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얘길 여기다 했었던가?


점심먹고나서 종종 가는 까페가 있다. 회사 근처의 동네 까페인데, 나의 점심시간이 보통 다른 직장인들의 점심 시간보다 늦은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까페에 들를 때마다 손님이라고는 나와 E양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뭔가 단골처럼 되어, 가면 제법 아는 사람인듯 남자사람인 까페 사장님과 인사도 즐거이 하고 그러는데, 그러다보니 오지랖넓게(!) 이 까페사장님은 혼자 있을 때 뭘하려나(손님이 없어...한가해.....), 책읽기 딱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만 뙇- 하고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것이고 안 읽는 사람이라면 앞으로의 책읽기에 도움이 될것같은 아름다운 책!

















그래서 이 책을 내가 기꺼이 한 권 드리자, 라고 생각했지만 좀 망설여지더라. 까페사장님의 성별이 '남자'인 만큼, 이걸 주는 순간 '이 여자사람이 나한테 마음있나?' 로 오해할까봐....아닌데.....그건 아닌데.....주면서 '사장님 좋아서 주는 건 아니에요' 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래서 주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뒤로 뒤로 미뤘었다. 아니다, 주긴 뭘주냐, 자기 시간 자기가 알아서 잘 사용할테고, 내 책 내가 주는 것도 모양이 좀 거시기하고.... 



그러다가 오늘은 아니, 주자,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어차피 내가 가지고 있는것 보다는 누군가에게로 가 읽히는 것이 책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일 터. 그래, 주자. 최대한 가볍게 주자. E 양한테 대신 주라고 부탁할까 했으나, E 양이 그걸 딱히 대신해주고 싶어하는 것 같진 않아서, 그래 남한테 부탁하지 말고 내가 하자! 라고 생각하고 오늘은 큰맘먹고 책을 들고 나가 점심을 먹고 예의 그 까페로 향했다.


커피를 시켜서 받고서는 사장님께 물었다. 


사장님 책 읽는 거 좋아하세요? 


라고. 그러자 사장님은 아니요, 라고 하시는 거다. 아....이러자 다음 과정이 아무것도 진행이 안되더라. 그러자 사장님께서는 이내 '왜요?' 라고 물으셨다. 나는 '아니요, 책 드릴라고 했어요' 라고 했고 '어떤 책이요?' 라는 사장님의 물음에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책이요, 하며 준비해온 책을 내밀었다.


사장님은 책을 받으시고는 훑으시더니 짧게 나뉘어진 이야긴가봐요, 라고 하셔서 네 에세이에요, 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정말 재미있어요. 아마 읽고나면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하시게 될거에요. 저도 읽을때마다 너무 재미있어서 깜짝깜작 놀라요, 라고도 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아 그래요? 하며 고맙다고 하시는 거다. 잘 읽을게요, 라고 하시며. 그때 재치있는 E 양이 끼어들었다. 그 책 이 분이 쓰신 거에요,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자 사장님이 놀라시며 아 그러냐고 하시는 거다. 까페에 진열해야겠다고 그래서 내가 네, 까페에 진열도 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도 좀 하시고 그래주세요, 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장님은 알겠다고 꼭 읽어보겠다 하시며 다음번에는 커피를 서비스해주겠다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암튼 셀프영업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며칠전에도 찾아볼 게 있어서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를 꺼내 뒤적였는데, 읽다보니 또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겠더라. (응?)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조금전에는 우체국엘 다녀왔다. 우체국에 갈 때마다 생각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이들면 회사를 그만두고 꼭 우체국에서 근무해보고 싶다고. 이 사람이 저 사람에게 보내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내가 해보고 싶다고. 물론 대부분의 메세지들은 내가 기대하는 그런 아름다운 내용도 아닐 것이고 사랑 가득한 내용도 아닐 것이란 걸 안다. 아주 많은 메세지들은 나쁜 내용을 담고 있거나 험악한 내용을 담고 있거나 업무상의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중 극히 적은 일부는 여기에서 저어어어기로 전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것일 수도 있을테고, 이사람이 저사람에게 전하는 소중한 소식이기도 할 터이니, 그 중간에 내가 한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 무슨 영화였지? 한 아주머니가 기차역인가에서 편지를 대필해주면서 살았는데...그러다 한 소년과 알게 되고 그 소년의 가족을 찾아주는...영화였던가... 뭐 어쨌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연락하고 만나고 하는 것들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누군가의 힘을 빌어야 소식을 전하는 일이 가능하고 또 누군가를 통해야만 마음을 전하는 일이 가능하니, 그 가운데에서 그 보람있는 일을 내가 해보고 싶다. 그렇지만,


