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출근길은 그토록 오랜시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도 않으며 좋아지지도 않을까. 요즘 책읽기가 더딘 까닭은 지하철만 탔다하면 스르르 선잠이 들기 때문인데, 잠이라기보다는 사실 조는것에 가깝지만, 여튼, 어제오늘, 방송에서 양재역이란 안내가 나올때마다 눈물이 글썽거린다. 내리기 싫어...이대로 눈감고 앉아서 더 가고 싶어, 한 바퀴 돌고 싶어. 엉엉. 눈물나 진짜. ㅠㅠ
게다가 오늘 새벽에 꿈도 정말이지 대단했다. 이건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계속 곱씹게 되는 꿈이었는데, 그러니까 꿈에 우리 식구들은 단독주택에 살았으며, 새끼 표범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새끼지만 어쨌든 표. 범. 우어어어. 우리 식구들은 그 표범을 굉장히 예뻐했는데, 표범이 눈이 컸던게, 아마도 내 조카를 닮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성격..까지도. 잠깐 조카 얘기를 하자면, 요것이, 이제 41개월이 되었으면서, 고작 그만큼을 살았으면서도, 어젯밤엔 나를 보고 "나는 이모가 있어서 고맙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듯 좋아서 실성한 년 처럼 깔깔댔는데, 제 입으로 그렇게 말한 지 삼십분도 채 안되어 "이모 싫어!" 하고 악을 버럭버럭 쓰는거다. 아이고. 요것이 그냥 이모를 들었다놨다 들었다놨다 하네. 여튼, 다시 꿈 얘기로 돌아가서, 새끼 표범이 귀여우면서도 포악스러운 게 내 조카를 닮았........뭐, 할 얘기는 이게 아니니까. 그러던 어느날, 우리 식구가 새끼 표범을 데리고 외출하려는 데, 마당에 커다란 표범 한 마리가 떠억- 하니 앉아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정말이지 포스가 대단해서, 감히 근처에 갈 수가 없는거다. 우리 식구들은 그 표범을 보고 너무 놀라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저것이 우리 새끼 표범의 엄마인걸까, 그래서 애를 찾으러 온걸까, 하고 궁금해했다. 만약 그렇다면 어미한테 주는 게 맞겠지, 그렇지만 아니라면 꼭 줄 필요는 없지않나, 우리가 키워도 되잖아, 막 이런 얘기를 하면서, 우리 그냥 저 표범 무시하고 나가보자, 하고 대문으로 나가려는데, 이 커다란 표범이 일어나서 우리쪽으로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아, 저것이 어미가 아니라면 우리 마당에 나타날 리가 없다. 그러니 어미일 것이다. 새끼 표범, 주기 싫지만, 제 어미에게 보내자, 하고 그 새끼를 두고 우리 식구들은 외출을 했다. 네 어미 따라가라, 하고. 외출후 돌아와보니 우리 집에 새끼 표범도 엄마 표범도 없어서, 아 데리고 갔구나, 하면서 우리는 서운해했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새벽이었다. 우와, 표범 두마리의 색깔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대체 이게 뭔 꿈이냐, 웬꿈이냐, 한 것이다. 아니, 대체 왜 표범 꿈을 꾸지, 카운슬러에는 치타가 나왔던것 같은데, 그거 본 지 오래됐는데, 하고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꿈에 또! 표범이 나온거다. 그 뒷이야기로.
새끼 표범이 엄마 표범으로부터 도망쳐서 우리에게 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 표범이 엄마가 아닐 확률이 크다. 우리는 이대로 새끼표범을 보낼 수가 없고, 그렇다면 우리가 키워야 할 것인데, 엄마 표범이 우리 집을 알고 있는 이상 우리 식구들도, 이 표범도 위험해, 우리는 이 표범을 데리고 외국으로 도망치기로 했다. 그래서 뭔가 이동수단을 타고서는 그 즉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표범의 눈에 띌까 두려워, 우리는 멀리멀리 가기로 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싶었는데, 집집마다 방문이며 창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우리를 내다보지도 않았다. 자칫 잘못해서 표범의 목표가 자기들이 될까봐.....도망가다 깼어.......
