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현재를 향한 영원한 물음
타임퀘이크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

보네거트, 유머를 잃지 않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세상을, 시대를, 현재를, 타인을, 나를, 걱정할수록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니까요. 그래서 재밌는 소설을 읽고, 쓰고 싶은 걸 테죠.

그런데요. 재밌으면서 괴로운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요. 계속 그래요. 그리고 말 좀 그만하라고, 내 목을 조르고 싶다니까요. 지금도.

우린 왜 그렇게 웃기고 싶었을까요. 알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니까. 사실 희극과 비극은 같다는 걸.

유머로 무장한 당신과 철학으로 무장한 비트겐슈타인이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 겁니다. 둘이 너무 다르잖아? 하면서.

 

* 상상력이 없으니 그들은 자기네 조상들이 했던 것을 할 수 없었다.(『타임 퀘이크』, p37)

이 부분은 비트겐슈타인이 생각의 자유의지에 대해 말하던 부분과 비슷했죠.

 

* 옥스퍼드 인용사전 제3판에 영국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1772~1834)의 이런 말이 소개되어 있다. “불신을 자진해서 잠시 정지하는 것, 거기에 시적 신뢰가 있다.”(타임퀘이크, p117)

당신이 인용한 새뮤얼 콜리지의 이 말도 비트겐슈타인 또한 얼마나 갈망했던지.

 

하지만 같은 시기 전쟁의 참상을 겪고 화학을 소재로 써도, 당신과 프리모 레비는 얼마나 다른지요. 원소들의 특성처럼 우리는 서로 다른 화학적 반응을 보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질문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의 말(『타임 퀘이크』, p94)이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모독입니까. 당신은 "이 친구, 나랑 유머가 통하네, ㅋㅋ" 해줄 거 같은데 말예요. 하지만 당신은 없어요.

 

죽은 작가의 글을 읽는 게 솔직히 마음이 편해요. 당신이 죽어서 좋다는 말은 아녜요;

살아있는 작가들은 자신이 쓴 글 때문에 종신형을 사는 죄인 처지 같잖아요. 살만 루시디는 대표적 예이기도 하죠.

작가의 글쓰기는, 돌이킬 수 없는 살인이고 그 이후를 감당해야 하는 속죄이자 굴욕이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게 아니길 바랄 뿐. 필시 그렇겠지만. 이 비유도 이미 죽은 비유죠. 그런데 작품에서 완전 범죄는 가능한 걸까요? 우리는 그럴 자격이 정말 있는 걸까요? 세상과 사람과 사물을 모조리 옮겨 놓고 멋지군~ 그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 조이스 프라이드의 승무원들은 조종사에게 인터컴을 통해 자기들도 그만큼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하늘엔 그들뿐이었다. 그들은 전투기의 엄호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일본군에는 비행기가 한 대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이미 끝나 서류 작업만 남은 상태였다. 사실 에놀라 게이가 히로시마를 잿더미로 만들기 전에도 상황은 명백히 그랬다. 킬고어 트라우트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더 이상 전쟁이 아니었다. 나가사키 싹쓸이도 그랬다. 그것은 잘했어요. 양키스 선수들이었다. 그것은 이제 쇼 비즈니스였다.”

 트라우트는 웃지 못할 일에서 쓰기를, 조종사와 폭격수가 그전에는 임무를 수행할 때는 어딘지 신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때는 사람들이 떨어뜨릴 물건이 고작 소이탄과 재래식 고성능 폭탄뿐이었다. “그때의 신은 작은 신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복수와 파괴밖에 모르는 작은 신들로 여겼다. 그러나 하늘에 자기들만 있으면서 비행기 아래 자주색 제미럴 것을 달고 있을 때는 저 우두머리 신 하나님처럼 느꼈다. 전에는 누려 본 적이 없는 선택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낀 것이다.”(『타임 퀘이크』, p37)

 

 

우리가 글을 쓸 때 신처럼 느끼는 건 한순간이죠. 수많은 고됨 끝에 오는 잠깐의 보람. 그 뒤 현실과의 괴리감, 몰려오는 미흡함, 자괴감.

보네거트, 당신은 그런 불협들을 동시에 모으며 써내려갔죠. 현실과 환상을 마술 고리들처럼 자유자재로 붙였다 뗐다 하면서. 우리가 소중해하는 현실과 의식이 우리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보물이기에, 당신은 소설 속에 가차 없이 투하했습니다. 원자탄은 이 소설 속에서 영원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시공간들이 반복되었죠. 당신은 그림의 한 귀퉁이를 살짝 바로잡는 여유를 잃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마련한 소설의 자리에서 저는 기쁘게 바라 보았습니다. 현실을 난도질하는 서툰 살인자가 아니라 소설의 화가이자 언어의 마술사인 당신을 향해 웃으며.

 

* 그는 그 그림을 다시 걸고 바로잡기까지 했다. “그게 어쩐지 중요한 일 같습니다. 그 그림을 다른 그림들과 간격을 맞추어서 비틀어지지 않게 거는 것 말이오. 최소한 나는 혼돈한 우주의 그렇게 작은 부분만은 제대로 바로잡을 수 있었어요. 내게 그렇게 할 기회가 있었던 게 고마울 따름이오.”(『타임 퀘이크』, p196)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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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15-05-19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좋아요 라는 이모티가 필요한데요

AgalmA 2015-05-19 17: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올리고나서 너무 부족해보여 맘이 편치 않았는데, 21세기컴맹님 덕분에 조금 힘이 났습니다 :)

2015-05-20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천형이라 할까요... 그 마음이 알겠어서..끄덕이고 끄덕이는..^^

AgalmA 2015-05-20 01:55   좋아요 0 | URL
벗들도 하기 어려운 말씀을 남겨주신 나그네님, 나그네님은 어떤 천형을 겪으셨기에 이런 말씀을 주셨나 생각했습니다. 어디서건 무탈하시길...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5-05-20 13:55   좋아요 0 | URL
[그 장 소 ]입니다.
갑자기 저는 나그네 가 된..^^
서버 문제인가 그럽니다(도통 이 흐름을 잡아 채지못하겠다고..서버에 하는 말)
이상하게 웹으로 들어와도 제 기능을 잃고마는 제 신세..그런거지 뭐예요.

당신의 오늘도 내내 무탈하기를 !
따듯한 우정을 놓고 갑니다.^^

AgalmA 2015-05-20 17:04   좋아요 0 | URL
ㅋㅋ 그장소님처럼 북플과 불화 처지인 경우는 못 본 거 같아요. 도대체 왜 그런 건지;;;
따듯한 우정 엄청 받아서 엄청 돌려드리고 싶어요ㅎ 방법을 여러모로 강구해 보겠습니다 ~

기운잃지 마세요. 그장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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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서점 파수꾼 (자처 혹은 좌초하는;) Agalma입니다.

최근 중고시장에 최고 할인가를 자랑하며 신간들이 대거 출몰하고 있는데요.

