망상 속에서 라이벌로 등장한 카시오와 비교할 때 그의 검은 피부와 비사교성과 상대적 늙음은 결정적인 약점이 된다. 그는 못생겼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 줄 모르고 거기다가 나이까지 많다. 카시오는 잘생겼고 사교적이며 거기다가 젊다. 의심을 부추기는 이아고의 술책에 쉽게 넘어가게 된 이유로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셀로의 이런 약점이다. 약점에 대한 오셀로의 자의식이다. 그는 용맹한 전쟁 영웅이지만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녀의 사랑만이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산인데, 이제 그 믿음이 허물어지자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 그리하여 그는 좌절한다.

이성에게 어필할 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언제든 질투에 빠질 잠재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편파적이지 않다. 나이, 용모, 경제력, 건강, 사회적 위치와 평판 같은 조건들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이런 사람을 질투 속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목마를 사람에게 물을 먹이는 것만큼이나 쉽다는 사실을 '오셀로'는 알려준다. 이아고가 아무 수고를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오셀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원인 아내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것만으로 그의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었다.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 (p.227-228)




나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읽으면서 그는 왜 이아고에게 속절없이 당하는가, 왜 그의 말을 믿는가, 하며 답답해했었는데, 이렇게 듣고나니 모든 것들이 설명되는 것 같다. '약점의 크기'가 질투의 크기라니, 그럴 리 없다고 맹렬하게 고개를 젓고 싶지만 나도 모르게 끄덕이고 있다. 아, 나는 내 약점을 들여다보고 이내 절망한다. 아픈 순간이었다.



책 속에서 형배는 선희를 불러낸다. 2년10개월전에 선희가 형배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형배는 그때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며 선희를 거절한 적이 있다. 그런데 2년 10개월 후에 우연히 다시 보게된 선희에게 반하고 만다. 그는 그녀를 불러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선희는 이미 마음이 식어있고, 영석이라는 애인이 있다. 그러니 형배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도 없을 뿐더러, 이놈이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다. 그야말로 형배에게 '아무 마음이 없다'. 선희가 형배를 만나고 있는 이 순간에 영석은 선희에게 전화한다. 부재중전화 12번이 뜰때까지 선희는 전화가 온 줄을 몰랐고, 그의 계속되는 질문에 '친구와 호프집에 있다'고 말한다. 그가 계속 의심하고 불안해하자 결국 '형배와 호프집에 있다'고 말하고 그의 의심과 불안을 풀어내기 위해 그에게 여기 오라고 말한다. 와서 자신과 그를 보면, 그리고 자기를 부를 정도라고 생각하면 그의 불안함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영석의 불같은 질투 속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의 사랑이 아니라 그의 열등감이다. 그는 오셀로가 그런것처럼 자기가 이성에게 어필할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잘생기지 않았고 사교적이지 않으며 나이도 많은 편이다. 오셀로가 가진 모든 약점을 그도 가지고 있다. 오셀로와 마찬가지로 의심과 질투를 부추기는 이아고의 계략에 쉽게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랑의 열정이나 그녀의 품성에 대한 믿음은 여기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의심의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피할 능력이 그에게는 없다. 그가 가진 유일한 자원이 선희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p.229)




영석은 자신의 애인인 선희와 형배의 만남의 자리에 가게 된다. 그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한 모든 말은 오히려 그의 의심을 부추긴다. 왜 '우리'라고 말하지? 왜 '이사람'이라고 말하지? 호칭조차 죄다 거슬린다. 게다가 영석은, 과거에 선희가 형배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든 것들은 의심과 불안의 원천이 된다. 그는 폭발할 듯 질투한다. 의심을 풀어주기 위한 모든 말들은 오히려 그 불을 크게 키운다. 선희가 다르게 말했다면, 형배가 다르게 말했다면, 그랬다면 영석의 기분이 나아졌을까? 뭐라고 어떻게 말했든 그것은 그 질투의 불길 속으로 들어가 더 큰 불을 만들었을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은 결코 실체를 보지 못한다. 그는 자세히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실은 다른 것, 엉뚱한 것을 보고 있다(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것, 들여다보면 안 되는 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지나치게 배율이 높은 자기 내부의 현미경을 통해 영석이 본 것은 선희가 아니었다. 그러나 영석은 자기가 보고 있는 사람이 선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심지어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 질투하는 사람이 질투하는 대상은 실체가 아니라 그, 또는 그녀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그러나 허상이기 때문에 꿈쩍하지 않고,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에 외부존재의 조종을 받지 않는다. 허상은 견고하다. 그는 불안이 현실화된 것에 좌절하고, 어쩔 줄 몰라서 소리 지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운다. (p.232)




아아, 나는 이승우의 이 질투에 대한 글이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서, 이 책이 너무 힘들었다. 전체적으로 그동안의 이승우 책에 비하면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이렇게 곳곳에서 사랑에 대해 그리고 질투에 대해 얘기해주면서 아주 큰 칼로 내 배를 훅훅 찌르는 것만 같다. 너무 아파서 나는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다. 피가 철철 나는 것 같다.