너무 바쁜 데로 가면 마음과 마음을 전하고 이러는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계속 접수만 하겠지...단순히 '일'만 하다 오겠지. 봉투에 쓰여진 이름을 들여다보며 왜 이사람은 이 먼 데 있는 사람에게 이걸 보내는걸까, 어떤 사연이 있는걸까, 하며 상상하는 건....꿈꿀 수도 없겠지.... 뭐, 암튼 우체국에 다녀왔다는 거다.




나 아직도 피자를 못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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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2015-05-0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역!

다락방 2015-05-06 15:58   좋아요 0 | URL
아 맞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머큐리 2015-05-06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는 책을 이제야 알게 된 기념으로 지르려 갑니다...ㅎㅎ

다락방 2015-05-06 16:24   좋아요 0 | URL
많이 늦으셨네요, 머큐리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로그인 2015-05-06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피자를 못먹다니요!!! 버럭!!!

다락방 2015-05-06 18:12   좋아요 0 | URL
시무룩.............................

blanca 2015-05-06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런 솔직함이 좋더라고요. 다락방님의.

다락방 2015-05-07 10:51   좋아요 0 | URL
어머. 블랑카님도 참. 부끄럽게 왜이러세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개 2015-05-0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과장님!!



아 이제 이차장님 이시죠?
승진 축하합니다!!!

동네방네 소문나랏^^

다락방 2015-05-07 11:03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덕에 동네방네 소문난듯요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일요일에 피자 먹을 생각에 들떴습니다. 꺅 >.<
와인 사둬야겠네용. 다 떨어졌는뎅. 우히히히히.

nomadology 2015-05-07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알라딘에서 사면 재밌는 책이야 읽을 수 있겠지만, 저자 사인 같은 건 없는거겠죠?

다락방 2015-05-07 11:06   좋아요 0 | URL
아...네. 알라딘에서 사면 저자 사인이 되어있진 않지만, 주문해서 제게 보내시면 제가 사인해서(응?) 택배로 보내드리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방법을 몇 번 써보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뭔가 엄청 부끄럽네요 써놓고나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재미있는 책입니다!
라고 말했는데 재미없어도....절 미워하진 마세요. ㅠㅠ

붉은돼지 2015-05-07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차장님!!! 승진 축하드려요^^
보고 또 봐도 그렇게 재미있다는 그 책도 곧 주문할거예요~~ 이차장님은 영업에도 재능이 탁월하신 것 같아요^^
앞으로 부장, 이사, 사장으로 승승장구하시길 기도합니다 ㅎㅎㅎㅎ

다락방 2015-05-07 11:07   좋아요 0 | URL
제가 원래 차장되기 전에 퇴사하는 것이 저의 목표였는데 말입니다. 어느덧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하아- 시간이 흐르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입니다. 어쨌든 이제는 부장 되기 전에 퇴사하는 걸 새로운 목표로 잡고 일하겠습니다. 불끈! ㅎㅎㅎㅎ

축하, 고맙습니다.

그렇게혜윰 2015-05-07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우셔요^^♥
승진도 축하드려요^^

다락방 2015-05-07 11:08   좋아요 0 | URL
아니, 제가 내일모레 마흔인데(정말로!!) 귀엽다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귀여움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인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축하 고맙습니다. 히히.

