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으러 콩나물국밥집에 가기로 했다. 거기는 돈까스가 맛있는데, 내가 얼마전에 돈까스 금지를 스스로 내린 상황이라 이걸 깨야하나 말아야 하나, 겁나 갈등중이다. 콩나물비빔밥도 좋다. 이건 되게 건강건강한 느낌을 주는데, 비벼먹는 장도 고추장이 아닌 양념간장이다. 그런데 이건 다 먹고나서 충분한 포만감을 주지 않아 망설여진다. 공식적으로 다이어트중인 나로서는 콩나물비빔밥을 택하는 게 당연한데, 나의 육체는 돈까스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갈등... 좋지 않아..
암튼 조금 더 고민해볼 일이다.
'성석제'의 [투명인간]을 읽었다. 읽으면서 내도록 답답했다. 왜 어떤 사람들의 희생은 당연한 것인지, 왜 어떤 사람들의 민폐 역시 당연한 것인지, 이걸 고민하다보면 결국 당연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있는 놈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희생과 민폐 모두 '없는 자'들의 것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기대하고 보답하고 매달리고 행패부린다. 그렇게 순환해봤자 그들의 삶이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제자리에서 맴맴 맴돌거나 더 나쁜 곳으로 발을 들여놓게 될뿐.
콩나물국밥 얘기를 꺼낸 건, 이 책의 초반에 맛깔스런 음식에 대한 묘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아, 이런 문장을 읽는 건 정말 신난다. 한국 소설이 좋은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한국 소설 속에 묘사되는 음식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같은 콩으로 담근 장이라도 엄마가 담근 간장,된장,고추장은 온 마을에서 맛있기로 소문났다. 우리가 캐간 나물을 그 장으로 무치거나 고추장 발라 굽거나 된장을 넣어 국으로 끓이거나 간장, 고추장에 넣어 장아찌를 만들거나 해서 반찬으로 먹으면 어떤 부잣집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게 맛있었다. 김장을 할 때 우리 집은 무를 넣은 독을 땅에 여럿 묻었다. 동치미가 아니라 짠지였다. 무를 깨끗이 씻고 소금 간을 했을 뿐인데 그게 잘 익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한겨울 밤에 그 무를 쫑쫑 채 썰어 양푼에 담고 밥에 고추장을 넣어 썩썩 비벼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으면 어떤 고생도 같이 견뎌나갈 만한 것처럼 생각되곤 했다. 처마 밑 그늘에 매달아 겨울 찬바람에 얼었다 녹았다 하며 잘 마른 무시래기에 된장을 풀어 끓인 국은 겨울 저녁의 추위를 달래주었다. 김치를 잘게 썰고 참기름에 살짝 볶은 뒤 남은 밥을 넣고 끓인 뜨끈한 김치죽은 겨울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별미였다. (p.49)
위에 까지는 어제 써놓은 건데 쓰다가 갑자기 쓰기 싫어져서 중단했었다. ㅎㅎ 그런데 오늘 아침에 아침밥 먹는데 갑자기 똭- 생각나는 거다. 오늘 아침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혼자 잠에서 깨어 혼자 아침밥을 차려 먹어야 했는데, 내가 준비한 반찬은 엄마가 만들어두신 오이부추김치와 아빠가 출근전에 나 먹으라고 해두신 계란프라이, 그리고 내가 부랴부랴 준비한 프랑크 소세지... 아. 이것들과 함게 따뜻한 밥을 먹는데, 바로 여기가 지상낙원 아닌가! 어제는 평소보다 이십분 먼저 일어나서 김치 총총 썰고, 스팸 썰고, 콩나물 무침과 고추장을 넣고 올리브유를 프라이팬에 둘러 밥을 볶았다.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 퍼 먹은 다음에 또 퍼먹는데, 남동생이 보더니 '또먹냐' 라고 했다. 나는 진짜 아침에 먹기 위해서라면 일찍 일어나는데 먹다가 출근하기 위해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는 일은 너무 힘들어. 오늘도 프랑크 소세지와, 부추오이김치와, 계란프라이를 먹는 아침이 너무 맛있어서 일어나기 싫어 혼자 끙끙 거렸다. 이 얘길 동료직원에게 하니 마치 호텔 조식처럼 먹었다고 하더라.
