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사랑한 그림 - 현대미술가들이 꼽은 영감의 원천 152점
사이먼 그랜트 엮음, 유정란 옮김 / 시그마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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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대미술가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작품과 예술가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속의 현대미술가들이 '그림'에 꽂혀 그들의 감상을 풀어냈듯이 글을 쓰는 작가들은 누군가의 글을 읽고 자신만의 감상으로 자신만의 감동에 이르기도 할 것이다. 비단 예술가들만 그런건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평범한 사람도, 예술이란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 않음에도 하나의 그림에, 음악에, 글에 깊은 감동을 받아 아, 나도 이렇게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품을수도 있고 앞으로 내 삶에 자꾸만 그것들이 파고들어 말과 태도와 행동과 사고방식 전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감상은 오롯이 '나만의 것' 이다. 하나의 작품이 평론가들로부터 어떻게 평하여진들, 내가 보고 내가 느끼는 것, 그것이 내게로 오고 내게로 스며든다. 그러니 그것이 세상으로부터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것이든 혹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든, 내게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나로 말하자면,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에서 여자주인공이 보았던 그림 '에밀프리앙'의 「고통」이 꽤 인상깊었고, 줌파 라히리나 코맥 매카시의 글들을 만났을 때는 위에 빨간 줄을 그은것처럼 '순수한 기쁨과 흥분'을 느꼈다. 그 우아함과 세심함에 넋이나가 이렇게 되고 싶지만 결코 내가 이를 수 없는 곳에 그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문학을 읽는데 그들은 항상 기준이 되곤했다. 그 기준은 누가 만들어준게 아니라, 역시 내가 만들어놓은 기준이었다. 아무도 이렇게는 할 수 없고, 나는 이렇게 되고 싶다, 하는.



각설하고, 나는 이제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며 현대미술가들이 누구의 어떤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었는지를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당황스럽다. '토마 압츠' 와 '에이야 리사 아틸라'가 영향을 받았다는 '이토 자쿠추'의 병풍 그림과 '피카소'의 추상화는, 하아- 내가 이해하기도 감상하기도 멀게만 느껴지는 곳에 있다.







나는 이 작품들에서 무엇을 느껴야할지, 대체 뭘 느꼈다는건지 책의 본문을 읽으면서도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 그러니 감상과 감동은 오로지 자기몫이란 것이 자명한 사실 아닌가. 어느 한 순간 누군가의 삶의 방향을 바꿨을지도 모를 작품들을 보면서 아무런 느낌을 받지도 못한다는 것은, 답답하면서도 동시에 짜릿함을 가지고 온다. 모두에게 같은 작품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세상이라니, 이 얼마나 재미있고 개성이 넘친단 말인가. 나는 뚫어지게 쳐다봐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작품들이라니.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현대의 작가들이 자신이 영향을 받았다는 작품들로부터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냈느냐에 있을 것이다. 내게 가장 인상깊은 미술가는 '그레고리 크루드슨' 이었다. 그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데, 그런 그가 만들어낸 작품이 정말이지 인상적이고 아름답다.




위가 에드워드 호퍼의 [오전11시], 아래는 그레고리 크루드슨의 [무제]. 아, 밑의 작품이 너무 좋다. 쓸쓸하고 처연하고 홀로 앉아있는 게 두렵기까지 하다는 느낌을 준다. 호퍼의 그림이 쓸쓸함과 외로움을 전해준다면 그레고리 크루드슨은 거기에 두려움을 더한듯하다. 이 그림이 무척 인상적이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위는 '조르주 쇠라'의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 아래는 '빌헬름 사스날'의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 빌헬름 사스날의 이 그림은 이 책의 표지로도 사용된 그림인데, 고백하자면, 나는 이 그림인 이 책의 표지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게는 그다지 아름답게도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인상적이지도 못해서 이 책에 대한 사전정보없이 이 책을 봤다면, 전혀 관심을 줄만하지 않은 그런 표지였다. 








위는 '김정희'의 [겨울 풍경], 아래는 '서도호'의 [서울집/로스앤젤레스 집/뉴욕 집/ 볼티모어 집/런던 집/시애틀 집/로스앤젤레스 집]. 


김정희는 몇 가닥 선으로 집을 그려 고독과 적막을 표현했다. 그런 점이 내 가슴을 언제나 울린다. 집은 복잡한 공간이 아니다. 지극히 단순하면서 절제된 공간인 것이다. (p.161)


작품만 놓고 보면 이 작품이 어떻게 저 작품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렇듯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 그 의문이 조금은 풀린다. 우리가 어느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했을 때, 그건 그 작품의 전체가 주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어떤 특징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 특징 역시, 내가 찾아내고 내가 잡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져가는 것.








위는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아래는 '에드 루샤'의 [불타는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이 작품이야말로 가장 의아했다. 아니, 저 오필리아에서 어떻게 이런 작품이 나오지? 저 초록빛, 저 빛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걸까? 설명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멘붕에 휩싸였을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역시 예술가, 내가 보는것과는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오필리아의 몸이 물에 대각선으로 떠 있는 구도를 작업에 차용하기도 했다. 사실 이 구도는 내가 미술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구도, 즉 탁자의 윗면을 보듯이 사물을 바라보라는 관점과 연관을 맺는다. 나는 <오필리아>에서 직잡적인 영향을 받아 몇몇 그림이나 사진을(예를 들어 1967년 사진인 <34개의 주차장>) 만들기도 했다. 예컨대 나는 <불타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을 그리면서 <오필리아>에서처럼 위에서 건물을 내려다보는 각도를 사용했다. (pp.140-141)



오필리아로부터 비롯된 미술관이라니, 예술엔 한계란 없는게 아닌가!



<오필리아>를 보면 여러 면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런던을 갈 때마다 이 그림을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 그런 생각이 들면 기분이 좋다. (p.141)



나는 가끔 줌파 라히리의 글을 생각한다. 「지옥 천국」을 아주 많이 생각하고 때때로는 「섹시」를 생각한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떠올리고 다니엘 글라타우어 생각을 하기도 한다. 「컷글라스 보울」생각도 많이 하고, 이런 작품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이런 작품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 책을 읽다 알게 된 뜻밖의 사실. 우리가 알고있는 위대한 문인들이 위대한 화가이기도 했다는 것.





