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여동생은 자신이 자신의 계획대로 살고있음을 얘기한 적이 있다. 이 나이 즈음에 결혼하고, 이 나이 즈음에 아이를 낳고, 하는 등의 일들을. 또 한 후배 녀석은 이러이러한 직장에 취직하고, 자리잡히는 대로 결혼하고, 하는 등의 계획을 세웠었는데, 그대로 살고 있음을 보기도 했다. 그런 녀석은 하나가 아니라 둘 씩이나 된다. 나는 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들 이렇게 언제까지 뭘 하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사는걸까? 일단 계획을 세우면 실천하게 되니 계획을 세우는 건 중요할까? 그렇다면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나는 뭐지? 이런것들이 내게 한동안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그래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 뒤로도 어느 때에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 없이 그냥 되는대로 살고 있다. 다만, 죽기전에, 그러니까 살면서 이것만은 해보고 싶다,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것들 중에 센트럴 파크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보기 라든가 프란세시냐 꼭 먹어보기 등은 내 의지와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허락한다면 가능한 것이었단 말이다. 그러나 '숀 마이클스의 레슬링 경기 관람하기' 는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좌절되고 말았다. 숀 마이클스가 몇 년전에 은퇴를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미국에 가서 숱한 관중들 틈에 섞인채로, 숀 마이클스를 응원하는 디엑스 티를 입고 꺅꺅 소리지르며 숀 마이클스랑 하이파이브를 해보고 싶었다. 목이 쉬어라 응원해보고 싶었다. 미친듯이 팔짝팔짝 뛰어서 땀으로 흠뻑 젖고 싶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가능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숀 마이클스의 은퇴는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거였다. 충격이었고, 어쩔수없이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에 멍해졌었다. 아, 레슬링 선수니까, WWE 선수니까, 은퇴를 해야한다는 걸, 경기를 할 수 있는 때가 있다는 걸, 내가 망각하고 있었다. 가수라면 좀 더 오래 노래부를 수 있을테지만, WWE 선수는 다르다. 나는 이제 설사 경제적 여유와 시간과 체력이 허락해도 숀 마이클스의 경기를 관람할 수는 없다. 아, 이건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한 절망.


갑자기 이 일이 떠오른 건, 지난 주말 남동생과 동네 뒷산에 산책 갔다가 나눈 이야기 때문이었다. 숀 마이클스와 팀을 이루어 경기를 하던 '트리플 에이치' 조차 은퇴 얘기가 돈다는 거였다. 아! 그래서 떠올랐다. 내가 나의 목표(?)중에 하나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포기했었던 사실을. 아, 이제 WWE 에 대해서는 끝이구나.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남동생도 아주 속상해했다. 그러게, 나는 왜 숀 마이클스 경기를 한 번도 보지 못했지, 아 진짜 보고 싶었는데, 하면서. 지난번 한국에서 경기가 열린다고 했을 때 참가자 명단에 숀 마이클스가 없다고 해서 볼까말까 망설이다 말았는데, 그때라도 가봤어야 했을까. 속상하다. 우린 함께 속상해했다.



요즘 직장생활이 재미없다. 물론 재미있었던 적은 없다. 그런데 요즘은 지겹고 지긋지긋하다. 나는 요즘 일을 관두면 내게 어떤 대안이 있을까만을 생각하고 있다. 일단은 한동안 포르투갈에 장기체류를 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직장생활의 지겨움이 폭발할듯 해서, 포르투갈 말고 또 어디가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여행 서적 몇 개를 뒤적였다. 여행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토록 부르짖었으면서도,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생각나는 건 결국 여행 뿐인걸까. 지난 한 달간 읽은 여행서적이 여태 살아오면서 읽은 여행서적과 비슷한 권 수를 기록할 것 같다.



















『도시를 보다』는 도시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여행서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나는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 다른 도시에 대한, 일반적인 도시에 대한 열망으로 들춰보았다.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 나는 도시의 높은 빌딩과, 그 빌딩이 이루는 빌딩숲을 사랑한다. 가끔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만, 또 가끔은 고개를 들어 이 빌딩은 어느 높이까지 솟아있나를 보곤 한다. 상점들이 즐비한 도시가 좋고, 도시 한 복판과 귀퉁이까지 사람들이 차있는 모습들도 나를 살아 있게 한다. 스타벅스 라는 누구나 다 아는 커피숍에 들어가서 그러나 가장 자유롭게 혼자일 수 있음을 사랑한다. 그래, 나는 언젠가 또 여행을 가고 혹은 정말 어딘가에 장기체류를 하게 된다면, 그곳 역시 도시로 정하겠어, 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 책은 노점상을 사랑하게 만들어 버린다.



『런던 디자인 산책』은 런던의 일상과 런던에서의 디자인이 잘 어우러진 책이다. 그래서 사진을 보는 즐거움을 준다. 나는 디자인의 획기적이고 실용적인 신선함 보다는 일상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우체부와 우체통이 그들의 산책이 좋았다. 



