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러네이 엥겔른 지음, 김문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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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에 회사 여직원이 노메이크업으로 출근을 해서는 사무실에 도착해 화장을 했던 적이 있다. 그 때 남자 상사가 그 모습을 보고는 크게 혼냈다. '화장은 아빠도, 오빠도 모르게 하는거다!'는게 이유였다. 여직원은 이에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만약 그 여직원이 집에서 화장을 하고 왔다면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일찍 일어나서 화장을 마치고 나와야겠지. 그랬다면 같은 회사, 같은 거리에 있는 남자직원보다 좀 더 수면 시간이 짧았을 것이다. 남자는 잘 시간에 여자는 화장을 해야 하는 이 부조리함(또 퇴근하면 지우기도 해야한다). 게다가 화장을 하는 게 예의라고, 화장한 모습으로 대부분의 여성을 출근하게 만드는 이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데 '화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고? 이건 너무나 혼란스러운 지점 아닌가. 말 자체가 모순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나. 이건 중학교 시절의 브래지어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여중을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반드시 브래지어를 착용하게 했고, 그런데 브래지어 끈이 보이면 안된다고 그 위에 셔츠를 더입게 했다. 더운 여름날 교복 하복을 입기 위해서는 그 안에 런닝셔츠도, 브래지어도 있어야 했던 것.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아? 젖꼭지를 가리기 위해 브래지어를 하고, 브래지어를 감추기 위해 셔츠를 더입고 그 위에 교복을 입고... 왜 우리는 뭔가를 감춰야 하고, 감춘 걸 또 티내지 않아야 하는거야? 브래지어도, 런닝셔츠도 안입고 교복 하나만 슝- 입으면 되는 남학생들에 비해 확실히 효율이 떨어지잖아?


화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우리 회사 상사뿐만은 아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화장하는 여자들을 욕하는 글들은 인터넷에 얼마나 많이 올라왔던가. 그들도 그들이 왜 비난하는지는 모르고, 그런데 비난은 해야겠고, 그래서 파우더 가루가 흩날린다..같은 얘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비난을 위한 비난이 아닌가. 베이비 파우더 바르는 것도 아닌데 무슨 가루가 날려... 그러면서 자기 여자 친구나 여자 동료가 화장을 하지 않으면, '그래도 여자가 화장은 하고 다녀야지'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장을 하긴 해야하는데, 이동 시간 중에 짬을 내면 안되고, 항상 너보다 먼저 일어나서 잠을 줄여가며 화장을 하고, 그리고 완벽하게 셋팅된 모습으로 너를 만나야 한다는거지? 니가 애인이든, 상사든, 친구든..그게 뭐든?



대학때는 화장을 잘 하지 않고 다니긴 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사례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면에서나 준비된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하도 오래 그렇게 살아와서 이제는 화장하는 시간이 처음보다 확 짧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히 시간은 걸린다. 머리가 길고 웨이브졌다면 말리고 고데를 하고 에센스를 바르는 시간도 걸린다. 시간만 걸리나, 돈도 들여야 한다. 돈만 들이나, 에너지와 신경도 그 쪽으로 당연히 쏠린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피부 당기지 않게 스킨로면만 촵촵 발라주고 옷만 입고 휙- 나오면 삶은 간단할텐데, 거기에 여자들은 화장이 끼어든다.




티비에서도 잡지에서도 어딜 봐도 날씬하고 화려하게 화장한 여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그녀들은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는다. 어쩌다 한 장면, 어쩌다 한 명의 그런 여자를 본다면 심드렁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세상이 하나 되어 그 여자들이 진리인 것처럼 말해버리면,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아, 저렇게 예뻐져야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저렇게 예뻐져야 사랑받겠지, 저렇게 예뻐져야 손가락질 당하지 않겠지. 사회가 정해놓은 미의 기준, 그리고 여자는 아름다워야 인정받는다는 강한 메세지 때문에, 여자들은 먹는 양을 줄이고, 꾸역꾸역 운동을 하고, 좋은 화장품을 여러개 사고, 긴 머리에 바를 좋은 헤어제품을 산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으면 당연히 행동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느라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들인다. 이 책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텔레비젼에 잔뜩 나오는 저체중 여성은 전체 미국 성인 여자의 3프로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3프로가 되어야 되는 것처럼, 대부분의 여자들이 애를 쓰는 거다. 아무리 해봤자 자신이 완벽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될순 없는데!



다이어트는 식이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은 도울 뿐, 먹는 양을 줄이는 것, 먹는 양보다 활동량이 많아야 체중 감량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방이 쌓이지 않기 위해서는 탄수화물을 먹지 않아야 한다. 세상 맛있는 게 탄수화물에 얼마나 많은데! 그러다보면 식사는 즐거울 수 없다.


나는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맛있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친근한 사람들과 만나 함께 맛있는 걸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만약 내가 탄수화물을, 술을 끊어버린다면, 그건 내 인간관계도 끊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 두번은 만나서 더 적게 먹을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해 살 순 없다. 나는 저체중의 몸대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해나는 음식을 적으로 보라고 배운 적이 없다. 그녀는 "엄마는 정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셨어요. 엄마는 지나치게 말랐던 적이 없어요. 그리고 건강한 식습관의 모범을 보이셨죠. 그러면서도 때로는 저희가 좋아하는 걸 아낌없이 사주셨어요. 엄마는 '나는 가족들과 이 음식을 즐겁게 먹을 거야. 칼로리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폭식도 하지 않으셨죠."
"음식을 즐겨도 된다고 배운 거군요?" 나는 물었다.
"맞아요." 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엄마 덕분이에요. 음식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가르쳐주셨어요. 음식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고 공동체를 만들어 따뜻하게 대접해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요리해주는 걸 좋아해요."
"그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인가요?" 나는 물었다.
"네. 그래요." 해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도 요리를 하고 빵을 구워서 사랑을 전하셨어요."
해나는 중요한 부분을 짚어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은 만성적인 허기에 동반되는 감정적인 괴로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나눠먹으며 강화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멀어진다. (p.302-303)



당연히 나에게도 외모 강박이 있다.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외모강박 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남자랑 여행간다고 가기 전에 겨드랑이에 왁싱을 받고서는, 그 아픔에 놀라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해야되지?'라고 스스로 물었더랬다. 남동생의 결혼을 앞두고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그런데 내가 왜 그래야하지?'라고 자꾸 되묻게 된다. 어쩌면 나는 외모강박이 심하지 않고 이렇게 스스로 태클을 걸어대서, 사실 내가 그렇게 해야만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래서 번번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다이어트를 할 굳은 의지 같은 것이 없어. 왜냐하면, 나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살아도 행복하니까.




일전에 마른 몸과 성형수술을 원하는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계속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 나 역시 납작한 배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고, 운동의 목적 중에 다이어트도 있었던 사람으로서(실패중이지만..), 왜 나도 이러면서 저 친구가 저러는 것은 불편하게 느껴질까..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나도 이러면서 누군가 저러는 것에 대해 불편하다는 것은 내 스스로의 모순을 증명하는 꼴이 아닌가 싶었던 거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사람과 나의 인생의 우선순위가 달랐던 거다. 외모 강박의 크기가 달랐던 거다. 그 친구는 애인의 첫째 조건도 외모였다. 그러니 자신이 갖추어야 할 첫째 조건도 외모였던 거다. 그런데 나는, 외모가 아닌 다른 것에 더 신경쓰는 사람이고 싶고 또 그런 사람과 친구 혹은 애인이 되기를 바랐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분명히 더 중요한 목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그 중요한 목표가 외모였던 거다. 우리가 각자 생각하는 중요한 목표가 달라서, 그래서 나는 그것이 불편하고 어색했구나. 




우선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으니까. 또한 대부분의 여성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신경 쓸 것이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중요한 목표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 이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도 그에 맞춰진 눈금판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p.335)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어릴 때부터 아름답다 혹은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예쁘다'는 말이기 때문에 칭찬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예뻐지고 싶고 못생긴 곳은 어디인지, 자꾸만 자기의 외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 자꾸만 생각하다보면 신경과 에너지는 당연히 그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다. 그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더 많이 하자고 얘기한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나 불평을 언급해 그것을 화제에 오르게 하고 또 그래서 자기 외모를 들여다보게 만들기보다는, 외모 이외의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자고. 그런 식으로 이 책에서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몸에 대해 편지쓰기도 시킨다. 그러니까 순전히 '기능적인' 측면에서. 손이 하는 역할, 발이 하는 역할등에 대해 생각하면서. 또한, 트레이너들한테도 '더 날씬한 몸, 비키니를 입기 위한 몸'으로 격려하는 대신, 우리 몸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걸로 격려하라고 설득한다. 그 편이 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더 동기부여가 된다는 거다.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요가를 시작했지만, 당연히 거기에 다이어트도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것처럼, 요가를 했다고 해서 살이 빠지거나 배가 납작해지진 않았다. 그러나 요가를 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요가쌤이 앞에서 계속 코어에 힘을, 코어에 힘을..하고 얘기하는 바람에, 처음 시작할 때보다 코어에 힘이 더 생겼다. 안되는 자세들이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되는 걸 느끼면서, 아, 내 몸에 힘이 더 생겼구나, 하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어찌나 신나는 일인지! 그래서 요가로 납작한 배를 만들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요가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내 몸에 힘을 키우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니까. 안되는 자세들을 시도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가 결국 해내고 났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을 살면서 계속해서 느끼고 싶다. 예뻐지고 싶다, 저체중이 되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하기 보다는, 건강해지고 싶고 근육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더 몰두하고 싶다. 또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싶다. 저자도 이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들이 내게는 아주 많다. 할 일도 많고.