구매 홍수를 막는데 장바구니가 역부족입니다!!! 헉헉;

여러분들의 치열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제가 좀 덜 사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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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우치, 알라딘 보틀 등 사은품이 탐나서 신간을 모아 많이 사죠. 엊그제 산 신간이 40% 할인가에 나온 걸 보고 살짝 약오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사은품은 사은품이 아닌 셈? 반대급부로 이렇게 득템도 하니 군말 말아야 하는 걸까요;;?

단 권으로 사시는 분은 더 억울하실 듯해서 이렇게 알립니다. 제가 예전에도 알려 드렸듯이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꼭 중고알림 신청을 해 놓으세요! 지금 당장 안 사도 읽을 책 많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_~

개인 중고 판매자에게는 10% 이하의 할인가를 권고 제재하면서, 정작 알라딘 자체 판매는 20~40% 넘는 할인이 과연 정당한가, 중얼투덜. 집에 팔지 못하고 있는 신간들을 잔뜩 쌓아두고, 책 사냥꾼이자 독서 난봉꾼 저는 중얼투덜 영문도 모른 채 부지런히 사고 있습니다-ㅅ-;;

서두르세요. 외계인이 오기 전에~

 

 

§§§

로베르트 무질 『사랑의 완성』 엄청 좋아서 아껴 읽는 중입니다. 사길 잘했어요. 정말, 정말...

우리를 난감하게 하던 책『특성없는 남자』의 특성ㅎ;들이 대거 나오는 게 반갑기도 하고, 그 책보다 좀 더 읽기 편해서 이 또한 좋습니다~

 

 

 

 

ㅡAgalma

 

 

 

 

 

 

 

 

 

 

 

 

 

 

 

 

 

 

 

 

 

 

 

 

 

 

 

 

 

 

 

 

 

 

 

 

 

 

 

 

 

 

 

 

어린 시절 나눈 우정이란 본래 나이가 들수록 더 특별해지는 법이다. 세월과 함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살갗에 난 솜털부터 가슴속까지 변하기 마련이지만 이런 친구관계는 이상하게도 전과 달라지지 않는다. 그건 세월에 따라 차례대로 다르게 변하지만 늘 `나`라고 부르는 존재와 비슷하다.(p8)

너도 인간의 자유란 주로 그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하는가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게 될걸. 인간의 행위는 언제나 거의 동일한 법이거든. 모두 비슷한 일을 하는데 빌어먹을 무슨 의미가 있겠니? 옛날에 나는 장롱 위로 기어올라간 적이 있는데, 수직의 공간체험을 충분히 이용해 이 동일성의 공간을 탈출해보겠다는 생각에서였어.(p13)

ㅡ로베르트 무질 『사랑의 완성』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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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5-1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저도 금일부터 중고알람 신청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거 한권씩 해야 되는군요...일괄로 한방에 하는 거는 없는 모양입니다...
한권씩 찬찬히 검토하며 신청하고 있습니다. ㅎㅎㅎㅎ

그리고....책사냥꾼 A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AgalmA 2015-05-18 20:53   좋아요 0 | URL
좀 귀찮긴 하죠^^; 그래서 정말 살 책만 추리게 되는 장점도 있지 않겠습니까ㅎ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한 권이라도 더 챙기려 들겠죠ㅋ;;

Juni 2015-05-1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정보 감사드립니다 ^^*

AgalmA 2015-05-18 20:53   좋아요 0 | URL
네, 도움되시길 :)

에이바 2015-05-18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켑틱 창간호도 저 가격에 사셨어요?? 충격!! 저도 담으러 갑니다.. 아갈마님 감사해요. <사랑의 완성>이 아껴 읽을 정도인가요? 그 책도 함께...

AgalmA 2015-05-18 21:42   좋아요 1 | URL
네, 저 위의 이미지는 다 제 구매 목록 캡쳐입니다. 신간 외에도 희귀본, 절판본도 꽤 많았지요.
아,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사냥꾼 짓이 거의 일상화가 되어서 죽겠네요ㅎ;;

스켑틱이 어제도 몇 권 나왔어요. 책 상태도 최상이고. 계속 중고매장을 주시하다보니 흥미로운 신간이 계속 나와서 이제는 이웃에게 전체적으로 알려야겠다 싶어서 글 올린 것^^

<수잔 손택의 말>은 무려 네다섯 권이 한꺼번에 출몰ㅎㅎ

<사랑의 완성> 저는 기대 이상! 페이지 마다 제가 저기 밑줄긋기 한 것 같은 문장들이 등장합니다 >_<)ㅇ

북다이제스터 2015-05-18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애용하는데 2만원에 2천원 할인 쿠폰에 농락되어 매번 구입하지 못합니다 ㅠㅠ 추가 중고 책 기다리다가 남들에게 선수 뺏겨서 ㅠㅠ

AgalmA 2015-05-18 21:44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매일 그걸 겪고 있어요. 한권 더 모으다가 어느새 사라짐;; 진짜 이건 사야돼! 하는 책은 바로 사야 됩니다!
배송비 무료인 1만원 미만이라면 중고가 아닌 제일 싼 책을 이때를 대비해 준비해둬야 합니다. 그렇게 끼워서 사면 좋습니다b

달걀부인 2015-05-18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쇼핑의 노하우....이런 귀한 글들 모아서 책내도 되겠어요. 누가 살진몰라도!

AgalmA 2015-05-18 22:16   좋아요 0 | URL
ㅋㅋ 마지막 말이 촌철살인이신데요. 알라딘의 비밀들을 자꾸 털어내도 되나 모르겠습니다ㅎ 이래저래 저 점점 밉상 되어가는 거 같아서;;

cyrus 2015-05-18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알라딘 대구점 죽돌이 cyrus입니다.

AgalmA 2015-05-19 01:10   좋아요 0 | URL
죽돌이시라뇨. 터줏대감 아니신가요^^;

이름 2015-05-19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젠더 무법자>저자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분이더라구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영상을 본 후에 책을 구매할까 고민하다 결국 구매하지 못한..... 여전히 고민 중.........

AgalmA 2015-05-19 17:24   좋아요 0 | URL
다큐멘타리는 보지 못했는데, 프로필을 보니 책 제목처럼 젠더 무법자 같은 삶을 사신 것 같더군요.
리뷰가 없어서 좀 고민했는데, 이 분의 에너지와 지혜를 배우고 싶어 구매하게 되었어요.
이름님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니, 되도록 리뷰를 빨리 올려 보도록 할께요^^;

[그장소] 2015-05-20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럼 중고를 이용해 볼까하다가 , 이 놈의 차이없는 가격 때문에 이왕 올거면 새책이 ...
그럽니다.(만, 그 경계를 허뭄은 이미 이뤼지고 있었던게 아닌가..하면서)
확실히 최상이라면 이왕 그럼 좀 더 닉네임을 아는 분 책을 선택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하며...생각이 이래저래 많아져요.
저는 책을 내 팔지 않을 텐데.. 그러니 가능함 오래 보관도 할 량으로
깨끗하게 보는 분들 알아둬야겠다..뭐..그럽니다.