위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병든 장미], 아래는, 오, 믿을 수 없게도,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다. 빅토르 위고의 [머릿글자가 V. H. 인 문어]. 블레이크의 작품은, 마치 그의 시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그림이다. 처음 목차에서 '빅토르 위고'를 보았을 때, 아, 이 위고가 내가 아는 그 위고가 맞단 말인가, 하고 헐레벌떡 찾아 읽었다. 



빅토르 위고가 없는 19세기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만큼 위고는 당시 문학계에서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의 꼽추』를 읽었지만 지금은 위고의 문학보다는 그의 그림이 더 친숙하다. 위고가 그린 스케치와 수채화를 1998년 뉴욕 드로잉 센터(Drawing Center)에서 처음 접한 이래로 그의 다른 그림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p.134)



나로서는 위고의 그림을 보는 것 보다는 그의 책을 읽는 쪽을 택할것이고, 확실히 저 그림보다는 그의 소설들이 내게 더 강한 감동을 주었지만(솔직히 저 그림은 내게 아무 느낌도 주지 않는다), 누구나 저마다의 감동받는 작품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다행스런 일로 여겨진다. 그 작품들은 단지 그 순간의 놀라움과 경탄을 자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살아가는 방향까지 제시하기도 한다.




우선 분명한 점은 미술가가 작품에서 느낌 감정은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p.8)



다시 말하지만, 비단 그림 뿐만이 아니다. 음악이, 그리고 글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나는 소설들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상황들을 접해보았고, 그렇게 감탄하다가, 세상을 내가 보아왔던 것과는 조금 더 넓게 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그것이 문학 작품이 내게 한 일이다. 나에게 문학작품이 방향을 제시해준다면, 미술가들에겐 그림이 그러했다. 재미있게도 어떤 미술가가 영향을 받은 그림의 작가가 내게는 글로 다가오기도 했다. 세상에 예술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건 바로 이때문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예술을, 감상하는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감동한다. 


천천히 두고볼 책이다. 틈나는대로 펼쳐 이 사람은 이 작품의 어디에서 그토록 감탄한 것일까, 하는 걸 읽어보는 재미도 있고 그와는 별개로 실린 작품들 중에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한껏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무엇보다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감동했던, 그러나 내가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작품들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새로운 재미다. 나는 언제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대로 감동할 줄 아는 사람들을 보는 게 퍽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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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민하고 지르기
    from 마지막 키스 2014-03-17 13:17 
    《화가가 사랑한 그림》이란 책에서 '빅토르 위고'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단 사실을 알게됐는데, 엊그제 신문에서 이 책의 출간소식을 접하고 오늘 목차를 훑으며 '빅토르 위고'를 찾았다. 그리고 역시나, 그가 거기에 있었다. 빅토르 위고 만으로도 나는 이 책을 관심책으로 리스트에 넣어뒀는데, 아하하하 존 업다이크와 존 버거, 잭 케루악, 커트 보네거트등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보인다. 작가들이 그린 그림이라니,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그림까지 잘 그리기도 했다
 
 
네꼬 2013-10-28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까지 사란 말입니까! (최근 그림 관련 책들을 쓸어 담았는데.. ㅠㅠ )
그나저나 저는 다락님이 떠올리는 문학 작품들도 모르는 처지라, 다락님도 위대한 예술가 같아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 논리가 이상한 것 같지만, 어쨌든 다락님이 대단해 보인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다락방 2013-10-28 18:13   좋아요 0 | URL
나는 그림을 전혀 모르는데 말이죠 네꼬님, 이런 책이 책장에 딱 꽂혀있으면 그냥 막 신나요. 내가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기분에 따라서 그날그날 꽂히는 그림이 다를거에요. 그쵸? 그림책을 책장에 꽂아두다보면 언젠가는 좋아하는 그림, 위로받는 그림이란 것도 생기겠죠?

저 역시 네꼬님이 엄청 읽는 어린이책에 대해 하나도 모르잖아요. 우리는 우리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만 아는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글 잘쓰는 네꼬님이야말로 더 대단!!

페이퍼 내놓으시오, 그도 아니면 리뷰라도!!

heima 2013-10-28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다락방님 :) 다락방님의 책(지름)권유는 정말 대단해요.
어제 올리브 키터리지를 다시 읽었는데, 여전히 찡-하더라고요. 읽으면서 다락방님을 잠시 떠올렸답니다.

다락방 2013-10-29 10:32   좋아요 0 | URL
저는 헤이마님 덕에 [다시, 그림이다]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그 책 엄청 좋아보여요. 희희.

올리브 키터리지도 줌파 라히리도, 가끔 꺼내서 아무데나 펼쳐서 다시 읽곤 해요. 좋죠.

자작나무 2013-10-29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 님의 포스팅은 미술책에서 절정을 이루는 것 같네요. 감탄.

다락방 2013-10-29 10:33   좋아요 0 | URL
아, 자작나무님. 저는 그림을 잘 볼 줄도 모르고 그림을 외우지도 못해서 미술책에 대한 포스팅은 정말이지 자신이 없고 써놓고도 메롱메롱인대 절정이라뇨 ㅠㅠ 오해십니다 ㅠㅠ

자작나무 2013-10-30 08:46   좋아요 0 | URL
락방 님. 미술감상책도 한번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 구입할 거예요.

다락방 2013-10-30 10:17   좋아요 0 | URL
무슨 그런 말씀을. 말도 안돼요 ㅠㅠ

dreamout 2013-10-29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빌헬름 사스날의 저 표지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었더랬죠. ^^

다락방 2013-10-30 10:19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저는 이렇게 좋은 그림들이 많은데 왜 이 그림으로 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저는 약간 으시시 하긴 하지만 그레고리 크루드슨의 저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호퍼의 영향을 받았다는 미술가요. 뭔가 환상적이기도 하고..:)
 

 

 

 

 

"계속 여기 있을 것 같아 다시 문을 열었네."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네루다는 마리오의 팔꿈치를 움켜쥐고 자전거를 대놓은 외등 쪽으로 단호하게 끌고 갔다.

