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중 일부분인데, 지금 여기 얘기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엠비를 대통령으로 두고 살았던 나라에서 '아 이럴 수도 있구나' 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우리의 국민성은 타락하지 않기를.

어제 시사인에서 이런 문장을 봤다.



하지만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정치 무관심에 대한 최고의 형벌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 이라는 잠언이 전하듯 총선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나의 삶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혐오만 하기에는 정치가 너무 중요하다. <시사인 제 443호 28쪽, 정리 김은진 기자>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나 몰라라' 하던 사람. 국회가 저모양이지 뭐, 정치야 뭐, 하던 사람. 나는 학생때 운동권이었던 것도 아니고 정말 귀를 닫고 살았었다. 한 번은 대학교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나는 '저런다고 등록금이 인하되나' 이러고는 지나쳤더랬다. 이런 일화를 들자면 수도없이 많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친구들에게도 말했었는데, 그 시절의 나는 '없는 사람' 이었다. 아빠가 말해주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인 줄만 알았더랬다. 그러나 정치가 중요하다는 걸 요즘에야 깨닫는다.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가 테러방지법 통과되는 걸 목격하고는, 이것이 내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될 수도 있겠구나, 한다. 그래서 대통령을 잘 뽑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아놓느냐 하는 것은, 그 대통령에게 표를 준 사람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악한 사람을 권력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표를 '주는'행위가 필요하다. 사생활에 대한 것도, 노동에 대한 것도, 그것들이 법안이 되어 통과되는 순간 내 삶에 아주 깊숙하게 침투한다. 나는 악한 사람의 지배를 받고 싶지 않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 악하고, 고집세고, 다른 사람과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권력을 주고 싶지 않다. 정말 그렇다. 



전남친 중에 한 명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는 '비학습 좌파' 라고(정확히 이런 워딩이었나??). 학교때 공부도 못했고 운동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살아가면서 생활에서 좌파로 변하고 있다고. 요즘의 나는 전남친의 그 말이 생각난다. 그때는 그런가, 했는데, 요즘에는 그렇구나, 한다. 내가 좌파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딱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뒤늦게야 좀 알게 되고 보이는 것 같다. 내가 '없었던' 시절을 돌려받고 그 때로 돌아가 더 열심히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지금의 나인채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면, 과거로 시간을 돌린다해도 나는 그때와 아마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똑같이 무심하고 똑같이 혐오하고 똑같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런 시간들을 거쳐서야 비로소 나는 지금의 내가 된 것일 거다.


유시민의 이 책이 진짜 참 좋다. 지금의 내게 맞춤한 책이다. 다 읽고나면 또 글을 쓰게 되겠지만, 어쨌든 좋다.



결과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더 악한 사람에게 권력을 주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거다. 그것이 투표라면, 나는 그것을 할 것이다. 지금도 나는 많은 주변 사람들, 나의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내가 젊은 시절에 무심해서 이 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들었는지도 몰라. 이 꼴 되지 않게 하려고 했던 당신들에게 미안해.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죄책감을 앞으로는 갖고 싶지 않고, 이런 미안함을 앞으로도 갖고 싶지 않다. 간혹 친구들에게 '너는 그때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니? 나는 몰랐는데' 라고 말하는데, 그럴때마다 과거의 나로 인해 미안해진다. 나이들면서 아주 많은 것들이 미안해진다. 페미니즘에 관심 없었던 게 미안해지고 정치에 관심 없었던 게 미안해진다. 내가 모르는 채로 지냈던 많은 것들에 대해 미안해진다.


엊그제는 오래전부터 유시민을 좋아했던 한 친구에게, 이제서야 네가 왜 그를 좋아하는지 알게됐다, 그동안 몰라봐서 미안하다, 라고 말했다.


나는 참 늦되구나..




그나저나

진선미 의원에게 표를 주고 싶은데 진선미 의원은 강동갑... 나는 강동을.. ㅠㅠ


테러방지법 통과되고나니 글 쓰는 게 쫄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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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애 2016-03-09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서민 교수님의 경향신문 칼럼을 보며 시원하긴 한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랑방 (뒷)담화 같다는, 우린 줄곧 그런 이야길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판은 하지만 절실하지 않은. 반성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아무개 2016-03-09 09:00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아침에 그 칼럼을 읽었어요. 아애님 말씀에 공감 백만개 드리고 갑니다...

다락방 2016-03-09 11:58   좋아요 1 | URL
음 저는 조금 생각이 달라요. 글을 쓰는 사람이 글로 하는 얘기, 그리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쓴 글은 이미 뒷담화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밖으로 퍼진 말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글을 쓸 때 제게 어떤 식의 악플이 달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그걸 매체에 발표하는 사람이라면 더 크게 알고 있겠지요. 그럴 경우에 비판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말을 혹은 어떤 욕을 듣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그것은 `우리끼리 하는 뒷담화`의 수준을 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아애님만 하더라도 벌써 그 글을 읽고 반성과 고민으로 넘어가셨잖아요. 그렇다면 이미 뒷담화를 넘어선 거 아닐까요?

반성하고 고민하게 된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건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랄까요. 저 역시 최근 몇 년간 많은 것들을 반성하고 고민하고 있어요.

아애 2016-03-0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자각이 절실해지면 행동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락방님의 생각이 점점 많은 이들의 자각이 되고 그러면 변화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꿈을 여전히 꿉니다.

다락방 2016-03-09 12:00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것처럼 자각이 절실해지면 행동으로 옮겨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자각은 그 단어가 말하는 것처럼 `스스로` 해야하는 것이죠. 저는 움직이지 않는 자들을 움직이게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제 힘이 너무나 미천하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글을 씁니다. 어딘가의 누군가는 어떤식으로든 제 생각과 글로 말미암아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고 변화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아애님, 저도 그런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 꿈을 멈추는 순간 변화 자체도 멈추는 거라고 생각해요.
계속 꿈을 꾸도록 합시다, 아애님.

