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좀 바빠서 [오늘의 음악] 소개를 못 했네요-,-)....아무도 안 기다리려나요ㅎ;

 

 

 

요즘은 한국 여성 보컬 맘에 드는 색깔이 많아 좋다. 어디고 그렇지만 음악 판도 참 부대낄 텐데 힘내라구~

잠 없는 꿈도 싫지만 꿈 없는 잠도 서운하다. 영감 없는 잠에서 깨어날 땐 꿈에서까지 막 살다 온 기분.

♪ Richard Parkers "삐에로"

motte "깊은 잠"

ALLS  "Quiet Place"

SOMA "Somablu"

 

 

Now, Now "Az" :상큼한 pop. 보컬 음색도 좋고 색깔 있어 좋다.

 

Lowrie "King" : 뭐야 뭐야 넘 멋지잖아! 관심 뮤지션 등록!

 

FirstAid "Holiday" : 한국에 이토록 고급진 일렉트로닉 뮤지션도 나오다니 기쁘다~ 스포츠 국위 선양보다 나는 음악신에서 이런 성과가 나오는 게 더 기쁘다!

 

veins "What Kills Me" : Adoy도 그렇고 잘 됐으면 좋겠는 인디 밴드♥ 2012년 헬로루키, 대한민국 라이브 페스티벌 금상도 받았다니 이미 잘 되고 있는 건가; 첫 정규앨범 나오면 대박 스멜이~ 라이브 보고 싶은 밴드!



 

● 비 오는 날 선곡

Tash Sultana [Salvation] (2018, indie, single, 여성 보컬)
이 가수 특히 이 곡의 보컬을 듣다 보면 어쩐지 조지 마이클이 생각난다.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 정규 음반이 없다니!

KAYTRANADA [Kaytra To Do] (2013, 랩/힙합, 정규)
이런 그루브한 힙합류 좋더라~

Silex [Midnight Symphony] (2018, indie, single)
드림팝 느낌을 이토록 멋지게 구현하는 한국 뮤지션이 있었던가. Byul 생각도 스쳐가지만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 뮤지션의 빛나는 가치인지를 알리는 방증이지. 키치적이면서도 이런 스타일 음반을 일찍부터 선보였던 Sufjan Stevens 생각도 잠시 났다. 명반으로 꼽히는 [Illinois](2005)는 필청 음반 비 오는 날 들으니 뽀송뽀송하구만~ 최근 한국에서 입소문 인기였던 퀴어 영화 <Call Me By Your Name>에 그의 곡이 많이 들어갔다. 영화 음악 좋다는 평도 자자했는데 역시 이런 뮤지션의 곡을 넣을 정도면.

비도 오고, 차가 다 식었네....

 

 

 

 

 

 

 

 

 

 

 

● 바다 구경

 

지난번 통영 여행이 우중 고생이었기에 다시 한 번 도전~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으나 더웠다.
오랜만에 순방향 좌석의 기차를 탔다.

 

안녕, 반짝반짝, 바다, 사람... 모든 것이 다.
숙소에서 시원한 에어컨 속에 음악 가득 띵가띵가 휴식 후 밖으로....

 

 

 

 

 

허름한 밥 & 술집에 낙서가 명언!

 

 

 

 

 일찍 일어나 바다 구경하고 반신욕하며 시집 읽기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세상에서 내가 본 것은 아픈 사람들과 아프지 않은 사람들,
살아있는 것들의 끝없는 괴로움과
죽은 것들의 단단한 침묵들,
새벽하늘에 떠가는 회색의 찢긴 구름 몇 장,
공복과 쓰린 위,
어느 날 찾아오는 죽음뿐이다.

말하라 붕붕거리는 추억이여.
왜 어떤 여자는 웃고,
어떤 여자는 울고 있는가.
왜 햇빛은 그렇게도 쏟아져내리고
흰 길 위의 검은 개는 어슬렁거리고  있는가.
구두 뒷굽은 왜 빨리 닳는가.
아무 말도 않고 끊는 전화는 왜 자주 걸려오는가.
왜 늙은 사람들은 배드민턴을 치고
공원의 비둘기떼들은 한꺼번에 공중으로 날아오르는가.

 

장석주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1991)

 

 

 


 

「삼십 세 」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 우리 철판깔았네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1981)

 

 

책에 파묻혀 지내는 것도 좋지만 좀 더 여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여행지에서도 돌아다니기보다 책을 읽는 중생이잖아ㅎㄱㅎ);;

일상도 인생에서는 여행이지만 짧은 인생, 반짝반짝할 여행 많이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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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0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3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7-03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저는 바닷가를 보면 뛰어드는 편이라, 위에서 바라보는 해변가가 아름다움을 미처 몰랐네요.ㅋ 그렇지만, 앞으로도 바닷가에서 놀듯 합니다. AglamA님의 음악을 기다리는 청취자로부터.

AgalmA 2018-07-03 08:04   좋아요 1 | URL
바닷가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날씨 변화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듯^^
곧 휴가가실 거 아녜요. 바다 가시는 겁니까? 연의랑 바닷가 간 사진 많이 찍어 보여 주세요~ 연의 무슨 패션일라나 벌써부터 궁금!
ㅡ연의 팬클럽 1인으로부터ㅎ

겨울호랑이 2018-07-03 08:10   좋아요 1 | URL
이번 여름은 일 때문에 못갈 것 같고, 가을에 움직일 것 같네요. 그 전에는 워터파크나 가야겠어요... 아마도 연의 튜브 끌고 같이 바다 괴물을 사냥하러 갈 것 같네요..ㅋㅋ

AgalmA 2018-07-03 08:14   좋아요 1 | URL
바다 괴물ㅋ 두 사람 지쳐 자는 모습이 벌써부터 연상되는ㅎㅎ 애들 에너지는 정말이지bb

겨울호랑이 2018-07-03 08:23   좋아요 1 | URL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둘이 잠잘 때 소리도 작품이라고 하네요.ㅋ 아빠 고래와 아기 고래라나요. 저도 못 들어봐 뭐라 평하기는 어렵지만요.ㅋㅋ

AgalmA 2018-07-03 08:25   좋아요 1 | URL
괴물 부녀라 괴물을 잡으시겠다는 거군요ㅋ 얌전하게 생기신 분들이ㅋㅋ 안 그랬음 큰일이지....후후

2018-07-03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3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7-03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여행이셨네요, 부럽습니다~^^
Tash Sultana를 이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완전 반가운 걸요.
jungle이라는 곡도 재밌던데요.
그나저나 올여름은 락페 안 가시는 겁니까?
궁금했는데 관련 페이퍼가 없으셔서~.

