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유연석)는 기차안에서 처음 만나게 된 여자(문채원)에게 '나 오늘 그쪽이랑 잘겁니다' 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는 아주 큰 문제가 있는데, '처음 만난 사람과 하룻밤 잔다'는 '원나잇'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성인 남녀가 처음 만나 함께 자기를 원한다면, 그게 뭐가 문제겠는가. 그러나 여자랑 남자는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음으로써 처음 만나게 됐고, 별다른 대화가 오고간 것도 아닌 그런 상황에서 '나는 오늘 너랑 잘 예정이다' 라고 말하는 건, 실제 상황이었다면 끔찍할만한 상황이 아닌가. 여자는 전화를 받으러 나가다가 잠깐 중심을 잃고 남자의 무릎 위에 앉게 됐었는데, 남자는 그 느낌이 좋았다고 말하는 거다. 상상해보라. 내가 기차를 혼자 타고 가는데 옆자리 남자가 '나는 오늘 너랑 잘 예정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나라면 졸 무서워서 벌떡 일어나 다른 자리로 옮겨달라고 차장에게 말했을 것이다.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그런데 이 영화속에서 문채원은 기막혀하고 당황해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서 드러나는데, 그렇게 말하는 '낯선 남자'가 '유연석' 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가 어마어마한 매력남이고 작업을 잘 거는 선수이기 때문에, 그래서 여자들이 그 말을 듣고도 그랑 자는 걸 선택하지 그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것.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가 건네는 '나는 오늘 너랑 잘거야'는 여자들에게 '통하고' 여자들도 은근히 '바라고'있다는 걸 암시한다. 사실은 전혀,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그것이 '유연석'-잘생기고 매력적이라는 상징-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정은 마지막 장면에서 더 힘을 얻는다. 유연석의 선배(평범남)가 유연석이 한 그대로, 기차안에서 옆자리 여자에게 '나 오늘 그쪽이랑 잘 예정입니다' 라고 말했을 때, 옆자리 여자는 그의 뺨을 때린다. 이로써 잘생긴 남자가 '나는 오늘 너랑 잘거다' 라고 말하면 그건 가능해지고, 잘생기지 않은 남자가 '나는 오늘 너랑 잘거다' 라고 말하는 건 '맞을 짓'이 된다는 걸 모두에게 알리는 셈이다. 참... 구역질나는 상황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여자들이 '사귀는' 남자는 잘생기지 않았다. 잘생긴 남자, 매력적인 남자, 그러니까 이를테면 유연석 같은 남자를 드라마다 영화에서 보고, 아 저 남자 멋있다, 저런 남자를 사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그런 남자를 만날 가능성도 낮을뿐더러, 더 깊이 들어가면, 단순히 외모만으로 그가 '괜찮은' 혹은 '좋은' 남자는 아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애인'을 사귈 때 고려하는 건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이 사람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냐, 이 사람과 대화가 어느 정도 통하느냐, 등등 외모 보다 더한 어떤 것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서울의 어디 한 군데, 강남이든 종로든 돌아다니다보면 우리나라 여자들이 얼마나 예쁜지 알 수 있다. 여자들은 헤어스타일에도 신경을 쓰고 옷도 예쁘게 입고 화장도 곱게 하고 또 화장을 설사 안해도 참 예쁘다. 그러나 여자들의 남자친구는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나만해도 사귀었던 남자 중에 잘생긴 남자는 단 한 명이었는데, 그와는 사실 사귀었다고 볼 수 도 없는게, 짧은 시간 사귀고 헤어졌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잘생긴 남자는 별로 없고, 잘생긴 남자가 매력적일 확률도 그다지 높지 않고, 무엇보다, 잘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 본 여자에게 '나는 오늘 너랑 잘거야'라는 말을 해서 통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여자들이 '어머, 이 남자는 잘생겼어, 자야해!'라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전에 한 만화에서 똑같은 행위도 잘생긴 남자들이 하면 여자들이 성희롱으로 느끼지 않는다고 한 걸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 너무 불쾌했었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기차안에서 처음 보는 여자에게 '나는 너랑 잘거야' 따위의 말을 하는 건 불쾌하고 무서운 일이다. 잘생겼다고 해서 그 말이 여자에게 행운의 말이 아니다. 유혹의 대사도 아니다. 자기들끼리 그렇게 오해하고 못생긴 남자들은 또 괜히 열폭해서 '니네 유연석 같은 놈들이 그러면 화 안낼거잖아' 같은 거 하는 거 진짜 병맛이다..
영화의 절반이 넘어가도록 남자와 여자의 병맛 캐릭터 때문에 화딱지가 났다. 병신인가...하는 말이 수시로 튀어나왔는데, 여자는 한 부서의 팀장이면서도 얼마나 어수룩하고 꽉 막혔는지, 그리고 그 모습이 남자가 볼 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드러난다. 이거야말로 김을동의 망언이 생각나는 장면인 것이다. '똑똑한 여자는 밉상'... 영화속 여자는 행동이 어설프고, 감정이 다 드러나고, 꽉 막혀있고, 순진하고, 원나잇을 겁내고, 하룻밤 섹스보다 감정의 교류를 중시하는 장면 등등으로 '세련되지 못했으나',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되어 있다. 참... 한숨이 나온다.