단발머리 2016-03-09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악한 자가 나가면 더 악한 자가 들어선다, 가 지금의 우리 상황이죠.
MB를 보면서 아...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피로 얻은 민주주의가 이렇게 한번에, 단번에 후퇴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웬걸로... 박근혜는 한 수 위네요. 더 할 수 없을 거라는 한계를 넘어섭니다. 여기에서 방심하면 안 되는데, 이게 끝이라 생각하는 순간, 더한 사람이 대통령 될 수도 있다는 거, 그런 생각을 하면 또 머리가 띵해집니다.

오래전부터 유시민 좋아했던 친구가, 제가 아니란 말입니까. 아... 누구신가요. 그 분은.
유시민에 대해서라면 저도 나중에 따로 글을 쓰고 싶네요.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뭐 이런 제목으로요.

<진보와 빈곤>은 대학 때 읽었는데,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저쪽 방 어딘가 있을텐데, 다가가서 먼지 한 번 털어주는 센스. 점심 맛난거 드세요, 다락방님~~ **^^*


다락방 2016-03-09 12:03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도 유시민을 좋아하셨군요. 게다가 진보와 빈곤도 읽으셨다고요? 하아- 단발머리님, 단발머리님께 무한한 질투의 감정이 생깁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았고, 지금도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데, 왜 저는 이렇게 갈 길이 멀기만 한걸까요. 누군가 진작 깨달은 것을 왜 저는 이제서야 깨닫고 있는 걸까요. 이미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알고 계셨던 단발머리님께 저는 질투가 납니다.

진보와 빈곤은 이 책에서 읽고 너무 인상깊어서 다음에 책 살 때 사야겠어요. 너무 읽어보고 싶어지지 뭡니까. 인용문들만으로 진짜 근사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2016-03-09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9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8-30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늦었습니다. 정치도 진보도 페미니즘도요. 그리고 유시민도요. 투표말고 사회참여도 해야되는데 `책만 읽는 바보`가 되었습니다ㅠㅋㅋ

다락방 2016-08-30 21:16   좋아요 1 | URL
일단 읽는 걸로 시작합시다, 고양이라디오님. 읽다보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다보면 또 실천하고 싶어지기도 할테니까요. 바보 아니에요, 고양이라디오님.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는 행동하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책 읽고 부지런히 글 쓰시잖아요. 그 글을 보고 누군가는 자극 받아서 책을 읽기도 할텐데, 그것만으로도 영향력 있는 일을 하고 계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8-31 10:06   좋아요 0 | URL
ㅠㅠ 다락방님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다락방님 덕택에 좋은 책들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다락방님의 저서부터해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 <청춘의 독서>, <악어 프로젝트> 등등이요.

저도 사람들의 독서율이 올라가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아지리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손톱만큼이나마 이바지하고 싶네요^^

singri 2016-08-3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로서의 유시민이랑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이 좀 어긋나 보일때가 있어서 요즘 전 유시민 다시 보기 중입니다 ㅋㅋ

다락방 2016-08-30 21:16   좋아요 0 | URL
전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 읽고 이사람 책 차근차근 다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아직 그러고있진 못하지만요 ㅋㅋㅋㅋㅋ

징가 2016-08-31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냥 유빠 입니다. 🤗

다락방 2016-08-31 06:3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제 친구중에도 유빠가 있습니다! ㅎㅎ
 

책이 잘 읽히지 않았다. 주말이니만큼 시간이 많은데, 어째 평일에 회사다닐 때보다 더 안읽게 되더라. 책장 앞에 서서 이 책 가져와서 두 장 읽다 덮고 다시 저 책 가져와서 몇 줄 읽다 덮고.. 이렇게 침대 옆 바닥으로 쌓아둔 책이 차곡차곡 다섯 권쯤 되었던가. 에라이, 말자, 읽지말자, 읽지 말라는 거네, 하고는 어제는 독서를 포기했다. 슬럼프네 슬럼프야. 인문서건 소설이건 죄다 읽기가 싫으니 원. 글자를 쳐다보기도 싫다. 잠이나 자자, 하고는 벌러덩 드러누워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했다. 졸렸는데 잠은 잘 오질 않았다. 이럴 때면 다시 불을 켜고 책을 읽으면 되는데, 그러면 다시 잠이 솔솔 오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책을 펼치기가 싫었다. 안봐, 안 볼거야. 안 본다고!



너무나 싫은 월요일이 되었고, 나는 어떤 책을 출근길에 읽을까 고민하다, 유시민의 책 중에 하나를 읽기로 했다. 유시민의 책이 집에 몇 권 있는데 한 권도 읽지 않았던 거다. 얼마전에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썰전>에서 유시민이 하는 얘기를 잠깐 들었는데, 그 잠깐동안, 아, 저사람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터다. 그가 하는 말들 중의 많은 부분들이 필리버스터에서 국회의원들이 얘기했던 것과 겹치는 거다! 그래, 그렇다면 유시민으로 읽자, 거꾸로 가는 세계사는 지금 읽기 싫어, 청춘의 독서를 읽어보자, 하고는 들고 나왔다.


















출근하는 동안 지하철안에서 첫 꼭지만을 읽었는데, 아아, 나는 초반부터 이 책을 들고나온 게 탁월한 선택이구나, 했다. 우선 제일 먼저 그가 이야기하는 책이 [죄와 벌]인데, 그것부터가 좋다! 그가 그 책을 집어들고 덮을 수 없었던 그 일화가 좋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가 잘되지 않으면 문고판 책이 많았던 아버지의 서가書架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뽑아 뒤적이는 버릇이 있었다. 마음이 끌리는 책이 있으면 기분 전환이 될 때까지 읽다가 덮어두곤 했다. 이렇게 띄엄띄엄 읽었던 책들 가운데 몇몇은 지금도 제목과 내용이 대충 떠오른다. 대입예비고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던 1977년 가을 어느 토요일, 저녁을 먹고 나서 글자가 깨알처럼 박힌 세로쓰기 문고판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이 책은 중간에 덮을 수가 없었다. 결국 다음 날 오후까지 한숨도 자지 못하고 상하 두 권을 다 읽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의 소설 『죄와 벌』이었다. 나는 소설 도입무의 문장 하나에 그대로 '꽂혀버렸다'. (p.15)