최근에는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 그러니까 나랑 비슷한 사람들을 곁에 남겨두자는 생각이 좀 더 강해졌다. 인생 가장 중요한 목표가 나와 너무 다른 사람과는 이야기 하면서 불편함을 느낀것처럼, 비슷한 사람과는 이야기하는 게 참 행복하다. 어제 책 읽는 남자사람친구가 책을 읽다 좋은 소식을 전해준 것처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공부하고 또 책을 읽는 것들이 내게는 무척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걸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혹은 애인으로 두고 싶다. 그간 못!생!긴! 남!자!들!만! 사귀었던 것은  (남자들이 다 못생겼기 때문이다...)아마도 이런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게는 외모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게 많았어.


더불어 조카에 대해서도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잡았다.

그동안 외모품평 해대는 프로그램들이 수두룩하게 나와 저절로 예쁘고 미운 걸 파악하고 언급하는 조카에게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누구나 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다' 는 등으로 얘기해왔었는데, 이제는 그보다는 다른 중요한 것을 언급하고 싶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어떤 일을 할 때 재미있어? 어떤 게 즐거워? 등등. 외모 강박에 벌써부터 둘러쌓인 조카에게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의 중요성, 삶의 재미 같은 것들에 대해 언급하며,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조카야, 니가 예쁠 필요도 없고 날씬하기 위해 고통스러울 필요도 없어.



끝으로, 책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해 꼭 언급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면서 '아, 책을 읽는 것은 너무나 좋다' 하고 또 생각하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내가 가졌던 미묘한 불편함의 정체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하는 것도 책이지만, 내가 아는 것에 대해서도 시야를 더 넓혀주고 사고를 확장해주는 게 책이다. 도움을 받기 위해 읽은 게 아닌데, 읽고나면 어떻게든 도움을 받는다. 누군가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토론을 하고 생각을 해서 고심해 쓴 글을 이렇게 편하게 앉아 읽는 것만으로 이 큰 도움을 받는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책을 읽고 그 후의 감상을 글로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몹시 흡족하다. 또한 내가 이렇게 글을 남김으로써 나는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엄마는 ‘모든 걸 할 시간은 없단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겉모습에 신경 쓰다 보면 내면의 발전에 신경 쓸 수 없다고 하셨어요. 중요하지 않은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요." 가브리엘은 어머니의 말을 골똘히 생각하며 먼 곳을 응시했다. 이제야 그 말에 담긴 진실을 발견한 것 같았다. "여성이 외모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면 그 시간과 정신적인 에너지를 다른 일에 쏟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직장에서의 지위나 동등한 임금, 아니면 더 나은 교육 같은 것에요." (p.54)

대상화는 당신이 생각과 느낌, 목표와 욕망을 지닌 진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대신, 당신은 그저 몸 또는 신체 부위의 총합으로 취급받는다. 심하게는 당신의 몸은 그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무언가로 취급받는다. (p.63)

몸이 성숙해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때론 그 몸을 감춰야 안전하다는 것을 딸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생식을 위해 성숙해진 몸이 자신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고 동시에 성인 남성을 유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딸에게 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건강한 태도를 가르칠 수 있을까. 이는 모두 미지의 영역이다. (p.68)

에린은 지하철 안에서 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 한 남성이 에린에게 그녀가 얼마나 섹시한지 이야기했다. 이에 에린은 재미없다고 대꾸했다. 그리고 "제발 꺼져줄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다른 칸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러자 그 남성은 계속 "넌 정말 못생긴 X야. 아주 토 나오게 못생겼어. 이런 못생긴 X에게 말을 걸었다니 말도 안돼."라는 말을 했다. 정말 모순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 남성은 그녀가 섹시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접근했다. 그런데 거부당하자 그녀를 못생겼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젊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외모라고 교육한다면 당연히 남성(그리고 여성)은 여성에게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히고 싶을 때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p.76)

내가 스물네 살의 대학원생 강사였던 시절 첫 교수 평가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중에는 "교수님, 파란 스커트를 자주 입으세요. 예뻐 보여요."라는 코멘트가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교수 평가는 익명으로 이뤄졌지만, 누가 썼는지 알아내기 위해 출석부를 계쏙 훑어보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동안 내 다리만 생각했던 학생은 누구였을까? 심지어 그 수업은 ‘젠더 심리학‘ 이었다. 그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 학생은 여전히 그런 식의 코멘트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p.87)

사춘기 이후 에린은 자신이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극도로 신경 쓰게 됐다. 에린은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출렁거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녀와 쌍둥이 여동생은 성숙한 몸을 감추기 위해 남자처럼 옷을 입으면서 어린 시절을 연장했다. 나는 에린이 소년과 같은 외모로 살기로 결심함으로써 무엇을 얻었는지 궁금했다.
에린은 자신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좀 더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제 몸을 사용하는 것이 좀 더 편안하게 느껴졌어요."라고 설명했다.
"남자들은 그런 신체적 자유를 계속 누린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물었다.
에린은 화가 나서 고개를 저었다. "그게 바로 제가 남자 친구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예요. 지하철에 앉아 있는 남자들만 봐도 그렇잖아요. 그들은 자신의 몸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남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지, 남의 신체에 접촉하고 있는지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그리고 그게 부러워요." (p.101)

몇 년 전 나는 강의실을 가득 채운 심리학자들 앞에서 자기 대상화에 관해 발표했다. 여성의 자기 대상화가 어떻게 신체 혐오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토론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심리학자가 질문을 던지며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어쩌면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혐오를 느끼는 건 좋은 일이 아닐까요? 몸무게가 늘어나서 기분이 나빠지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비만을 막아줄 테니까요."
그날 이후 비슷한 질문을 여러차례 들었다. 대부분은 무례한 말투였다. (p.105)

최근에는 《뉴욕 타임스》페이스북이 ‘살찐 느낌‘이라는 이모티콘을 없애고 한 결정에 관해 쓴 글이었다. 분노에 찬 이메일을 보낸 사람들은 모두 남성으로 신체 혐오는 옳지 않다는 나의 주장을 몹시 비난했다. 이들은 신체 혐오는 비만을 방지하는 훌륭한 예방책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프랑스 여성은 모두 날씬하다면서(어쨌든 이는 진실이 아니다) 그 이유는 프랑스 문화가 효과적으로 살찐 여성에게 창피를 주기 때문이라고까지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미국의 미래가 밝다고 했다. 나는 여성이 자신을 혐오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내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p.105-106)

M.K. 는 심리적 상처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죄책감‘ 대문에 지금도 계속 부모님과 연락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중증의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최근 아버지는 그녀가 너무 짧게 머물다 간다고 화를 냈다. M.K.는 아버지에게 용서해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그녀는 평정심을 잃었다.
"나는 다 용서했다고요!" 그녀가 소리 질렀다.
"뭐?" 아버지는 딸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용서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M.K.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10대였을 대 제게 뚱뚱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녀는 울었다.
"뚱뚱했잖니."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말 한마디로 M.K. 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2주 동안 폭식을 했고 5킬로그램이나 늘었다. "아빠의 말 한마디가 절 그 지경으로 만들었죠." 그녀가 말했다. (p.110-111)

최근 몇 년간 여성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이상은 크기, 키, 머리 색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러나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날씬함이다. 이상적인 ‘풍만한‘ 몸매를 가졌다고 손꼽히는 여성들조차 배는 납작하고 셀룰라이트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상적인 날씬함에서 이탈할 경우 종종 적대감이나 조롱을 마주하게 된다. (p.111)

‘건강‘을 위해 강조되는 것들은 대부분 ‘건강‘의 가면을 쓴 ‘아름다움에 대한 우려‘인 경우가 종종 있다. 2015년 애팔래치안주립대학교와 켄트주립대학교 연구팀은 2006년부터 2011년 사이에 발간된 잡지 《위민즈 헬스Women‘s Health》와 《맨즈 헬스Men‘s Healte》의 표지 108장에 실린 제목을 분석했다. 《위민즈 헬스》표지에 쓰인 가장 큰 제목중 83퍼센트는 외모나 다이어트의 관점에서 작성됐다. 《위민즈 헬스》의 기사 타이틀 역시 《맨즈 헬스》에 비해 외모를 강조하는 경향이 더욱 높았다. 두 잡지 모두 건강에 직접적으로 초점을 맞춘 제목은 없었다. 잡지명에 ‘건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도 말이다.
몸무게에 따른 차별은 증가하고 있지만 차별이 비만을 방지할 것이라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p.117)