"생각을 하려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다는 말인가? 시인이 되고 싶으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혹시 존 웨인처럼 걷는 것과 껌 씹는 걸 동시에는 못하는거야?" (p.29)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언덕이라 불러도 좋을 산이 있다. 그러니 등산이라기 보다는 산책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코스인데, 나는 주말이면 곧잘 그 산에 오르곤 한다. 산의 정상에 올라 '정상에 올랐다'고 하면, 그 때마다 식구들은 그게 무슨 산이냐며 퉁을 놓지만, 어쨌든 산에 오르락 내리락 산책을 하고나면 두 다리도 뻐근하니 운동을 한 기분이다. 식구들과 함께 산책을 할 때도 있지만 나는 혼자 다녀오는 걸 즐긴다. 걷다가 좋은 풍경이 보이면 멈춰 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걷기도 한다. 아주 많이, 산의 냄새를 맡기도 한다.

 

사실은 그 시간동안 생각하는 걸 즐긴다. 숙취를 해소하고 싶을 때도 산책을 택하지만 생각을 하고 싶을 때도 산책을 택한다. 집에서부터 출발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두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을 걸으면서, 그 시간동안은 충분히 머릿속으로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을 한다. 생각을, 상상을 머릿속에서 마음껏 펼쳐나간다.

 

오늘은 그 시간의 대부분을 현빈과 소울메이트라면 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보냈다. 그가 너무 잘나서(!) 내가 힘겹겠지, 우리는 그저 소울메이트로만 지내야지 결코 바디메이트가 될 수는 없을것이다, 바디메이트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의 질투와 시기로 내가 지쳐버릴 것이고 그에게 이별을 통보하겠지. 그러나 이별한다한들 그를 생각하는 시간들, 그와의 추억을 곱씹는 시간들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소울메이트로 그를 영원히 내 곁에 두고 싶지만. 현빈과 소울메이트가 된다면,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가 나의 소울메이트란 사실을 비밀에 부칠 수도 있다. 끝내주는 의리로 우리의 소울을 안전하게 지켜나갈 수 있단 말이다. 

 

 

그런 생각들을 거듭하다보니, 나는, 나란 사람은, 대상 보다는 그 대상을 생각하는 시간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고 웃고 술을 마시고 손을 잡고 안는 그 모든 행위들을 사랑하지만, 그 상대를 만나기 전에 그를 생각하는 시간, 그를 만나고 난 후에 그를 생각하는 그 시간들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혼자' 있으면서 한 대상에 대해, 그 대상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내게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된다는 것. 그래서 나는 산드라 브라운의 소설에서 이런 부분에 아주 크게 공감을 한 것이다.

 

 

 

 

"방해해서 미안해요. 외출 준비하고 있는 줄은 알아요. 이 파일이 그만큼 중요하지 않았더라면 금요일 밤에 당신을 귀찮게 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월요일에는 심각한 인터뷰가 두 개나 있고, 그 중 하나는 주제가 낙태 문제거든요. 당신도 그게 얼마나 논쟁거리인지 잘 알죠? 그래서 꼭 필요한 관련 자료를 담은 파일을 ‥‥‥."

"사랑해, 브린."

브린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심지어는 미소조차 짓지 못했다. 그가 자기 몸에서 흘러내린 물이 괴인 한가운데서 서 있는 모양이 우습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 담긴 진실함에 넋이 나가, 그저 멀거니 서서 듣기만 했다.

"외출 준비하고 있던 거 아냐. 집에서 혼자 조용히 당신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낼 참이었지. 매일 매 순간마다 그래 왔던 것처럼." (pp.115-116)

 

 

 

 

혼자 조용히 당신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낼 참, 이라는 그의 말이 백프로 이해가 됐다. 나 역시 가끔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상대를 생각해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혼자 있는 조용한 집에서라면 가만히 앉아 자, 이제 그를 생각해야지, 한 적 있었고,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서 혼자 남겨졌을 때 좀 있다 나가자 잠시만 그를 혼자서 가만히 생각하고, 한 적도 있었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 어디에서든 잘 적응하며 잘 지내고 살아남을 사람이지만 이렇게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외로움과 그리움에의 상태에서도 잘 견뎌낼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걸 좋아하는지, 어떻게 고통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할지, 어떻게 버텨내고 어떻게 견뎌내야 할 지를 점점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내 자신한테 아주 관심이 많고 내 자신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강하기 때문에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선물을 줄 수 있다. 나 때문에 염려하고 걱정하고 신경 쓰이게 하는 일들을 없도록,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들에게 돈을 주고 보석을 주고 고기를 사 주는게 아니라, 나로 인해 염려하고 걱정하고 고민하게 하는 일들이 없도록 하는 일이다. 나는 그걸 아주 잘 해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고기를 사주는 건 좀.. 좋지만.

 

 

 

아, 그런데 내가 처음에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인용할 때는, 역시 생각은 걸으면서 하는게 짱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는데, 그렇게 해서 나 역시 '생각하는 순간'을 좋아한다는 말로 끝맺고 싶었던 건데, 왜 결국 내가 강하다는 잘난척으로 끝맺게 된걸까.

 

어쨌든 지금은 일요일 밤 아홉시가 다 되어가고 있고, 나는 이제 곧 맥주를 마실 것이다. 아니면 우울하니까. 이 우울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맥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세탁기가 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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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7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8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13-10-27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아치 만나서 한 대화랑 비슷. 상대방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or 상대방을 사랑하는 내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아 ㅎㅎ

다락방 2013-10-28 09:28   좋아요 0 | URL
난 나이들면서 확실히 깨달아요. 그 누구보다 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내가 이런 사람인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는데 말예요. ㅎㅎ

아무개 2013-10-28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모두 다는 아니겠지만 첫사랑 이후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그 감정에 사랑에 빠지는거라고들 합디다....

2.정말 강한 여자는 외로워도 술 안마시는겁니다요....

3.저는 어제 소주 한병반 마셨어요........흠....

4.참 그리고 요새 "아름답다"라는 게
내가 아름답다 라고 '생각'을 하는건지
아름답다 라고 '느끼는'건지...
본능인지 교육인지...헷갈려요..

다락방 2013-10-28 09:36   좋아요 0 | URL
1. 저는 '사랑에 빠졌'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었던 적이 되게 오래전인것 같아요. 사랑에 빠졌다는 건, 뭔가, 다른 차원의 것으로 느껴져요 이제는.