아, 재밌다. 재밌어. 이게 이 책의 처음인데, 이만큼만 읽고도 내가 오늘 골라들고 온 책이 정말 잘 고른 책이라고 생각했다. 탁월한 선택이었어. 역시 나는 짱이야, 나는 대단해, 나는 캡이야!! (응?) 한편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고등학생 시절에 죄와 벌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많은 고등학생들이 죄와벌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엔 아니었던 거다. 나는 대학시절 죄와 벌을 읽기 위해 수차례 시도했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다 스물다섯에 비로소 죄와벌을 읽을 수 있었던 거다. 그 시절에 그 책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아, 이래서 다들 도스트예프스키 하는구나. 죄와벌은 이런 소설이었어! 심리 묘사가 대단하다고 읽었던 것 같은데, 사실 지금은 자세한 것들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라스꼴리니꼬프라는 주인공의 이름만 선명하고 전당포 할머니를 죽였던 것, 소냐, 여동생... 몇 가지의 사항들만 희미하게 기억날 뿐 그게 어떻게 된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이 책을 고등학교 때 읽었다던 칠봉이 생각도 났다. 칠봉이는 당시에 이 책을 마저 다 읽고 싶어서 열일곱살이던 그해, 하루는 학교를 빼먹었다고 했다. 내가 유시민의 이 책,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 칠봉이도 그랬다고 했는데, 이 책을 덮을 수가 없어서 학교도 빼먹었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게 죄와 벌 이었던가 까라마조프 였던가, 잠깐 헷갈렸는데, 확인해보니 죄와 벌이 맞았다. 칠봉이도 될성부른 나무였구나.. (응?)


스물다섯에 나는 연애중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나는 직장을 그만둔 백수였고. 퇴근하는 남친을 지하철역에서 기다리면서 이 책을 읽고 있었던 게 생각난다. 책을 읽느라 남친이 오는 걸 몰랐었는데, 온 걸 알고 가방에 책을 넣으면서 남친으로부터 '책 좀 그만 읽으라'는 말을 들었었다. 장난스레 한 말이긴 했는데,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던 그는 나한테 말싸움으로 지는 것이 내가 책을 읽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더랬다. 니가 책을 많이 읽어서 나한테 이기는 것 같아, 라고. 그도 책을 읽기는 읽었었다. 어쩌다 한 권 읽기는 했는데, 나를 만나기 전이었나 나를 만나면서 였나, 어쨌든 그가 그 당시 최근 읽었던 책이 서갑숙의 책이었다.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그 책을 나도 읽었었다. 대학시절에.... 근데 서갑숙 그 뒤에도 책 냈었구나. 서갑숙의 추파.......


유시민은 죄와 벌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읽는다. 그리고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른 것들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모든 과정이 참 좋더라. 동시에 나도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어젯밤만 해도 이 책도 싫고 저 책도 싫어, 하고는 독서에 심드렁해졌었는데, 이렇게 아 이 책이 재미있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 다른 책도 읽고 싶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독서인가. 나는 내가 죄와 벌을 읽고 무얼 느꼈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다. 그래서 지금 '다시' 읽는다고 해도 아마 처음처럼 읽게 되는 것일테다. 죄와 벌,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영원한 남편까지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다시 읽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유시민이 느낀 것을 내가 느낄 수 있을까.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내게도 보일까?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면하지 못하는 게 삶의 이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다른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따지는 것은, 악한 수단으로 선한 목적을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전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악한 수단으로는 선한 목적을 절대 이루지 못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어떤 연역적·논리적인 추론의 산물이 아니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보고 체험한 끝에 얻은 경험적·직관적인 판단이다. (p.27) 




라스꼴리니꼬프의 '초인론'은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 체제로 현실화되었다.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려는 신념'을 실행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완전한 권리를" 행사한 전체주의 체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동등한 인권과 참정권을 부여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에게 의사 결정권을 제한적으로 위임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있다. 20세기 세계사는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없이 많은 소냐와 두냐들이 좋은 세상을 만든 것이다. 만약 도스토옙스키가 20세기를 목격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p.30-31)




스물다섯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이런 책을 어떻게 청소년이 읽는단 말이야. 권장도서 라니, 너무 어렵잖아, 라고. 그런데 유시민도 그렇고 칠봉이도 그렇고 읽었구먼..고딩때... 하아- 나는 <스타킹훔쳐보기> 시리즈.. 를 고등학생 때 엄청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오늘자 조선일보 1면의 오른쪽에는 <중학교 때 책 많이 읽은 학생 과목당 수능점수 18~22점 높아>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기사를 읽진 않고 제목만 봤는데, 거기에는 작게 '많이'에 부연 설명이 붙어있었다. <3년간 11권 이상> 이라고. 3년간 11권이라면 결코 많이 읽은 게 아닌데, 이 나라에서의 중학생이라면 그게 많이 읽은 것일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 못보게 하니까, 공부해야 하니까. 물론 나는 중학교때도 고등학교때도 책을 읽었다. 시험기간에도 사실 책을 읽었다. 그러나 나의 과목당 수능점수는 형편없었다. 물론 수능 점수가 내신에 비해 월등히 좋기는 했지만..그렇다면 이게 독서의 영향인걸까? 독서의 영향도 있겠지. 그런데 3년간 11권이라니 너무했다, 라고 말하는 순간, 최근 3년간 칠봉이가 책 한 권 읽었다는 게 생각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가 어제 그런 얘길 했었는데, 최근 3년간 읽은 책이 한 권이다 라는 얘기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어쨌든 유시민의 이 책 덕에 나는 책 읽는 재미를 다시 느꼈다. 그래봤자 슬럼프와 재미 사이의 시간이라는 게 만 하루도 안되지만 ㅋㅋ 『청춘의 독서』이 책 자체도 재미있는데, 얼른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죄와 벌』을 다시 읽고 싶다. 죄와 벌 보다 까라마조프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까라마조프는 스물아홉에 읽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더 최근의 일이니. 그러니 확인해보려면 둘 다 다시 읽어야겠구나.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일상의 모든 것이 책을 읽는 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작년에는 그렇게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고 싶더니, 필리버스터를 보고난 후로 나의 관심도서 방향이 이렇게 달라진다. 읽고 싶은 책이, 읽고자 하는 책이 필리버스터 후로 방향을 달리한 느낌이다. 노무현을, 유시민을 읽게 되다니, 나는 내가 어릴 적에는, 아니 최근까지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책만 하더래도 책장에 꽂혀있었던 게 몇 년인데..게다가 책 구입 자체도 뭔가 다른 거 준다 그래서 산 것 같다. 펭귄 책 줬던 것 같은데... 관심이 생기니 더 알고 싶고, 더 알고 싶으니 그건 당연히 독서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되는 독서는 다른 식의 관심도서를 또 만들어낸다. 그러고보면 책에 대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독서의 재미를 얘기해주는 책이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 경우엔 이 책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이런 식의 댓글을 어느 알라디너분께 달았는데, 그 분이 댓글로 『독서공감, 사람을 말하다』도 그런 책이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어딘가 이상한거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뭐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거지? 어디에서 이상한거지? 하고 검색창에 '독서공감' 까지 입력해봤는데, 자동완성 되는 거 보고 그제서야 알았다.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 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제목보고 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나조차도 뭐가 어디가 이상한지 몰랐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시민이 죄와벌을 세로읽기로 읽었다고 했는데, 나도 중학시절에 세로읽기로 읽은 책이 있다. 집에 굴러다니던 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였다. 표지가 야해서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엄마가 못읽게 할 것 같아서 기회를 노리다가 방학 때 읽었었다. 맨 마지막에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불겠지'라고 써있던 문장이 기억나는데, 한참 후에야 영화에서도 다른 책에서도 그 문장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로 번역되어 있다는 걸 알게됐다. 내가 당시에 야했다고 생각한 표지는, 링크한 책들중 중간의 동서문화사와 오른쪽 원서의 표지와 같다. 여자 가슴이 반쯤 보여서 되게 야하다고 생각했었다. 꼬꼬마 시절..












