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또한 사주명리학의 마법이다. 앞에서 보았듯, 누구든 치우치거나 기울어져야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 아니 최선이다! 출발의 조건도 그렇지만 이후에도 그러하다. 여덟 개의 카드는 구성이 어떻든 간에 다른 오행으로 변주될 수 있는 유동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곧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인생역전 혹은 깨달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내가 아닌 아주 낯선 존재가 되어 전혀 다른 삶을 산다는 뜻이 아닌가. 사주팔자에는 그런 식의 변곡점을 만들어 낼 '숨은 조커'들로 그득하다. 니체가 말한바,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다"는 예언이 혹 이런 뜻이었을지도. (p.108-109)



며칠전에 친구와 인간관계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은 관계를 맺게 되는 '운'에 관한 것이었는데, 친구가 보기에 나는 가족들과 사이가 좋고 다정하여 복받은 것 같다는 거다. 나 역시 그걸 알고 있는 바, '관계운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는 것 같아, 나는 가족운 좋은 대신에 애인운은 별로인가봐' 했더니, 친구는 '나는 애인운은 있는데 가족운은 별로인 것 같아'라고 말했더랬다. 그러면서 친구가 덧붙이길, '내 운 어디가 어긋났는지 너가 나타났네' 라고도 했다. 이뻐라.. 

어쨌든, 인간은 모든면에서 모든 걸 다 완벽하게 가질 순 없는 것 같다. 친구와의 대화에서처럼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란 것도 마찬가지. 나는 직장에서도 동료들과 사이가 좋고 다정하게 지내서, 나의 동료들도 자신들의 친구로부터 '어떻게 그런 동료가 다있냐'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는데, 상사로 가면 얘기가 확 달라진다. 나는 수시로 '이런 상사를 내게 줘서 미안한 마음에 이런 동료들을 줬나' 싶어지는 거다. 그리고 다른 관계로 크게 축복해주지 못할 것 같아서, 이토록 복된 가족을 내게 주었나... 싶고. 어쨌든 상사 폭탄은 너무 크다. 관계에서 이렇게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다른 부분도 다 마찬가지로 작용할 것이고, 그리고 이것은 전체 운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에서 말한 '여덟 개의 카드'는 우리가 말하는 그 '팔자'를 의미한다. 태어난 년월과 시. 우리는 보통 '팔자가 사납다' 따위의 말을 하긴 하지만, 누구 하나의 팔자가 더 사납거나 더 좋을 순 없다고, 이 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얘기한다. 이게 넘치면 저게 부족하고, 저게 넘치면 이게 부족하고. 그렇지만 그것이 일상의 사소한 (나쁜)습관을 고치는 걸로 달라질 수도 있음을 얘기하고,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기로도 달라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스스로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데, 이는 '너 자신을 알라'와 같은 말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내가 아주 잘 살아오고 있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끊임없이, '내가 이럴 때 어떡해야 하는가' 부터 시작해서, 나를 관찰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 내가 이럴 때는 이렇구나, 이럴 땐 이렇게 해야 겠구나, 하고, 꾸준히, 아직도 내가 모르는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한다. 



사주를 보러 간 적도 몇 번 있는데, 사주를 보러 가는 것은 내가 내 운명을 따르기 위함이 아니었다. 내가 들여다보는 내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내 운명에 대한 얘길 듣기 위해서였다. 그런점에서 사주는 내게 카운슬러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는데, 가서 가만히 내 생년월일을 넣고 나의 운명에 대한 얘기를 듣노라면, 그게 그렇게나 위안이 되는 것이다. 아, 내 사주에 이런 글자가 있어서 나에게 역마살이 있구나, 부터 시작해서, 아 나는 계속 공부하면서 살아야겠구나, 까지. 어떤 사주 쌤은 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주 잘 살고 있다고 하셨다. 이렇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고, 칭찬해주고 싶다고 했더랬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주쌤은, 내 친구의 사주를 봐주면서 '너의 팔자가 이렇다고 해서 이렇게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더랬다. 아주 작은 결정에서부터 운명은 바뀔 수 있으니, 끊임없이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 되어서 보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라고. 누군가 써준대로만 사는 인생이면 얼마나 재미없냐,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면서 사소한 게 하나라도 바뀌면, 그 다음 행보도 바뀔 수 있으니, 운명을 스스로 써나갈 수 있도록 하라는 거였다. 그때 그 쌤이 해준 얘기가 이 책에도 똑같이 실려있다.



어떤 유형의 팔자건 순환이 이루어지려면 일단 내가 가진 기운을 내야 한다. 몸, 재물과 능력, 마음, 이 세가지는 누구나 지니고 있다. 많든 적든 높든 낮든. 뭐가 됐건 일단 이것들을 쓸 준비를 해야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서 좋은 운이 오긴 어렵다. 재물과 능력을 적극 활용하지 않고서 복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또 마음을 꽉 채워 버리면 운은 막혀 버린다. 요컨대, 탁하고 무거운 기운이 가득찬 곳엔 복이 머무르지 않는다. 복을 받고 운을 맞이하려면 주변의 공기를 맑고 청정하게 해야 한다. (p.124)



사람마다 몸과 기질이 다르듯, 운이 막히는 대목이 다르다. 보통 운명이라고 하면 거창한 인생역정을 떠올리지만 그 어떤 인생역정도 일상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운명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일상의 리듬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가. 이 일상을 건너뛰고 다른 방편을 쓰고자 한다면 그건 다 사술이다. (p.124) 




책의 부제에 써있는 '사주 명리학'이란 단어 때문에 이 책을 읽으려고 했었다. 혹시라도 책을 읽다가, 나의 사주를 봐주진 않을까 해서. 그러니까 왜 별자리 책처럼 '사자자리' 찾으면 '당신은 어떻고 어떤 사람이고 어디가 행운의 장소이다' 같은 걸 말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대로 책장을 펼치긴 했지만, 아니 그런데 태어난 년월과 시로 말하자면 어마어마한데, 그걸 다 책에다 쓸 순 없었겠지, 설마 나한테 찾아보라는 건가, 하며 기대를 좀 접긴 했는데, 역시나 '너의 사주는 어떻다'고 풀이해주진 않았다. 나는 내가 되게 특별한 줄 아는데, 전혀 아니라는 걸 자꾸 깨닫는다. 그럼 그렇지, 이 책이 뭐 나의 사주에 대해서만 말해줄줄 알았냐... 각설하고,


이 책에서 말하는 운명과 팔자에 대한 부분,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팔자 그 자체가 굉장히 공평하고 최선이라는 것, 우리가 가진 재료로 이렇게 만든 게 최선이었다는 것을 얘기하는 건, 아마 그동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굉장히 신선하게 틀릴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주명리학을 공부해볼까 하는 충동에 잠깐 흔들렸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고 사주명리학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진 사람이 많아지지 않았을까. 또한, 저자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가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던 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내게는 이 책에 쓰여진 것들이 딱히 특별할 건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바를 일깨워주진 않았던 거다. 너와 내가 만나서, 그러니까 어떤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느냐로 나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내가 나를 잘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 일상의 작은 것들이 우리의 운명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시간 약속을 잘지키고 청소를 잘하는 것으로 아주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고 한다!!)은, 나로서는 이미 다 아는 얘기였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얘기들이기도 하고. 그러나 알고 있다고 해서 언제나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새로이 되새기는 것도 아니잖은가. 잊고 있었다. 내가 나 자체로서, 그러니까 이렇게 어딘가 기울어지고 모자란 상태로서도, 이미 완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어딘가 모자라고 이지러진 존재라는 사실도 마찬가지고.



일전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그 쌤은 본인이 잘 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는 자기에게 사주를 보러 온다고 하기도 했다. 이 분이 말씀하시길, 그렇게 잘 보는 자기이지만 처음엔 결혼을 잘 못봤다는 거다. 젊은 사람들이 '나 언제 결혼하느냐' 부터 시작해서 결혼에 대해 물을 때 자기가 보이는대로 대답을 해주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왜그럴까 왜그럴까 고민하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 있었으니, 결혼은 '상대'가 있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나 하나의 사주로 결정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나중에 깨달았다고 하시는데, 이 얘기에서도 나는 이미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 결혼만 그렇겠나. 우리가 다 정해진 팔자가 있다고 해도, 그 안에서 그럴 내가 어떻게 운영하느냐로 달라질 것이고, 일상을 바꾸면서 달라질 것이고, 일상을 바꾸면, 이 책에서 얘기한 것처럼, 만나는 사람 자체도 달라질텐데, 그러면 모든 것들이 조금씩 바뀌어 다 달라질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세상이니, 쓰여진 사주대로 진행되지는 않을 터. 이런 것들을 알면서 잊고 지냈던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는게 큰 도움이 됐다. 내가 원하는 바-내 사주를 봐주는걸까?-와는 일치하지 않았지만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다른 책과 동시에 집어 들었는데, 이 책에 열중하게 됐다.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나 뿐이고, 나라는 인간 자체는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그러나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모든것들을 충만하게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그 사람의 팔자가 결코 좋다고 볼 수는 없고, 그 균형은 어딘가의 누군가가 채워주고 있을 것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내 삶에 충실하고, 일상을 단단하게 채워나가야겠다고, 그리고 다시 겸손해지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꼭 사주팔자 그대로를 믿어서가 아니라, 태어난 것으로 정해지는 운명을 받을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하는 것에 대한 작은 위로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하다. 끝에 좀 '어라?'하는 부분이 있어서 별은 넷밖에 못주겠지만, 이 책으로 고미숙을 접했는데, 그것을 고미숙을 아는 '시작'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고미숙의 다른 책들도 다 읽어보고 싶어졌다는 거다.