여튼 그래서 어제는 콩나물비빔밥을 먹었고,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아직 아침 때문에 배부르지만 고민해봐야겠다.
성석제의 저 음식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어어, 성석제가 어딘가에서 음식으로 또 나 홀랑 맛가게 했었는데? 싶어 검색해보니 [단 한번의 연애] 였다. 거기에서는 '물회'를 얘기하다가 나로하여금 정신을 잃게 했지. 나는 물회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처음에는 집 안의 부엌 딸린 방에 손님을 받았다. 고만고만한 식당이야 이미 포화상태라고 할 만큼 많았기 때문에 단골을 늘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어머니는 해녀였다. 어떤 해산물이 싱싱하고 맛있는지, 싸면서도 구하기 쉬울지 누구보다 먼저 알았다.
포항의 항구에는 아침마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연안에서 잡은 가자미, 청어, 열기, 삼치, 쥐치, 도미, 오징어 등을 실은 어선들이 즐비하게 정박했다. 어부들은 조업을 나가면서 채소와 물, 초장 등을 배에 실어 가지고 바다로 갔다. 물고기가 일단 잡혀 올라오기 시작하면 굶어도 허기를 모르고 옆에서 인어를 따라 용궁으로 사라져 가도 모르는 게 인지상정이다. 밤중부터 새벽까지 그물을 당기고 물고기를 끌어올리던 그들은 한껏 허기가 지는 새벽에 참을 먹기 위해 갑판에 앉았다. 잡아 올린 물고기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그릇에 넣고 시원한 오이며 채소를 푹푹 썰어서 더하고 고추장을 넣어서 쓱쓱 비빈 뒤에, 빨리 먹기 위해 물을 그득 부어서 나눠 먹는 것, 그게 어머니가 내놓은 물회의 원래 모습이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직접 물질로 잡은 해삼, 멍게, 소라, 성게 같은 해산물까지 물회로 만들어 내놓음으로써 해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유명해졌고 손님은 급증했다. (단 한 번의 연애, p.57)
크- 음식에 취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계속 음식 얘기를 하자면, 일전에 나의 친구 미숙이가 우래옥에서 평양냉면을 맛보게 해준 뒤로 계속 평양냉면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다. 주말에 늘 먹던 자극적인 시장의 냉면을 먹었지만, 이젠 그 냉면이 예전만큼 좋질 않아진 거다. 아, 평양냉면의 슴슴함을 내가 그리워하게되다니. 나로서도 놀랄 일이었다. 계속 입에 평양냉면을 달고다니던 월요일, 동료와 점심으로 평양냉면을 먹기로 했다. 마침 회사 근처에 '장충동 평양면옥 도곡점'이 있는 거다. 그간 늘 지나쳐왔건만, 여기가 바로 평양냉면 집이었어! 사람은 역시 관심을 가져야 보이는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평양냉면 집에 가서는 호기롭게 물냉면 두 개를 주문하고, 11,000원이나 하는 만두도 주문했다.
냉면육수가 맑은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짜 '슴슴하다'. 애초에 미숙이로부터 '슴슴하다'는 표현을 들어서 그런지 슴슴하다 말고 다른 표현을 찾을 수가 없더라. 슴슴하고, 두번째 먹어보는 평양냉면은 고소했다. 면을 씹을수록 고소한 거다. 크- 역시 좋아, 라고 먹었다. 그치만 우래옥이 좀 더 맛있는 듯? 그래도 장충동 평양냉면도 나쁘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데, 평양냉면을 처음 접해본 e 양은 다데기를 달라고 하는 거다.
