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Lucid Fall) - 정규 5집 아름다운 날들
루시드 폴 (Lucid Fall)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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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아니 자정을 넘겼으니 오늘이구나), 나는 야근을 했다. 하긴 크리스마스와 야근이 대체 무슨상관이람. 야근을 하고 지친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는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손가락에 매니큐어를 칠하기로 한다. 방안에 루시드 폴의 시디를 걸어놓고서.

 

크리스마스라 발라주는 매니큐어는 황금색. 사둔지 꽤 되었지만 귀찮아서 바르지 않고 있었는데 마치 크리스마스를 위해 준비해둔것처럼 너무나 맞춤한 색이 아닌가. 루시드 폴의 음악은 지친 하루의 일상을 위로하는데는 제격이다. 방안 가득 루시드 폴의 목소리가-그러나 가사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울려퍼지고, 나는 스윽 스윽 손가락마다 차곡차곡 매니큐어를 바른다. 손가락은 황금색으로 변해가고 루시드 폴의 목소리는 매니큐어 솔을 더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고등어」가 들어있던 앨범도 그랬다. 당신은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그렇게 루시드 폴은 위로해줬더랬다. 그런데 이 앨범도 그렇다. 루시드 폴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찌들어 사는것도 아닐텐데, 마치 그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기로 작정이나 한 것처럼,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온 나를 위로한다.

 

앨범 전체가 마치 하나의 곡인듯 노래 하나하나의 개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루시드 폴의 혹은 이 앨범의 단점이 될 수도 있을테지만, 내게는 장점으로만 작용한다. 굳이 루시드 폴까지 가슴을 후벼파는 노래를 만들 필요는 없잖은가. 황금색 매니큐어를 바르는 늦은 밤, 오늘만큼은 매니큐어 냄새가 그렇게 독하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밤, 그런 밤을 루시드 폴의 노래들이 채워준다. 루시드 폴의 음악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황금색 매니큐어 뿐만 아니라, 체리블라썸 바디버터와도 잘어울릴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체리블라썸 바디버터와 루시드 폴의 앨범, 그리고 황금색 매니큐어. 야근 따위는 잊을 수 있다. 슬라이스 햄을 몇장 두껍게 접어 치즈와 함께 샌드위츠를 만들어 한 입 깨물면서 루시드 폴의 앨범을 들어도 좋겠다. 충만한 감정을 선물하는 건 요란한 것일 필요가 없으니까.

 

 

황금색 매니큐어 혹은

체리블라썸 바디버터 혹은

햄치즈 샌드위치(햄 많이)혹은

눈 오는 밤

 

그리고 루시드 폴.

 

이거면 됐다, 오늘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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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11-12-24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리블라썸이라 하시길래 바디샵 바디버터 리뷰인가 했는데... ㅋㅋ
그러고 보니 올 한해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하나도 안 산 듯... 쩝.. 적립금은 유효기간 다 돼서 날아갔는데...

다락방 2011-12-25 20:45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하루님. 안그래도 엊그제인가 하루님의 페이퍼를 보면서, 오, 마지막날 정말 연락오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그동안 안부 묻기 어려운 시간을 지내신 것 같아서 좀 조심스럽게 바라봤어요.
좋아하는 가수의 시디는 곧 다가올 내년에 사시면 되죠. 하루님은 시디를 사지 않으셔도 좋은 노래 많이 들으셨잖아요.
:)

2011-12-24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왜 빼요!
오늘밤엔 나도 껴주세요 :)

다락방 2011-12-25 20:46   좋아요 0 | URL
그 오늘밤은 벌써 지나가버리고 말았네요, 흑흑.
그리고 오늘은 또다른 밤이에요. 하아-

2011-12-24 0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5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4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5 2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1-12-24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레드 와인. 도요. >.< (멀리서나마 다락님과 쨍. 하고 싶은 달밤입니다.^^;)

다락방 2011-12-25 20:49   좋아요 0 | URL
우아아아 레드와인! 꺅 >.<

전 개인적인 사정상 크리스마스 이브에 레드와인을 앞에두고 제대로 마실 수 없었던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어요. 흑흑. 오늘 어찌나 어제의 와인이 생각나던지. 케익도 남기고 흑흑 ㅠㅠㅠㅠㅠㅠㅠㅠ 슬퍼 ㅠㅠㅠㅠㅠ 앞으로 레드 와인 마실때마다 문나잇님께 쨍, 할게요. 훗
 
루시드폴 (Lucid Fall) - 정규 5집 아름다운 날들
루시드 폴 (Lucid Fall)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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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증정은 선택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전 정말 포스터 받고 싶지 않았다구요.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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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12-23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도 필요없고 포스터도 필요없어요. 대체 그 통과 포스터를 어디에 쓰란 말입니까! 하아-

다락방 2011-12-23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는 나중에. 일단 저 별은 포스터 준게 싫어서 음반 들어보지도 않고 하나 뺀거임.