『one fine day in 프라하』는 저 네 권들중 가장 실망스런 책이었는데, 그건 책의 저자와 내가 원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인듯 하다. 여행을 가는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휴양을 위해 누군가는 관광을 위해 갈것이고, 누군가는 그 지역의 역사를 알고 싶고 누군가는 그 지역의 일상을 보고 싶을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휴양과 관광을 위해 가기 보다는 내 삶을 잠시나마 그곳에 머무르게 하고 싶기 때문에 가고, 그렇기 때문에 그곳의 일상을 겪고 싶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프라하라는 곳에 반해서 프라하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에 열중한 것 같았다. 그곳의 성당 사진을 찍은 사진이 많고 그래서 그곳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부분이 많다. 과거가 있으니 현재가 있는건 분명하지만, 내가 여행기에서 바랐던 것은 그런것이 아니라서 아쉬웠다. 저자의 사진은 쓸쓸하거나 고독했고 조용했다. 내가 원하는 건 .. 맛있는 음식 사진이었는데.. ( ")



『런던의 어떤 하루』는 위에 언급한 『런던 디자인 산책』을 이미 읽고 시작했기 때문인지 익숙한 이야기들이 나와서 반가웠다. 마치 내가 이미 런던을 조금은 알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이 책 역시 런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려줄 뿐 내가 원하는 바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난 좀 더 많은 음식 사진을 원했는데(응?), 이 책의 음식 사진들은 그다지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말 그대로 런던을 여행하기 위해서라면 이 책은 유용할 것 같다. 런던에서 이용할 수 있는 마켓과 극장 쇼핑센터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그렇지만,


피터팬을 패터팬 이라고 쓰다뇨, 움베르트 푸코의 [장미의 이름] 이라뇨, 이런건 좀 너무하잖아욧!!!!!!!!! 잠깐 헷갈렸잖아, 아, 움베르토 푸코였나;; 하고!! 이러지마욧!!




역시, 아직까지는 포르투갈이 짱이구나. 장기체류는 포르투갈로. 그런데 직장은 언제 그만두나. 그만두면 뭐해먹고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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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012-09-0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직장... 직장...

다락방 2012-09-04 13:01   좋아요 0 | URL
하아- 뭐 다른거 할 줄 아는게 있으면 당장이라도 때려칠텐데요..orz

하루 2012-09-04 13:31   좋아요 0 | URL
그것이 우리의 문제이자 번뇌!

다락방 2012-09-04 13:37   좋아요 0 | URL
그러다보니 여기까지(이 직장 십년차!) 왔네요. 하아-

아무개 2012-09-0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일상이 지리멸렬해지면 결국 떠오르는건 여행뿐인듯.

전 아마 9월 중순쯤에 5일정도 휴가를 신청할듯 해요.
딱히 어디로 가거나 뭘 하겠다는 계획은 없지만
쓰라고 하는 휴가니까 뭐....


다락방 2012-09-04 15:09   좋아요 0 | URL
오, 어디로 가셨을지는 정하셨어요?
맛있는거 많이 드시고 오세요.
휴가가 아직 남아있다니..삶에 위안이 되겠네요. 흑흑 ㅠㅠ (부럽..)

2012-09-04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5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2-09-04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년전에 한 후배가 누나는 삶의 목표가 뭐예요? 라고 물었을 때 상당히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_-; 그 후배의 목표란 앞으로 몇 년 후에는 결혼을 하고 (심지어 결혼할 여자에게서 혼수로 뭘 받고 등등;) 몇 년 후에는 돈을 얼마를 벌고 몇 년 후에는 차를 뭘로 바꾸고 하는 거였는데 나는 당장 내일 내가 뭘 할지도 모르는데 목표는 무슨. 이라 그랬지요. 사실, 저는 하루하루 행복하게 맥주 한 잔 하면서, 그리고 조카 크는 거 보면서 살고픈 거 외엔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지라 -_-;;;;;;;;;;;;;;;;


다락방 2012-09-05 12:48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면 저 역시도 목표라는게 구체적으로 정해져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막연히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 몇 가지를 가지고 있을 뿐.
저 역시도 하루하루를 그저 책읽고 술 마시고 조카를 사랑하면서 지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인데, 요즘엔 지겹고 지긋지긋하네요, 이 직장생활이. 뭔가 다른 할수있는게 있다면 사표 던지고 뛰쳐나가서 푹 쉬고 싶어요.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한게 아닌가 싶어요.

Jeanne_Hebuterne 2012-09-04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것을.
그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많은 것을.
영광과 좌절. 성공과 실패. 빛과 그림자.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겪어보고 싶다고 어릴적부터 생각했어요.
이루고 있어요.