개인주의 2015-05-07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괄량이 다락방님. 상상을 해봅니다. ^^

언니가 편지봉투로 (편지아님..-_-) 뭔가를 보낸 적 있는데
봉투 엉덩이에 메모가 꼬깃꼬깃 적혀있길래 이건 모다? 하고
살펴보니 아는 사람이 우체국 창구서 봉투를 받고 보니 너한테 가는 거라
한자 적는다고. 안부를 적어보냈더라구요.
신기하고 재미있고 그랬어요.^^

다락방 2015-05-07 11:08   좋아요 0 | URL
오, 스누피님, 그런 우연이 다 있습니까? 진짜 신기하네요.
크- 이런 사연을 듣고 나니 우체국에서 일하는 건 정말 낭만적인 요소가 있긴 하구나, 새삼 생각하게 되네요. 헤헷.

테레사 2015-05-07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영화는 혹시 브라질 영화, 중앙역이 아니었나요?...ㅋㅋ 저도 기억이 안나긴 하는데..암튼...정말 소소한 일상이지만, 너무 재밌어요..다락방님은 어떤 분일까? 자꾸 궁금해져요..정말이지 궁금해져요..

다락방 2015-05-07 11:54   좋아요 0 | URL
네, [중앙역] 맞습니다, 테레사님! 제목이 너무 생각안나서 미칠 뻔 했네요. 근데 제일 처음에 댓글 달아주신 소금꽃 님께서 중앙역! 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ㅎㅎㅎㅎㅎ
알라딘은 이래서 좋아요. 기억 못해도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서 알려줍니다 ㅋㅋㅋㅋㅋ 알라딘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

저는 그냥 책과 술과 남자를 사랑하는 보통 여자사람 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테레사 2015-05-07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그냥...뭐,

다락방 2015-05-07 12:38   좋아요 0 | URL
부끄러워마셔요. 테레사님 ㅎㅎ
점심 맛있게 드세요!!!

transient-guest 2015-05-08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쓴 다음의 자신과 그 전의 자기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꼭 일생에 한번은 써보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궁금해요, 그 세계가...ㅎ

다락방 2015-05-08 08:33   좋아요 0 | URL
음...그 전의 저와 지금의 제가 엄청난 차이가 있는지는....잘 모르겠어요. ㅎㅎㅎ 있나? 그런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제가 좋아서 시작한 게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는 사실이 좋아요. 이걸로 돈도 잘 벌면 진짜 더 좋겠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15-05-08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다락방님 책도 있었군요. 이 책이 말로만 듣던 읽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는?.. ㅎㅎㅎㅎ 얼른 3쇄가 나오길 빌며 구입. ^^

다락방 2015-05-08 18:0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맙습니다. 블랙겟타님께도 재미있는 책이 되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걱정이네요. 흐흣
 
혼불 7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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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읽는중인데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이 책 8,9,10권을 계속 읽어야 하나 여기서 멈춰야 하나 고민된다.
이번 책엔 무려 납치..도 있어. 아....너무 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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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5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05-06 10:36   좋아요 0 | URL
이거 스트레스 받아서 읽겠어요, 어디? ㅠㅠ
게다가 두드려맞아서 피흘리는 노비들 얘기도 나오는데 하아- 어떻게 끝까지 읽죠? ㅜㅜ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동안 감았던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것. 그 사실을 알려주는 책. 결코 쉽지 않게 읽히지만 삶 역시 그러하므로 자꾸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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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성매매'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건 아마도 나 스스로도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그런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정리되길 바랐는데 책에서도 이렇다 저렇다 한 쪽으로 결론을 내려주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은 아직도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어느 한쪽의 편에 선다는 게 때로는 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실감한다. 성매매에 대해서 '안되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혹은 '그렇지만 왜?'라고 묻고는 스스로 대답을 내릴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어도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가부장제(인종주의, 계급 차별‥‥‥)는 일종의 색안경이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육안이 되어버린 그 색안경을 벗어야, 여성의 현실이 보인다. 눈을 감아야 보인다. 나는 갑자기 색안경이 `벗겨져서` 눈이 먼 상태인데, 그는 이제 다 보이니 얼마나 좋으냐, 그러니 그만 보라고 말한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는데, 내가 연단으로 나오는 사이, 세상은 내가(여성이) 말하려고 폼 잡는 것 자체에 이미 충격받은 듯했다. 나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평소 여성주의를 이해하는 동료라고 믿었던 그에게마저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이지 절망스러웠다. (p.21-22)