여성의 건강을 걱정하기 때문에 비만을 혐오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여성의 건강을 향상시킬 다른 방법을 정중히 제안하려 한다.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자. 국경 없는 의사회에 기부하자.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연구와 법률 제정을 지원하자.
잔인함은 건강에 개입하는 방식이 아니다. 이는 그저 자신의 자존감을 북돋아 주기 위한 독선적이고 그릇된 시도일 뿐이다. 왜 몸을 걱정하고 존중하는 대신 몸을 한탄하고 건강을 방해하는가. 왜 여성이 자신의 사적이고 중요한 부분을 스스로 미워하기 바라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몸을 돌보는 일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p.117-118)

외모 강박은 단순히 여성의 정신적·정서적 건강만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도둑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여성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돈과 시간을 너무도 자주 앗아가 버린다. (p.121)

내 시선은 설문 참여자의 성별을 가장 정확하게 구분 지어주는 항목으로 향했다. "무슨 옷을 입을지 한 시간 이상 고민한다"라는 항목이었다. 여성은 대체로 남성보다 이 문장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걸 봐봐. 네가 흥미를 가질 거라 생각했어." 그가 말했다.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모든 심리적 특성과 관심사 가운데 무슨 옷을 입을지를 고민하는 시간만큼 두드러진 특징도 드물다. 이는 여성의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움에 대한 걱정으로 이뤄지는지를 밝혀줄 강력한 증거가 된다.
나는 결과물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재미있네. 그리고 좀 화도 나고."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외모 강박의 대가에 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체적 자유와 인지적 자원의 감소, 그리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저해 외에 여성은 외모 강박에 대응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 우리는 대가를 치르고 또 치르게 된다. (p.122-123)

분명히 말해두자면, 나는 여성이 아름다움을 위한 비용과 행위를 포기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언어학 교수인 친구가 눈썹을 다듬어주는 동네 가게에 학생들과 함께 가기로 약속햇다. 이는 단합을 도모하는 행사였고 학생들은 여자 교수가 함께한다는 것에 기뻐했다. 친구는 모임을 함께하자며 나를 초대했다. 나는 고마웠지만 초대를 거절했다. "‘미모관리용‘ 뭔가를 또 늘리고 싶지 않거든." 나는 설명했다. 이후 우리 테이블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이 만남을 무척 기대하고 있어. 눈썹 다듬기를 강요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비싸지도 않아. 겨우 10달러라고." 친구는 말했다.
(중략)
당시 나는 눈썹을 다듬기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그걸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됐다. 눈썹을 다듬은 후 더 예뻐 보인다고 느낀다면, 그때부터 눈썹 다듬기는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해야 할 일로 추가됐을 것이다. 나는 기종의 ‘해야 할 일‘ 목록에 그 어떤 것도 추가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방식으로 내 외모를 감시하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부추기고 싶지 않았다. (p.128)

내가 이 책을 위해 인터뷰했던 성인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출근길에 화장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행동은 전혀 특이한 것이 아니다. 이는 여성이 매일 아름다움을 위해 당연히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압박의 상징이었다. NBC의 뉴스 프로그램인 <투데이Today>는 외모에 들이는 시간적 비용을 추정하기 위해 비공식적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 여성은 하루 평균 55분을 외출 준비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년으로 치면 2주나 되는 시간이다. 영국의 한 마케팅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여성은 평생 거의 2년의 세월을 화장하는 데 쓴다고 한다. (p.142-143)

‘아름다움의 심리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아름다움에 얼마나 돈을 쓰는지 계산하게 한 뒤 다시 일주이란 외모에 쓰는 시간을 모두 계산해보게 했다. 여학생과 남학생 간의 차이가 일주일에 두 시간에서 다섯 시간까지 벌어지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남는 시간에는 뭘 하나요?" 나는 남학생들에게 물었다.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잔다는 것이 가장 흔한 대답이었다. 수업을 함께 듣는 여학생들은 부러워했다. (p.143)

지난 몇십 년간 여성의 평균 몸무게가 증가하는 동안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 플레이보이 화보 등에 등장하는 여성은 더욱 날씬해졌다. TV 에 나오는 장면도 다를 바 없다.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되는 시트콤 열여덟 편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을 분석한 결과, 76퍼센트는 저체중이었다. 56개 프로그램의 275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1,000명 이상의 주요 등장인물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 여주인공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저체중이었다. 참고로 미국 성인 여성 중 저체중이 차지하는 비율은 3퍼센트 미만이다. (p.155-156)

불행히도 비판적 논쟁이 여성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수준이 높다 해도 외모 강박에 대해 아무런 면역력도 생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마지막 유형(광고주는 여성을 괴롭힌다)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한 여성은 낮은 점수의 여성보다 자신의 외모에 덜 만족스러워한다는 점이다. 내가 의심하는 부분은 이런 이미지에 맞서 여성이 만들어내는 주장은 대개 이미 심리적 손상을 입은 후에야 등장한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이미지에 한 방 맞은 후에야 응전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p.206)

(도브의 ‘아름다움을 선택하세요 Choose Beautiful‘광고를 언급하며) 오히려 이 캠페인은 여성이 외모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한다. 광고주들의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런 광고들은 실질적으로 신체 모니터링과 자기 대상화를 부추긴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신체 모니터링의 영향력은 반反직관적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모를 칭찬하면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느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외모에 대한 칭찬은 여성의 관심이 외모로 옮겨가게 하거나 자신의 몸이 평가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여 심하면 신체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와! 이 남자가 날 섹시하다고 생각하네!"라는 생각에서 "잠깐, 이 남자가 내 배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이 셔츠를 입었을 때 내 배가 납잡해 보이던가? 그럼 내 다리는 어떻게 보이지? 내 머리는?"이라는 생각으로 옮겨간다.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미를 기준으로 자신의 몸을 점검하게 되는 것이다. (p.223)

나는 베스에게 그녀의 아버지가 여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주었냐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외적인 아름다움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물었다.
"아빠가 엄마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알았어요. 엄마는 옷을 찾거나 유행을 좇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거든요. 그런 엄마를 존중하는 ㅐ도나 엄마한테 외모의 기준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에서 아버지가 외모를 중시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베스 아버지의 행동은 "당신은 아름다워요"라는 메시지보다 훨씬 강력했던 것이다. (p.224-225)

아름다움에 무관심하려는 베스의 노력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녀에게 SNS를 하냐고 물었다. 베스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했다. "SNS에서 다른 여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나요?" 나는 물었다.
"제 친구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이것저것 바꿔요.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 앱을 사용하죠. 저는 그런 걸 하지 않아요. 제 SNS 를 보여드릴게요. 저도 제 사진을 올리기는 해요. 하지만 제가 웃기게 나온 사진이나 제 성격이 드러나는 사진을 올려요." 베스가 대답했다.
나는 그녀의 SNS 사진을 둘러보고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환한 웃음과 바보 같은 표정이 가득한 사진이었다. (p.225)

머리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려는 청소년기와 20대에 접어들 무렵에는 화장을 했었다. "일을 시작할 때 ‘화장을 해야겠구나. 왜냐하면 프로답게 보여야 하니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화장을 조금 했죠. 그러다 화장이 지겨워졌고 그만뒀어요. 그러니까…그래요. 화장을 하지 않기로 의식적으로 결정한다는 게 뭔지 알아요. 외모에 대한 규범의 일부를 어기는 거죠.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거 알아? 사람들은 내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일을 잘한다는 걸 알아. 그러니 그만해! 라고요." 그녀는 말했다.
머리나는 화장을 재미있어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화장은 예술이 되거나 개인적인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여성들은 자신을 결점투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얼굴의 얼룩덜룩한 부분을 화장으로 감추지 않으면 창피해서 밖에 나가지 못하죠." 라고 했다. 그리고 "여성이 화장을 하는 데엔 수많은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저는 휘둘리지 않을 거예요." 라고 재차 강조했다. (p.242)

행복 연구가 에드 디너Ed Diener는 대학생 200명을 조사한 결과, 가장 행복한 학생이 평균 수준의 행복 지수를 보인 학생보다 반드시 매력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신체적 매력은 전반적인 행복과는 낮은 상관관계를 보엿다. 그러나 이를 해석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보다 스스로를 신체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실 외모와 행복 간의 약하고 일관된 연관성은 일상생활에서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신체적 아름다움보다 더 강력한 행복의 예측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나 일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대할 때, 외모의 영향력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은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당신을 파괴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마법의 총알이 아니다. (p.245)