다락방 2012-09-05 12:49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쟌님. 겪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이루고 있다니요.

dreamout 2012-09-04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 우리의 문제이자 번뇌 2. 저는 철학책에 자꾸 손이 가요.

다락방 2012-09-05 12:50   좋아요 0 | URL
드림아웃님, 철학책 읽으면 어때요? 좀 나아져요? 여행책보다 더 나은 탈출구가 되나요?

dreamout 2012-09-05 20:43   좋아요 0 | URL
여행책은 이미지를, 철학책은 개념을 남기고..
그 개념이 세상살기를 더 잘하게 하진 못하더라도, 누구에게라도 별로 주눅들지 않고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하는 힘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확실치는 않아요. ㅎㅎㅎ

댈러웨이 2012-09-0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응? 숀 누구?... 했어요. 그러니까 다락방님은 레슬링도 좋아하는 여자사람이군요!
아, 저 도발적인 제목을 어쩔까요.
주 5일 근무제가 정착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는 일년 중 4주 유급 휴가 권리를... 아... 한국경제 마비되겠지요... --;

움베르트 푸코, 대박이에요! ㅎㅎ

다락방 2012-09-05 12:50   좋아요 0 | URL
숀 마이클스가 은퇴한 뒤로 제가 레슬링에 관심을 끊었지만 -0-
저는 사실 레슬링을 방송해주는 매주 월요일이면 약속도 안잡고 칼퇴해서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 여자사람이었던 겁니다. ㅎㅎㅎㅎㅎ


소리내서 읽다가 글쎄 저도 그만, 으응, 푸코, 이럴뻔 했다니까요. 버럭!

프레이야 2012-09-0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때려치우고 세계여행 장기로 가는 사람들 대단하다 싶어요. 매여있는 것들이 어디 한두가지인가요. 아ᆢ 떠나고싶어라. 움베르트 푸코, 어쩔ㅎㅎ

다락방 2012-09-05 12:51   좋아요 0 | URL
선택이겠죠, 프레이야님. 매어있는 것들을 선택하고 머무르느냐, 끊어내고 떠나느냐. 어느쪽에 더 애착이 있는지 자신이 선택하는 거겠죠. 저는 사실 여행을 선택하게 되지는 않아요. 제가 지금 가장 선택하고 싶은건 직장 때려치우기 입니다. 후아-

가연 2012-09-07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숀 마이클스팬이시군요. 저는 처음 레슬링 보게 된 까닭이 더 락, 이랑 골드버그 때문이었는데.. 더 락은 정말 이빨을 잘 까서[..] 재미있었고.. 골드버그는 맨날 이기는 기믹이 좋아서 계속 찾아봤는데, 계속 이기니까 또 별로더군요, 풋.

다락방 2012-09-10 11:06   좋아요 0 | URL
저는 숀 마이클스랑 존 시나 좋아했는데요, 존 시나는 후까시가 너무 강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 바티스타도 잠깐 좋아하긴 했었어요. 그런데 그는 덩치만 컸지 기술적으로는 전무한 선수인 것 같더라고요. 레이 미스테리오는 기술이 대박인데 신체적으로 매력적이질 않고. 이 모든걸 다 만족시키는 사람은 숀 마이클스 뿐이네요. 히히. 짱이에요, 숀 마이클스!! 그렇지만 은퇴....하아- 가슴이 아프네요. 왜 사람은 늙는걸까요..

WWE 는 그 레슬링의 스토리를 만드는 작가들이 수십명이라더군요!
 
[100자평] 레가토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거나 혹은 헤어지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로 보자면, 어떤 한 사람을 잊기 위해서는 약간의 죄책감이 필요했고 또 다른 한 사람을 잊기 위해서는 눈물과 비참함과 내팽개쳐진 자존심과 슬픔과 절망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 사람을 잊기 위해서 이만큼은 꼭 필요했던 사항, 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들면서 그 모든 과정들을 거쳐내야만 이 사람과 제대로 헤어질 수 있는거구나, 했던거다. 만나거나 사랑하는 일도 마찬가지.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단지 여분의 시간중 얼마를 내어주면 충분했지만,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초조함과 설레임과 오랜 기다림과 교통비와 속옷을 사는 비용등이 필요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나의 '운명의 상대' 라는 것에는 글쎄, 확신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사람에겐 각자 저마다의 '운명의 흐름'같은것은 있지 않나 싶다. 너는 나의 운명이야, 라는것 보다는 내 운명의 선이 쭈욱 길게 뻗어 있다고 봤을 때, 이 시점에서 이 사람을 만나고 또 이 시점에서 이 사람과 헤어지는 것들이 그 선 상에 놓여져 있지 않는가 하는거다. 내가 스물다섯 살에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 일이, 서른한 살에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 일이, 다 그 흐름안에 있던게 아닐까. 내게 그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그러니까 내가 반드시 겪어내야만 할 일이 아닌가.

