moonnight 2011-12-23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맞아요. 포스터 받고 싶지 않은데 안겨주면 너무 난감해요. 책이랑 시디 보통 함께 주문하는데 책 박스에 떡하니 붙은 포스터 통을 보면 참 당황스럽다는;;;

다락방 2011-12-23 15:04   좋아요 0 | URL
네, 통과 함께 재활용으로 분리해 버리기는 하는데 그러면서 얼마나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가져봤자 짐만 될테고. 포스터를 분명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니 포스터에 한해서만큼은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치니 2011-12-2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뜩치는 않았지만, 지난 번 포스터는 현관 옆에 붙여놨어요. (용도는 여기가 현관이다, 뭐 그런 표시)
그나저나 다락방 님 음반 들어보고 난 후의 소감이 궁금해요 ~

다락방 2011-12-23 15:05   좋아요 0 | URL
저는 대체적으로 그동안의 포스터는 모두 재활용으로 분리하여 버렸지만, [만추 OST]에 함께 딸려온 포스터만큼은 방문에 붙여뒀어요. 그 영화의 포스터만큼은 버릴수가 없어서요. ㅎㅎ
음반은 주말동안 내내 듣고 리뷰 쓰도록 할거에요. 물론, 장담할 순 없지만요. 훗.

레와 2011-12-26 10:09   좋아요 0 | URL
나도나도! 만추 포스터는 버릴수가 없었어요. 우리집 작은 냉장고에 붙여 놨어요~ ㅎ

다락방 2011-12-26 13:26   좋아요 0 | URL
난 같이 걷는 포스터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하필 키스하는 포스터에요. 뭐, 그것도 괜춘하지만 ㅋㅋ
 

시(詩)는 소설이 그렇듯이 아주 많은것들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다. 얼마전에 어느 신춘문예 응모후의 글을 봤는데 많은 시들이 이번 해에 저항에 대해 얘기했다고 했다. 그래, 시를 수단으로 삼아 저항을 얘기할 수도 있을테다. 인생을 얘기할 수도 있고 분노를 얘기할수도 있다. 그리고 물론, 사랑에 대한것은 빼놓을 수 없고. 그리고 시로 말하기에는 일상도 가능하다. 나는 지겨울정도로 말해왔지만 시를 잘 읽지 못하고, 그래서 시를 잘 읽는 사람들을 보는것이 몹시 질투난다. 왜 나는 그들처럼 시를 읽지 못할까? 왜 내게 와서 그것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까? 시는 내게 다가서기 어려운 친구같다. 몇번이고 시도하고 또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나 따위에게는 절대 곁을 주려는것 같지가 않다. 뭐, 괜찮다. 내게는 나의 구원, 소설이 있으니까.

 

시에게 실연당한 내가 오늘 만난 시집은(나는 참 끈질기기도 하지), 제목이 아주 근사한 시집이다. 내가 만약에 단편 소설을 쓴다면 시인에게 정중히 묻고 싶다. 제 단편소설 제목으로 이 시집의 제목을 그대로 써도 되겠습니까? 라고. 그러나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박성우 시인의 『자두나무 정류장』. 아. 제목좀 봐. 자두나무 정류장이래. 너무너무 예쁘다. 자두나무 정류장. 배나무 정류장보다 낫다. 사과나무 정류장은 괜찮았을 것 같다. 벚꽃나무 정류장도 어쩐지 낭만적이고. 아, 그런데 자두나무 정류장은 뭔가 특별하다. 자두나무라니. 나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자두를 따먹어도 될까? 자두를 따먹고 자두즙이 흘러내리면 손으로 쓰윽- 훑고. 끈적해진 손이 낭패스러워지면 옆에서 함께 기다려주던 이가 물티슈를 건네주고. 버스가 오고, 우리는 나란히 타고. 이 밤에 자두가 먹고싶다.

 

 

자두나무 정류장

 

외딴 강마을

자두나무 정류장에

 

비가 와서 내린다

눈이 와서 내린다

달이 와서 내린다

별이 와서 내린다

 

나는 자주자주

자두나무 정류장에 간다

 

비가 와도 가고

눈이 와도 가고

달이 와도 가고

별이 와도 간다

 

덜커덩덜커덩 왔는데

두근두근 바짝 왔는데

암도 없으면 서운하니까

 

비가 오면 비마중

눈이 오면 눈마중

달이 오면 달마중

별이 오면 별마중 간다

 

온다는 기별도 없이

 

비가 와서 후다닥 내린다

눈이 와서 휘이잉 내린다

달이 와서 찰바당찰바당 내린다

뭇별이 우르르 몰려와서 와르르 내린다

 

북적북적한 자두나무 정류장에는

왕왕, 장에 갔던 할매도 허청허청 섞여 내린다

 

 

그래, 정류장에서는 버스를 기다리기도 하지만, 내게로 올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한다. 문득 이 시를 읽는데 마중이란 단어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마중이란 단어는 애틋하니까. 그 마중을 자두나무 정류장에서 한다는 건 꽤 특별하게 느껴져서, 내가 자두나무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마중한다면 혹은 누군가가 나를 자두나무 정류장에서 마중한다면 우리는 헤어질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다음에 또 자두나무 정류장에서 보자.

