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의 홍콩여행 후유증은 상당했다. 매일 피곤했고, 누굴 만나도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덕분에 이번 주말에는 쉬자, 무조건 쉬자, 먹고 자고 쉬자...라고 생각했다. 토요일 저녁에 술을 마시고 싶으니, 금요일 밤에는 술을 마시지 말자, 라고도 생각했다. 평소라면 금요일도 술 마시고 토요일도 술 마셨겠지만, 금요일엔 요가 다녀와서 말짱한 정신으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토요일 느즈막히 일어나 혼자 먹을 아침 반찬을 준비했다. 식구들은 모두 이른 점심 약속 때문에 일찍 아침을 먹은 상황이고, 나만 먹으면 돼. 나는 외출 준비하는 식구들을 두고 냉장고에서 내가 미리 준비해둔 재료들을 꺼냈다.
지난 주에 떡볶이를 만들어 먹어서 그 때 사둔 어묵이 남아있었다. 좋다, 어묵볶음을 하자.
다이어트를 해보겠다며 진작에 사둔 닭가슴살 소세지는 냉동실에서 잊혀지고 있었다. 좋다, 닭가슴살 소세지로도 반찬을 만들자. 그렇게 나는 재료를 준비하고 어묵볶음 레서피를 찾아 휘리릭 훑어보았다. 훗. 별거 아니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간 마늘과 매운고추를 넣고 달달달 볶기 시작했다. 아앗. 내가 프라이팬을 태운 걸까. 고추를 처음 볶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매운 향이 거실 가득 퍼지기 시작했고, 나를 선두로 해서 모든 가족들이 재채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아빠는 쟤가 도대체 뭐하는 거냐며 거실과 베란다 창문을 다 열며 다니셨고, 남동생은 '이 누나가 사람 잡네' 하면서 재채기를 했다. 엄마는 야, 너 뭐하는거야, 하더니 가스렌지 위에 환풍기를 돌리셨고.... 나도 연신 나오는 재채기에 숨이 막혀... 신이시여, 제가 어디에서 무얼 잘못한걸까요?????
어쨌든 그래도 가던 길을 계속 가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어묵을 넣고 간장과 매실액, 고춧가루를 넣고 계속 달달달 볶는다. 아아, 완성!!
비쥬얼 좋다.. 헤헤헤헤.
이제 쏘세지야채볶음을 할 차례인데, 이것은 어른을 위한 것이니만큼...또 매운고추를 썰었는데, 이미 가족들 한바탕 눈물 뽑게 한뒤라 약간 자신감을 상실했다. 30분만 기다리면 식구들이 다 외출할텐데...그때까지 기다렸다가 할까..하다가...배가 넘나 고팠어. 아니, 몰라, 질러질러 질러버렸!! 하고 또다시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고추를 넣고 달달달 볶았다. 으음. 지금은 괜찮다. 확실히 아까는 기름을 덜 넣고 프라이팬을 태웠던 영향인 것 같아. 그리고 소세지를 넣고 파프리카를 넣고 달달 볶다가, 케찹과 고추장을 듬뿍 넣어서 달달달 볶았다. 역시 완성!!
이건 만들어놓고 보니 반찬이 아니라 안주같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나는 이제 밥을 먹기로 한다. 이왕 요리한 것, 예쁘게 담아먹자 싶어, 알라딘 굿즈 식판을 꺼내 담았다. 열무김치와 시금치, 미역국은 엄마표.
자랑스러운 마음이 차고도 넘쳐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사진을 보내놓고 내가 요리하고 먹는다고 했더니, 여동생은 '밥을 왜저렇게 많이 펐어...'라고 묻더라. 뭐, 왜, 뭐. 뭐가 많아...
그렇게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으하하하...
그리고 그 날의 요가와 기타등등을 한 뒤(낮잠 포함) 저녁엔 식구들과 삼겹살을 구워먹기로 했다. 나가서 사먹을까 집에서 구워먹을까 식구들이 엄청 갈등하다가, 집에서 먹기로 결정! 비오는 날 엄마는 시장에 고기를 사러 가셨고, 나는 판이며 그릇을 셋팅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언제나 소주는 있었다. 후훗. 그리고 엄마가 와 상추를 씻는동안, 나는 고깃집에서 얻어온 파채를 가지고 파절이를 만들었다. 아주 순식간에! 파 넣고 고춧가루, 매실액, 간장, 식초, 참기름을 넣고 손으로 조물조물. 정말이지 순식간에. 이제 파절이 쯤은 일도 아니야! 아아, 내가 만든 파절이는 얼마나 맛있었던지! 아빠도 엄마도 파절이 맛있다 하셨어. 하하하하하.