AgalmA 2018-07-03 15:38   좋아요 1 | URL
tash 좋죠^^ 다른 곡도 다 특색있더군요~
요즘 락페 라인업이 영 안 땡겨서 막바지에 기분이 부흥하면 휙 갈지도요ㅎ;
 
[eBook] 미성년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8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상룡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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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이자 국제 정치학자로 널리 알려진 E.H. 카는 초기에 러시아사 연구에 몰두했고 첫 저서로 도스또예프스끼 평전(1931)을 썼다. 그가 도스또예프스끼의 특색 중 하나로 꼽은 이런 말도 눈에 띈다

“똘스또이의 소설이 독자에게 주는 지배적인 인상은 <공간감>이라고 최근의 한 비평가는 말한 바 있다. 도스또예프스끼 소설의 효과는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닫힌 느낌을 주는 데 있다. 자연의 넓은 시야에 결코 눈을 두지 않는 그의 관찰력은 무한한 인간의 기상caprice에로 더욱 응축되어 간다.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에게는 일종의 사색적 거리감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생활에서도 작품에서도 대도시의 협소한 구속적인 긴장의 희생자였던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이러한 거리감이 전혀 없다.”

도스또예프스끼 소설을 조금 읽어본 사람이라면 카의 이 날카로운 분석에 이마 탁~ 탄복하리라. 도스또예프스끼 소설 특히 장편 소설을 읽을 때 특히 폐쇄적인 답답함을 내내 느끼게 되는데, 인물들은 도시 속에 갇힌 쥐 같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도스또예프스끼에게 공간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늘 사건이 초점이다. 소설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곳곳의 실제 사건들, 러시아 귀족계급의 괴리와 빈민들의 삶, 각 인물들이 추구하는 사상과 이념 그리고 내면이 그의 소설의 주요 뼈대다미성년경우 다른 소설에 비해 답답한 느낌이 더욱 심한데,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미성년인 아르까지 마까로비치 돌고루끼가 자신의 이념과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수기 형식으로 말하고 있어 더 그렇다. 귀족 아버지(베르실로프) 하녀 어머니(소피야) 사이에서 태어나 버림받다시피 자라온 아르까지는 로스차일드 같은 부유한 저명인사나 사교계의 삶을 꿈꾸면서도 모든 걸 버리고 은둔하는 삶을 꿈꾸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서사 구조가 인물의 내면처럼 요동치며 파편적으로 펼쳐지다 보니 서사 전개에 집중해서 읽는 독자나 도스또예프스끼 여타 소설에서 느꼈던 고도의 몰입감을 기대하고 읽는 독자라면 이 소설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해설을 보니 내 반응만 유독 그런 게 아니었다. 평론계에서도 논란이 많은 작품. 1권까지는 그럭저럭 읽었는데 2권부터는 중반까지 고역이었다.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무슨 결론을 도출하려 가고 있는지 후반까지 전혀 짐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몰락이 기다리려나 하며 총총 따라갈 뿐이었다.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은 스릴러와 탐정소설 같은 장치인 편지에 있다. 노공작 니꼴라이 이바노비치 소꼴스끼의 딸 까쨔를 부자(베르실로프와 아르까지) 동시에 흠모하고 있다. 상황은 묘하게 꼬여 있는데 노공작은 엄청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 베르실로프의 딸 안나와 결혼하려는 와중이다. 아르까지는 이복 누니인 안나에게도 연정을 품고 있다. 이쯤되면 막장 드라마-_- 재혼을 생각중인 까쨔가 아버지를 정신병자로 매도한 편지를 썼던 소문이 퍼지며 편지가 상황을 뒤바꿀 키워드가 된다. 이것을 누가 가지며 폭로하느냐 마느냐가 모든 소동의 핵심으로 작동한다. 유로지비 면모와 유럽 견문 등으로 스스로 확립한 이념으로 매력을 발산하던 베르실로프가 까쨔와 내연 관계였고 그녀를 죽일 생각까지 품게 되는 절정부까지 도달하니 그 역시도 정욕과 파토스 속에 양가적인 미성년 모습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게 드러난다. 한편 문제의 편지를 가지고 있던 아르까지는 이를 이용한 사교계 진출과 모종의 복수도 꿈꿔보고, 베르실로프가 어머니에게 돌아가길 바라는 복잡한 심경 속에 선의로 행동하려 하지만 그의 치기가 뒤통수를 치고 만다. 도스또예프스끼에게서 자주 느낄 수 있었던 셰익스피어적인 플롯인데, 일련의 헛소동은 평탄히 마무리된다. 도스또예프스끼 소설 중 가장 밝은 결말 아닌가 싶다. 그의 소설에서 드문 성장소설이자 그의 소설 변천과 집합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도스또예프스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개 고독하면서도 자신의 공상과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 관 같은 방이나 빈곤 속에서 자신의 기개를 지키려 하는 고집, 거미 같은 이미지에 자신을 대입하는 것은 아르까지뿐 아니라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 『백치』의 이뽈리뜨 쩨렌찌예프,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주인공 등등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 모습은 도스또예프스끼 자화상이기도 하다.