모두 이 이 줄장미 떨구는 오월의 날들을 잘 보내시길..

AgalmA 2015-05-20 17:01   좋아요 0 | URL
본문에도 밝혔지만, 신간 경우 알라딘 직배송 중고책이 개인 판매자보다 훨씬 저렴해서 중고알림 신청을 꼭 해 놓으시라고 당부하는 겁니다.
제가 읽고 싶은 책이 이웃에게 있는 경우가 잘 없고, 있어도 배송비로 더 비싼 경우라..저는 알라딘 직배송을 주로 이용하게 돼요.

장미 향기와 덩굴들처럼 안부 잔뜩 주고 가셔서 감사했습니다.
그장소님 마음도 그렇게 활짝 피어 있기를... 지는 거 우리 두려워하지 말아요. 또 피우면 되니까.(바람 말고;;;)
 
[eBook] 2BR02B SciFan 6
커트 보네거트 지음 / 위즈덤커넥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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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일은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누군가 태어나면 반드시 누군가 죽어야 하는 시스템이라면?

커트 보네거트가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소설 <5도살장>으로 증언했다.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도록 아주 재밌게! 독일에게 위협과 보복을 하기 위해 군사지역도 아닌 민간인 거주지역에 폭격을 가한 연합군의 만행. 드레스덴 폭격이 히로시마 폭격만큼 강력했단 걸 대다수 잘 모른다. 굳이 찾아볼 생각도 안 하니까. 미국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했다고 밝혔지만, 여러 역사적 증언들은 진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결과가 과정을 대변하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는 만연하다.

우리는 잘못된 시스템의 교육을 받으며, 그 시스템을 강화하는 일원으로서 합리화하지 말아야 한다. <2BR02B> 뿐 아니라 커트 보네거트는 꾸준히 작품을 통해 그걸 말해왔다.

 

최근 미국과 일본의 군사 동맹의 흐름과 함께 또 주목되는 점은, 거대 인구밀집국가인 중국과 인도(이들 인구를 합하면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다)의 외교 동맹이다. 국경분쟁으로 자주 군사적 충돌을 보였지만 이제 그들은 동맹을 과시한다.

한국 외교는 어떤가. 남북 외교는 국내 프로파간다에나 써먹으면서, 눈가리고 아웅식 해외 외교로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디로 향하든 나라가 돌아가고 있는 현재 상황이 신기할 따름이다. 자원 외교 망해도 국민의 고혈을 빼내면 되니 만사형통이다. 정말이지 이 정부에는 어떤 긍정성도 거론하고 싶지 않다.

 

소설로 돌아가, 수명 연장 시스템을 개발한 자는 200살이 넘도록 호의호식하며 타인의 생명을 논한다. 현실의 우리는 지금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살아있음을 무기로 자신의 아픔만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아프니까 모두 청춘할까.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여타를 정부탓만 하고 있어야 할 일인지. 남의 불행을 그저 시끄러운 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여, 당신도 '사느냐, 죽느냐'의 일원이다. 제대로 아는가도 문제겠지만, 바꿀 권리를 눈돌림과 포기로 시스템에 자발적으로 주지 말자. 똑바로 바라보기.

 

보네거트는 절판이 많아 아쉬운데, 짧은 분량이지만 초기작품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그것도 무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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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ar, 보네거트 - 놀면 뭐해, 웃겨라도 봐야죠
    from 공음미문 2015-05-18 18:51 
    보네거트, 유머를 잃지 않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세상을, 시대를, 현재를, 타인을, 나를, 걱정할수록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니까요. 그래서 재밌는 소설을 읽고, 쓰고 싶은 걸 테죠. 그런데요. 재밌으면서 괴로운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요. 계속 그래요. 그리고 말 좀 그만하라고, 내 목을 조르고 싶다니까요. 지금도.우린 왜 그렇게 웃기고 싶었을까. 알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니까. 희극과 비극은 사실 같다는
 
 
양철나무꾼 2015-05-16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트롤즈가 b.g.로 깔려야죠~, ㅋㅋㅋ

AgalmA 2015-05-16 15:35   좋아요 0 | URL
제 컴이 알라딘 페이지에서 동영상을 올리는 걸 거부하는 터라 뉴트롤즈고, 모차르트-레퀴엠이고 간에 어려움이 있어요; 동영상을 올릴 수 없는 이 시스템과 불화 중이랄까ㅎ

네오 2015-05-1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교나와서,,그러는데,,이게,,참,혹시 론스타뉴스 봤어요? 그게 외교통상부있던 시절 한미에프티에이어서 출발하잖아요, ㅋ

AgalmA 2015-05-16 17:46   좋아요 0 | URL
큰 줄기만 보고 세부사항까지는 알아보지 않았어요.
이런 정세들 보면 복장터져서 저 같은 다혈질은 금새 독개구리 될 거 같아요;; 정신 안정을 위해 오늘은 문학을 읽어야겠습니다...흐유...

네오 2015-05-16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법무부 국제법과에서 담당하는데,,담당과장 인터뷰하는거보니 ,,;;;이게 단심제라서, 이번에 끝나면 게임오버덴,,이게 사실 재판소가 워싱턴에 있고 영어로 진행되서문제예요, 물론 현지 로펌에서 담당하지만요,

AgalmA 2015-05-16 20:24   좋아요 0 | URL
법적인 걸로는 론스타를 이길 가능성 없겠더군요. 판결 (찌라시뿌려 최대한 가리겠지만) 보도되면 한국은 공식 해외법인의 호구 나라 인증하는 셈. 아, 진짜...

페크pek0501 2015-05-17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저자의 <나라 없는 사람>을 읽고 있어요.
이 책엔 커트 보니것, 이라고 돼 있어요.

인상적인 문장.
˝물론 나는 소문난 골초다. 담배를 피우다 죽는 것이 평생의 바람이다.˝(49쪽)- <나라 없는 사람>에서.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두려울 게 없을 것 같아요. ^^

AgalmA 2015-05-18 03:28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pek0501님.
커트 보니것이 인명사전의 정식 명칭인 거 같던데, 통상 커트 보네거트라고 부르던 게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독일식으로 부르려던 게 실패한 건지, 흔히 그렇듯 일본식으로 수용된 건지 그 기원이 모호하네요~_~

그렇게 담배 좋아해서 80까지 정정하던 사람이 지붕 수리 사고로 시름시름 앓다 죽다니....... 롤랑 바르트도 교통사고 후 거의 치료거부로 사망하고, 붓다가 이질로 사망했던 것 등등...뛰어난 이들의 허망한 죽음...이럴 땐 참 괴상한 기분이 듭니다.