요즘 삶이 힘겨워 밤에 잠을 못이룬다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그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터라, 이 책을 또 주문했다. 내가 가진 책은 이미 밑줄을 많이 그어서, 새 책을 친구에게 주기 위해서.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친구도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자신의 상태 그대로 최선이라는 것, 그리고 일상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되새기며 위로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대부분은 정서적 균열과 관련되어 있다. 감정보다 더 힘이 센 것은 없다. 많은 경우, 명분과 논리는 감정의 ‘얼굴마담‘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감정들의 어울림과 맞섬이 사람들의 동선과 리듬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곧 인생이고 운명이다. (p.12-13)

시작이 있으면 중간이 있고, 그 다음엔 끝이 있다. 시작과 중간과 끝. 시간적 순서(次)는 반드시 공간적 질서(序)와 함께한다. 시간은 공간의 다른 표현이다.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서 시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공간의 ‘휘어짐‘이고 공간은 시간의 ‘주름‘이다. 시공간의 리듬, 그것이 곧 ‘차서‘다.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에는 차서가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차서가. 해마다 이 리듬을 밟기 때문에 우주는 만뭉릉 쉬지 않고 창조해 낸다. 이 생생불식하는 활동을 일러 순환이라 한다. 순환이야말로 생명의 원동력이다. 다양성과 자율성도 이 차서 안에서만 가능하다. (p.38)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이 차서를 어그러뜨리는 체제이다. 순환과 비움이 아니라, 소유와 증식만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가난할 때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돈을 버는 행위 자체가 자기에 대한 존중감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가 된 다음에, 먹고살 만해진 다음에도 계속 부를 증식하고자 한다면 그건 바보거나 광인이다. 자연스럽지가 않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부를 일구고 나면 선비를 기르기 위해 삼대가 적선을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지혜다. 뒤에서 배울 터이지만 재성(재물운)이 관성(관운)과 인성(명예와 공부운)으로 순환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는 반드시 정신의 가치와 함께가야 한다는 걸, 그래야 쉬임 없이 만물을 낳을 수 잇다는 걸 터득했던 셈이다. (p.47)

몸의 구조와 생리, 성격과 인생관등 다양한 항목들이 계열화된다. 그것이 관계를 만들고 사건을 일으키고 인연을 불러온다. 관계와 사건과 인연, 그 접속과 변이-이것이 바로 인생, 아니 팔자다. (p.70)

자신 안에 있는 불기운을 주체하지 못하는 건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지 다른 사람들이 비난해야 할 사항은 아니다. 타인의 행동을 시비선악을 떠나 ‘있는 그대로‘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아주 좋은 공부가 된다. 물론 그 모든 것은 거울처럼 반사되어 나에게로 온다. 나의 행동, 나의 인생을 보는 시선도 전혀 달라지게 된다. (p.86)

누구든 여덟 개의 카드뿐이라는 사실. 왕후장상이건 농민이건 브라만이건 수드라건 혹은 그 누구건 여덟 개 이상의 카드를 가질 수는 없다. 현실을 보면 슈퍼맨이나 영웅 혹은 대자본가가 있지만 운명의 차원에선 그들 역시 ‘팔자‘그 이상을 누릴 수 없다. 만약 그들의 부와 권력이 타고난 것이라면 대신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p.96)

팔자 또한 그러하다. 여덟 개의 카드로 음양오행이라는 기운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골고루 다 갖춘다는 건 불가능하다(아니, 무의미하다는 게 더 맞을지도). 결국은 어느 쪽으로든 치우칠 수밖에 없다.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래야만 태어난다는 점이다. 미리 밝혔듯이 천간과 지지 사이엔 두 개의 잉여가 있다. 천지는 태초부터 서북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자전의 축 또한 23.5도 기울어져 있다. 말하자면 우주는 완전한 원형이 아니다. 타원형이거나 아니면 약간 일그러진 형태의 원형이다. 이런 상태로 또 계속해서 돌아간다. 돌고 돌아 멈추지 않는다. 그럴수록 간극들이 쌓이고 쌓여 주름투성이가 된다. 결국 이 우주 속의 모든 존재는 이 주름의 산물이다. 당연히 넘치거나 부족할 수밖에 없다. (p.97)

사주팔자를 뽑아 보면 오행상 어느 쪾으로든 다 기울어져 있다. 심한 경우 한 오행이 고립이거나 아니면 아예 없기도 하다. 한두 개의 오행만으로 된 경우도 있다(윽!) 고스톱으로 치면 한두 종류의 패만 들어온 셈이다. 그럼 판을 포기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좀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또 패가 골고루 들어온 경우에는 누릴 수 없는 스릴이 있다. 그 스릴이 오히려 인생역전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불급의 극단인 고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고립은 다른 오행에 가로막혀서 순환이 불가능한 경우다. 하지만 그 카드는 존재의 무게중심이 된다. 엉? 어떻게?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손가락이건 발톱이건9자식이 깊은 병이 들면 그 자식을 인생의 축으로 삼는 부모가 그런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그 카드들이 야기하는 파장은 크다. 즉, 가장 문제적인 곳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구원처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문제와 사건의 중신이 된 건 다른 일곱 개의 카드 때문이다. 즉, 그것 자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카드와의 관계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p.99)

다른 카드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이것만 쏙 뽑아버리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무지의 산물이다. 만약 어떤 비책을 동원하여 그것을 제거해 버린다면 그 순간, 나머지 일곱 개의 카드도 다 위치를 바꾸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카드가 고립이나 태과에 처하게 될 게 뻔하지 않은가. 9카드 돌려막기의 비애?^^)
팔자가 원초적으로 평등하다는 두번째 근거는 바로 이것이다. (p.99)

사주명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건 보는 힘이다. 내 운명의 지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잇는 끈기와 열정이 필요하다. 보는 힘이 커질수록 자신의 운명에 개입할 수 있는 접점이 넓어진다. 보통은 비참하게 주어진 운명을 억척스럽게 개척하는 것이 인생역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건 어디까지나 진부한 성공담의 서사일 뿐이고, 진짜로 인생을 바꾸려면 가장 먼저 자신의 운명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부질없는 팔자타령 아니면 한방에 역전하는 도박심리만을 키우게 된다. 물론 그럴수록 팔자의 늪에 더더욱 빠지고 만다. 그래서 ‘보라‘고 하는 것이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한다. 지(知)와 사랑은 하나다! (p.120)

어떤 유형의 팔자건 순환이 이루어지려면 일단 내가 가진 기운을 내야 한다. 몸, 재물과 능력, 마음, 이 세가지는 누구나 지니고 있다. 많든 적든 높든 낮든. 뭐가 됐건 일단 이것들을 쓸 준비를 해야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서 좋은 운이 오긴 어렵다. 재물과 능력을 적극 활용하지 않고서 복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또 마음을 꽉 채워 버리면 운은 막혀 버린다. 요컨대, 탁하고 무거운 기운이 가득찬 곳엔 복이 머무르지 않는다. 복을 받고 운을 맞이하려면 주변의 공기를 맑고 청정하게 해야 한다. (p.124)

운명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일상의 리듬을 바꾸어야 한다. (p.124)

일상이 습속을 바꾸고 습속이 다시 몸의 생리로, 몸이 또 인연의 장을 바꾸고 운명을 바꾼다. 출발은 어디까지나 일상이다. (p.125)

자기를 구하는 건 결국 자기밖에 없다! (p.128)

관성이란 ‘타자들과의 네트워킹‘이다. 익숙한 존재들과의 관계는 관성이 아니라, 식상에 가깝다. 계모임이나 동호회, 친목단체 등등. 이 관계에선 나의 변용이 불가능하다. 비슷한 상태의 확장과 변주만 있을 뿐. 반대로, 관성은 낯설고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책임을 져야 하고 갈등과 충돌도 불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기운이 형성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재물을 모을 수도 있다. 그 재물이 다시 관성을 낳기도 하고. 따라서 관성을 적극 활용하면 재성과 인성이 서로 맞서는 형국에서 재-관-인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p.147-148)

공부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충전이고, 문서는 만물을 낳아 주는 대지의 이미지가 덧붙여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게 육친으로 따지면 엄마란다. 하여, 엄마복이 있다는 건 공부운이 좋다는 뜻이 된다. 하기야 맹모삼천은 있어도 맹부삼천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픽션이건 현실에서건 홀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해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키지만 홀아버지일 경우는 일찌감치 자식을 노동현장에 내놓은 경우가 많다. (p.154)

처음,「입구」에서 말했듯이 운명의 지도에는 역설과 아이러니 투성이다. 어떤 인위적 척도도 통하지 않는다. 이것이 좋으면 저것이 어긋나고, 저것을 얻으면 이것이 사라지고. 겉이 아름다우면 속이 문드러지고, 바깥이 거칠면 속이 부드럽고. 혹은 돈이 들어오면 건강을 잃고, 권력을 가지면 사람을 잃게 되고, 사랑을 얻는 대신 친구를 버려야 하고……한마디로 팔자에는 온갖 가치들이 범람한다. 가치들의 범람 속에서 종국에는 가치들이 얼음 녹듯 녹아 버리는 것, 그것이 팔자의 우주적 연기법이다. 고로,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이 서로 ‘오버랩‘되는 이 매트릭스에선 더 좋은 팔자도, 더 나쁜 팔자도 있을 수 없다. (p.160)