“외부와 내부라는 것은 균형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 외부로부터의 인상 없이는 내부가 우위를 점한다는 게 위태롭습니다. 그러므로 신경과 상상력이 한 사람의 구성 요소 안에서 매우 큰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도스또예프스키가 형에게 보낸 편지 중, E.H. 카,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저 말은 이 소설에서 베르실로프(안드레이 뻬뜨로비치) 아르까지에게 한 말, 세묘노비치가 아르까지에게 쓴 편지, 그리고 세묘노비치의 입을 빌려 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고자한 시대 통찰과 상통한다
     

“저는 안드레이 뻬뜨로비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 같은 인간, 당신처럼 〈고독한〉 젊은이에 대해서는 솔직히 불안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당신과 같은 정신적 특성을 지닌 젊은이는 적지 않게 있습니다. 또 그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적 재능은 사실 언제나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뻗어 나갈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한 특성은 몰찰린 같은 아주 비굴한 성향으로가 아니면,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자 하는 감춰진 욕망 쪽으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자 하는 욕망은, 어쩌면 무엇보다도 먼저, 조화로운 질서와 〈점잖은 기품〉(당신의 용어를 빌려 말합니다)을 지향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감춰진 갈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젊음이란 이미 그것이 지니고 있는 열정만으로도 순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젊음의 열정이 뿜어내는 폭발적인 광기에는 어쩌면 바로 조화로운 질서에 대한 갈망과 진리를 향한 탐구 정신이 내포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많지 않은 수의 동시대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그런 것을 어떻게 믿게 되었는지도 모를 그런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사안들을 접하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조화와 진리를 겨우 발견하게 되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겠습니까! 한 가지 덧붙인다면 과거에는, 그렇다고 아주 오래전은 아니고 약 한 세대쯤 전에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동정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그들은 거의 언제나 결과적으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 계층과 아주 성공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고, 그것과 융합하여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그들이 자신들의 활동의 첫 무대에서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무질서한 점이나 불안함, 그리고 가정 환경에서도 좋은 바탕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또 훌륭한 가문적 전통과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교양의 배경이 없다는 점을 인식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그들 스스로가 직접 그것을 추구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차차 그러한 것에 적응하고 그 가치를 존중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약간 다릅니다. 그들이 나중에 융합할 수 있는 대상이 지금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세묘노비치)


 어쩐지 지금의 불평등한 혼란 시국, 흙수저의 어려움에 처한 젊은 세대와도 맥이 닿는 말이지 않은가. 이 소설이 똘스또이 3부작 유년 시대, 소년 시대, 청년 시대를 의식하며 구상한 것이라고도 하나 이 성장소설에는 도스또예프스끼의 개인적 트라우마, 딜레마도 담겨 있지 않은가 짐작한다. 도박병이나 여러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성년적인 모습이 그의 현실적 페르소나로 읽히는 여지가 많다. 그리고 또 다른 캐릭터가 있다. 유럽의 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러시아 민족주의, 무신론자와 고행 수련자(유로지비) 면모가 결합된 베르실로프 캐릭터는 미성년』 이전 작품인  『백치, 악령』, 이후 작품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도 계속 등장하는 설정이다. 이 캐릭터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인간 이상형의 좌절된 혹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내부 결함이 내재된 인간의 본모습으로 본 게 아닌가 싶다.
도스또예프스끼는 백치최종 원고 작업일 때 내 소설의 주요 생각은 지극히 완전한 사람을 그리는 데 있다 말했다. 백치 미쉬낀을 통해 예수적인 인간형을 이상적으로 제시했듯이미성년에서도 베르실로프를 통해 도스또예프스끼는 재차 실천적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내가 도덕주의적 헌신을 추구하는 이상, 내 자신의 사상에 충실히 매진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의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실제로 나로 인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평생 동안 단 한 사람이라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지.
…(중략)…
다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나름대로 가장 숭고한 차원의 교양을 얻었다는 사람이 자신의 심오한 사상을 추구하는 사이에, 때로 완전히 현실적 문제에서 멀어져서 아주 폐쇄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냉담한 인간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아주 어리석은 사람으로 되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이지. 그것도 처음에는 실생활에서만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사상적 측면에서까지도 그런 어리석은 천치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생활에도 진지하게 임해 단 한 사람이라도 정말 행복하게 만들 만큼 노력을 기울여야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고 본인 자신도 거듭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게 되겠지. 물론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설득력이 약하겠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다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습관이 된다면 아마도 무언가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게다. 그리고 나 자신이 그것을 직접 체험해 보았고. 물론 처음에는 농담조로 시작했던 일이지만, 이 새로운 계율에 대한 사상을 발전시켜 가면서 비로소 나는 가슴속에 깃들어 있던 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점차 견고해져 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어.”(베르실로프)

그런 대상으로 소피야를 떠올리고 데려오기까지 한 베르실로프는 우연히 만난 까쨔에게 숙명을 느끼고 정욕에 사로잡힌다. 이건 도스토예프스키의 내연 관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이상과 현실, 내면과 외면의 조화는 얼마나 어려운가. 사랑 하나로도 어려운데, 음모와 돈과 명예의 탐욕까지 끼어들면 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해진다.   

“고독 속에 스스로를 닫아 두지 마시오. 자신을 자연 앞에 내세워요. 조금이라도 더 외부 세계로, 외적인 사물로 몸을 내세우세요.”(도스또예프스키가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 중, E.H. 카,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도스또예프스끼를 읽으면 우리는 죄인 아닌 자 없고 백치이고 미성년이라는 메시지를 늘 읽게 된다. 고독을 사랑하면서도 단 한 사람을 진정 사랑하기도 힘든 이 삶, 스스로의 부조화를 곱씹으며 이제 도스또예프스끼 5대 장편 소설의 마지막 관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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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7-03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 완독을 응원하면서, 한편 부럽습니다. ^^

AgalmA 2018-07-03 02:03   좋아요 1 | URL
처음에 기세좋게 시작했다가 영 진도를 못 빼고 있었죠^^; 이북 덕을 좀 봤습니다ㅎ 목표하던 거 하나 끝낼 수 있어서 소확행이려나요^^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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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을 쓴 서영채 평론가는 이 책을 두고 “지적인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것을 통한 공감력이 포스트 계몽 시대에 유효한 새로운 계몽의 양식일 수 있으리라”고 마무리했다. 최은영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대번에 안다. 최은영 작품이 보여주는 따뜻한 유대의 정서와 온기가 지금 문학에서 간과되거나 희박한 것들이라는 암시다. 우리는 더 참신함, 독창성, 사회 비판적인 책임 의식까지 지닌 전투적이며 영리한 소설을 계속 요구해왔다. 이건 한국 문학의 경향만도 아니다. 어디 어디 문학상을 받은 소설을 선전할 때 저 요구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니까 말이다. 최은영 작품들은 자체의 의미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위치에 있어서 지금, 바로 지금 더 의미 있다. 최은영 작품을 읽기 전까지 이 중요한 실종을 잊고 있었다.    
    