<나라없는 사람> 재밌죠. 식구들을 웃기기 위해 골몰하는 재간꾼ㅎ

유머는 두려움의 대항마라고 늘 생각합니다 :)

[그장소] 2015-05-2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상을 지키는 건. 더 어렵습니다.
유머를 해도 유머인 냥 받아주면 기쁨인데..정색으로 받아버리면..윽~(가슴에 칼을 꽂게되는 상태)
더 많이 알아야 하나..(인간적 면모를 지우고 가면을 사는 우리, 닉넴 만으로 가능한지..)

님의 진솔한 고민이 엿보여 좋았네~라.

AgalmA 2015-05-20 16:53   좋아요 0 | URL
희극이 더 어렵다고 하죠. 비극은 확실히 전달하기가 쉽죠. 그리스 비극부터 지금의 소설, 드라마, 영화 그 굳건한 계승들만 봐도...

저도 자주 진지의 세계에 천착하는데, 유머의 동아줄 없으면 균형잡기 어렵다는 생각합니다. 관계 속에서도. 글 속에서도.
 

 

 

 

 

 

 

 

 1. Gustavo A. Santaolalla / Opening    - 아르헨티나

 

 

https://youtu.be/wMwNGAwXbPY 

사물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우리 자신과의 관계를 보여 준다고. 만일 사람들이 우리를 매료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물들을 거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 옆에 대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이 두 경우 사이에서 늘 사물들과 만날 준비가 되어 있고, 우리와 섞이며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우리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하는 사물들을 볼 채비가 되어 있어야 좋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딜 때에만 우리 자신의 중심에 있다.

- 로제 폴 드루와 『사물들과 함께 하는 51가지 철학체험』 中

 

 

 

 

 

 

 

 

 

2. Gary Jules / Mad World(Alternate Version)  -  미국

https://youtu.be/f7lV8Q79Yqk

 

제드는 젊지 않았고, 보다 정확하게는 젊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반면에  인간적으로는 상당히 미숙했다. 그가 아는 사람은 아버지가 유일했고, 그나마도 잘 알지는 못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인간관계에 대해 크게 낙관적일 수 없었다. 그가 관찰한 바로는, 인간 존재란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을 둘러싸고 형성되고, 전방위적 조직활동으로 완성되었다. 인생에서 일을 하는 시기가 끝나면, 갖가지 질병들에 걸리는 그보다 더 짧은 또다른 시기에 종족을 재생산하려는 의도로 가족이라는 이름의 소규모 집단에 소속되고자 애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제드는 연인과 마지막으로 에스프레소를 나눠 마시며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런 시도는 대개 '시간의 특성'과 관련된 이유로 불발에 그치게 마련이라고. 오늘날 개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보편적 교통수단이 휴가철을 맞아 첫번째 대이동의 시기에 최대의 용적으로 운항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것은 환영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제드는 이것에서 너무 빨리 끝나버린 그들의 사랑에 사회적 기계장치가 바치는 오마주를 찾고 싶었다.

 

  마지막 키스를 하고 나서 올가가 출국심사대로 향했을 때도 제드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올가와의 이별로 부지불식간에 인생의 한 시기를 건너뛰었음을 비로소 깨달은 것은 로피탈 대로에 있는 자신의 집에 들어섰을 때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의 세계를 구성하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철저히 공허해져버렸다. 바닥에 널린 수백 장의 지도와 사진들이 더는 의미가 없었다.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밖으로 나가 뱅상 오리올 대로에 있는 카지노 슈퍼마켓에서 '공업용' 쓰레기봉투 두 롤을 사와서, 봉투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새삼 종이가 무거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봉투를 아래로 나르려면 아무래도 여러 번 왔다갔다해야 할 것 같았다. 몇 달, 몇 년에 걸쳐 작업한 것들을 폐기하는 중이었지만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훗날 유명해졌을 때ㅡ정확히 말하자면 어마어마하게 유명해졌을 때ㅡ제드는 예술가라는 사실이 그에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고, 인터뷰 때마다 거의 매번 되풀이하는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흥미롭거나 독창적인 대답을 찾지 못했다. 예술가라는 것. 그것은 그에게 무엇보다도 순응하는 누군가가 되는 것이었다. 예측불허의 불가해한 메시지에 순응하는 것. 모든 종류의 종교적 믿음을 제외한다면 부득불 직관이라는 말로밖에 칭할 수 없는 이 메시지는, 삶의 모든 원칙과 자존심을 잃지 않고는 빠져나갈 방도가 전혀 없는 단호하고도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이 메시지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로 방향을 틀기 위해 한 작품을, 아니 나아가 한 시기의 작품 전체를 모조리 파괴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때로는 심지어 아무런 노선도, 대책도, 기약도 없이 작품을 파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리고 오직 이런 점 때문에 예술가의 처지가 어렵다고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또한 바로 이런 점에서, 그리고 오직 이런 점 때문에 제드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주었던 그의 작품활동 제2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에서 그가 경의를 바친 갖가지 직업들과 예술가라는 직업이 구별되는 것이리라.

 

 

- 미셸 우엘벡 『지도와 영토』中

 

 

 

 

 

 

 

 

 

 

 

 

3. Robot Koch - Nitesky (Featuring John LaMonica)  -  독일

https://youtu.be/D-aJfcYzct8

우울증으로 쇠약해지고 권태에 짓눌려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낀 그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서 특정한 사물이나 사람의 불쾌한 모습이 뇌리에 깊게 새겨지곤 하고 그 흔적을 미세하게나마 지우기 위해서는 며칠이 걸리곤 하였을 때, 길에서 잠시 스친 타인의 얼굴은 그에게서 가장 혹독한 고초들 중의 하나였다. 

 

 

-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 『거꾸로』中

 

 

 

 

 

 

 

 

 

 

 

 

 

 

 

 

 

4. Beth Gibbons  / Drake  -  영국

https://youtu.be/zLbMc2bDrSY

"만약 자네가 그에게 동전 한 닢을 주면 면도를 해줄 테고 만약 그에게 동전 두 닢을 준다면 면도를 하는 동안 앞날을 봐 줄 걸세. 하지만 조심하게나. 그는 면도하는 것보다 더 앞날을 잘 보니 말일세."

 

  레안더는 물탱크 앞의 돌 위에 앉아서 동전 두 닢을 주었다. 점술가는 웃음을 지었고 그의 얼굴에서 웃음만이 유일하게 나이를 먹지 않았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레안더에게 입을 벌리라고 말하더니 갑자기 그의 입에 침을 뱉고 잠시 후 스스로 입을 벌렸다. 레안더도 점술가의 턱에 침을 뱉고 뱉은 침을 문지르며 그를 면도해 주기 시작했다.

  "터키인들이 내일 쳐들어오겠소 아니면 모레 쳐들어오겠소?"

  레안더가 농담 반으로 물었다.

  "모르지."

  점술가의 목소리는 그들 주위의 커다란 타일 속에 떠 있었다.

  "그럼 당신이 무슨 점술가란 말이오?"