여성주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더욱이 편안할 수는 없다. 다른(alternative)렌즈를 착용했을 때 눈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여성주의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배 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지지해준다(empower). 여성주의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대안적 행복, 즐거움 같은 것이다. (p.23)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남성의 경험과 기존 언어는 일치하지만, 여성의 삶과 기존 언어는 불일치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등 없이 수용된다. 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 공동체에, 전 인류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제공한다. 남성이 자기를 알려면 `여성 문제(젠더)`를 알아야 한다.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다. 여성이라는 타자의 범주가 조재해야 남성 주체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p.23)

모든 물음은 질문하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질문 내용은 질문자의 입장과 관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물음에는 이미 특정한 형태의 답이 전제되어 있다. (p.26)

물론, 남성들도 같지 않다. 남성들 중에는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지식인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남성들은 개인 혹은 인간으로 간주되지만, 여성들은 여성으로 여겨진다. 여성이나 페미니즘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자 내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억압이다. 여성들 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여성 해방이다. 여성을 여성으로 환원하는 것이 가부장제이기 때문이다. (p.29)

"남성적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질문에, "당연하지요, 세상에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라고 답한 프랑스의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Luce Iregaray, 1932~, 서구 전통 철학의 `남근이성중심주의` 사유를 비판하는 프랑스의 페미니즘 철학자)의 말대로, 세상에 하나의 목소리만 있을 때는 다른 목소리는 물론이고, 그 한 가지 목소리마저도 알기 어렵다. 의미는 차이가 있을 때 발생하며, 인식은 경계를 만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p.44)

하지만 여성들은 안다. 장애인이나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권리를 주장할 대와는 다르게, 자기 권리를 외치는 여성을 사회가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여성에게는 언제나 권리보다 도리(의무)가 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사실을‥‥‥. (p.47)

여성이 자궁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면 성대가 있는 사람은 모두 오페라 가수가 되어야 하는가? 성대를 가진 사람이 가수가 되는 것은 선택과 노력의 결과이듯이, 어머니가 되는 것 역시 개별 여성들의 선택에 따른 문제이다. (p.58)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개인으로서 여성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라는 생각 대문에 여성은 다 같다고 간주된다. 그래서 한 여성의 실수나 무능력은 언제나 전체 여성을 욕 먹이는 일이 된다. (p.59)

모든 여성이 어머니의 의무나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출산은 전쟁에는 미달하되 전쟁만큼 사망률이 높은 유일한, 위험한 사회 활동일 뿐이다. (p.61)

우리 사회가 여성을 그토록 어머니로 호명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머니로 간주되는 여성은 성적 주체가 될 수 없고, 자신의 몸을 가질 수 없다. 그녀의 몸은 남성만이 주체가 되는 가족과 국가의 소유다. (p.65)

문제는 어머니의 권력과 여성의 권력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지위가 높은 사회일수록 여성의 지위는 낮다. 어머니는 아들의 대리인이다. 고부 갈등은 여성과 여성의 갈등이 아니다. 시어머니/며느리는 여성의 관점에서 비롯된 정체성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맺고 있는 힘의 관계를 설명할 뿐이다. 어머니의 권력은 결국 출세한 아들의 권력에서 나온다. 어머니의 행복한 삶은 잘난 아들을 통해서(정확히 말하면 아들의 아내의 노동을 통해서) 보장된다. 그런 어머니가 남녀고용평등법을 찬성할 리 없다. (p.70)

