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인스타에서 한 광고를 봤다.
팔꿈치와 겨드랑이의 착색을 바꿔준다는거였다. 광고 속에서 여성들은 착색된 팔꿈치를 창피해했고 고민스러워했다. 그런데 광고중인 미백크림을 바르면 감쪽같이 하얘진다는 거였다.
몇 년전에도 이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같은 제품은 아니었을텐데, 광고의 취지는 같았다. 나는 그때 홀린듯이 인스타에서 그 크림을 사서 발랐던 적이 있었는데, 바르고나니 정말 그 부위가 하얘지고 말끔해졌냐 하면 그게 아니고, 바르고나면 그 즉시 커버가 되는거다. 이게 뭐야?? 이건 착색을 바로잡아주는 게 아니라 그냥 착색을 가려주는건데? 나는 이런 제품이 너무 싫다. 원래의 문제점을 뽑아내는 게 아니라 가리는 거, 이런거 정말 싫어. 그렇게 두어번 바르고 그 제품은 썩어가고 있다.
그러다 얼마전에 다시 이 광고를 보게 된거다.
이번에 광고를 보니 '이걸 살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신, '아니 씨발 지들이 뭔데 그게 문제라고 말해?'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러니까 처음 저 제품을 사기 전의 나는, 내 팔꿈치와 겨드랑이의 착색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팔꿈치는 그냥 팔꿈치였고 겨드랑이는 겨드랑이었다. 다른 부위와 색깔이 다르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고쳐야 할 무엇으로 생각되진 않았던거다. 거긴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 있는 부위였던 거다. 그런데 그 광고를 보고 나니, 으이크, 내 겨드랑이랑 팔꿈치도 장난 아니네, 이걸 발라야겠다, 라는 단순한 생각의 흐름으로 이어졌고 그래서 그 해결방법으로 크림을 사서 발랐던 거다. 결국 해결되진 않고 사용도 하지 않은채 제품에 대한 불만으로 끝났지만, 문제는, 그 제품이 효과가 없다는 것보다 있지도 않은 문제를 문제라고 지적하는 데에 있었다. 그 제품은 미백시켜준다고 광고했지만, 그 전에 필요한 건 하얗지 못한 부분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 광고 때문에 나는, 그리고 다른 많은 여성들은 착색된 부위를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는거다. 이것은 문제다, 그러므로 해결해야 한다, 하는. 하아-
그런데 생각해보면 살아가는데 굳이 꼭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일단 '그것이 문제다'라고 지적하는게 우선해야 했다. 나는 거들을 안입는데,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거들로 뱃살을 누른다고 뱃살이 없어지냐, 그건 그냥 감춰지는 거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뱃살이 있으면 있는거지 그걸 왜 꼭 눌러가지고 뱃살 없는것처럼 해야 할까?
뱃살이 문제잖아, 그걸 거들이 해결해줄게.
이러면 사람들은 아 나도 뱃살 많은데 거들 사야겠다, 하게 되는게 아닌가.
당신의 피부 잡티, 이 팩트로 해결할게요.
앗, 나 피부 잡티 개많네, 이 팩트로 가리자, 이렇게 되어버리는거다.
그러니까 여성에게 코르셋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살아가는데 필요해서가 아니라, 정말 아니라, 코르셋을 팔아치우기 위해서라는 거다. 그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여성에게 주입시킴으로써.
디카프리오 주연의 월 스트리트 울프 어쩌고 하는 영화에서 마지막에 볼펜을 어떻게 팔겠느냐는 세일즈를 강의할 때, 그걸 듣고 있던 수강생중 하나는 볼펜의 장점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디카프리오는 일단 상대에게 '펜을 빌려줘' 라고 말을 한다. 상대는 펜을 찾다가 없어서 '펜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디카프리오는 너 펜이 없네 필요하겠구나, 하고 그 펜을 내미는 거다. 이게 세일즈의 요령인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쓸데없이 거들을, 팩트를, 미백크림을 필요하게 만들어버리는 거다. 누가? 이 거대한 세상이, 이 자본주의가. 그렇게 우리가 화장품을 사고, 바르고, 거들을 입으면서, 아 이것들 너무 좋아, 역시 유용해 하면 자연스레 또 다른 사람에게 광고가 된다. 이 거대한 자본주의는 너무나 똑똑해서 어느 정도 광고해놓으면 소비자들이 알아서 광고를 해줘...
그리고 또 하나.
인스타에서 넘치는 광고중에는 살냄새 향수가 있다. 이 향수를 바르면 남자들이 미치고, 이 향수를 바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번호가 따이고, 이 향수를 바르면 잠자리에서 남자가 너무나 좋아하고...
이 광고는 볼 때마다 역겨워.
왜, 내가 남자를 홀려야 하나?
왜, 내가 남자에게 전화번호가 따여야 하냐.
'여자는 흠없이 예뻐야 하고 남자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이 전제가 자본주의를 움직인다. 하아 좆같아.
나는 '여자는 인질이다'의 이 구절이 생각났다.
여자는 남자가 보호해준다는 데에 감격해서 애초에 보호가 필요한 이유가 남자의 폭력 때문이라는 점을 잊는다. (p.190)
그렇다.
미백 크림이 필요한 이유는, 그게 문제라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지적받기 전까지, 나는 그것이 문제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딱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광고를 보면서 '그게 왜 내 문제냐 이 잡놈아' 라고 생각한다. 이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니가 문제다. 내 겨드랑이 드럽다. 근데 뭐.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