관심이 대상이 생기고 거기에서부터 독서로 연결되는 이런 순간들이 참 재미있다. 좋다. 역시 책읽기는 지독하게 매혹적인 취미인 것 같다. 도무지 끝날 줄을 모르니까. 어떤 계기로 어떤 책을 읽게 되면, 거기에서 파생되는 다른 책들이 또 줄줄이 있다. 아, 정말 너무 재미있다!




회사다니는 건 왜 재미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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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6-03-0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는 돈을 받고 다니기 때문아닐까요. 모름지기 재미를 느끼려면 내 지갑이 열려야...;ㅂ;

다락방 2016-03-07 18:10   좋아요 0 | URL
돈 받는 일이 재미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다면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ㅜㅜ

책읽는나무 2016-03-07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여러곳에서 락방님의 흔적을 읽으면서요~~줄곧 같은 장소에서(한 곳의 서재에서!)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는데 그래도 빵 터지는 것을 참고 있다가 결국 락방님의 안방에서 세 번이나 터졌어요!

<청춘의 독서>이책 결국 읽어야 할 책이로군요! 몇 달전 이책 대출하려고 앞부분을 좀 읽다가 <죄와 벌> 부분에서 공감하려면 먼저 이책을 읽고보자!! 하면서 내려놓으면서 까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락방님도 책 읽는 것에 슬럼프가 오는군요? 저는 슬럼프가 자주 와서 일종의 변덕이 심해서 그렇다고 여기고 있었어요^^

<독서공감, 사람을 말하다>는 저도 깜빡 속았네요?ㅋㅋㅋ
그리고 3년간 칠봉씨의 독서통계에 저도 빵~~그런얘기에 서로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모습이 예쁩니다ㅋㅋ
칠봉씨는 또매에요(또다른 매력!)

다락방 2016-03-07 18:15   좋아요 1 | URL
아하핫. 어디에서 빵터지신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로 인해 웃으셨다면 저는 기쁩니다. ㅎㅎㅎㅎㅎ

<청춘의 독서> 읽고나면 또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늘어가겠지요.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물론 제가 그걸 다 읽을 순 없지만요.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너무너무너어어어어어어무 많아서 고민이 되지만 좋아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순간도 사실은 행복하지요. 청춘의 독서 재미있어요. 물론 한꼭지 밖에 안읽었지만요. 하핫.

칠봉씨는 매력 만점의 남자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매력 터지는 모습에 자기가 자기한테 반하곤 해요. 오늘 아침에도 자기가 스스로 막 반해가지고... 아하하하하. (근데 저도 그래요 ㅋㅋㅋㅋㅋ)

2016-03-07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7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7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7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6-03-07 17:56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렇군요..^^
근데, 다락방 님과 같은 닉이 넘 많아요..ㅜㅜ

다락방 2016-03-07 18:19   좋아요 0 | URL
야무님의 댓글을 읽고 음... 낮술마시는 다락방 으로 닉네임을 바꿀까, 살짝 고민하다가, 그대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ㅎㅎ 다락방이란 닉네임이 엄청 흔하죠 ㅠㅠ

transient-guest 2016-03-08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탁월한 선택, 좋은 순간들을 만나셨네요. 제가 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는 좀 무딘 편인지 그렇지 않았는데 `죄와 벌`을 이불을 뒤집퍼 쓰고 부들부들 떨면서 읽었다는 분도 (구체적으로 아버지 소싯적에) 있습니다.ㅎ

다락방 2016-03-08 08:37   좋아요 0 | URL
너무 기대돼요. 지금 읽으면 어떤 기분일지요.
일전에 [레미제라블]을 한 해에 한 번씩 꼭 읽는다는 사람의 얘기를 듣고 그 책이 그렇게 대단해? 하고 읽었다가 5권째에 이르러서는 눈물콧물 다 흘린 경험이 있던 터라, 죄와벌도 엄청 좋을 것 같아요. 스물 다섯에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지금 읽으면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재미가 막 밀려올 것 같아요. 기대기대. 청춘의 독서를 끝내고 시작해볼까 합니다. 하아. 그렇지만 사두고 안읽은 수많은 책을 놔두고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도 될까요? 아하하하하.
 