그렇게 요리의 토요일이 다가고 일요일이 되었는데,
아 글쎄!!
내가 꿈을 꾼거다.
꿈에서 나는 김밥을 아주 잘쌌다.
일전에 김밥을 쌌을 때 내용물과 밥이 따로 놀아 썰어둔 김밥을 들어 올리면 후두둑, 내용물이 빠졌던 적이 있다. 그게 그러니까 벌써..한 이십년 전쯤의 일이고, 그 뒤로 김밥을 쌀 생각도 안햇었는데.... 꿈에서 어찌나 촥촥촥 김밥을 잘 싸서 쌓던지...꿈에서 깨자마자 '아아 오늘 아침은 김밥이다!'하게된 것.
엄마, 우리집에 소금 안쳐진 김있나, 물으니 후훗, 당연히 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냉장고 안에서 김밥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다 꺼냈다. 일단 계란을 풀어 부치고, 김밥햄 대신 스팸을 구워 준비했다. 매운 고추장아찌가 있어 그것도 김밥에 들어갈 수 있게끔 썰어두고, 어제 만든 어묵볶음도 썰어두었다. 마침 엄마가 시금치도 무쳐주신 터다. 아, 참치! 나는 참치를 한 캔 꺼내와 기름을 덜어내고 마요네즈를 잔뜩 넣어서 섞었다. 물론 밥도 덜어서 참기름과 소금 약간으로 간을 해둔 상태였다. 그렇게 재료 완성!!
자, 말아볼까! 나는 김에다 내가 재료한 준비들을 촥촥 얹어서 돌돌돌 말기 시작했다. 후훗. 별거 아닌데? 그리고 썰었습니다.
뭔가 색깔은 연하지만, 이 안엔 햄과 느끼한 참치에 매콤한 고추 장아찌까지 들어있지!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남동생에게 먹어보라 하니 맛있다고 잘 먹는다. 엄마도 맛있다고 하고, 아빠는 '야 사 먹는 김밥보다 맛있다' 하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 김밥 별 거 아니야?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자신감이 붙었어! 이 사진을 여동생에게 보내니, 김밥은 우엉이 생명이라고 다음엔 우엉을 꼭 넣으라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입 안에 우엉의 맛이 느껴져... 좋았어! 다음 일요일에는 제대로된 김밥 재료를 준비해서 만들어봐야지. 우엉과 단무지, 김밥햄과 맛살까지! 제대로 준비해서 해보겠다. 움화화화핫.
아아, 요리 꿈나무... 요리...하다보니 느는 것. 김밥 쯤이야.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요리 자신감이 붙은 나는, 얼마전 사두었던 쫄면 양념이 남았다는 걸 깨닫고는(엄마가 말해줬다), 저녁은 있는 소면으로 비빔국수를 해먹기로 한다. 아하하하하. 이번엔 제대로된 비빔국수를 만들어보겠어!
나는 소면을 삶고, 김밥 싸다 남았던 계란 지단을 잘라 넣고, 삼겹살 먹다 남았던 상추도 찢어 넣고, 쫄면 양념을 넣고, 열무김치도 자잘하게 썰고, 고추 장아찌도 썰어 넣고, 참기름을 넣어, 아아아아, 진짜 맛깔스런 비빔국수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아아, 다들 맛있다고 어찌나 잘먹던지..배터진다며...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요리 포텐 터져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동안 못했던 건 뭐랄까, 요리를 잘하기 위해 시동을 건 것이라고나 할까. 난 그냥 생각만 하면 다 잘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어! 요리 포텐 터진 나는 요리 꿈나무에서 금세 요리의 신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문득 칠봉이 생각났다.
칠봉아, 너는 어떤 여자를 놓친 것이니... 요리의 신을 놓친 것이야........남은 생을 후회하며 살아라.......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도 제가 이렇게 요리 잘하는 여자가 될 줄은 몰랐어요.
빨리 다음주 일요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대로된 김밥을 만들어야지. 우엉을 잔뜩 넣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