2. 저는 외로워서 마시는 게 아니라 취하는 게 좋아서 마셔요. 하하하하하

3. 저는 어제 500짜리 맥주 세 캔..

4. 아, 저도 헷갈려요. 아름답다라는 게 교육인지 본능인지. 성형 미인들을 보면 확실히 교육인 것 같아요. 다 똑같잖아요. 쌍커풀 오똑한 코 같은거 말예요. 그렇지만 음악이나 그림 영화 소설들을 접하고 아름답다고 감동하는 건 본능적인 것 같기도 하고..

단발머리 2013-10-2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그 시간의 대부분을 현빈과 소울메이트라면 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보냈다."

저는 어제, 그리고 오늘, 내가 소지섭과 소울메이트라면 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난, 너무 세속적인가봐요. 자꾸 그의 어깨가, 튼튼하고 단단한 그의 어깨가, 어깨가 생각나요.
난 소지섭이랑 소울메이트는 어려울것 같고. 그 어깨만, 잠깐 빌리고 싶어요. 백만원이던가요? *^^*

"혼자 조용히 당신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낼 참, 이라는 그의 말이 백프로 이해가 됐다. 나 역시 가끔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상대를 생각해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난 이 단락이 너무 좋아서요, 내가 다락방님 책을 가졌다면 좋았을걸, 이게 다락방님 책이라면 여기에 보라색 색연필로 밑줄을 쫙쫙 그었을텐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책이 없으니 (책을 내세요~~) 마음에다가 밑줄을 쫙쫙 그어요~~~

다락방 2013-10-28 10:07   좋아요 0 | URL
오늘 누군가 식당에서 현빈을 봤다고 말을 해줘서 저 지금 멘붕이에요. 왜 그 식당에 내가 없었는가..회사 그만두고 그 식당에 취직할까..하고 말이지요. 아놔. 식당 주인 아저씨는 현빈인 줄 모르고 그냥 키크고 인물 훤한 청년으로 생각했다고.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미춰버리겠네요. ㅠㅠ

2013-10-28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8 13:54   수정 | 삭제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8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9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10-29 10:33   좋아요 0 | URL
비밀....이야기니까요.... ( ")

2013-10-28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8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신이 지진이라면



여보세요, 떠나겠다는 나의 결정이 나는 두려워요. 당신으로부터 먼 곳에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당신이 지진이라면 먼 곳에서 지진이란 무엇일까요? 호숫가의 오리들도 놀라지 않아요. 나는 낮잠을 깨지 않아요. 네 시간 다섯 시간이 흘러가요. 나의 낮잠은 비뚤어진 입을 틀어막고 한량없이 귀가 커져요. 펄럭이는 귀는 검은 밤에 젖어요. 귀가 커다래지니까 이곳이 얼마나 조용한 곳인지 알겠어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내가 옛날 전화기를 들고 있다면 검은 전화선을 따라 수억 개의 지붕 위를 건너 텔레파시의 화신처럼 나타날 수 있을까요. 옛날 연인들은 전화선을 손가락에 감거나 목에 감았어요. 주술 같은 것이었어요. 허공을 만지는 일도 그런 걸까요? 허공에 대해 공부했다는 한의사는 내게 생활 습관을 고치라고 말했어요.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밥을 먹고 그리고 허공을 자꾸 만지지 말라고 했어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귀를 막은 채 비명을 지르지 말라고 했어요. 침을 맞으라고 했어요.



나의 아침에 당신은 저녁 8시예요. 당신의 새벽에 나는 오후 2시예요. 먼 곳, 먼 곳, 먼 곳을 향해서 당신이라고 부르는 오후 2시에 나는 또 손이 저려요. 오후 3시에 침을 맞아요. 식전 30분에 나는 한약을 먹어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먼 곳의 지진을 느끼지 못해요. 먼 곳에서 당신이 죽을까 봐 두려워요. 당신이 죽은 지 일 년이 지났는데 나는 슬퍼하지도 못했을까 봐 진짜 두려워요.




지난 주말에 에피톤프로젝트 콘서트에 다녀왔다. 그가 「시차」란 노래를 불렀을 때, 나는 김행숙의 위 시가 생각났다. 김행숙이었던것 같은데, 내가 산 시집에 있었던 것 같은데, 시차가 꽤 크게 느껴지는 곳의 사람을 사랑했던 시가 분명 있었는데. 시집을 꽂아둔 책장 앞으로 가서 차례대로 시집들의 제목을 읽었다. 역시 김행숙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꺼내들고 한 장 한 장 다시 넘겼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문장들로 가득한 시들 속에서 당신이 지진이라면, 이란 제목을 본 순간 앗! 이걸거야, 이걸거야! 했다. 



지금쯤 그대는 몇 시를 사는지?
오랜만에 먹는 아침이
가벼워진 나의 마음이 꽤 좋아 보여
느긋한 트램을 타고서 달리면 
옆 자리의 꼬마 아이도,
좁은 골목길의 모습도 꼭 그림 같아
아직은 멀기 만한 나의 시간이
졸린 눈을 비비게 해도
스쳐가는 많은 것들을 다 끌어안고
지금쯤 그대는 몇 시를 사는지?
오랜만에 먹는 아침이
가벼워진 나의 마음이 꽤 좋아 보여
지금쯤 그대가 몇 시를 살던지
누구와도 같지 않으니
누구라도 다른 거니까, 큰 걱정 말고          -에피톤프로젝트, 시차









내가 사는 시간과 다른 시간을 사는 곳의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걸까. 거기엔 어떤 낭만이 있을까. 지금 당장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보는 달을 그는 지금 볼 수 없다는 것. 달 봤어요? 아주 커요, 소원을 빌어도 좋겠어요, 같은 말을 내가 지금 전화기를 붙들고 말해보았자, 혹은 문자메세지로 딩동- 하고 보내봤자 그곳에서는 아직 달이 뜨기 전이거나 이미 달이 사라지고 난 뒤일텐데. 그래서 시무룩해질 즈음, 이런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그러나 만약 내가 오늘 밤하늘엔 별이 무척 많았어요, 쏟아질듯이. 라고 말했다면 그는 그렇다면 나도 오늘 밤엔 고개를 들고 별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해볼게요, 라고 대답할 수 있을테고, 그렇게 자신의 시간에서 밤이 오기까지 내내 밤이 오면 별을 봐야지, 하고 나를 생각하고 염두에 두는 시간이 더 길 수 도 있으리란 생각. 