아, 님하...그 강을 건너지 마오........
나는 너무나 안타까워서, 저기, 한 세 젓가락 정도만 더 먹어보고 다데기 넣으면 안될까? 라고 애원했고, e 는 내 말대로 두 젓가락인가 세 젓가락을 먹더니 이내 다데기 투하...그리고 결국 남겼..... 하아- 안타까워. 속상하다.
그렇지만 이해된다. 몇년전 친구들 세 명을 이끌고, 여기가 유명한 냉면집이래, 줄서서 먹는대, 하고 나를 포함해 네 명이서 을밀대 들어갔다가 앗, 이게 뭐냐 싶어 다들 먹지못하고 남기고 나왔던 일이 있지 않던가. 몇년 전 처음 만난 평양냉면은 낯설고 별로였던 거다. 그러니 처음 접하는 e 가 다데기를 넣었다고 해도,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일 밖에...
여튼 다른 동료직원도 먹어보고 싶다고해서 조만간 이 직원과 함께 또 가볼 생각이다. 으흐흐흐흐.
암튼 모두의 예상대로 나는 다 먹었다.
만두가 없었으며 저 육수도 다 마셨을텐데 만두 때문에 배가 불러가지고...그런데 만두는 별로였다. 만두도 슴슴하고 담백한데, 피가 두꺼워서...만두는 .. 어떤 만두든 간에 나는 피 때문에... 배가 부르면 피를 안먹고 남긴다. 이날도 피가 너무 두꺼워서 속만 건져 먹었.... 두꺼운 피는 딱 질색이다. 이런 어떤 밀가루밀가루 하는 그 느낌은 싫어...수제비, 칼국수 같은 거...싫어... 안먹는 건 아니지만...
지난번에 미숙이랑 우래옥 갔다가 노가리집으로 걷는 길에 을지면옥을 봤는데, 을지면옥도 한 번 가봐야겠다. 으흐흐흐흐. 난 이제 어쩐지 비빔냉면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야...하아- 그렇지만 또 앞에 있으면 싹싹 비워내겠지. 나란 녀자...
다시 한국소설 얘기로 돌아가서, 한국 소설을 읽으면 마치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것 같은 시원한 기분이 든다. 물론 모든 한국 소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것처럼, 한국어로 쓰여졌을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문장을 읽었을 때는 진짜 개운해지는 거다. 이건 대체 다른 나라 말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단 말인가. 애초에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보다는 번역된 소설을 읽는 일이 훨씬 더 많아서인지, 나는 내 글이 번역체(?)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내가 번역체의 글을 쓴다고 해서 번역체의 글이 더 잘 읽히는 것은 아니다. 성석제의 음식에 대한 묘사는 크- 입맛이 당기더라.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은 아마도 먹는 일이 아닌가 싶다. 잘 쓰여진 문장이라면, 실제 먹는 것보다 더한 기쁨을 주고, 실제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짜릿함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실제 비빔밥보다 성석제의 비빔밥이 더 맛있을 것이다. 왜, 야한 소설이 야한 영화보다 훠어어얼씬 더 야한것처럼.
지난번에 영화 [데미지]를 보고 마트에 가 치즈를 사두었다. 새로 나온 훈제치즈라는데, 이번 주말에는 훈제 치즈를 얇게 썰어놓고는 와인을 마셔야겠다. 벌써 입안에 침이 돈다. 와인을 사둬야겠구나. 히히.