그가 그립다 - 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유시민.조국.신경림 외 지음 / 생각의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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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모든 글들이 다 좋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몇몇 글들만이 좋았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글, 이 책을 읽고자 했던 나의 의도에 부합했던 글은 '정주영', '신충진', 그리고 '노항래'의 글이었다. 정주영(전속 이발사)과 신충진(전 청와대 요리사)이 가까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시간을 회고해서 울림을 주었다면, 노항래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뒤에, 스스로 싸움을 지속해 나간 것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노항래는 검찰청에 있을 노 전대통령을 작게나마 위로하고자 검찰청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경찰들에게 잡혀갔고 다음날 풀려났는데, 다음해에 집시법 위반으로 30만원의 벌금을 내라며 검찰이 기소를 한거다. 이에 노항래는 정식재판을 청구한다. 



재판을 받으며 나는 거듭 "그날 '집회'에 참석한 바 없다."라고 주장했다.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고, 주관적으로 집회에 참석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나는 그냥 팬클럽 회원 같은 사람이었다. 이런 주장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검찰을 비난했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세력이…….", "석고대죄 드려야 할 집단인데…….", 뭐 이런 주장들이었다. 이런 말을 내뱉으면 공판검사는 제지하려 하고 판사는 흥분하지 마시라고 훈계했다. 그러나 나는 공판 때마다 거듭 검찰을 비난했다. 그것이 내가 내 수고를 스스로 위안받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p.214-215)



30만원의 벌금을 내는 것이 재판을 청구하고 재판을 받는 것보다 훨씬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신 싸움을 택한다. 2심 판결에서 벌금은 10만원까지 내려갔지만,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아내고 싶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30만원 내고말지' 할 일에 맞닥뜨렸을 때, 그는 두 해동안 그 재판을 받는다. 그는 이 과정을 스스로 '이건 내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의로운 항거'(p.216) 라고 명명하는데, 나는 이 일을 대하는 그의 고집이 무척 좋았다. 이런 고집이 더 많아져야 된다고도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알게되고 그리워하게 된 것은, 그의 서거 직후가 아니라 지금이다. 나는 무지했고, 무관심했으므로, 그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를 지내고 박근혜정부를 보내고 있는 지금,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자꾸만 언급되는 노무현을 알고 싶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를 이제는 잘 알것 같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잃은 건지도. 그리고 그의 살아생전 그를 알지 못했던 나도 그가 그립다.






저는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자폐증에 걸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작은 커뮤니티 안에 웅그린 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 또한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지 않기를 빌며 조용히 엎드려 살아야지 했습니다. 그 변명의 끝에는 항상 이런 문장이 있었죠. 나는 소심하니까, 나는 겁이 많으니까. 하지만 `겁 많고 소심하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자기변명 속에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남보다 더 잘 상처받고, 남보다 더 자주 겁에 질리는 저 같은 사람에게야말로 민주주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세상이 무서울 때마다, 사람들이 무서울 대마다, 더 깊이 저만의 누에고치 속으로 숨었던 저는 잊고 있었지요. 겁 많고 소심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민주주의,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 지켜야 할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 저는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 내기 위해 아주 작은 용기부터 내 볼 작정입니다. (정여울, p.20-21)

우여곡절 끝에 당신은 대통령 후보가 되셨고 이때는 저도 이발사로서 당신에게 도움을 준 것 같아 무척 기뻤답니다. 그리고 진짜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 그 이틑날 오셔서 "사장님 덕분에 됐습니다."라고 하셨을 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져 본 감정 중에 감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처음 느껴 본 순간이었습니다. (정주영, p.107)

"선거철이 되면 `이번에는 누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자리가 나오잖아예. 그때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예. 옛날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말하더라. 우리도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면 투표를 잘해야 한다. 그러면 내 자식이 좀 수월케 살고 내 손자가 수월케 산다 하더라. 그러니까 앞에 있는 것만 보지 말고, 정치인 싫어서 투표 안 한다 하지 말고 먼 날을 생각해서 조금 더 좋은 사람에게 투표하러 가야 한다. 그렇게 말을 하고 싶습니다." (김상철, p.121)

그녀와 나는 부부이고 매우 친한 사이지만 함께 살지는 않는다. 바퀴벌레처럼 엉켜 사는 것이 피차 취향에 맞지 않아서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자 우리는 거처를 따로 두기로 결정했다. 나는 `작업실`이라는 공간에서 밥 해 먹으면서 따로 산다. 주말이면 아내와 아이가 사는 집에서 가족 상봉을 하는데 날마다 비비적대는 것보다 낫거니 싶은 때가 많다. 서로 반가워하니까. (김갑수, p.140)

토론은 길어졌다. 그리고 찬성 일곱 표, 반대 두 표로 반전 의견서를 채택했다. 당연히 파란이 일었다. 민주당 여러 의원이 인권위원회를 비난했다. 다음 날 <동아일보>는 의견서 채택 과정을 자세히, 그리고 가장 크게 보도했다. 나는 책임을 추궁당할 것을 각오했다. 거기서 그쳤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여기저기 방송에도 나가 반전 의견서의 내용을 되풀이했다.
"가령 큰 댐을 건설하려고 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적극 추진하겠지만 환경부는 반대할 수도 있지 않나요? 인권위는 헌법 가치를 지키고자 합니다."
한바탕 회오리를 각오하고 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예상 외 반응에 크게 허를 찔리고 말았다. 그는 평상시 어조로 지극히 낮게 말했다.
"인권위원회, 그런 일 하라고 있는 거 아닙니까?" (유시춘, p.168)

제가 3년간 국정원 안에 설치된 위원회에서 일했기 때문에 잘 압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단 한 번도 국정원을 자신의 개인적 이해 때문에 이용한 일이 없습니다. 대통령과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관계로 본다면 더할 수 없이 바람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관계라 한다면 양측의 손발이 맞아야 하는데 대통령만 그랬지, 국정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을 변하게 하려면 제도의 개혁과 사람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해외 정보와 국내 정보의 분리, 대공 수사권 폐지와 같은 제도 개혁의 중요성을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기에 사람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은, 그리고 그가 지휘했던 과거 청산은 사람의 개혁에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한홍구,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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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텔레비전에서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오는 새누리당 대표인 황우여는 학림사건 때도, 그 전의 명동3.1사건 재판 때도 법대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은 아마도 《고문묵인 판사 열전》의 앞부분에 모셔야 할 겁니다. (한홍구, p.206)



위 부분을 읽다가 네이버 검색창에 황우여 를 입력해 보았다. 아아...그는 네이버에서조차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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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3-04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그를 보니 마치 내가 황우여를 그리워하는 꼴이 되어버렸군...

