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표지에는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이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일단 페미니즘 소설에는 어떤 게 있을까, 읽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선택가능한 책이 되니 좋을 것이고, 페미니즘은 걸러가자, 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걸러내버릴 책이 되니 단점이 될 것이다. 실상 페미니즘에 관련된 입문서, 안내서, 소설까지, 정작 읽어야 할 사람은 '페미니즘은 걸러가자'고 하는 사람들 쪽일테니까. 접근을 용이하게 한 것이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되는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작가들에게 주어진 순간, '페미니즘 페미니즘' 하고 머릿속에 가득차서 글을 풀어내는 게 좀 자유롭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연달아 세 편이 '사실의 기술'에 가까우며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의 다른 버전들을 만나는 것 같았으니까. 애인에게 파혼을 선언하는 여자, 집에서 장녀인 여자, 아들을 키우는 여자의 이야기들이 순차적으로 나온다. 우리가 연애를 하면서, 집에서 딸로 자라면서 겪었던 것들이 이야기되어지고, 그리고 결혼해 남편과 살면서 자식을 키우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어지고 있다. 우리가 그 삶 속에서 '어 이건 아니지 않나' 했던 것들 혹은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스스로에게 자꾸 되뇌었던 것들. 그 의문과 불안,걱정은 어느 한 시기에 진행되었다 끊기는 것이 아니고 여자로서 살아가는 평생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책의 실린 단편의 순서는 어쩌면 의도적인 것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소설 혹은 문학에 기대하는 바는 사실 기술 그 너머에 있다. 단순히 현실과 사실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내가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이것 말고 조금 더, 를 바라게 하는 거다. 이건 사실 소설을 대하는 독자의 개인적 취향일 것이다. 누군가는 소설의 의미가 바로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데 있다 할 것이고, 내 경우엔 그걸 넘어서 '그 무엇'에 닿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1더하기 1은 2다', 라고 말해지고 그걸 읽어서 아는 게 아니라, 읽는 과정에서 '앗! 1더하기 1은 2인거구나, 2일 수 있는 거구나!' 하게 만들어지는 걸 원한달까.  '김이설' 작가가 자신의 단편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망치로 남자 머리를 깨부수는 여자가 등장하는 십 년 전에 쓴 소설이 더 페미니즘적인 소설이었나 싶고(p.122)'라고 한 것처럼, 이 책속의 작가들이 그저 자연스레 자신이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는 쪽에 더 페미니즘이 드러날 수 있을 것 같다. '페미니즘' 이라고 주제를 딱 던져놔 버리니 오히려 너무 전형적으로 되어버리는 것 같은 거다.


그래서 내게는 좀 아쉬움을 주는 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것이 페미니즘이든 혹은 또다른 무엇이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목적지를 찾아가고자 하려면 일단 지도를 펴고 내가 서 있는 곳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내가 오른쪽으로 가야할 지 사거리를 건너야 할지 뒤를 돌아야 할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런점에서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자, 내가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 파악하자' 하는 것을 권유하는 느낌이다. 자, 우리가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봐야 하지, 라고. 이 책에 단편을 써낸 작가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가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보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윤김지영 쌤은 '헬페미'로서 자신의 역할은 바로 지금의 학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헬페미들의 언어와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다고 했었더랬다. 바로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우리 모두가 페미니스트로서 같은 운동을 할 수만은 없다.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생활이 있고 각자의 환경이란 것이 있으니까. 그런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게 중요할텐데, 이 책을 써낸 소설가들은 그것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표현한 것일 테다. 사실의 기술이든 그 너머를 나아가든 나는 이 소설가들이 앞으로도 부지런히 소설을 써낼 수 있기를 바란다. 굳이 '페미니즘'으로 소설을 써보자, 하는 게 아니어도, 그들이 쓰고 싶은 바로 그 글을 쓰더라도 그 안에 페미니즘이 자연스레 깔려있기를 원한다. 성평등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아도, 우리가 그들의 소설을 읽었을 때 성평등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라는 것을 자연스레 읽어낼 수 있기를 원한다.



끝으로 표제작 <현남 오빠에게>를 다 읽고나서, 아, 이 여자 현남오빠(자꾸 한남오빠라고 쓰게 된다) 가 이 편지 읽고 찾아오면 어떡하지, 집 앞에서 기다리면 어떡하지, 스토킹 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었는데, 이 걱정을 한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이 글을 쓴 조남주 작가 역시 그런 걱정을 했더라.



느낌표를 찍고 마지막 문단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런데 강현남씨가 스토킹을 하면 어쩌지? 몰래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놓았으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했고요. 실제로 적잖게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p.39, 조남주, 작가의 말)




고백하자면 나 역시 어떤 연애가 끝나고난 뒤, 이런 걱정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그로부터 해를 입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마지막에 자연스레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게 몹시 씁쓸하고 또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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