  "두 부류의 점술가가 있지. 비싼 부류 그리고 싼 부류. 하지만 어떤 쪽은 좋고 어떤 쪽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말게나. 그런 문제가 아니니 말이야. 한 점술가는 급한 일들, 다른 점술가는 느린 비밀들에 관여한다는 차이일 뿐이니 말일세. 예를 들어 나는 싼 점술가지. 왜냐하면 나는 내일, 혹은 내년에 자네가 어떠할 것인지는 보이지가 않아. 나는 아주 멀리 있는 미래, 이삼백 년 후에 그때에는 늑대가 무엇으로 불릴지, 어떤 황국이 무너질지가 보인단 말이지. 이삼백 년 뒤에 일어날 일들은 누구에게 일어날 것인가? 아무에게도, 심지어 내게도 아니지. 그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 하지만 예를 들어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비싼 다른 점술가들은 내일 혹은, 1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아맞히는데 그것은 마치 대머리에게 모자가 필요하듯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어서 그런 것들에는 가격을 묻지도 않고 마치 어린 돼지 날개에 대한 값을 치르듯 한줌이든 큰 그릇으로든 몇 닢인지 따지지도 않지. 그러나 이 두 점술가의 점괘들이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고 서로 모순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네. 그것은 사실 하나의 똑같은 점괘야. 바깥 부분과 안쪽을 모두 가지고 있는 바람과 비교될 수 있지. 바람의 안쪽이란 비 사이로 바람이 불 때 건조한 상태로 남아 있는 바로 그 부분이지. 그러니까 어느 점술가는 단지 바깥 부분 한쪽을 보고 있는 것이고 다른 점술가는 단지 바람의 안쪽만을 보고 있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양면을 보지는 않아. 그러니까 전체 그림을 맞추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바람 안에서 얼굴과 선을 맞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명에게는 가야 하지…….

  그럼 이제 나에게서 자네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말해 주겠네. 사람은 마치 배의 나침반 같은 거야. 자기의 장수말벌 주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그 움직임 속에서 세상 모든 네 면들을 보기는 하지만, 자기 위와 자기 아래에 있는 것은 볼 수도 없는거야. 그 두 가지는 바로 그의 곁에 있는 것이기도 하면서 알고자 하는 것인데 바로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랑과 자기 위에 있는 죽음이 그것이지.

  다양한 사랑이 존재한다네. 어떤 사랑은 포크만으로도 꿰뚫을 수가 있고 또 어떤 사랑은 마치 굴처럼 손으로 먹는데 어떤 것들은 칼로 잘라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너를 익사시켜 버리지. 그리고 어떤 것들은 국물이 있어서 숟가락만이 요긴할 수가 있지. 아니면 아담이 땄던 사과처럼 다시 수확해야 하지.

  그리고 죽음에 관해서 말인데 그것은 이 하늘 아래 유일하게 마치 뱀처럼 우리 뿌리의 가지 위 아래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지. 죽음은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수세기 동안 어딘가 숨어서 너를 기다릴 수도 있고 너를 데려가려고 네게로 와 가장 멀리 있는 미래부터 만나게 할 수도 있지. 네가 알지도 못하고 결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이가 마치 메추라기를 쫓는 사냥개처럼 제 죽음을 너에게 놓을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너를 잡아오도록 그 메추라기를 보낼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내버려 두세나. 자네는 아름다운 목을 가졌군. 그런 목은 여성들의 손과 군인들의 사브르를 자극하지. 군화를 신은 군인이 금 장식을 한 사브르를 닦고 자네를 베어 버리는 것이 보이는군. 왜냐하면 여기 자네의 목도 확실히 보이니까 말일세. 마치 성 요반 크르스티텔리의 머리처럼 접시 위에 놓여 있군. 그런데 여자 때문이군…….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게, 곧 일어날 일은 아니니까. 그 전에 많은 시간들이 아주 풍성한  시간들이 지나갈걸세. 그럼, 그때까지 여자들로부터 그리고 사브르로부터 목을 잘 지키게나, 나의 백조여. 이제 세수를 하게나……."

  그렇게 면도와 점괘가 끝났다.

 

 

 

- 밀로라드 파비치
『바람의 안쪽』 中

 

 

 

 

 

 

 

 

​ ​ 

5. The Divine Comedy / Tonight We Fly  -  영국(북아일랜드)

https://youtu.be/cnY9ea_q3nI

(가사)

 

"우리는 오늘밤 하늘을 나는 거야. 집들 위로, 거리와 나무 위로, 강아지 위로,

바람처럼 흘러가는 우릴보면, 그림자에 대고 짖겠지?

오늘 밤 하늘을 날거야...굴뚝 위로...불켜진 건물들 위로...

너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행복해지는게 왜그리 힘든지 궁금해지겠지...

 

언덕을 지나서 멀리로..우리는 오늘밤 하늘을 나는거야.

산을 지나고 해변과 바다를 지나서 우리가 알고있던 사람들과

지금 알고있는 이들과 아직 만나지 않은 이들을 지나서...

그리고 우리가 죽게 되면 실망하게 될까? 슬퍼하게 될까?

만약 천국이 없다면 우린 무엇을 잃어버리고 산 걸까?

우리가 사는 이 삶이 최고라면 어떻게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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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6 2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컴 상태가 말이 아니다. 동영상을 제대로 올릴 수 없다. 글 모양새가 좀 이상하다고 말할 사람들에게 내 표정은 안 보일테니 다행일까. 이 글은 집에서 수정할 수가 없다. 고치려고 클릭하는 순간 화면이 하얗게 되어버린다. 백색의 공포 뒤 까매지는 과정은 나를 닮았기도 해서, 다시 도전하고 거듭 거부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가끔 사무실에서 글을 고쳤다. 당분간은 거기서도 고칠 수 없다. 며칠 전부터 인터넷이 끊겨 다른 사무실 와이파이를 빌려써야 했다. 빌려준다고 생각도 안하고 있을 텐데 훔친 걸까. 자물쇠로 잠겨있는 무수한 와이파이들. 그는 그런 방어가 귀찮았을 뿐이었겠지만 나는 고마웠다. 태국은 남의 와이파이 함부로 쓰면 벌금이라며? 하여간 나는 창가에 붙어서서 찡그리며 빌려쓰는 거라 생각하며 와이파이를 훔쳐썼다. 팟캐스트는 온통 세상의 죄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비투스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는 그 시간만큼 차이가 있다. 우리의 도덕관념과 이성은 늘 흔들렸다. 개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전략성. 선과 정의 사이, 관념과 현실 사이.

10월엔 이 사무실도 문을 닫을 것이다. 우리는 웃으며 밥을 먹으며, 그렇게 통보하고 통보받았다. 가난한 이들의 이런 대화는 흔한 것이라 서로 놀랍지 않았다. 익숙한 씁쓸함. 사람의 궁핍은 왜 이런 식으로 웃길까. 마치 그래야 한다는 듯이!