대개 남성들은 인과 관계나 의사 전달 위주의 말하기 방식(report-talk)에 익숙하지만, 여성들은 원칙적이기보다는 맥락적이고 공감하는 말하기 방식(rapport-talk)에 능하다. 이제까지 여성들의 말하기 방식은 열등하거나 비논리적, 사적이라고 비하되어 왔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여성적 방식`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 민주주의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84)

만에 하나 그녀가 당선되더라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 운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녀의 정체성은 공주이지, 여성도 시민도 아니다. 아무리 과거사 `해결책`을 제시한다 해도 진정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녀의 대권 도전 자체가 `충과 효의 갈등`이라는 시대착오적 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인간 박근혜`의 불가능성. 이것이 그녀의 실존이자 한국 현대사다. `대통령 박근혜`는 여성도 새통령이 될 수 있다는 근대 민주주의의 성과가 아니라 신분 사회의 부활이다. (p.100)

《남자-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의 저자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많은 여성들이 남자와 연애할 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상대방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자신 속에 내재된 풍부한 감성과 사랑의 능력을, 상대 남자의 매력으로 오인한다는 것이다. (p.104)

남성은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성욕이 생기지만, 분노했을 대 성 욕구가 일어나는 여성은 거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가 남성의 입장에서 해석된다는 데 있다. 남성은 성폭력 상황에서 여성의 목숨을 건 저항을 `자극`으로 이해하고 수용한다. 가정폭력의 경우,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들은 자기가 아내를 `힘들게 가르쳤다`고 생각하고, 아내에 대한 폭력을 남편의 성역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가해자인 남편은 `부부 싸움 후 섹스로 화해` 했다고 만족하지만, 피해자인 아내는 `구타 후 강간` 당했다고 생각한다. (p.108-109)

섹스와 음식 만들기는 가부장제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노동이다. 즉, 음식과 성을 노동으로 강요받는 사람은 여성이지만, 여성은 음식과 성을 즐길 수도 없고 욕망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남성은 수천 년 전부터 생식이나 쾌락, 자기 실현 등 다양한 차원에서 성을 즐겨왔지만, 여성의 성은 지금까지도 출산의 영역에 한정할 것을 강요받는다. 여성의 성욕이 부계 가족 유지-아들 낳기만을 위해 허용되듯, 여성의 식욕이 찬양되는 시기는 임신했을 때뿐이다.
남성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동시에 달성하기 힘든 이중 메시지인 경우가 많다. 음식을 만들되 먹지 말라, 말라갱이가 되되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하라, 정숙하면서도 섹시하라 ‥‥‥. 식욕, 성욕, 수면욕은 인간의 3대 욕구가 아니라 남성의 3대 욕구인 셈이다. (p.112-113)

현행 성폭력 특별법에서 강간은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에 삽입되었을 경우에 한정된다. 성폭력을 피해자의 인권 침해가 아니라 `임신 가능한 부녀자 보호`라는 가부장적 시각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대에서 남성 간 성폭력, 성 전환자에 대한 강간, 여성 성기에 이물질 삽입 등은 강간이 아니라 추행죄가 적용되어 강간보다 형량이 낮다. 피해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 전환자든, 성기 삽입이든, 이물질 삽입이든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인권 침해이고 성폭력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임신 가능한 부녀가`만을 `여성`으로 볼 때, 성폭력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가 아니라 남성 각자가 소유한 `임신 가능에 대한 부녀`에 대한 침해죄-`사유재산권` 침해-가 된다. 이러한 문화적 규범 때문에 성폭력 특별법이 있어도 아내나 성판매 여성에 대한 강간은 처별하기 어렵다. 자기 아내나 성판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다른 남성의 `가임 가능한 부녀자`가 아니므로 남성 연대의 가부장제 질서를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p.17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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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4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5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6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6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5-05-06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性매매의 논란은 이전 대부분 사람이 성을 인격으로 즉 도덕의 기준을 보다가 현재에는 비非인격, 즉 노동으로 간주하면서 의견 차가 발생했죠. 기본적으로 도덕의 기준의 임의적이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15-05-06 18:13   좋아요 0 | URL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 찬성과 반대를 말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립간 2015-05-07 07:46   좋아요 0 | URL
이번 대화/논란과 관련하여 다락방 님께는 좀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엉겁결에 엉켜 들어오셨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다락방 2015-05-07 11:33   좋아요 0 | URL
아뇨, 저도 관심이 있었는걸요. 괜찮습니다.
 