이 책속의 인하와 정연과 하연을 보면서 운명의 흐름을 생각했다. 하연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폭력과 강간이, 그리고 내내 정연을 가슴속에 품을 수 밖에 없었던 인하의 죄책감과 비열함이, 학업을 포기하고 권력과 폭력앞에 무력하게 무릎 꿇어야 했던 정연의 젊은 날들이, 그들을 서로 연결하기 위한 운명의 선에 놓인게 아니었을까. 정연의 운명의 흐름, 그 스무살에 인하가 있고 스물한 살에 하연이 있고, 하연의 서른 살에 인하가 있고, 인하의 이십대에 정연이 있고 오십대에 하연이 있고, 그 사이의 공백들에 다른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과 감정들이 있고. 겪지 않았어야 할 일들을 겪어야 비로소 그들의 운명의 흐름이 어느 시점에서 하나로 모여 만나게 되고. 



권여선의 책을 처음 읽는것도 아닌데, 권여선의 글이 원래 이렇게 맛깔스러웠던가 싶었다. 술에 취한 새벽에 일어나보니 하늘같은 선배 인하가 체해서 끙끙 앓고 있다. 정연은 급한 마음에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나도 잘 체하는디 혼자도 잘 따요. 한나도 안 아파요. 체해서 아픈 데 비할까이. 급체를 냅두면 나중엔 숨도 못 쉬고 똑 죽는 수가 있답뎌. 아무튼 나가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만 알아두시요. 어젯밤엔 나가 쪼까 취해서 선배들한테 한바탕 패악을 떤 거 같은디. 살다보면 내남적없이 한분씩은 실수도 함서 한분씩은 도와도 감서 살게 마련인께 너무 탄허진 마시요. 나가요, 지금 본께 어저께 뭣이 그리 무서버서 그 고약을 떨었는가 모르겄소. 짭새가 나 잡겠다고 달겨든 것도 아니고 우쩌다 눈만 한분 딱 마주친 거뿐인디 워째 그리 등짝이 써늘하고 사지으 심이 실실 풀려부렸으까요 잉? 고건 고렇고, 우리 사람 몸땡이는 우선적으로다가 피가 사방으로 잘 통허게끔 혀줘야 무탈헌 거인디, 고것을 밤새도록 콱 막아놨은께 오죽 답답코 아펐을 것이요잉 ‥‥‥" (p.71)



체하고 아프고 무서웠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숨이 막힐듯 답답하고 아픈 와중에 저런 사투리로 내 손을 잡고 바늘을 찔러주는 그 상황에서, 그라고 애틋한 마음이 왜 생기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그의 자존심과 젊은 혈기는 그 밤을 평생 치욕스러운 밤으로 만들고 만걸까.




양고기를 건져먹은 재현의 이마에 땀이 뱄다. 진태가 혀를 찼다.

"너 매운 거 잘 못 먹냐? 그럴 줄 알았다. 욕망이 죽어버리면 그런 거야. 매운 것도 못 처먹어." (p.186)



내가 어릴적에 우리 아빠는 아주 자주 고추장에 밥을 비벼 드셨다. 나물이나 다른 넣을것이 없어도 그냥 고추장 하나만 넣어 비벼드시곤 했다. 그때마다 나도 따라서 비벼 먹었는데, 우리 식구들 중에서는 아빠와 나만 매운것을 잘 먹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언제부터인가, 고추장에 밥 비벼 드시는 일이 드물어지더니 언젠가는 신라면이 너무 맵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젠 매운 음식 먹기를 꺼려하신다. 나 역시도 예전처럼 매운걸 잘 먹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내심 '나이 들면 매운걸 잘 못먹게 되는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욕망이 죽어버리면 매운 것도 못 먹는다니, 아, 정말 그런건가 싶었다. 욕망이 죽어버린다는 건, 내가 늙어버린다는 걸까. 예전처럼은 아니어도 나는 곧잘 매운걸 먹고 싶어져서 친구와 며칠전에도 매운갈비찜을 먹으러 갔다. 물론 먹다가 감자전을 찢어 먹고 계란찜을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했지만. 욕망이 죽어버리면 매운 것도 못 처먹는다는게, 삶의 진리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 그런것 같다. 욕망과 매운것은 맞닿아 있는것 같다. 나는 여전히 생마늘을 먹는다. 그 알싸한 매운맛의 매력을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다. 가끔 너무 매운게 걸려서 고통스러워도 다음에 어김없이 또 먹곤 한다. 내 욕망은 조금 사그라들었을지언정, 죽지를 않는가보다.