 

 

이 소설집을 읽기 전에 도스또예프스키 『백치』를 읽었다. 두 작품을 나란히 읽은 것은 아프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내가 받은 인상을 잘 설명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역부족을 느끼며 이 글을 쓴다. 도스또예프스키는 『백치』를 러시아가 아닌 해외에서 구상하고 집필까지 마쳤다. 유물론과 과학적 합리주의, 니힐리즘의 팽배 그러한 서구 유럽의 영향 속에서 혼란스럽고 병들어 있는 러시아와 인간의 회생을 꿈꾸며, 도스또예프스키는 고심 속에 ‘백치’라는 상징적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모두가 너무 쉽게 얕잡아보고 이용하려 들며 비웃지만, 미쉬낀은 가난한 기사이자 돈키호테이고 유로지비이자 러시아적인 그리스도이며 백치라서 모두를 사랑하려 했고 누구라도 마침내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모두가 자기의 이익과 사상을 내세우기 급급할 때 미쉬낀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쪽을 기꺼이 택했다. 모두가 창녀라고 멸시하는 나스따시야의 영혼을 살폈고 결혼으로 구원하고자 했고, 살인자를 사형함으로써 대갚음하는 사회가 되는 것에 분노했고,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에게도 사기를 치는 이에게도 우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누구와도 적도 라이벌도 원수도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과 가장 닮지 않은 로고진의 죄의 현장에서 눈물 흘리며 아파하다가 영영 백치가 되어 버린다. 누구보다 강력한 매력에도 작품에서 가장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백치 미쉬낀의 ‘희생과 환대’의 의미는 이 현실에서도 아직 유효하다.
    
도스또예프스키는 『백치』를 완성하기 두 해 전인 1867년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을 읽고 ‘최근 10년 동안의 세계 문학 작품 중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평한 바 있다. 그래서였을까. 도스또예프스키는 『백치』에서 여성의 인권에 대해 자주 거론하며 주인공 중 하나인 나스따시야가 자주적인 여성의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에 공을 많이 들였다. 하지만 보바리 부인처럼 나스따시야도 자신의 파멸을 자초하고 만다. 한 마디로 요약하기 곤란한 대작들을 이렇게 스케치하는 것은 매우 빈약하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골자는 도스또예프스키가 소설을 쓰던 즈음에서 지금 최은영이 소설을 쓰는 이 시기까지의 흐름을 보려는 것이다. 리얼리즘 문학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하고 반영할 수 있다고 여기며 계몽이나 오락의 수단이 되는 것에 부응했다면, 20세기에 들어서며 과학과 기술의 지나친 영향력, 세계 대전을 목도한 모더니즘 문학은 정치, 사회, 종교, 도덕, 과학 전 분야에 이의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모더니즘 문학의 특징인 주관적 경험과 실존적 개인주의, 예술적 탐구는 필연적 수순이었다고까지 생각된다. 역사에서 필연 운운은 손쉬운 계산법이지만 빈자리를 채우는 과정을 보는 것은 이런 기시감을 일으킨다. 『보바리 부인』도 『백치』도 당시 문학 사조에 국한해 보기 어려운 여러 특징들을 함축하고 있다. 고전이라는 무소불위의 힘 때문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가지는 물음표들이 생동하기 때문이다. 보바리 부인은 물론이고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아직도 우리 주위 인간의 모습이다. 어째서 인간의 행복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토록 어려운가. 왜 백치 미쉬낀은 모두가 필요로 하지만 여전히 누구도 쉽사리 될 수 없는 인간형인가. 그런데 지금, 내 눈에 최은영은 그들의 장점과 시대적 고민들을 계승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최은영 작품에 나타나는 인간의 곤궁한 처지, 하나의 해법이자 종교적이기까지 한 여성적 유대의식, 도스또예프스키가 『백치』를 통해 전달하려던 메시지가 곳곳에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투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진지하고 냉소적인 아이들을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투이의 깊은 속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씬짜오, 씬짜오」, 86쪽)


“곰의 이야기를 들을 때 엄마는 곰이 되어서 곰에게 이야기하는 이모의 모습을 봤다. 곰아, 밥 먹어. 그 말을 하고 엉엉 우는 이모의 모습을 바라봤다. 곰의 마음으로 이모를 바라보면 이모는 세상 누구보다 귀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후로도 죽은 개의 마음으로 이모를 바라보곤 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두를 잃고 나서도 더 잃을 것이 남아 있던 이모의 모습을.
엄마는 이모를 사랑했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100쪽)


““성경은 천국을 언급하지만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죠. 정직하게 말해서 그곳은 지금의 우리로서는 인식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수사가 대답했다.
“인간의 인식이 제한적이라는 것에는 저도 공감해요. 하지만 상상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선 잘 모르겠네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것도 있나요? 상상에 제한이 있나요?” 카로가 다시 물었다.
“글쎄요. 하지만 우리가 어떤 상상을 하든 천국은 그 상상을 뛰어넘는 상태일 겁니다. 천국에는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 천국은 영혼의 상태라고 이야기할 수 있죠.” 수사가 말했다.
(중략)
슬플 때, 불안할 때, 화가 날 때, 누군가가 내 마음을 쥐고 흔들 때, 나는 그 이름들을 그저 간절하게 불렀고,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현실의 고통에서 나를 분리시켜줬다. ‘원시지구’로 시작해서 ‘여러 종류의 발굽이 있는 동물’까지 중얼거리고 나면,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불러준 것 같았다. 그럴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중략)
“그 눈물에는 떠난 이들에 대한 감미로운 애정이 담겨 있었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아무런 조건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생활을 함께했다는 행복. 그 지속될 수도, 반복될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함께 존재했다는 행복. 그 눈물은 고독이 없었던 시간에 대한 애도였다.”
(「한지와 영주」, 179쪽)