 

헤어짐의 인사로는 꽤 낭만적이지 않은가.

 

 

바닥

 

괜찮아, 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나도 그대에게 바닥을 보여줄게, 악수

우린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위로하고 위로받았던가

그대의 바닥과 나의 바닥, 손바닥

 

괜찮아, 처음엔 서툴고 떨려

처음이 아니어서 능숙해도 괜찮아

그대와 나는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핥았던가

아, 달콤한 바닥이여, 혓바닥

 

괜찮아, 냄새가 나면 좀 어때

그대 바닥을 내밀어봐,

냄새나는 바닥을 내가 닦아줄게

그대와 내가 마주앉아 씻어주던 바닥, 발바닥

 

그래, 우리 몸엔 세 개의 바닥이 있지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

이 세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겠지,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

 

 

이 시를 읽고서야 새삼 바닥을 나누는 일이 사랑을 나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렇다. 혓바닥을 나누는 일은 사실 사랑 없이도 가능할 수 있다. 그것은 욕정만으로도 해낼 수 있는 일이니까. 손바닥을 서로 내보이며 악수를 하든 손을 잡든, 그것도 사랑까지 가지 않아도 가능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순간의 충동으로. 그러나 발바닥까지 함께 내보인다면, 그러니까 내 몸의 모든 바닥과 당신 몸의 모든 바닥이 만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수 없겠다. 그건 사랑이겠지, 라는 시인의 말은 그래서 네, 사랑이죠, 라는 대답을 불러낸다. 그런데 사랑이 뭐지? 라고 물으면 그때는 대답하기가 어려워질 것 같기는 하다. 바닥을 나누는거요, 라고 하기엔 충분하지 못한 느낌.

 

 

별말 없이

 

윗집 할매네

밭가에 우거진 가시덤불을 일없이 쳐드렸다

 

그러고 나서 두어 날 집을 비웠는데

텃밭 상추며 배추 잎이 누렇게타들어간다

 

일절 비료도 안하고

묵힌 거름으로만 키워 먹는 풋것인지라

내 맘도 여간 타들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요소를 쪼간 허쳤는디 너무 허쳤는가?

아깐디, 뭔 비료를 다 주셨어라

 

윗집 할매는 고맙다는 표시로 별말 없이,

내 텃밭에 요소비료를 넘치게 뿌려주셨던 것이어서

나도 별말 없이,

콩기를 한 통 사다가 저녁 마루에 두고 왔다

 

내 호박넝쿨이며 오이넝쿨이

윗집 할매네 부추밭으로만 기어들어가

여름 가을 내내 속도 없이 퍼질러댔지만

 

윗집 할매는 별말 없이,

비울 때가 더 많은 내 집을 일없이 봐주신다

 

 

이 시는 엄청 아름답다. 풍경이 눈에 보이는듯 하다. 별말 없이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별말 없이 나누는 마음이 비료이고 콩기름이고 비운 집을 봐주는 일이라는것이 살풋 미소짓게 한다. 저녁에 집에서 콩나물과 고추장을 세숫대야에 넣어 밥을 비벼먹는데 엄마가 참기름 넣어줄까, 하신다. 응, 이라고 하니 엄마는 참기름 뚜껑을 열고 내가 밥을 비비는 세숫대야에 넣어주시는데 이건 참기름을 넣는 수준이 아니고 숫제 들이 붓는다. 어어, 엄마, 기름에 밥 비벼먹는거 아니잖아 왜이렇게 많이 넣어, 라고 하니까 엄마가 맛있으라고, 하신다. ㅎㅎㅎㅎㅎ 이런게....아름다운거 아닌가!! 박성우 시인에게 콩기름이 있었다면 나에겐 참기름이 있다. 엄마의 참기름. 별말 없이 들이붓는 참기름. 그리하여 아름다워진 저녁 밥상.