나가 와 이런댜. 뭣 땀시 이런댜. 기왕지사 엎지르진 물에 깨박난 물동인디 나가 이럭해서 뭔 영화를 보겄다고 이런당가. 나부텀도 시집가기 전에 아부텀 배놓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제. 처니가 아를 밴 그 심정을 나가 어찌 못 세아리고 이러는가 말이시. 유보살은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가슴을 쓸고 염불을 외우고 딸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에 눈물로 뺨을 흥건히 적시곤 했지만 아침녘에 곁채에서, 때로는 보고파지겠지 둥근 달을 쳐다보면은, 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걸 듣거나, 누렇게 뜨고 부석하게 부은 딸의 얼굴과 봉긋한 배를 힐긋 보는 것만으로도 십년 수도가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시상에 저런 고집퉁머리 신 년이 다 있어야? 그 잘난 공부는 해서 남 줬는가? 남 부끄런 건 하낙도 모르고 항차 그 꼴을 하고 왔으면 에미한테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고 이약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베, 이약이? 그 비루먹을 냉정한 사램이 당최 워떤 놈이냔 말여?" (pp.244-245)



지하철안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공부하겠다고 한 딸, 서울로 보내놨더니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애를 배가지고 돌아왔다. 게다가 아비 없는 아이를. 그런 딸을 보며 사정을 차마 묻지도 못하고 야속해하는 엄마의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게 느껴져서..휴..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읽었을 때, '앤드루 윌슨'의 『거짓말하는 혀』를 읽었을 때, 뒤에 몇 장 남지 않은 책장을 보고 초조해했었다. 아, 대체 어떻게 끝나려고 이렇게 조금 밖에 안남은거야. 고작 몇 장 되지도 않는 이 안에 어떻게 이야기를 정리하려는거야, 하고. 결말이 어떻게 나려고 고작 이만큼만 남은거야. 그 초조함을 어제 늦은 밤, 권여선의 『레가토』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느꼈다. 새벽 세시가 그랬고 거짓말하는 혀가 그랬듯이, 그 결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다소 영화같은 결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러나 분명히 만족했다.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기도 하니까. 식상한 표현이지만, 행복해지기를 바랄게. 흑흑.





어제는 비도 오고 날도 좀 쌀쌀해서(여름아, 어디갔었니?) 퇴근후에 동료와 함께 순대국에 소주를 마시기 위해 순대국집엘 갔다. 그런데 비가 오면 다들 순대국에 소주가 생각나는걸까. 사람이 바글바글한거다. 우리까지 앉고 나니 빈 테이블이 없는거다.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순대국에 소주는 정말 맛있었다. 




아, 권여선의 『레가토』는 소주와 맥주와 치킨과 순대국과 막걸리와 무척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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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2-09-01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맵고 개운한 거 먹고 싶어요.

다락방 2012-09-03 12:31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 엄청 매운걸 먹고 싶어요, 드림아웃님. 점심 메뉴는 낙지덮밥으로 할겁니다. 흣.

람혼 2012-09-0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명 그 자체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기이하게도, 정말 운명의 '흐름' 같은 건 있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 2012-09-03 12:33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요, 람혼님. 왜이렇게 오랜만에 오신거에요! 3~4주 전이었나, 경향신문에서 람혼님이 등장한 한 페이지를 보고 여동생에게 들이밀며, 나랑 아는 사이야, 하고 한껏 으쓱거린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ㅎㅎ

네, 운명의 흐름 같은게 정말 있는 것 같아요, 람혼님. 람혼님이 9월 1일에 여기 오셔서 댓글을 달아주시고, 또 제가 반가워하는 그 모든것들이 그 흐름선상에 놓여 있는 거겠죠.
:)

단발머리 2012-09-02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소주와 맥주와 치킨과 순대국과 막걸리와 무척 잘 어울리는 소설 이야기 잘 듣고 갑니다. 전 너무 구수한 사투리가 나오는 소설은 이해가 잘 안 되서, 아예 소리내서 읽거든요. <레가토>도 웬지 그렇게 읽어야할 것 같아요.ㅋㅎㅎ

다락방 2012-09-03 12:33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저도 사투리는 소리내어 읽기도 해요. 이 소설 속에서의 사투리는 계속 나오는게 아니라 어쩌다가 툭툭 튀어나와서, 사투리 안에 가장 진실한 감정이 내포되어 있는것 같아요. 그래서 사투리 부분마다 웃게됐다가 눈물이 찔끔났다가 했던 것 같아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단발머리님!!

moonnight 2012-09-04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저도 꼭 읽어볼래요. 다락방님의 권유대로 소주맥주순대국막걸리 펼쳐놓고서요. ^^

다락방 2012-09-07 11:09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은 손수건 들고 눈물을 닦게 될지도 몰라요. 흑흑.

얼음장수 2012-09-1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첫사랑과 헤어진 후,
매운 음식을 못 먹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심리적인 거라 생각했는데, 몸에서 통 받아주질 못하네요.
사랑을 잃은 것보다 매운 맛의 쾌감을 잃은 게, 더 슬프요. 지금은.

ㅎㅎ <레가토>, 역시 좋은가 보네요.