똑똑, 하고 내 남동생이 내 방문을 노크했을 때, 나는 양 손에 각각 4kg 짜리 덤벨을 들고 스쿼트 중이었다. 헉헉 숨이차가며 들어와, 라고 말했고 남동생은 들어와서 '엽기 떡볶이 주문할 건데 무슨 맛으로 할까' 물었다. 나는 보통맛 있으면 보통맛으로 하라고 간신히 말을 끝마친 뒤, 온 김에 나 자세 좀 봐줘, 라고 말했다. 그러자 스맛폰으로 메뉴판을 보고있던 남동생은 고개를 들어 나를 잠깐동안 보았고, 그러더니 말했다. '잘하고 있어, 그대로 해' 라고. 앗싸. 내 자세가 제대로 됐을 거라는 건 사실 하면서도 알고 있었지만, 잘하고 있다는 말이 필요했다.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일을 더 잘하게 된다.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면 그 일을 더 잘해내고 싶어지는 거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도 국어를, 영어를, 일어를 잘했다. 선생님들이 칭찬해줬고, 칭찬해주면 나 이렇게 잘한다고 보여주고 싶어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못한다'고 생각하고 정말 못해서 혼났던 과목들은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세계지리........씨양-



나는 영어를, 일어를, 국어를 앞으로도 내내 잘할 줄 알았다. 마스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자 나의 영어는 영어 축에도 끼지 못했다. 그저 교과서만 잘 했던 내가 무슨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겠는가. 대학에 가자 어학연수며 해외여행이며 어릴때 잠깐 살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던 애들이 툭툭 튀어나왔고, 그 애들은 교수랑 영어로 대화를 하더라..왓츠 유어 네임? 에만 답할 수 있던 나로서는 멘탈에 충격이 왔고..그래서...어차피 여기서 내가 영어 공부 해봤자 '잘한다'는 칭찬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영어에 손을 놔버렸고, 그래서 지금은 영어멍충이가 되었다...일본어는 쓸 일이 없으니 이제 히라가나를 읽을 수도 없게 되고.... 역시 사람은, 특히 나는, 칭찬해줘야 더 잘하는 그런 단순한 인간인 것 같다. 하아-





주말에 영화 [나쁜 사랑]을 보았다. 일전에 친구랑 극장에 갔다가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게됐고, 보자보자 며 호들갑을 떨다가 찾았던 것. 포스터에 쓰인 '당신은 내 심장을 멎게 해'는 좀 오글거리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왜 저런 카피여야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심장이 멎는 걸 알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진짜 .. 병맛이었다. 하아-


다 보고나서 친구에게 짜증난다고 하자 친구도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 라고 했다. 하아- 결국 우리는 지하철 역까지 걸으며 이 영화에 대해 뒷담화를 해댔고, '다음에 좋은 영화를 봐서 이 기분을 만회하자'고 했다. 하아-


그러니까 여자는 우연히 늦은 밤 남자를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밤새 같이 걷고 이야기하고 담배 피우며 '다음에 파리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던 이들은 그러나 엇갈린 채 파리에서 만나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자는 남자친구랑 미국으로 떠나고 남자는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런데 남자가 결혼하게 되는 여자가 공교롭게도 여자의 친동생이다.