“내가 병자도, 선배가 망자도 아니었던 그때, 우리는 아직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때. 우리는 그렇게 이별했다.
(중략)
노래가 끝나고 테이프가 회전하는 소리를 듣다가 정지 버튼을 눌렀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율라가 나를 보며 애써 웃고 있었다. 노래는 끝났고, 우리에게는 선배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다음날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유람선 난간에 기대서 다리와 길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주기로 했다. 그건 율라와 나의 첫 번째 여행이 될 터였다.”
(「먼 곳에서 온 노래」, 210~211쪽)


“딸을 품에 안으면 모든 통증이 누그러졌고 다음날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났다. 세상의 누가 그만큼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밝고 예쁜 얼굴로 한달음에 달려와 품에 안길 것인가.
그 시절은 갔지만 여자는 미카엘라에게서 받은 사랑을 잊지 못했다.”
(「미카엘라」, 221쪽)


아이들에게 아이다움을 때론 변덕스럽게 어른스러움을 강요하고, 어떤 사람에게든 속한 구성원으로서의 소임과 책임을 지우고, 문학뿐 아니라 무엇이든 이래야 한다고 각자의 요구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가 마음 둘 곳도 쉴 곳도 있을 리 만무하다. 누가 무엇이 우리를 어떻게든 해 줄 수 없다는 낙담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찾고 떠돈다. 그런데 여기 어떤 자리가 있다. 외톨이들이 만나서 서로를 치유해나가려는 세계, 언어와 나이와 성별 등 차이가 더 많은 인물들이 서로를 통해 보는 공간이 곧장 독자에게도 마련되는 자리, 할 수 있으면서도 우리가 선뜻하지 못하는 앞으로도 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는 뉘우침과 사과와 용서, 배려 등 많은 정서들의 해변. 그래서 최은영의 작품이 모으고 발산하는 공감의 힘은 글로 이뤄진 이해타산적인 작법과 계산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결코 한자리에 모여 웃지 못하던 할아버지와 엄마와 주인공을 함께 찍은 쇼코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아주 오랜 시간 뒤에 아프게 그 자리를 툭 보여주듯 최은영 작품 속에서 고리들은 미약하지만 강렬한 감동을 준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사라져야 할 것들과 만나서는 안 될 사람과 일이 셀 수없이 많은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곳이 변두리가 아닌 중심으로 빛나는 곳에서 나도 당신도 웃는 모습이면 좋겠다. 그런 영혼의 상태일 땐 울어도 웃는 모습일 것이다. 하나하나 소중하게 이름 부르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소설 속에서조차 어렵긴 하지만 우리는 죽을지언정 찾는 걸 포기한 적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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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6-14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영채 평론가의 저 말 와닿네요. 확실히 최은영 작가는 정서적인 것을 건드리는 데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AgalmA 2018-06-16 10:16   좋아요 0 | URL
단점이나 한계도 보이지만 장점이 그걸 상쇄할만큼 강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곧 신간 나온다고 들었는데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있을지 기대됩니다. 최근 <악스트>에 실린 단편 「상우」도 꽤 괜찮게 읽었거든요. 보통의 얘기인데도 잔상을 많이 남기는 매력의 작가인 건 분명해요.

겨울호랑이 2018-06-14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가면서 남들이 세운 벽, 우리가 만든 벽으로 인해 우리가 만나는 세계는 점점 좁아만 가는 것을 느낍니다.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들은 처음 만나도 놀이터에서 곧잘 노는데 말이지요. 우리의 편견을 깨지 않는한 우리의 고립감은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AgalmA 2018-06-16 10:23   좋아요 1 | URL
사랑해야지, 사랑해야지...매일 다짐씩이나 하며 임하는데도 참 쉽지 않아요~_~; 다 때려치고 싶고 죽일듯이 미워지는 게 또 삶인지라....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의 상처와 감정이 계속 나를 감싸고 있어 정말 쉽지 않고 괴로울 때도 많고요. 타인들도 이렇겠지요. 아파도 상처받아도 마음을 닫는 건 결국 모든 걸 포기하는 선택이 되겠죠. 그런 막다름에 다다르지 않게 서로 도와야하는데.....
저는 계속 ˝어렵다 정말 어렵다˝만 염불처럼 중얼거리며...~_~

겨울호랑이 2018-06-16 10:34   좋아요 1 | URL
저는 그냥 아플 때면 ‘아픈가보다‘ 하고 몇 번 혼자 토닥거리다, 곧 툭툭 털어버리는 것 같아요. 상처는 아마 저와 계속 있을 것이기에 부정할 수 없지만, 이 녀석은 좀 ‘관종‘인 듯 해서 평소에는 생까며 살아갑니다.ㅋㅋ 너무 단순하지요... ㅜㅜ

AgalmA 2018-06-16 10:40   좋아요 1 | URL
그 ‘툭툭‘ 능력을 제게 좀 파세요ㅜㅜ! 아픔은 제 세계의 중력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제가 중력의 속도를 벗어나는 괴력의 블랙홀에 강한 매력을-,.-; 저는 이런데서 단순하지요-_- 생활을 바꿀 생각은 않고 머리로만 좇아....에휴

겨울호랑이 2018-06-16 10:45   좋아요 1 | URL
뭐 대단할 것은 없고 영화 <메멘토 모리>에서 나오는 초단기 기억 저장 능력이라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머리가 복잡해질 때는 땀 흘리는 운동을 추천드려요^^:) 활기차게 땀과 함께 안 좋은 기억도 날려보내심은 어떠신지... 아니면 가까운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 오래전 절판되어 만나길 포기했던 옛 친구와 뜻밖의 만남을 기대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AglmA님께서는 커피 좋아하시니 커피 있는 매장이 좋겠군요...ㅋㅋ 제가 더 신났네요...