그렇다! 문제는 에너지고, 문제는 순환이다. 몸과 마음의 순환, 나와 타자의 순환, 나와 세계 사이의 순환……아무리 좋은 것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것들 사이에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p.180)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만나는 사람이 곧 나다! (p.225)

스승과 벗이 없는 인생이란 그 어떤 금액의 돈으로도 결코 보상받을 수 없음을 꼭 되새길 필요가 있다. (p.225)

인복이야말로 배움의 진정한 배경이자 토대인 까닭이다. (p.232)

인복은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이다. 자업자득이라는 뜻이다. 구마준에게 있어 타인은 다 성공을 위한 도구다. 부모건 연인이건 또 스승이건. 그런 사람은 돕고 싶어도 도울 방법이 없다. 하지만 탁구에겐 자신을 둘러싼 모든 존재들이 다 자신의 스승이다. 김탁구가 즐겨 하는 대사, "가르쳐 주면 되지 않습니까?"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큼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은 없다. 돕지 않으려야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큰 내공이란 없는 법이다. (p.233)

그런 점에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사제지간이다. 특히, 스승이면서 친구이고, 친구이면서 스승인 사우! (p.233)

자승자박!자업자득! 즉, 길이든 흉이든 결국은 자신이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도 자신의 내부에 단서나 원인이 없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운명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내부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이 원리를 깨우치지 못하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일정한 조건만 주어지면 동일한 욕망과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p.241)

자기 팔자가 팍팍하다고 느낀다면, 이유없이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롭다면, 다른 건 일단 제쳐 두고 먼저 점검해 보라. 내가 얼마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를. 약속을 지키고 청소를 잘 하고 있는지를. 산다는 거 별 거 아니다. 시공간이 곧 나다. 시공간과 내가 조응하는 만큼이 곧 나의 일상이다. 고로, 일상의 구원은 약속과 청소로부터 온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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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8-01-1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잠이 확 깨네요 엄마랑 중학교때 교장샘이 친분이 있으셔서 명문대에 가는 비결을 캐내셨다는데 비결은 엉뚱하게도,방청소를 스스로 하도록 시키라는 거였데요 ㅋ일리가 있는 말씀이었어요 열청하겠습니다♥

다락방 2018-01-11 18:23   좋아요 0 | URL
제가 최근에 방청소 하기 너무 싫어서 방 지저분하게 내버려두는 거 보면서 ‘나 이대로 괜찮은건가‘하는 생각을 좀 햇었거든요. 괜찮은 걸 확인하기 위해 진짜 억지로 방을 청소했어요. 그렇게 저 스스로도 괜찮은건가 의문을 가지게 되는거라면, 정말이지 청소는 중요한 것 같아요. 사무실도, 집의 제 방도 깨끗이 청소하고 거기에 의욕을 잃지 말자고 새삼 다짐해봐요. 저도 열청!!
 
프랑켄슈타인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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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내가 아는 프랑켄슈타인 괴물의 모습을 지우는 것'이다. 역자 후기에도 이 말이 가장 먼저 나와있는데, 내가 영화에서 봤던 모습과 익히 프랑켄슈타인 괴물이라고 알려진 모습이 너무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 이 책의 몰입을 방해한다. 내 머릿속에 박힌 그 괴물은 흉측하다기 보다는 어눌하고 좀 맹한 느낌이었달까. 그러나 이 책속에서 메리 셸리가 그려낸 괴물은 겉모습이 거대하고 우리랑 다른, 그래서 흉물이라 모두가 놀라 비명을 지르긴 하지만, 굉장히 명민하고 사랑과 박애가 넘치는 캐릭터다. 빅토르는 그와 말도 섞어보지 않은 채로 자신이 만들어놓은 살아 숨쉬는 육체가 눈을 뜨자마자 '으앗 괴물이다' 하고 그로부터 도망치지만, 그는 제대로 사랑할 줄도 알고 감동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으며, 자연과 햇살 바람과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날씨로부터도 행복을 느끼는 존재였던 거다. 게다가 그가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꽤 흥미로운데, 한 가족을 엿보면서 사랑과 우아함을 알기도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언어를 습득하기도 하는 거다. 놀라운 건, 그가 책을 읽고 아주 많은 것들을 습득하고 고뇌한다는 데 있다. 그는 우연히 《실낙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젊은 베르테리의 슬픔》을 읽게 되는데, 이로부터 주인공들의 처지에 공감도 했다가 자신과 다른 점도 찾으면서 지식과 삶에 눈을 떠가는 것이다.


그런 그가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가족을 보면서 그들과 함께 사랑을 주고 받는, 그들의 그 다정함 속에 자신도 섞이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그들의 성품이 얼마나 온화하고 인자한지를 확신한 후에, 맹인인 그 가족의 아버지만 남았을 때 찾아가 말을 건다. 괴물의 겉모습을 알지 못한 아버지는 그에게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또 그의 친구가 되어줄 준비를 하는데, 괴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다른 가족들은 속히 그 집으로부터 떠난다. 당연히 그 괴물로부터도 멀리.


괴물은(사실 그 괴물에게 이름이 없다) 이에 절망한다. 물가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해줬는데, 그 어린 아이의 가족 조차도 그를 경멸한다. 그는 인간에게 절망하고 실망하고 분노하면서, 이에 자신의 외로움을 구원해줄 존재를 절실히 원하게 되고, 자신을 만들어준 빅토르를 찾아가 '나같은 여자존재'를 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한다. 만약 나의 창조주인 당신이 나같은 존재를 만들어준다면, 나는 그 여인과 함께 인적이 드문 먼 곳으로가 우리끼리 그냥 잘 살겠노라, 인간에게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겠다고 맹세하노라, 얘기를 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빅토르에게 하는 말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설득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어낼만큼 논리적인데, 그런 괴물의 얘기를 들으면서 자꾸 머릿속에 내가 아는 괴물의 모습이 그려지면 너무 매치가 안되는 거다.


빅토르는 이미 자신의 가족을 잃어 가슴이 아팠고, 그를 괴물로 마음과 머리로 인정해버린 터라, 그의 말을 듣기를 거부했지만, 듣다보니 그의 말에 한 점 틀린 게 없어, 그래, 너같은 존재, 여성인 존재로 만들어주마, 말을 한다. 자료를 다시 수집하고 연구를 거듭하여 이 괴물의 여자 존재, 괴물에게 친구가 되어줄 존재, 괴물의 외로움을 함께 나눠줄 존재를 만들려던 빅토르는, 그러나 '그 새로 만들어진 존재가 지금 괴물같은 존재가 될 줄 어떻게 알겠는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된다. 이 괴물은 만들어진 직후 자연의 경이로움을 알고, 지식을 습득하고, 사랑과 박애와 동정심을 갖게 되었지만, 새로 만들어진 존재가 그렇지 않다면? 또한, 새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무리 자신과 같은 존재라 해도 그 괴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인간을 사랑한다면? 그럴 경우엔 같은 종족으로부터 버려진 괴물은, 지금보다 더 괴물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그로하여금 다른 존재를 만드는 걸 포기하게 하고, 이에 괴물의 분노는 폭발해서 자신의 창조주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빅토르는 소중한 모든 걸 잃게 되고 몸도 쇠약해지게 되는데, 이 때 항해하던 로버트 월턴을 만나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버트 월턴도 이 괴물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괴물을 괴물로만 대해 그를 물리치려 하다가 괴물의 죄책감을 알게 된다. 



괴물은, 괴물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괴물은 괴물로 만들어졌다. 더 거슬러 올라가 빅토르는, 그렇게 한 생명을 만들어내는 데 흥분해 그 후를 생각하지 않고 절대권력자가 되어서는 안되었다. 만들어놓고 뒤도 안돌아보고 쌩까서도 안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생명체를, 그냥 버려두는 거다.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은 옳을까? 이 책에서 빅토르는 공부와 연구를 거듭해 육체를 만들고 생명을 넣을 수 있는 걸 할 수 있기 때문에 고민 없이 했다. 그에게는 그때 이것이 윤리적으로 어떤 것일지, 이 생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우리가 하나의 생명(혹은 그보다 더 많이)을 만들어내고 혹은 맡게 되었을 때, 그것을 한 순간의 감정으로 내치는 것은 과연 옳은가? 

선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선한 행동, 선한 마음가짐은, 애시당초 장착된 게 아니라 상대의 겉모습을 보고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닐까. 나라면 이 괴물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겉모습만 보고 괴물이라 칭하지 말아야지, 얘기해보면 저 존재는 나에게 소중해질지도 몰라'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친구란 무엇일까? 빅토르가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에 대해 절대 권력을 갖기 보다, 그와 대화해서 그가 삶에 눈뜨는 것들을 함께 바라봐주고 또 그가 지식 습득하는 과정중에 함께 했다면, 그렇다면 그들은 오히려 누구보다 더 좋은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친구든 애인이든 본인이 원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거지만 말이다.

외로움은 무엇일까. 언젠가 페미니즘 강연 들을 때 '외로움이 가장 무섭다'는 얘길 들었었는데, 괴물이 자신에게 '나 같은 존재'를 만들어달라 청한 건 지극히 본능적인 요구는 아니었을까. 사랑과 외로움을 알게 되었는데, 그가 어떻게 혼자 지낼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우아함과 다정함 그리고 따뜻함이 무엇인지도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했는데. 우리가 일단 사랑에 관련된 감정들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충족시키는지를 안다면, 그것들 없이 살아가는 건 너무도 힘겨워지지 않을까.