우리가 우리 몸을 비하하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내 몸을 비하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된다. 부정적인 보디 토크는 여성이 항상 외모에 대해 걱정해야 하고 자신의 몸을 싫어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그러나 우리의 말은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외모 강박적인 문화에 맞서는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는 외모에 대한 대화를 바꾸는 것이다. 이는 외모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가장 좋은 것은 주제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이다. 대화의 주제는 매우 많다. 굳이 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p.270-271)

대학을 졸업하고 2년이 지난 어느날 에이미는 세일 제품이 쌓여 있는 상점 앞을 지나게 됏다. 그녀는 100퍼센트 순면이라는 여성 속옷에 주목했다. 전환점이라 말하기에는 이상한 장소였지만 중요한 순간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다. 그리고 그날은 그녀가 성인이 되어서 직접 속옷을 사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종식을 고하는 날이 되었다. 그동안은 그녀의 어머니가 속옷을 사다 주셨다. "항상 잘못된 사이즈에 작고 불편한" 속옷이었다. 에이미는 순면 속옷을 두 장 구입했다. 그리고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그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녀는 그 순간의 즐거움을 생생히 기억한다. "처음으로 저에게 맞는 커다란 할머니 속옷을 입었어요!"
"어떤 느낌이었나요?" 나는 그녀의 말에 희한하게 기쁜 마음이 들엇다.
"정말 좋았어요! 정말 편안했거든요. 그동안 속옷이 불편해서 내가 까칠하게 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 속옷은 언제나 약간 작았어요. 하지만 그 검은색 할머니 팬티를 입었더니 정말 편안했어요." 에이미는 그날을 떠올리며 쓰러질 정도로 웃었다. (p.291-292)

"계속 그 옷을 입었나요?" 나는 물었다.
"와, 당연하죠." 에이미가 대답했다. "계속 입어요. 그건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거였어요. 제 몸을 받아들이는 행위였죠. 다시는 제게 맞지 않는 옷에 제 몸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을 거예요." (p.292)

해나는 음식을 적으로 보라고 배운 적이 없다. 그녀는 "엄마는 정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셨어요. 엄마는 지나치게 말랐던 적이 없어요. 그리고 건강한 식습관의 모범을 보이셨죠. 그러면서도 때로는 저희가 좋아하는 걸 아낌없이 사주셨어요. 엄마는 ‘나는 가족들과 이 음식을 즐겁게 먹을 거야. 칼로리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폭식도 하지 않으셨죠."
"음식을 즐겨도 된다고 배운 거군요?" 나는 물었다.
"맞아요." 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엄마 덕분이에요. 음식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가르쳐주셨어요. 음식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고 공동체를 만들어 따뜻하게 대접해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요리해주는 걸 좋아해요."
"그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인가요?" 나는 물었다.
"네. 그래요." 해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도 요리를 하고 빵을 구워서 사랑을 전하셨어요."
해나는 중요한 부분을 짚어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은 만성적인 허기에 동반되는 감정적인 괴로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나눠먹으며 강화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멀어진다. (p.302-303)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지닌 여성들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p.303)

해나는 성인이 되어 앞서 말한 그 캠프에서 상담사로 5년간 일했다. 그녀는 "여자애들이 계속 저를 찾아와서 ‘누군가가 저에게 관심을 가질까요? 누군가가 저를 사랑하게 될까요?‘라고 물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해주나요?" 나는 물었다.
"저는 ‘네 모습을 모두 살펴봐! 네 모든 면을 봐봐!라고 해요. 너 자신이 되라고 이야기하죠.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를 매력적이라고 느낄 땐 그의 본래 모습 자체에서 편안함을 느끼거든요." (p.314-315)

우선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으니까. 또한 대부분의 여성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신경 쓸 것이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중요한 목표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 이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도 그에 맞춰진 눈금판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p.335)

대부분의 소녀에게는 옷을 차려입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학교 댄스파티에 가는 재미임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기억하자. 소녀들이 입은 드레스는 너무 짧아서 편안히 저녁을 먹을 수조차 없었다는 것을. 옷이 단 몇 센티미터만 길어져도 뇌 공간의 상당한 부분을 되찾을 수 있고 소녀들도 예뻐 보일 수 있다. 분명 행복한 중간 지대가 존재한다. 우리가 매력적이라 느기면서도 옷 때문에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지점 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우리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옷을 굳이 선택함으로써 더 많은 난관을 만들 필요는 없다. (p.338)

외모 강박적인 문화가 수천 번 할퀴고 지나간 작은 상처가 소녀나 여성을 무너뜨릴 수 있듯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수천 번의 작은 걸음이 소녀와 여성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부터 여성의 외모에 집중하지 않는 자세를 갖추고 다른 이들도 이에 동참하도록 격려함으로써 의미 있는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대상화하는 행동이나 광고에 앞장서는 조직을 저지함으로써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자신을 느끼고 주체적으로 자신을 정의해야 한다. 우리의 돈과 시간을 다르게 써야 한다. 우리의 몸은 더 건강해져야 한다. 우울증과 분노가 흔한 것이 되어서도, 심각한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 여성은 시선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저 럽은 세상에는 봐야 할 것이 아주 많다.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p.34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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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6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6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6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7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리브 2018-05-17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이런 글이 너무너무너무 좋아요. 어린 아가 키우는 중인데 아기 잠자는 시간에 다락방님 글 야금야금 보는 게 얼마나 큰 낙인지! 많이 읽고 또 많이 써보며 언젠가는 저도 다락방님처럼 저만의 글도 써보고 싶어융- 맨날 읽기만 하고 가다가 오늘은 흔적도 살짝 남겨요! 아줌마되고 살도 찌고 화장도 잘 안하게 되면서 괜히 주눅들도 마음 불편했는데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제 느낌의 실체? 를 파헤치고싶네요.ㅋㅋ

다락방 2018-05-17 10:22   좋아요 0 | URL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어마어마한 과정을 겪었는데도 그 사람에게 한결같이 날씬하고 예쁜 모습을 기대하고 바란다는 것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쵸? 왜 그 어마어마한 과정을 겪었는데도 변함없이 꾸밈노동에 몰두해야 하나요? 일단 몸을 추스리고 돌보는 게 먼저지요. 앞으로 아이랑 함께 지내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하는데, 괜한 죄책감으로 건강 해치지 마세요, 배유미님.

지금처럼 아가 잠든 시간에 읽고 싶은 글 읽고 생각도 하고 글도 쓰면서 그 날 그 날의 감정을 정리하고 돌보는 게 훨씬 유익할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도요. 그리고 앞으로 아가랑 함께할 날들을 생각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스럽거나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에서요. 건강하자고, 행복하자고, 즐겁자고 하는 거니까요.


천천히 책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거예요.
그리고 배유미님께 읽는 재미를 드릴 수 있는 글을 쓴 제가 참 자랑스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흔적 남겨주셔서 더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종종 봬요!
 

좀전에 나의 친애하는 청년이 《읽기의 말들》에 다락방이 언급된 걸 알고 있느냐 물었다. 아니? 아니? 읽기의 말들이란 책은 알지만 그건 모르겠는데?! 그러자 그 청년은 잠시만 기다려보라며, 이렇게 제보해주었다.





아아... 그 청년은 이 책이 좋은 책이라고 했는데, 좋은 책에서 언급되다니, 독서공감은 또 얼마나 멋진 책인가.... 그리고 이어지는 청년과 나의 대화..





내가 진짜 대단한 책을 썼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멋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랑하려고 들어왔다. 뿌듯뿌듯.



그나저나 아까 책 한 바구니 주문해서 내게로 오고 있는데 저 책도 사야겠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살 핑계는 많고도 많구나. 얼쑤~



















아, 그리고 여러분.. 책 읽는 친구를 두면 이렇게나 유익합니다! 이런 제보도 받고 그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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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8-05-15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방금 도서관에서 집다 놨는데 다시 집으러 가야겠네요 ㅋ

다락방 2018-05-15 21:07   좋아요 0 | URL
다시 집으로 가셔서 꼭 읽어주세요! ㅎㅎ

그렇게혜윰 2018-05-15 21:12   좋아요 0 | URL
빌렸습니다ㅎㅎㅎ

다락방 2018-05-16 07:53   좋아요 0 | URL
만세!! ㅎㅎㅎㅎㅎ
 

지난 주의 홍콩여행 후유증은 상당했다. 매일 피곤했고, 누굴 만나도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덕분에 이번 주말에는 쉬자, 무조건 쉬자, 먹고 자고 쉬자...라고 생각했다. 토요일 저녁에 술을 마시고 싶으니, 금요일 밤에는 술을 마시지 말자, 라고도 생각했다. 평소라면 금요일도 술 마시고 토요일도 술 마셨겠지만, 금요일엔 요가 다녀와서 말짱한 정신으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토요일 느즈막히 일어나 혼자 먹을 아침 반찬을 준비했다. 식구들은 모두 이른 점심 약속 때문에 일찍 아침을 먹은 상황이고, 나만 먹으면 돼. 나는 외출 준비하는 식구들을 두고 냉장고에서 내가 미리 준비해둔 재료들을 꺼냈다.