 

 

항생제와 소염제 그리고 진통제가 잔뜩 들어간 약을 먹었더니 내내 졸립다. 자도자도 졸립다. 그것들은 사람을 졸리게 만드는건가? 여튼 이제 자야겠다. 내일은 금요일이고, 그 다음날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작년 이맘때, 나는 백화점에 가서 반지를 샀었지. 그 뒤로 그 반지는 내내 내 손에 끼워져 있었고, 나는 이제 그 반지 없는 내 손가락은 허전하다. 앗. 와인을 마시고 싶어지네. 얼른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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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이진님, 시집 추천합니다!
    from 마지막 키스 2012-04-24 00:15 
    소이진님. 시집 추천을 해달라고 하셨는데, 제가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죠? 사무실에서 추천하고 싶었지만 저는 외우는 시는 하나도 없구요, 오늘 일이 폭발해서 ㅠㅠ 머리가 빙빙 돌 정도로 일했어요. ㅜㅜ 집으로 돌아와 일단 제 방 책장에서 시집 몇 권 꺼내어 훓어보았어요. 저는 시를 잘 못읽고(;;) 가지고 있는 시집도 몇 권 되질 않아서 추천하자니 데이터가 몹시도 빈약하지만, 이 시들은 어떨까, 해서 몇 개 소개해 드릴게요. 다 기록하기는 어려우니(저
 
 
이진 2011-12-22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들이 참 아름다와요.
요즘에는 시를 읽으려해도 어렵고 난해한 철학적인 시 밖에 안 보이는데
이렇게 일상적이고 잔잔한, 그리고 애틋한 시들을 읽으니 마음이 깨끗히 정화되는 기분이어요^^

다락방 2011-12-23 13:15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저도 이렇게 일상적이고 잔잔한 시들이라서 읽기에 아주 좋더라구요. 난해한 시는 저도 잘 못읽어서 말이죠. 전 쉬운글로 쓰여진 쉬운 시가 좋아요. 쉬우면서도 애틋함을 주다니, 시란 정말 묘하지요?
:)

hnine 2011-12-22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봤더니 박성우 시인이군요. 그럴 줄 알았다니까요.
감기 기운 있나봐요? 자는게 최고, 푹 주무세요. 자두나무 정류장 꿈 꾸세요 ^^ 전 호두나무 정류장 쯤으로 하려고요.

다락방 2011-12-23 13:16   좋아요 0 | URL
감기 기운 있는건 아닌데, 세균감염이라 .. 뭐 그렇게 됐습니다 ㅜㅜ

자두나무 정류장은 달큰하지만 호두나무 정류장은 그보다 더 정감있게 느껴져요. 호두나무라..호두나무도 참 좋으네요, hnine님. 헤헷 :)

꽃핑키 2011-12-2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ㅋㅋㅋ 자두나무 정류장, 자두나무 정류장 어쩜 ~_~♡
저에게도 자두나무 정류장은 너무 특별하고 예쁜 이름처럼 느껴져요 ㅋㅋ
으하하 잘자요 나의 다락방님 ♡_♡sS

다락방 2011-12-23 13:17   좋아요 0 | URL
자두나무 정류장은 정말 예쁘죠? 예뻐서 특별하게 느껴지는걸까요? 거기에 자두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을 생각을 해보면 정말 입속이 달아져요. 과즙흘리면서 마구 먹고싶어요!

핑키님은 잘잤어요? 점심시간도 지났네. 점심도 잘 먹었어요?
:)

레와 2011-12-23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퓨터 옆에서는 얼씬도 하지 말고 푹쉬지!! 쫌!!
그렇지만 다락방의 페이퍼는 너무 반가워서 와락..

시집을 사서 읽으면 페이퍼에서 받은 감동보다 덜 하던데, 그건 아마도 다락방의 일상 이야기가 없어서 그런가봐요.
오늘 페이퍼의 콩나물에 고추장넣고 참기름을 부어주는 엄마 이야기 같은..


배고프네..

다락방 2011-12-23 13:18   좋아요 0 | URL
잠을 좀 많이 잤더니 막상 밤에 잠이 잘 안오더라구요. 졸렸는데도 말이죠. 어제는 글쎄 무려 새벽 한시에 깨서 삼십분동안 책보다 잤어요. ㅎㅎㅎ 그러다가 친구한테 문자까지(우리의 J님) 넣었죠. 그런데 그 친구는 무려(!)답장을 보내더군요.

어제 엄마가 저 때문에 고생. 종합병원가서 제가 오기전에 미리 예약하고 기다리고 그 추운데 .. 흑흑. 제가 참 불효를 많이 하네요. orz

레와 2011-12-26 10:1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 우리 건강합시다. 그 무엇보다 우선으로.

네꼬 2011-12-2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을 들고 읽는 것보다 다락님이 읽어주는 게 더 좋아요. 당신은 정말 좋은 독서가. 시 애호가. 여자. 우리 내년 여름엔 같이 자두 한번 먹읍시다.

다락방 2011-12-23 13:19   좋아요 0 | URL
저는 시집을 잘 읽지 못하는걸요, 네꼬님. 알라딘에만 해도 고수가 얼마나 많아요. 네꼬님 김지님 hnine님 모두 시를 엄청 잘 읽으시잖아요! 그런데 전...ㅠㅠ 시를 읽는 내공을 쌓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시를 더 읽어야 할까요?

좋은 독서가라..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좋은 독서가인가요? orz

내년 여름엔 같이 자두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그래요, 네꼬님. 우리 오래오래 맛있는 것 함께 먹는 그런 사이가 되자구요.