그러나 새로 만들어진 존재가, 빅토르의 의심대로, 자신과 같은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이 괴물을 사랑하리란 보장은 또 어디에 있는가. 사랑이란 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던가. 어쩌면 괴물은 '나같은 존재'로 부터도 버려졌다는 사실에 더 큰 슬픔에 잠길 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누군가를 쉽게 괴물로 칭해놓고서, 그러나 그 존재에게 '그렇다고 해서 너가 그렇게 쉽게 괴물이 되어서는 안돼'라고 말해도 되는걸까. 그건 옳은가. 우리는 선하지 않았고, 선하게 다른 존재를 대한 것도 아니면서, 그러나 그에게 '악마가 되어서는 안돼'라고 말할 수 있는걸까? 



'나를 혐오하는 그들을 어찌 내가 증오하지 않겠는가?"(p.133)



의문문으로 시작하지도 끝을 맺지도 않은 이 한 권의 소설에서, 그러나 읽는 동안 수만 개의 의문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많은 것들을 묻게 하고 그러나 확신을 가진 답을 할 수 없게 한다. 자연, 인간으로서 맞닥뜨리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 그리고 지식의 습득까지 이 놀라운 소설 한 권에 다 들어있는데, 아이구야, 메리 셸리는 이 대단한 소설을 자신의 나이 19세에 썼다고 한다. 그녀가 19세에 이 소설을 썼다는 걸 알지 못하면서 읽었을 때에도 '천재다 천재' 라고 계속 감탄했는데, 뭐라고? 19세라고? 이건 뭐 어떻게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구나. 나는 그저 독자의 자리에서 감탄만 끊임없이 하다가 책을 덮을 뿐이다. 



가끔, 나는 왜 소설을 좋아하는가, 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데, 이 책을 읽노라니 자연스레 이런 답이 내려진다.


'소설이 이러니까.'


진짜 소설이 이러니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괴물이라 칭해지는 존재 안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섞여있어서, 그 내면이 얼마나 복잡한지, 그 순간 순간의 감정이 어떠했을지 손에 잡히는 듯해서, 인간이란 건 그렇게 쉽게, '선한' 혹은 '악한'으로 나눌 수 없다는 걸, 이렇게 잘 보여주니까. 소설이 이러니까. 소설이 이러니까 좋아한다. 이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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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12-07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이미 있었는데 모르고 또 산 건 비밀 ^^

syo 2017-12-07 10:27   좋아요 1 | URL
이 비밀은 분노의 포도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다락방 2017-12-07 10:29   좋아요 1 | URL
아 맞다. 나 그것도 그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란 인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7-12-07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이것도 보관함에... 아.. 근데 이 글 읽으니 바로 사야 할 것 같아요..ㅜㅜ

다락방 2017-12-07 11:19   좋아요 1 | URL
네 비연님. 보관함의 그 많고 많은 책들 사이에 포함하지 마시고 이것은 바로 장바구니로 넘겨도 되실겁니다. 후훗.

비연 2017-12-07 13:25   좋아요 0 | URL
아아... 락방님.... 장바구니... 방금 넣었는데... 어찌 아시고...ㅜㅜㅜㅜㅜㅜㅜ

다락방 2017-12-07 13:35   좋아요 1 | URL
달려요, 달렷! 으하하하하. 자, 질렀으니 열심히 읽어봅시다!!

비연 2017-12-07 15:34   좋아요 0 | URL
락방님... 프랑켄슈타인만 사야지 했다가 12권 주문..ㅠ 저 중독인 듯.
.. 그러나 도자기 식판 동그란 거 주문! 크하하하하하

다락방 2017-12-07 16:16   좋아요 1 | URL
아니, 열 두권이라뇨, 비연님! ㅎㅎㅎㅎㅎ
어쨌든 식판 하나 받으시는군요! 우히히히.
저는 언제쯤 식판에 안주 담아서 술 마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언제 하지? 헤헷. 즐거운 고민!

레와 2017-12-0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많은 생각과 물음을 던지는 소설이네요!! 와.. 다락방 리뷰만 읽었는데 엄청난 책이다.
열아홉살때 작품이라니.. 와.....

다락방 2017-12-07 16:17   좋아요 0 | URL
나는 .. 나는.... 아아 비교하지 말아야지. 감히 천재작가와 나를 비교하려 하다니.
메리 셸리 진짜 대단해요! 이렇게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다니 진짜 짱이에요. 레와님도 꼭 읽어봤으면 해요! >.<

hellas 2017-12-08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두고 책장에 방치했는데. 얼른 읽어야 겠다!! 생각하게 되네요:)

다락방 2017-12-08 08:00   좋아요 1 | URL
저는 읽고 엄청 재미있었는데요, 헬라스님께도 그런 책이 된다면 좋겠어요!! >.<

보물선 2018-03-1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커버판 소개에 다락방님 리뷰가 첨부되었어요! 축하드립니다^^

다락방 2018-03-16 10:45   좋아요 0 | URL
오옷 그래요? 가서 봐야겠네요. ㅋㅋㅋㅋㅋ
이게 알라딘에서는 볼 수가 없는가봐요? 실물 찾아봐야겠네요. 이런 ㅋㅋㅋㅋㅋ


보물선 2018-03-16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175496

보물선 2018-03-16 11:16   좋아요 0 | URL
친절한 보물선! ㅎㅎㅎ

다락방 2018-03-16 14:54   좋아요 1 | URL
제가 못찾고 있으니까 다른 친구가 알려줘서 봤어요. ㅋㅋㅋㅋ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ㅎㅎㅎ
 
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표지에는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이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일단 페미니즘 소설에는 어떤 게 있을까, 읽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선택가능한 책이 되니 좋을 것이고, 페미니즘은 걸러가자, 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걸러내버릴 책이 되니 단점이 될 것이다. 실상 페미니즘에 관련된 입문서, 안내서, 소설까지, 정작 읽어야 할 사람은 '페미니즘은 걸러가자'고 하는 사람들 쪽일테니까. 접근을 용이하게 한 것이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되는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작가들에게 주어진 순간, '페미니즘 페미니즘' 하고 머릿속에 가득차서 글을 풀어내는 게 좀 자유롭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연달아 세 편이 '사실의 기술'에 가까우며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의 다른 버전들을 만나는 것 같았으니까. 애인에게 파혼을 선언하는 여자, 집에서 장녀인 여자, 아들을 키우는 여자의 이야기들이 순차적으로 나온다. 우리가 연애를 하면서, 집에서 딸로 자라면서 겪었던 것들이 이야기되어지고, 그리고 결혼해 남편과 살면서 자식을 키우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어지고 있다. 우리가 그 삶 속에서 '어 이건 아니지 않나' 했던 것들 혹은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스스로에게 자꾸 되뇌었던 것들. 그 의문과 불안,걱정은 어느 한 시기에 진행되었다 끊기는 것이 아니고 여자로서 살아가는 평생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책의 실린 단편의 순서는 어쩌면 의도적인 것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소설 혹은 문학에 기대하는 바는 사실 기술 그 너머에 있다. 단순히 현실과 사실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내가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이것 말고 조금 더, 를 바라게 하는 거다. 이건 사실 소설을 대하는 독자의 개인적 취향일 것이다. 누군가는 소설의 의미가 바로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데 있다 할 것이고, 내 경우엔 그걸 넘어서 '그 무엇'에 닿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1더하기 1은 2다', 라고 말해지고 그걸 읽어서 아는 게 아니라, 읽는 과정에서 '앗! 1더하기 1은 2인거구나, 2일 수 있는 거구나!' 하게 만들어지는 걸 원한달까.  '김이설' 작가가 자신의 단편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망치로 남자 머리를 깨부수는 여자가 등장하는 십 년 전에 쓴 소설이 더 페미니즘적인 소설이었나 싶고(p.122)'라고 한 것처럼, 이 책속의 작가들이 그저 자연스레 자신이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는 쪽에 더 페미니즘이 드러날 수 있을 것 같다. '페미니즘' 이라고 주제를 딱 던져놔 버리니 오히려 너무 전형적으로 되어버리는 것 같은 거다.


그래서 내게는 좀 아쉬움을 주는 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것이 페미니즘이든 혹은 또다른 무엇이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목적지를 찾아가고자 하려면 일단 지도를 펴고 내가 서 있는 곳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내가 오른쪽으로 가야할 지 사거리를 건너야 할지 뒤를 돌아야 할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런점에서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자, 내가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 파악하자' 하는 것을 권유하는 느낌이다. 자, 우리가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봐야 하지, 라고. 이 책에 단편을 써낸 작가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가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보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윤김지영 쌤은 '헬페미'로서 자신의 역할은 바로 지금의 학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헬페미들의 언어와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다고 했었더랬다. 바로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우리 모두가 페미니스트로서 같은 운동을 할 수만은 없다.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생활이 있고 각자의 환경이란 것이 있으니까. 그런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게 중요할텐데, 이 책을 써낸 소설가들은 그것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표현한 것일 테다. 사실의 기술이든 그 너머를 나아가든 나는 이 소설가들이 앞으로도 부지런히 소설을 써낼 수 있기를 바란다. 굳이 '페미니즘'으로 소설을 써보자, 하는 게 아니어도, 그들이 쓰고 싶은 바로 그 글을 쓰더라도 그 안에 페미니즘이 자연스레 깔려있기를 원한다. 성평등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아도, 우리가 그들의 소설을 읽었을 때 성평등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라는 것을 자연스레 읽어낼 수 있기를 원한다.