노동에 관해, 자본에 관해, 인식에 관해, 기원에 관해 더 많은 글을 읽으면 이 문제는 나아질까. 나는 내내 가난했지만 그게 뭐! 라고 말하는 다소 산만한 주의자였고, 읽었고, 생각했다. 두려운 것은 과정과 결과에 관해 진정 숙고하고 있는 것일까, 늘 의심스럽다.

상관없이 무엇이든 계속 임박해오고 있다....

컴이 고장나도 책 살 방도는 많지. 휴대폰, 타블렛. 오늘도 4권이나 샀지.
오, 빈틈없이 사물들이 둘러싸네. 마치 관처럼. 하나하나의 결정처럼.

2015-05-17 0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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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7 03: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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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7 05: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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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7 05: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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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7 0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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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5-2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자네가 그에게 동전 한 닢을 주면 면도를 해줄 테고 만약 그에게 동전 두 닢을 준다면 면도를 하는 동안 앞날을 봐 줄 걸세. 하지만 조심하게나. 그는 면도하는 것보다 더 앞날을 잘 보니 말일세.˝
크흡~!!^^ 역시나 멋진 문장인 아닌가..그럽니다. 위태한 면도날보다..앞날(면도날의 앞날..)을 이중으로 읽으면서
기쁜 난,
sbs [미래를 봅니다]슬로건을 내 거는 방송사의 앞날을 살짝 그려보고 있었다..고

AgalmA 2015-05-20 16:49   좋아요 0 | URL
ㅋㅋ 면도날 앞날... 그장소님 엉뚱한 상상의 환유들은 저랑 참 비슷하다니까요.
sbs는 그나마 뉴스만 봤는데, 요즘은 jtbc 뉴스로 가버려서 제가 sbs 앞날을 참 어둡게하는 1인인지도요. 나 없다고 뭐 아쉬워하겠는가 싶지만ㅎ... 어, 이거 북플 속 우리 심정 같기도 합니다? 허허;

[그장소] 2015-05-22 17:32   좋아요 0 | URL
내일을 봅니다..였던가? 암튼요!^^
점술이나..앞날이나 ,,날카로운 면이 있어야..하는건..같은데.
이게 참 줏대가 일방적이라서...방송이 편파적이라는 거이...ㅎㅎㅎ
하긴 8월에 물가에 가지마..하는거나~그쵸?
아,글구 시청자 잃어서 스브스의 앞날이 어두운건 그들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셈이라고..
jtbc로 재취업선언..^^ (그치만 방송은 반만 믿는다는 족속인 지라..저는)
뉴스도 드라마도 모두 허구의 세계에 담겨있다 생각해요.
진실이 죽었잖아요..(돌아가신 분을 위해 묵념.)
 

 

 

 

 

 

 

 

 

 

 

 

 

   Maddie Ziegler & Sia

 

 

 

 

§

아역 배우 매디 지글러(Maddie Ziegler)의 춤에서,

오래전 영화 <플래시댄스>의 배우인 제니퍼 빌즈의 인상적인 모습이 연상됐다.

 

물론 제니퍼 빌즈는 어린이가 아니었다.

이 영화의 관음증적 표현방식은 여기선 차치하고,

이 영화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 볼 점은 여성노동자가 무용수가 되기 위해 현실 속 편견과 싸워나간 집념일 것이다.

 

 

Sia의 뮤직비디오에서 매디 지글러는 Sia의 닮은꼴 어린이로 단순히 출연하고 있는 게 아니다.

Sia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시로 나올 수도 없는 춤을 보여준다. 

거기 오로지 매디 지글러 자신만이 있다.

라이언 헤핑턴의 안무와 Sia의 노래가 들어간 마치 매디 지글러의 뮤직비디오 같다. 

Sia와 매디 지글러가 각각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반면, 

'강남스타일'의 Psy와 닮은꼴 어린이 매치는 코믹 그 이상을 넘지 못 했다는 한계점과 차이가 있다.  

어쩌면 ​Sia쪽이 Psy쪽을 더 보완해서 나온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두 영상에서 질적 차이를 느끼는 것은 나만이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아쉽다.​

  국내 대중문화에서 아이디어와 예술성이 상호 보족적인 걸 보는 건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업그레이드는 미비하고 패러디만 난무하는.

 

예술의 정신은 없고 욕구들만 들끓는.​ 

 

Psy 뮤직비디오 유머와 시대조롱을 내가 홀대하는 걸까.

 

어쨌거나 이것은 내 시각이고 잣대라는 걸 인정한다.

 

분명하게 밝힐 것은,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할 뿐이고 이래라저래라 종용할 수 없다.

 

누구나 표현하고 누릴 자유가 있다.

 

예술은 문화에 갇히지 않고 문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티켓과 같다.

 

 

 

 

 

 

 

   양옆 아저씨들은 유명한 코미디언들이라는 데 난 잘 모름-,-;)

 

 

 

 

 

 §§

 

당신은 위 사진에서 불쾌함과 유쾌함 어느 쪽을 더 강하게 느끼는가.

 

매디 지글러가 성인남성과 선정적인 춤을 추고 있는 뮤직비디오 장면들은 어떤가.

공중파에 나와서 그렇게 춤을 추는 장면들도 YouTube에 다수 있다.

이건 예술이라, 예술적인 패러디라 괜찮은 것인가.

상업적인 부분이라 어쩔 수 없다 라고 말할텐가.

 

외국사례이고 그들의 정서이니 존중한다 라고 말할텐가.

혹은 롤리타 컴플렉스를 들고 와 병으로 진단할 텐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10살 시인 김○영 본인이 직접 쓴 시들의 예술성은 누구의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인가.​

 

김○영의 시는 흉내를 낸 것인가. 누구의 지시를 받은 것인가. 어떤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정말 그 정도인가.

 

비난하는 사람들이 보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제니퍼 빌즈가 예일대 영문학 석사 학위자라는 걸 안다면,

 

당신은 혹 <플래시댄스>와 그 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지.

 

김○영 시인이 하버드대 최연소 학생쯤 되었다면 당신의 잣대는 어떠했을지.

 

이건 너무 멀리 나간 걸까.

 

그렇다면 김○영 시에 대해 말하는 안전성은 누구의 안전을 위해서인가.

 

공공성을 내세우지만 자신의 주장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이 공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철저한 배척과 짓밟음은 아니었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과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편협한가를 짚어볼 계기는 되었는지.

 

자신이 원하는 자유라는 게, 얼마나 타인 지배적이고 자기 옹호적인지 생각해보는 계기는 되었는지...

 

 

 

 

 

 

 

 

ㅡ 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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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5-1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 무식쟁이인 제가 봐도 이것 멋진 작품이네요. 그런데 잘못 베끼거나 무작정 따라하면 퇴폐 외설이 나오겠는데요 ㅋ

AgalmA 2015-05-12 15:09   좋아요 0 | URL
싸이 때처럼 따라하기 영상 꽤 되더군요ㅎ 국내에서도 알게 모르게 따라하고 있고...