AgalmA 2018-06-16 10:52   좋아요 1 | URL
ㅋㅋㅋ 오전에 땀흘리고 운동하시고 지금 알라딘 오프매장에서 셀렉 중이신 거 아녜요ㅋ! 뭔가 상당히 경험적인 말씀이신 듯 하여ㅋㅋ 언젠가 알라딘에서 그 귀했던 사드 <소돔 120일>이 떼로 깔려 있던 거 보고 실소했던 기억 재밌었죠ㅎ 저는 주말에 일할 예정이라 어떻게든 짬을 내 놀 궁리를 하고 있ㅎ; 이게 인간이죠. 그쵸? ㅎㅎ

겨울호랑이 2018-06-16 10:54   좋아요 1 | URL
그럼요. 인생 뭐 있나요?ㅋㅋ 주말에는 힘들고, 주중에 틈을 내서 직장 근처 매장을 가는 편입니다.ㅋ 바쁘게 일 마무리하시고,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인생의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96
신철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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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라는 관계에서 원인인 나와 네가 그럴 의사가 없다면 제3자인 구원 투수를 기대하긴 어렵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상징적 의미가 그러하고 거기 다른 누군가를 둘 수 없듯이. 그럴 수 있었다면 종증조모처럼 아아머니나 어버니라 부르는 누군가 있었을 것이다. 역할극을 하듯 바깥은 그러하고 우리 안은, 누군가를 마음에 둔다는 것은 상대의 절대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가장 원하지 않는데도 들어오고 무너진다. 애초에 이 만남은 우리가 아주 먼 궤도를 도는 별들이라서 가능한 짜릿함이었는지 모른다.
"너와 나의 국경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외곽으로 가는 택시」)
    
우리는 공명통이었다. 아이가 자신을 보고 웃을 때 자연스레 마주 웃는 그러한 사람들이었다. 그걸 진화적 사회본능이라고 차갑게 내뱉더라도 우리를 감싸는 온기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주고받음이 너무도 계산과 거래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그 감각을 많이 잃었다. 그만큼 우리의 공허도 절망도 커졌다.
“나는 너를 채우고 너는 내게서 빠져나간다./우리는 번지면서 더욱 뚜렷해진다”(「데칼코마니」)
“어제는 서로에게 몸을 주고 마음을 얻었다/오늘은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몸을 잃는다”(「밤은 부드러워」)
    
“내가 얼마나 메말랐기에 너는 그처럼 밀려오는가”(「해변의 진혼곡」)처럼 사방은 너무도 건조해 모래가 이 시집 가득 휘날리는데, 더 이상 흩어질 곳이 없어 "그때부터 우리는 벽"(「벽」)이 되려 했다. 궤도를 따라 도는 행성처럼 움직이는 벽이다. 실밥이나 모래 같은 끊어지기 쉬운 결로 "점성의 독방"(「벽」)을 만들어 "하루종일 벽을 따라 걷는 독방의 수인"이 되는 운명을 거부할 수 없다. '모든 것이 가만히 있는 지옥'(「검은 방」)만은 거부하기 위해. "어떤 짐승도 가만히 엎드려 재앙을 기다리지 않"(「단종」)기에.
    
이 시집엔 모래만큼 비만큼 가볍고 흩어지기 쉬운 "구름" 오브제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자연이다. 현실 속에 구름이 늘 떠있듯 꾸밈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봐야 할 정도다. "지구가 생기고 난 뒤 한 번도 멸종된 적이 없는 구름"(「무지개가 뜨는 동안」)과 우리는 무척 닮기도 했고, '지구의 자전의 속도로 흐르고 중력을 겪는 것'(「공회전ㅡ동식에게」), "살점을 떼어내며 형체를 잃어가는"(「기생」) 마지막도 마찬가지니 구름과 우리는 가족 같다. "서로의 등뒤에서 눈이 내려도 돌아볼 것 같지 않은 사람들"(「등과 등 사이」)이기도 하면서 "같은 표정에 도달해야만"(「기념사진」) 벗어날 수 있다는 듯이 모여서 웃다가 먹구름처럼 뭉쳐 한 덩어리가 되는 증오와 슬픔을 겪는 것도 변함없다. "링거줄 같은 비행운이 한참 공중에 떠"(「손톱이 자란다」) 있는 걸 보지 않은 자 없고 타인의 죽음을 겪어보지 않은 자도 없다.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슬픔의 자전」) 하듯 우리는 대체로 누구에게도 초대받지 못한 아이로 자라 어른이 되고,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연인 뭐가 되든 다 잃어서 처음 태어났던 순간처럼 혼자로 돌아간다. 어쩌면 성취가 아니라 끝 간 데 없이 잃고 슬퍼 봐야만 사람이 되는지도 모른다. 눈물과 물방울이 왜 이렇게 닮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과 마음속에 사람이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라고 말하는 「검은 방」 등 세월호 관련 시들, “우비를 뒤집어쓰고 등을 돌린 채 직사의 물대포를 맞고 있는 사람이 있다/ 죽은 물고기를 씻어내는 수돗물처럼 얼음 탄환이 쏟아진다"라고 말하는 「연기로 가득한 방」 등 집회와 투쟁 관련 시들은 이 세계의 모든 슬픔과 폭력을 직시하려는 마음속에서 탄생했다. 그의 2011년 등단작 「유빙」부터 그러한 징후가 가득했다. 앞서 얘기한 「검은 방」 과 「연기로 가득한 방」 이 이 시에 이미 계시되어 있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중략)…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ㅡ「유빙」
    
그럼에도 누가 누군가에게 천사도 구원 투수도 되지 못한다. 그런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 것들이 모두 모이지 않는다면. 내 손으로 잡는 것이 아니기에 우연이다. 내가 지금 당신의 한 손을 부여잡는다 해도 반드시 “다른 손은 빈손이 된다.”(「생각의 위로」) 그래서 우리는 왼뺨도 내밀고, 모두가 모두의 손을 잡을 수 있도록 기도도 한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우리는 암모나이트처럼 몸을 말고”(「구급차가 구급차를」) 밑바닥으로 낙하하길 바라기도 하고,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눈물의 중력」)이 되어 모든 통과를 거부하고 싶기도 하다. “손톱이 손등을 파고들 만큼 간절한 기도도/팔을 날개로 바꾸지는 못”(「구급차가 구급차를」) 했으니까. 그러나 울음이, 기도가, 투쟁이, 시가 이 행성을 구하고자 하는 공명통으로 해처럼 달처럼 나타나는 것은 중단되지 않는다. “체온을 잃지 않기 위해 점점 뾰족”(「밤의 드라큘라」)해지기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곳으로 마음을”(「연인」) 보내고도 서럽지 않을 별이 되어야 하겠다. 사람이 되는 것은 이토록 어렵다.