베트남 국민 약 4백만명이 베트남전 당시 고엽제에 노출됐고 기형아 출산이 급증하는 등 부작용이 속속 보고되었습니다. 세계의 비난이 집중됨에 따라 1969년 11월 25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앞으로 미국은 어떤 종류의 세균전도 포기하며 현재 저장된 모든 생물학무기를 파괴하고 인간을 살상하는 화학무기도 선제사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한편 이날 미 정부 관계자는 보충설명을 통해 `현재 미국이 초원을 태워 적을 수색하고 농작물을 말라비틀어지게 하여 적의 식량 공급을 막기 위해 대량으로 사용하는 제초용 약품은 제네바 의정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참전국 장병들이 원인 모르는 병에 시달리며 고통을 겪고 죽기 시작했고, 미국에서는 이것이 엄청난 사회적 문제로 발전했습니다. 원인 모를 질병이 고엽제의 후유증인 것으로 판단한 미국,호주,뉴질랜드 3개국의 월남전 참전 환자 24만명이 미국정부와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미국 연방법원은 2억 4천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판결했습니다. (p.129)
(위로부터 계속) 독재정권하에 있는 한국에서는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소송 참가와 언론보도를 금지해 환자들 대부분이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참전용사들은 원인도 모르는 `베트남 풍토병`이라는 질병에 시달리다가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왜 자기가 죽어가는지 몰랐고 병원에서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살아보려는 본능 때문에 병원을 전전하며 가산을 탕진했습니다. 전우들 중 상당수는 더이상 가족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세계평화 수호와 국가경제 발전의 초석이 되었던 수만의 참전군인들은 고엽제라는 맹수가 제 모습을 철저히 숨긴 채 먹이가 먹음직스럽게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누리는 즐거움이 뭔지 알았을 무렵, 고엽제는 그들의 인생을 덮고 있는 한겹 허술한 거죽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바깥으로 뛰쳐나와 당사자뿐 아니라 온 가족을 인정사정없이 덮쳤던 것입니다 …… (p.129-130)
- 네 손에 들린 거, 그게 뭐냐? 만수는 내가 가르쳐준 대로 10월유신 개헌 투표에 반드시 참가해 투표를 하라는 취지에서 학교에서 붙이는 포스터라고 했다. - 투표는 국민 된 자의 타고난 권리다. 투표를 하고 안하고는 각자의 판단에 따르면 되는 일이다. 왜 국민과 역사 앞에 부끄러운 짓을 하며 왜놈들 명치유신을 빼닮은 개헌에 찬성하는 투표를 하라고 강요를 하는 것이냐. 그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을 시켜서 이따위 짓을 하고 있으니 국가 지도자요 대통령이라는 자가 한심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구나. 총칼로 권력을 잡고 젊은 목숨들을 남의 나라 전쟁에 팔아먹은 걸로 부족해 이제는 추악하게 종신 권력을 탐해? 나는 대통령을 욕하는 할아버지를 경찰서에 신고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숨을 죽였다. 만수는 언제부터인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였다.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제가 민주주의가 뭔지나 알며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역사의 죄가 제게 있는 줄이나 알더냐. 그걸 시키다고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너희도 무지몽매하기 짝이 없구나. 너희 나이가 몇이냐.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더냐. 백수가 있었으면 절대로 …… (p.136)
우리는 한때 자본주의와 국가의 이빨과 독재의 칼날 앞에 놓인 민중을 구하겠다는 뜻을 같이한 적이 있는 동지였다. 민중과 하나가 되어 평생을 살겠다는 각오를 나눈 사이였다. 그런 중에도 동지가 몸살로 정신없이 앓는 틈을 타서, 술에 취한 틈을 타서 성폭력을 가하고 나서 `내가 도장을 찍었다`고 하던 인간이었다. -우리 내부에서 이런 범죄적 사건이 일어난다는 걸 적들이 알면 우리는 완전히 코너에 몰리게 돼. 노동자 대중들한테도 신뢰가 무너질 거고. 학형, 깊은 반성과 참회로 무릎 꿇고 용서를 비시오. 그래, 실수다. 그럴 수도 있다. 한번은 그렇게 용서했다. 또 실수를 하고 또 기회를 줬다. 아이가 생겼다. 결혼을 했다. 실수투성이의 알량한 투쟁 경력 때문에 감옥에까지 갔다 왔다. 어쩌면 내 몫까지 합쳐서. 그리고 뭐? (p.318-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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