베가본드란 만화에서 주인공이(이름이 생각안나..) 안보이면 잊혀질 줄 알았더니 가슴에 더 선명하게 새겨진다고 했다던 말이 생각났다. 멀리 살기 때문에, 열세시간쯤을 날아가야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열세시간을 날아가기 위해서 비행기표를 할부로 긁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를 자주 볼 순 없겠지만, 한 번 보게 되면 그만큼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겠지, 볼 날만 내내 기다리며 지내겠지.



그렇지만 김행숙의 시, 당신이 지진이라면, 저 시의 마지막 연 때문에 다시 슬퍼진다. 나는 먼 곳의 지진을 느끼지 못해요. 먼 곳에서 당신이 죽을까 봐 두려워요. 당신이 죽은 지 일 년이 지났는데 나는 슬퍼하지도 못했을까 봐 진짜 두려워요. 먼 곳에 그가 있는데, 먼 곳에 있는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그의 소식을 알 수 있는 방법이 그와의 연락 뿐이라면, 그런데 그와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그가 아프다면, 그가 이 세상에서 존재를 감췄다면, 나는 이 곳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하지 않을까. 그게 슬프다. 아무도 내게 그의 소식을 대신 전할 수 없으니 그의 안부를 내 머릿속에서 썼다지웠다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 슬퍼해야 할 때, 제 때 슬퍼하지 못할거란 사실이 더 슬프다.





















남자는 파리를 사랑하고 파리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남자의 약혼녀는 남자가 헐리우드에서 일하면서 말리부에서 살기를 원한다. 여자는 남자가 돈벌이도 안되는 소설을 쓴다는 게 못마땅하고, 친구의 애인처럼 모든것에 전문가가 되지 못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남자는 파리 거리를 산책하기 원하고 여자는 온갖 관광명소를 다니며 설명을 듣길 원한다. 그런 남자에게 1920년대에 만난 매력적인 여자가 묻는다.


그녀를 사랑하죠?


남자는 대답한다.


사랑해요.

사랑하는 것 같아요.

결혼하면 사랑해야겠죠.



남자는 자신의 사랑에, 자신의 결혼 상대에 대해 확신이 없다. 대답의 강도는 점점 약해진다. 여자는 다시 묻는다. 그래도 그녀와 중요한 것에 있어서는 공통된 의견을 보이지 않나요? 남자는 대답한다. 


사소한 것에서는 잘 맞죠. 인도음식을 둘다 좋아해요.

아니 사실 인도음식을 둘다 다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 난 이라는 빵, 그건 둘 다 좋아해요.


생각해보니 둘에게는 사소한 것조차 공통된 게 거의 없다.



남자가 바라보는 세계, 남자가 꿈꾸는 세계가 여자가 바라보는 방향과는 완전 틀어져있다. 남자는 길을 가다가 콜 포터의 음악이 들려오면 멈춰야하지만 여자의 귀에는 콜 포터의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남자는 헤밍웨이와 피카소를 만났다는 사실에 흥분을 해서 그 기쁨을 전하고 싶지만 여자는 내일 관광을 위해 오늘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이런 둘이, 과연 사랑을,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영화의 초반, 남자가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1920년대의 파리로 돌아가 헤밍웨이를 만났을 때, 내가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었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알어, 알어, 저랬지, 저랬어!! 중간에 남자가 '파리는 날마다 축제란 말도 있잖아' 라며 영어로 Moveable Feast 라고 하는데, 아우, 이건 내가 저 책을 읽었으니까 아는거야, 하면서 막 으쓱으쓱. 움화화화핫. 



사랑에 있어서는 거리가 큰 방해물이 되진 않는다. 열세시간을 날아가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반면 함께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도 사랑이 완성되진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이 같지 않다면 함께 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게 바로 사랑의 가장 큰 위대함일지도 모르겠다. 거리와는 상관 없다는 것. 아울러 이 영화속처럼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 2000년대의 남자가 1920년대의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하다니, 사랑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이 시대를 뛰어넘어 가능하겠는가. 내가 이 시대를 살고, 여기에 살고, 이 나이를 살고 있으면서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거, 그래서 사랑이 다른 무엇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뜬금없는 영화속 남자에 대한 불만 한 가지. 아니, 길, 대체 왜! 핏츠제럴드가 아니라 헤밍웨이한테 더 흥분하는거죠? 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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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금 이순간도 난 널 기다리고 있어.
    from 마지막 키스 2015-07-12 22:19 
    센트럴 파크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홀든과 피비를 생각하고 싶었고 할과 로라를 떠올리고 싶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에 가면, 그 위에서 첫키스를 나누고 뉴욕이 아름답게 느껴졌다던 노래를 떠올리며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센트럴 파크를 갔고, 역시나 할과 로라를 또 홀든과 피비를 생각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에 가서는 이 위에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겠지, 이 위에서 누군가와 키스를 했다면, 하고 생각을 했다.
 
 
Forgettable. 2013-10-25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인관계는 시차를 통해 더욱 로맨틱해지기보단 멀어지더라구요; 친구 관계가 오히려 더 돈독해졌던듯. 저 같은 경우엔 말이죠. 밤에 센치해져서 문자보내면 일하는 중이거나, 걔가 취해서 연락오면 나는 자고있거나 일하는 중. 뭐.. 저는 지금도 남들과는 시차있게 일하고 중인데, 연애할 때 플러스 요소는 제로....... 백수를 만나야 할듯. ㅠㅠ

다락방 2013-10-25 16:44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보니 제 친구 하나가 그러더라고요. 외국에 있을 때 여자친구가 자꾸 전화를 하는데, 그 때 자기는 일끝내고 너무 피곤해서 자고 있을 때라고. 그런데 번번이 자지 말고 자기랑 통화하자고 요구하는 바람에 정이 떨어져 버렸다고...서로 다른 시간을 살면 그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네요. 흐음.