지난 주에 떡볶이를 만들어 먹어서 그 때 사둔 어묵이 남아있었다. 좋다, 어묵볶음을 하자.

다이어트를 해보겠다며 진작에 사둔 닭가슴살 소세지는 냉동실에서 잊혀지고 있었다. 좋다, 닭가슴살 소세지로도 반찬을 만들자. 그렇게 나는 재료를 준비하고 어묵볶음 레서피를 찾아 휘리릭 훑어보았다. 훗. 별거 아니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간 마늘과 매운고추를 넣고 달달달 볶기 시작했다. 아앗. 내가 프라이팬을 태운 걸까. 고추를 처음 볶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매운 향이 거실 가득 퍼지기 시작했고, 나를 선두로 해서 모든 가족들이 재채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아빠는 쟤가 도대체 뭐하는 거냐며 거실과 베란다 창문을 다 열며 다니셨고, 남동생은 '이 누나가 사람 잡네' 하면서 재채기를 했다. 엄마는 야, 너 뭐하는거야, 하더니 가스렌지 위에 환풍기를 돌리셨고.... 나도 연신 나오는 재채기에 숨이 막혀... 신이시여, 제가 어디에서 무얼 잘못한걸까요?????



어쨌든 그래도 가던 길을 계속 가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어묵을 넣고 간장과 매실액, 고춧가루를 넣고 계속 달달달 볶는다. 아아, 완성!!




비쥬얼 좋다.. 헤헤헤헤.



이제 쏘세지야채볶음을 할 차례인데, 이것은 어른을 위한 것이니만큼...또 매운고추를 썰었는데, 이미 가족들 한바탕 눈물 뽑게 한뒤라 약간 자신감을 상실했다. 30분만 기다리면 식구들이 다 외출할텐데...그때까지 기다렸다가 할까..하다가...배가 넘나 고팠어. 아니, 몰라, 질러질러 질러버렸!! 하고 또다시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고추를 넣고 달달달 볶았다. 으음. 지금은 괜찮다. 확실히 아까는 기름을 덜 넣고 프라이팬을 태웠던 영향인 것 같아. 그리고 소세지를 넣고 파프리카를 넣고 달달 볶다가, 케찹과 고추장을 듬뿍 넣어서 달달달 볶았다. 역시 완성!!




이건 만들어놓고 보니 반찬이 아니라 안주같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나는 이제 밥을 먹기로 한다. 이왕 요리한 것, 예쁘게 담아먹자 싶어, 알라딘 굿즈 식판을 꺼내 담았다. 열무김치와 시금치, 미역국은 엄마표.





자랑스러운 마음이 차고도 넘쳐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사진을 보내놓고 내가 요리하고 먹는다고 했더니, 여동생은 '밥을 왜저렇게 많이 펐어...'라고 묻더라. 뭐, 왜, 뭐. 뭐가 많아...



그렇게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으하하하...



그리고 그 날의 요가와 기타등등을 한 뒤(낮잠 포함) 저녁엔 식구들과 삼겹살을 구워먹기로 했다. 나가서 사먹을까 집에서 구워먹을까 식구들이 엄청 갈등하다가, 집에서 먹기로 결정! 비오는 날 엄마는 시장에 고기를 사러 가셨고, 나는 판이며 그릇을 셋팅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언제나 소주는 있었다. 후훗. 그리고 엄마가 와 상추를 씻는동안, 나는 고깃집에서 얻어온 파채를 가지고 파절이를 만들었다. 아주 순식간에! 파 넣고 고춧가루, 매실액, 간장, 식초, 참기름을 넣고 손으로 조물조물. 정말이지 순식간에. 이제 파절이 쯤은 일도 아니야! 아아, 내가 만든 파절이는 얼마나 맛있었던지! 아빠도 엄마도 파절이 맛있다 하셨어. 하하하하하.






그렇게 요리의 토요일이 다가고 일요일이 되었는데,

아 글쎄!!

내가 꿈을 꾼거다.

꿈에서 나는 김밥을 아주 잘쌌다.

일전에 김밥을 쌌을 때 내용물과 밥이 따로 놀아 썰어둔 김밥을 들어 올리면 후두둑, 내용물이 빠졌던 적이 있다. 그게 그러니까 벌써..한 이십년 전쯤의 일이고, 그 뒤로 김밥을 쌀 생각도 안햇었는데.... 꿈에서 어찌나 촥촥촥 김밥을 잘 싸서 쌓던지...꿈에서 깨자마자 '아아 오늘 아침은 김밥이다!'하게된 것.


엄마, 우리집에 소금 안쳐진 김있나, 물으니 후훗, 당연히 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냉장고 안에서 김밥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다 꺼냈다. 일단 계란을 풀어 부치고, 김밥햄 대신 스팸을 구워 준비했다. 매운 고추장아찌가 있어 그것도 김밥에 들어갈 수 있게끔 썰어두고, 어제 만든 어묵볶음도 썰어두었다. 마침 엄마가 시금치도 무쳐주신 터다. 아, 참치! 나는 참치를 한 캔 꺼내와 기름을 덜어내고 마요네즈를 잔뜩 넣어서 섞었다. 물론 밥도 덜어서 참기름과 소금 약간으로 간을 해둔 상태였다. 그렇게 재료 완성!!






자, 말아볼까! 나는 김에다 내가 재료한 준비들을 촥촥 얹어서 돌돌돌 말기 시작했다. 후훗. 별거 아닌데? 그리고 썰었습니다.




뭔가 색깔은 연하지만, 이 안엔 햄과 느끼한 참치에 매콤한 고추 장아찌까지 들어있지!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남동생에게 먹어보라 하니 맛있다고 잘 먹는다. 엄마도 맛있다고 하고, 아빠는 '야 사 먹는 김밥보다 맛있다' 하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 김밥 별 거 아니야?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자신감이 붙었어! 이 사진을 여동생에게 보내니, 김밥은 우엉이 생명이라고 다음엔 우엉을 꼭 넣으라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입 안에 우엉의 맛이 느껴져... 좋았어! 다음 일요일에는 제대로된 김밥 재료를 준비해서 만들어봐야지. 우엉과 단무지, 김밥햄과 맛살까지! 제대로 준비해서 해보겠다. 움화화화핫.



아아, 요리 꿈나무... 요리...하다보니 느는 것. 김밥 쯤이야.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요리 자신감이 붙은 나는, 얼마전 사두었던 쫄면 양념이 남았다는 걸 깨닫고는(엄마가 말해줬다), 저녁은 있는 소면으로 비빔국수를 해먹기로 한다. 아하하하하. 이번엔 제대로된 비빔국수를 만들어보겠어!



나는 소면을 삶고, 김밥 싸다 남았던 계란 지단을 잘라 넣고, 삼겹살 먹다 남았던 상추도 찢어 넣고, 쫄면 양념을 넣고, 열무김치도 자잘하게 썰고, 고추 장아찌도 썰어 넣고, 참기름을 넣어, 아아아아, 진짜 맛깔스런 비빔국수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아아, 다들 맛있다고 어찌나 잘먹던지..배터진다며...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요리 포텐 터져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동안 못했던 건 뭐랄까, 요리를 잘하기 위해 시동을 건 것이라고나 할까. 난 그냥 생각만 하면 다 잘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어! 요리 포텐 터진 나는 요리 꿈나무에서 금세 요리의 신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문득 칠봉이 생각났다.

칠봉아, 너는 어떤 여자를 놓친 것이니... 요리의 신을 놓친 것이야........남은 생을 후회하며 살아라.......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도 제가 이렇게 요리 잘하는 여자가 될 줄은 몰랐어요.

빨리 다음주 일요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대로된 김밥을 만들어야지. 우엉을 잔뜩 넣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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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5-1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밥작살이다..... 쳐다보는데 내가 그냥 맛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5-14 08:55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다음엔 더 제대로 말아보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놓고 뿌듯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쓱으쓱)

2018-05-14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5-14 09:12   좋아요 0 | URL
더 나은 비쥬얼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랜만이어요!!

지나 2018-05-1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점심은 김밥 저녁은 국수 만들어보겠습니다.전 제가 만든 음식은 잘 안먹는데 ㅋㅋ 만들어서 아들이랑 남편주고 저는 주로 빵을 먹습니다.내가 한거 맛없어서.오늘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다락방 2018-05-14 09:41   좋아요 0 | URL
저도 제가 한 거 맛없어서 ㅋㅋㅋ 사실 식구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편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로 먹다말고 버리기도 하고 그랬는데 ㅋㅋㅋㅋㅋㅋ 이번에 김밥과 국수는 성공했어요. >.<

쥴리님, 화이팅요!!

유부만두 2018-05-14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끼야!!!! 이제 실력이 터져 나오는군요!!!