 

 

 

한승석 & 정재일 -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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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6-10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좋네요!!^^

AgalmA 2018-06-14 16:23   좋아요 1 | URL
반갑네요! 저도 그장소님 좋아해요*-.-*)....난데없는 고백.
이 무슨 시츄에이션)))

[그장소] 2018-06-15 00:10   좋아요 1 | URL
ㅎㅎㅎ우리 사랑 이대로??? ㅎㅎㅎㅎ
 

촘스키에 의하면 인간의 언어는 생득적 특성을 알아볼 수도 있지만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도 있다. 일명 ‘변형 생성 문법’으로 불리는 언어학적 연산은 구조 의존적이다. 외적 표출을 위한 감각운동 접합면에 있지 않고 개념-의도 접합면에 있는 언어들이 그에 해당한다. 이에 따르면 의사소통은 언어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언어·사고의 대부분은 수면 아래에서ㅡ서로 다른 두 개의 대상에 외적으로 작용하여 또 다른 형태를 생성하거나, 하나의 대상 안에서 내적으로 작용하여 또 다른 형태를 만들어내는ㅡ‘병합’을 하거나 어느 한 곳에서 발음된 구절이 그 위치는 물론이고 다른 위치에서도 해석이 되는 ‘전치displacement’ 속에 있다.
그렇다면 우연은 그런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것인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인가.

 

 

“우리는 누군가의 말소리를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말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불과 몇 초 내에 온갖 종류의 조용한 정보들이 흡수된다. 성별, 대략적인 나이, 사회 계층, 출생지, 심지어는 그 사람의 피부색까지도. 우리가 볼 수 있다면, 눈을 뜨고 마음속으로 그린 이미지가 실제의 인물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그 두 가지는 비교적 근접할 때가 아닐 때보다 더 많지만, 때로는 전혀 틀리는 경우도 있다.”
    
“그때까지 나는 항상 일반화를 하려는, 사물들 사이에서 그것들의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을 찾아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특별한 사물들의 세계로 뛰어드는 중이었고, 그것들을 말로 일깨워 즉석에서 감각적인 데이터로 불러내는 일은 내가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투쟁이었다. 에핑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플로베르를 시켜 자기를 밀고 돌아다니게 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플로베르도 때로는 단 한 문장을 옳게 쓰려고 몇 시간씩 애를 쓰면서 골머리를 앓지 않았던가! 나는 사물을 정확히 설명해야 되었을 뿐 아니라 단 몇 초 내에 그 일을 해야 했다.”
    
“세상은 눈을 통해 우리에게로 들어오지만, 우리는 그 이미지가 입으로 내려가기 전에는 뜻이 통하게 할 수 없다. 나는 그 거리가 얼마나 먼 지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어떤 사물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 위해 얼마나 멀리 여행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그 거리는 6, 7센티미터에 불과했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고와 손실이 생겨나는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구에서부터 달까지의 여행이 될 수도 있었다.”


ㅡ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중

 

촘스키의 생성 문법을 보여주는 문장이 가득한 『달의 궁전』을 읽으며 나는 하루키를 떠올리다가 심보선을 떠올리다가 연상의 동굴을 자주 만났다.
특히 심보선의 시 「브라운이 브라운에게」는 폴 오스터 『달의 궁전』 변형 생성 문법 같다.
심보선 시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끝날 일이지만 재미 삼아 인간의 특징답게 복잡하게 이 글을 쓴다.
두 작품이 연결되는 우연성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뉴욕 시가 배경, 주인공이 아버지 없이 어머니에게서 자라다가 어머니 사망 후 고아가 돼 삼촌에게 길러진 가정 상황, 비밀스러운 뜻의 이름(Then Brown(「브라운이 브라운에게」), 마르코 스탠리 포그(『달의 궁전』)) 등등.  
    


두 작품 다 우연히 가지게 된 포춘쿠키의 문장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브라운이 브라운에게」에서 덴 브라운은 <희망은 그대 영혼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다>란 비관주의적인 문구를 발견하고 고객 관리 담당자에게 문의한다. 이 사건 추적 속에 덴 브라운은 행운의 메시지 작가와 불행의 메시지 작가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고안된 ‘불량품’이 오히려 장인적 고뇌의 산물”이라는 역설에 감동하며 자신이 사실 그 불행의 글귀들을 모으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작가 이름이 Brown Gee라는 것에서 필연을 느끼고 자신의 비밀을 말한다. 포춘쿠키 속에 불행의 메시지를 몰래 넣는 Brown Gee는 폴 오스터 『거대한 괴물』에서 폭탄 테러를 벌이는 아나키스트적인 인물 ‘삭스’ 소심 버전으로도 읽히는데, Brown Gee가 Then Brown의 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둔 채 이 시는 끝난다. 심보선은 우연을 우연인 채 남겨두려 한 거 같다. 그러나 폴 오스터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다.
    
    
『달의 궁전』은 마르코 스탠리 포그, 솔로먼 바버, 토머스 에핑 삼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은 서로가 가족인 줄 모르다가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된다. 마르코 스탠리 포그가 본 포춘쿠키 점괘는 포그 - 테슬라 - 에핑을 연결하고 있다.