이 책을 이미 읽은 친구에게, 내가 몰랐던 들여다보지 않았던 열등감에 대해 얘기했다. 이 책을 읽고나니까, 내가 이 부분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서 질투 속으로 타들어갔던 것 같아, 라고.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친구가 말해주었다. 글쎄, 그 부분에 대한 열등감이 너에게 조금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보다는 이것과 이것이 네 큰 열등감이 되었을 것 같아, 라고. 그때, 친구가 '어쩌면 너의 열등감은 이것이었을 것 같아' 라고 해주었을 때, 와- 진짜 벼락같은 깨달음이 왔다. 내가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늘 내가 괜찮다고 했던 것, 아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아니야, 라고 했던 부분에서 나는 언제나 내 약점을 모른척하고 있었던 거다. 그것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인데, 나는 그것을 마치 약점이 아닌것마냥 행동했고, 다른 사람에겐 약점일 수 있겠지만 아니라고, 나에게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건데, 아니, 그것은 내 약점이었던 거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약점을, 내가 꼭꼭 숨겨두었던 약점을, 내가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약점을, 아무도 모르게 하겠다고 생각했던 그 약점을, 친구가 이미 들여다보고 있었던 거다. 아..쓰는데 눈물난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이제 인정한다. 그것이 내 약점이었음을. 그리고 그 약점이 내게 극복되기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게됐다. 내가 그것을 약점이라고 인정해버린 이상, 나는 이제 돌이킬 수가 없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그 큰 약점을 가지고 잘도 사랑하고 살았구나..... 하아-





질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외의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줄 때 발동된다. 자기에게(만) 속해 있다고 간주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을 보일 때 그는 연인을 완벽하게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란을 느낀다. 마음속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쟁자, 즉 연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경쟁자는 사랑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경쟁자가 존재하는 한 그의 소유는 완전하지 않고 그의 사랑은 안정적일 수 없다. 그러니까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은 그 또는 그녀를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질투하는 자가 떠올릴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것이다. 이런 강박증은 강력한 에너지가 되어 그를 태운다. 연인을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의 마음이다. (p.235)





그렇지만 나는 안다.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나의 약점으로 시작된 일이라면, 내가 제거해야 할 것은 나의 약점이지 경쟁자가 아니다. 경쟁자를 제거한다 한들 내 약점이 강해지는 게 아니니까. 내 약점은 온전히 그자리에 남아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킬 테니까. 경쟁자를 제거해도 경쟁자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계속 들어올 수 있다. 그때마다 어떻게 경쟁자를 제거하며 산단 말인가. 그런 식으로 늙어갈 순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왜, 그 유명한 '야광토끼'도 자신의 노래 <can't stop thinkink about you>에서 말하지 않는가.



만약에 내가 너를 그녀보다 먼저 알았더라면

그래도 넌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거지








'누구 때문에' 가 아니라, '나 때문'이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이런 약점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아아 이 혹독한 아픔... 고통의 절정........





여러분, 책이 이렇게나 좋다. 아니, 소설이 이렇게나 좋다. 이승우가 쓴 '소설' 한 권으로 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질투에 대해 생각하며, 이 모든 감정을 갖고 있던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사랑을 공부하고 싶었고 그렇게 인문학 책도 사뒀는데, 잘 쓰여진 소설은 그 어떤 자기계발서나 인문학 혹은 심리학 책보다 더 내게 큰 위로와 생각거리를 준다. 소설이 이렇게나 위대하다. 소설이 이렇게나 좋아. 소설을 그저 지어낸 이야기라고 폄하하는 사람에게 나는 똑같이 돌려주고 싶다. 그건 당신이 '그렇게밖에' 읽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소설은 그 한 권에 담아낸 이야기와 인물 만으로 아주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알려주고 느끼게 해주고 생각하게 해준다. 나는 소설만 읽어도 진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진짜 울트라캡숑 짱이다!!



게다가 그 소설을 함께 읽은 친구라니, 와, 진짜 어메이징한 축복 아닌가. 같은 책을 읽은 친구와 나누는 대화는 이렇게나 의미 있다. 내가 내 약점은 a 인가봐, 그래서 그런가봐, 라고 했을 때, 아니, 너의 약점은 b 도 작용했을 거고, 무엇보다 c 였을 것 같아, 라고 말해주다니. 여러분, 이런 친구 있는가... 진짜 짱이지 않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소설 한 권 때문에 그리고 그 소설을 읽은 친구 때문에 나는 나의 약점을 마주하게 되었다.