다락방 2018-05-14 09:41   좋아요 0 | URL
분발하겠습니다. 꺅 >.<

비연 2018-05-14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요리의 신이셨다는.. 칠봉님 어쩝니까.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겠죠.. 꼬십니다..ㅋㅋㅋㅋ
저도 이제 혼자 밥을 해먹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여... 음식이란 걸 해봐야 하나 싶은데...
다락방님 페이퍼 보니 자신감 상실...ㅜ

다락방 2018-05-14 10:45   좋아요 1 | URL
제가 말은 저렇게 했지만 ㅋㅋㅋㅋㅋㅋ 사실 칠봉이는 자기 먹을 거 요리하며 산 시간이 엄청 길어서 저보다 요리를 엄청나게 잘합니다. 저는 명함도 못내민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그래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후회해라, 땅을 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가 백날 찾아봐라 나같은 여자 있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님, 저 진짜 너무 요리맹이고 ㅋㅋㅋ 하면 부엌 초토화되고 시간 오래 걸리고 맛도 없고 음식 쓰레기 만들고... 에너지 딸리고... 그랬지만 저는 계속 시도햇어요. 제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과 실제 제가 만든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거리가 있어서 늘 멘붕이었지만, 계속 시도하고 또 시도했어요. 하하하하 주변에서 그만 하라고 해도 계속 했어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할거예요. 요즘에는 양념장같은 게 잘 나와 있어서 사실 굳이 제가 막 뭔가 하지 않아도 되긴해요. 저 비빔국수도 쫄면장으로 만든 거고 ㅋㅋㅋ 그러니 혼자 밥을 해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잘 해나가실 수 있을 거예요. 기존에 만들어진 것들의 힘을 빌립시다! 직장생활하며 에너지 딸리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겠어요?

아! 마트에 가면 볶음밥 잘 해먹으라고 썰어놓은 야채를 팔기도 해요. 일단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걸로 하루하루 먹고 살아봅시다. 그러다보면 좀 더 난이도 있는 걸로 옮겨갈 수 있지 않겠어요?

비연님, 우리 잘 먹고 잘 살아요!! 기운내요!!

비연 2018-05-14 13:32   좋아요 0 | URL
흠흠. 좀더 용기를 내볼까요..ㅎㅎㅎ 전 달걀후라이도 다 터뜨리는 인간인지라 ㅜㅜㅜ 그래도 힘을!

다락방 2018-05-15 08:05   좋아요 1 | URL
제가 바로 만두를 구워먹어도 다 태우는 인간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계란프라이도 말씀하신 것처럼 다 터뜨려서 그냥 다 쪼개버린 다음에 ‘원래 스크램블 하려고 했다‘고 하는 사람이었고요 ㅋㅋㅋ 뭐, 지금도 별반 달라지진 않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자, 조금씩, 조금씩!!

chaeg 2018-05-14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으.. 대단하십니다 _

다락방 2018-05-15 08:06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호호호호호호호호호
얼른 다음 일요일이 와서 제대로된 김밥을 싸고 싶어요! (두근두근)

비로그인 2018-05-1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은 신기해요.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어깨춤이....ㅎㅎㅎㅎ

다락방 2018-05-15 08:06   좋아요 0 | URL
덩실덩실 하셨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다호피쉬님이 재밌게 읽으셨다면, 저는 그걸로 행복합니다. 히히히히히

단발머리 2018-05-14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밥을 쌌던 그 수많은 시간동안 왜.... 나는 김밥에 매콤한 고추 장아찌를 넣을 생각을 못 했는지...
정말 대단한 참치 고추 장아찌 김밥이예요!

근데, 다락방님 나빠요!
예쁜데 글은 또 겁나 멋지고, 힐링 요가에 이젠 어마무시 요리실력까지!
욕심쟁이 우후훗!!!

다락방 2018-05-15 08:07   좋아요 0 | URL
저는 워낙에 매운 걸 좋아해서 뭘 해도 자꾸 고추 넣을 생각부터 해요 ㅋㅋㅋㅋㅋ 떡볶이에도 넣고 김밥에도 넣고. 눈누난나~ ㅋㅋㅋㅋㅋ

요리도 요가도 아직 갈 길이 너무 멀어요 ㅠㅠ
김밥도 자꾸 옆구리가 터져가지고 ㅠㅠㅠ
이번 일요일에 아주 그냥 제대로 한 번 말아보겠어요. 불끈!!

보슬비 2018-05-14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 넘 맛있어 보여요. 특히 김밥과 비빔국수는 은혜롭습니다~~ ^-^

다락방 2018-05-15 08:08   좋아요 0 | URL
마트에 가면 쫄면 양념장 냉면 양념장 다 팔더라고요 ㅋㅋㅋㅋ 딱히 수고롭지 않게 쫄면도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쫄면은..음..쌈무 사서 썰어 넣고 콩나물 좀 삶아 넣으면 또 제대로 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씐남)

psyche 2018-05-15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못하는 것도 있으셔야지 이렇게 요리까지 잘하시면 반칙입니당~

다락방 2018-05-15 08:09   좋아요 0 | URL
사실 요리는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요... 제가 이렇게까지 기뻐했던 것은...늘상 요리 너무 못해서 맛없어서 버리기만 했어야 했는데 이번엔 제법 먹을만 한 것들이 나와서 ㅠㅠ 과장되게 셀프칭찬을. 엉엉 ㅠㅠ

그래도 앞으로는 진짜 잘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자주 시도해볼 거예요. 히히.
그래서 뭔가 자신 있는 메뉴를 딱! 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후훗.

transient-guest 2018-05-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눈에는 모든 음식이 술안주로 보입니다만..ㅎㅎㅎ 첨에 이 말을 떠올리다가 식판에 담긴 밥을 보면서 아니구나 싶다가, 밑으로 내려가니 두둥!! 소주가..ㅎㅎ 반찬이 안주가 되는 건 아주 즐겁습니다.. 꼭 안주로 요리를 하지 않아도 은근히 술에 잘 어울려요..ㅎ

다락방 2018-05-15 13:41   좋아요 1 | URL
저는 깍두기 하나로도 술을 정말 잘 마시는 사람이라서 ㅋㅋㅋㅋㅋㅋㅋ 깍두기는 소주,맥주,막걸리,와인 모두에 좋은 안주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반찬이 안주가 됩니다. 그것이 진정 술을 즐기는 방법이지요. ㅋㄷㅋㄷ
제가 모든 요리를 할 때 머릿속으로는 사실 ‘반찬‘보다는 ‘안주‘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ㅋㅋㅋ 안주로 먹기에 좋을것인가 아닐것인가를 두고 하게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럴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 한 번 트랜님과 소주 같이마시게 될 날이 있겠지요. 하하하

transient-guest 2018-05-15 13:52   좋아요 0 | URL
언젠가는 꼭 그럴 날이 오겠죠 ㅎㅎ

clavis 2018-05-19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시고 글 잘쓰고 요가에 요리까지♡♡저두 내일 한국에서 친구가 보내 준 라면,햇반,무말랭이 개시할 생각에 가슴을 설레며 잠이 들려고 합니다...아 3개월 외국 생활이 비문을 만드는가요? ㅠ

오뎅과 떡으로 떡볶이 맹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는데 락방님 사진으로 대리만족하네요(락방님 미오~~~~먹고싶어지잖아요~~~~ㅋㅋ)

다락방 2018-05-24 09:33   좋아요 1 | URL
라면,햇반,무말랭이..개시하셨습니까, 클래비스님?

저는 토요일에 치즈떡볶이 사먹을거예요. 점심에 운동하고 오면서 사먹어야지. 눈누난나~ ㅋㅋㅋㅋㅋㅋㅋㅋ(먹을 생각에 좋아한다)
 

연휴동안에는 아홉살 여자조카를 데리고 홍콩 디즈니랜드에 다녀왔다.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닌, 디즈니에 가보고 싶다고 했던 조카를 위한 여행이었다. 도착한 날에는 밤 늦게 도착해 호텔에서 씻고 바로 잠을 잤는데, 새벽 다섯시반이었나, 조카는 먼저 깨서는 '이모, 일어나도 돼?' 물었다. 아니, 아직 어두워서 안돼, 날 밝으면 일어나야 돼, 라고 말했다. 한시간 후쯤, 조카는 다시 내게 말했다.