 

“테슬라의 자서전인 『나의 발명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책은 원래 그가 1919년 〈전기 기술〉이라는 잡지사에서 출판한 것이었다. 나는 그 책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문을 서너 페이지쯤 읽다가 거의 1년 전쯤 달의 궁전의 쿠키에서 나온 점괘와 똑같은 문장을 보게 되었다.
〈태양은 과거이고, 지구는 현재이고 달은 미래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쪽지를 지갑에 넣어 두고 있었는데 그 말이 테슬라, 에핑에게 그처럼 중요했던 바로 그 테슬라가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나에게는 그 우연의 일치가 의미심장하기 그지없어 보였지만 정확히 어째서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마치 내 운명이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내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할 때마다 알아듣지 못할 말로 바뀌는 것 같았다. 중국의 점괘가 든 쿠키 공장에서 일하는 어떤 노동자가 테슬라의 책을 읽었던 것일까? 아무리 보아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그때 우리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서 그 특별한 메시지가 담긴 쿠키를 고른 사람이 하필이면 왜 나였을까? 나는 그 일로 이상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일의 접합이어서 이상한 음모라든가 예견적인 신호, 전조, 찰리 베이컨의 세계관과 유사한 세계관 같은 어떤 미친 듯한 대답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테슬라에 관한 에세이를 그만두고 우연의 일치라는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했지만 거기에서 많은 진척을 보지는 못 했다.”


ㅡ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중

 

 

자신의 삶을 소진시키려고만 한 포그,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재창조한 에핑, 포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혼돈 속으로 뛰어들었고 자신의 비대한 몸과는 다른 특별한 세계를 창조한 바버. 이 세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았고 어떤 지점에서는 운이 없었다. 자신을 도와준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지만 상실을 자초하는 포그,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일확천금을 얻었음에도 불구, 맹인, 외톨이라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 속에서 산 에핑, 뛰어난 지성이 있었지만 초비만이라는 육체적 결함,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사랑이 죽음의 원인이 되기까지 한 바버.
포그가 공원에서 노숙인으로 살면서 깨달음에 이르는 장면과 바버가 자신의 육체를 받아들이는 장면, 황무지에서 은자의 동굴을 발견하고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 에핑의 일화는 폴 오스터가 우연으로 배치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재창조되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 아주 작은 포춘 쿠키만 하든, 공원이든, 황무지든, 머릿속이든.

 

 

“나는 전날보다 조금씩 조금씩 더 더러워지고 더 너저분해지고 더 혼란스러워져서 차츰차츰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과 달라졌다. 그러나 공원에서는 자의식이라는 짐을 지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공원은 내게 문턱, 경계선, 내면과 외면을 구분하는 방법을 제공했다. 길거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식으로 볼 수밖에 없었지만, 공원은 나에게 내면적인 삶으로 돌아가 순전히 내면적인 관점에서 나 자신에 전념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하늘을 가릴 지붕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내면과 외면 사이의 평정을 확립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공원은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그곳은 정말로는 집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피난처가 없었던 내게는 그곳이 집이나 거의 진배없었다."
ㅡ 포그 편
    
“그는 낯선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건 무시하고 구경거리가 되는 고통에 덤덤해지는 법을 배우면서 그 몇 달을 보냈다. 매일 아침마다 그는 러시아워의 유클리드 가를 따라 걸어가면서 자신을 시험했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반드시 웨이예 공원으로 나가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입을 쩍 벌리고서 쳐다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자기에게 쏟아지는 눈길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외톨이, 자신의 비틀거리는 의식을 헤치고 터벅터벅 걷는 둥근 달걀 모양의 단세포 생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효과가 있어서 그는 더 이상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혼돈 속으로 뛰어듦으로써 그는 마침내 솔로몬 바버, 내로라하는 중요한 인물, 자신을 극복하고 스스로 창조한 세계가 되었다.”
ㅡ 바버 편
    
“나는 그걸 해 봤고 지금은 그게 모두 내 머릿속에 있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황무지 한가운데서 혼자 몇 달 몇 년 씩 살아 봤지…. 일단 그러고 나면 평생 동안 그걸 절대로 잊지 못해. 나는 어디로도 갈 필요가 없어.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리로 돌아가 있으니까. 거기가 요즘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야. 아무도 없는 곳 한가운데로 돌아가서……."
ㅡ 에핑 편

 

 

에핑은 바버가 자식인 걸 알았지만 만나지 않았고, 포그가 자신의 손자인 걸 알지 못했다. 알았기에 행복하지도 않았고 몰랐기에 불행하지도 않았다. 바버는 부재했던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듣고 분노도 행복도 느끼지 못했지만 포그가 자신의 아들인 걸 알고 행복과 슬픔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포그는... 연인 키티, 바버, 에핑에게 그는 늘 미숙한 자였다. 에핑처럼 외적인 성취로 자신을 위장하지도 못했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자기 삶의 미스터리를 집요하게 파헤쳐 역사학자로서 지적 성취를 이룬 바버처럼 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우리 대부분은 포그를, 덴 브라운을 닮았다는 것을.
우리는 브라운 지가 작성한 글귀를 다르게 작성할 수도 있고 덴 브라운과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태양과 지구와 달의 관계를 다르게 볼 수도 있으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인식 한계 속에 있다. 촘스키는 인지 능력의 한계가 지식 추구의 걸림돌만 되는 게 아니라 뉴턴의 중력 발견이 그 이후를 뒤바꿔 놓았듯 전혀 다른 걸 발견할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우연이 필연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연히 발견한 것들이 우리 삶을 극적으로 바꿨던 것에 더 주목해야 하리라.

촘스키의 아나키스트적인 면모와 폴 오스터 세계 속에 아나키즘이 오늘은 특별하게 보인다. 우연하게도.
    
오늘 내게 온 포춘쿠키는 이 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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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6-03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의 5개 숫자는 로또 번호일까요? 5개까지 가르쳐 주고 나머지 1개를 안가르쳐 주는 것을 보면 1등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비극이 될 수 있음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됩니다.ㅋㅋ

AgalmA 2018-06-03 21:58   좋아요 1 | URL
네. 행운의 숫자래요. 로또 같은데 쓰라고 그런 듯ㅎ;
아이고, 겨울호랑이님 농담을 참 비극적으로 하시네요ㅋ

NamGiKim 2018-06-04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촘스키 책 읽어보고 싶군요.

AgalmA 2018-06-04 18:35   좋아요 1 | URL
아직 안 읽어 보셨다면 언어에 대한 책을 읽어 보시면 더 좋겠죠.
<촘스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는 촘스키의 최신작 <불평등의 이유> 읽기 전에 워밍업으로 읽은 건데요. 지금의 불평등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노력, 아나키즘적 공공선을 추구하는 방향성이 어떻게 나왔는지 그림이 잡히더군요.