건배!

(이게 아닌가?)









이렇게나 오래, 이렇게나 계속해서, 이렇게나 지속적으로 나를 들여다보는데도 아직 내가 보지 못한 나의 많은 면들이 있다. 이제와 알아가는 나의 어떤 면들이 새롭고 좋기도 하지만, 이런식으로 약점을 마주할 때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고 싶어진다. 요즘에는 여러가지로 겸손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못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다. 



그래도 사랑은 계속된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8살 조카와 통화하는데 영상 속의 조카가 내게 익숙한 티셔츠를 입고 있다.



- 어? 타미야, 너 지금 이모가 미국에서 사다준 티셔츠 입고 있는거야?

- 응!

- 아 이모 기분이 너무 좋아. 타미가 그거 입고 있는 거 보니까 이모 행복해.

- 나 이거 매일입는데, 이모?



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축복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해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제 전화끊고나서 나는 엄마와 남동생에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서 타미가 진짜 제일 좋아. 나는 얘 진짜 너무 사랑해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뭔가 울고 싶을 정도로 사랑이 폭발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기 직전까지 가슴속에 사랑이 너무 넘쳐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혹여 앞으로 네가 나를 미워한다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그래도 끝까지 너를 어마어마하게 사랑할거야, 내 사랑은 계속될거야, 생각했다. 아주 오랜만에, 진짜 오랜만에, 가슴속에 사랑이 가득찬 채로 잠들었다. 아주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너무 좋아서, 아, 자기 전에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하고 대화하는 게 최고야!! 이백번 생각했다.



가슴 속에 사랑이 가득한 채 잠들 수 있다니!!!



감정의 변덕스러움 말고 그에 못지않게 치명적인 것이 또 있다.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이 그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맺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관게를 보장해주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일부만, 예컨대 마음에 드는 부분만 사랑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요소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정말 참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만 취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버릴 것인가. 가슴은 취하고 다리는 버릴 것인가. 그럴 수 있는가. 가령 잠들기 전의 달콤한 키스는 취하고 그 사람이 코 고는 것을 버리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그 사람과의 키스를 즐기려면 그 사람의 코골이도 용납해야 한다. 키스의 달콤함을 제공한 사람과 코를 심하게 골아 잠을 방해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감정과 감각에만 의존할 때 사람은 키스의 달콤함만을 기대하고 바라게 된다. (p.106-107)

감정이나 감각이 아니라 그보다 강제적인 어떤 것, 이를테면 의지에 기반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의지에 입각하지 않는 사랑은 일관성 유지가 힘들다. 결혼 제도는 장치로서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키스의 달콤함을 제공하는 사람이 자기가 사랑한 사람이고, 곁에서 코를 골아 잠을 방해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한 사람이 아니라고 제외시켜버릴 수 있는 인간의 비겁하고 나약한 본성 때문에 사랑은 외부에서 강제된 결혼이라는 의지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 (p.107)

스스로 설 힘이 없어서 굳건히 서 있는 큰 나무를 의지하고 자라나야 했던 넝쿨식물이 어느 순간 나무를 꼼짝 못 하게 붙들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는 기이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넝쿨식물의 손이 나무의 몸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무가 넝쿨손에 붙들려서 옴짝달싹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넝쿨식물의 넝쿨이 나무를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약함을 앞세워 강한 나무를 꼼짝 못 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끌어안는 것이 장악의 방법이었다. 사랑이 지배의 수단이었다. (p.158)

그는 모르고 있었다. 자기 안에만 있던 말들을 그녀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을. 잠깐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 일어난 후 다른 세상을 겪고 있다는 것을. 그는 또 그녀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그의 목소리를 캡슐에 싸인 것처럼 듣고 있다는 것을.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무엇에 홀린 것 같은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p.189)

잘 보이기 위해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라는 점에서 우정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맺을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이상적인 관계이다. 보르헤스는, 사랑과는 달리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우정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말속에는 증명해야 할 불편한 의무(우정에는 없는)가 사랑에는 주어져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사랑을 증명할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의무를 당연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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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 2017-06-19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의생애 재밌게 감명깊게 보셨네요 저도 그랬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질투‘라는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습니다. 그 질투가 자기약점의 크기에 비례한다니.. ㅎㅎ

다락방 2017-06-20 08:25   좋아요 3 | URL
제가 이승우의 소설을 참 좋아하고, 국내 작가중에서 이승우를 제일 좋아하는데 말이죠, 이번 소설은 유독 저를 많이 건드리네요. 아주 가슴 아프게 읽었습니다, 자강님.
질투가 자기 약점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말이 정말 아팠어요.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