"이모 내가 커텐 열어봤더니 날 밝았어. 이제 일어나도 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아침부터 빵터져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동생과 나는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일어난 것이다. 밤늦게 도착했으니 아홉시나 열시까지 자자고 말해두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섯시 반에 걍 일어나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마도 디즈니에 간다는 설레임 때문에 조카는 잠을 못이룬 것 같은데, 어쨌든 그렇게 디즈니에 가서 테마 파크를 가고, 기념품 샵을 가고, 놀이기구를 타고, 퍼레이드를 보고, 밥을 먹고, 걷고 걷고 또 걸어서.... 몸이 부숴질 것만 같은 극도의 피로함을 느꼈다. 저녁은 편하게 호텔 앞에서 먹자, 하고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서는 씻고 레스토랑에 갔다. 레스토랑 앞은 작은 광장처럼 꾸며놨는데, 차가 다니지 않고 테이블들이 여러개 놓여 있어, 거기서 맥주며 간식을 먹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루종일 돌아다녔던 조카는 조카 먹으라고 시켜준 김치볶음밥을, '조금 맵지만 맛있어' 하면서는 잘도 먹었다. 망고 스무디, 망고 스무디 노래를 불러서 망고 스무디도 시켜주었더니, 같이 잘 먹었어. 중간에 여동생과 내가 주문한 호가든이 너무 커서 모두 함께 웃으면서 사진을 찍고 그러느라 여동생과 내가 스맛폰을 만지고 있으니, 계속 김치볶음밥을 먹던 조카는,


"왜 나만 먹어?"


이래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동생과 빵터져서 우리도 같이 밥을 먹었다.



조카는 밥을 다먹고는 또 좀이 쑤셨는지, 저 앞에 나가서 바다 보고 와도 되냐고 물었다. 우리 숙소는 디스커버리 베이에 있는 호텔이었고, 레스토랑에서도 바다가 보였다. 응, 다녀와, 했더니 바다에 다녀오고, 나 저기서 나가 놀아도 돼? 하고는 레스토랑 앞 광장을 가르키길래, 응 나가 놀아, 했더니, 와, 이 작은 아이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걸까. 분수가 있는 광장에서 혼자서 폴짝폴짝 뛰고 노는 거다. 혼자서 빙그르르 돌기도 했다가, 여기에서 저기로 폴짝 폴짝 건너 뛰었다가, 분수대 주변을 빙빙 돌면서 뛰었다가, 바다를 본다고 뛰어내려갔다 왔다가....어휴.... 나한테 계속 나가자고 하는걸, 안돼, 이모 너무 피곤해...하고 안나가고 레스토랑에 앉아 그렇게 팔짝팔짝 뛰는 조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쟤는 어쩜 저렇게 계속 뛸 수 있을까? 저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그리고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는데, 조카도 같이 가겠다고 한다. 그래, 하고는 조카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갔다 돌아오는 길, 조카는 내가 식당 안으로 들어가게 내버려두질 않았다. 내 손을 잡고 분수대 앞으로 끌고 가더니, 이모, 우리 달리기 시합하자, 누가 먼저 두 바퀴 빨리 도나 하자, 하는 게 아닌가!!


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조카야, 이모 못뛰어, 이모 진짜 피곤해...하고 안뛰겠다 했더니, 내 손을 꼭 잡고 뛰기 시작한다..덩달아 뛰었어....아아...나의 종아리는 부서집니다...ㅠㅠㅠㅠㅠ




홍콩 가는 비행기에 타기 전에 여동생과 나는 면세점에서 와인을 한 병 샀다. 디즈니에 다녀오면 아이가 피곤할테니 일찍 잘테고, 아이 재워놓고 좋은 와인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자, 하고 준비한 거다. 나는 그 시간을 위해 집에서 치즈도 챙겨갔어.  레스토랑에서 뛰는 아이를 바라보며,


"쟤가 빨리 자야할텐데.."



했는데, 웬걸,



저녁 먹자마자 들어간 우리 셋은 모두 함께 침대에 누워 기절해버렸다....와인은 무슨 와인.......셋 다 뻗어버리고...중간에 조카는 나를 깨웠다.



"이모, 시끄러워, 코 골지마.."



미안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모가 미안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모 오늘 너무 피곤해서 그랬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요가를 6년간 해온 여동생은 굉장히 날씬한 몸을 가지고 있다. 조카가 본 성인 여자의 몸은 여동생의 것일텐데, 조카는 이제 아홉살인데 벌써부터 '예쁜 여자'라는 것에 대한 기준이 세워진 것 같다. 긴 머리, 팔다리 제모, 날씬한 몸... 누가 그렇게 일러준 게 아니지만 또 세상이 그렇게 모두가 하나 되어 알려준 것이기도 할테다.



그런 조카 앞에서 나는 옷을 벗고 돌아다녔다. 조카가 그동안 생각해온 어른 여성의 몸과 나는 아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일단 나는 내 여동생과 아주 많이 다른 몸을 가지고 있으니까. 겨드랑이에 털이 있었고, 온 몸에 살이 많았고, 엉덩이가 무척 컸다. 조카는 나를 보고 겨드랑이에 털이 있다고 놀랐다.



"이모 겨드랑이에 털있네."

"응."

"나는 없는데."

"너도 어른이 되면 털이 나. 아직 아이라서 안나는 거야."

"털 나면 밀거야."

"이모는 털 안밀거야."



나는 털을 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날씬한 몸을 반드시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이에게 '말해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직접 다양한 몸을 보여주는 게 훨씬 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조카 앞에서 털이 있는 겨드랑이를 챙피해하지 않고 나시 원피스를 입고 같이 외출을 했다. 아무도 내게 신경쓰지 않았다. 또한 커다란 엉덩이를 가지고 조카와 욕조에 들어갔다. 욕조의 마개는 눌러서 열고 또 눌러서 닫는 거였는데, 중간에 내 엉덩이가 눌러버려서 물이 조금 빠진 거다. 나는 '으이크, 이모 엉덩이가 눌러서 물 좀 빠졌네, 얼른 닫아야겠다' 했더니, 조카는 '이모 엉덩이가 왜이렇게 커?' 하는 게 아닌가.



응 이모는 엉덩이가 커.



라고 답했다.




조카는 앞으로 살면서  팔다리 제모를 하고 날씬한 몸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 여자들의 모습을 훨씬 많이 접하게 될것이다. 텔레비젼 어디를 틀어도 자연스레 그런 어른 여자들이 보일 것이고. 그렇지만 나 때문에 '그렇지 않은' 어른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것이다. 나같은 사람이 훨씬 수가 적으니, 조카는 앞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길리고, 겨드랑이와 종아리의 털을 미는 선택을 반복해 하게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 여자어른이 있다'는 것은 알게될 것이다. 내가 그 앞에서 그 산 증인이 되었다.



온 몸이 살로 가득차고, 겨드랑이엔 털이 가득차고, 엉덩이가 무척 크고 ,시끄럽게 코를 골고, 머리가 짧은 어른 여자.

자신이 그동안 알아온 '예쁜 여자'와는 그 거리가 상당히 먼 여자.



어쩌면 조카는 이런 나를 자라면서 창피하게 여길 지도 모른다. 왜 우리이모는 뚱뚱하고, 털이 있고, 엉덩이가 크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모습으로도 살아가는 여자 어른이 있다는 걸 나는 자연스레 그 앞에서 보여줬다. 나는 아이에게 다양한 어른 여자의 모습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 여행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될까?



어제 제 외할머니를 만난 조카는 나에 대해서 계속 조잘조잘 했다고 한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그 소식을 전했는데, '엄마 걔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데?' 물었더니, '니 엉덩이 크다고 계속 얘기하더라'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조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너 너무 잘운다고...', '그리고 너 인형 사서 이름을 지어줬다고..''너랑 다니는 거 챙피해서 이제 같이 안다닐거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무슨, 여행 내내 내 손만 잘만 잡고 다녀놓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흥!!



아니, 얘 뭐 이렇게 다 말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밀이 없어 이노므 자식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이 어린 여자아이와 나는 홍콩에 다녀왔다.

더 다양한 어른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 책들을 읽으려고 대기시켜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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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8-05-08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으신 이모시네요....
고생하셨어요 ~^^~

다락방 2018-05-08 13:44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고생 많았답니다. 흑흑 ㅠㅠ 고생 많았어요 ㅠㅠㅠ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8-05-08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아들 어릴 때 제 이모를 우상으로 아는데... 다른 모습으로 사는 여자어른이 있다는 걸 보여준 멋진 이모~좋아요!!♥

다락방 2018-05-08 13:58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그랬던것 같은데 아홉살이 된 지금은..제가 우상이 아닌 것 같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지만 저는 굳고 단단하게 제 길을 가렵니다. 흐흐흐흐흣

비연 2018-05-09 0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멋진 이모세요.

제 조카는 이제 중2 남자애인데.. 예전에는 ˝고모가 **을 사랑하는 거 알지?˝ 하면 귀여운 눈으로 ˝응응˝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말하면 너무나 시크한 무표정함으로 ˝아니? 모르겠는데?˝ 이런답니다... 아흑...