책다람쥐 2011-12-23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속에 똑똑 방울방울 떨어지는 시들이네요. 다락방님의 말들도요 :)
누군가를 기다리는것과 나의 바닥을 보여주는일 둘다 그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인것만같아
오늘은 나의 자두나무 정류장에서 손바닥을 맞잡고 걸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네요.
역시 겨울날엔 시 한잔이 진리- 크레마가 찐하다구요.


다락방 2011-12-23 13: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책다람쥐님. 마음속에 똑똑 방울방울 떨어지는 시들을 인용해서, 그리고 제가 그럴수 있는 글을 썼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헤헷.
네, 기다리는 것, 기다리는 사람을 향해 가는 것, 나의 바닥을 보여주는 일. 그 모두가 다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하죠. 손바닥을 보였을때 그쪽의 손바닥이 마주와서 잡아줄거란 확신, 그건 아무에게나 가질 수 있는건 아니니깐요.

겨울날엔 시도 진리, 소설도 진리, 그리고 따뜻한 정종도 진리에요.
종종 뵈어요, 책다람쥐님!
:)

노이에자이트 2011-12-23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세숫대야에 밥을 비벼먹는다니 놀라와요...양푼보다 훨씬 클텐데...

다락방 2011-12-23 17:4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상상해보세요, 세숫대야에 밥 비벼먹는 다락방을. ㅋㅋㅋㅋㅋ

당고 2011-12-25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닥> 베껴서 친구에게 연애편지 보내야겠어요 이히히-

다락방 2011-12-26 08:42   좋아요 0 | URL
좋은 생각이에요, 당고님. ㅋㅋㅋㅋㅋㅋㅋㅋ

달사르 2011-12-26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 이 시 읽고, 다락방님 페이퍼 읽고, 너무 좋아서 수면 위로 올라왔어요. 다락방님과의 사랑스런 대화에 굶주린 탓도 있구요. ^^

방금, 장바구니에 투하! 했슴돠. 이 시들은 단언코, 올해 만난 최고의 `시` 인 듯해요. 이런 멋진 시, 소개해주다니 당신은 참 예쁜 사람. 하하하.

다락방 2011-12-27 09:53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요즘 달사르님 왜 안보이시나, 며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참에 페이퍼가-그것도 내용도 사랑스러운!- 올라와서 엄청나게 반가웠어요. 그런데 제 페이퍼 읽고 수면 위로 올라오셨다니. 히히히히

달사르님이 저보다 훨씬 예쁘시죠. 전 달사르님의 약국 일상에 푹 빠졌어요.
:)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 - Mission: Impossible - Ghost Protoc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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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엄청난 액션영화를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정말 이런 액션이 세계 어느곳에서는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것일까? 하고. 정말 저런 첨단 장비들을 가지고 높은곳에서 뛰어내리고 백층짜리 빌딩에 붙어다니고 하는 일들이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는것일까? 그리고 저들은 정부에서는 발각될 경우 너희들을 모른척할거다, 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저런 위험을 무릅쓰고 나라를 심지어는 세계를 아니 지구를 구하고 있는것일까? 진짜? 그들이 지구를 구하고 얻는것은 무엇일까? 엄청난 금액의 돈일까? 혹은 세계를 내가 구했다는 만족감과 뿌듯함? 그리고 저런 요원이 되기 위한 '여자'라면 당연히 미모까지 갖추고 있어야 하는걸까? 이 영화속에서 여자요원은 드레스를 차려입고 화장을 하고 포도를 하나 까먹는 순간 미디어 재벌을 한방에 녹여버린다. 그게 가능해? 정말? 어떻게 눈만 마주치고 포도 한 알 씹었을 뿐인데 그 남자가 그녀에게로 오는거지? 


뭐 이것이 사실이고 아니고간에 어쨌든 이 영화를 보는건 퍽 재미있는 일이었다. (사십자평에도 썼지만)나는 액션을 정말 좋아하는가보다. 액션을 하는 남자가 좋은걸지도 모르고.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볼 때부터 몹시 흥분됐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도 완전 흥분해가지고 우리의 미의 절정, 탐 크루즈가 위험에 처할때마다 으윽, 하고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이런 요원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촉이라고 해야하나, 어떻게 하면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감이 발달해있고, 문제 해결능력이 뛰어나며, 액션까지 제대로 해낼줄 아는거다. 게다가 사람의 심리까지 파악하고. 유후~ 그러니까 이런 남자, 이런 남자랑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울까.