백수 보다는, 음, 뽀님이 일하는 시간에 일하고 뽀님이 노는 시간에 노는 사람을 사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아니면 먼 데 있는 남자 사귀어요. 여자친구와 짧게짧게 연애하던 내 남자사람 친구가 지금 여자친구와는 3년째 사귀고 있는데, 그게 먼 데 살기 때문이래요. 가끔 보니까 싸울 일도 없고 가끔 보니까 서로에게 질리지도 않고 오래 간다고...아, 그러니까 외국같은 먼 데 말고 음...강원도 정도? 강원도 유지라든가....강원도 땅부자라서 농사 짓는 남자....라면 한달에 한두번쯤 뽀가 금요일에 일 끝내고 내려가서 전원을 배경삼아 편하게 술을 마시고..................아니면 제주도에서 말 이천마리 키우는 남자 만나서 금요일 밤에 제주도 내려가서 주말에 같이 말타고 제주도를 달리고.................(상상이 안끝나네 -_-)

Forgettable. 2013-10-25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빵터짐ㅋㅋㅋ 저도 장거리 연애할 때 가장 오래 만났어요. ㅋㅋ
다락방은 참 말을 좋아해......... ㅋㅋㅋㅋㅋ 여기서 또 한번 달콤쌉싸름 생각 해주고;
여튼 그런 장거리 연애라면 아주 좋네요. 하지만 난 연애는 당분간 금지라. 멘탈파괴상태 ㅋㅋ

다락방 2013-10-25 17:01   좋아요 0 | URL
그치. 말이 나오면 달콤쌉싸름 나와줘야지. ㅋㅋㅋㅋㅋ 무려 발가벗은 여자를 앞에 태우잖아!
파괴된 멘탈이 얼른 제자리를 찾길 바랍니다 뽀 ㅠㅠ

배고프네요 ( ")

자작나무 2013-10-2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면 결혼해야 하나요?

다락방 2013-10-27 23:23   좋아요 0 | URL
사랑하면 결혼해야 한다고.. 제가 썼나요? 그렇다면 잘못 썼네요. 전 방향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것은 제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정체성 밀란 쿤데라 전집 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농담>,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에는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이르면 오!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작품은 이 작품 자체로 근사한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파멸을 불러울 수도 있다는 사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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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3-10-24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음... 표지부터 느낌있네요. 뭐든지 지나치면 파괴적인거 같아요..

다락방 2013-10-25 13:3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뭐든지 지나치면 파괴적이 되어버리죠. 그런데 지나치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봐서 아는거지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본인이 지나치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 지나치게 되게 하진 않았겠죠. 하아- 어려운 거에요, 뭐든. 살아가는 게 말예요.
 

J는  K의 학교 후배다. K 가 어학연수를 가기전, 한 번 밥이나 먹자며 만나길 청했고 그 자리에 J 를 데리고 나온거였다. K와 내가 살갑게 늘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었고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니었으니 설사 어학연수를 1~2년 가있는 게 아니라 해도, 그러니까 그동난 내내 한국에 있었다해도 우리가 만날 일은 없었을 텐데, 가기전에 얼굴 보자고 한 건 좀 웃기다. 어쨌든 나는 K 를 만나러 갔건만 K 는 J 를 불렀다고 했다. 예정에도 없는 추가된 멤버는 내 기분을 약간 상하게 했는데, 뒤늦게 도착한 J 를 보는 순간 기분이 더 망가지고 말았다.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당당한 모습이었달까. 그래서 나 역시 그에게 친절을 베풀기 보다는 첫만남 첫대화부터 틱틱거렸다. 내가 불편한만큼 너도 불편함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것도 같다. 그런데 웬걸, 하하하하하, J  를 만난지 한 시간도 채 되기전에 나는 J 에게 완전 흠뻑 빠져들고야 말았다. J 는 학교내에서 선배들로부터 '싸가지' 라고 불린다고 했다. 그게 그의 별명이라고 했다. 나를 만났을 때에도 그런 모습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수시로 꽤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거다. 나는 언제나 이런 남자들한테 강하게 매력을 느꼈다. 늘 그랬다. 당당하고 자신감있고 강하고 싸가지 없어 보이지만 '나한테는' 말투가 부드러워지는 그런 남자. 모든 여자들한테 다정하고 매너좋고 친절하고 살갑게 구는 남자들은 뭐 그러든지 말든지 하게 됐지만, 쌀쌀맞은 말투를 가진 남자를 보면 이상하게도 '나한테 다정하게 만들고 싶다' 는 생각이 막 자라나는거다. 하하하하. 여튼, J 는 여전히 싸가지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가 무엇이 부족하다 느끼는지를 잽싸게 파악하고 손을 들어 마늘을, 술을, 쌈장을 더 시켜주곤 했다. 그 날 그는 비니를 쓰고 왔었는데 열심히 삼겹살을 집어 먹다가도 내가 그거 한 번 벗어봐요, 라고 하면 눌린머리가 웃음거리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곧잘 벗었다. 나는 또 까르르 웃고 잠시후에 또 벗어봐요 하고 까르르 웃었다. 그 때는 눌린 머리가 우스워 웃는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키가 크고 몸이 좋고(응?) 당당하고 강한 남자가 내 말 한마디에 움직인다는 게 엄청 좋았던 것 같다. 2차로 옮기는 내내 J 는 내 옆에서 걸었다. 취한 나를 데리고 움직인거였는데, 2차에서는 내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따라와서는 화장실 앞에 서서 나를 기다렸다. 그 때까지 한 번도 같이 술마신 남자가 취한 나를 부축하겠다며 화장실 앞에서 기다린 적이 없었는데! 나는 취한 와중에도 녀석에게 완전 쑝 가버리고 말았다. 정말 정말 매력이 터지는 남자였다. K 가 나보다 어렸으니 J 는 나보다 더 어렸는데, 와, 이토록 강하게 '매력있는 남자' 를 만난 게 얼마만인가 싶게 너무 좋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와 어떻게 되기를 꿈꿨다거나 그를 향한 연정에 밤을 지새웠다던가 한 건 아니다. 그저 와 매력터져 매력터져 하면서 '남자'로 인식했던거지. 설사 그쪽에서 나를 여자로봤다 한들 그토록 자신감 넘치는 남자를 내가 과연 내 연애상대로 삼았을지는 의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강한 매력으로 나를 풍덩 빠지게 한 남자를 몇 번 만났지만 그들 모두와는 연애를 하지 않았다. 연애상대는 늘 다른 사람이었다. 왜 나는 강한 매력이 폭발할 듯 쏟아지는 남자와는 연애하기가 두려울까. 어쨌든 녀석은 나를 엄청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는 과정에서도, 취직을 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나에게 연락을 했으며 그 사이사이 녀석은 연애를 했고 헤어졌고 또다른 연애를 시작했다가 헤어지고를 했다. J 와 단둘이 만나면 거의 내가 얘기를 하는 편이었는데, J 는 언제나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내가 동생들과 우애가 좋은게, 내가 책을 읽는 게, 나의 학교 생활들이. 나를 만나고 돌아가노라면 너무 웃어서 얼굴이 아프다고 했고, 나는 J 를 많이 웃게 해서 아주 기분이 좋았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J 와 사랑하고 싶다거나 연애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지만 불순한 욕망이 여러차례 끼어들었던 적은 있다. 쿨럭.