단발머리 2016-03-04 11:30   좋아요 1 | URL
나의 그 분도 그렇게 환히 웃곤 하셨는데...

나는 그 분을 이제 다시 볼 수 없는데,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데...
다락방님 저 책 표지만으로도 나는 울고 싶은데...


아... 그런데 저 분은... 저리도 환히..

다락방 2016-03-04 17:14   좋아요 2 | URL
이 책에 보면 노무현 전대통령이 시대를 앞서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가 갖기에는 지나치게 훌륭한 대통령이었던 것 같아요. 누구의 글이었는지 모르겠는데, 결국 우리 국민의 수준은 지금 대통령의 수준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고요. 그렇다해도 우리가 투표를 해서 더 나은 상황으로 만들어봐야죠. 힘을 냅시다, 단발머리님!

Forgettable. 2016-03-04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생글생글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남자라니!

다락방 2016-03-04 18:14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말입니다 ㅎㅎㅎㅎㅎ
 














이 책의 여자주인공 이름은 '로즈메리'고 그녀의 오빠 이름은 '로웰'이다. 나는 이 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일단 이것부터 지적하고 가야겠다. '로웰'이 288페이지 부터는 수시로 '로렐'이 된다. 로즈메리와 로웰이 식당에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십년만의 만남이었는데, 그 시간을 얼마나 로즈메리가 기다려왔는지 잘 아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로렐하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어? 로렐은 누구지? 언제 갑자기 등장했지? 내가 졸았나?' 하고 앞쪽으로 넘어가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자기 전 침대에서 읽은 거라 내가 졸면서 읽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로렐은 로웰의 오타였다. 그러나 한 두 번이 아니라 페이지를 넘겨서까지 계속 로렐 로렐 한다. 그러다 다시 로웰로 잘 나오다가 다시 로렐 로렐 한다... 하아-


이 책은 오타가 많다.

2016년 1월 18일이 1쇄던데, 언제 2쇄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좋은책이니, 부디 꼼꼼한 교정을 거쳐서 오타를 다 잡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너무 안타깝다. 왜냐하면,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이,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매혹』이란 책을 읽다가 두 번 놀랐었다. 초반에는 어? 이런 이야기였어? 하고 놀랐고 후반에는 '아니, 이런 이야기였다니' 하고 놀랐던 거다. 이 책, 『우리는 누구나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를 읽는데 그때 매혹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기억났다. 그만큼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로즈메리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을 다니며 룸메이트와 살고 있다. 그녀에게는 언니와 오빠가 있었는데 현재 둘다 사라졌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가족을 다시 찾는 가족이야기인가, 아니면 죽은 가족에 대한 상실에 대한 이야기인가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초반에 사라진 오빠와 언니가 '살아있다'고 말한다. 아 그래 다행이다, 그렇다면 헤어지게 된 이유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인가보다, 하고 읽어가는데, 곧이어 로즈메리가 밝힌다. 언니는 '침팬지'라고. 그래, 그 침팬지. 인간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언니라고? 점점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을 것 같아진다.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거지? 


로즈메리가 어릴 때 그보다 몇개월 앞서 태어난 침팬지 한마리를 로즈메리의 엄마와 아빠가 입양해서 같이 키운다. 대학원생들도 같이 로즈메리와 침팬지 '펀'을 관찰하며 연구한다. 자연스레 아기 '로즈메리'에게 '펀'은 언니이고 '펀'은 자신이 침팬지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 익힌 수화로 대화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아, 그렇다면 이것은 어릴 적에 침팬지랑 함께 키워졌지만, 그로 인해 이 아이가 불행한 과거를 갖게 된 이야기인가보구나, 했다. 이를테면 침팬지는 말을 할 수 없지만 로즈메리는 항상 '말이 너무 많다'고 꾸중을 듣는 아이었기 때문이다. 침팬지 '펀'이 조용한 건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인데. 그러니까 나는 그런 유년시절에 얽힌 이야기인가보다, 한거다. 그런데, 아아, 중반부를 넘어서면 이 책이 쓰여진 이유,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 그러니까 다시 말해 이 책의 책소개에서 잠깐 보여진 '파울러가 자신을 넘어섰다'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그러니까, 



동물실험을 반대하고 있다.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동물실험이 진행되고 있는지, 동물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얘기해준다. 그래서 로즈메리의 오빠 로웰은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적극적 행동요원이 되었고, 그렇게 FBI 의 지명수배자 명단에 오르게 됐다. 이런 얘기를 하기까지의 흐름이 처음부터 그렇게 나아간 것은 아니었으며, 또한 이 이야기만을 향해 맹목적으로 끌고 나가지도 않는다. 로즈메리는 여러 책을 등장 시키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또한 주변에 색다른 등장인물들도 등장시키고 있다. 그중 한명의 등장인물은 '할로'라는 여성인데, 나는 그녀가 처음부터 별로 좋지 않았더랬다. 그 캐릭터 자체가 별로였고, 그녀가 로웰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로즈메리랑 친한 척 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하룻밤을 보낸후 로웰이 떠났고, 그 후로 할로는 그를 찾기위해, 그를 찾아내기 위해, 그와 연결되기 위해, 그가 했던 행동들을, 그가 앞으로 할 것 같은 행동들을 한다. 동물 해방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



동물해방전선에는 누구든 가입할 수 있다. 사실 동물 해방에 관여한 적이 있는 사람이면, 동물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현장에 육체적으로 개입한 적이 있는 사람이면 동물해방전선의 가이드라인에 알맞은 조치를 취했을 경우, 자동적으로 회원이 된다. 동물해방전선은 인간을 비롯해서 그 어떤 동물에게도 육체적인 위해를 가하는 데 찬성하지 않는다.