오늘 아침엔 지하철에서 꾸벅 졸면서, 대체 왜 이런 꿈을 꾼걸까, 하다가 어제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잠깐 읽었던 책의 내용이 그제서야 퍼뜩 떠올랐다. 그 책에서는, 주인공 부부가 키우는 사냥개가 광견병에 걸려, 부부가 외출한 사이, 집 안의 모든 동물들을 물어뜯어서 여기저기 피를 묻혀놓았던 것이다(이건 무슨 책일까~~~아요?). 아, 그 장면 때문이었나보다, 그래서 표범 꿈을 꿨나봐..
영화 <인사이드 르윈> 을 보면 삶이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비루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삶은 치사스럽지만, 누군가에게는 더 크게 후려갈기는 것 같다. 음악을 그토록 좋아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으로는 그 어디에서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매일 어디서 자야할 지를 고민하는 르윈에게, 르윈의 누나는 배 타러 나가서 돈을 벌기를 권유한다. 이 말은 수치스럽고 모욕적으로 들리는데, 결국 르윈을 받아주는 곳이 아무데도 없자, 르윈은 배타러 나가기로 결심하고 선원 명단에 제 이름을 올려달라고 한다. 배를 타는 일이 수치스러운 일이어서가 아니라, 음악을 하고 있고, 그 음악으로 먹고 살고 싶었고, 그 음악으로 인정받고 싶은 사람한테 '배 타러 가' 라고 했으니, 그것이 수치스러운 것이다. 이게 아니라 그걸 해야하는 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인데, 삶은 그에게 '그래도 너 배 타야할 걸' 하고 자꾸 몽둥이를 휘둘러대니, 그는 자존심과 자신감을 모두 내팽개친 채, '그걸' 선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삶이 반복되는 것이다. 크- 치사스러워... 르윈에게 삶은, 하나 밖에 없는 젖은 신발 같았고, 젖은 양말 같았다. 날도 추운데 축축하게 젖어버렸지만, 차마 그걸 벗고 걸을 수조차 없는, 그런 젖은 신발, 젖은 양말. 영화속에서 클로즈업 되던 그의 젖은 신발은, 그것이 그의 삶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아, 무슨 삶이 이래. 왜 푹 젖어버린 신발 같은거냐고.
아, 인간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나는 그 영화를 보고 르윈의 젖어버린 신발같은 삶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르윈이 우리집에 자러 와도 되겠냐고 물을까봐 조마조마했다. 거침없이 '싫어' 라고 말할 내 자신 때문에...내가 그렇게 말한다면, 젖어버린 신발로 뺨 까지 때리는 격이겠지만...
꿈에서 그리던 사람을 만나게 되면, 투명하게 흐르던 시간이 그 사람의 머리카락에 색을 들이고 형태 없이 흐르던 세월이 그 사람의 입술을 도드라지게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내 인연임을 알아보게 되는 법이다. 사만다도 내게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정해진 분량만큼의 사랑만 할당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p.89)
꿈에서 그리던 사람이라고, 그 사람이 내 인연이라고, 그러니 이 애정은 끝이 없는 거라고 확신했던 순간이 분명 있었는데, 그 순간 조차도 결국엔 사라지고 만다는 생각을, 오늘은 했다. 이만큼이었구나, 그를 향한 나의 애정은. 이만큼만 할당되었었구나, 하고. 그가 내 인연이 아님을,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그렇게 오래 싸인을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온몸으로 거부했고, 그 많은 싸인들이 이제는 한 번에 후려치는 느낌이랄까. 예전엔 그가 열 번 실망을 주면, 한 번 웃게 한걸로 충분했는데, 이제는 한 번 웃게 한것보다 실망이 쌓이는 횟수를 세고 있다. 그에 대한 애정 할당량은 여기까지였구나. 뭐, 그런 생각을 하는 아침. 애정도 식었고, 커피도 식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