다락방 2012-09-14 11:02   좋아요 0 | URL
하아- 얼음장수님, 이 댓글 너무 슬퍼요.
첫사랑과 헤어진 후 매운 음식을 못 먹게 되었다는 것도, 이제는 매운 맛의 쾌감을 잃은 게 더 슬프다는 것도,
너무 슬프네요.....뭔가 매운 걸 사드리고 싶은 욕망이....( ")


레가토는 좋습니다, 얼음장수님.
 
레가토 - 2012년 제4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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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자리에서 울다가 돌고돌아 결국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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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신을 만나기 위해 혹은 헤어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
    from 마지막 키스 2012-08-31 11:39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거나 혹은 헤어지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로 보자면, 어떤 한 사람을 잊기 위해서는 약간의 죄책감이 필요했고 또 다른 한 사람을 잊기 위해서는 눈물과 비참함과 내팽개쳐진 자존심과 슬픔과 절망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 사람을 잊기 위해서 이만큼은 꼭 필요했던 사항, 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들면서 그 모든 과정들을 거쳐내야만 이 사람과 제대로 헤어질 수 있는거구나, 했던거다. 만나거나
 
 
... 2012-08-31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왜 이리.책을 많이.읽으시는 건가요? 저랑 완전 비교되요 ㅜㅜ

다락방 2012-08-31 11:5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최근 한 열흘동안 탄력붙었어요. ㅎㅎ
그리고 읽다보니까 속도가 저절로 빨라져요!!
 

8월 21일부터 8월 28일까지 나는 이런 책들을 읽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읽다가 중단했다.












위의 모든 책들은 각자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건 어떤 독자들에게는 제대로 먹혀들어갔을 것이고. 그러나 나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이 모든 책들이 저마다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거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내게 의미를 주지는 못했다. 이 책들은 내게 조금 혹은 많이 부족함을 안겨줬다. 『건투를 빈다』와 마찬가지 이유로『삶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를 몇 장 읽고 더이상 읽어낼 수가 없었는데, 나는 책 속에서 '내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배우기를 원하지 누군가 내게 '이렇게 하는것이 좋은것이다' 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삶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의 경우 저자는 자신의 말에 자신이 색깔을 입혀놨더라. 자기가 한 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주장하는 바를 자신이 강조한 것이다. 색깔 입혀진 글씨를 보는 순간 책장을 덮어버렸다. 그래도 산 지 얼마 안되는 새 책인데, 꾹 참고 읽을까 하다가 아니야 그 시간에 다른 책을 읽자 싶어서 고개를 젓고는 두 권 다 중고샵에 팔아버렸다.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의 경우 열 장쯤 읽었는데 책장이 안넘어간다. 빌 브라이슨의 다른 책들을 두 권 읽었는데 무척 재미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책도 재미있을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잘 안넘어간다. 그래서 이것도 같이 중고샵에 팔아버릴까 하고 고민하다가 아니야, 빌 브라이슨이잖아, 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거야,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다시 읽어보자, 하고 여전히 책장에 꽂아두었다. 그리고 친구가 호주에 머무르고 있는데, 앞으로 친구가 얼마간 살게 될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얘는 보류다.




책들을 이렇게 여러권 읽었지만 나는 몹시 갈증이났다. 채워지지 않는 듯한 기분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욕구 불만에 쌓이는 것 같았다. 다들 왜이래, 싶은 심정이랄까. 이건 쉽게 단정짓자면 '취향의 문제' 이기는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책이 될 수도 있는 책들이 내게는 갈증만 주는 책이 되기도 하는 이런건. 신경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뭔가 제대로 된, 꼭꼭 씹어먹을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나는 『에피 브리스트』를 꺼내 읽었다. 그리고 그건, 제대로된 선택이었다.

