끝으로 표제작 <현남 오빠에게>를 다 읽고나서, 아, 이 여자 현남오빠(자꾸 한남오빠라고 쓰게 된다) 가 이 편지 읽고 찾아오면 어떡하지, 집 앞에서 기다리면 어떡하지, 스토킹 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었는데, 이 걱정을 한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이 글을 쓴 조남주 작가 역시 그런 걱정을 했더라.



느낌표를 찍고 마지막 문단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런데 강현남씨가 스토킹을 하면 어쩌지? 몰래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놓았으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했고요. 실제로 적잖게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p.39, 조남주, 작가의 말)




고백하자면 나 역시 어떤 연애가 끝나고난 뒤, 이런 걱정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그로부터 해를 입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마지막에 자연스레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게 몹시 씁쓸하고 또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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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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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소재로 한 책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은 뭘까. 아마도 다른 책들에 대한 이야기일것이다. 우리는 서점이나 책을 다룬 책에서 내가 읽은 책이 나오면 작가와 나의 감상을 비교하며 즐거워하거나 혹은 '내가 이미 읽은 책인데!' 하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또한 모르는 책이 나오면 메모를 하며 다음 읽을 책으로 점찍어두기도 하고. 이 책은 앨리스라는 섬에 있는 유일한 서점의 이야기이다. 서점 주인 에이제이는 2년전에 아내를 잃고 혼자사는 39세의 남자인데, 싫어하는 책의 종류가 아주 많고 성격은 까탈스러우며 사람들한테도 잘 대하지 못하고 사실 아내를 잃은 슬픔 때문에 사는 게 말이 아니다. 책은 파는둥 마는둥 저녁마다 술에 취해 잠들고 아내의 환영을 보게 되는데, 이럴때 출판사 직원 어밀리아가 책을 영업하러 왔다가 좀 안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가게 된다. 


그런 퉁명스런 에이제이의 서점에 갓난 아이가 놓여진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서점에서 자랐으면 좋겠다며 부탁한다를 쪽지를 남겨놓고 가버린 후다. 꼬박 주말을 그 아기 '마야'와 보낸 에이제이는 위탁가정에 보내려던 마야를 자신이 키우기로 하고 입양한다. 갑자기 에이제이는 두 살난 마야의 아빠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에이제이는, 계절마다 한번씩 출판사 직원 어밀리아를 만나다가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데, '난 이런 책 싫어!' 하고 버럭거렸던 책,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 꼭 읽어보라고 추천했던 책을 4년만에 읽고서는 엉엉 운다. 아 이 책이 좋은 책이었구나. 그 책을 소재로 어밀리아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같이 식사도 하게 되고 그렇게 조금 더 친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어밀리아는 그에게 애인이 있다고 말한다. 에이제이는 절망해서 소개팅을 몇차례 해보지만, 대부분의 소개팅이 그렇듯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지나치게 착하고 뻔하다. 그러니까 서점에서 일어나는 일, 그 서점 혹은 섬에서 일어나는 로맨스라고 해봐야 충분히 짐작가능한데, 그렇다고 그 착하고 뻔한게 싫다는 건 아니다. 인생이란 게 어차피 뻔한 거 아닌가. 가끔 착하기도 하면서. 또한 이 책을 읽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가 혹은 내가 가장 기대하는 건 물론 다른 책들에 대한 이야기 혹은 책에 얽힌 이야기일텐데, 이 책은 그걸 충실히 채워준다. 다른 책들의 이야기, 다른 책속의 주인공이나 저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내가 각주를 보지 않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하는 이야기가 뭔지 내가 알 수 있다는 거 진짜 너무 신나지 않는가! -언젠가도 한 번 얘기했지만,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여러분 꼭 읽어보시라. 외국 소설에서 핍과 해비셤 부인은 정말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주석을 볼 필요가 없어!!- 게다가 《클로디아의 비밀》로 마야와 동네 경찰관이 나누는 대화는, 그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웃을 수 있다. 내가 읽은 책들이 다른 책 속에서 소재로 사용된다는 건 너무 신나는 일인데, 이 책이 그걸 해준다. 이것만으로도 뻔하지만 즐거운데, 뻔하고 즐거운 게 이뿐만이 아니다. 그러니까 로맨스!



로맨스 역시도 뻔하고 즐겁다. 


연애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함께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서 여자가 함께 살 애인에게 자신의 책장 반을 비워주는데 거기에 각종 트로피만 진열한 걸 보고 그와 헤어지기로 결심하는 장면이 나온다. 침묵과 대화를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건 비극임을 알고 있기에.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 어밀리아는 출판사의 책들을 서점에 소개하는데 에이제이가 그 책들을 부지런히 열심히 읽고, 읽을 때마다 어밀리아에게 메일로 혹은 문자로 감상을 얘기하며 그에 대한 대화(당연히 농담이 섞인!)를 나눈다. 에이제이는 그녀가 좋아하는 드라마도 보고 그에 대한 농담도 그녀랑 나누게 되는데, 한 계절을 보내고난 후 어밀리아는 그에게 애인과 헤어졌음을 얘기한다. 




저녁을 먹고 두번째 와인병을 딴 후에야 드디어 에이제이는 그녀와 브렛 브루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용기를 냈다.

어밀리아는 슬몃 웃었다. "사실대로 말해도, 당신이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안 그럴게요. 약속합니다."

어밀리아는 남은 와인을 쭉 들이켰다. "지난 가을에, 우리가 내내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을 때…… 저기, 당신 때문에 내가 브렛과 깨졌다고 생각지는 말아줬으면 싶군요. 그런 게 아니니까. 내가 브렛과 헤어진 건, 당신과 얘기하면서 다른 사람과 감수성을 공유하고 열정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기억해냈기 때문이에요. 바보 같죠." (p.159)



나는 저것, 감수성과 열정을 공유한다는 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항상 함께할 사람,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필요한 것도 바로 저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때로 돈이 더 중요하다, 외모가 더 중요하다 등등 다른 조건들을 더 중요하게 내세울 수 있지만, 그래서 그런 상대를 맞춤하게 찾았다 하더라도, 결국 감수성을 공유할 수 없다면 그 관계가 좋은 상태로 오래갈 수는 없다. 그러다보면 내 애인, 내 배우자는 아니지만 감수성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 혹은 '다른 관계'가 생기게 되는데, 어밀리아가 만약 애인 브렛과 헤어지지 않고 애인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면 어밀리아는 에이제이와 정서적 유대관계를 찐하게 맺게 됐을거다. 브렛으로부터 충족할 수 없었으니까. 에이제이가 어밀리아를 좋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관계는 그러니까, 부조리하지 않은가.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 남는 관계가 될 수가 있어. 그런 점에서 어밀리아가 브렛과 헤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어밀리아와 에이제이는 연애를 시작하게 되는데, 버스 타고 배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에 사는 에이제이와 도시에 사는 어밀리아의 거리는 멀고도 멀어서, 주변에서는 이들의 연애를 말린다. 그리고 그들도 그들 사이의 이 물리적으로 먼 거리가 그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한 쪽도 자신의 일인 '출판사 영업직원'과 '서점 주인'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개인적인 얘기로 들어가보자면,

나 역시 먼 거리에 있는 남자와 연애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어떤 함께살 미래를 꿈꾸거나 한 게 아니었음에도 그 연애는 즐겁게 유지됐었는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친구로부터 '너네 그렇게 멀리 있어서 어떤 가능성도 없는데 그 여자를 놔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그 얘기를 듣고 내게 '우리가 이렇게 지내는 게 부질없는 거냐, 이게 의미없는 거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매우 화가 났었다. 왜 다른 사람의 연애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걸까? 우리가 지금 이대로 잘하고 있는데 왜 다른 사람이 놔주라 마라 하는거지?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지 혹은 없을지는 제삼자가 판단할 몫이 아니지 않은가. 안그래도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가끔 그런 고민에 놓이게 된다. 어차피 이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지 못할거라면 우리가 지금 이러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인가.... 하는 그런 고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지내는 것에 기쁨과 행복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내고 있는데, 거기에 왜 끼어들어서 놔주라 마라 하는걸까. 어떻게든 결론은 우리 스스로, 당사자가 내려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만약 멀어서 헤어졌다면 그것도 내 몫이요, 먼 거리를 극복하고 누군가가 이동했다면 그 역시 우리 몫이란 말이다.



어밀리아는 페리에 올라서 에이제이에게 전화했다. "난 프로비던스에서 못 움직여. 당신은 앨리스에서 못 나오고.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

"그렇지." 에이제이는 동의했다. (p.168)



"이건 너한테 불공평한 일이야. 넌 서른여섯이고, 앞으로 더 어려질 리는 없잖니. 네가 진심으로 애를 갖고 싶다면, 불가능한 관계에 시간을 낭비하면 안돼, 에이미." (p.168)



"제부가 그 어밀리아란 사람하고 정말 진지한 게 아니라면, 그 사람이 제부 인생에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게 만드는 건 마야한테 불공평한 일이야."