일전에 '재이슨 스태덤' 주연의 『킬러 엘리트』를 보면서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살인목표가 되는 삶을 사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단 헌트의 아내 혹은 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고된일일까. 그는 충분히 사랑할만한 남자지만, 그를 사랑하는 대신 내가 치러야할 대가는 내 목숨이다. 이단 헌트를 괴롭히고 죽이기 위해서 내가 죽어야 할 목표가 될 수도 있고, 설사 나는 죽지 않았다 한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다치고 쓰러지고 피흘리고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해야할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토록 재미있고 흥분해서 봤던 이 영화, 재미있지만 정말 미국 요원 몇명이 우리를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준거란 말이냐, 라는 생각이 들어서 별 셋만 줘야지 했던 이 영화가, 이 뛰어난 요원과 그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면 때문에 별 넷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를 지키는 건 니가 할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이라고 말을 하는 탐 크루즈를 보여줘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그래서 이 영화가 좋아지고 말았다. 하아-


심장이 터질뻔했다. 너무 좋아서. 


『킬러 엘리트』에서의 재이슨 스태덤 같은 남자와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늘 나를 지켜주는 삶이 나은걸까, 아니면 위험한 일에는 전혀 근처에도 가지 않는 착하고 다정한 남자와 늘 함께 하는 삶이 좋은걸까. 이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 답은 하나다. 위험하고 강한 남자와 함께하지는 않지만 늘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준다는 확신 아래, 착하고 다정한 남자와 함께하는 삶, 그 두가지를 함께 갖는것이 진정한 삶, 리얼 라이프, 궁극적인 인생의 목적이다. 



미션 임파서블 리뷰에, 탐 크루즈가 멋진 이 영화에 대해 이런 말을 덧붙여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액션은 재이슨 스태덤이 더 짱이다. 첨단 장비 없어도 재이슨 스태덤은 모든걸 해내니까. 컴퓨터따위, 재이슨 스태덤에겐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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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1-12-2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이슨을 가져요, 난 탐을 가질테야!! ㅋㅋ

다락방 2011-12-21 10:02   좋아요 0 | URL
재이슨이 더 좋다는거지 탐이 안좋다는게 아닌데. 어쩌지 ㅋㅋㅋㅋㅋ 탐도 너무 좋아요!! >.<

마늘빵 2011-12-22 09:35   좋아요 0 | URL
저는 수애 주세요.

다락방 2011-12-22 22:25   좋아요 0 | URL
흥!!

네꼬 2011-12-2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오늘이 스콧 피츠제럴드가 사망한 날이래요. 다락님은 뭐 해요?

다락방 2011-12-21 10:53   좋아요 0 | URL
절 때려주세요, 네꼬님. 스콧 피츠 제럴드가 사망한 날 저는 탐 크루즈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난 몹쓸여자야. 이기적인 여자. ㅠㅠ

마늘빵 2011-12-22 09:35   좋아요 0 | URL
다락님은 나빠.

네꼬 2011-12-22 13:17   좋아요 0 | URL
차가운 여자.

다락방 2011-12-22 22:26   좋아요 0 | URL
아프락사스님, 그래서 내가 싫어요?


네꼬님, 나는 간혹 뜨겁기도 하다우. ㅎㅎ

라로 2011-12-21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면 때문에" 저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구요,,,이 나이에 제가 왜 이러냐고요,,

다락방 2011-12-21 13:11   좋아요 0 | URL
완전 좋았죠, 나비님!!!!! 마지막 장면 완전 좋아요 완전 좋아요. 정말 위에 쓴대로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어요. 그런 사랑이라니. 흑흑 ㅠㅠ

... 2011-12-2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브래드와 탐 사이에서 갈팡질팡~~ (근데, 왜?)

다락방 2011-12-22 22:26   좋아요 0 | URL
저도 한때는 브래드아 탐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으나 이제는 재이슨이에요. 하하하하하

이진 2011-12-2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탐을 가지겠어요 ㅋㅋㅋㅋ
오래전부터 갈망해왔지요(?) ,,,
그게 아니고 음... 동경?

다락방 2011-12-22 22:30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은 탐 보다는 탐의 예쁜 딸인 수리를 노리는 쪽이 훨씬 낫지 않을까요? 수리는 완전 예쁘던데요!!

moonnight 2011-12-22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임.은 친구랑 보려고 아껴두었어요. 어제는 셜록 홈즈보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너무 멋지다 했었는데, 내일은 꼭 탐 크루즈 보러 가야겠어욧! >.<

다락방 2011-12-22 22:30   좋아요 0 | URL
저는 3편볼때는 탐이 좀 별로였었는데 4편보면서 다시 애정이 새록새록해졌어요. 문나잇님, 이제 탐에게 반할일만 남았네요? 진짜 멋져요. 꺅 소리가 절로 나와요. 마지막 장면이 압권압권 ㅠㅠ 쑝가요! ♡

마노아 2011-12-26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액션 너무 좋았어요. 어찌나 스릴이 넘치던지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니까요.
오늘 니콜 키드먼 나온 영화를 보면서, 둘 다 이렇게 완벽한데 둘은 왜 헤어졌을까... 막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시리즈 중에 4가 가장 재밌었어요. 노래가 나오면 막 흥분하게 되어요.