이 책의 절반쯤을 읽었을 때, 아, 책 선택 정말 적절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갈증이 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그래, 나는 이런 책을 원했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바로 이런게 내가 원하던 거야, 하고. 방 안 구석에 콕 처박혀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채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마구 훌륭하다고 감탄하는 지경까지 간 건 아니지만, 정말이지 이 정도로 나는 충분했던거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어 참지 못하고 리뷰를 썼는데, 리뷰를 다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다른 책 읽기를 포기하고 자꾸만 이 책에 대해 생각했다. 에피 브리스트가 한 잘못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만한 짓이었나? 19세기에는 정말 그랬던가? 나였다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나는 자신이 없는데, 만약 내가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외국으로 도망가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 19세기에는 혼자 외국으로 도망간다는 건 굉장히 벅찬 일일까? 하긴.. 경제적 능력이 전무하니 도망갈 돈도 없었겠지. 에피 브리스트의 부모가 에피를 받아주지 않은게..부모의 잘못일까? 부모도 부모의 삶을 살아야하잖아? 언제까지고 자식 뒷바라지를 해줄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니까 왜 열일곱 살에 결혼을 시키냐고. 명예와 안락함을 선택하고 또 그 남자를 신랑으로 받아들인건 에피 본인이잖아? 그러니 책임도 에피의 것 아니야?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모든걸 다 받아들인다는 것도 너무 가혹하지 않나? 만약 에피가 결혼한 여자가 아니었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됐다면? 꿋꿋이 싱글이었다면? 그러면 그녀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한들 그게 죽을죄였을까? 그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진 않았겠지? 역시 결혼이란게 문제인건가?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이란 이런게 아닐까, 하는. 그러니까 자꾸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것, 자꾸자꾸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게 하는 것. 말을 하고 하고 또 해도 또 할 말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책. 그런게 바로 좋은 책이 아닐까. 책장을 덮고 나면 다 읽었다, 하고 끝나버리는 게 아니라, 책장을 덮고서도 한참을 미간을 찌푸린채로 생각하게 하는 책, 누군가와 자꾸 얘기하고 싶어지는 책. 바로 이런게 좋은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누군가에게 좋은 책은 재미를 주는 책일 수 있다. 물론 나도 재미를 주는 책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책은 교훈을 주고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책일 수 있다. 또 어떤이들에게 좋은 책은 정보를 주는 책일 수 있고, 지식을 주는 책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좋은 책은 이런책이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그 책이 확 끊어지지 않는 책. 책장을 덮었다고 해서 그게 끝이 아닌 책. 내게는 그런 책이 좋은 책이다. 나라면, 하고 끊임없이 돌아보게 만드는 책, 내게는 그런 책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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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8-3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하는 책도 제게 와닿지 않거나 오래 머물지 못하는 책은 그냥 그저 그런 인연이
되고 마는 것 같아요. 나라면,하고 끊임없이 돌아보게 만드는 책, 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여긴 밤새 비가 내렸어요. 습기 머금은 아침공기 마시며 하루 시작합니다^^
다락방님 어제 마신 낮술은 다 깨신거죠?? ^^ 그까잇거.ㅎㅎ

다락방 2012-08-30 17:0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여기는 오늘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있어요. 빗발은 아까보다 약해지긴 했지만 정말 '하루종일' 비네요.

어제 마신 낮술 따위, 저녁 무렵엔 새로운 술을 생각했는걸요. ㅎㅎㅎㅎㅎ
프레이야님도 이 책, 『에피 브리스트』좋아하실 것 같아요. 제 생각엔 그래요. 흣.

2012-08-30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1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1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1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2-08-30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 브리스트>, 완전 끌리는데요. 책장을 덮었다고 해서 그게 끝이 아닌 책이라, 완전 읽고 싶어요. 그리곤 생각하는 시간, 너무 기대돼요.

물론~~~ 저는 <건투를 빈다>를 아주 재미있게, 은혜롭게, 감탄하며 읽었지만요. 저는 '세상은 다 이렇다, 너무 모나지 않게 대충 이러저러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틈바구니에서 '네 맘대로 해라'라고 말해주는 김어준 총수를 사랑하지만서도요. 맞아요. 사람들은 좋아하는 게 다 다른가봐요.

아, 비가 오네요.. .... 비가 와요. 커피에 스콘 하나, 아~~~~~

다락방 2012-08-31 12:52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은 에피 브리스트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게 될까요? 또 근사한 페이퍼 하나가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봅니다. ㅎㅎ

비가 온다고 말한게 바로 어젠데 오늘은 햇볕이 뜨겁습니다, 단발머리님. 태풍이 언제적 얘기냐 싶게 날이 화창하네요. 좀 당황스러울 정도에요. 게다가 제가 이 댓글을 쓰는 지금은 꺅 >.< 금요일입니다!! ㅎㅎ

전 좀전에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왔어요. 졸립네요. 그래서 커피를 한 사발 내려 마셔야겠습니다. 훗

M의서재 2012-08-3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에피 브리스트>가 읽고 싶어지네요. 다락방님의 좋은 책의 정의가 완전 공감되요. 나라면, 하고 돌아보게 하는 책이라~ 맞아요. 그런 책은 정말 좋죠. 그런 시간도 정말 좋구요. 풍요로운 것 같기도 하고, 배부른 것 같기 도 하구요. ^^ 저야 물론 <건투를 빈다>도 좋았지만요^^;;

참, 저도 색깔 입혀진 글씨를 보면 책을 덮어요. 잘 못 보겠더라구요. 외우라는것 같아서요 ㅎㅎ

다락방 2012-08-31 12:54   좋아요 0 | URL
네, 불량주부님. 책 한권을 읽고 거기에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생각 저 생각 해본다는게 저로서는 정말 즐겁고 행복하답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겠지, 하면서 뿌듯하고 으쓱해지기도 해요.