그리고 대니얼이 에이제이에게 말했다. "여자 때문에 삶을 바꾸다니 안 될 일이지." (p.168)



에이제이는 이 먼 거리와, 포기할 수 없는 자신들의 직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결혼합시다." 그는 거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난 섬에 처박혀 있고, 가난하고, 애도 딸렸고, 수익이 점점 줄어드는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거 잘 알아요. 당신 어머니가 나를 싫어하고, 작가 이벤트를 주최하는 일에는 영 젬병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특이한 청혼이네." 어밀리아가 말했다. "당신의 장점부터 시작해야지, 에이제이."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우린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맹세코. 나는 내가 읽는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밀리아가 그 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내 아내가 되어주세요. 당신에게 책과 대화와 나의 온 심장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p.193)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말하는 건, 네가 있는 곳으로 갈게 라는 말보다 더 힘든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건 '내가 다른 걸 포기하고 너에게 갈게' 가 아니라, 상대에게 다른 걸 포기하고 내게로 오라는 걸 뜻하는 거니까. 상대에게 포기하게 만드는 건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걸 건네는 것 또한 사랑이고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도 쉽게 낼 수는 없는 용기. 내가 먼 거리에 있는 사람과 연애했을 때, 나는 그가 오라고 하면 언제든 가겠다는 마음가짐이었지만, 이런 마음을 가진 나라도, 아무리 나라도, 그에게 '당신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와' 라는 말을 할 순 없었다. 그건 해서는 안되는 말로 내게 여겨졌다.




어밀리아는 미간을 찡그렸고, 에이제이는 그녀가 거절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오코너의 단편을 말하는 거야? 당신 책상 위에 있던. 이런 순간에 떠올리기엔 지독히 어두운 건데."

"아냐, 당신을 말하는 거야. 나는 끝없이 찾았는데. 겨우 기차 두 편과 배 한 척 거리였군."

"차로 다니면 기차는 좀 생략해도 돼." 에이제이가 말했다.

"당신이 운전에 관해 뭘 아는데?" 어밀리아가 물었다. (p.194)




버스 타고 배 타고 기차 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차 두 번과 배 한 번 이었구나. 고현정과 조인성이 나왔던 드라마에서 고현정과 조인성도 아주 먼 거리에 있었더랬다. 조인성이 슬로베니아에 있었지 아마. 그래서 그들도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있었었는데, 어느날 충동적으로 고현정이 공항으로 달려가 비행기 티켓을 끊고서는, 그래봤자 열여섯시간(이 맞나 모르겠다)이면 갈 수 있는데, 그 시간이면 되는데!! 하는 거다. 에이제이와 어밀리아도 마찬가지. 기차 두 편과 배 한 척 거리라고 말해버리니, 뭐 괜찮아지는 것 같은 거다. 물론 실질적으로 이동하는 건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게다가 저 장면에서도 우리 책 읽는 사람들은(책부심 독서부심 가득만땅), 으하하핫, 플래너리 오코너,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내가 알지, 읽었지, 할 수 있게 되어 몹시 즐겁다. 게다가 나 역시 '어? 이건 이럴 때 가져올 수 있는 책이 아닌데? 어두운데?' 하게 되는데, 역시나 그런 식의 대화가 이어지는 거다. 크- 책을 읽는 사람이 책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건 이렇게나 짜릿한 기쁨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즐겁지 아니한가. 




에이제이가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고, 어밀리아 역시 마흔을 곧 앞둔 나이라는 것, 그런데 짝을 만나 결혼했다는 게 나는 너무 좋다. 나이 들어 결혼하는 부부가 반드시 더 잘 산다는 보장은 없지만, 삼십대 중반에 만나 결혼한 내 친구 부부를 보면 되게 이상적인 것 같은 거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잘하다가 만나 각자가 맡은 역할을 역시 잘해내면서 둘이 조화롭게 지내는 것. 나이 든다고 반드시 성숙해지는 건 아니지만, 성숙한 관계란 건 바로 그런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은 거다. 에이제이와 어밀리아의 결혼식에 섬의 경찰관 어머니가 참석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결혼식이라면 원래 다 좋아하긴 하지만, 성숙한 두 사람이 결혼하기로 결심하니까 유독 멋스럽지 않아?" (p.195)



그러자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요, 엄마. 눈 감고 달려드는 걸로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램비에이스가 말했다. "남자는 여자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죠. 여자는 남자가 전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고. 둘 다 세상에 완벽이란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죠." (p.195)




보통의 책이었다면 에이제이와 어밀리아가 결혼하면서 끝났을 거다. 마치 결혼하는 순간 이야기는 끝, 행복 끝이라는 듯이. 그러나 결혼하면서 이책의 겨우 절반 조금 넘는 부분을 지났을 뿐이다. 결혼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어밀리아는 여전히 출판사의 영업직으로 일하고 에이제이는 서점을 운영하고, 마야는 쑥쑥 자란다. 아이가 자라면서 집도 늘려가야 했고 서점은 섬에서 점점 더 중요한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이야기는 흘러가고 서점은 여전히 섬에 존재한다.


착하고 뻔하네, 라고 읽으면서 좀 심드렁했는데, 응 그렇지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나는 정서적 교감, 감수성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무척 좋다. 그거면 된 것 같고 그거면 충분하다. 우리는 결국 우리와 감수성을 공유할 사람을 찾아 시간을 보내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게 아닐까 싶은 거다. 어밀리아가 말했듯이 그렇게나 찾아 헤맸는데 기차 두 편과 배 한 척 거리에 그가 있었다. 이왕 찾을 거라면, 내 옆집에 살면 얼마나 쉬울까마는, 인생이란 게 또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아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행기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에 떠억- 하니, 감수성을 나눌 사람을 숨겨 두기도 한다. 내 감수성이 열세시간 날아가야 만날 수 있는 곳에 있다면, 뭐 어쩌겠는가. 비행기 타고 날아가서 만나야지. 그러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출근해 돈 벌고 있는 거 아닌가.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든데, 열시간이든 스무시간이든 걸려 어떻게든 만날 수 있는 곳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인생에 있어서 큰 행운을 쥐게 된 셈이라 봐도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만나는 것도 좋은데 후훗, 읽으면서 혼자 계속 으쓱하고 잘난척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나 그거 알아, 나 그 주인공 알아, 나 그 이야기 알아, 나 그 제목 말아, 하면서 연신 혼자 잘난척 하는 기분이 정말이지 좋단 말이야? 앞으로 읽는 책들에서도 계속 더 잘난척 하기 위해서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 그나저나 플래너리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도 내가 백자평을 써둔 것 같으니 뭐라고 썼나 찾아봐야겠다.



착하고 뻔한 이야기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겨울에 읽기 좋겠다고 한다. 착하고 뻔한 이야기인데, 착하고 뻔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살아야 그나마 삶이 좀 부드럽게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이 년전쯤 어쩌다 「로링 캠프의 행운」을 다시 들춰보게 됐는데 하도 펑펑 울어서 내 도버 염가 문고판이 수해를 이은 걸 볼 수 있을 거다. 생각건대, 중년이 되니 물러진 것 같구나. 그러나 또한 생각건대, 근자의 내 반응은, 인생의 시기마다 그에 딱 맞는 이야기를 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해주는 구나. 명심해라, 마야. 우리가 스무 살 때 감동했던 것들이 마흔 살이 되어도 똑같이 감동적인 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책에서나 인생에서나 이건 진리다. (p.57)

"난 항상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터키시 딜라이트를 먹어보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읽으면서 에드먼드가 터키시 딜라이트 때문에 가족을 배신할 정도라면 그건 진짜 어마어마하게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에이제이가 말했다. "니콜한테 이 얘기를 했었나 봐요, 어느 해인가 아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 박스를 줬거든요. 근데 가루를 잔뜩 묻힌 꾸덕꾸덕한 사탕이더라고. 내 평생 그때처럼 실망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바로 그 순간 공식적으로 당신의 유년기가 끝난 거군요."
"절대 전 같지 않았지요." 에이제이가 말했다.
"하얀 마녀의 터키시 딜라이트는 달랐을지도 몰라요. 마법의 터키시 딜라이트는 훨씬 맛있다거나."
"아니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게 에드먼드가 가족을 배신하게 만드는 데는 그리 대단한 유혹이 필요치 않았다거나."
"엄청 시니컬하네." 어밀리아가 말했다.
"터키시 딜라이트 먹어본 적 있어요, 어밀리아?"
"아뇨." 그녀가 말했다.
"좀 구해줘야겠군요." 그가 말했다.
"내가 그 사탕에 환장하면 어쩌려구요?" 그녀가 물었다.
"당신을 얕보게 되겠지." (p.124-125)

"난 어밀리아를 사 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 에이제이가 반박했다. "근데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아직 타이밍이 나쁜 거지. 그 무렵에는 당신 아내가 세상을 떠났어. 그러고 나서 당신한텐 마야가 생겼고."
"별로 위로가 안되는데." 에이제이가 말했다.
"하지만 이봐, 심장이 여전히 뛴다는 걸 알게 된 건 좋은 일이 잖아, 안 그래? 내가 소개팅이라도 알아봐줄까?" (p.134)

"아, 갈게. 거대한 초록 코끼리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요는,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여행을 간다고 할 때 실은 다른 종류의 여행일 때도 있거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내가 알고 싶은 건 단지 내가 어떤 여행을 가는 건지 하는 거야. 우리가 토피어리를 보러 가는 거야, 아니면 뭔가 다른 걸 보러 가는 거야? 가령 당신의 그 여자사람친구라든가?"
에이제이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잠깐 어밀리아를 보러 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 맞아." (p.154)