시간이 흘렀고 J 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우리의 연락은 끊긴지 오래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그를 잊고 살았다. 그와의 추억이란 게 별로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오늘 꿈에 그가 나온거다. 맙소사!! 이게 뭔일이람.



꿈에서 나는 어찌된일인지 지금 현재를 살고 있었는데 대학생이었다. 늙은 대학생인거지. 아주 약한 비가 내렸고 또 나는 어찌된일인지 집까지 걸어가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갑자기 키가 작고 늙고 소심해 보이는 남자가 몇 살이냐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처음에 뭔가 도를 아십니까를 물으려고 하나 싶어서 무시하는데 그는 계속 내 옆에 걸으면서 작업을 거는거다. 현실의 나라면 완전 매몰차게 저리 꺼지라고 했을텐데 꿈속의 나는 왜 가만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 짜증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몇 개의 질문에는 대답해주면서 걷고 있는데, 정말이지 마법처럼!! J 가 나타났다. 여전히 키가 크고 여전히 당당하고 여전히 강한 모습이었다. 꿈에서 나는 너무나 반가워서, 와, 너 몇년만이야!! 라고 소리를 질렀고 녀석도 오랜만이라며 웃으며 다가왔다. 누가먼저랄것 없이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놓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J 는 나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옆의 저 늙은 남자는 누구냐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자꾸 따라온다고 좀 싫은티를 냈다. 그랬더니 J 는 갑자기 멈춰서서 그 남자에게 저리 가라고 말했다. 싫어하니까 저리 가라고. 그러자 그 남자는 사라졌다. 나는 J 가 반갑고 또 좋아서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J 가 이끄는대로 J 의 모교로 가서 그 안에 자리한 이상한 골방같은 데로 함께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나란히 누워 심하게 다정했다. 그 방에 K 가 뜬금없이 들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좀 안좋았지만...대체적으로는 좋았다. 그리고 꿈이 깨서는 와- 엄청 반갑네, 진짜 매력 터지는 녀석이었는데, 하면서 기분이 막 좋았다. 현실에서도 한 번 안아보고 싶다고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오만년만에, 뜬금없이, 그가 꿈에 나온거지?






















어제 퇴근하며 읽은 책은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이었다. 나는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아, 이 책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초반에 이런 구절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는 회한에 잠겨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빨랐던 그들 사랑의 초기 시절을 생각했다. 그녀를 정복할 필요도 없었다. 첫 번째 순간, 그녀는 정복되었다. 그녀를 돌아본다고? 무엇 때문에? 처음부터 그녀는 그의 곁에, 코앞에,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처음부터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다. 그들 사랑의 기반에는 이런 불평등이 깔려 있었다. 정당화될 수 없는 불평등, 부당한 불평등. 그녀는 연상의 여자였기 때문에 약했던 것이다. (p.46)



아침에, 출근준비하느라 그 바쁜 와중에 다시 책을 펼쳐 보았다. 아, 이것 때문이었나봐. 이것 때문에 그런 꿈을 꾼건가봐. 이래서 꿈에 J 가 나온건가봐. 나는 순간, J 도 오늘 똑같은 꿈을 꾸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J 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아마도 이 책을 읽지 않았을테고, 설사 이 책을 읽었다고 해도 저 부분을 읽고 꿈을 꾸게 되는 상대가 내가 아닐 수도 있을테지.


밀란 쿤데라는 그의 소설 『불멸』에서도 '연상의 여인은 자수정'이란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이 책, 『정체성』에서는 단순히 연상의 여자 뿐만이 아니라 상대보다 조금 더 나이든 육체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연상의 여자는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만 연하의 남자에게 불안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 혹은 초조하거나 신경쓰이거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아, 물론 이건 연상이기 때문에만 생기는 건 아니지만, 어떤 젊은 육체 앞에서는 속절없이 약하고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그는 문 옆에 서서 그녀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그녀로부터 여섯 발자국 떨어져 있었는데 이 짧은 거리가 무한히 먼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빨갰고, 불타고 있었으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녀 앞의 남자는 거만하게 젊었고 그녀의 불쌍한 육체를 거만하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불쌍한 육체를! 젊은 남자의 시선을 받으니 자신의 육체가 그 시선 아래 환한 세상에서 빠른 속도로 늙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p.114)



사실 내가 가장 이 책 속에서 놀라웠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신뢰를 느낀 그는 말했다. "혹시 호텔 이름을 가르쳐 줄 수 있나요? 샹탈이 와 있는지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싶습니다."

를르와는 아무 말도 없다가 물었다. "샹탈이 가르쳐 주지 않던가요?"

"아니오."

"그렇다면 죄송하군요." 그는 정중하다 못해 거의 아쉽기까지 하다는 투로 말했다.

