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한 것중 가장 좋아하는 와인이 뭐예요?"
"61년산 슈발 블랑이요."
"와우. 그걸 어떻게 마시지 않고 두고만 있을 수 있죠?"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사람과 마시고 싶어서요."
"당신이 그걸 마시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인거예요."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보잘것 없다고 느꼈던 마일스는 와인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이다.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을 앞두고 마일스는 와인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마야란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와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좋아하는 와인 '61년산 슈발 블랑'을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사람과 마시고 싶다는 마일스. 그런 그에게 마야는 당신이 그걸 마시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라고 얘기한다.
마일스에게 곧 61년산 슈발 블랑을 마실 기회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가 61년산 슈발 블랑을 마시는 그 특별한 순간은, 그가 가장 작고 초라하고 볼품없게 느껴진, 가장 쓸쓸했던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61년산 슈발 블랑을 허락함으로써, 그 바닥으로 떨어진 비참한 순간을 순식간에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물론, 그 특별한 순간을 경험했다고 해서 마일스의 상황이 변한것도 아니고, 마일스가 갑자기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느낀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자신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물함으로써, 자신에게 그정도의 사치를 허락함으로써, 조금쯤 더 살아갈 힘을 얻었을 뿐이겠지. 조금쯤 더 힘을 얻고 살아가게 될 순간이 다만 몇시간이든 혹은 몇년이든 괜.찮.다. 좌절과 쓸쓸함과 외로움이 또다시 마일스를 휘청거리게 하면, 그때는 또다시 61년산 슈발 블랑을 잔에 따라 마시면 되니까.
나에겐 아직 61년산 슈발 블랑이 없다. 내가 아주 약해지고 아주 작아지고 아주 쓸쓸해질때를 대비해서 61년산 슈발 블랑을 만들어 두어야 겠는데, 대체 내게는 무엇이 61년산 슈발 블랑이 되어줄 수 있을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누군가가 나의 61년산 슈발 블랑이 되는것이 가능할까? 혹은 내가 누군가의 61년산 슈발 블랑이 되는것은, 그것은 가능할까?
내가 좋아하는 한 친구는 이 영화속에서 마일스가 61년산 슈발 블랑을 마시는 순간을 '내가 본 모든 영화 중 가장 멋진 부분' 이라고 말했었다. 내 생각도 별로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