"당신은 섬에 정착하면 안 되겠지. 일 때문에 출장을 무척 자주 가야 하니까."
어밀리아는 두 팔을 앞으로 쭉 편 채 에이제이를 붙들고 피식 비웃었다. "그렇지. 근데 나한테 앨리스 섬으로 이사와달라는 부탁을 그런 식으로 하는 거야?"
"아니, 난…… 그게, 난 당신 생각해서." 에이제이가 말했다. "앨리스로 이사하는 건 당신한테 현실성이 없는 얘기잖아. 요는 그렇다는 거지."
"그치, 현실성이 없지." 어밀리아가 말했다.그녀는 형광 핑크색 손톱으로 에이제이의 가슴에 하트를 새겼다.
"그건 뭐라는 색조야?" 에이제이가 물었다.
"장밋빛 안경." 기적이 울렸고, 어밀리아는 배에 올랐다.
그해 봄,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기다리며 에이제이는 어밀리아에게 말했다. "일 년에 새 달만 앨리스에 있으면 안 되겠지."
"아프가니스탄으로 통근하는 게 더 쉽겠다." 그녀가 말했다.
"그나저나 그 얘기를 버스 정류장까지 갖고 와서 꺼내는 게 마음에 드는걸."
"마지막 순간까지 그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내려 애썼어."
"그것도 하나의 전략이긴 하군."
"좋은 전략은 아니었다는 뜻으로 알아들을게." (p.165-166)

딱히 글 쓰기에 관련된 사항은 아니지만…… 언젠가 너도 결혼에 대해 생각할 날이 오겠지. 주변에 딴 사람이 있어도 너밖에 안보인다는 사람을 골라라. (p.199)

"섹스는 진짜 오래간만인데." 이즈베이는 자기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램비에이스가 말했다.
"섹스를 해야 한다고요." 이즈메이는 분명히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도 하고 싶다면."
"하고 싶어요." 램비에이스가 말했다. "그게 두번째 데이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면요. 난 당신이 다른 남자를 얻을 때까지 준비운동 대상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p.252-253)

"씨발!" 평생 욕하는 법이 없는 어밀리아였으므로, 에이제이는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야?"
"흠, 문제는, 내가 당신 뇌를 좀 좋아했나봐."
그는 웃음을 터뜨리고, 그녀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아, 눈물은 됐어. 당신의 동정은 원치 않아."
"당신 때문에 우는 게 아냐. 나 때문에 우는 거지. 당신을 발견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알아? 끔찍한 데이트를 몇 번이나 했는지 알아? 다시-"이제 그녀는 숨이 찬다."-다시 데이트 사이트에 가입할 순 없어. 그럴 순 없다구." (p.294)

"있잖아,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에이제이나 어밀리아 같은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난, 책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는 게 좋아. 종이도 좋아해. 종이의 감촉, 뒷주머니에 든 책의 느낌도 좋고. 새 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해."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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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7-11-1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왕 너무 좋은 이야기네요. 책도 리뷰도요. 저의 겨울 독서 리스트에 올리겠습니다. 코코아 마시며 읽겠어요. 책 다 읽고 이 리뷰도 다시 읽어야지! >.<

다락방 2017-11-15 09:37   좋아요 0 | URL
이 시점에 로맨스가 등장하는 거 너무 전형적이고 뻔하지만, 근데 저는 그 로맨스가 무척 마음에 들더라고요. 역시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차야 해요. 하하하. 코코아라니, 너무 좋아요, 네꼬님! 너무 잘어울려요! 저는 따뜻한 커피와 던킨 도넛츠 먹고 있어요. 후훗.

레와 2017-11-1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장바구니를 편집(?)하고 있어요. 이 책도 넣을까 우짤까 막 고민하고.. 어렵다요! ^^;;


다락방 2017-11-15 11:1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책 같아요. 히힛.
물론 막 착하기만 한 건 아니긴 한데 전반적으로 착한 책이고...우리는 가끔은 착한 책을 읽을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고 말이지요. 후훗.

psyche 2017-11-15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용은 뻔한 이야기인데 책 이야기다보니 밑줄긋고 싶은 부분은 많더라구요. 저도 저 터키쉬 딜라이트 항상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도대체 얼마나 맛있었길래 배신을! 하면서요. 먹어본 사람들이 실망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먹어보고싶어요

다락방 2017-11-15 15:04   좋아요 2 | URL
저도 터키쉬 딜라이트 궁금하긴 했었는데요 막 그렇게까지 먹어보고 싶거나 그러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걸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이 책에 존재하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게 이 책의 묘미인 것 같아요. 책 읽고 대화하는 게 가능한 거요. 그걸 보는 게 너무 좋았어요.

psyche 2017-11-15 22:35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큰딸이랑 그런 대화들을 했었는데 얘가 사는게 바쁜지 어쩐지 요즘 책을 잘 안읽더라구요. 그래서 외로웠던차에 이렇게 북플에서 이런 대화를 할 분들을 만나니 참 좋아요!! 책 많이 읽고 글도 잘쓰고 생각도 깊은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다락방 2017-11-16 09:34   좋아요 2 | URL
어떤 관계든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진짜 큰 기쁨이죠! 책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면에서 알라딘은 정말 최고의 장소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하고 감상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알라딘에 글을 쓰고 또 다른 분들의 글을 읽는 게 즐거운 것 같아요.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말이지요. 후훗.

단발머리 2017-11-15 15: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착하고 뻔하면서도 그리고도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네요.
나는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면서 아직 안 읽은 책이 많다는 걸 확인하면서 더 열심히 읽자~~~이런 착한 결심을 하고야 말았어요.
지금 이런 책이 필요해요. 착한 로맨스, 달콤한 사랑 이야기^^
그나저나 나는 뭘 먹으면서 이 책을 읽게될까요?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11-15 15:06   좋아요 2 | URL
맞아요! 착하고 뻔하고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우리는 읽어줄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서 즐거워하고 웃기도 하고 공감도 하고 같이 사랑에 빠지고 그러는 순간이 필요하죠. 후훗.

네꼬님은 코코아 저는 도넛.... 단발머리님은....음.....케익 어떨까요? 아니면 호두파이 같은 것! 후훗.
아, 단팥빵도 좋을 것 같아요. 사실, 뭐든 좋죠. 뭐든 먹으면서 읽어요! 히히.

비연 2017-11-16 1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망설임없이 보관함에 넣으며... (사실은 장바구니..)
락방님. 너무 합니다. 생각하게 되네요 ㅜ 며칠 전에 올해 마지막 책을 구입했었었었더랬는데요.
근데 안 넣을 수가 없어서 이 책을 넣으니.. 다른 책들도 함께 들어갈테고.
아. 전 아무래도 책더미와 함께 집에서 쫓겨날 거 같습니다..ㅜㅜㅜ

다락방 2017-11-16 14:04   좋아요 3 | URL
그런 비연님께 기쁜 소식 하나 전하자면, 이번에 새로 올라운 굿즈-식판입니다!!-를 받을 수 있는 해당도서입니다. 그러니 지르시고 식판 받으세요!! ㅎㅎㅎㅎㅎ
저도 식판 받으러 갑니다. 슝-

식판 받아서 거기다 밥 먹으며 다이어트 하려고요...(응?)

책도 사고 다이어트도 하고 일석이조!! (응?응?)

즐건독서 2023-01-1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관한 책. 서점에 관한 책들은 책 구매에 있어서 탑픽 주제이나,
여기서 터질줄이야.

p219

˝우리 엄마는 삶을 포기했잖아요?˝
이유가 있었을 거야. 분명 네 어머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어밀리아의 어머니는 이태 전에 세상을 떴다. 그들 모녀의 관계는 때론 위기도 있었지만, 어밀리아는 뜻밖에도 어머니가 맹렬히 그리웠다. 가령,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격월로 딸에게 새속옷을 부쳤다. 어밀리아는 평생 단 한 번도 스스로 속옷을 살일이 없였다. 최근에서야 티제이맥스의 란제리 매장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팬티를 고르면서 울음이 터졌다.

‘나를 그토록 사랑해주는 사람은 다시는 없을 거야.

잔병치레 한번 없으셨던 어머니.

손주, 자식들 온 가족들과 여행하고 돌아와 저녁 식사중에 갑작스럽게 어머니 돌아가신지 150일.

내가 좋아하던 마늘쫑 늘 챙겨주셨던 어머니.

시장 밑반찬 집에서 고르다가 뻥 터져버린 내 눈.

내 공허함을 여기서 공감 받는다.

잊었던 책을 읽어야 할 이유 또 한가지를 또 깨닫게 된다.

공감하고 위로 받고
 
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터 시작된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겪었던 일, 겪었다기보다는 '당한'일,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내가 얘기를 할 때 내가 당한 일이 나 혼자만 당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는데, 이렇게나 많은 피해자가 이렇게나 자기 자신을 원망하며 살고 있었다니, 이 삶들을 다 어찌하나 싶었다. 아주 많은 여자들이 그간 말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걸 인식하기까지 그만큼 오래 걸렸다는 뜻일테다. 그리고 물론 아직도 여전히, 그것이 자기 잘못인줄 안 채로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것도 안다.


이 경험을 남자들에게 얘기했을 때는 반응이 달랐다. 남자들은 그저 '안된(혹은 안타까운) 일'로 생각했고 분석하려 했다. 그걸 극복하라 했고 이겨내라 했다. 그들은 애시당초 이해가 불가한 사람들이었고 공감 자체가 안되는 사람들이었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그것들 중 하나로 여기는 듯했다. 내 고통이 얼마만큼의 고통인지에 대해 이 끔찍함이 얼마만큼의 끔찍함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몹시 피곤했고, 그런 식으로 이해를 시킬 의욕도 의지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는 남자들이 정말로 성폭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범죄와 달리 유독 성범죄에만 피해자 탓을 하는 것은 바로 성폭행에 대해 그들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칼을 들이대야만,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해야만 강간이 성립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성폭행에 대해 얘기할 때는 '그러니까, 니가 거길 왜 따라가? 왜 술을 마셔? 왜 그런 옷을 입어?' 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너도 사실은 좋았던 거 아냐?