다락방 2011-12-27 10:07   좋아요 0 | URL
저도 오랜만에 미션 임파서블 보는데 음악이 새삼 흥분되더라구요. 아, 그래 이런 음악이었지! 싶으면서 말이에요. 분명 3편에서는 탐이 지나치게 액션 욕심을 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편에서는 막 신나고 좋더라구요. ㅎㅎㅎ 그리고 너무 멋졌어요. 사랑하는 여자를 멀리서 지켜주는....(스포일러ㅎㅎ)

그게요, 그렇더라구요. 너무 완벽한 두 사람이 한 쌍이 되면, 삐걱대는 것 같더라구요. 서로 부족한 점이 있고 그걸 상대가 채워주어야 뭔가 조화가 잘 되는데 다들 너무 잘나서, 그런 사람 둘이 모이면, 홈이 파이지 않은 톱니바퀴처럼 되는거죠. 맞물릴 수가 없는. 뭐, 그냥 제 생각이에요. 하하하하하
 
달려라, 토끼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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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등학교 1학년때 나의 물리선생님은 본인이 결혼한 이유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었다. 웃으면서 말씀하시긴 하셨지만, 나는 열 일곱 살, 어린 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수 있어서 놀랐다. 물리 선생님은 빨리 그 집에서 나오고 싶었다고 했다.


"사실 재니스도 나만큼이나 자기 부모를 견디지 못해요. 부모한테서 얼른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나하고 결혼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p.191)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숱한 결혼의 이유들중에 '부모로부터 벗어나기'는 꽤 많은 퍼센테이지를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의 물리선생님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결혼을 결심했던 이유는 잊은채로 자신이 새로 만든 가족들과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새로운 삶을 찾았다고 느꼈을까? 자신에게 주어졌던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만큼 자신이 만든 가족들 틈에서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혹시 지금쯤 하지는 않았을까? 이 책속의 래빗이 그랬던것처럼.


한 남자가 일상과 가족에게 권태를 느껴 집을 나간다. 그의 주머니에는 얼마만큼의 돈이 있고 찾아갈 곳도 있다. 자신의 아내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여자를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잔다. 자신의 집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새로운 삶을 꾸리면서 그는 친구를 사귀고 운동도 한다. 

일상이 지리멸렬하다고 느끼고, 늘 함께하던 소중한 사람들이 꼴도 보기 싫어지는 것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감정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끔 그럴때가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누구나 한번씩 느껴본 만큼,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이 사람들을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열망 또한 불끈불끈 생기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휙- 집을 떠나는 것이, 또 이곳을 떠나 다른곳으로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를 위해서라면, 그것이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라면, 혹은 내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라면,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훌륭한 방법이 되는것은 아니다. 남자가 집을 나간 순간 남자의 아내는 남자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멍청한 여자가 되고(실제로 그녀가 멍청한지는 차치하고), 그런 사위를 둔 장모는 홀로 된 딸 때문에 속을 끓여야 하고, 남자의 부모는 그 아이가 그렇지 않았는데 여자를 잘못 만나서라고 화를 내고, 동네 목사는 그런 그가 언젠가는 돌아올거라며 남자의 식구들을 상대한다. 동네 목사는 또다른 성직자로부터 '니가 할 일은 기도지 그들을 만나 그의 변명을 해주는 일이 아니다'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목사도 화가난다. 그러니까 남자가 그동안 지내왔던 일상을 버리고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화를 내고 욕을 먹는 사람이 한 두사람이 아닌거다.



내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내가 속하게 되는 곳은 한 두군데가 아니다. 나는 거기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게 되고 또 그들중 몇몇과는 꽤 오랜 친분을 유지하기도 하며 또 그들중 몇몇과는 소중한 감정을 나누게 된다. 그러다가 그 관계속에서 빠져나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른이의 불행을 담보로 하기도 한다. 이 책속의 남자도 그것을 알고 있다. 아니, 그 과정들 속에서 그걸 깨닫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이 될 배짱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대신 대가를 치러준다는 거야." (p.214)