"가르쳐 드릴 수 없어요." (p.161)



장마르크는 샹탈의 애인이며 현재 같이 살고 있다. 그리고 를르와가 샹탈의 회사 동료임을 알고 있다. 자신이 알고 있으니 그가 자신에 대해 아는것도 당연할 터. 그러나 를르와는 장마르크에게 샹탈이 묵는 호텔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장마르크가 아무리 샹탈의 애인이라 한들, 샹탈이 장마르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샹탈이 자신의 애인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을 자신이 말해주는 것은 선을 넘어가는 일일테니까. 이런 태도가 필요하지 않은가 싶었다. 뉴스나 드라마속에서 두드려맞는 여자에게 사람들이 쉽게 손 내밀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 남자가 '내가 이 여자 남편이야' 라고 말하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대체 남편이라면 아내를 함부로 다루어도 좋단 말인가. 그게 합당한 이유가 된단 말인가. 다른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안되는 일이야, 란 말로 그들을 방치하기 보다는, 아내가 말하지 않았다면 제삼자도 말하지 않아주는 게 합당한 게 아닐까. 뭐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이제 J 의 연락처도 모르는 데, 어쩌면 좋담. 뭐 연락처를 안다한들 오만년만에 네가 꿈에 나왔단다 하고 연락하기도 좀 뭣한 일이지만. 오늘은 하루종일 J 를 떠올리며 히죽히죽 웃게될 것 같다. 나에게 건넸던 맥스봉 소세지와-그러고보니 내가 강하게 이끌렸던 두 남자 모두 나에게 소세지를 줬네!!!!!!!!소름돋아!!!!!!!!!!!!!!!!!!- 술취한 나를 바래다 주겠다며 내 핸드백을 대신 들고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던 일 같은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오른다. 다 밀란 쿤데라 덕이다. 체코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정착한 한 남자가 대한민국의 여자를 추억에 잠기게 했고 꿈 꾸게 했다.



밀란 쿤데라는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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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3-10-2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히히.... 혼자 막 웃어요. 옆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저번에 다락방님이 그랬죠?
어떤 사람이 꿈에 나왔다면, 꿈에 나온 그 사람이 날 생각하고 있는 거라구요. 다락방님 친구가 그랬던가요? 암튼.
다락방님 오늘, 너~~~무 좋으시겠다. 당당하고, 자신감 있고 강하고 싸가지 없어보이지만 다락방님께 친절했던 J씨가 오늘은 다락방님을, 아니
어제부터 계속 다락방님을 생각하네요. 얼레리~~

저는 저 책 50페이지 정도까지 읽었는데, 다락방님이 말했던 구절은 기억이 안 나요.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겠어요.

다락방 2013-10-25 16:30   좋아요 0 | URL
추억할 수 있고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에요, 단발머리님. 잠깐동안이나마 그 시절 생각하며 두근두근했어요. 아, 그런 남자가 내게 있었지, 하면서요. 하핫.
아무래도 그렇잖아요. 모두에게 친절한 게 아니라 나에게만 친절한 남자라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헤헷. 녀석이 일상에 치어 지쳐있는 와중에 잠깐동안 뜬금없이 제 생각을 한걸까요? 그래서 제 꿈에 나온걸까요? 이렇든저렇든 꿈에서라도 보니 참 반갑더라고요. 헤헷

자작나무 2013-10-24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밀란 쿤데라보다 다락방의 꿈 이야기가 더 좋아요 :)

2013-10-25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7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8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9 0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9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9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10-29 14:03   좋아요 0 | URL
노!!!!!!!!!!!!!!!!!

자작나무 2013-10-30 08:47   좋아요 0 | URL
아니 왜요? 왜 나만 빼놓고 놀아요?

아무개 2013-10-24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그리고 우리는 나란히 누워 심하게 다정하려면 어떻게 하는겁니까? 쿨럭~

2.다락방님을 유혹하려면 우선 맥스봉 부터 준비를 해야겠군요. (남자사람님들 참고하세요!)

3.지금 '시적정의'읽기 시작했어요. 이거 다음은 '참을수 없는~'입니다. 오랫만에 기대되는 작가를 만나서 흥분됩니다^^


다락방 2013-10-25 16:35   좋아요 0 | URL
1. 아무개님. 심하게 다정하면 되는겁니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까! 심하게 다정한 게 어떤건지 직접 보여드릴 수 없는점이 좀 안타깝네요.

2. 아뇨, 이젠 맥스봉에 넘어가지 않아요. 제가 좀 늙은 관계로다가....이젠..음.....어....그러니까......스테이크 정도는 되야...쿨럭.

3. 시적정의도 아닌, 밀란 쿤데라도 아닌, 쇼펜하우어 페이퍼를 쓰셨던데요!!

무해한모리군 2013-10-24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꿈을 꿀 수 있다니 밀란 쿤데라는 정말 대단하군요!
다락방님 꿈 이야기는 늘 좋아요 ㅋㄷㅋㄷ

저도 강하게 끌린 사람들과는 연애하지 못했어요.
연애대장에다 먼저 고백하는데 주저함이 없는데도 내게 너무 멋진사람에게는 그러지 못한듯해요.
가장가까운 기억은 감성이 충만하다 못해 똘끼가 있는데다 아마추어 연극인이고, 등산이 취미인(나랑 같은!!!) 남자를 만난거예요. 산을 같이타면서 하루종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너무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애인도 없는거 같았는데 왜왜 꼬셔볼 엄두도 내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꼭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저런 사람이 날 좋아할리 없지 마음이 늘 앞서는거 같아요...

다락방 2013-10-25 16:38   좋아요 0 | URL
강하게 끌린 사람과는 왜 연애하지 못했을까요? 그들중에 어떤이는 제게 연애하자고 덤벼든 적도 있었는데 거부했어요. 엄청 매력을 느꼈으면서도. 왜그랬을까 곰곰 생각해봤는데, 그건 아마도 제가 불안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단 상대의 초매력에 기가 죽은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남자는 어디가서도 초매력일텐데 나랑 사귀는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유혹을 받을것이고 그 모든것들에 있어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고.....뭐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연애상대는 초매력보다는 안정에 좀 더 중점을 두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초매력남과 연애하면 만날때마다 번번이 가슴이 뛰어서...뭐랄까. 초매력남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할 것 같아요. 초매력남으로 그저 남아줬으면 좋겠어요. 어디 다른데 정착해서 변질되지 말고....연애를 안해도 좋으니 초매력남들을 많이 알고 지내고 싶습니다 ㅠㅠ

아, 휘모리님. 저 [톰크루즈에게 전화오게 하는 방법] 책 샀어요. 다 읽으면 페이퍼 쓸게요. 물론 당분간 읽을 생각 없지만;;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