그리고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영화나 소설에서 그토록 잔인하게 성폭행을 묘사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가해자가 얼마나 나쁜놈인지,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 지에 대해서 그렇게 '자 봐, 이렇게 나쁜 놈이야' 하며 보여줄 수 있는 거라고. 그 장면이 실제로 많은 여자들을 숨막히게 하는 줄도 모르면서 예술이라고 한다. 예술 뭘까? 


이 책, 《다른 사람》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문학 작품 속에서의 가해자와 범죄 장면에 대한 묘사에 대한 부분이었다.






소설 《다른 사람》에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나온다. 저마다 그것을 극복하려 하는 방법, 없었던 일처럼 살아가려고 하는 방법이 다른데, 그 중 한 명은 닥치는대로 강간 피해자가 나오는 책을 읽는다. 인물들에 공감하고 이입하면서 극복해 이겨나가려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강간에 대해 쓴 작가들은 사실은 강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다. 



그리고 책 속에서 "저 여자를 강간하고 싶다"라는 목소리를 읽었을 때 수진은 그날 선배의 목소리를 함께 떠올렸다. 이제 그녀는 그런 농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식의 농담. 어떻게 그게 농담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강간당한 것 같아." 어떻게 강간이 농담이 될 수 있는 거지? 소설들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지 않았는가. 온갖 (괄호)들을 이용해서, 지독하고 핍진하게 묘사하지 않았는가. 강간당한 것 같다고? 강간하고 싶다고? 이건 강간당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렇다면 (괄호)들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괄호)들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가? 소주 뚜껑 끄트머리가 날아간 것 가지고는 절대 (괄호)를 당했다고 말할 수 없다. 강간은 그런 것이 아니다. (괄호)들이다. 왜 누군가는 강간을 쉽게 농담으로 사용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괄호)들로 무시무시하게 표현하는가. 쉽게 비유하는가. 그녀는 답을 찾기 위해 소설들을 계속 읽어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들은 강간을 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p.218-219)



이 부분을 읽다가 나는 얼마전에 읽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떠올렸다. 땅이 파헤쳐지는 장면을 강간당하는 거라고 묘사했던 그 장면을. 초반에 나오는 장면인데 그 장면에서도 나는 멈칫 했던 거다. 뭐지? 왜 이렇게 강간을 여기다 갖다 쓰지?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러니 누구나 모든 걸 다 잘하거나 또 모두 옳은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거다. 그때는 누구나 다 그랬었을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이만큼 여자로 살아온 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이성애자인 내가, 늘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해할 수도 없고 화가 났다.



은행이 땅을 사랑하지 않듯, 그도 땅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가 트랙터에 찬사를 보낼 수는 있었다. 기계의 외양과 불뚝불뚝 솟아나는 힘과 폭발하는 실린더의 힘에 감탄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 트랙터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트랙터 뒤에서는 반짝이는 원반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땅을 잘라 내고 있었다. 그것은 쟁기질이 아니라 수술이었다. 그 원반들이 잘라 낸 흙더미를 오른쪽으로 밀어내면 또 다른 원반들이 흙더미를 잘라 왼쪽으로 밀어냈다. 땅을 잘라내는 원반의 칼날들은 흙에 씻겨서 반짝반짝 광택이 났다. 원반들 뒤에서는 씨레가 쇠이빨로 흙을 빗질해 작은 흙덩이를 부숴 땅을 평평하게 골랐다. 씨레 뒤에서는 파종기(주물 공장에서 발기한 음경처럼 다듬어진 열두 개의 쇠몽둥이)가 기어의 움직임에 따라 오르가슴을 느끼며 기계적으로 땅을 강간했다. 열정과 흥분이 없는 강간이었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1권, p.75




열정과 흥분이 없는 강간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 강간에 열정과 흥분이 없었다는 걸까? 강간에 열정과 흥분이 있을 수 있나? 이건 강간이 뭔지 조차 모르는 거잖아? 아니면 강간에는 '원래' 열정과 흥분이 없다는 걸 설명한걸까? 뭐가 이래? 내가 왜 이 문장을 보면서, 도대체 존 스타인벡이 왜 이렇게 썼는지를 왜 이렇게 저렇게 문장을 해석하려 들면서 '아닐거야' 라고 해야 하는거지? 이걸 써놓고 잔인하게 땅을 파헤치는 걸 썼다고 스스로에게 감탄했을까? 읽는 사람들은 기가 막힌 표현이라고 생각했을까? 나 역시 다른 의미로 기가 막히다.



소설 《다른 사람》은 세련되게 돌려까기를 한다. 인간이 모두 불완전하다는 걸 계속해서 드러내면서,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다, 우리 모두 실수하고 산다, 우리 모두 결백하기만 한 인간은 아니다, 우리는 야망이 있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나쁜 짓을 하기도 한다고,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또 괜찮은 연애 상대를 만나기도 한다고 그저 무심하게 여러 명의 일상에 대해 얘기해준다. 그러니까 잘못 받아들이게 된다면 나쁜 짓 하고 살아서 나쁜 짓 당했다고 보일 수도 있을만큼. 그렇게 어쩌면 친구를 왕따시키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가운데, 치열하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서, 죄책감에 대해서 얘기한다. 아직. 자매애나 연대에 대해서는 모른다. 어떤 여자들은 욕먹어도 싸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러나 점점 깊이 들어가 그들 모두, 그들 모두가, 죽을듯한 괴로움과 고통을 품고 있었다는 걸 알고는, 그렇게 한 발 나아간다. 나는 나 자신을 원망했고, 나 자신을 미워했고, 나 자신을 욕했고, 나 자신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저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었다. 스스로도 '순결한' 피해자가 아니라서 어떻게도 고통을 드러낼 수 없었던 인물들. 대체, 순결한 피해자란 무엇인가. 우리가 피해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 피해의 정당성을 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착하게 살아야 하고 술도 마시지 말아야 하고 밤 늦게 다니지도 말아야 하고 가슴이 파진 옷도 입으면 안되는 것인가. 내가 친구를 시기했다고 해서, 질투했다고 해서, 누군가의 뒷담화를 했다고 해서, 그래서 나는 완전히 강간은 아닌 것을 당한 사람이 되는 것인가. 



원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데, 원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증명할 수 없으면 누구의 동의도 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그녀가 찾아본 결과 대부분의 강간은 여자가 강력하게 거부했을 때만 입증되었다. 그러니까 폭력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졌을 때만 강간이라고 인정받았다. 수진은 그 사실 때문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여자가 두들겨 맞고 소리를 지르고, 협박 당하고 그래서 목숨의 위협을 받은 후에 이루어진 성관계만 강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수진이 겪은 건 절대 강간이 아니었다. 수진은 두들겨 맞지도 않았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협박당하지도 않았고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도 않았다. 하지만, 원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왜 가해자가 가한 폭행의 정도로 판단되어야 하는건지 수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수진이 생각하기에 강간은 단순했다. 정말 쉽게 분류할 수 있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을 때 성관계를 하는 것.

바로 수진처럼. 술에 취해 의식을 잃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당하는 것. 수진의 경우는 준강간에 해당했다. 준準. 세상에 이 단어 앞에 '준'을 붙있다고?

그나마도 수진은 입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만일 그를 고발한다면 수진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할머니를 생각해야 했다. 수진의 미래를 생각해야 했다. 강간 피해자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 강간 피해를 주장했던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하고, 오직 의혹에만 둘러싸여 살고 싶지 않았다. (p.213-214)



나는 정희진 엮음, 한국 여성의전화 연합 기획한 책, 《성폭력을 다시 쓴다》를 읽다 밑줄 그은 부분을 떠올렸다.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돕는 상담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는, 피해자들을 특정한 전형성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폭력 피해여성들이 항상 불안해하고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러한 모습은 폭력 피해를 당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모습으로 폭력의 결과일 뿐이지, 그런 여성들이 폭력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피해여성들 중에는 가해남성보다 기질이 세거나 활동적인 사람도 있으며, 착하지도 않고, 일상 생활에 성실하지 않은 이도 있을 수 있다. 피해여성들은 가해남성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 사람들은 이러한 피해여성을 만나면 혼란스러워한다. 특별한 사람만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혼란을 갖게 되는 이면에는 ‘순수한 피해자‘,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라는 통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통념은 여성 폭력에 대한 비판을 ‘피해 사실‘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돌리게 한다. (성폭력을 다시 쓴다, 김효선, p.176-177)



‘전형적인 피해자‘란 남성 사회의 신화이자 남성들이 투사하는 희망적 판타지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그런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 폭력을 문제화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피해 사실, 그 자체여야 한다. (성폭력을 다시 쓴다, 김효선, p.177)




십년 전의 진아에게 일어난 일, 수진에게 일어난 일, 유리에게 일어난 일이, 이제 이영에게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영은 목소리를 내려 한다. 공론화 시키려 하고, 뒤로 숨지 않으려한다. 어떻게든 이 일이 나쁜 짓임을 밝히려 하고, 도움을 받으려 하고, 가해자에게 벌을 내리려 한다. 이제서야 진아가 깨달았던 것, 자기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영은 지금 알고 있었다. 


나는 이진섭에게 맞으면서도 맞지 않을 방법만 생각했다. 그의 비위를 맞추고, 기분을 좋게 해서 손지검을 피할 방법을.

하지만 진짜 필요했던 건 내 목소리였다. 하지 마.


나를 때리지 마. (p.78)



내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신의 듣는 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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