CREBBP 2015-05-12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 사건은. 책을 다 걷어들이기로 했다죠.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보수가 득세하니 여러가지 한다는

AgalmA 2015-05-12 15:48   좋아요 0 | URL
예술은 좀 자유롭게 냅두고, 나라 정치권력 자유 방임이나 좀 더 신경을 쓸 일이지 합니다;

Conatus 2015-05-12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술을 자유롭게 두지않는것은 예술속에 득세하고 있는 세력을 전복시킬 무언가가 있기때문이겠죠

AgalmA 2015-05-12 16:29   좋아요 1 | URL
네, 정확한 말씀^^
어떤 세력이든 누르려고 하는만큼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 보이는 법이니까요.

네오 2015-05-12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샤이아 라보프는 님포매니악이후 예술적이네요 ㅋ

AgalmA 2015-05-12 20:53   좋아요 0 | URL
저도 딱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중ㅎ 생활의 발견 이후 김상경을 다시 보게 된 것 같달까요ㅎ; 김상경의 예술성은 왜 안 생기는지...흐음...

cyrus 2015-05-12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덕에 위배되는 내용이라는 근거로 예술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인 것 같아요. 지금은 내용이 잔인하다고 해서 예술이 아니라고 폄하하지만, 몇 십 년 뒤에 이게 어떻게 될지 몰라요. 예술사를 되짚어보면 쓰레기로 무시 받았던 것들이 지금은 예술로 인정받고 있으니까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출간 당시 시 몇 편은 삭제되고 말았어요. 사드의 작품은 수백 년 동안 잊혀졌다가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이를 분석하는 연구자들이 많아졌어요. 하일성 위원의 명언처럼 야구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예술 몰라요, 인생 몰라요.

AgalmA 2015-05-14 03:15   좋아요 0 | URL
뻑 하면 금서에, 지금은 숭배되는 <보바리부인>도 재판까지 갔잖습니까. 여전히 문학은 선정성, 폭력성 문제로 시끄럽죠. 거장이거나 말거나.
여긴 마광수- 장정일 시대와 별반 다른 거 같지 않으니 얼마나 더 기다려야 나아질런지....
억울할텐데 소송까지도 안 간 거 보면 어린 시인에게 더 상처될까봐 그런 거 같은데, 검색어에도 안 나오게 조치를 한 거 같아서 저도 본명도 가리고 시도 안 가져 왔어요.
진짜 문제를 바꿀 생각을 하는 공론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인간 세계 터부 참 끝없는 딜레마...

오쌩 2015-05-13 0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시라는 틀 안에서 정서에 맞게 쓰고 말해야된다는것도 웃긴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어릴적 읽었던 시들 대부분이 너무 유치하고 작위적이었어요.

AgalmA 2015-05-14 00:56   좋아요 0 | URL
이런 이야기 끝에는 항상 교육의 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네요^^;
남자아이는 파랑, 여자아이는 분홍 그건 언제부터 그렇게 경향이 되었던 건지 참 궁금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순수성은 정말 순수성일까 고민이 많습니다...

오쌩 2015-05-13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싸이를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저 코믹하고 패러디하기 좋을뿐,싸구려 양아 허세질 가득한 뮤비로 밖에 안보여요. 여자몸만 상품화하고 부각시키는게 예술하고는 멀어보이고요.
뮤비잘봤어요 ㅎ 엘라스틱 헐트 마지막 장면 계속 머리에 남네요.
철장에서 남자를 계속 꺼내려고 애쓰는게..많은 의미를 생각하게 하네요 ㅎ

AgalmA 2015-05-14 01:00   좋아요 0 | URL
예술이 더높은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하는 것도 어쩌면 편향일 거 같아 모든 게 공존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과 추의 미학이 공존하듯이. 하지만 대중이 그걸 추앙한다고 해서 무슨 권리나 권력, 우월감을 가진 듯이 군다면 저는 그것에는 항의할 겁니다. 예술의 반항심과 이상적 고취 상태는 감안하지만, 자신의 예술 속에서 속물정치가가 되는 연예인들 있지요. 종종 쇼맨쉽과 정체성 사이에서 길을 잃은 배우들처럼....여기선 싸이를 그렇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아직까지는.
마지막 장면 참 애닯게도 찍었죠? 마지막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작품의 전체를 좌우하기 마련인데, 그 처리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철창 간격이 넓어서 샤이아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겠구만...연기하느라 애쓴다...하는 현실적 대입을 밀어넣으며 감상하느라 애먹었어요ㅎ

에이바 2015-05-15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의 내용보다도 함께 실린 일러스트와 영어번역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성숙했다 하지만, 그 시기의 감성은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텍스트 자체로도 충분히 폭력적인데요. 성인인 제가 봐도, 함께 실린 일러스트는 좀 너무하다 싶더군요. 시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일러스트로 고정되는 폭력적인 이미지 때문에 내 아이에게 읽히고 싶지 않습니다. 게다가 영어번역이라... 이 시집의 타겟은 동시를 읽는 어린이가 아니라, 구매력이 있는 학부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잔혹동화들도 일러스트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죠. 그래서 더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요, 그게 효과적인 일러스트고 예술이 아닐까요.

시인의 다른 시들을 보면 재능이 있는 것 같더군요. 어린이가 썼지만,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집을 출판하는게 낫지 않았나 합니다. 그랬다면 이렇게 난리도 아니었을테고, 제대로 평가받았을 텐데요. 아마 팬들도 생겼을 겁니다. 이번 사건으로 그 시인의 이름은 확실히 알려졌군요.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지켜봐야 알겠습니다만... 이미 찍어낸 책을 전량 회수해서 파쇄하는 것도 웃기더군요. 데스크에선 충분히 예상한 수순일텐데요, 촌극이 따로 없습니다. 시 내용처럼 폭력적인 감정을 느낀 또래 어린이들도 있을 겁니다만, 그걸 텍스트로 표현하고 출판하지도 않지요. 이 사건의 문제는 복합적입니다. 시 내용, 시인의 나이, `추천` 동시, 일러스트, `학원`으로 상징되는 강제와 폭력... 내 아이의 재능을 인정받고자 하는 부모의 욕심과 출판사의 상업성까지요. 표현의 자유와 예술로 방어한 건 그들이었고요, 논란이 거세지자 시집을 거둬들였죠. 진실로 비겁해 보입니다. 모든 책임과 비난은 시인이 지는군요. 창작했다는 이유로...

예술이라는 건 넓게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을 바라보는 시야를 좁히게 만든 출판사의 선택이 원망스럽네요.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지만, 정말 `예술`이라 생각했다면 이런 방식이 아니었을거란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 제 아이가 그런 시를 썼다고 생각하니, 저라면 학원을 많이 보낸 걸 반성하고 스트레스 지수를 낮춰줬을 것 같은데요. 시집출간은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아마 출간한다 해도 적당히 골라냈겠죠... 솔직히 문제된 시는 사회문제를 담고 있지만 예술성이나 문학성은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몇몇 시들은 좋았지만요. 의외성을 보는 눈이야말로 예술의 시작이라면 전 범인일 따름이군요.