아마도 그것을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알고 있기 때문에 권태를 느끼는 사람에 비해서 모든걸 버리고 훌쩍 도망가버리는 사람이 현저히 적은걸지도 모른다. 그것을 책임감이라 부르든 뭐라 부르든, 내가 이곳을 벗어나는 순간 나 대신 대가를 치러줄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남자는 자신이 정착했던 곳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불편함과 상처를 줬다. 물론 그들도 남자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그가 떠난 진짜 이유를 알지도 못했고 그 따위것에 관심도 없었다. 그저 그는 무책임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런데 남자는, 끝까지 자신의 상황을 뒤에 던져두고 모질게 앞만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남자는, 새로운 곳에서 만나게 된 사람을 잠깐동안이지만 떠나야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에게 또다른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나는 항상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하는 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해왔다.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라고. 그러나 내가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그렇다면 그들이 대가를 치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나이기를 포기해야 하는걸까? 만약 남자가 그렇게 사라져버린 듯 도망치는게 아니라 '어쩌면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를' 사람들을 앞에 모아두고, '나는 이제 지쳤소, 그러니 이자리를 박차고 떠나려 하오' 라고 말했다면, 그랬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들은 '오냐 그래 그럼 너는 너 자신이 되렴' 하고 그를 놓아줬을까? 누군가는 너에게 무슨일이 있는거냐고 계속해서 지나친 관심을 보였을거고 또 누군가는 떠나지 말라고 울었을거고 또 누군가는 떠나라고 말은 하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자는 결국은 떠나지 못한채로 어제와 같은 삶을 어제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살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없이 이곳에서 사라져버리는게, 그렇다면 가장 좋은 선택이었을까? 만약 다른 사람들을 선택했더라면, 그들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다면 나는 떠나지 않은채 이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 참 쓰다, 고 생각했던 건 반복되는 일상과 늘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해 권태를 느꼈기 때문이 아니다. 그 권태가 있기 훨씬 전에 설레임과 매혹과 사랑이 존재했었다는 분명한 사실 때문이다. 차마 벗은 몸을 보여주지 못하는 수줍은 아내가 거기 있었고, 남자의 어린 시절이 찬란했었다고 증명해주는 친구들이 거기, 권태 이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자신의 사랑을 끝내면서 '시간은 사랑을 못나게 만든다'는 말을 했던적이 있다. 시간은 찬란했던 순간을 권태 뒤로 감춰버린다. 인생이 참말로 쓴맛을 가져다 주는건 또한, 이 사람들을 새로운 사람들로 바꾸고, 이 환경을 새로운 환경으로 바꿔도 지금의 설레임이 영원하지는 않을거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달아나고 도망가고 벗어나려고 해도 결국 언젠가는 또다시 지금 갖고 싶었던 삶에 대해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그 순간이 올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달콤함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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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1-12-2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자신을 생각하면서 내 주위 사람들까지 생각하기엔 머리와 가슴이 하나밖에 안되서 힘들어요.
우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니깐.

다락방 2011-12-21 11:56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레와님. 내가 나 자신을 찾는일, 혹은 내 행복을 찾는일이 내 주변 사람들의 행복이기도 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모두 얽혀있기 때문에 나 하나만 쏙 빠져나오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어요.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레와님.

2011-12-21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1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1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2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3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1-12-2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 참 쓰다...

삶의 권태는 순식간에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들고, 그때마다 생각을 전환하고 새롭게 하는 것이 힘들고...

다락방 2011-12-22 22:32   좋아요 0 | URL
삶의 권태는 순식간에 찾아오고 그럴때 인생은 참 쓰지만, 그것이 극복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오래전의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서 박미선이 남편인 박영규의 모든게 꼴도보기 싫어진거에요. 그래서 미칠려고 하는데 며칠 시간이 지나니 다시 애정이 살아나서 웃고 함께 지내더라구요. 어쩌면 어떤 시기라는게 있고, 그 시기를 견뎌낸다면 괜찮아지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마노아 2011-12-2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과 6펜스가 생각났어요.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락방 2011-12-22 22:33   좋아요 0 | URL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일 수 있다는게 정말 어려운 일인것 같아요, 마노아님. 그건 쉽지않은일인가봐요. 알지만 새삼스럽네요. 그러게요.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poptrash 2011-12-22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전... 아직 안 읽었어요. ㅜ_ㅜ

다락방 2011-12-22 22:33   좋아요 0 | URL
뭐에요!! 그런데 왜 나를 재촉했어!!!!!!팝님 나빠요!!!!!

BRINY 2011-12-22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줄을 읽고 놀랐습니다. 제 친구 중에도 그런 이유로 빨리 결혼한 친구가 있었거든요. 몇번의 위기를 넘기다가 지금은 그냥그냥 가정 꾸리고 삽니다만... 그런 이유로 결혼을 택한 사람들이 제법 있군요. 전 그저 집을 나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좋다는 대학가고 열심히 안정된 직장 찾아서 돈 벌었습니다.어떤 걸 선택하던간 인생이란 ...

다락방 2011-12-22 22:35   좋아요 0 | URL
결혼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이유들은 특히 더 많이 공통되기도 한것 같아요. 줌파 라히리의 단편에서 여자는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려고 하거든요.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왜 너는 그 남자와 결혼하려 하는거냐고 묻자 그녀는 `모든게 정리될 것 같아서` 라고 말해요. 그 느낌이 뭔지도 알겠더라구요.

어떤 선택을 하든 쉽지않고, 책임을 지는것들도 분명히 존재하죠.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그 선택에 대해서 대가를 치러야할 것 같아요. 인생이란 결코 쉽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