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동안에는 아홉살 여자조카를 데리고 홍콩 디즈니랜드에 다녀왔다.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닌, 디즈니에 가보고 싶다고 했던 조카를 위한 여행이었다. 도착한 날에는 밤 늦게 도착해 호텔에서 씻고 바로 잠을 잤는데, 새벽 다섯시반이었나, 조카는 먼저 깨서는 '이모, 일어나도 돼?' 물었다. 아니, 아직 어두워서 안돼, 날 밝으면 일어나야 돼, 라고 말했다. 한시간 후쯤, 조카는 다시 내게 말했다.
"이모 내가 커텐 열어봤더니 날 밝았어. 이제 일어나도 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아침부터 빵터져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동생과 나는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일어난 것이다. 밤늦게 도착했으니 아홉시나 열시까지 자자고 말해두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섯시 반에 걍 일어나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마도 디즈니에 간다는 설레임 때문에 조카는 잠을 못이룬 것 같은데, 어쨌든 그렇게 디즈니에 가서 테마 파크를 가고, 기념품 샵을 가고, 놀이기구를 타고, 퍼레이드를 보고, 밥을 먹고, 걷고 걷고 또 걸어서.... 몸이 부숴질 것만 같은 극도의 피로함을 느꼈다. 저녁은 편하게 호텔 앞에서 먹자, 하고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서는 씻고 레스토랑에 갔다. 레스토랑 앞은 작은 광장처럼 꾸며놨는데, 차가 다니지 않고 테이블들이 여러개 놓여 있어, 거기서 맥주며 간식을 먹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루종일 돌아다녔던 조카는 조카 먹으라고 시켜준 김치볶음밥을, '조금 맵지만 맛있어' 하면서는 잘도 먹었다. 망고 스무디, 망고 스무디 노래를 불러서 망고 스무디도 시켜주었더니, 같이 잘 먹었어. 중간에 여동생과 내가 주문한 호가든이 너무 커서 모두 함께 웃으면서 사진을 찍고 그러느라 여동생과 내가 스맛폰을 만지고 있으니, 계속 김치볶음밥을 먹던 조카는,
"왜 나만 먹어?"
이래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동생과 빵터져서 우리도 같이 밥을 먹었다.
조카는 밥을 다먹고는 또 좀이 쑤셨는지, 저 앞에 나가서 바다 보고 와도 되냐고 물었다. 우리 숙소는 디스커버리 베이에 있는 호텔이었고, 레스토랑에서도 바다가 보였다. 응, 다녀와, 했더니 바다에 다녀오고, 나 저기서 나가 놀아도 돼? 하고는 레스토랑 앞 광장을 가르키길래, 응 나가 놀아, 했더니, 와, 이 작은 아이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걸까. 분수가 있는 광장에서 혼자서 폴짝폴짝 뛰고 노는 거다. 혼자서 빙그르르 돌기도 했다가, 여기에서 저기로 폴짝 폴짝 건너 뛰었다가, 분수대 주변을 빙빙 돌면서 뛰었다가, 바다를 본다고 뛰어내려갔다 왔다가....어휴.... 나한테 계속 나가자고 하는걸, 안돼, 이모 너무 피곤해...하고 안나가고 레스토랑에 앉아 그렇게 팔짝팔짝 뛰는 조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쟤는 어쩜 저렇게 계속 뛸 수 있을까? 저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그리고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는데, 조카도 같이 가겠다고 한다. 그래, 하고는 조카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갔다 돌아오는 길, 조카는 내가 식당 안으로 들어가게 내버려두질 않았다. 내 손을 잡고 분수대 앞으로 끌고 가더니, 이모, 우리 달리기 시합하자, 누가 먼저 두 바퀴 빨리 도나 하자, 하는 게 아닌가!!
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조카야, 이모 못뛰어, 이모 진짜 피곤해...하고 안뛰겠다 했더니, 내 손을 꼭 잡고 뛰기 시작한다..덩달아 뛰었어....아아...나의 종아리는 부서집니다...ㅠㅠㅠㅠㅠ
홍콩 가는 비행기에 타기 전에 여동생과 나는 면세점에서 와인을 한 병 샀다. 디즈니에 다녀오면 아이가 피곤할테니 일찍 잘테고, 아이 재워놓고 좋은 와인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자, 하고 준비한 거다. 나는 그 시간을 위해 집에서 치즈도 챙겨갔어. 레스토랑에서 뛰는 아이를 바라보며,
"쟤가 빨리 자야할텐데.."