AgalmA 2015-05-14 03:49   좋아요 1 | URL
여러가지 생각해 볼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제 댓글은 참고삼아 비밀글로 올리지 않겠습니다.
김ㅇ영 시집과 관련해 안타까운 점은, 첫 시도들의 미숙함과 현실 난관에서 싸워나갈 고단함에 있을 겁니다. 일러스트 저는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훌륭한 그림동화나 일러스트를 많이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삽화가 그저 보완의 악세사리는 아닐 겁니다. 작품 바로 곁에 있는데, 작품을 해석하는 가장 뛰어난 독자여야지요. (작가분께 죄송하지만) 일러스트의 조잡함으로 문제의 시에 더 큰 화를 부른 거 같습니다. 시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은 은유를 잘 다뤄야 합니다. 일러스트라도 제대로 해줬어도... 그래서 첫 시도들의 총체적 난국이라는 거죠. 모든 것이 어우러지고 있는 매디 지글러와 반대 상황...

항상 창작자와 독자 간에는 거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요. 늘 창작자는 독자에게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보고 이해해 달라 요구하고, 독자는 창작자가 자신들을 위해 써주길 바랍니다. 여기서 독자의 폭도 넓은데, 새로움을 바라는 독자와 `다움`을 요구하는 독자 등 무수한 갈래가 있지요. 거기 통념들이 모인 주류가 시장권을 장악하게 되지요. 출판사, 부모, 시인 모두 이 점을 간과한 셈이라 이렇게 큰 시련을 맞게 된 거고요. 흔히들 착각하기 쉬운데 새롭다고, 파괴적이라고 다 문학성과 예술성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는 점. 외적으로도 그 인정의 상당수는 독자에게 있습니다. 비평가도 어차피 독자고 요즘은 대중의 파워가 더 세졌죠. 그렇기에 너무 뒤늦게 인정받는 예술가들도 있는 것이고요.

제일 아쉬운 점은 그 시가 시로서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게 큽니다.
시인이 아직 어려서이기도 하지만, 그 시가 충분히 문학성을 보여줬다면 상황이 이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독자들이 시인을 대신해서 극렬히 싸울만큼의 작품성이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각자가 느낀 여러 안타까움을 밝힐 뿐.... 저도 그 시에서 예술성, 문학성의 완성도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그렇게 보는 것이지 시인이 그걸 문제시하려고 썼을까, 제 견해로는 정제되지 못한 감정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는 대단해서 위협감을 느낀 이들의 공분을 산 걸 겁니다. 다른 시를 충분히 보지는 못했지만 김ㅇ영이 그런 걸 겉으로 당당히 말할 줄 아는 자세, 저는 그것에 시인으로서, 예술가로서의 자세를 보았고 앞으로 발전해 나가주길 기원합니다.
사태가 이렇게 커져서 창작의욕에 큰 영향이 안가길 바랍니다. 어린 시인이 맞기엔 참 큰 충격이었을텐데...

에이바 2015-05-13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디 지글러 처음 봤을 땐 너무 충격이어서요, Sia가 매디인 줄 알았어요;; 이 가수 체형이 어린이같네;; 하면서요. 춤이 기괴하면서도 광기가 있더군요. 제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약간은 <스타킹>에 나와 섹시 댄스를 추는 아이들을 볼 때와 같은... 꼬집어 말할 순 없는 불편함이 있더군요. 근데 다시 보니 매디가 Sia의 페르소나 같더군요. 예술과 선정을 가로지르는 선은, 어떤 점에서는 명확하다고 봅니다...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인정은 되더라고요. 아래 뮤비에서 샤이아의 기에 조금도 눌리지 않은 매디를 보며 또 한 번 놀랍니다. 무서운 아이...! 이런게 앙팡 테리블인가요...!

AgalmA 2015-05-14 03:30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엔 좀 징그러웠달까요ㅎ; 북한 어린이들의 현란한 춤동작 볼 때처럼 너무 자연스럽지 않아 보여서...그런데 여러번, 다른 작품들을 통해 보면서 아, 이것은 매디 지글러 본인이구나, 이토록 표현해내고 싶은 기질이 있는 거구나 에이바님처럼 인정, 동의하게 되었죠. 몸은 끼로서 충분히 조정할 수 있지만 얼굴 표정과 분위기 그것은 그렇게 쉽게 만들 수는 없는 거잖아요...경험이 아직 별로 없는 아이들은 더 어렵죠. 이거 제 착각과 호의 이려나요? 하여간 매디 지글러는 훌륭한 배우가 될 거 같아요. 레옹의 나탈리 포트만 같은...기대되는 인물이죠.
제가 매디 지글러와 김ㅇ영을 연결해 말하고 싶었던 건, 표현의 장을 열어주고 안 열어주고에 따라서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자는 거였습니다. 이 시를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아이들과 얘기를 하는 게 더 솔직하고 열린 처리였을 지도요...하지만 또 닫혔죠...

에이바 2015-05-1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자꾸 비밀글이 걸리죠? 북플에선 확인이 안되는데요ㅠㅠ 안드로이드 폰이라 그런가요.. 야심한 시각에 이렇게 긴 댓글을 받아 감동했습니다... 아갈마님 글을 보며 느끼는 거지만 언제나 큰 틀에서 보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사고의 확장을 꾀하시는 모습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로 들어와 비밀글을 풀었습니다;;; 종종 이러나봐요. 제 댓글 ㅠㅠ 북플은 자물쇠 표시를 만들라!!! ㅠㅠㅠㅠ 앞으로 유의해야겠습니다.)

AgalmA 2015-05-15 18:40   좋아요 0 | URL
ㅎ 이 글도, 위의 글도 아직 비밀글요;; 북플 수정시 닉넴 앞의 자물쇠 아이콘 풀려 있는지 확인 후 글수정으로 올려보세요.
웹에서 비밀글 체크를 풀어주고 올리면 확실하게 확인되시겠지만^^

전 좋은 `나`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냉소와 비판으로 세상을 향해 삿대질하기보다, 냉철하게 보고 꼭 필요한 말을 하는... 너무 욕심이려나;;...역량 역시 늘 딸리고ㅜ;
끊임없이 자신을 고치고 나아지려고 하는 우리는 모두 그런 선상이겠죠. 에이바님의 말씀 들으며 많은 생각 정리할 수 있었어요. 이런 대화 속에서 무언가 얻게 되고, 나누게 되는 거겠죠. 절대 저 혼자서 사고의 확장을 할 수 없었을 거란 말씀^^
위 글에서 학부모 입장, 아이들 정서에 미치는 영향 또한 더 살폈어야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이 문젠 공부도 필요할 거 같고 좀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따끔한 지적도 귀기울여 듣겠으니 담에도 좋은 말씀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