결혼 바로 직전에야 남자는 자신의 아내될 사람이 그녀의 여동생이란 사실을 알게되지만 번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결혼식장에서는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도저히 아내에게 집중할 수가 없다. 결혼식에 참석한 그녀는, 참석한 후에야 동생의 남편이 '그'라는 것을 알게되고, 짧은 일정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남자는 아내와 함께 아이를 낳고 행복한 일상을 산다.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고 시간이 지나, 아내의 엄마 생일이 되었고, 그 생일파티에 언니가 참석한다는 걸 알게 되자 또 흔들흔들한다. 그리고 엄마의 생일에 만나게 된 그와 그녀는 눈에 불꽃이 튀고 감정을 전달하고, 정원의 으슥한 창고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언니와 동생은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언니는 지금 이 일이 몹시 괴롭다. 괴로운데 이 남자를 사랑한다. 히융-



다같이 엄마의 집에 머무르던 중, 동생과 조카와 엄마가 잠깐동안 집을 비운 사이, 남자는 이 언니가 혼자 있는 방에 문을 열고 들어온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이러면 안돼, 라며 잽싸게 자기 방에서 도망치고, 그때 마침 나갔던 가족들이 돌아온다. 이 장면이 가장 빡치는 장면이었는데, 아니, 대체 왜, 언제 가족들이 돌아올지 모르는 이곳에서 저 남자는 저렇게 그녀의 방문을 연거지? 왜 그방으로 들어간거지? 하고 자꾸 신경질이 난거다. 친구도 이 장면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고 했다. 게다가 모두 다같이 산책가게 되었을 때는 산속에 있는 동굴에서 둘이 또 만나 또 사랑을 확인하고..



결국 미국으로 돌아갈 일정을 늦추게 된 그녀는 그와 밀월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러면서 그에게 말한다. 자신의 동생, 그러니까 그의 아내에게는 이 일을 결코 말하지 말아달라고, 동생이 알면 자기는 죽어버릴 거라고, 자기는 동생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이 자매는 몹시 사이가 좋았고 서로를 끔찍이 생각하는 사이었는데, 게다가 동생은 언니를 크게 의지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동생의 남편과 사랑하는 자신이 얼마나 야속하고 또 이 상황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이런 모든 복합적인 감정으로 그녀는 그에게 묻는다. 


왜 하필 내 동생을 선택했어요?



라고. 그런데 하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답변을 그가 한다.



내가 당신 동생을 선택한 게 아니에요.



야! 이런 병맛... 이건 뭐야..허세야 뭐야. 니가 선택한 게 아니라니, 니가 선택해서 결혼했잖아, 병신아. 난 이 장면에서 짜증이 폭발했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대입하기'를 해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동생의 남편이 되었다. 그것이 야속하고 서운해 그에게 묻는다. 너 왜 하필이면 내 동생을 택한거야? 그런데 남자가 '내가 그녀를 선택한 게 아니야, 그녀가 나를 선택한거지' 라고 대답한다..... 야, 이 씨방새를. 있던 정이 다 떨어질 것 같다. 내 여동생과 사는 남자가, 내 여동생을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 '걔가 하자고 해서 했어' 혹은 '걔가 나를 좋아해서 그랬어' 라고 한다면...나는 내 사랑도 식을 것 같고, 내 여동생을 위해서도 화가 날것같다. 겨우 이따위 놈이랑... Orz


하아- 너무 짜증이 나는 거다.



돌아오는 길, 곰곰 생각해봤다. 나는 이런 적이 없었던가?

있었다. 왜 그를 사귀냐는 물음에 '그가 나를 좋아해서' 라고 답한 적이 물론 있었다.

게다가 이성을 잃고 가족들이 다같이 머무르는 집에서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는 남자가 짜증났다고 했지만, 나 역시 사랑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은 적이 있지 않던가. '그러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라고 뒤늦게 생각한 일이 내게도 있지 않은가. 