여자에게는 특유의 장점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장점. 여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남자의 장점을 캐치해낼 수 있다. 잘생긴 남자와 하룻밤 자기 위해 장점을 '부러' 찾을 수도 있겠지만, 여자는 잠깐 남자랑 지내는 동안에 이 남자의 '괜찮은' 면을 찾아내는 것이다. 자신에게 '사랑할 능력'이 충분히 있는 여자인데도, 여자는 남자 앞에서 어수룩하고 꽉 막힌 여자가 된다.
'조셉 고든 래빗'이 감독하고 주연한 영화 [돈 존]에서 남자는, 포르노에 중독되었었고 또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보았지만, 한 여자를 만나 그 여자의 눈을 보고 대화를 하면서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좋은지도. 결국 영화속에서 남자(유연석)도 자신의 감정이 흔들리는 것에 당황하고 여자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결국 그도 '마음 줄 사람'하나를 찾지 못해 자신의 원나잇에 합리성을 부여하고 다닌 셈이다. 게다가 그런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더 쉬웠다, 그에게는.
잘생긴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남자보다 성공확률은 더 높을 것이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관계가 지속되는 것과는 별개로, 어쨌든 유리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기차안에서 나는 너랑 잘거야, 를 말하는 것조차 용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너와 내가 일대일로 만나고, 그리고 서로 대화를 하다가, 그런 상황에서 매력을 느껴서 '오늘 너랑 자고 싶다' 를 말하는 것과, 기차안에서 처음 본 여자에게 '너랑 오늘 잘 예정이야'를 말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는,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쌓이지만 그걸 결국 풀어나가는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상황들을 보면서 나라면 어떨까, 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아하고 또 어떤 상황들에서는 내 상황들과 겹쳐져 웃거나 울거나 하는 것도 좋아한다. 수많은 로맨틱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여전히 사랑과 감정 그리고 연애를 다룬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구상의 남자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로맨틱한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맨틱한 영화를 보는 여자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로맨틱한 영화속 주인공들이 반드시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저마다의 장점과 매력을 가지고 있듯이 또 저마다의 단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각자의 부족한 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상대에 대한 사랑으로 그것들을 극복하면서 혹은 견뎌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로맨틱한 영화의 주인공이 반드시 똑똑하고 매력적이고 현명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 역시도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날의 분위기]에서의 남자와 여자 캐릭터는 많이 실망스러웠다. 단순히 불완전한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앞서 시선 자체가 불편하다. 영화속에서 여자와 남자는 동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를 많이 '돕고', '이끌어주고', '가르친다'.
한 조사기관에서 노인들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3위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것이고, 2위가 저축을 더 많이 하겠다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1위가 성관계를 더 많이 맺겠다는 것이었다. -111쪽
나는 내 젊은 시절에 내가 문란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내가 너무 많이 내 몸을 아꼈던 것을 후회한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뭐든, 하면할수록 더 잘하게 되는것처럼, 섹스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대체적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 모든 행위들은,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 직접 해보는 게 더 많이 도움이 되는 법이다. 섹스의 유혹 앞에서 '아니' 라고 말하기보다 '그래, 하자'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뭐가 그렇게 '안돼'기만 했는지... 어느 순간이 되면 섹스의 유혹 자체가 줄어들다가 결국 멈춰버릴 거라는 걸 안다. 섹스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고, 섹스를 안해도 사는데 사실 그다지 큰 지장이 없지만, 살면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많이 하고 살아도 좋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세상에는 쾌락으로 삶을 지탱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또 쾌락으로 삶을 지탱한다고 했을 때, 그 쾌락이 반드시 섹스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오늘 처음 만난 이성이 하룻밤을 제안했을 때, 나는 기꺼이 '그래!'를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안돼'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각자가 어디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한 사람과 십년간 섹스할 수도 있고 일곱 명의 사람과 매일 번갈아가며 섹스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너와 내가 함께 원했을 때에 가능하다. 특히나 기차안에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너랑 잘거야..같은 거 하면 안된다는 거다. 섹스는 누군가에겐 엄청 좋은 거고,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모두에게 그런 게 아니다. 게다가 나보다 힘이 센 사람이 '나는 너랑 오늘 섹스할 예정이다' 같은 거 말하면, 무섭다. 그러는 거 아니다. 나랑 자고 싶다면, '나는 너랑 잘거야'를 대뜸 말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일단 나의 호감과, 관심과, 마음을 얻는 게 우선이다. 잘생겼다고 해서 내가 '오 나야 땡큐지' 이러면서 자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건 팁인데,
원나잇을 해봤더니 공허하더라, 하는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을 먹고 한 잠 푹 자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따뜻한 밥을 먹고 한 잠 푹 자는 것은, 다른 많은 공허함, 슬픔, 외로움 등등에도 도움이 된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