반면에 재산 파괴는 권장한다. 고통으로 이익을 취하는 자들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이 그들의 공식 목표다. 학대 실상을 널리 알리는 것, 은밀한 공간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실상을 만인에게 공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몇몇 주에서 공장식 축산 농장과 도축장 내부를 무단 촬영하는 것을 중죄로 규정하는 법안 제정을 검토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심각한 범죄로 간주되려 하고 있다.

직접적인 행동을 감행하면 자동으로 회원 자격이 주어지듯 그게 없으면 회원이 될 수 없다. 동조하는 것만으로는 도움ㄹ해방전선에 가입할 수 없다. 고통받는 동물들을 보면 얼마나 안쓰럽고 슬픈지 아무리 글로 써봐야 소용없다. 뭔가를 저질러야 한다. 

2004년에 자크 데리다는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했다. 고문은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상처가 된다. 아부 그라이브의 고문관 가운데 닭고기 가공업체에서 일을 하다 곧바로 군에 입대한 병사가 있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데리다가 말하길 속도가 더딜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우리의 자아가 동물들이 학대당하는 광경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게 될 거라고 했다. 

동물해방전선은 더딘 변화에 별관 관심이 없다. (p.318-319)




동물들이 어떤 종류의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몇 가지 사례가 나왔을 때, 아, 이 책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읽기 괴로운 책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아픈 장면들을 맞닥뜨리면 이내 책을 덮고 말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보다 동물에게 더 깊은 애정을 갖고 있기도 하니까.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었던 어제는 e 로부터 자신의 고양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다. e 는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는데, 그 중 한마리가 신부전을 앓고 있다는 것. 신부전이란 말을 듣고 e 는 몹시 괴로워했으며 지금도 괴롭다고 했다. 눈을 뜨고 있는 내내 아픈 고양이 생각뿐이라고 했다. 수술로도 나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고, 그래서 좋아하는 간식들을 사다가 먹이고 있다고 했다. 나는 e와 일본에 함께 가기로 했었는데, 그 말을 듣고는 일본여행을 취소하자고 했다. 너는 내내 아픈 고양이 생각 뿐일거고, 그래서 제대로 여행을 즐길 수도 없을 거고, 그리고 그런 네 옆에서 나도 불편할 것이다, 취소하자, 고. e 는 미안해서 내게 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먼저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배려해주고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취소수수료는 본인이 다 부담하겠다는데, 나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내게 줄 취소수수료로 고양이 간식이나 더 사주고 병원비에 보태라고. 


나는 동물을 키우지 않고 앞으로도 키울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e 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아는 e 는, 사람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고 있다. 관심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다. 함께 길을 걷다가 한 어린 아이가 엄마 뒤에 따라가면서 소리내어 우는 걸 본 적이 있다. 아 저 아이 왜울지? 라고 나는 계속 그 아이를 봤는데, e 는 내가 보지 않는 곳으로 뛰어가서는 길고양이한테 먹이를 주었더랬다. 그때 내가 e에게 말했었다. 우린 이렇게 다르구나, 같은 길을 걸으면서 나는 우는 아이를 보는데 너는 고양이를 봐. e 는 내가 사람을 예뻐하는 만큼 고양이를 예뻐하고, 내가 사람에게 위로받는 만큼 고양이로부터 위로 받는다. 그러니 e 에게 고양이가 심각하게 아픈 것은, 나에게 내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라고, 나는 다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e 의 고통을 공감한다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뿐이다. 



이런 일이 있었던 어젯밤, 잠들기 전 책을 읽다가, 이 책에서 동물 실험과 동물 학대에 대한 페이지를 읽다가 덮었다. 아, 더는 못읽겠다, 뒤에 조금 남은 부분은 내일 출근길에 읽자, 하고 덮어버린 거다. 사랑하는 고양이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책에서도 고통받는 동물을 보게 되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하고 잠을 잤고, 악몽에 시달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어나 라디오를 틀었는데, 라디오에서는 마침,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가 나오는 게 아닌가! 아, 이건 뭐지?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자는 그런 노래잖아. 갑자기 이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고양이와, 전 세계의 학대받는 동물들과, 그리고 세상을 구하자고 말하는 한 가수의 노래가 말이다.




나는 끝까지 이기적인 인간이라서 동물해방전선 운동에 뛰어들 수가 없다. 치명적인 질병에 대한 치료약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래서 동물을 실험한다면, 나는 그것이 인간이 '조금 더' 똑똑하다는 이유로 동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눈감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지만 또 그걸 알기 때문에, 동물해방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을 응원하는 마음도 든다. 나는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야할테지만,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도 이런 게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거다. 나는 모피코트를 사입지 않을 것이고, 거위털 잠바도 입지 않을 것이지만, 이런다고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어제도 집에 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 계란을 한 판 샀고, 오늘 저녁에도 삼겹살을 먹을 테니까. 게다가 숱한 동물실험들을 거쳐서 만들어진 예방주사나 예방약의 혜택도 받은 사람이 아닐까. 내가 이런 포지션으로 뭘 더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니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한 가지 밝히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많은 시간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섹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거다. 노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다. 구구절절 설명하자니 입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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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임자를 못 만나서 그런 거라고, 내 눈에 담긴 별을 알아봐주는 남자를 못 만나서 그런 거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아직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p.372)




할로는 동물해방전선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다. 게다가 그녀가 특별히 더 착한 성격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민폐를 끼치는 스타일이고 얄미운 사람의 전형이었다 해도 좋을 것이다. 평소에 동물을 사랑하며 살았던 것도 아니다. 그런 그녀가 한 남자에게 빠져서는 그가 했던 행동을 하며 그를 만나고자 한다. 이 변화는 놀라운 것이다. 그녀가 로웰을 처음 만난 그때, 할로에겐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남은 인생을 로웰을 찾는 데 건다. 로웰은, 할로의 눈에 담긴 별을 알아봐주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할로가 로웰의 눈에 담긴 별을 봤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변화를 가져온다. 다른 사람 백 명이 말해도 듣지 않던 것을, 사랑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라면 듣기도 하니까. 동물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할로가 동물해방전선에 뛰어든 것처럼 말이다.