다락방 2018-05-09 09:14   좋아요 0 | URL
제 조카는 이제 아홉살인데...벌써 저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 같아요. 이젠 절 사랑하는건지..잘 모르겠어요. 언제나 저를 사랑해주던 아이인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시크한 표정은 벌써부터 잘 보인답니다. 흙흙 ㅠㅠ 중2까지 되면.....저한테 차가워지겠죠? (글썽)

우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울음을 터뜨린다)

비연 2018-05-09 12:37   좋아요 0 | URL
................. (저도 같이) 우앙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보슬비 2018-05-14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힝.... 전 조카들에게 이모 사랑해요~라는 말 들어본적이 없어요... ㅠ.ㅠ;;
나도 여자 조카 있으면 좋겠어요.
애정을 구걸해야하다뉘~~ OTL

다락방 2018-05-15 08:10   좋아요 0 | URL
여자조카..이제 9살 됐는데..너무 쿨식해졌어요 ㅠㅠ 시니컬해짐 ㅠㅠ
좋다고 손 잡고 다닐 땐 언제고 또 이제 이모랑 안다닌다고 하고. 아주 그냥 저를 들었다놨다 해요. 엉엉 ㅠㅠㅠ
저 역시 항상 애정을 구걸하고있어요. 엉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Book] 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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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할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례인지, 어떤 식의 대화와 행동이 상대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로맨스 소설이야말로 남자들이 읽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남자들은 사랑을 포르노로 배워야 하는 게 아니라, 로맨스 소설을 읽음으로써 좀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포르노 까지는 아니지만  '19금 성인영화'라는 걸 보았을 때, 나는 그 안에서 여자가 얼마나 성적대상화 되는지에 당황했었다. 그러니까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가 사랑을 느끼고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게 아니라, 여자는 애초에 성적대상일 뿐인거다. <옥수수>에만 들어가도 그런 영화가 널려있는데, 남자들...이런 영화 보면서 그동안 살았던건가... 여자를 성적대상화 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구나. 그 안에서 성적대상화 하지 않고 하나의 사람으로, 동등한 인간으로 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겠어. 맙소사..



그래서 '주드 데브루'의 이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게 유감이었다. 물론 중반을 넘어서면 괜찮긴 하지만, 남자 주인공 '테이트'가 얼마나 매력적인 영화배우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여자 주인공 '케이시'가 얼마나 주체적이고 당당하고 자존감 높은 여자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주드 데브루는 대부분의 여성을 다 골빈여자 취급해 버린다. 연극 <오만과 편견>의 여자주인공 오디션을 보는데, 상대인 테이트 앞에서 아무도 제대로 대사하지도, 연기하지도 못하고 그저 침만 흘리는 걸로 묘사하는 거다. 물론, 전문 배우들이 아니고 마을 주민들 중에서 뽑는 오디션이니 연기가 어설프고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야 당연하달 수 있지만, 어쩌면 다들 그렇게 남자 배우 때문에 정신을 못차리게 만드는가. 여자들이란 잘생긴 남자 앞에서는 제대로 사고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의 여주인공 케이시가, 테이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케이시가, 편견으로 인해 테이트에게 매력을 1도 못느끼는 케이시가, 요리사이며 연기에는 관심이 1도 없던 케이시가, 우리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역을 맡게 되면서 이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다. 너무..좀 너무하지 않냐...


너무도 전형적인 패턴이라서 나는 주드 데브루와 나 사이에 세대차이를 느꼈다. 로맨스 소설을 현대를 사는 여성이 현대를 보는 기준으로 써야할 필요를 느꼈다. 모든 여자들이 선망하는 남성을 나는 싫어하면서 생기는 로맨스라니. 게다가 그 남자는 잘생기고 섹시하고 인기도 많은데 돈도 캡 많어....


아무튼 연기나 연극에 대해 주드 데브루는 얼마나 알고 이걸 쓴걸까. 테이트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다아시를 미워하는 엘리자베스 역을 잘한다는 설정이라니, 좀 .. 너무하지 않냐...


게다가 하비 웨인스타인...이라니....





내가 로맨스 소설과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런 전형적인 패턴-환상적인 남주와 그를 심드렁하게 보는 여자-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어. 전형적인 패턴보다 더 싫은 건, '특별한 여자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다른 여자들을 모두 똥멍청이로 만들어버리는 거다. 이러지 마세요, 진짜...



아마도 그간 로맨스 소설을 줄기차게 써온 작가인지라 이 전형적인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세대차이를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그저 나쁜 로맨스 소설이었냐 하면 그건 그렇지가 않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만과 편견>소설 속에서 미성년자와 성인 남자가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장면이 있었는가 본데, 그 장면에 대해 현대적 연극에서 재해석을 한다. 미성년자를 꼬이는 건 범죄이며, 그것이 그 당시 미성년자의 '선택'이었다 해도 결코 여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오해와 이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주드 데브루는 '여자'와 '남자'의 성역할이 있는 것처럼 시종일관 얘기하지만, 어떤 것이 나쁘고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를 헷갈리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케이시 스스로가 말한 이 뜨거운 여름의 불장난에 대해, 케이시가 느끼고 결심하고 선택하는 것들이 와닿는다. 한 남자에 대해 오해를 하고 그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에게 처음부터 편견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그의 말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를 판단했던 것, 거기에 이른 후회까지. 또한, 자신이 그에게 정식 여자친구가 아니라 그저 이 여름의 불장난으로 취급되어질까봐 걱정하고 뒤로 물러서는 것까지. 한 사람에게 '당당한 옆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할거라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갈등까지. 사랑에 빠지고 내가 그에게 '내가 생각하는 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는 건 대부분 다 겪어보는 감정의 흐름이 아닌가. 또한, '상처받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자존감 높은 사람이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나' 부터 시작해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나' 하는 것까지, 연애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맞닥뜨리는 감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과 연애의 시작에 있어서 디테일을 아주 잘 살렸다고 생각한 건, 케이시와 사랑에 빠지게 된 '테이트'의 생각 때문이었는데, 테이트가 케이시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 건,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자신과 웃음 포인트가 같았다는 데 있었다. 자신이 웃는 부분에서 케이시도 웃는다는 것. 나는 이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그걸 표현해준 작가도 좋았고. 또한 육체적으로 어마어마한 성적 매력을 서로 풍기도 또 성관계도 만족했던 그들인데, 케이시가 그 육체적 결합도 좋지만, 대화를 나눈 후에 관계가 더 단단하고 안정적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점들도 좋았고.



나 역시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연애를 시작하면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반하고 사랑에 빠지는 건, 대화가 아닌 다른 것들이어도 가능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다른 무엇보다 대화가 중요하다. 어떤 모습에도 사랑에 빠지다가 질려버릴 수 있지만, 대화가 잘 통하는 데에야 뭐 버릴 게 없다. 나는 사람이란 본디 외로운 존재라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외로운 영혼을 달래주고 채워줄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혼자인 게 편한 사람도 있고 또 혼자인 게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랑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런 사람을 얻기란 너무나 힘든 법이고, 그렇기 때문에 만났다면 그 손을 놓지 말아야 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뿐만 아니라 상대 역시도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표면적으로, 또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다 여길 수 있다. 쭉쭉빵빵하거나 근육이 불룩불룩한 몸을 최우선으로 칠 수도 있고,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최우선으로 칠 수도 있다. 이성을 볼 때 돈을 가장 먼저 볼 수도 있고, 얼굴을 가장 먼저 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맞춤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런 상대를 만났어도, 시간이 흐르면 헤어지게 되는 이유는 결국 대화가 잘 되지 않아서이다. 여기에서 대화라는 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어도, 어느 방향을 어떻게, 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서로에게 말하고 또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나중엔 엄청 열중해서 읽었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 그래서 상처 받을까 두려운 마음,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상황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내것 같아서 엄청 열중해서 읽었어.


이래서 로맨스 소설을 남자들이 읽어야 한다. 어느 부분에서 여자가 혹은 남자가 괴로운지, 어떤 지점들에서 사랑하는 상대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지또 행복해 하는지를 이런 식으로라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집중하는 건 육체와 육체로 맺는 관계일 수 있지만, 그것보다 내밀하고 더 친밀한 무엇이 있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니까. 심지어 툭하면 팬티를 찢어버리던, '크리스티나 로런'의 《잘생긴 개자식》에서도, '이야기를 나누니까 참 좋다'고 말한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우리를 얼마나 가깝게 이어주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케이시가 이 여름의 불장난으로 상처 받지 않게 되어서 나는 너무 좋으다...

그래, 당신이라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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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5-0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북 활용 잘 하고 계시군요. 저도, 요즘 이북 시즌^^
사랑과 연애의 시작을 아주 잘 그려낸 소설이라고 칭찬하시니, 이 책도 제 스타일이예요.
전, 연애의 꽃은 썸이라고 생각하는 1인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5-08 11:20   좋아요 0 | URL
이북은 밑줄긋기가 연동이 되어서 세상 편합니다.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이 처음에 여자들을 멍청하다고 후려치기 해서 짜증이 났지만, 막판에 상처받기 싫은 마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거라는 두려운 마음을 잘 그려내서, 그 부분에서는 공감이 많이 됐어요. 사랑은 너무 어렵고, 해도 해도 계속 모르는 게 나오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사랑에 대해서도 계속 공부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어쨌든 이북 만세!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