했는데, 웬걸,
저녁 먹자마자 들어간 우리 셋은 모두 함께 침대에 누워 기절해버렸다....와인은 무슨 와인.......셋 다 뻗어버리고...중간에 조카는 나를 깨웠다.
"이모, 시끄러워, 코 골지마.."
미안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모가 미안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모 오늘 너무 피곤해서 그랬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요가를 6년간 해온 여동생은 굉장히 날씬한 몸을 가지고 있다. 조카가 본 성인 여자의 몸은 여동생의 것일텐데, 조카는 이제 아홉살인데 벌써부터 '예쁜 여자'라는 것에 대한 기준이 세워진 것 같다. 긴 머리, 팔다리 제모, 날씬한 몸... 누가 그렇게 일러준 게 아니지만 또 세상이 그렇게 모두가 하나 되어 알려준 것이기도 할테다.
그런 조카 앞에서 나는 옷을 벗고 돌아다녔다. 조카가 그동안 생각해온 어른 여성의 몸과 나는 아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일단 나는 내 여동생과 아주 많이 다른 몸을 가지고 있으니까. 겨드랑이에 털이 있었고, 온 몸에 살이 많았고, 엉덩이가 무척 컸다. 조카는 나를 보고 겨드랑이에 털이 있다고 놀랐다.
"이모 겨드랑이에 털있네."
"응."
"나는 없는데."
"너도 어른이 되면 털이 나. 아직 아이라서 안나는 거야."
"털 나면 밀거야."
"이모는 털 안밀거야."
나는 털을 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날씬한 몸을 반드시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이에게 '말해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직접 다양한 몸을 보여주는 게 훨씬 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조카 앞에서 털이 있는 겨드랑이를 챙피해하지 않고 나시 원피스를 입고 같이 외출을 했다. 아무도 내게 신경쓰지 않았다. 또한 커다란 엉덩이를 가지고 조카와 욕조에 들어갔다. 욕조의 마개는 눌러서 열고 또 눌러서 닫는 거였는데, 중간에 내 엉덩이가 눌러버려서 물이 조금 빠진 거다. 나는 '으이크, 이모 엉덩이가 눌러서 물 좀 빠졌네, 얼른 닫아야겠다' 했더니, 조카는 '이모 엉덩이가 왜이렇게 커?' 하는 게 아닌가.
응 이모는 엉덩이가 커.
라고 답했다.
조카는 앞으로 살면서 팔다리 제모를 하고 날씬한 몸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 여자들의 모습을 훨씬 많이 접하게 될것이다. 텔레비젼 어디를 틀어도 자연스레 그런 어른 여자들이 보일 것이고. 그렇지만 나 때문에 '그렇지 않은' 어른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것이다. 나같은 사람이 훨씬 수가 적으니, 조카는 앞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길리고, 겨드랑이와 종아리의 털을 미는 선택을 반복해 하게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 여자어른이 있다'는 것은 알게될 것이다. 내가 그 앞에서 그 산 증인이 되었다.
온 몸이 살로 가득차고, 겨드랑이엔 털이 가득차고, 엉덩이가 무척 크고 ,시끄럽게 코를 골고, 머리가 짧은 어른 여자.
자신이 그동안 알아온 '예쁜 여자'와는 그 거리가 상당히 먼 여자.
어쩌면 조카는 이런 나를 자라면서 창피하게 여길 지도 모른다. 왜 우리이모는 뚱뚱하고, 털이 있고, 엉덩이가 크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모습으로도 살아가는 여자 어른이 있다는 걸 나는 자연스레 그 앞에서 보여줬다. 나는 아이에게 다양한 어른 여자의 모습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 여행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될까?
어제 제 외할머니를 만난 조카는 나에 대해서 계속 조잘조잘 했다고 한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그 소식을 전했는데, '엄마 걔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데?' 물었더니, '니 엉덩이 크다고 계속 얘기하더라'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조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너 너무 잘운다고...', '그리고 너 인형 사서 이름을 지어줬다고..''너랑 다니는 거 챙피해서 이제 같이 안다닐거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무슨, 여행 내내 내 손만 잘만 잡고 다녀놓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흥!!
아니, 얘 뭐 이렇게 다 말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밀이 없어 이노므 자식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이 어린 여자아이와 나는 홍콩에 다녀왔다.
더 다양한 어른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 책들을 읽으려고 대기시켜둔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