나는 1920년대에 인간과 침팬지를 이종 교배해서 휴먼지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잡종을 만들려고 몇 번 시도했던 일리야 이바노비치 이바노프에 대해서 읽은 적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원래 인간의 난자와 침팬지의 정자를 수정시킬 생각이었지만 결국에는 반대로 침팬지의 난자에 인간의 정자를 수정시켰다. 그런 꿈을 꾸는 게 인간이래요, 어머니. 독미나리 술 드시고 나면 저도 한 모금 주세요. (p.386)



동물 학대는 인간에게서 나온다. 그토록 끔찍한 짓을 하는 게 인간이다. 그러니 독미나리 술이나 먹을까, 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이런 지긋지긋한 인간들, 내가 그런 인간들 중의 하나라니. 그러나 세상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알리고 싶어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인간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고 노래하는 것도 인간이다. 아픈 동물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돌보겠다고 하는 것도 인간이고 또한 동물의 해방을 주장하는 것 역시 인간이 하고 있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이 지구를 버텨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과 실험하는 사람들 또 해방을 주장하고 돌보는 사람들, 그 경계선에 자리하고 있는걸까?




얼마전에 읽었던 '케빈 파워스'의 『노란 새』도 정말 좋은 소설인데 문장이 술술 읽히지 않아 아쉬웠었다. 이 책, 『우리는 누구나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도 '파울러가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극찬이 과장이 아닐 만큼 좋은데 중반 이후부터 오타가 쏟아진다. 이런 점들이 매우 아쉽다.



페이퍼에 등장한 다른 책들은 아래의 두 권이다.














클린턴의 재선. 2년 전에 밥 삼촌이 아칸소에서 클린턴에게 강간당한 여자가 한 명도 아니고 여럿일 거라고 주장했을 때 우리 아버지가 격한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명절을 망친 적이 있었다. 밥 삼촌은 둥그스름하게 흰 표면에 `아무도 믿지 말 것`이라고 립스틱으로 진하게 적힌 유령의 집 거울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자 도나 할머니가 정치 이야기는 금물이라는 절대 불변의 규칙을 새로 만들었다. 서로 의견이 다른 걸 못 견디는데 누구든 손만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곳에 포크나 나이프가 있기 때문이었다. (p.39)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는 돈도 사유재산도 없다. 인생의 모진 측면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유토피아인들에게 돈이나 사유재산 같은 것들은 너무 추한 개념이다. 전쟁이 나면 자폴렛이라는 대기 중인 용병들이 대신 싸워준다. 고기는 노예들이 잡아준다. 토머스 모어는 이런 일들을 직접 하면 유토피아인들이 예민한 성정과 자비로운 연민의 정을 잃지 않을까 걱정한다. 자폴렛들은 살육과 약탈을 즐긴다는데 도축이 노예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 논의가 없다. 모든 이에게 유토피아인 유토피아는 없다.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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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6-03-0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렇게 좋은책에 오타가 그렇게 많다니요 (ToT)
친구분 e양 힘드시겠어요.
수술이나 치료로 쉽게 나아지는 질병이 아닌경우에는 처음 진단받았을때 보호자가 패닉에 빠지게 되는거 같더라구요....

다락방 2016-03-04 17:15   좋아요 0 | URL
깨어있는 시간에는 고양이 생각뿐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걸 잘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짐작해봅니다. 아픈 사람 간호하는 건 아픈사람만큼 간호하는 사람도 힘드니까요.

마태우스 2016-03-0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을 읽어봐야겠군요. 저도 사람보다 개를 더 좋아하는지라..ㅜㅜ 암튼 늘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구 동물실험 하면 저도 할 말이 없지요. 개, 원숭이, 고양이 실험은 절대 안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지만, 쥐는...본의아니게 많이 했어요ㅠㅠ 흑흑.

다락방 2016-03-04 17:19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이 책은 정말 좋았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마태우스님이 이 책을 읽으시면 또 어떤 리뷰를 써내실지 궁금합니다. 영화 [혹성탈출]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만약 인간보다 똑똑한 종이 나타나서 인간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우리에 가둬두려 한다면,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할것인가. 저를 비롯한 사람들이 그 부당함에 반항하고 대항할텐데, 그렇다면 우리가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짐승에게 하고 있는 짓이 바로 그런 짓이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그런걸 뻔히 알면서도 저는 동물실험반대! 를 주장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 실험들을 통해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걸 아는 탓이지요. 그래서 저는 제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남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볼 수는 있지만, 남의 입장이 되어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결국은.

sb 2016-03-03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 문제 뿐만아니라, 조금만 생각하면 폭력이 없는 곳은 없어요.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기도 하고, 외모나 성격을 가지고도 차별하죠. 모욕적인 말을 함부로 하고요. 마음 속으로 누군가를 저주도 하죠. 의도하지 않은 폭력도 상당하죠. 폭력과 차별은 만연해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직접적으로 그 폭력을 바꾸려고 하는 행동 자체도 폭력이 될 수도 있죠. 하하 참 어려운 문제네요. 음.. 폭력의 성격에 따라 좀 다른데... 공통된 제 나름의 입장은 `반성과 성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그 뿌리는 뽑지 못하더라도 말이죠. 그래도 정말 바로잡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노력해야겠죠? ㅎㅎ
다락방님이 동물에 가해지고 있는 폭력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고 계신 것 같아서 힘내시라고 글 남깁니다. 이기적이면 좀 어때요. 당연하잖아요.^^ 제 글이 주제 넘는 글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고 저도 반성하게 됩니다.

다락방 2016-03-04 17:22   좋아요 1 | URL
네, sb 님. 정말 그래요. 폭력이 없는 곳도 없고 모순이 없는 곳도 없다고, 저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작년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나름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알게모르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하고자 하지만, 어쩌면 나도 부당하게 행동하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폭력을 바꾸고자 하면서 또다른 폭력을 행사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때마다 무력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실수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실수를 했다면 다음번에는 실수하지 않으면서 더 좋은 결과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는 거겠죠.

힘내라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댓글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