저는 어떻게 자기가 쓴 글에 색깔을 입힐 수 있는지 좀 당황스럽더라구요. 뭐랄까, 이것이 정석이다, 하고 가르침을 주려는 것 같은데 그게 좀 지나쳐서 자만에 가까운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솔직히 받았어요. 저 역시 고집이 센 인간인지라 그럴땐 욱, 하고 반항심이 생겨버려야. 자기가 쓴 에세이에 자기가 색깔을 입히다니..물론 그건 글 쓰는 이의 자유지만 전 딱 보기 싫어지네요. ㅎㅎ

기억의집 2012-08-30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궁합이 있는 것 같아요. 큭큭.

건투를 빈다, 저도 읽었는데, 거기서 김어준의 결혼 일화가 재밌었어요. 김어준 부모님들도 꽤나 비관습적인 분이시더라구요^^ 그것 밖에 기억이 안 나요.

전 요즘 책만 읽고 리뷰도 페이퍼도 안 써요. 안 써 버릇하니 또 안 써지게 되네요. 여기 알라딘 들어오기도 힘들어서~

다락방 2012-08-31 12:55   좋아요 0 | URL
네, 기억의집님. 책도 궁합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러니 남들 다 좋다는 책이 안 좋기도 하고 남들 다 안좋다는 책에 별 다섯 주고 호들갑 떨기도 하고 그러는거겠지요. 그건 타이밍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요. 언제 읽느냐에 따라서 얻을 수 있는게 다른것 같거든요. 그래서 좋아지기도 하고 또 별로 좋지 않기도 하고요.

건투를 빈다, 는 닥치고 정치 때문에 꽤 기대하고 산건데 아, 이런 식의 이야기-사는 방법을 알려주는-는 제가 딱 질색이라서 읽을 수가 없더라구요.

blanca 2012-08-30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도 <에피 브리스트> 너무 너무 좋았어요. 정말 놀라운 책이라고 생각했고요. 다 읽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다락방 2012-08-31 12:57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저도 오랜만에 제가 생각하는 좋은 책을 만나서 무척 반가웠지 뭡니까! 전 진짜 이런 책을 원했다구요!! 물론 제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책들(이를테면 안나 카레니나)에 비하면 좀 덜 좋긴 하지만, 그래도 반가웠어요. 맞어, 이런게 바로 책이라구!! 하면서요. 좋은 책을 만나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 블랑카님.


아, 물론 에피 브리스트는 블랑카님의 리뷰 덕에 만나게 된 책입니다.

치니 2012-08-3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김어준의 저 책은 증말 재미없고, 김어준이 평소에 가장 싫어하는 꼰대 타입으로 써서 본인도 후회할 것만 같다능.
저도 꼭꼭 씹어먹고 싶은 책을 찾고 있어요. 근데 왠지 에피 브리스트는 안 땡김. 다락방 님은 제 취향을 아시니...제가 읽어도 좋아할까요?

다락방 2012-08-31 12:59   좋아요 0 | URL
전 건투를 빈다 몇 장 넘기면서 아..이런 책을 내가 돈 주고 사다니.. 하고 당황스러웠어요. 좀 들춰보고 살 걸..이런건줄 몰랐어..하면서요.

음, 치니님. 제가 생각하기에는 치니님께는 에피 브리스트보다는 앙드레 드 리쇼의 [고통] 쪽이 더 씹어먹기 좋지 않으실까 생각이 드네요. 음...네, 그쪽을 치니님이 더 좋아하실 것 같아요. 분량도 많지 않으니 [고통]에 도전해보심은 어떨까요, 치니님?

치니 2012-08-31 21:47   좋아요 0 | URL
오홍, 고통! 넵, 알겠습니다.

2012-08-30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1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2-08-31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재미있는 책이 좋은 책 같더군요.어려운 책은 보다 쿨쿨 잠이 들어서.... ㅜ.ㅜ

다락방 2012-09-03 12:34   좋아요 0 | URL
저도 재미있는 책을 좋아해요. 일단 재미있어야 끝까지 읽을 수 있잖아요. ㅎㅎ
 
에피 브리스트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8
테오도어 폰타네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요즘 계속 재미없는 책만 읽다가 이 책을 읽으니 가뭄에 단비를 만난것 같았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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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012-08-2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전 대산문학총서로 읽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락방 2012-08-30 09:42   좋아요 0 | URL
전 대산문학총서로 있다는 건 하루님 댓글덕에 알았네요. ㅎㅎ 전 에피 브리스트는 이 책 밖에 없는줄 알았지 뭡니까!

테레사 2012-08-3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다락방님, 저도 이 책 참 좋았어요. 표지의 순백의 여인 사진도 좋고,,,내용은 슬프지만서도....^^;

다락방 2012-08-30 13:33   좋아요 0 | URL
표지 엄청 예쁘죠? 전 저 표지에 반했어요. 저도 저런 몸이었으면(응?) 좋겠다는 생각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