내가 스트레스 받고, 내가 짜증났던 영화속 상황들을, 내가 한 적도 있지 않은가. 후-



나는 내가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이란 걸 안다. 그래서 항상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이성을 끌어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잘 생각해봐, 침착해, 하고 스스로에게 정말이지 겁나게 많이 말한다. 내가 사랑에 빠져 둔하게 행동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다. 그렇다고 해도 언제나 냉정하고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서 생각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때가 있었다. 아니, 많았다. 사랑에 빠져 간이고 쓸개고 내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주체적으로 사랑할 것이다...라지만 속절없이 끌려가기만 한 적도 있었다. 

영화속, 언니의 방문을 열던 남자도.... 이성이 없었던 건 아닐텐데...

그의 찌질하고 멍청한 모습들은, 전부 나였다.



그래도, 이 영화는 짜증나고 스트레스 이빠이 영화였다. 하아-








토요일에 만난 친구는 내게 꽃을 주었다. 눈 앞에서 꽃을 받다니. 아니, 이게 얼마만이야!!



기쁜 마음에 집에 가서는 꽃을 꽂았다. 마땅한 화병이 없어 생수병으로 대신했다.



이틀이 지난 오늘 아침엔, 꽃들이 더 활짝 피었더라!






어제는 문득, 우리집 저울이 고장난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kg 이라고 쓰여진 덤벨을 저울 위에 올려놔 보았다. 그러자 정확히 3kg 라고 찍히더라. 저울은 고장나지 않았구나...



저울은 고장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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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5-04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화보고 싶었는데~ 고민이 되기시작합니다~ㅎㅎ 처절한 사랑이 아니라 짜증나는 사랑인것 같아서 ㅎㅎ

내가 당신동생을 선택하지 않았어. 최고의 변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락방 2015-05-04 15:07   좋아요 0 | URL
저도 뭔가 처절한 사랑이라 감정이입 제대로 해서 막 안타까워하고 그럴거라 생각했는데 그다지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더라고요. 캐릭터가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너무 싫죠,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라는 변명이요. 구질구질해요 진짜. -_-

2015-05-04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4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5-05-0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나쁘네요. 안 봐야할 것 같아요. 짜증 제대로일 듯

다락방 2015-05-04 15:09   좋아요 0 | URL
저도 실제 여동생이 있고 여동생과 사이가 좋아서인지 감정이입이 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봤어요. 만약 저 둘이 `자매`가 아니라 `친구`였다면 다르게 느꼈을까? 하고요. 그래봤자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에서는 어김없이 빡쳤을 것 같아요. -_-

붉은돼지 2015-05-04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좌절하지 마세요...
언젠가 한번은 고장나줄 거예요....아마도..^^;;;;

다락방 2015-05-04 15:10   좋아요 0 | URL
멀쩡한 저울에 올라가서도 씨익 웃을 수 있도록 제가 저를 어떻게 해봐야 겠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치니 2015-05-06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를롯 갱스부르때문에 보고 싶었던 영환데, 흠. 별론가 봐요. 갱스부르가 동생이에요?

다락방 2015-05-06 10:35   좋아요 0 | URL
저도 갱스부르 때문에 보고 싶었던 거였어요. 갱스부르가 언니 입니다. ㅎㅎ 갱스부르는 진짜 쿨슄해요. 머리도 안빗는 것 같고 완전 씨쓰룩에 그냥 옷도 신경 안쓰는 느낌? 그런데 참 예쁘네요.
저는 엄청 별로였는데 치니님은 또 저랑 영화보는 게 다르시니까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어요. 치니님 보세요! 보시고 말씀 좀 해주세요!

비로그인 2015-05-0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덤벨이 3kg 가 아닐지도!?
모던클래식도 아름답네요♥.♥

다락방 2015-05-06 18:13   좋아요 0 | URL
덤벨이 고장난걸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